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 스타이자 러시아리그 1호 진출 선수, 그리고 K리그에서 맹활약 후 현재 JTBC 해설위원으로 제2위 축구 인생을 보내고 계신 현영민 위원님을 락싸커에서 만나뵙고 왔습니다!
1. 현영민 위원님 개인 질문
Q. 락싸에 가입해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은퇴 후 해설위원을 시작하던 즈음에 같이 방송했던 캐스터분께서 락싸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축구팬들의 반응을 제때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2017년부터 락싸에 가입했고 눈으로만 보면서 팬들의 반응을 봐왔죠. 그러다가 직접적으로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건 제 해설에 대해 커뮤니티에서 안좋은 여론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후에요. 조금 조심스럽다는 평이 있다고 하시더라구여. 사실 모든 분들이 제 스타일을 좋아할 수는 없죠. 제 스타일을 갑자기 바꿀수도 없는거고요. 모든 분들을 만족시켜드릴 수는 없지만 회원들에게 제가 해설을 준비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바로 옆에서 제가 해설하는 모습도 직접 보시고 (티켓은 제가 드립니다 ㅎㅎ), 다른분의 해설도 직접 보시고 하면서 해설 위원간의 차이를 직접 느끼셨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Q. 카페에서 회원과 소통하면서 팬들과 가깝게 다가가는 모습은 좋지만 인터넷 여론을 보다보면 상처받는 일도 많을거라 생각됩니다. 부정적 의견을 볼때의 느낌과 극복했던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선수에 대한 비판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하다보니 이에 대해 만족스러워 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있으신거 같아요. 앞서 말했듯이 모든 분들이 제 해설을 좋아하실수는 없어요. 그건 저 뿐 아니라 다른 해설위원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다고 팬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피할 수는 없죠. 제게 도움되는 의견들이 분명히 있을테니까요. 그래서 팬 여러분들과 더더욱 소통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적해주는 부분은 제 해설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고요, 팬들이 제공해주시는 정보는 해설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저만의 축구 철학, 해설을 준비 하는 과정등을 보여드리면 팬분들이 공감해주실거라 생각했습니다.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게 부정적인 의견을 극복하는 방법인거 같아요. 다행히도 팬 여러분들이 많이 이해하고 공감해주셔서 여론이 좋아진것 같아요.
Q. 은퇴하고 따로 몸관리를 하고계신가요? 언뜻 봐도 몸이 상당히 좋으신데요?
은퇴하고 나서도 운동을 꾸준히 했고, 지금도 헬스장 등록하고 꾸준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언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지 모르기에 제 몸은 스스로 관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선수생활처럼 격렬한 운동은 좀 힘들지만 풋살이나 동호회 활동도 하고 취미로 골프도 하면서 땀흘리고 있습니다.
Q. 따님이 겨울왕국을 좋아해서 겨울왕국 스케치북에 필기하시는 거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에도 겨울왕국 스케치북에 필기하시나요?
요즘에는 아이들이 많이 커서 겨울왕국 노트는 사용하지 않습니다ㅎㅎ 사실 그때 사용했던 노트는 제가 지도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료정리를 했던 노트였고 지금은 해설을 위한 자료를 따로 모으고 있어요. 집 한켠에 해설을 위한 자료를 모아두는 자료가 있는데 라운드별, 팀별 자료들을 정리해서 경기 준비할 때 활용하고 있어요.
Q. 별명이 몇가지 있으신데 개구리 페페 닮았다는 말이 있고,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경운기 드리블이라는 별명도 있어요. 이런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론 이런 별명에 대해 정말 감사해요. 무색무취한 선수로 그냥 흘러가는게 아니라 팬분들이 저의 특징을 잡아서 별명을 만들어 주신다는거 자체가 정말 행복한 거에요. 예를들면 차두리 선수 같은 경우 그냥 이름보다 차미네이터란 별명으로 부를때 더 특징이 살아나고 기억에 남잖아요? 이런식의 별명이 붙으면 저는 정말 좋아요.
2. 현영민 위원님의 선수시절 관련 질문
Q. 그럼 경운기드리블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드리블에 자신이 있으셨었나요? 드리블 실력에 대해 평가해주시면 어느정도 인가요?
일반적으로 드리블하면 제 대학교 선배님이신 이영표 선배님을 많이 떠올리잖아요? 저 개인적으로도 룸메이트로 생활하다보니 많이 배우기도 했고, 영표형이 한 세번하면 저는 네번해야지 이런식으로 많이 노력했었어요. 경운기드리블도 사실 성공률이 많이 높았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시는데 괜찮은 드리블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실력으로 놓고보면 A+까지는 아니더라도 A정도는 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상대선수들이 많이 어려워 했으니까요.
