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남의 밭에 물 주기
신외숙
지나치게 이웃 사랑에 앞장 선 남자가 이혼 법정에 섰다. 그는 말단 공무원으로 가족은 외면한 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지나친 관심과 사랑을 쏟은 결과 자랑스런 시민상까지 받았다. 네 살 때 고아가 되어 온갖 고생을 겪으며 산 것이 천추의 한이 돼 선행에 힘쓴 그는 마지막 남은 재산까지 장학재단에 헌납함으로 처자식을 완전한 절망에 빠뜨렸다. 돈 가뭄으로 타들어 가는 내 밭은 외면하고 남의 밭에 물주기에만 열중하던 가장의 슬픈 말로였다.
밖에만 나가면 호인(好人)으로 통하는 사람이 집안에만 들어서면 폭군으로 변하는 까닭을 철산댁은 도무지 알지를 못했다. 아들 둘에 딸 하나 낳아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며 키웠건만 남편의 기세는 언제나 등등했다. 여자 몸으로 논농사 밭농사 품앗이하느라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숨 쉴틈 없이 일해도 남편은 늘 눈알을 부라리며 철천지원수 대하 듯했다.
그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경조사는 물론이요, 궁핍한 사정이 도는 가정을 보면 일부러 찾아가 쌀가마니와 쌈짓돈을 내놓았다. 또 동네에 병든 노인이 있거나 급한 환자가 생기면 제 일처럼 나서서 해결해 주기도 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추곡 수매 문제나 한우 파동 등이 발생할 때도 종관이 아버지는 제일 먼저 앞장섰다. 어디서 마련했는지 피켓까지 들고 나타나 목청껏 외치며 독려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도 수틀리면 사람들과 맞붙어 싸우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한번이라도 말다툼을 벌이거나 우격다짐을 한 사람과는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았다.
시뻘겋게 충혈 된 눈으로 식식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처자식을 메다꽂거나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어디서 그런 황소 같은 힘이 나오는지 제 마누라를 냅다 들어 마당에 패대기치고는 잠자고 있는 자식들을 하나씩 깨워 마구 때리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가족만큼 만만한 화풀이 대상이 없었다. 그는 제 힘에 지쳐나가 떨어질 때까지 그 짓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누가 뜯어말리면 말릴수록 더욱 기승을 부렸다. 술에 취했건 안 취했건 그는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가족에게 분풀이를 했다. 처자식을 때릴 때는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말하면 말한다고 때리고, 말 안하고 가만있으면 무슨 불만이 있어 그러느냐고 때리고, 눈에 안보이면 찾아내서 때리고 눈앞에 보이면 성가시다고 두들겨 팼다. 천하에 막되 먹은 인간 말종도 제 자식은 귀애하는 법인데 어떻게 된 놈의 심사가 남에게는 관대하면서도 가족에게는 원수 대하듯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골백번 생각을 고쳐 먹고 또 생각해 보아도 그의 사고(思考)는 정상이 아니었다. 처자식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저승사자라 해도 저러지는 못할 것이었다.
손버릇만 나쁜 게 아니었다. 손버릇보다도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은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그는 자식들이 밥을 먹을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반찬도 두 가지 이상은 손도 못 대게 했다. 밥알을 흘리거나 도중에 말을 하면 당장 밥그릇을 빼앗고 대문 밖으로 쫓아냈다. 그는 자식들이 말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묻는 말에만 예 아니오 식으로 대답을 유도했다. 자식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만 들려도 그는 발악을 하고 싫어했다. 하지만 집안에 손님이 들이닥치는 날은 달랐다.
철산댁은 부엌으로 돌아가 연신 음식을 날라야 했고 그 바람에 종관이 형제들도 맛난 음식을 구경하며 맛을 보기도 했다. 집안 친척이 찾아오거나 하다 못해 지나가는 거지가 들어와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구경도 못하던 전 종류며 고기가 상에 올랐다. 음식을 해대는 철산댁은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때야말로 모처럼 목구멍에 기름칠을 하는 날이라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는 특히 조카들에게는 관대했다. 자식들에게는 일년 내내 가야 용돈은커녕 새 옷 한 벌 사주는 일이 없는데도 조카들에게는 용돈으로 새파란 지폐를 몇 장씩 내놓으며 호기를 부렸다.
뿐만이 아니었다. 길을 지나다가도 장애인이나 부랑아를 보면 품에서 선뜻 만 원짜리를 내주었다.
TV 드라마를 보다가도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이며 가족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특히 자신을 빼어 닮은 둘째 아들 종철이를 제일 미워했다. 종철이는 얼굴 생김새는 물론 걸음걸이와 표정까지도 아버지를 빼어 닮아 어디엘 가나 국화빵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종철이는 물론 그의 부모까지도 질색을 하고 싫어했다. 종철이는 종관이나 종숙이에 비해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책 한번 들여다보지 않고 시험을 보아도 반에서 언제나 수위를 차지했다.
싸움에 있어서도 종관이나 종숙이 처럼 맞고만 있지 않았다. 싸움이 시작되면 끝까지 달려들어 끝장을 내고야 말았다. 상대 아이를 쥐어뜯어 피가 나도 멈추지 않고 달려들어, 아이의 엄마가 집으로 달려와 치료비를 물어내라며 항의한 적이 있었다. 그날 치료비를 물어 준 종관이 아버지는 종철이를 끌고 나가 개울물 속에 처박았다. 다리를 버르적거리는 종철이는 그래도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울었다.
숨이 목에 걸려 꺽꺽 대는 데도 악마의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길을 지나던 동네 교회의 젊은 전도사가 달려들어 종철이를 빼내주지 않았다면 종철이는 그날 밤 틀림없이 수장되고 말 것이었다. 종철이는 그날밤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종철이가 성인이 되었어도 뇌리 속에 칼침처럼 박혀 움직일 줄 모르는 고뇌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 날 이후 종철이는 집안에서도 동네에서도 아버지와 부딪히게 되면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다. 그 바람에 더욱 모진 매를 맞아야했다. 짐승처럼 맞으면서도 종철이는 단 한번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저 놈이 필시 나를 닮아 저렇게 독한 게야 지독한 놈.
집안에서 기죽고 푸대접받은 종관이는 학교에 가서도 왕따를 당했다. 늘 남의 눈치나 보면서 벌벌 떠는 바람에 저보다 등치가 적은 아이들에게도 얻어맞고 다녔다. 저보다 서너 살 어린 아이들이 때리고 욕해도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매를 견뎠다. 반항하거나 대꾸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랬다간 초죽음이 되도록 얻어맞을까 지레 겁이 났기 때문이다. 종관이는 늘 심약하고 비굴한 성격으로 자라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냈다, 맞을까봐 초긴장하고 두려움에 떨다보니 분별력을 상실하고 자주 허둥거렸다. 길을 걷다 가도 자주 넘어지고 심각한 건망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을 하며 무섭다는 시늉을 했다. 철산댁에 의해 병원에 가 진단해 본 결과 소아 정신병 증세라 했다. 머리 안쪽에 핏물이 고여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도 많이 얻어 맞아 늘 머리 한쪽이 띵하고 어지러운 걸 방치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종관이는 스스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대인 기피증과 아울러 정신이 흐릿해지는 증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종관이는 집안에서 농사일을 거두며 외부와 단절된 채 칩거하다시피 살아갔다. 그즈음 종관이 아버지는 읍내에 있는 술집 여자와 바람 나 있었다.
술집작부의 달콤한 말에 취한 그는 아예 살림을 차리고 말았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자신이 그리도 아끼던 금쪽 같은 통장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눈뜨고 보니 작부와 함께 통장과 도장이 사라지고 말았다. 천하의 인간말종 종관이 아버지도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자업자득 인과응보였다.
그날 그는 분풀이를 하기 위해 대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그때 소여물을 먹이고 있던 종관이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모처럼 찾았던 안정이 아버지의 출현과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뒤로 나자빠진 아들의 목을 종관이 아버지는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종관이는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소 여물통에 머리를 처박고 말았다.
가게에 가 소주와 막걸리 두 병을 사 가지고 온 종관이 아버지는 시퍼런 낫을 옆에 둔 채 계속 술잔을 기울였다.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그는 쇳소리를 냈다.
"이놈의 여편네 들어오기만 해봐라. 서방이 집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뭘하고 자빠졌는 거여. 서방질을
하나 술을 처먹나."
그러다 시퍼런 낫을 들었다 올렸다 했다. 낫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길은 광기로 번득였다.
그 무렵 철산댁은 순이네 집에서 먹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는 어쩌다 마신 술에 신세타령을 늘어놓으며 남편을 안주 삼아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읍내 술집 작부년허고 눈 맞아 가지고 집을 나가 주니께 얼마나 속이 편하고 좋은 지 몰라유, 요즘 같아서는 살 것 같다니께요 그 웬수 같은 놈의 인간 제발이지 그년이랑 멀리 멀리 가버렸음 원이 없겠네요."
"그래도 애들 아버지 아닌가, 과부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살게."
"하이구 무신 말씀이세유 차라리 과부가 낫지유 애들한테도 그 편이 낫고요 아암 낫고 말구요 우리 종관이는 지 아부지한테 얼매나 많이 맞았는지 반 병신이 다 되었다니게요 남들은 다 중학교에 다니는데 학교 갈 생각도 않고 집안에서만 놀고… 그래도 요즘은 즈이 아버지가 안 보이니께 살만한 모양인가 봐요 웃기도 하고 말도 잘 한다니께요."
