남쪽에서 살며시 불어오는 미풍이 봄의 향기를 담아 보내오는 계절, 한국문인협회 영천시지부(지부장 김대환)에서는 지난 2일, 청마 유치환을 찾아 동양의 나폴리라고 일컬어지는 경남 통영으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영천문화원 밑 둔치에서 출발할 때의 좋은 날씨와는 달리 통영에서는 왼 종일 내리는 비로 인해 우중기행이 되어버렸지만 오히려 진한 추억으로 아로새겨지게 했다.
유치환의 시 세계에 대한 설명과 시 낭송, 회원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3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심장부인 통영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청정해역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통영문인협회 회원인 정순애씨 부부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남망산 공원에는 다목적 문화예술회관으로 대극장 1,000석과 소극장 290석의 공연장과 2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지난 97년 개관한 통영시민문화회관이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예향 통영의 긍지를 드높이고 있었고, 청마 유치환 시비와 이충무공 한산대첩비, 승첩지를 바라보고 있는 이순신장군 동상, 조각공원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전망대인 수향정에서는 미륵도 관광특구와 마리나리조트를 비롯, 미항인 통영항의 아름다움과 많은 섬들을 조망할 수 있었다. 이곳은 특히, 바다가 아닌 섬위로 떠오르는 일출이 아주 인상적이라고 한다.
때마침 시민문화회관 대전시실에서는 제4회 통영들꽃회원전이 열려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환영해 주었다. 때마침 시민문화회관 대전시실에서는 제4회 통영들꽃회원전이 열려 먼 곳에서 찾아온 고마리, 궁궁이, 금강초롱, 금낭화를 비롯한 수많은 들꽃을 감상하며 우리 꽃의 오묘함과 전통야생화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감상한 후 이 지방의 별미인 충무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충무김밥은 충무항(현 통영항)에서부터 유래된 고유명사로서 70여 년 전에 고기잡이를 나가는 남편이 제때에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한 여인이 기존 김밥의 내용물이 쉽게 상하는 것을 보완하여 맨밥에 김을 싸고 반찬은 별도로 꼴뚜기 무침과 무김치로 싸서 만들었다고 한다.
부산에서 여수를 잇는 항로의 중심인 지리적 특성으로 해로교통이 일찍부터 발달한 이곳을 지나가는 선원들에게 판매하면서 깔끔한 뒷맛이 점차 알려져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
한국 시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유치환의 시는 학생 시절부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애송하고 있다.
특히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방대한 양감과 울분, 탄식, 저항, 질타 등의 호방한 시풍이 그의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여느 시들과는 다른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청마 유치환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0년 개관한 청마문학관에는 우중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특히 경주문예대학 회원들은 안재진 예총 영천지부장을 비롯한 영천의 몇몇 문인들을 알아보고 기념촬영을 하며 반가움을 나누기도 했다.
유품 100여 점과 각종 문헌자료 350여 점을 갖춘 청마문학관은 도입부와 3개의 주제로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도입부에서는 청마를 비롯한 통영출신 유명 예술인들의 예술혼을 접할 수 있도록 꾸몄고 첫 번째 주제인 ‘청마의 생애’코너에서는 청마의 생애를 연도별로 정리, 인간 유치환에 대해 심도 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꾸며졌으며 두 번째 주제인 ‘청마의 문학’코너에서는 시대별 작품경향과 대표작 감상을 통하여 청마문학을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세 번째 주제인 ‘청마의 발자취’코너에서는 청마의 각종 유물과 관련서적의 전시를 통하여 생전의 숨결과 체취를 입체적으로 느끼면서 고결했던 삶과 치열했던 문학정신을 총체적으로 표명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청마문학관 뒤쪽에 복원해 놓은 생가는 본채(약방, 안방, 부엌, 마루)와 아래채(사랑방, 광, 측간)로 구성되어 있다.
청마는 1908년 통제영 문화의 중심지인 통영시 태평동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져 통영시에서는 당초 태평동 생가를 복원하려고 했으나 이 일대가 도심지역인 데다가 또한 도시계획 등을 고려,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이곳 정량동 언덕에 생가를 복원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바다와 비의 조화를 감상하며 관리사무실에서 제공한 커피 한잔을 음미한 후 해저터널을 찾았다.
이 해저터널은 1927년부터 1932년까지 5년 6개월에 걸쳐 당동∼미수2동을 연결하여 만든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로 길이 483m, 너비 5m, 높이 3.5m이다.
양쪽 바다를 막은 후 바다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을 만든 것으로, 터널 입구에는 “용문을 거쳐 산양(山陽)에 통한다”는 뜻의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는 글귀가 아로새겨져 있다.
영천으로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이번 문학기행에 참가한 문인협회 회원들과 가족을 포함한 24명의 면면들을 한 명 한 명 생각해 보았다.
한사코 원로대접 받기를 거부하며 지금까지 영천의 문화를 이끌어 온 50∼60대와 앞으로 한 세대를 짊어져 나가야 될 30∼40대의 회원들.
‘문학과 예술’이란 명제 앞에서 나이 차이는 그들에게 결코 벽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인생역정을 살아오면서 배운 숱한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가르쳐주는 선배들과 훌륭한 선배들이 닦아놓은 든든한 토양 위에서 열심히 배움의 길을 걷는 후배들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한 미래의 우리 영천 문학세계는 밝은 빛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2004.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