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메 남도 산행, 맛 기행
신들메산악회에서는 매년 봄이면 ‘봄맞이 산행’이란 핑계로 1박2일 南道로 산행 겸 맛기행을 떠납니다. 작년 고흥의 팔영산과 순천의 조계산을 다녀오고, 올해에는 해남의 달마산과 장흥의 천관산으로 정하고 길을 나섰으나 짖굳은 날씨와 황사에 산행다운 산행은 못하고 남도 맛기행으로 부족함을 메우고 돌아왔습니다.
3월 말일. 豫報를 했었고, 豫見했던대로 새벽 5시에 깨어 밖을 내다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서둘러 준비하고 차를 몰고 약속장소에 나가니 아직 시간이 이른지 한 명도 안보여 고가도로 밑의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있자니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한 쪽으로는 걱정스런 눈길들이지만 남도로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지 얼굴의 표정들만은 밝습니다. 시간보다 지체되어 상일에서 씨끄리 동지를 태우고 성남나들목을 빠져 용파리를 태우고 다시 성남나들목의 끝내리 동지 약속장소를 갔으나 동지가 보이질 않습니다. 모두 내려 사방으로 찾아봅니다만 끝내 끝내리 동지는 나타나질 않습니다. 지금에야 이야기하지만 이 끝내리 동지가 진짜 천연기념물입니다. 그 흔하고, 지나다니는 개들도 입에다 하나씩은 물고 다닌다는 핸드폰이 아직까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날로그 세대라지만 기계치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그를 ‘똥’의 원조라 칭합니다. 다행이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하여 힘들게 기억시켜 놓은 어머니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니 비가 많이 와 못가겠다고 그냥 가랍니다. 이런 얼어죽을..... 그러면 못 온다고 전화를 하던가 해주어야지 남들 기다리는 생각은 안하고.....그래서 우리는 30분간을 그 착한 끝내리 동지를 聲討하는데 할애했습니다.
다행히 용파리 동지가 妻兄이 낸 책이라며 에세이집을 한권씩 돌리는 바람에 성토는 잊어버립니다. 2권째 내는 에세이집이라는데 여기다 그 책 제목을 올리면 법에 걸릴라나 모르겠네. 용파리의 처형이라면 마누라의 언니라는 이야기인데, 마누라라면 경기 모지사에 근무하는 이은영씨인데, 이은영씨의 언니라면 이은숙? 이은주? 이은자? 아니지 여자들은 돌림자를 잘 안 따지니.....이혜숙이던가. 제목은 ‘아직도 들고 계세요?’같기도 하고‘ 아직도 들어가고 계세요?’ 같기도 하고.....
각설하고 비봉으로 내쳐달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화성휴게소에서 아침을 먹는데 맛기행의 시작이 어째 좀 그렇습니다. 하기야 휴게소에서 맛타령은 배부른 소리겠죠? 운전자를 떠드리로 바꾸고 가운데 자리에서 잠을 청하려는데 150을 넘나드는 떠드리의 운전 실력에 머리카락이 쭈빗쭈빗 잠도 저 멀리 달아나버립니다. 내려갈수록 퍼붓는 비와 차체가 흔들거릴 정도로 부는 바람에 150이라니. 아이고! 목숨 저당잡혔습니다. 운전석 옆에서 앉은 씨끄리가 같이 떠들어대니 진짜로 시끌떠들벅쩍입니다.
충청도를 거쳐 전라도 맨 끝자락 목포를 빠져나오니 아직도 비는 계속 내리고 산행보다는 남도 맛기행으로 바꾸어 목포로 들어가자고는 하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산행은 해야 한다며 해남으로 차를 몰아갑니다. 네비게이션에 의지하며 해남으로 들어서니 바로 ‘용궁해물탕’이 보이길래, 책자나 tv에서 많이 본 집이라 무턱대고 들어갔으나 친절이나 맛에서 별 흥미를 못 느꼈습니다. 서울에서 먹던 흔한 해물탕인데 그 난리를 치니.....시끄리 동지가 아무 것도 아니라던 1급 사회복지사 시험 합격기념으로 오늘의 점심을 쏜답니다. ‘쏜다’ 소리가 나오니까 생각납니다만, 이번 여행 중 용파리의 화두는 단연 ‘쏜다’였습니다. 며칠 전에 영화를 보았다며 신호에 걸리거나, 길을 잘못 들어 유턴을 할 때도 오로지 ‘쏜다’를 못 본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며 산행이 끝나면 단체로 관람하랍니다. 이 험한 세상 법대로 살면 그 사람만 손해 본다는 그런 스토리라는 거죠.
