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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왕자산(天安 王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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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산 탐방사진-2 스크랩 천안의 진산(鎭山) 왕자산(王字山)...五龍爭珠, 고려(高麗)의 꿈을 말하다
오심죽(吾心竹) 추천 0 조회 241 09.09.12 14: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천안의 진산(鎭山)... 왕자산(王字山) 341.6 M ...2008.9.16 >>>---직산고을  吾心竹 ///

 

 **이 글을 읽는 분께서는 천안의 진산을 아십니까??? 태조산 아닙니다...///

 

☞천안의 진산---왕자산(王字山)을 아는 이 없어 고금의 역사서, 각종 기록물을 뒤지고 살펴봐도  

   명쾌하게 여기다 밝힌게 없어 동분서주, 고군분투 몇날을 발 품 팔아 드디어 찾아 봅니다.

   수 많은 지식인들도 찾지 못했던 역사의 발자취를 제가 오늘에야 찾았습니다.

   

☞태조산(太祖山)이 때로는 천안의 진산으로...각원사 좌불상 그 언저리로 막연히 생각했던

   천안의 진산인 왕자산...고금의 자료와 사진,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하여 밝히겠습니다.

 

☞천안의 鎭山 王字山을 찾는 것은 천안의 상징이자 이정표를 다시 세우기 위함입니다.

 

    (1) 천안이란 이름의 유래가 왕자산에서 비롯되었고,(天下安泰--天下大安--→天安)

    (2) 오룡쟁주형의 진산인 왕자산 아래 천안도독부를 설치하여 (고려 태조13년,서기 930년)

         삼천민호를 이주시켜 천안이 왕자산에서 태어났으며,

    (3) 천안을 낳고 키워준 어머니와도 같이 말없이 우뚝 서있는 산이 바로 왕자산입니다.

 

 ☞ 천안 역사 문화유산의 문패와도 같은  왕자산(王字山)  이제 저와 함께 구경하시죠.

 

 ※기타 이견이나...좋은 안건이 있으신 분들은 댓글을 남겨주세요.

 

   ☞인터넷 <<<다음--daum--// 카페 검색창--<오심죽> & <직산산악회>를 검색하세요>>> ///

 

 

     <<< 古地圖에 나타난 천안의 鎭山---왕자산---王字山 >>>

 

 1. 동국여지승람

 

☞ 천안의 진산---왕자산 ///

 

 2. 동국지도 

 

 ☞ 천안의 鎭山인 왕자산(王字山)

 

 

 3. 조선팔도지도

 

 ☞왕자산(王字山)---신은역(단대입구...역말) 앞산이라고 분명히 그렸습니다.

    성거산 주맥에서 흑성산의 중간에 서쪽으로 북일면에 속해있습니다.

    성거산에서 북서진 능선은 영인지맥으로 천안~직산간의 무넘이고개입니다.

    직산의 입장천~성거천이 여기서 발원합니다.

    성거산과 왕자산의 둥근 안쪽이 문암지 /백석대 /국민은행 연수원 입니다.

 

 

 

 

 4. 대동여지도(1861)---고산자 김정호 ///

 

     ☞ 성거산의 望日嶺(일명-만일령) 아래 신은역 맞은편이 왕자산이라고 분명히 그렸습니다.

         직산과의 경계 역시 점선으로 표시했습니다---경계되는 지점이 영인지맥으로

         천안~직산의 성거 요방리로 넘는 무넘이(水越,무네미)고개입니다. 천직산 깊은 곳 입니다.

         신은역(단대입구의 역말) 뒷산에 염고현(鹽高峴--단대/북일고 뒷산)이라 하였고, 이어지는

         능선에 직산의 양전산(良田山)---아산의 봉수대 연암산(월랑초등학교 뒷산)이 있습니다. 

 

 

 

 

 

  5. 여지도

 

☞왕자산---성거산~태조산 능선이 아닌 영인지맥쪽에 분명히 별도로 그렸습니다.

   현재의 성거산~상명대 갈림길 방향입니다. 이곳 상명대학에서 유려왕사의 유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1961년 밭가는 농부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는 삼거리 공원에 복원했습니다. 

 

 

 

6. 1872년 지방지도--천안군 

 

 ☞王字山--麗太祖駐軍于此(여태조주군우차)--고려 태조가 이곳에 군사를 주둔했다.

 

  

7. 조선지도 

 

☞ 왕자산---북일면, 신은역(단국대앞 역말) 앞...//

 

 

 8. 해동지도 

 

 ☞태조봉...현재의 태조산 입니다...왕자산과는 거리가 좀 멀리 있습니다...//

 

 

 9. 여지도

 

☞여기도 향교 뒷산을 태조봉으로 그렸습니다...太祖峯은 유려왕산으로 추정됩니다 // 

 

 

 

10. 호서도---천안군 //

 

 ☞ 향교 좌측 능선에 태조봉--현재의 태조산 (유려왕산으로 추정됨)

 

11. 동역도 (정상기의 동국지도 수정본--1700년대말~1800년대초)

 

 ☞ 천안의 진산---왕자산(王字山)

  

 

 <<< 인공위성 사진 분석 >>>

 

           ☞ 왕자산(王字山)---天下安泰--天下大安--천안의 진산(鎭山)

 

 

 

 

 

 

 

 

 

 

           ☞유왕골과 왕자산---각원사,좌불상 청동대불 / 

 