다만 프로생활을 하면서 저 혼자 드리블을 하면 오히려 팀의 템포를 죽이게되더라고요. 그래서 드리블도 하되 패스도 빨리하고 하면서 플레이 스타일을 점점 바꿔가게 됐어요. 염기훈선수도 예전에는 스피드와 힘있는 직선드리블로 상대를 어렵게 했는데, 점점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갔잖아요? 동료가 더 좋은 위치에 있으면 드리블 보다는 패스도 뿌리고 크로스도 올려주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저도 주변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드리블 보다는 동료들을 활용하는 플레이를 많이 하게된거같아요. 스피드 또한 나이가 들면서 줄어드니까요 (아무래도 20대와 30대의 몸은 다르죠.)
은퇴를 앞둔 30대 중반에는 20대처럼 스피드를 낼수는 없어요. 저 또한 드리블을 좋아하고 많이 하고 싶었지만 한 2년차때까지는 많이하고 그 뒤로는 많이 줄어갔던거 같아요.
Q. 선수시절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중 하나는 아무래도 2002 월드컵이었겠죠? 2002월드컵 23인 엔트리에 들어가셨으니까요. 그런데 아쉽게도 경기는 못뛰셨어요.
경기는 못 뛰었지만 훈련하는 과정도 저로서는 정말 갚진 경험이었어요. 선수로서의 꿈이 당연히 국가대표였으니 선발됐을 때 가족들이나 저를 지도해주신 선생님도 좋아하셨고 저 또한 제꿈을 이룬 기분이었어요. 솔직히 3,4위전은 조금이라도 뛰고싶었던 개인적인 마음은 있었어요. 하지만 선수로서 쉽게 할수 없는 큰 경험도 하고 역사의 순간에 함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저의 2002년은 경기는 뛰지 못했지만 저에게 엄청난 큰 선물이 왔어요. 또 그로 인해 많은 혜택도 받았고요. 경기를 뛰지 못했다고 해서 섭섭한 생각은 전혀 없고, 제가 2002 월드컵 23인 멤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요? 정말 큰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Q. 월드컵 이후 선수생활도 정말 잘 풀리셨잖아요? 울산에서도 좋은 활약하고 러시아리그에서도 활약하셨고요. 지금보다 더 유럽진출이 힘들었던 시기에 러시아 리그를 개척하신거로 알고있습니다.
네 제가 러시아 리그를 최초로 진출했고, 그 이후로 많은 선수들이 러시아리그에서 활약을 했죠. 처음 러시아를 갔을때는 힘든게 정말 많았어요. 언어나 날씨가 아무래도 제일 힘들었어요. 말도 안통하고 겨울이 긴 곳이다 보니 적응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라운드 컨디션 또한 우리나라와 다르고요. 당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기 전이었는데 둘이서 러시아 생활을 하면서 서로 많이 의지하면서 생활했어요. 그리고 당시 통역하시던 분이 축구를 잘 모르시던분이라서 전술훈련 같은 경우 통역의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도 어느정도 눈치껏 전술 이해해가면서 훈련하고 했습니다.
타 대륙 특히 아시아 출신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유럽사람들에게 인정받기가 조금 힘들었어요. 그럴수록 오히려 더 유럽선수들과 더 강하게 부딪히고 ‘이녀석 깡다구 있네’ 같은 인상을 주려 노력했어요. 그래서 어느정도 적응한 뒤에는 생활도 다소 편했고, 그 뒤로 김동진 선수와 이호선수가 왔을때는 축구 외적으로도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있다는거 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됐어요.
Q. 선수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와 다른점이 있었나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라커룸에 에어컨이 설치돼있는데, 러시아에선 한증막이 있어요. 전반전이 끝나고 한증막에서 차마시면서 몸을 녹이는건 다소 생소한 문화였어요
Q. 러시아에서 좋은 활약을 많이 펼치셨는데 아쉽게도 일찍 한국으로 돌아오셨어요
그렇죠. 제가 최초로 갔다가 최초로 돌아왔었죠. 러시아 생활은 좋은 추억이고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좀 더 부딪히지 않고 너무 빨리 돌아온거는 다소 아쉬움이 있어요. 사실 구단에서도 그 다음시즌도 함께하고 싶어했어요. 실제로 프리시즌 시작 전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서 러시아까지 다시 갔었다가 울산과 협의가 잘 돼서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오게 됐었어요. 그래도 친정팀으로 돌아오고 컵대회 우승도 하고 나름대로 선수커리어가 잘 풀리지 않았나 생각해요.