순이 어머니는 몇 마디 더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더 해봤자 안 좋은 소리 나올게 뻔했기 때문이다. 살다 살다 별 시러베 같은 놈도 많이 봤지만 종관이 아버지 같은 인간은 듣도 보도 처음이었다. 남의 밭에만 물주고 제 밭에는 그냥 지나치다니 것도 모자라 발로 밟고 짓뭉개다니 별의별 인간이 다 있다 싶었다. 술에 취한 철산댁은 아들이 보고 싶어 해가 넘어간 뒤에야 집안에 들어섰다. 들어서다 말고 그녀는 섬짓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그녀는 아들 이름을 크게 불러 보았다.
"종관아- 종관아- 에미 왔다. 어디 있냐."
그때였다. 기다리던 아들 음성은 들리지 않고 악귀 같은 음성이 들려져 왔다.
"야! 이 썅년아 서방이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여적 무슨 짓하다 오는 겨 샛서방하고 바람이라도 났냐 이 호랑말코 같은 년아."
그 소리를 듣자마자 철산댁은 취기가 달아나고 오금이 저려왔다. 저승사자의 목소리인들 저 보다는 부드러울 것이라 생각하는데 두 눈앞에 시퍼런 낫이 나타났다. 불빛에 어른거리는 칼날은 그녀의 눈빛을 어지럽게 했다. 순간 살아야겠다는 욕구가 그녀의 내부에서 용솟음 치며 일어났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번개처럼 몸을 움직여 대문가로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그녀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동네 사람들아 사람 살려라 저놈이 낫을 들고 날 죽이려고 한다아- 동네 사람들아-"
그녀가 다급하게 외쳐도 아무도 나와보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TV에 빠져있거나 아니면 누군가 장난하는 것쯤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소리지르며 달리던 철산댁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아무래도 종관이가 걱정이 돼 견딜 수가 없었다. 대문간에 들어설 때 불길했던 느낌이 종관이와 연관지어져 상상력을 부추겼다. 그녀는 오던 길을 되돌아 살그머니 대문가로 들어섰다.
사방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종관이를 찾기 위해 뒤 안으로 갔다. 보이지 않았다.
창고에도 가 보았다. 역시 보이지 않았다. 이 애가 어디를 갔을까. 외양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그녀는 가슴이 철렁했다. 외양간 앞에 누워있는 그림자가 아무래도 종관이 같았다. 종관이는 소여물을 얼굴에 잔뜩 묻힌 채 기절해 있었다. 흙바닥 위에 그대로 누운 채…. 세상에 이럴 수가, 거칠게 흔들어 깨우자 종관이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파요 아파. 잘못했어요… 음… 너무 아파요.
불쌍한 내 새끼… 철산댁은 종관이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아들을 등에 업고 방에 눕히려던 철산댁은 종관이의 목 뒤에 난 시퍼런 멍자욱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끓어올랐다. 내 이놈의 인간을 그냥…. 그런데 종철이 종숙이는 어디를 갔길래 안 보이는 걸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다 말고 배를 움켜쥐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 사이로 핏물이 흘렀다. 전에도 가끔씩 하혈을 하긴 했지만 요즘들어 그 수효가 부쩍 늘어났다.
지난 여름 세 번째로 아이를 지운 다음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했다.
뱃속에서 살아 끔틀거리는 생명을 억지로 죽일 수 없다고 끝까지 버틴 철산댁이었다. 그러나 우악스런 남편에게 개처럼 끌려 끝내 산부인과 수술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한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제 자식을 세 번이나 생죽음을 시키고 나서도 종관이 아버지는 의기양양했다.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에 자식들 키워 놔 봤자 다 소용없다. 하나같이 미련하고 병신 같은 것들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난 내 자식들에게 기대놓은 지 오래다.
처자식들 입에 자물쇠 채워놓고 나서 그는 되는 대로 마구 지껄여댔다. 처자식 앞에만 서면 그는 언제
나 기고만장했고 폭군으로 군림했다. 그에게 있어 가족은 언제나 비천한 약자였고 자신은 위대한 강자였다. 강자가 되어 약자를 마음껏 호령하고 군림했다. 그 희한한 발상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정신과 의사라도 그의 정신상태를 감정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철산댁은 안방으로 가 서랍에서 약을 꺼내 먹었다. 그녀가 종철이 종숙이를 찾기 위해 현관문을 막 열 때였다. 종철이가 종숙이와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두 손엔 사탕을 잔뜩 쥔 채로….
"너희들 지금까지 어디 있다 오는 게냐?"
"교회 전도사님이 이것 다 주셨어. 우리 다 먹으라구"
"그러냐? 어서들 씻고 잠들 자라."
그들이 마악 잠자리에 들 때였다. 현관문을 발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이번만큼은 당하고 있지 않으리라 모두들 결전의 의지를 다지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종관이 아버지는 신발 벗을 생각도 않고 무서운 눈으로 처자식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우악스런 손길로 종숙이의 여린 어깨를 움켜쥐었다.
종숙이는 이제 막 초등하교에 입학한 어린아이였다.
그 작고 가냘픈 어깨를 그는 단번에 마루에 내다 꽂았다. 두 눈에 시퍼런 광기를 발하며 구둣발로 그 작은 몸을 마구 짓이기기 시작했다.
"너 이년 누가 너더러 교회 나가라고 했냐. 응 밥 멕이고 옷 입혀서 학교 보내줬더니 어린년이 싸가지 없니 가랭이 벌리고 교회를 댕겨 너 이년 어서 싸게 말하지 못해 누가 너더러 교회 가랬냐 응?"
그 무지막지한 구둣발을 달려들어 움켜쥐는 손길이 있었다. 종철이였다. 종철이는 발길에 채이면서도 결코 다리를 놓지 않았다. 철산댁도 달려들었다. 팔뚝을 물어뜯고 곁에 있던 함지박을 들어 머리통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다만 종관이만 멀뚱멀뚱 선 채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의외의 사태에 종관이 아버지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이제껏 일방적으로 당하고 만 있던 가족이 최초로 반기를 든 것이었다. 때리면 맞고 욕하면 입 한번 벙긋 못하고 참고 들어주던 처자식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는 잠시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쏜살같이 뒤란으로 달려가 낫을 들고 나타났다. 여차하면 내리칠 기세였다. 여기에서 한 발 물러섰다간 언제 또다시 당할지 몰았다. 낫을 높이 치켜든 그는 마루바닥을 향해 힘껏 내리꽂았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며 낫이 바닥에 찍히는가 싶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그는 콧김을 한번 팩 내쏟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그대로 엎어져 잠이 들었다.
잠든 그의 모습은 악귀나 다름없었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이불 위에 누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튿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아침을 먹자마자 교회로 달려갔다. 교회 문을 열자마자 한바탕 난장을 부릴 태세로 들어섰지만 다행인지 교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다음날 수요일 저녁 예배 때 나타나 난동을 부리기로 다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철이 종숙이는 학교에 가고 철산댁마저 들일을 나가고 없었다. 종관이만이 외양간 앞에 서서 멍하니 먼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종관이는 소에게 지푸라기를 넣어주면서 말했다.
"누렁아 너하고 나하고 바꿔 되었더라면... 누렁아 널랑 여물 많이 먹고 자라서 튼튼한 새끼 낳아서 잘 돌봐 주어야 한다 새끼 미워하면 안 된다. 알겠지 누렁아."
종관이는 나이 스물이 넘자 읍내에 있는 방앗간에 취직했다. 차츰 기력도 회복하고 등치도 제법 커져 장정 티가 났다. 종철이는 인근에서 유명한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종숙이는 중학생이 되어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다. 농사일이 힘들긴 했지만 철산댁도 그만하면 건강한 편이었다.
그녀는 품앗이를 하거나 농산물을 장에 내다 팔아 돈을 손에 쥐게 되면 아이들 학자금 위주로 썼다. 가끔씩 나타나는 남편이 아무리 폭력을 휘둘러도 결코 내놓지 않았다. 종철이는 C시에서 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일 주일에 한번 씩 집에 들었다. 그때마다 밑반찬과 용돈을 얻어가곤 했는데 어쩌다 제 아버지와 눈길이 마주쳐도 결코 먼저 아는 체하는 법이 없었다. 넌덜머리가 나는 표정이었다. 싸가지 없는 자식이 제 애비를 보고도 모른 체를 혀. 벼락 맞을 놈 같으니….
종관이 아버지는 아들의 멱살을 쥐고 패대기를 치려 했다. 생각같아선 바닥에 메다꽂고 구둣발로 짓이기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들의 등치가 너무나 컸다.
종철이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주먹으로 때릴라치면 제가 먼저 주먹을 잡고 팔목을 비틀었다. 거기에다 제 아버지를 닮아서 악담까지 곧잘 했다.
"제발이지 죽을 때까지 얌전하게 살다가쇼."
종관이 아버지는 미쳐서 팔팔 뛸 지경이었다. 옆에 낫이라도 있다면 당장이라도 내리꽂고 싶었다. 이상했다. 그는 일평생 못된 짓만 해왔으면서도 가족들이 조금만 비위 거슬리는 소리를 하면 당장 분노를 나타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철산댁만 해도 그랬다. 그는 아내가 자신에게 조금만 소홀하거나 말대꾸를 하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밥상을 둘러엎거나 살림도구를 때려부수는 건 예사였다. 수중에 돈이 있건 없건 그의 기세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어느날 그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 말고 심한 토악질을 했다. 속이 자꾸만 메슥거렸다. 술이 받지를 않았다. 젊었을 때는 말술을 마시곤 했는데 나도 이젠 늙었나 보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그는 여전히 꽥꽥거렸다. 아침에 먹었던 시래기국까지 다 넘어왔다.