 

 

 

 

 

 

 

 

            ☞왕자산, 천안향교, 태조산 / 

 

 

 

 

 

            

 

 

 

 

 

 

 

 

           ☞ 천안시 동남구청, 중앙초교...옛 관아터 / 

 

 

 

 

 

 

 

           ☞ 천안 남산...여의주에 해당됨 /

 

 

           ☞ 성거산과 왕자산...태조산...금북정맥 /

 

 

 

 

 

          ☞ 위례산~성거산~왕자산~태조산 /

 

 

 

 

 

 

 

☞ 최신 등산지도---성거산 / 왕자산 / 태조산 / 흑성산 //

 

 

 

  

 

<<< 왕자산의 古記錄...신증동국여지승람 / 고려사 / 안서동 지명유래 >>>

 

☞ 왕자산을 찾기 위해서는 다음 지명을 참조합니다

 

1. 왕자산(王字山)---고을 동북쪽 12리에 있으며 진산이다.

   고려 태조(왕건)가 군사를 이곳에 머물러 두었을? 윤계방(尹繼芳)이 이곳을 다섯 용이 다투는(오룡쟁주형)

   형세라 아뢰어 보루(堡壘)를 쌓고 군사를 조련하며 왕자성(王字城)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왕자산은 바로 그 산의 모양이다.

 

2. 유려왕산(留麗王山)---고을 동쪽 11리에 있으며 목천현의 경계이다.

                                 (현재의 태조산으로 생각됩니다--의미가 상통합니다)

 

3. 유려왕사(留麗王寺)---고려 태조가 유숙하였으므로 이 이름이 되었다.(상명대학교 밭에서 1961년 탑이 발견됨)

                                 마점사 성불사 모두 왕자산에 있다.

 

4. 마점사---고려 태조가 말을 머물렀기 때문에 이름을 마점이라 하였다.

 

5. 고려 태조묘(太祖廟)---왕자성, 고정(鼓庭) 모두 왕자산 밑에 있다. 지금은 옛터만 있다.

 

6. 신은역(新恩驛)---고을 북쪽 10리에 있다. 조선 성환도찰방에 예속되었던 28개 역중의 하나임.

                            종6품(從 6品) 문관이 주관하였다 // 현재의 천안시 안서동 단국대 입구 <역말>입니다 /

 

7. 북일면(北一面)---관아로 부터 初境 5里이며 終境은 15里 이다. // 현재의 안서동일대--고지도 참조 ///

 

8. 쇠목고개(우수치-牛首峙)---중암마을 호서대~유량동으로 넘는 고개로 태조산과 왕자산을 연결한다.

                                        소가 누워있는 목부분에 길이 났다고하여 쇠목고개.

 

9. 안소골(安棲谷-안서골)---벌명당 북쪽의 골짜기로 무넘이 골짝의 가장 깊숙한 곳.

                                     사람들이 편안히 쉬며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안서골이다. ///

  

 

    <<< 고지도--고기록의 왕자산 종합 결론 >>> 

 

☞☞왕자산(王字山)---천안시 안서동 산 60번지 // 산 59번지 // 산 38-4번지 // 산78-4번지//

                              산73번지 // 산 69번지 // 산 98-4번지 // 산 6번지 // 산 10번지 //

                              산 116번지 // 산 117번지.....일대의 산을 말합니다 ///

 

☞왕자산의 지형및 지세

 

   왕자산--- 현재의 안서동의 상명대학교 / 백석대학교 / 국제대학교의 뒷산을 말합니다 ///

 

                 각원사 좌불상과 성불사를 둥근 원으로 포용합니다.

                 이곳은 풍선의 입구와 같아서 입구(호서대~상명대)만 막으면 천혜의 요새입니다.

                 왕자산의 우측으로 영인지맥(천안~직산의 무넘이)이 외성처럼 막고 있습니다.

                 가히 그 누가 보더라도 천안의 진산다운 위용과 攻守의 천혜요지입니다. 

               

   동---천안의 왕자산 각원사 좌불상 능선과 맞닿은 목천읍 덕전리 유왕골과 접하며,

           동남으로 태조산(유려왕산으로 추정됨)과 목천의 진산인 흑성산이 보입니다.

 

   서---단국대및 북일고 천안 두정동의 노태산, 직산의 미륵산, 아산의 용와산까지 조망합니다.

           영인지맥이 아산만까지 뻗친걸 볼 수 있습니다.(직산界~천안界)

 

   남---천안 오룡쟁주의 핵심인 관아터(현재 중앙초교)가 있었던 오룡동, 대흥동, 유량동과

           광덕산까지 한 눈에 조망됩니다. 가히 삼국을 통일할 地勢입니다         

 

   북---금북정맥에서 분기하는 영인지맥(영인산,입암산)과 직산현과의 경계인 무넘이 고개와

           (천안시 안서동~성거읍 요방리), 경부고속도로가 입장천을 따라서 안성평야, 직산,평택의

           소사벌(소사평-素沙坪)과 경기도 양성면의 鎭山들도 한 눈에 조망됩니다.

 

   또한 유왕골은 산악 분지와 같아서 험준한 능선으로 둘러쳐 방어가 용이하며 공격 또한

   사통팔달으로 진군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천혜의 조망권과 공격과 방어를 가진 산이 바로 천안의 진산 왕자산--왕자산성입니다. 