일단 산행은 달마산 근처의 날씨를 봐가며 결정하자며 ‘은둔의 가람’이라는 미황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는 그쳐있었습니다. 미황사의 마당을 들어서니 대웅보전의 고적한 자태가 우리를 반깁니다. 유홍준교수가 문화유산의 보고라며 첫째로 치던 ‘남도답사일번지’의 고장 해남,강진군의 도갑사, 무위사, 녹우당, 다산초당, 만덕산 백련사, 대흥사 등등. 그 중의 하나 미황사 대웅보전입니다. 이 마당에서 대웅보전을 보면 뒤의 달마산의 연봉들이 장엄하게 바라다 보일텐데 지금은 온통 운무에 가려 뵈지를 않습니다. 특히 단청을 하지 않아 옛스런 맛이 더해지는, 덧붙여 기둥이나 대들보의 나뭇결까지 자연스러운 멋을 구경하느라 산행은 뒷전입니다. 바로 앞의 당간지주에는 ‘괘불’이라는 걸개그림을 몇 년에 한 번씩 걸었다는 옆에서 한 할아버지의 친절한 소개도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 일부는 당간지주가 뭐냐? 개불이 뭐냐?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개불이 아니라 괘불.
아리따운 보살님의 등산로 안내로 본격적인 달마산행에 들어갑니다. 2시를 넘은 시간이라 가장 짧은 코스인 문바위를 거쳐 달마봉을 오른 후 다시 미황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점심에 반주 한잔 걸친 것이 말을 하려는지 이내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능선을 올라서니 본격적인 암봉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운무에 가려 코앞의 바위만 보이니 진짜 코끼리 뒷다리 만지기입니다. 문바위의 개구멍을 간신히 통과하니 앞서간 떠드리와 시끄리의 떠드는 소리는 들리는데 모습은 보이질 않습니다. 핸드폰으로 연락하니 바로 옆 바위봉에 올라가 있습니다. 큰 바위 암봉들을 몇 개 지나니 봉수대의 돌탑이 있는 달마산의 정상인 불썬봉입니다. 바람이 드센데다 운무 때문에 시야는 제로. 앞뒤로 남해바다의 코발트빛 풍광을 보려는 꿈은 멀리 날라가 버렸고, 옆의 한갓진 공터에서 간단한 행동식과 맥주, 막걸리로 허기를 채우고 급히 미황사 내려가는 길로 나려서서 7부 능선에 오니 이제야 미황사와 앞의 벌판들이 보이고, 미황사를 빠져나와 국도로 나오니 달마산의 암봉들이 파노라마처럼 길게 도솔봉까지 이어진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땅끝마을의 落照는 보기는 글렀기에 길옆으로 늘어선 보리밭이며 유채꽃밭을 구경하며 바닷가에 다다르니 진도의 바닷길이 열리는 것처럼 바다가 갈라져 섬까지 연결된 길이 나타나 모두 내려 그 길로 들어섭니다. 아주머니들의 바지락 캐는 모습이며, 관광객들의 떠밀려온 다시마 줄기를 줍는 모습이며, 연인의 석양빛을 등진 모습들이 참으로 정겹게 다가오는 곳입니다. 미안한 마음에 집으로 전화를 하니 ‘혼자 좋은 곳은 다 다니네. 맛난 것은 혼자 다 먹고 다니네’ 하며 궁시렁대는 마누라의 잔소리가 오늘따라 싫지가 않습니다.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에 급히 빠져나오며 뒤돌아보니 벌써 우리가 지났던 길에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다시 차를 몰아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이라는 토말에 도착해 전망대에 오르니 해는 지고 있으나 황사와 운무에 ‘희미한 저것이 해구나’ 하고 느낄 정도입니다.