이상한 일도 다 있군 먹었다 하면 체하기만 하니. 강철같이 단단하던 몸이 아프다고 소리 지를 땐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가족들은 아무도 아는 체를 안 했다. 그가 연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토악질을 하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철산댁은 종철이에게 보낼 밑반찬과 이부자리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철산댁은 자식들 중에서 유난히 종철이를 귀애했다. 남편을 빼어박은 모습이 밉긴 하지만 그래도 기대를 걸만한 자식은 종철이 뿐이었다. 성격이 매몰차긴 해도 공부도 잘하고 똑똑해서 서울에 있는 일류대학을 가고도 남았다. 고진감래라고 아들이 못난 어미의 설움을 모두 풀어줄 것이었다. 그녀는 돈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차곡차곡 쌓아 종철이 몫으로 남겼다.
반면 딸에게는 완악하고 인색했다. 그는 딸이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일체 신경 쓰지 않았다.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일을 시키거나 심지어 밭일까지 시켰다. 딸이 성적표를 받아와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가끔씩 제 아버지에게 불려가 죽도록 얻어맞아도 그다지 마음 쓰지 않았다. 그건 종관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종관이가 방앗간에서 일하다 팔을 다친 적이 있었다. 병원에 실려가 붕대를 감고 나타났는 데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따 시내 나갈 때 이 짐 종철이에게 갖다주어라."
했을 뿐이다. 종관이는 나이 스무 살이 넘어도 군대 소집 영장이 나오질 않았다. 국졸이었기 때문이다. 종철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도 유명한 대학에 입학했다.
합격 소식이 들려오기 전 종관이 아버지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음 소식을 듣고 나타난 자식들은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종숙이만 손등으로 눈물을 적셨을 뿐이다. 철산댁은 아들의 합격여부가 궁금해 남편의 초상조차 등한시해 치렀다. 겨우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체면치레만 했다. 남편을 파묻고 오는 날 아들이 합격소식을 알려오자 미망인인 제 처지도 잊은 채 온 동네가 떠내려가도록 기쁨의 소식을 알렸다.
철산댁은 동네 잔치라도 벌이고 싶었지만 초상을 치르자마자 잔치를 벌일 수 없다고 했는지 대신 사람들만 만나면 아들 자랑을 떠들어댔다. 이듬해 종관이는 방앗간 집 딸과 결혼했다. 얼굴이 못 생기고 한쪽 다리가 불구인 방앗간 집 딸은 눈마저 사시였다. 그녀를 보는 총각들은 백이면 백 모두 마다했다. 그러나 종관이는 자신의 어릴 적 처지와 그녀의 처지를 맞추기라도 하듯 제가 먼저 청혼해 성사가 되었다. 종관이는 처갓집 재산을 넘겨받는 동시에 더 충실한 일꾼이 되어 처가에 봉사했다.
종숙이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취직이 되어 떠났다. 떠나면서 그녀는 어머니에게 단단한 언질을 받았다. 월급을 받는 즉시 송금할 것. 일주일에 한번씩 꼭꼭 오빠에게 찾아가 음식이며 빨래를 맡아서 해 줄 것, 오빠의 건강을 책임지고 돌볼 것 등이었다. 어릴 때부터 구박만 받고 자란 종숙이는 순종만 할 뿐 일체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이유를 따져 묻거나 차별대우를 받아도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오빠와 함께 살면 생활비도 절약되고 좋겠다고 했지만 모자는 한사코 반대했다. 철산댁의 말로는 아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고, 종철이 말로는 아무리 오누이라도 한방에 기거하는 건 아무래도 껄끄럽다는 것이었다. 종철이는 빠르게 서울 생활에 적응해 갔다. 용돈이 떨어지면 스스럼없이 동생에게 나타나 손을 벌렸다.
그러면서 누가 볼까봐서 한결같이 부끄러워하는 것이었다. 종숙이도 처음에는 그 이유를 잘 알 지 못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촌티 나는 여동생이 창피했던 것이다. 온종일 식품공장 지하실에 엎드려 일하는 여동생에게서 나는 질 낮은 음식냄새와 영양부족으로 비쩍마르고 초라한 차림새가 또래의 여대생들과 비교됐기 때문이다.
해서 그는 여동생이 건네주는 돈을 건네 받자마자 겨울 햇살에 눈 녹듯 재빨리 사라졌다. 철산댁은 고향에서 더욱 몸이 부서져라 일만 했다. 아들에 대한 꿈과 기대로 힘든 줄도 몰랐다. 종철이에게 군대 영장이 나오자 군대에 안 보내려고 별별 수를 다 썼다. 그럼에도 아들은 동부전선 최전선에 배치되었다. 철산댁은 아들이 군대 삼 년을 마치는 그날까지 뒷산에 있는 암자에 올라가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고 또 빌었다.
종철이 군대에 가고 나자 종숙이에게도 비로소 안정이 찾아왔다. 오빠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변변한 옷가지 하나 사 입을 줄 몰랐던 종숙은 성경 통신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성경통신학교를 졸업하자 정식으로 신학교에 진학했다. 그 문제를 두고 철산댁과 그녀는 일대 전쟁을 치렀다. 철산댁이 종숙의 신학교 진학을 반대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였다.
여자가 많이 배우면 팔자가 드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신앙을 터부시하는 완고함이 있었다. 철산댁은 절에 가서 불공드리는 것은 물론 붉은 형상의 부적을 대문과 집안 문설주 천장에까지 붙여 놓고 비는 것을 좋아했다. 큰 일을 앞두고는 반드시 무당을 불러 큰굿을 했다. 종철이가 대입시를 앞두었을 때도 동네 만신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였다.
아들이 군에 있을 때에는 뒷산에 있는 암자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올라가 불공을 드렸다. 시주로 쌀 섬을 보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그녀는 곧잘 그런 식으로 풀었다. 남편이 죽자 무당은 죽은 자의 원혼을 달래주는 굿을 벌이자고 했다. 하지만 철산댁은 완강히 거절했다. 살아있는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난 사람이 뭐가 좋다고 돈 처들여 그런 굿판을 벌이느냐며 한사코 마다했다. 제사상도 차려줄까 말까 고민 중인데 그런 인간 위해 쓸 돈이 있으면 산 사람 입에 풀칠하는 게 다 급하다며 끝내 외면한 것이다.
종숙이 신학생이 되어 고향을 찾았을 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 다섯이었다.
고향 친구들은 벌써 시집가 아이를 한 둘 쯤 낳았을 나이였다. 인근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순영이 말고는 종숙이만 미혼이었다. 당장 남자가 나타나 청혼을 넣어도 그녀는 결혼할 형편이 못되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느라 번 돈이 고스란히 종철이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녀가 고향에 내려오자 철산댁은 딸의 차림새를 쳐다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번 돈 다 뭣에 쓰고 안색이 그게 뭐냐 여름 가뭄에 피죽 한번 못 얻어먹은 꼴이라니"
벽을 향해 돌아앉더니 철산댁은 다시 한번 팩 내쏘았다.
"그래 신학굔가 뭔가 다니느라고 직장은 집어치운 게냐?"
"직장 다니면서 신학을 해야지 무슨 수로 공부를 해요, 낮에 다니는 공장 알아 뒀어요 걱정마세요 엄마"
"누가 걱정하긴 하구, 그거하면 돈이 생기긴 하는 거냐?"
"엄마는 돈이 단가요?"
"그럼 뭐가 단데 돈이면 최고지 난 모르겠다 니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런데 니 오빠는 요즘 왜 소식이 뜸하다 잘 내려오지도 않고 직장생활 하느라 워낙 바빠서 그런가."
"바쁘기도 하겠지만 오빤 요즘 연애하나 봐요 제가 자주 전화하는데 받지도 않고."
"그래?"
모처럼 철산댁 얼굴에 화기가 돌았다.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단번에 표정이 바뀌면서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철산댁은 종철이에게는 하늘 같은 기대를 걸면서도 종숙에게만은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했다. 동네사람들이 딸 시집보내라고 하면 '제가 알아서 가든지 말든지 하겠지 뭐' 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긴 당장 시집간다고 해도 큰일이었다.
혼수며 결혼 비용을 무슨 수로 다 감당한단 말인가. 이제껏 품팔고 농사 지은 것은 종철이 몫으로 다 들어갔다. 종철이가 갖다 쓰는 돈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등록금이야 종숙이가 여적 벌어서 댔다지만 군에 있는 동안에도 휴가 때마다 내려와 용돈으로 가져간 돈만도 엄청났다. 종철이는 무슨 일에든지 기죽는 건 참아내질 못했다. 친구가 한번 사면 자신은 두 번 세 번 사야 직성이 풀렸다.
체면치레만큼은 일등으로 하려고 나서는 바람에 죽어나는 건 집안 식구들이었다. 심지어는 읍내에 있는 제 형에게까지 달려가 염치없이 손을 내밀곤 했다. 그래도 철산댁은 종철이 생각만 하면 흐뭇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울에서도 최고 일류대학을 나온 잘난 내 아들 며느릿감도 일등으로 얻을 테다 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했다. 당장 돈이 없긴 해도 아들이 장가만 간다면 논이고 밭이고 심지어는 그리도 아끼는 암소까지 장에 내다 팔 작정이었다. 하지만 종숙이는 달랐다.
