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범죄자 얼굴·신상공개, 선진국 입법례 찾기 어려워
국회입법조사처 밝혀
최근 연쇄 살인범 강호순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흉악범의 신상공개와 관련해 국회 입법조사처가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입법조사처의 이같은 견해는 최근 한나라당과 법무부가 흉악범죄 대처방안으로 흉악범 얼굴및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법률안을 제정하려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향후 입법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입법조사처는 최근 민주당 최문순 의원의 의뢰로 실시한 '피의자 및 용의자 신상공개에 관한 법적검토' 보고서를 통해 "신상공개에 의해 범죄자는 처벌 이후에도 일상생활에 있어서 불이익이 발생하며 전과자라는 낙인 이외의 파렴치범이라는 낙인이 추가돼 형사제재보다 더 큰 사회적 형벌이 가해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며 입법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입법조사처는 특히 "헌법 제27조4항이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무죄추정원칙을 명문화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도 지난 92년 피의자의 피의사실을 수사기관이 함부로 공표함으로써 명예를 훼손시킨다든지, 미결수에 대한 행형을 기결수와 동일하게 해서는 아니되는 등 형사피의자도 무죄추정원칙에 의한 인신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판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어 언론매체에 의한 흉악범의 신상공개에 대해서도 "언론의 범죄보도는 인격권 침해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면서 "유무죄 또는 증거가치를 예단하는 언론의 보도는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침해해 이른바 '여론재판'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는 법원의 최종판결 전에 범죄자로 낙인찍히게 하는 효과가 발생하게 한다"면서 "이러한 위험은 인격적, 직업적 및 공동생활 영역에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침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입법조사처는 정부여당이 추진중인 '용의자 얼굴 및 신상공개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보고서는 "'공인과 사인' 이론을 고려해 공개에 관한 예외적 사유에 대한 명확한 법적논거를 제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에도 구체적인 요건의 판단기준 자체에 대해 명확한 제3자적 입장에서의 판단이 아니라 언론이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신상공개가 되는 부모를 둔 청소년의 인권보장 문제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가족들에게 가해질 정신적, 신체적 피해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피의자 및 용의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명확한 범죄에 한정해야 하지만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 그 기준이 다를 수 있는 '반인류범죄' 또는 '파렴치범'이나 '흉악범'의 범위를 선정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도달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대만, 남아공 등의 상황을 소개한 뒤 "미국 메간법 등 일부 국가에서는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제도를 두고 있지만 기타 범죄자에 대한 얼굴이나 신상공개를 법적으로 규율하는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