Q. 당시 김동진 선수가 같은팀으로 오면서 밀려서 나갔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엄청 많아요. 그래서 제가 다른 자리에서 몇번 얘기했었거든요. 처음 제니트에 갔을때 양발이 다 되다 보니까 양쪽 풀백도 다 소화했고 경우에 따라선 윙어까지 소화도 했었어요. 제가 원래 뛰던 왼쪽에는 체코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선수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감독님은 제가 오른쪽으로 좀 더 소화해주기를 바랐었어요. 그런데 같은 포지션인 김동진 선수가 오면서 제가 나갔으니 잘 모르는 분들은 아무래도 제가 밀려서 나갔다고 생각하실거 같아요. 하지만 김동진선수나 이호선수나 경쟁자라기 보다는 함께 적응해나가는 동료였었고, 제가 먼저 살면서 팀의 문화나 선수의 특징 등을 다 파악해 놓았다 보니 많이 도와주는 입장이었어요.
Q. 국내복귀후 울산에서 맹활약 하시던 중 FC서울로 트레이드 되셨는데 그때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제가 선수생활을 시작하면서 목표했던게 세가지가 있어요. 영구결번, 원클럽맨, 그리고 내 포지션에서 최고의 기록을 남기기. 당시 울산과 재계약하면서 울산에서 은퇴하게 될줄 알았고, 제가 목표했던 꿈을 이룰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트레이드 될 당시에는 다소 서운한 감정도 있었어요. 울산에서 원클럽맨을 목표로 했었는데 무너졌고, 영구결번도 당연히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요. 울산은 제가 20대를 바친 팀이고 정말 사랑하는 팀이었는데, 타의로 떠나게 되는 상황이다보니 많이 섭섭했어요. 현실적으로 전세계약이 남아있어서 이사가 쉽지 않기도 했었고요. 30대에 새로운 팀에서 적응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었어요. 그래도 결과론적이지만 리그우승도 하고 했으니 잘 풀린게 아닐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 팀에서만 머물렀으면 제가 더 정체됐을거 같아요. 오히려 당시 트레이드가 선수생활을 더 길게하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당시 김치곤선수와 트레이드되면서 아무래도 서로 비교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기에 더 자극받은거도 있고요.
Q. 말년에 성남에서 선수생활을 하셨는데요. 분노짤로 유명한 장면이 있어요. 혹시 당시 상황 기억하시나요?
당시 상황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이때 2:0으로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제가 패널티 박스 안에서 볼을 완전히 걷어냈는데 주심이 PK를 불었어요. 저로서는 정말 억울한 상황이었고 2:0으로 이기다가 2:1로 따라잡히는 상황은 상당히 위협적인 상황이잖아요? 주심입장에서는 PK처럼 보일수 있었겠지만 저로서는 억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서 이렇게 표현했던거 같아요. 다행히고 이때 경기는 성남이 이긴거로 기억합니다.
Q. 윙백으로서의 플레이 외에도 롱드로인으로도 상당히 유명하셨는데 비결이 있으신가요?
롱드로인은 제가 대학시절부터 강점을 가진거같아요. 전술적으로 팀에서 요구한 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어깨와 허리를 강화시키는 운동들을 많이 했어요. 정확성과 속도를 키우기 위해 계속 노력하다 보니 저 개인적으로 시그니쳐가 된거같아요.
실제로 롱드로인은 과거나 지금이나 많이 유니크한 플레이에요. 2002 월드컵도 롱드로인 때문에 갔다 이런말이 있더라고요
대표팀 선발에 롱드로인이라는 제 장점이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어요. 하지만 선수생활을 하면서 제 장점은 사실 킥이었어요. 실제로 도움도 많이했고요. 지금도 제 포지션에서 제가 가장 도움을 많이한 선수로 남아있어요. 물론 뛰어난 장점이 하나 있고 팬분들에게 이미지메이팅이 돼서 별명도 생기고 하면 좋지만, 결국엔 선수 스스로가 본인의 플레이를 그라운드에서 보여줘야 좋은 선수가 된다 생각해요.