   이곳에 보루와 축대를 쌓고 군사를 조련하여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앞으로 이곳을 보존하고 잘 가꾸어 후손에게 빛나는 유산으로 물려 줍시다.

       천안시 50만 대도시의 상징물로 널리 홍보하고 보존합시다...감사합니다...///

 

 <<< 등고선도 5000:1 , 국토지리정보원---국토해양부 >>>

*** 왕자산(王字山)--상봉 364.4M / 중봉 335.9M / 하봉 341.6M ///

 

 

 

 

 

 

          <<<---직산고을--- 吾心竹 >>>

 

 

<<< 동영상과 사진으로 보는 천안의 진산---왕자산(王字山) >>>

 

 


 

<<< 왕자산--王字山 >>>---吾心竹 詩 ---

 

 

흙먼지 잠재우며   如意珠 입에 물고

聖居山 오색구름   黃龍이 昇天하네

고구려 千年大業   왕건고려 代를잇네

 

 

도솔천 天下大安   千年鶴 날개펴니

王字山 마애석불   夕陽에 미소짓네

覺願寺 쇠북소리   先春嶺碑 깨우나니

 

 

***선춘령비--고려 윤관장군이 1107년(예종2년) 여진정벌을 위해 17만명의 별무반을 이끌고

                   두만강 건너 700리 선춘령에  <高麗之境>이란 高麗의 定界碑를 세움.

 

 

 

< 文肅公 尹瓘의 30代孫...吾心竹 尹鐘一...왕자산을 바라보며...2008.9.25 >

 

 

 ***단국대학교 병원에서 바라 본 왕자산의 자태... ///

 

 ***백석대학교 뒤에서 바라 본 왕자산 ///

 

 

 ***왕자산에서 바라 본 천안시가지...//

 

 

 ***백석대/ 단국대 / 두정동의 북부대로와 노태산 //

 

 

 ***직산의 미륵산...아산의 용와산...//

 

 

 ***천안시 서북구청과 직산/성거/성환의 들녘 //

 

 

***성거산과 태조산의 주능선들...// 

 

***국민은행연수원과 서운산과 안성지역...//  

 

 ***성거산~태조산...유왕골 능선과 맞닿은 왕자산의 3 봉우리 ///

 

 ***임금王字 모양의 지형 //

 

 ***성거산에서 바라 본 왕자산 // 2007.12.25 촬영 ///

 

 ***금북정맥 성거산에서 흘러내린 태조산과 우측 영인지맥의 능선 길...///

 

  ***최신 천안시 지도로 본 임금王字의 왕자산 ///

 

 ***최신지도로 본 천안의 진산---왕자산 ///

 

 ☞등고선도---최신등산지도...왕자산 ///

 

 

 

 ***등고선도 / 천안의 진산 왕자산...빨리 지도에 왕자산이라고 올립시다 //

 

 

 

 

 

 

 ***천안의 진산---왕자산(王字山) 정상 ///

 

 ***왕자산의 정상 ///

 

 ***천안의 진산---왕자산 정상 ///

 

 ***천안시의 진산--- 왕자산 정상 ///

 

 ***왕자산에서 본 안서호와 천안시내 ///

 

 **성거산~상명대~태조산---갈림길에서 본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 부근 ///

 

 ***성거산~상명대 갈림길 지적점에서 바라 본 태조산과 뒷쪽의 흑성산---겹쳐보이네요 ///

 

 

 ***왕자산 갈림길...묘소 뒷편의 지적점 ///

 

 

 ***각원사~유왕골의 능선길...앞으론 <왕자산 각원사> 혹은 <왕자산 좌불상>으로 개칭해야...///

 

 

***왕자산 하산길...상명대에서 바라 본 성불사와 태조산 ///

 

 ***왕자산 하산길---상명대에서 본 각원사와 좌불상---앞으론 <왕자산 각원사>로 불러줘야 합니다...///

 

 ***천안~직산현의 경계인 무넘이 언덕에서 본 천안의 진산 王字山 ///

 

 

 

 ***천안~직산 무넘이(수월-水越, 무네미)고개에서 본 성거읍 요방리/석교리/ 망향의 동산...//

 

 ***천안~직산의 무너미/ 무네미고개...//

 

 

 

 

 ***대학 건물들로 무참히 훼손??? 개발???된 천안의 진산--- 왕자산...아~!!! 무지와 무식함의 극치여~!!! ///

 

 

 ***백석대에서 바라 본 왕자산...문화유산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쩝~ ///

 

 

 ***타워 크레인에 신음하는 천안의 진산---왕자산---이제는 보전의 방향으로... ///

 

 

 ***성거읍 문덕리에서 바라 본 천안의 진산---왕자산 ///

 

 

 ***왕자산과 성거산~유왕골~태조산의 능선 ///

 

 

 

 

 

 ***직산의 주산---성거산(579.1m)... 남창저수지...보명사 ///

 

 ***성거 정촌리에서 본 직산의 주산 성거산과 천안의 진산 왕자산 ///

 

 ***직산의 主山인 위례산(523m)...성거산(579.1m)의 위용...금북정맥 ///

 

 ***목천 덕전리의 유왕골 유래비 ///

 

 

 

 ***목천--유왕골의 전경 ///

 

 

 

 ***유왕골에서 본 태조산 ///

 