언제고 남의 집사람 될 딸년, 하고 늘 외면하고 무관심했다. 누군가 딸의 안부를 물을라치면 아! 그년이야 원래 제 앞가림은 잘하는 년 아닌가유 지가 알아서 하겠지유 했다.
"모르긴 몰라도 서울서 직장생활 하면서 돈도 꽤 많이 모았을 거구만유 신학굔가 뭔가 다닌다잖아유 돈이 없어봐유 지년이 무슨 재주루다 다니겠어유."
딸에 대한 안심인지 방관인지 통 모를 말투였다. 이틀 후 집안에 있는 옷가지와 양식거리를 싸는 딸의 뒤에 서서 철산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벌써 서울가려구?"
"네 이젠 올라가 봐야죠"
"너 돈 가진 것 있지 있음 좀 내 놓고 가라"
그 말에 종숙은 기가 탁 풀리고 말았다. 친구에게 겨우 사정사정해서 입학금 밀어 넣은 게 바로 엊그제 일이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하도 궁해 쓸만한 것이 있으면 되가져가려고 온 것이었는데 그런 딸보고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아들 위하는 정성의 백만분의 일만이라도 있다면 그리는 못할 것이었다. 종숙이는 보따리를 싸다 말고 멍한 눈길로 철산댁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한마디 내뱉었다.
"제가 돈이 어디 있겠어요."
"왜 돈이 없는데?"
"뭐라구요?"
"아! 그동안 서울서 직장생활 하면서 번 돈 있잖냐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냔 말이다"
"엄마! 그걸 몰라서 물으세요?"
"그래 몰라서 묻는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오빠 등록금으로 다 들어갔잖아요."
"그게 얼마나 된다구… 너 지금 니 오빠 등록금 대 주었다구 생색내는 거냐, 이년이 어디서 제 에미헌티 눈 똑바로 뜨고 대드는 겨, 그래 이년아 이제와 생각해 보니 아깝다 그거냐 그려서 니가 지금 에미한테 따지는 겨, 어디 말 좀 한번 해봐라 내 살다 살다 기가 막혀서 원 딸년 키워봤자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구먼 이 그랴 그러니까 니가 니 오래비 등록금 대주다보니 돈이 한푼도 남아있질 않아서 돈이 없어 부아가 나 죽겠는디 에미가 돈 달라고 하니까 분이 난다 그 말이 아니냔 말여."
철산댁은 봇물터지듯 말을 줄줄이 내쏟더니 끝내 울음을 쏟고야 말았다.
이제껏 말없이 순종만 하던 딸이 아니었던가. 한번도 말대꾸하거나 싫은 기색 없이 내놓으라면 내놓고 주워 담으라면 주워담던 종숙이었다. 그런데 그 딸이 제 오빠 등록금 몇 번 대주고 나더니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아니다 그전에도 이렇진 않았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신학교 합격 소식이 나던 날부터 입학금 걱정을 하더니 불평불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입학식에 입고 갈 옷이 변변치 않다느니,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모자라겠다느니 하면서, 그런 사태가
나올까봐 철산댁은 미리부터 신학교 입학을 극구 말렸던 것이다.
앞으로 착실하게 몇 년간 직장생활 하다가 제 처지에 맞는 신랑감 나타나면 후딱 시집가버리면 될 것을 그깟 공부는 해서 뭘 하냐. 그거 한다고 누가 알아주냐 하다 못해 돈이 새기냐 취직자리가 생기냐. 또 그 공부 마치려면 돈도 쏠쏠히 들어갈 텐데… 언제 벌어서 시집가려는 것이냐. 겉으로는 딸 걱정를 하는 체 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앞으로 종숙이에게 나올 게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철산댁을 화나게 했다.
이제 내일 모레면 종철이도 장가들어야 할텐데 그러자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그녀는 자나깨나 종철이 걱정뿐이었다. 잘난 내 아들 잘난 내 아들하며 들일을 나갔다 돌아오면 전화통 옆에 붙어 앉아 노심초사 아들 전화만을 기다렸다.
종철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유명기업체 엘리뜨 사원이 되었다. 잘생긴 미남은 아니었지만 좋은 학력에 우수한 성적에, 거기에다 넘치는 패기에다 야망까지 덧붙여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는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경쟁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목표치에 도달하기 위해 걸림돌이란 걸림돌은 가차없이 짓밟고 앞으로만 내달렸다.
살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의 눈빛은 매섭고도 교활하게 빛이 났다. 냉정함과 독기로 무장한 그의 마음은 양보 보다는 타협을 택했고 정로(征路)보다는 지름길을 택했다. 그는 멀리 돌거나 우회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무엇보다도 빠르고 쉬운 길을 택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사람과 적절한 사람, 필요치 않은 사람을 구분해 교제했다. 또 그는 남에게 얻어 먹는 것보다 쓰는 걸 좋아했다.
도움을 받는 쪽보다, 주는 쪽을 택해 나중에 더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 그래서 그의 주머니는 텅텅 비기가 일쑤였다. 어느날 그는 동료들이 주선하는 신종 미팅에 합류했다.
잘 나가는 엘리뜨 사원 그룹과 역시 능력 있고 똑똑한 케리우먼과의 만남이었다. 전혀 예상치 않았는데 상대편 여자 중 네 명이 그를 지목했다.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이다. 그는 그중 가장 화려하고 도도해 보이는 쪽을 택해 데이트에 응했다. 자신을 기업 비서실에 근무하는 미스왕이라고 밝힌 그 여자는 생김새나 이름 못지 않게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외모도 외모려니와 집안 배경이 좋았다. Y 기업 부사장이 그녀의 큰아버지었다. 성격도 꽁하거나 막힌 곳이 없이 시원시원하고 직선적이어서 따로 잔머리 굴릴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게 명확하고 확실했다. 숨기거나 주저하는 것이 없이 예스와 노가 분명했다.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모든 게 완벽하다보니 안하무인격이었다. 남의 입장이나 사정을 배려하거나 봐주는 법이 드물었다.
그녀는 종철이와 데이트 할 때에도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는가 하면 제가 먼저 서둘러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인사드리러 가자고 졸랐다.
일종의 청혼의사를 밝히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개의치 않았다.
눈치 살피고 자로 재고 저울로 달아보고 따지는 내숭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렇지만 동철은 내심 걱정이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집안에다 모아 놓은 돈도 없이 어떻게 혼사를 치른단 말인가. 더구나 상대는 빵빵한 집안에다 잘 나가는 여자중의 여자인데.
어찌됐든 손해 볼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종철은 못 이기는 체하고 청혼 의사를 받아들였다. 종철을 대한 여자 쪽 부모는 그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의외로 아담했고 그녀의 부모와 동생들도 특별나거나 모나지 않고 그저 그러했다. 그러니까 그녀만 그 집에서 특출 난 인물이었다. 처가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던 종철은 저으기 실망했다.
큰아버지가 기업체 부사장이라더니 말뿐이었군. 평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를 제외한 두 여동생은 겨우 턱걸이로 지방대학을 나온 기대 이하의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도대체 뭘 믿고 그리도 당당하고 자신만만했을까. 종철은 자꾸만 의아심이 들었다.
종철은 주말에 그녀의 차를 이용해 어머니 철산댁을 만나러갔다. 종철은 농사일에 찌들은 초라한 어머니와 빈한한 살림살이를 노출시키고 싶진 않았지만 어차피 알게 될 것하며 그녀와 함께 철산댁을 보러가기도 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철산댁은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미장원에 가 머리도 하고 새로 산 한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선물꾸러미를 내놓으며 큰절을 하는 며느릿감을 향해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다. 여러 가지 덕담이 오가 끝에 철산댁이 물었다.
"요즘 처녀들은 맞벌이를 좋아한다는데 어쩔 셈이슈?"
"물론 해야죠."
기다릴 것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철산댁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바라던 최상의 며느릿감이었다.
"아암 그래야지 그래야 말구 요즘은 부부가 같이 뛰어야 사는 세상이라우 그래야 여자도 큰소리 치구 내외간의 사이도 더 좋아지는 법이지."
종철의 결혼일자가 잡히자 철산댁은 암소를 내다 팔았다. 그리고 도로변에 난 밭 두어 마지기도 팔아치웠다. 그녀는 난생처음 거금을 만들어 아들 결혼자금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종관이 종숙이에게도 결혼자금으로 얼마를 보태라고 성화를 해댔다. 온 동네가 떠내려 가게 자랑자랑한 것은 물론이다. 결혼식은 시가가 있는 쪽으로 하는 게 상례인데도 일부러 사돈 쪽의 편리를 봐 주느라 서울로 예식장을 정했다. 결혼식 날 전세버스를 동원해 온 동네 사람을 서울로 실어 나른 건 물론이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한 떼거지의 촌사람들이 식장에 들어닥치자 신부의 눈썹이 매섭게 치켜졌다.