맛기행이니만치 강진의 한정식을 맛보자며 남해안의 구절양장같은 컴컴한 해안도로를 달려 강진읍에 도착하니 벌써 네비게이션없이는 길 찾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맛집 주소를 따져 들어가다 보니 유홍준의 답사기에도 나오는 ‘해태식당’이 떠오르나 지금은 너무 많이 속세적인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새로운 곳을 찾다보니 호계리의 ‘종가집’이라는 곳이 나타나 전화로 물어보고 네비에게 의존해 찾아가니 그야말로 한국의 전통 종갓집의 형태인 근사한 기와집이며, 특히 마당의 분재들을 보니 주인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겠구나’ 싶습니다. 전화로 예약을 한 상태라 바로 상이 내오는데 진짜 진수성찬 그대로입니다. 고생해 찾아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작년에 고흥의 한정식 집을 인터넷에서 뒤져 찾아갔다가 종업원이나 주인장의 불친절함이나, 음식의 맛에 밥맛을 잃었던 적이 있던 터라 올해는 안심이 됩니다.
배불리 먹고 소주도 한잔 한터라 용파리에게 운전대를 넘겨주고 다음 기착지인 장흥의 회진포구로 향해 가는데 캄캄한 밤이라 옆의 마량만의 풍광은 볼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늦은 시간에 회진항을 가니 벌써 불들은 다 꺼져있어 잠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아 내일 어차피 천관산을 오르려면 관산으로 가야하니 발길을 돌려 천관산 입구의 모텔에 들러 잠자리를 청합니다. 한미FTA의 협상 결과를 보려고 채널을 돌려보지만 뉴스는 안 나오고 모텔 특유의 야동 프로만 눈에 들어옵니다.
서둘러 잠을 청해 아침 7시 정도에 기상하여 관산읍내로 들어가 시장의 한적한 국밥집에서 해장국을 먹고 천관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갑니다.
장천재를 거쳐 능선에 오르니 앞서가던 타 팀이 가져온 동동주를 먹어보라며 한잔씩을 권해 먹어보니 맛이 괜잖아 모두 한잔씩 먹는데 유달리 떠드리만 더 먹는다며 청합니다. 삶은 계란도 두개나 먹었답니다. 조금 지나 중봉쯤에 오니 본격적인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최악의 황사에다 비까지 오니 그야말로 황사폭탄을 맞는 기분입니다. 서둘러 우비를 걸치고 금강굴을 지나 천관사능선과 갈라지는 삼거리에 오니 천관산의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천관사능선의 바위나 반대편의 지장봉의 바위는 특히 멋들어져 비오는 와중에 그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고 그중에 두드러진 바위 하나 -7대 불가사의라는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과 너무나도 흡사한 바위 모양이 눈길을 끄는데 남들은 별로인가 봅니다.
환희대라는 천관산의 또다른 정상에 서니 북서쪽으로 지장봉, 구룡봉이 동남쪽으로는 억새능선을 넘어 천관산의 정상 봉수지인 연대봉이 보이고 앞으로는 탑산사계곡이 희미하게 내려다 보입니다. 커다란 바위처마 밑에서 라면을 끓이는 아줌씨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연대봉을 향해 가는데 부는 비바람에 몸이 추워옵니다. 환희대에서 연대봉을 가는 능선은 억새밭으로 가을이면 멋진 경치를 뽐내는 곳입니다. 천관산 정상에 서서 봉수대 옆에 바람을 피해 라면을 끓이려는데, 아차차! 이 코펠 담당인 용파리가 배낭을 안 지고 올라온 것을 그제서야 알아챘으니 이번에는 용파리의 성토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솟아날 구멍을 찾던 중 그 중에 그래도 가능한 것이 맥주캔을 오려서 그 위에다 햄을 굽는 것입니다. 처절한 배고픔에, 추위에 라면은 고사하고 소주 안주를 만드는 솜씨라니.....옆에서 식사를 하시던 광주에서 왔다는 두 분의 아줌씨가 우리 일행이 불쌍해 보였는지 김밥을 건네더니 곧이어 찹쌀떡이며, 배, 따듯한 커피까지 주는 것입니다.
젊은 우리의 무모함이 부러운 것인지, 암튼 덕분에 추운 기운을 떨치고 다른 일행에게 자리를 비켜주려 하산길로 내려서서 가다 보니 멋들어진 바위들이 곳곳에 나타나는데 그 이름도 특이한 할미바위, 책바위(정원석), 양근암 등. 특히 양근암은 그 형태가 완벽한 남자의 성기 모양으로 밑에는 불알 모양의 돌까지 달고 있고 건너편의 금수굴 능선의 금수굴과 암수를 이룬다는데 건너편의 능선을 바라보아도 뵈이지는 않습니다. 그 와중에 시중동지는 할미바위의 위험한 곳에 올라 돌을 얹으며 기도를 합니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아마도, 추측건대 어디서 예쁜 색씨 하나 점지해 달라고 빌었을 겁니다. 시끄리의 잡학박사다운 농지거리가 이어져 배를 잡고 웃으며 내려오다 보니 건너 능선의 멋들어지게 핀 벚꽃나무 군락이 보입니다.