 

 

 

 

 

 

 

 

 

 ***가운데 하얀 건물이 유왕골 산신각...성거산 산령님께 매년 정월 제사를 올림 //

 

 

 

 

 

 

 

 

 

 

 

 

 ***유왕골 산신각 //

 

 ***유왕골 산신각에서 본 유왕골...///

 

 ***유왕골 약수터 ///

 

 

 

 ***비석의 설명처럼...태조산 마루턱이 아닌...왕자산 마루턱이라 고쳐야...///

 

 ***상명대학...왕자산의 갈림길...여기가 분기점입니다 ///

 

 ***왕자산 갈림길...성거산/태조산/왕자산---상명대 ///

 

 ***숙의 하씨의 묘소...유왕골의 주능선...///

 

 ***걸마재---성거 요방리~무넘이~문암지~목천 삼뱅이 ///

 

 ***계성군의 묘---조선 성종의 3남 ---목천 송전리 매일골의 주능선...///

  

 

 

  

 

 

 

 

   

 ***문암저수지 예비군 훈련장 쪽 좌측능선에 유왕사...정확한 유왕사의 위치는 미상입니다 ///

  

 ***영인지맥의 분기점...국민은행 연수원에서 본 문암산(중간에 바위) 정상...//

 

 ***문암저수지...문암산...//

 

***고려 태조 13년 서기930년...천안부 설치...// 아득한 하늘에 구름이 모이고 흩어지듯...///

 

 ***아산 고용산(高聳山)에서 바라 본 아산만...망해산 봉수대...안녕하세요...오심죽입니다 ///

 

   <<< 王字山--왕자산 >>>-----吾心竹 詩---

 

 

千年도 바람처럼  지나간 산마루턱

회오리 지나가듯  南北을 평정하니

그 이름 드높구나  왕건의 高麗일세

 

 

유량골 천석만석  유왕골 머물적에

성거산 기운받아  하늘이 도우나니

여의주 입에 물고  왕업을 이루었네

 

 

五龍이 다투는곳  官衙를 세우나니

삼남의 관문이요  왕도의 중심일세

風雨야 비껴다오  영욕만 있고없고 

 

 

왕자산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龍들은 상처입고  마천루 드높구나

언제나 豆滿江水  용틀임쳐 넘어볼꼬

 

 

<< 직산고을 오심죽...천안의 진산---왕자산(王字山) 탐방기...2008.9.17 >> 

 

 

 

 ☞ <<<도솔의 땅 오룡쟁주형 지리비보 >>>---참조바랍니다 ///

도솔의 땅 천안 오룡쟁주형 지리비보---작성자 이경순--- 퍼옴 ///

 고려말 문장가 “이곡”(한산이씨)은 “영주회고정기”(영주는 천안의 옛명이며.
회고정은 정자이름이고 위치는 현 남산공원 남쪽기슭)에서

 태조 왕건이, 도솔의 땅(천안 작은 고을명 ) 풍수를 보고 성을 쌓아,

 십만 군대의 군영을 훈련시켜 조정하여 후 삼국의 통일을 이루었다고 했다.

 

이는 “예방”이란 술사가 이르기를 왕자의성과 오룡쟁주의 땅에 군영을 축성하여 전진기지의 역할을 수행하면,

삼국을 통일하여 왕이 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첨”이 기록한 문집에도 천안의 생성과  건치 영혁에도 “왕씨의 시조가 예방의 말을 듣고 탕정. 대목. 사산의 땅을 나눠

천안부를 설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사절요” 제1권 태조신성대왕편의 13년조에 보면 서기930년 가을 8월에

대목군(목천 옛명)에 행차 동,서 도솔을 합쳐서 “천안부”라 하고, 도독부를 두어 왕이 이곳을 다녀간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나말여초에 풍수지리의 대가. 술사들이 많이 출현하여 많은 예언을 남기였는데, 그 예언이 평범한 글로 전술 된 것이 아니고,

현모한 언어로 전술 되어 쉽게 해석하기는 어렵고 해서, 그들의 예언를 비결이라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풍수의 대가인 도선선사가 잘 알려져 있는 반면에, 여말선초때는 무학대사가 있지만,

여초에 또 한사람 풍수지리의 술사요, 예언가인 일명 “예방”이라고도 하고 “윤계방”이라는 풍수 대가가 있었다.



“고려사” 첫 부분에 보면 고려의 창업과 도선국사의 내력이 전해지는데,

도선은 백두산에서 남하 하던 중 송학부근을 지날 때 왕건의 부친인 왕륭에게 왕건이 태어날 집터를 정해주며,

송학산의 험한 바위를 비보 할 수 있는 소나무를 심어 암석이 보이지 않게 해 주면, 내년에 귀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니,

그 이름을 왕건이라 지으라고 했다고 한다.

 

 고려의 개국과 최고의 왕사로, 최고의 고승으로, 도선은 추앙을 받았다.

도선이 35년간 머물었다는 옥룡사는 과연 명당일까, 그렇치 않은 것 같다. 땅이 푹꺼져 있고, 좌청룡이 허약하고, 약점이 많은 옥룡사 터,

도선은  이런 것들을 보안하기 위해 비보로 명당을 꾸몇다고 볼 수 있다.