잘 차려입은 신부의 부모는 못 마땅한 눈길로 철산댁을 바라보았다. 일평생 농사일로 잔뼈가 굵어온 철산댁은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한데다, 한복 치마끈이 흘러내리는지 손을 저고리 밑으로 가져가면서 연신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식이 끝나자 피로연은 근처에 있는 뷔페집에서 했다. 시골에서 온 하객들은 참았던 허기를 메우느라 너도나도 달려들어 먹는 통에 금세 음식이 동이 났다. 종관이 부부와 종숙이는 하객들 틈에 끼어 간신히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다. 신부측에서는 종관이 부부와 종숙이에 대해 아무도 인사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경멸하는 듯한 눈초리로 쏘아보고는 서둘러 식장을 빠져나갔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신혼 부부는 이받이 음식을 해 갖고 철산댁을 찾아왔다. 하룻밤 자고 내일 떠나라는 철산댁의 성화에도 직장 일을 핑계 대고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날아갈 듯 서둘러 대문간을 빠져나갔다.
그래도 철산댁은 기쁘기만 했다. 잘나고 똑똑한 아들에다 역시 똑똑한 며느리에다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서 어서 잘난 손주나 태어나거라. 그녀는 종철이 군대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뒷산에 있는 암자에 올라가 아들 손주 보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어느날 며느리에게 태기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철산댁은 뛸 듯이 기뻤다. 세상에 태어나 그런 기쁨은 처음이었다. 드디어 나도 손주를 안아 보게 되는구나. 손주 볼 생각을 하니 세상 살 맛이 났다. 철산댁은 아들이 내려 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양식을 저축했고 임신에 좋다는 약재도 미리 구해다 놓았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들 며느리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하긴 둘 다 직장 일에 바쁠 테니까.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이해하고 참아야지, 섭섭했지만 철산댁은 끝까지 믿고 참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밤늦게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핸드폰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요금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는 그만 끊어버렸다. 철산댁은 내심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일평생 뼈빠지게 고생했어도 아들 잘되는 거 바라보느라 고개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아왔었다. 남들은 늘그막에 며느리가 해주는 밥 얻어먹으며 살라고 했지만 즈이들끼리 잘 살라고 이날까지 말 한마디 않고 살아온 처지였다. 뿐이랴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 바쳐도 아들 며느리의 반응은 늘 시큰둥했다.
결혼해서 산 지 1년이 다 되도록 용돈 한번 구경하지 못했다. 섭섭한 걸로 따지자면야 할말이 많았지만 손주가 생겼다니, 기쁜 일을 앞두고 자제하느라 꾹 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서울에서 종철이 내외가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뜬금없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언제까지 이 촌구석에 눌러 사실 작정이슈?"
"작정이라니?"
"아! 아들 며느리가 서울에서 성공해서 여봐란 듯이 살고 있는데, 그깟 얼마 안 되는 전답 다 팔아치우
고 우리랑 함께 삽시다."
그 말이 허언(虛言)인 줄은 알았지만 철산댁은 감격했다. 함께 살자니 물론 좋지 며느리가 해주는 밥 먹고 손주 재롱 보면서 사는 게 일평생 꿈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며느리의 새초롬한 눈초리와 건방지기 짝이 없는 태도에서 그녀가 감지하지 못한 또다른 면이 있을 것이다. 아! 이것들이 나를 서울로 불러올려서 부엌데기에다 애나 키우게 할 작정이로구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철산댁은 안색이 싹 바뀌었다.
"내가 왜 니들이랑 사냐. 난 여기가 좋다. 내가 왜 니들이랑 살면서 눈칫밥을 먹냐?"
그러자 이번에는 며느리가 나섰다.
"아이 어머니두 누가 눈칫밥을 준다는 거예요. 제가 직장생활 계속하려면 아이 맡을 사람도 필요하고, 어머니도 손주 재롱 보면서 사시면 좋잖아요 안 그래요 어머니."
"싫다 난. 그리고 너 새애기 너의 친정 엄니에게 애 맡기면 되지 굳이 나헌티 그러는 이유가 뭐냐."
"저의 엄마는 얼마나 바쁘신대요 꽃꽂이 강사 하시느라 하루도 집에 계시는 날이 없다니까요"
그 말에 철산댁은 부아가 울컥 치밀었다. 그려 니 엄마는 유식하고 난 무식하다.
"나는 촌 무지렁이가 되어 가지고 요즘 신세댄지 뭔지 하는 식으로 애는 못 키워주니께 새애기 니가 알아서 키워라 애는 지 엄마가 키워야 하는 벱이여."
말이 점점 더 고까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들 며느리의 말에 속아 금이야 옥이야 아껴오던 전답 몽땅 팔아치우고 도시로 갔다가 되 쫒겨온 경우를 철산댁도 몇 번 본 기억이 났다. 답답한 도시생활도 견딜 수 없거니와 며느리의 구박과 성화가 너무 심해 도저히 살 수가 없더라도 했다. 그저 죽을 때까지 며느리년 꼴 안 보고 사는 게 제일 마음 편한 노릇이라며 노인네들은 모일 때마다 며느리 흉을 봤다.
아쉬울 때는 데려다가 부엌일에다 어린애 키우는 일을 맡겼다가 나중에는 자식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며 되레 큰소리치고 대들더라는 것이다. 아들 키워 봤자 남의 집 딸년 좋은 일만 시킨다며 헛헛해 하는 표정을 철산댁은 기억해냈다. 며느리의 산달은 혹한이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갑자기 아들 며느리가 불러 올리는 바람에 철산댁은 난생처음으로 서울에 올라갔다.
아들이 일러주는 대로 서울역에 내려 무조건 택시를 잡아탔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서울의 풍경은 TV에서 보던 것과는 또다른 것이어서 철산댁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생 악귀 같은 남편 등쌀에 서울구경은 고사하고 논밭일 하느라 한번도 중노동에서 헤어나 본 일이 없었다. 처자식 미워라하고 날마다 지옥 같은 상황만 조장하는 남편 때문에 좋은 시절 다 흘려보내고 늘그막에 둘째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허리가 휘어져라 일만 했다.
남들은 늙으면 자식들이 효도관광 보내 준다는데 자신은 이날 이때껏 관광 한번 못 떠나보고 살아온 게 후회가 됐다. 하지만 곧 손주를 보게될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기뻤다. 택시가 방배동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차창 밖으로 이상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어깨에 띠를 띈 사람들이 모여 마이크를 쥐고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입 모양을 봐서는 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 가운데 작은 엠프 시설이 보였다. 이쪽으로 등을 보인 채 마이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여자의 뒷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낯익다 싶었다. 그녀가 오른 쪽으로 어깨를 비트는가 싶었는데 옆 모습이 철산댁의 눈에 들어왔다.
"아아니 저건 종숙이년 아냐. 아니 저년이 저기서 도대체 뭘하고 있는 겨 대낮에 사람들이랑 모여서 마이크를 쥐고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겨."
종숙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큰 소리로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어깨띠에 쓴 빨간색의 글자가 철산댁의 눈가를 어지럽혔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저년이 신학굔가 뭔가 들어가더니 완전히 미쳐버렸구먼 대낮에 저것이 무신 짓이여.
아들 집에 도착하면 그때 가서 알아봐야겠다며 딸의 연락처를 생각하다 아차했다. 딸이 서울에 있는 신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딸에 대한 무관심이 그대로 노출되고 만 것이다.
택시가 방배동 사거리를 지나 역삼동에 이르렀다. 택시에서 내린 철산댁은 고층아파트 빌딩숲가로 들어섰다. 건물을 올려다보니 머리가 어지러워 눈알이 핑핑 돌았다. 발 밑에 느껴지는 딱딱한 시멘트 감각이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그녀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양손에 쥔 농산물을 들고 그녀는 아파트 동 호수를 찾기 위해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물어봤다. 간신히 아파트를 찾아냈다.
아들이 사는 아파트는 905호였다. 철산댁은 엘리베이터 앞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혼자서 탈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얼음 바람이 철산댁의 마음과 몸을 얼릴 듯이 덮쳐왔다. 피곤하기도 하고 춥기도 했다. 아파트 경비원이 다가왔다.
"할머니 어디를 가시려구요?"
할머니라니? 내 나이 아직 환갑도 되지 않았는데 기분 나빴지만 그녀는 공손히 대답했다.
"우리 아들이 여기 905호에 살고 있다는데 내가 원체 촌 무지렁이가 되어 놔서 이것 사람 끌어올이는 기계를 탈 줄 알아야 말이쥬."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말하자 경비원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셔서 구라고 표시된 글자를 누르세요 그랬다가 엘리베이터가 멈춰서면 얼른 내리세요 아셨죠. 아참 할머니 구백오 호라고 하셨나요. 그 집 젊은 부부는 좀 전에 나갔는데, 새댁이 배가 많이 아프다면서 아마 아이를 낳으려 간 것 같던데."
"그래요 아유 우리 며늘아이가 그예 해산을 하러 갔구만 아이구 부처님 제발 덕분에 아들 손주 좀 보게 해 주세유 제발 덕분에 떡두꺼비 같은 우리 손주 좀 보게 해 주세요."
철산댁은 머리를 조아려가며 손바닥을 싹싹 빌고 또 빌었다.
"올라가 봤자 문은 잠겨 있을 테고 경비실에서 불이나 쬐면서 기다리시죠 할머니."
저놈의 영감탱이가 끝까지 할머니라고 하네. 철산댁은 경비실에 앉아 계속 바깥쪽을 바라보며 눈이 빠지게 종철이를 기다렸다. 몇 시간이나 기다렸을까. 아들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경비실 문을 박차고 나가자마자 물었다.
"종철아 뭣났냐?"
"엄마 아들이래요."
"그랴 아이구 잘됐다 잘됐어 자알났다. 내 아들 그래 산모는 건강하고."