어느덧 비는 그치고 처음 올랐던 곳으로 내려오니 시골 아주머니들의 일일장이 섰습니다. 탐스럽게 보이는 표고버섯이 한 바구니에 만원이랍니다. 마누라한테 잘 보이기 위해 사는데 덤이라면 한 웅큼을 더 집어줍니다. 주차장에서는 또 4가지 색깔의 장미 한 다발을 5천원에 사고, 달콤한 딸기 한 바구니를 4천원에 사고..... 힘들다. 마누라한테 잘 보이기 작전.
주차장에서 딸기를 먹고 점심 해결방법을 찾으려니 대세가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라면을 먹냐, 맛기행답게 특산품을 먹자는 소리에 어젯밤 뒤돌아왔던 회진항의 ‘된장물회’가 생각나 다시 서울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이곳은 장흥, 아니 우리나라가 낳은 두 걸출한 문인.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인 곳입니다. 회진항 바로 못 미쳐서 한승원의 생가 안내판이 나오는데 들어가 볼 시간은 없고.....지금도 그 곳 고향에서 ‘해산토굴’이라는 암자를 짓고 집필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회진항을 지나 진목포구로 가는데 이청준 생가 팻말이 보이고 그 뒤로 나지막한 바닷가 야산이 보이는데 혹시 저곳이 대표작 “눈길”에서 어머니와 함께 새벽눈길을 걸어 넘어 읍내로 나가던 길이 있던 곳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생가는 예전에 헐리고 지금은 새로 지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가 보는 것은 포기하기로 하고, 아니 점심 먹는 것이 더 급하기에 서둘러 진목포구의 진목횟집으로 가니 바로 된장물회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비릴 것 같더니 먹을수록 오묘한 맛이 동해안의 물회와는 또 다른 맛입니다. 추가로 시켜서 배불리 먹고 바로 앞의 포구로 나가니 낚싯배가 들어오는데 그 날 조황이라며 보여주는 고기는 40cm는 돼 보임직한 고기가 있고 조금 작아 보이는 고기도 서너마리 있는데 참 먹음직스럽습니다. 나중에 이름이 감성돔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울 올라갈 길이 막막해 네비게이션에 ‘우리집’을 찍으며 한숨부터 나옵니다. 마량쪽으로 나와 강진, 영암, 나주를 거쳐 광주로 와서 호남고속도로를 타니 전주와 여산 구간이 정체라는 전광판이 야속하기도 합니다만 정읍휴게소에 들러 고속도로 상황도를 보니 서해안고속도로는 곳곳이 정체구간이랍니다. 전주 쪽에서 잠시 정체를 거쳐 논산에서 천안간고속도로를 타니 뻥 뚫려 우리 떠드리 또다시 150을 넘나들기 시작합니다. 졸음도 순식간에 날라가고 천안에서 경부를 타니 이곳부터는 거의 주차장 수준입니다. 다행이 9인승 차량에 6명이 탄 상태라 버스전용차로를 110으로 달리니 옆에서 기어가는 다른 차들에게 미안하기는 합디다. 서울 신내동을 빠져나오니 10시 반 정도. 그냥 갈수 없다는 떠드리의 제안에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고 집으로 가 사온 물건들을 내려놓으니 우리 마누라 서방 무사히 돌아온 것은 안중에도 없고 장미다발을 풀어 다듬으며 화병에 꽂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남성여러분. 확실히 장미꽃은 여성을 예쁘게 하나 봅니다.
항상 봄이 되면 산행의 발목을 잡는 것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산불통제기간과 다른 하나는 황사입니다. 서울 근교 중부지방의 산들은 거의가 통제라 산불통제가 없는 남도산행을 추진해 보지만 올해는 비와 황사 때문에 조금은 어설픈 산행이었습니다만, 1박2일의 힘겨운 여정을 함께한 여섯 동지들 수고들 많았습니다.
다음 산행에서 다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