 

좋은 명당을 찾기보다는 허약한 부분에 나무를 심어 지기를 갖게 해주고, 땅을 고쳐 보안한다는 도선의 비보 풍수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이 병들면 침이나 뜸으로 치료하듯, 산천의 문제점도 절이나 탑을 세워 가지고, 보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도선은 우리나라 지형을 행주형으로 보았는데, 태백산과 금강산은 배의 “머리”요, 월출산과 영주산은 “꼬리”요,

변산반도는 배의 “키”요, 지리산은 “노”요, 운주산은 배의 “중앙”으로 봐 천불천탑을 세워, 땅의 부족한 부분을 고쳐서 명당으로 만드는

비보풍수의 창조자였다고 볼때, 천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술사 예방에 관해 열거하고자 한다.

“예방”은 어느 고향에서 태어났는지는 모르나, 풍수지리에 밝아 전국 각지의 산천을 두루 살펴 다녔는데,

그가 평생을 몸바쳐 풍수지리를 공부한 것은 천하영지를 찾아서 백성들이 편안하고 태평성대를 누릴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현재 천안에 이르러 동서로 관통하고 있는, 현재 금북정맥(서운산~위례산~성거산~태조산~취암산~광덕산)을 두루 간산 하였다.

 “예방”은 현제 부르고 있는 태조산에 올라 사방 산줄기를 살펴 보니,

위례산,성거산에서 서남방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하나가 우뚝 서서 영기를 품고 있었다.

 

“예방”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 산줄기를 단숨에 내려가(왕자봉),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 올라 갔다.

산 봉우리에 올라가서 사방을 살펴보니, 세 갈래의 산이 남북으로 뻗었으며, 동서의 산 줄기가 한축을 이루어 영락없는

임금 왕자 형국(현 호서대학교 주봉 왕자산)이었다.

“예방”은 왕자산 능선이 서남방으로 뻗어 내려 회룡을 이루고, 여의주(중앙공원 남산)를 다투는 형국을 찾게 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룡이 서로 다투어 여의주를 취하면 하늘을 승천하는 듯 소위 오룡쟁주의 지세로 명당의 길지 였기 때문이다.

 

“예방”은 여러 번 태조봉 왕자산 오룡쟁주의 명당을 살펴 보고, 송악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으나,

하루에 백 여리씩 걸으면서도 마음이 급한 탓인지 발걸음이 늘인 것만 같았다. 

삼일 후 송악의 대궐 앞에 당도 하니, 초라한 행색으로 왕건을 뵙기를 요청하니, 수문장을 쉽게 통과를 허락 할리 없었다.

적지 않은 실갱이를 하고 있는 중에, 지나 가는 조관 한사람이 예방을 예사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수문장을 설득하여 대궐 안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왕건은 “내 일찍이 예방의 재주을 들은지 오래인데, 산 따라 물 따라 두루 발붙이지 않은 곳이 없는 도사가 찾아 왔으니,

 어찌 반가운 일이 아닌가, 하늘이 나를 도우심이니 어서 그를 들게 하라 명했다”

그는 조관의 주선으로 왕건을 알현하고, 예방은 행색은 초라하였지만 고개를 조아려 말을 하였다.
“소신이 생각하옵건대, 상감 마마의  고심은 삼국통일의 웅지를 펴지 못하는데 있을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삼국을 통일하자면 천시. 지리. 인화를 얻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신라왕조가 천년의 대운이 쇠하고 천시를 다하였으며, 호남에는 견훤의 창궐하고 북방은 상감께서 웅거하셨으니

삼국정립시대가 재현될 것입니다.

후백제의 견훤은 가정도 못 다스리는 위인으로 인화를 잃은지 오래입니다.

따라서 대왕께서는 천시와 인화를 얻으셨으나 지리 한 가지가 부족 합니다.

만약 지리만 비보 한다면 후삼국통일의 대망을 기필코 성취하실 수 있습니다.

“예방”의 말이 잠깐 멈추자 태조는 숨을 몰아쉬며, “그러면 어떻게 지리를 비보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예방을 응시 하였다.

태조는 후일 훈요십조를 후손에게 내릴 때 풍수지리에 큰 관심을 표했듯이, 풍수지리를 신봉하고 있던 터이라 예방은 다시 세객으로 돌아가 막힘없이 말을 하였다. 소신이 평생을 바쳐 지리를 연구했습니다.

지리공부를 한 것은 속되게 음.양택이나 잡아주자는데 있지 않고, 태평성세를 이룰 길상의 땅을 가려 왕업을 비보하자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하태평의 길지가 없나하고, 근역 삼천리를 탐사하온바 삼국의 중심지인 사산(직산)목주(목천)땅 도솔이라는 곳에

일좌명산이 있사온데, 산위에 올라가 보니 산의 능선에 세획이 그어져 있고, 세로 한 획이 뚜렷하게 임금왕자(이것을 현재 상봉 중봉 하봉으로 왕자산)가 분명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산을 따라 내려가 살펴 보니, 여의주 형국의 작은산이 있고, 주위에 오룡이 서로 구슬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 왕자형국의 산줄기가 뻗어 내려 다섯용이 구술을 다투는 형세 즉 “오룡쟁주형”의 명당에 걸쳐 있습니다.

신의 소견으로 왕자형국의 산에 성을 쌓고, 군영을 베풀고, 오룡 쟁주의 명당에 삼천민호 고을을 설치 한다면,

신라와 백제가 싸우지 않고 자연적으로 삼국통일의 대업으로 성취하실 것입니다.