"네."
"그런데 산모하고 아기는 아직도 병원에 있냐."
"내일 아침이면 처가로 들어갈 거예요"
"아니 거긴 왜?"
"집사람이 거기가 편할 것 같다잖아요."
어머니의 상경은 이미 안중에도 없다는 말투였다. 어쨌거나 철산댁은 아들 손주가 태어났다는 말이 너무도 기뻐서 춤을 덩실덩실 추고 싶었다. 이튿날 아침 철산댁은 준비해 온 미역다발과 소고기를 들고 며느리를 찾아갔다. 손수 국을 끓여 며느리를 대접하고는 손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제 애비를 꼭 닮았다. 앙 다문 입술에 짙은 눈썹까지 종철이와, 할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한 채 잠들어 있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군, 철산댁이 갈퀴처럼 억센 손으로 계속 아이의 얼굴을 만지자 안사돈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첫 인상부터 냉냉하고 도도한 게 영락없이 그 엄마의 그 딸이었다. 혹한의 추위에 며칠 푹 쉬고 깊은 마음도 있었지만 철산댁은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일부러 부산을 떠는데도 며느리는 자리에 누워 일체 모른 체했다.
며칠 쉬다 가라느니 추운데 이 먼 길을 어떻게 가려고 그렇게 서두르느냐고 말이 있을 법도 한데 아예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안사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승강기에 이르렀을 때 철산댁은 종철을 향해 물었다.
"종철이 너 종숙이 전화번호 갖고 있쟈 있음 어서 내놔 봐라."
"종숙이 전화번호요 나 그런 것 모르는데."
"뭐야? 넌 서울 살면서 여동생 연락처 하나도 안 갖고 있냐."
"그러는 엄마는 갖고 계시고."
할말이 없었다. 철산댁은 문득 종관이를 떠올렸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태기가 없어 가끔씩 걱정
이 되긴 했지만 워낙 기술이 발달한 세상이다 보니 곧 좋은 소식이 있겠지 했다. 그런 게 어느새 삼 년이 지나고 사 년 째 들어서고 있었다. 그년이 몸만 병신인 게 아니고 것도 병신 아녀. 아니 왜 여적 애가 안 들어서냐 말여. 모자란 년 데려가 좋은 일만 실컷 시키고 불쌍한 우리 종관이 그 집에서 죽도록 일만하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평소엔 무관심 했다가도 이따금씩 큰아들 내외가 생각나면 철산댁은 며느리 욕부터 했다.
사실 종철이에 비하면 종관이에게 해 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중학교도 못 보내고 어린 나이에 방앗간에 품팔러 보낸 주제에 그래도 할말은 다 했다. 것도 아들을 데릴사위로 보내놓고 말이다. 철산댁은 읍내에 나갈 때마다 방앗간에 들러 제법 시어머니 행세도 하고 싫은 소리도 했다.
며느리의 저는 모습과 사시눈을 볼 때마다. 생기지도 않은 손주 걱정을 하기도 했다. 저년을 닮아 사팔뜨기가 태어나면 안 되는데, 종관이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하도 많이 두들겨 맞아 의기소침하고 말도 어눌했다. 머슴처럼 일하면서 돈을 버는 족족 처부모에게 바쳤다.
철산댁에 비하면 종관이 처부모는 복이 덩굴째 들어온 셈이었다. 병신 딸 시집 보낸 것도 모자라 데릴사위까지 얻어 늘그막에 편안하게 앉아서 놀고 먹으니 그만하면 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에 비하면 자신은 일평생 논밭 일구며 사느라 손은 갈퀴처럼 변하고 환갑도 안 되었는데 어디엘 가나 할머니 소리를 들었다. 거기에다 못 먹고 산 게 한이 되었는지 골다공증 증세까지 왔다.
뼈마디가 시큰거리고 무거운 것만 들었다 하면 허리가 휘청거리고 어지럼증이 왔다. 일년 내내 뼈빠지게 일하고 품 팔아서 먹고 사는 거야 지장 없었지만 한평생 고생만 하고 살았다 생각하니 처량한 생각이 몰려왔다. 그래도 종철이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서울에서도 최고 일류대학 나온 똑똑한 아들에 며느리에다 아들 손주까지….
철산댁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찬바람을 쏘이고 다닌 탓일까. 감기 몸살이 왔다. 일찌감치 저녁을 지어먹고 철산댁은 자리에 누웠다. 으실으실 춥고 뼈마디가 욱신욱신 쑤셔왔다. 쌍화탕에 알약을 타서 마시고는 깊은 잠에 빠졌다.
꿈에 그녀는 남편에게 무수히 치도곤을 당하고 있었다. 언젠가처럼 방아 찧는 공이를 들고 와서는 허리를 향해 막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다. 그 우악스런 손길을 붙잡는 손이 있었다. 피 묻은 손이었다. 철산댁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손을 움켜잡았다.
그 손을 잡자마자 평안이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남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철산댁은 고개를 들어 그 손의 주인공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눈부신 빛이 폭포수처럼 그녀의 몸을 내리 덮었다. 빛이 너무도 강렬해 쳐다 볼 수가 없었다. 불빛이 온몸을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불빛이 몸에 닿자 몸에 쌓였던 독기가 빠져나오고 상처가 아물어 들고 있었다. 따스한 음성이 상처 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며 사랑을 고백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너를 사랑한단다. 이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너를 사랑할 것이란다.
몸이 낭떠러지 속에 처박혔다가 구름 위에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다음날 자리에서 일어나니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무엇을 써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그릇을 딸그락 거리며 찬장문을 여닫는 소리 같기도 했다. 철산댁은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나가봤다. 언제 왔는지 종숙이가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얼굴빛이 초췌한 게 전보다 얼굴이 더 안되어 보였다.
"언제 왔냐?"
"어젯밤에요 너무 곤히 주무셔서 깨우지 못했어요"
거기에서 일단 대화는 끊겼다. 모녀는 아침상을 두고도 별 말이 없었다. 철산댁은 된장국에 밥을 말아 소리나게 먹고 나서는 생각난 듯이 물었다.
"지난 번 종철이네 집에 가다 보니께 니가 길거리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그 뭣이냐 마이크를 쥐고는 뭔가 크게 소리지르고 있던데 그게 대체 뭣하는 짓거리더냐?"
신학생들이 노방전도 나온 걸 모르고 철산댁은 잔뜩 의심에 찬 눈초리로 물었다.
"그런데 오빠 집에는 언제 가신 거예요?"
"아! 지난달에 갔다가 오지 않았냐, 넌 아직도 종철이댁 애기 낳은 것도 모르냐?"
"모를밖에요 오빠는 무슨 일이 생겨도 토옹 연락을 안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는 너는 오빠에게 연락은 제대로 하고 사는 거냐?"
"저야 가끔씩 하죠."
"그런데 왜 애가 태어났는데도 너한테 연락을 안 한 거냐 아참 그보다도 종철이는 아직도 네 연락처를 모르는 것 같던데."
"그야 당연하죠."
"당연하다니…."
"전 전화도 없이 살거든요. 앞으로 돈 생기면 전화 놓고 살려고요."
세상에 지금까지 전화도 없이 살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넌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게냐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얼마 전 금식기도 끝났어요."
"금식기도라니?"
"밥은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전심으로 하는 기도가 있어요"
"그래도 밥은 먹어가면서 해야지 그러다 몸 상할라."
"엄만 요즘도 뒷산에 있는 암자에 올라가시고 그러세요."
"요즘은 안 간다. 종철이가 아들도 보고했는데 뭘."
말끝의 여운이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손주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이 났다. 첫 손주가 아니던가. 당장이라도 뛰어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종숙은 철산댁 앞으로 무릎걸음으로 나아갔다.
비록 살가운 정은 못 느껴본 모녀 사이지만 그래도 피붙이가 아니던가. 그녀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천지창조와 우주생성의 법칙.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철산댁은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게 나와 무신 상관이 있다는 것이냐?"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손주인 경민이의 백일날 돌잔치 때 딱 두 번이었다. 전화를 통해서 급전 치듯이, 아무것도 준비할 것 없이 몸만 오시라는 전갈을 받고도 철산댁은 아이의 옷가지며 복을 불러들이다는 붉은 부적을 가지고 서울로 갔다. 종관이 부부도 함께 갔다. 잔치는 두 번 다 강남에 있다는 큰 웨딩홀 뷔페집에서 치렀다. 경민이는 살이 포동포동 올라 보는 사람마다 잘 생겼다고 칭찬을 했다.
종철이 처는 생각지도 않은 종관이 부부가 나타나자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노골적인 멸시를 받고도 종관이 부부는 하객들과 어울려 끝까지 식사를 마쳤다. 종철이 처는 종관이 부부가 건네주는 봉투를 받자마자 제 여동생에게 집어던졌다.
종숙이가 다가와 인사를 하는데도 역시 본 체 만 체였다. 시집 식구 알기를 무슨 벌레 보듯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종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에게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는가 하면 손님들이 지켜보는 중에도 노골적으로 무안을 주기도 했다.
금쪽 같은 내 아들을 저년이 저렇게 무시하는 구나.
아들 손주 낳아 주었다고 그리도 애지중지 하더니 철산댁의 마음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종철이 부부는 추석과 구정, 딱 두 번 고향에 내려왔다. 아버지 제사 때는 아예 발걸음도 안 했다.