Q. 선수생활을 하시면서 이선수는 정말 잘한다 싶은 선수가 있으신가요?
처음 데뷔했을때는 서정원 감독님이요. 서정원 감독님은 일단 정말 빨라요. 빠르다보니 기억에 오래 남은거 같아요. 그리고 현재 울산에서 뛰는 이청용 선수도 기억에 남아요. 제가 울산에서 뛸 때 맞대결 했으니 이청용선수는 아마 갓 스무살이었을텐데 경험이 많은 선수처럼 여유있게 플레이하는거를 보고 정말 좋은선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 잉글랜드까지 진출했으니 아마 해외 스카우터들도 같은 생각을 했었겠죠?
Q. 울산에선 동해안더비를 뛰셨고, 서울에서는 슈퍼매치를 뛰어보셨는데 두 더비간의 차이점도 있을까요?
포항을 상대했던 동해안더비도 정말 큰 더비였는데, 개인적으론 슈퍼매치가 더 더비분위기가 나지 않았나 생각돼요. 오히려 울산에서 뛸때는 재계의 라이벌이었던 수원과의 우승경쟁이 더 치열했던거로 기억해요. 슈퍼매치는 여느 A매치 못지 않게 관중도 많고 분위기도 더 뜨거웠었어요. 당시 상대팀이었던 수원에 친한 선수들이 여럿 있었음에도 라이벌팀에 대한 중압감이 많이 느껴졌어요. 수도권을 대표하는 두 팀의 맞대결이란 점도 그렇고 구단에서도 보너스 같은 당근책을 제시하다 보니 더 치열하게 경기했던거 같아요.
Q. 은퇴 후 올스타전때 유명했던 장면인데 최용수감독님과 합의하에 한 장면인가요?
당시 최용수감독님과 사전에 합의한게 아닌, 100% 애드립이었어요. 즉흥적으로 최용수 감독님이 달려오면서 카드를 내밀고 저도 즉흥적으로 액션을 취했고요. 올스타전을 뛰면서 팬들을 위한 액션을 많이 취했었어요. 팬들을 재밌게 하려고 준비했던 것들도 많고요. 합의된 상황이 아닌데도 팬들이 좋아하시는 재밌는 상황이 나와서 다행인거 같아요.
Q. 만약에 레드카드를 뽑았으면 퇴장이었을까요? 올스타전에서 퇴장당하는 진기록을 남길뻔 했는데요.
올스타전에서 퇴장이 아마 없을꺼에요? 제가 최초 기록이 되는건가요? 만약 그랬으면 다시뽑으라 하지 않으셨을까요? 이런 장면하나도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지금은 올스타전도 못하고 많이 아쉬운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더 재밌는 모습도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Q. 코로나가 끝나고 내년에 올스타전이 재개된다면 선수로 뛸 의향이 있으신가요?
저야 언제던지 불러주시면 뛸수 있죠. 팬분들에게 좋은 모습, 재밌는 모습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몸관리도 계속 하고있고요.
현영민 위원님의 해설위원 활동에 대한 질문, 축구계에 대한 생각 등은 2부에서 이어집니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2부 마렵..
애드립이었구나ㅋㅋㅋㅋㅋ
선출 해설자 중에 최고아니실까싶네요 잘 봤습니다!
ㅋㅋㅋㅋㅋ카드뽑는거 볼때마다 웃음벨
2부도 빨리 보고 싶어요
와 재밌다ㅋㅋㅋㅋㅋㅋ
선댓 후감상!!
카드고르는거ㅋㅋㅈ다시봐도웃기네요ㅋㅋㅋ
현성실 이라고도 했었는데^^
잘봤습니다!
읽다 보니 짧다!
2부 주세요!!!!
잘 봤습니다!
ㅋㅋㅋㅋ 올스타전 레전드
재밌게 읽었습니다
2부도 기대되네요
바쁘실텐데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잘 봤습니다
정말 재밌습니다!
재밌네요 ㅎㅎ양질의 인터뷰 감사합니다
욘스가 혹시나 레드 뽑을까봐 레드는 내리고 있네여ㅋㅋ
잘봤습니다 전 현영민님 해설이 젤루 좋아요!
ㅋㅋㅋㅋ 잘봤습니다!!! 2부 기대할게요
잘봤습니당!!!
재밌게 잘보고갑니당ㅎㅎ
해설톤이 안정적이셔서 좋더라구요 2부도 기대됩니다
재밌당ㅋㅋㅋㅋㅋ 잘봤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ㅋㅋㅋ
재밌네요ㅋ 해설도 갈수록 좋아지시는것 같아요 응원합니다~!
캬 언제나 레전드
한증막이라 진짜 생소하네 저런건 어디가서 경험해보지 못할듯 황인범도 그런 경험을 하고있겠네요
현영민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