태조는 무엇에 홀린 듯 듣고 있다가,  태조는 “그런 길지가 어디 있는가, 내 친심을 하리라” 하고,

그 자리에서 대소신료 들을 불러들여 남행거동을 하여 왕의 행차가 남으로 출발했다.  

몇 일 후 예방을 앞세운 왕가가 남하하여 목주에 도착하였다. 태조는 여정을 푼 후 지체 없이 예방을 따라 산에 올았다.

태조는 신무를 자랑하는 명장이고, 예방은 산을 평지처럼 달리는 처지라 수종이 미처 따를 사이도 없이 산 봉우리에 올랐다.

이산이 현재의 태조산으로 420고지 입니다. 그 전까지는 산이름이 무엇인지 잘 전해지지 않았지만 고려 태조가 올라가 지세를 살핀 후, 산 이름을 태조산 또는 태조봉으로 불리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 정상에 도착하자 예방이 눈 아래에 펼쳐있는 지팽이를 들어 서편 아래에 솟은 봉우리를 가르쳤다.

저 산의 형국을 살피보소서. 왕자형국이 아닙니까, 태조가 살피니 영락 없는 임금왕(산의 모양)자 이였다.

 가로 세획, 세로 한획, 

 태조는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렇게 좋은 곳을 나에게 물색하여 삼국통일의 과업을 달성하게 하니 참으로 가상한 일이요”.

이곳은 고려의 허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삼천리 모두를 장악 할 수 있고,

저 북쪽에 보이는 곳이 사산(직산)이옵고, 삼한의 맹주인 목지국왕이 자리 잡았던 곳입니다.

 그리고 저산이 위례성이 있는 산으로,  백제 온조왕의 첫도읍지로 목지국왕과 온조왕이 이 나라의 중앙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나라을 이르킬수 있었습니다. 전하는 이제 왕자산을 얻었으니 근역의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예방의 말을 듣고 흐뭇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와 날이 저물어 하루 밤을 지내니, 지금도 이 마을이 목천 유왕골이다.

그 이튼날 오룡쟁주의 명당도 살피시고 왕가는 북으로 향하였다.

왕가가 환궁 하자마자 명을 내리여 왕자산 성을 쌓고, 성 아래에 고정을 설치하여 양병을 하였다.

또한 오룡쟁주의 명당에 왕자산을 진산으로 관아를 짓고, 삼천민호를 이주시켜 천안 도독부를 설치하니,

이것이 천안고을이 처음 생긴 것이다. 이해가 고려태조 13년이요. 서기 930년이다.

 

 태조는 좋은 지리를 보고, 대 역사의 인재를 구하는되 몇 일을 궁리하다. 대승(大丞) 제궁(弟芎)으로 내정하고 입궐하라 명하여

제궁이 명을 받고 입궐하니,

태조는 “내 그대를 부른 것은 사산과 목주의 땅을 할해하여 천안도독부를 설치하여 삼국통일의 전진기지로 삼고자하오니,

천안 도독부사는 한 고을의 성주가 아니고, 신라 백제을 견제하는 중책을 맏기는 자리이다, 아무나 갈 자리가 아니라, 내 경의 용맹과 재주을 알고 있는 봐, 천안창군에 대임을 맏기니 부임하라” 명하였다.

 

 이 말이 떨어지자 제궁은 머리를 조아려 “천안도독은 지방 수령이 아니옵고 군사도둑이니,

그 인재를 얻지 않고서는 감당 할 수 없는 자리니, 지리에 뛰어난 인재를 물색하여 천안도독을 제수하시기 바랍니다”.

신과 같은 용제가 맡을 자리가 아닌듯 합니다.

 태조는 대견 하듯이 제궁을 바라 보며 경은 내가 잘 알고 있는 터, 지체 없이 부임하여 삼국통일의 과업 터전을 닦도록 전력을 다하라.

 도독부에는 유능한 부사가 필요하니 경과 함께 성업을 완수할 부사를 천거하라 하니,

 재궁은 머리를 조아려 부사로는 나이가 젊은 지.인.용을 겸비한 엄식을 적임자임을 아뢰니, 태조는 기뻐하며 경은 과연 지인 지감이 있는

사람이요, 엄식은 내가 이미 내가 유능한 인제로 손꼽아 오던 사람중 한사람인데 흐뭇해 했다. 

이렇게 해서 천안의 첫성주인 대승제궁으로 사使을 삼고과 원보元甫 엄식을 부사로 부임하니,

새로 개척하는 고을로 관아를 짓고, 민호를 이주시켰다.

 

 원래 이곳에는 동도솔. 서도솔로 불리우던 고을 이었는데, 고려의 전진기지인 고을을 형성하기엔 부족했다.

관아는 오룡쟁주인 여의주인 남산을 바라보는 황룡에 세우고, 낮은 곳에는 논을 만들고, 높은 곳에은 밭을 개간하였다.

이렇게 이주해온 호구가 삼천호가 되었다.

당시 천안 도독부의 지경은 사산(직산)의 일부분과 목주(목천)군일부와 탕정의 세고을에서 지경을 할애하여,

일부분 때어 천안 고을 이름을 지은 것이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현재 천안시 일원과 풍세와 광덕면 아산시 배방면일부와 음봉 탕정 몇게 고을이 우리 천안고을이 된 것이다.