제 자식을 죽이려고 물 속에 거꾸로 처박던 인간 제사는 뭣하러 지내 주냐며 몇 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종철이 처는 더욱더 시집식구들을 멸시했고 아예 얼굴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했다. 종철이 아들 경민이 밑으로 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며느리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아이 키우는 핑계를 대고는 일년 내내 가야 전화 한번 없었다. 추석과 구정 때에는 얼굴만 잠깐 내밀고는 이내 사라졌다. 시집와서 팔 년이 지나도록 시집식구에게 식사 대접 한번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시집식구들 얼굴을 대할 때마다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면서 잡아먹을 듯이 대들었다. 그리고서 한다는 말이 우리에게 뭐 하나 해 준 것 있어요였다. 그러는 아내를 두고도 종철은 말이 없었다.
누구라도 나서서 한마디 할 법도 한데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했다. 어릴 때부터 기죽고 병신 취급당하고 산 종관이 부부야 그렇다 손치더라도 철산댁이나 종숙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남편과 친아버지에게 무수히 몰매를 맞고 학대당하고 살아서인지 기가 센 사람들 앞에서는 저절로 설설 기었다.
학대당하고 산 사람은 분노와 울분을 속으로만 삭힐 뿐 결코 발설하지는 못한다. 억압되고 짓눌린 자아가 표현욕구를 잠재우고 있기 때문이다. 큰소리에도 미리 기가 죽고 좌절하며 슬픔에 빠진다. 한번도 능동적이 되어보지 못하고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피압박자로서의 설움에 달관한다. 강자 앞에 한없이 비굴하고 약자 앞에서도 무관심과 무반응을 나타내다.
동철이 처가 시집온 지 10년째 되었다. 종관이 부부는 여전히 아이를 갖지 못한 채 불혹을 넘기고 있었다. 종숙이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어촌에 있는 작은 교회 전도사로 부임해 갔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추수를 마쳐놓고 동네 사람들과 한갓지게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종철이 처가 내려왔다. 종철은 어디에 갔는지 경민이 동민이 달랑 둘만 데리고서. 할 말이 있다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손주를 품에 안아 보기도 전에 며느리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디.
"어머니 저 이혼할 거예요 그러니 애들을 맡아주세요."
당당한 외침이었다. 대가 세고 도도한 것도 모자라 이젠 시어머니 앞에서 막대놓고 이혼이란다. 철산댁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이유가 뭣이냐, 그보다도 경민이 애비도 찬성한 것이냐?"
"그이가 찬성하든 안 하든 상관없어요 전 이혼하겠어요."
"그럼 경민이 애비는 원치 않는디 너 혼자 이혼하겠다는 거냐. 애들 놔두고 너 혼자 나가겠다는 거냐 시
방."
"니가긴 제가 왜 나가요 경민이 아빠가 나가야지."
"그건 또 뭔 소리다냐?"
"결혼해서 지금까지 그이가 생활비 한 푼 내놓은 줄 아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 도대체… 생활비를 안 내놓다니."
"여적 모르고 계셨어요 그이는 돈 벌면 남 퍼주기 바빴다구요 돈 벌어서 남 술 사주고 밥 사주고,그것까
진 좋다 이거예요 남에게 돈 빌려주고 떼이고 빚 보증 서주고 월급 차압당하고, 지금까지 그이가 벌어서 먹고 산 줄 아세요 다 제가 벌어서 먹고 살았다구요.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제 명의로 해 놓았기 망정이지 안 그랬음 벌써 날아갔을 거라구요. 그 뿐인 줄 아세요 가족들한텐 얼마나 인색한지 애들 과자하나 사 주는 것 가지고도 벌벌 떤다니까요. 거기에다 술만 마셨다 하면 온 동네가 떠나려가라 행패란 행패는 다 부리고 잠든 애들 깨워서 두들겨 패질 않나. 세월이 가면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웬걸요. 점점 더해요. 아참, 그 보다도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도 남의 밭에 물주는 것만 좋아 하셨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집아 식구는 토옹 안 돌보셨다면서요. 술만 마셨다 하면 아버님 욕을 그렇게 해대더니만 어쩐지… 그 밥에 그 나물이라 별수 없네요. 아무튼 전 더 이상 이 집안 내력에 대해선 알고 싶지도 않고요 그리고 전 어머니완 달라요 어머니는 참고 사셨는지 몰라도 전 아니에요 그러니 어머니가 애들 맡아 주세요 전 이혼 소송을 해서라도 꼭 이혼하고 말겠어요?"
"자식까지 떼 놓고 정녕 이혼하고 말겠다는 것이냐?"
철산댁은 다소 노기띤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나 여전히 힘없고 나약한 목소리였다.
"전 어머니완 다르니까요."
열 살 여섯 살 짜리 두 아들을 떼어놓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겠다니 철산댁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
해가 안 갔다. 아무리 신세대가 어떻고 배운 여자가 어떻고 하는 말은 들어 봤지만 이건 엄연한 천륜 아닌가. 남편이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생떼 같은 자식 떼놓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겠다니…. 그보다 더한 수모와 멸시를 받고도 자식 때문에 참고 살아온 사람도 있는데,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잘못으로 치자면야 며느리에게도 있었다.
시집오던 날부터 시집식구 알기를 뭣같이 알고 노골적인 멸시와 천대를 일삼더니 며느리 노릇한 적이 어디 한번이나 있었는가. 돈푼깨나 번답시고 제 남편 알기를 또 얼마나 우습게 알았던가. 그래도 아들 손주 낳아 주었다고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이때껏 참고 또 참아 주었는데, 이젠 칠순을 바라보는 시어미에게 제가 내질러 놓는 자식을 맡기며 이혼이란다.
철산댁은 하도 기가 막혀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며느리에게 당한 박대와 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갑자기 지난날 남편으로부터 받은 그 모진 수모와 고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철산댁이 설움에 겨워 마구 울음소리를 내자 동네 사람들이 몰려왔다.
"종철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남 왜 그리 슬피 울고 그런데."
사람들은 두런거리며 서로에게 눈짓을 했다. 당황한 며느리는 급히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동네사람들에게 빨리 비키라는 듯 경적을 빵빵 울려댔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종철이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시골로 전학을 시켜 놓았으니 당분간 데리고 있어 달라며 생활비는 꼬박꼬박 부쳐 주겠다고 했다. 그런 아들을 두고 철산댁은 또다시 죽은 남편을 떠올렸다.
죽은 남편의 모습이 아들을 통해 리바이벌 되고 있었다. 살아생전 남편과 종철은 불구 대천지 원수처럼 지내더니 그 모습을 아들이 똑같이 재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종철은 동네 꼬마들에게 과자를 사서 안겨주더니 호기롭게 자동차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왠지 모르지만 종철은 잔뜩 신나있었다. 자유와 해방감과 들뜬 의지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철산댁이 이혼 경위와 사정을 아무리 따져 물어도 종철의 입은 벙긋도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애들이나 잘 맡아주쇼. 혹시라도 애 엄마가 와서 애들을 찾거든 이 핸드폰
번호로 연락하시고 내 그냥 호락호락 넘어가진 않을 테니. 지가 싫어서 제 발로 걸어 나간 년이우, 제 자식 찾겠다거든 그냥은 못내 주지 아암."
그 말끝의 여운을 철산댁은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동네 창피하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아들 자랑하며 세상 부러울 게 없다고 큰소리 탕탕 치고 다녔는데 한꺼번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딱한 노릇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등뒤에다 대고 수근거리며 손가락질할 생각을 하니 오금이 저려왔다. 거짓말 할 수도 없고 속아 줄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있는 사정 없는 사정 다 까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경민이 동민이도 그랬다. 어찌된 아이들이 제 부모가 보이지 않는데도 통 찾을 생각을 안 했다. 그러면서도 입맛은 어찌나 까다로운지 찌개종류나 김치는 아예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물론 동네아이들과도 곧잘 싸움을 일으켜 말썽을 빚기도 했다. 저녁 시간이면 TV앞에 모여 앉아 채널을 놓고 형제간에 다툼을 벌였다.
저녁 때 종관이가 조카들을 보기 위해 들렀다. 자식이 없는 종관이는 조카들을 보면 사족을 못쓰고 좋아했다. 무등 태우기 말타기 등을 하면서 온갖 비위를 다 맞추어 주었다. 읍내에 데리고 나가 좋아하는 피자. 햄버거, 치킨 등을 사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경민이와 동민이는 삼촌을 제일 좋아했다. 종철이는 서울에 올라간 몇 달 동안 한번도 내려오지 않았다. 처음에 약속했던 생활비는 물론 자식에 대한 안부 전화도 없었다.
자기 피붙이에게 몰인정하고 야박한 것이 죽은 제 애비와 꼭 같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너희들 엄마 아빠 보고싶지 않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엄마만 조금 보고 싶다고 했다.
늘 아들 자랑을 앞세우고 다니던 철산댁의 입에서 걱정과 한탄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늘그막에 손주를 둘이나 떠안았으니 모진 목숨 끊을 수도 없고, 늙은 삭신 움직여 먹고살자니 힘에 부치고, 보다 못한 종관이 부부가 저희가 애들을 떠맡겠다고 나섰다.
읍내에 있는 학교로 전학시켜 저희가 공부시키면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철산댁에게도 함께 살자고 권유했다. 그러면서 말끝에 장남 며느리 운운하는 것이었다. 자식 취급도 안 하고 무관심 속에 내깔려 두었던 그들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자 철산댁은 속으로 눈물이 흘렀다.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건 경민이 동민이었다. 아이들은 종관이 어깨 위에 올라가 무등을 타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 때였다. 밖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눈가에 긴장의 빛이 스쳤다.