이 당시는 고을이라기 보다는 군사 도독부로 고려의 전진기지 사령부로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첫눈에 왕건은 왕자 모양의 산을 보았을 때 왕자의 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시에 풍수지리에 밝은 관심이 깊던 때로

후삼국의 통일의 길지 명당터라니, 애착이 갔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땅에 “天下安泰”를 얻을수 있다는 뜻에서 이름을 “천안”이라 즉 “천하대안”을 기원하는 “천안”이라 지은 이름으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군사 훈련을 하고, 도성을 구축하니 삼 여년 세월이 흘러 후 백제의 견제에 대비하니

고려태조 18년에 천안 도독부를 세운 후 신라 경순왕이 스스로 항복해 왔으며,

후백제는 견훤이 아들 신검의 반란으로 금산사로 유배 되었다가 도망하여 태조에게 투항하였다.

태조19년 6월에 태자 무(武)가장군 “술희”을 거느리고 천안도독부에 유진하였다.

 다음에 왕사가 당도하여 태자군과 합류 다음달 9월에 신검은 패하여 일선군에 도망가서 패주하고 포로가 되었다.

태조는 신검이 불효 불충하여 용서 할 수 없다. 하여  자살을 명하였다.

이 광경을 본 견훤은 등창이 터져 서거하고 만다. 이 해가 태조 19년이며 서기 936년이다.

 

 제궁이 천안도독부를 개척한 후 태자군과 왕사 연합주둔 기지를 형성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시설을 갗 춘바 신라가 항복하고,

후백제가 패망하자 설치 목적이 완수 되었으며, 그 이후로 고을이 계속 발전 했다.

이때 운집한 군사의 수가 11개 부대에 87,500명에 달했다.

고려 태조는 천안 도독부를 철지한 후 예방의 말대로 지리를 얻었음인지, 적이 스스로 궤멸하여

어렵게 여겼던 삼국통일이 쉽게 이루어 졌다.

조선 태조때 무학 대사의 석왕사 전설은 널리 알려졌으나, 고려 태조때 예방의 왕자산 설화는 잘 알져 있지 않았지만,

천 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천안 고을의 사랑스러운 전설이며 사실이니,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후 예방은 천안 도독부를 세워 삼국통일의 비보를 닦은 후 어디론다 사라져 행적이 묘연하다.

예방은 풍수지리를 공부하여 단 한번 삼국통일의 길지를 잡은 후 산 중에 은거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태조 왕건이 직산을 지나 동쪽을 바라보니, 산위에 오색구름이 떠있어 신이 계시는 신령스런 산이라 여겨 사람들은

이때부터 “성거산”이라 불리게 되었고,비보 사찰로 성거산 정상 바로 옆에 “만일사”란 사찰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때

아름다운 두 마리의 백학이 날아와 현재의 성불사 법당 뒤에 암벽을 부리로 쪼기 시작한지 49일만에 佛形이 완연하였다,

이때 초동의 싸움소리가 들려 이에 놀란 백학은 불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날아 다시 굽어 살펴보니 성거산 웅봉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 날아가서 돌을 찾아 부처를 쪼으니 현재의 만일사 마애석불 입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으니 백학은 하는 수 없이 미완성에 그치고 날아 갔다.

그 후 백학은 다시 오지 않고 미완성의 부처는 그 자태가 신비롭게 그대로 남아 있다.

날이 저물어 미완성의 부처를 모신절의 이름을 晩日寺라고 이름을 지었다.

천안의 지세는 백두산에서 출발한 대간은 13정맥중 보은 속리산 천황봉에서 서북쪽으로 용틀임하여,
충북지역인 북부 내륙간 동서로 이어져, 안성 칠장산에서  한남금북정맥으로 이어 오다, 북서쪽으로 문수산까지 한강 이남지방 즉 한남정맥으로 이어졌고,

 한편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태안반도 안흥으로 이어 지는 금북정맥은 안성의 칠장산. 서운산에서 천안지역인 엽돈재을 넘어 위례산 성거산 태조산 취암산 고려산 광덕산으로 이어와 높은 산이 연결하고, 천안지역의 동부와 남부지역으로 보면 된다.

 북부와 서부는 대부분 구릉산지로 저지대를 이루어 시가지가 발전하고 있는데, 천안시가지는 동서남으로 이어진 금북정맥과

성거산을 주산으로 태조산으로 이어지는 주산에서 왕자산을 진산으로 하고 있다.

 

 시가지는 내외 좌청룡 우백호가 두루 갖춘 형국으로 왕자산에서 내려온 내룡은

신부동 극동아파트을 지나 법원 뒤로 이어 전화국. 구경찰서. 구시청. 구소방서. 구천안군청. 구법원. 세무서. 중앙초등학교. 중앙시장으로 이어져 오룡쟁주형인  여의주 남산을 보고 있는데,

남산은 원래 외떨어진 어느 산에도 연결 되어 있지 않고 독립된 산이 였으나 지금은 주택과 도로로 감쌓여 있다.

한편 주산에서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여의주(남산)를 중심으로 남쪽의 청수동 水道山은 오룡쟁주의 남룡에 해당하는 곳으로 붉은 용을 상징하며, 여의주을 향하고 있다.

 오룡쟁주형의 북룡은 천안초등학교 언덕을 가르키는데, 北龍은 黑龍으로 오룡중에서 가장 힘이 강하며 우람하다,

 남산공원인 오룡의 여의주를 중심으로 천안시가의 모든 지류는 남산(여의주)에서 전부 모여 합류하고 감쌓아  합수처 역활을 하고

다시 용곡천으로 이루어 큰 내를 이룬다.

 여의주을 중심으로 남서쪽에 보면 우주의 기운인 바람과 물 즉 음과양이 생성하는데 明 은 日 즉 陽과 月 陰이 합하여 명당이 이루어진다.

즉 日峰山과 月峰山은 토성으로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해와 달이 천지를 밝게 여의주을 비추고 있다.

명당이란 음과 양이 화합 한 곳이며 오행에 따른 좌청룡 우백호가 호위하고,

전주작과 후현무가 조화롭게 이루어진 사신을 모두 갖 춘 곧 즉 사수의 격을 갖춘 길지를 말한다.

천안은 주산에서 내려온 천안읍성 옛 관아 터는 명당자리로 중앙초등학교를 일커르며,

지금의 장로교회 언덕과 중앙초등학교로 연결하여 읍성이 옛 관아를 둘러 쌓고,

동헌터는 오룡동199번지로, 구 충청은행뒤 오룡쟁주형의 황룡에 해당하는 곳이다.

황룡의 눈으로 서기를 발하고 통찰하는 관아의 터로 전한다.

터가 강해서 민가로는 알맞은 터가 못되고, 관청의 터로 알맞은 곳이기 때문이다.

 

 약 40여년 전에 천안의 어느 부자가 이 터에다 큰 집을 지었으나 이사하면서 죽었다고 한다.

동헌의 정문터는 188번지로 삼문으로 세개로 되었으며 삼태극을 그려 문을 표시했다.

가운데 문은 높고 양쪽 작은 문 두 개를 두어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선화루터 내아터는 184번며, 오룡우체국 자리다. 수선정은 외한은행자리.

영남루터는 118번지로 동헌 근처에 있었으나 현재 삼거리공원의 연못가에 있다.

화축관은 중앙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었다.

華祝館은 천안관아에서 추가로 건축한 건물인데 중국 화華땅의 은자처럼 임금의 천수를 송축한다는 뜻이 들어있는데,

임금이 온양에 행차시에 임시로 거처한 행궁이다.

현재 천안 관아와 객관자리는 일제시대때 중앙초등학교터로 변했고, 그 앞에는 중앙시장이 되었다. 관아거리는 저잣거리로 변했다.

천안시 동부지역은 천안삼거리를 지나 傌望山(마망산) 고개 즉 응원리 고개를 넘으면 6개동면(목천.북면.병천.동면.수신.성남)을 일컫는데

이곳은 정감록 감결에 보면 살만한 고장 10승지에 나오며 도선비기에도 나온다.

토정 이지함도 기름진 농토를 짖기 위해 찾았던 바 상왕산(현 흑성산)에 올라 봉황의 짝을 찾아준 비기 즉 북면의 봉황산과

수신면의 봉황 서로 대칭을 이루니, 상왕상의 큰 자연과 음양의 조화의 참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전국에서 살기 좋은 곳 다섯 중 한곳에 해당된다는 동부지역, 정권이 바뀔때 마다 행정도시로 주목을 받았던 곳 중의 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청주목에 속했을 때에도 청주에서 제일 살기 좋은 터로 주목을 받으곳이기도 하다.

다음 남부지역은 풍세, 광덕산지 즉 태화산을 중심으로  큰 내와 월경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부지역은 직산 성환 성거 입장으로 북풍을 막아주고, 기름진 토질로 배와 포도가 유명하니 살기 좋은 고장이다.


 충남제1의 도시로 부각 받는 천안(도솔.환주.임환.영주.영산) 예부터 천안삼거리는 영호남의 역로 갈라지는 길목으로,

호남지방은 천안에서 차령고개를 넘어 공주 전주로 나갔고, 영남지방은 천안에서 청주 보은을 거쳐, 추풍령을 넘어 대구로 내려갔다.

1905년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1931년 장항선 철도가 개통, 서북부의 교통요충지가 되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통과, 2000년 천안 논산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 통과, 서울 지하철1호선 천안까지 전철 연장 수도권과 근접하고,

오십만 인구가 넘은 도시로 부각 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옛 삼국의 요충지요. 마한의 중심인 목지국요. 백제 온조왕이 도읍한 곳이요.

왕건의 고려건국 중심 역할을 한곳이다. 

 

 동남부권에 부각되는 천안삼거리를 근거리로 천안박물관 개축 공사가 진행중이고, 천안 행정타운 복합도시가 한창 공사중이다.

행정타운 지역은 낮은 구릉의 생김새가 용이 머리를 향하여 나르는 형국으로  용마부사 또는 용마비두이다.

옛부터 이곳은 명당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한참 공사중인 토목공사를 보면  좋은 황토와 혈토가 많이 분포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곳을 용마가 하도를 업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현제ㅇㅇ그룹 ㅇㅇㅇ회장의 조부 ㅇㅇㅇ공의 묘소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 윗글에서 작성자 역시---태조산을 왕자산으로 잘 못 파악하고 있습니다...///

 

 왕자산은 天安의 鎭山이며 천안 역사 문화유산의 문패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직산고을 오심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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