연락도 없이 종철이가 내려올 리가 없고, 이 밤중에 누가 왔을까. 모두가 궁금증 어린 표정으로 마당으로 나갔다. 뜻밖에도 종철이 처가 와 있었다. 전보다 야위긴 했지만 더 많이 성숙하고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양손에 쥔 선물 꾸러미를 내려놓으며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 올렸다. 잠시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가 싶더니 냉정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애들은 제가 데리고 가겠어요 내 애니까요."
"뭐라구? 이제 와서 애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아 안 된다 쟤들은 우리 한씨 종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애들은 못 데려간다."
철산댁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안됩니다 제수씨 애들은 저희들이 맡을 겁니다. 제수씨는 제수씨 대로 가십시오."
어눌한 말솜씨로 종관이가 나섰다. 조카들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가 스며있는 말투였다. 종관이 처가 얼른 나서 아이들의 팔목을 잡았다. 종철이 처가 아이들 팔목을 잡고있는 동관이 처의 팔목을 매섭게 뿌리쳤다. 종철이 처는 종관이 처에게 한번도 형님이란 호칭을 붙인 적이 없었다. 못 배운 촌 무지렁이라고 아예 상종도 안 하려 들었다.
"다 애들을 위해서예요. 이런 촌구석에서 애들을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제는 알아서 키우라고 떠맡기듯 하더니 이제 와서는 오히려 큰 소리까지 친다.
"처음부터 애들 맡으라고 한 건 너가 아니냐?"
철산댁의 말에 종철이 처는 더욱 매섭게 눈을 치켜 뜨며 선포하듯 말했다.
"사람 생각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이구 안되겠다 종관아 어서 애비한테 전화해라 핸드폰으로다 빨리 어서."
"그럴 것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오고 있는 중일 테니까요."
그들이 아이들 문제를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 종철이가 나타났다. 새로 산 중형차에다 전보다 형색이 더 말쑥해졌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에게 인사말도 없이 제 자식들에게 눈길 한번 주고 나더니 제 처에게 다가갔다.
"그래 이제 와서 자식을 도로 찾아가시겠다구 그게 니 맘대로 될 것 같애 될 것 같냐구"
"그럼 당신 같은 인간이 이 애들을 잘 키울 것 같애?"
"이거 왜 이러시나 자식 필요 없으니 떠맡으라고 할 땐 언제고 내가 얘들을 순순히 내 놓을 것 같애.
"당신이 언제 애들은 귀여워 한 적 있었어 귀찮아하는 혹 떼 주러 왔으면 고맙다고 할 일이지 웬 행패야 오호라 이제 알겠군 애들 데리고 가는 대신 대가로 뭘 내놓겠냔 그 말씀 같은데, 대가는 오히려 당신이 나한테 해야 하는 것 아냐?"
"야! 너도 알지 법적으로 애들 양육권은 나한테 되어 있다는 걸, 너 보아하니 놈팽이가 생긴 모양인데 니 뜻대로 그렇게는 안 될 걸."
"그래 좋아 협상하자구 얼마면 돼? 당신 같은 사람에게 애들 맡기느니 차라리 죽더라도 내가 데리고 있는 게 훨씬 나아 알겠어 얼마면 되겠어."
그러자 종철이 표정이 묘하게 이그러졌다. 막판에 자식을 두고 협상을 하게 되다니,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결단을 내린 듯 말했다.
"그래 나도 좋다 이거야 자식 부모 간은 천륜이라는데 억지로 떼 놓을 생각은 없고, 너 전에 우리가 살던 집, 그 집 내 명의로 돌려라."
"뭐라구?"
종철이 처는 너무 기가 막힌지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집은 친정 아버지가 부도 직전 큰딸 앞으로 등기해 준 마지막 친정 재산이었다. 자신들은 변두리 낚은 주택가로 옮겨가면서, 빚장이들의 추적을 피해 간신히 빼돌린 마지막 재산이었던 것이다. 그 아파트는 친정 부모가 말년에 살기 위해 끝까지 아끼고 숨겨두었던 마지막 기대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파트(역삼동에 있는 52평 아파트)를 통째로 먹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자식을 매개물로 자식과 재산을 맞바꾸자는 일종의 협상카드였다. 시가로만 따져도 3-4억은 족히 될 재산을 자식과 바꾸겠다는 그 희한한 의지 앞에 기가 세고 표독한 그녀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놀란 건 종철
이 처뿐만이 아니었다.
종관이 부부와 철산댁도 똑 같이 놀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마 종관이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의 저 모습과 꼭 같았으리라.
"좋아, 당신 같은 인간을 아버지로 알고 살아가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그 집을 포기하겠어. 명의는 당신 이름으로 해 놓을 테니, 애들은 나한테 줘 내가 데리고 가겠어."
"안 되지 아직은 내 두 눈으로 똑바로 확인한 다음 데려가도 늦지 않을 테니까."
"이런 치사한 자식."
그녀가 종철의 빰을 후려치는 순간 종철이 잽싸게 그 손을 낚아채며 말했다.
"그러는 너는 나와 뭐가 다른데?"
종철이 처는 차에 오르며 독기 오른 눈으로 말했다.
"저런 뻔뻔한 놈."
일주일 후 종철이 처는 등기소에 가 정식으로 명의 이전을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무엇보다 서러워 한 건 종관이 부부였다. 철산댁은 자리보존하고 누워 두문 불출했다.
자신과는 말 한마디 없이 결정한 처사를 두고두고 가슴앓이를 했다. 잘난 아들 똑똑한 며느리 귀여운
손주 자랑에 과거의 어두웠던 압박과 설움에서 잠시나마 벗어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한 암울한 기억이 자신도 모르게 삶속에 재현되는 것이었다. 기억속의 상처는 DNA를 통해 유전되고 인격과 삶을 통해 되풀이된다. 즉성장과정에서의 기억은 학습되고 대물림되는 것이다.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향해 계속 악 감정을 품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행동이 닮아 가는 것이다.
자신을 학대하고 미워한 사람을 닮는다는 건 아이러니다. 그것을 아는 순간 핏줄에 대한 미움과 반감은 극대화된다. 오죽하면 부전자전 모전여전이란 말이 생겨났겠는가. 종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늘 두 개의 자아(自我)가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선과 악이 공존하듯 그의 자유의지를 테스트했다.
그는 매사에 현실 감각이 뛰어났지만 늘 과거의 악령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있어 늘 방관자였다. 자식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친구들과 싸워 머리가 깨져 누워 있어도 일체 반응이 없었다. 혹한에 감기 몸살을 앓아도 추운 겨울날 양말도 신지 않고 도시락도 없이 학교에 가도 걱정 한 마디 없었다.
그거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술을 마시거나 기분이 조금이라도 상한 날이면 그는 잠자는 종철이를 깨워 무지막지한 주먹을 휘둘렀다.
"이눔 이 빌어먹을 놈아 어디 닮을 게 없어 이 애비를 닮는 겨, 차라리 태어나지 말고 죽어서 나오지 그랬냐 이놈 눈 치켜 뜬 것 좀 보게 나랑 똑 같지 않나."
그것은 핏줄에 대한 분노였다. 자신과 핏줄에 대한 무한한 분노가 학대의 감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끔찍한 조상의 저주였다. 그의 뇌리 속에는 6,25 사변 중에 자신을 미군에게 양자로 주려했던 아버지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도사리고 있었다. 언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그리도 애지중지 하더니 상황이 급박해지자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군에게 아들을 돈 받고 넘기려 한 것이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밀가루와 우유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달러 뭉치를 받고서, 그때 그를 양자로 삼으려 했던 미군의 복잡한 심사를 다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양식거리 운운하며 아들을 처음 보는 미군에게 넘기려 했던 아버지의 처사를 그는 두고두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원한과 쓴뿌리가 되어 핏줄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때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그 미군의 손에 의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 기억의 쓴 뿌리가 그에게서 종철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종철이는 어릴 때부터 거울을 잘 보지 않았다. 거울만 보면 거기에는 자신이 극도로 싫어하는 인물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이목구비는 말 할 것도 없이 표정과 말투. 밥 먹는 습관 돌아누운 자세 심지어는 걸음걸이까지 그는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동시에 자신을 미워했다.
자신을 미워하다 보니 남도 사랑할 줄 몰랐다. 모든 것을 이익과 손해의 기준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즉흥적이고도 단세포적인 생각에 자신을 맡겼다. 우쭐대길 좋아했고 남이 싫은 소리를 하면 참지를 못하고 대항해 싸웠다. 자연히 씀씀이가 커졌다. 학대당하고 억눌렸던 감정이 반작용해 경쟁에서 밀리거나 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남보다 한발 더 앞서 나가야 하고 맞기 전에 미리 때려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면서 그는 끊임없이 고뇌하고 있었다. 핏줄을 거부하려는 의지와 자신도 모르게 반복되는 습관적인 행동으로 그는 자기 혐오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식들을 바라볼 때도 기쁘지만은 않았다. 자신과 반대되는 환경에서 자란 아내를 택해 결혼했지만, 그런 아내 역시 남편을 이해 못 하긴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아내는 똑똑하긴 해도 매우 이기적이고 냉정한 여자였다. 어머니처럼 참아주거나 순종적이지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고 외면하는 아내가 미웠다. 남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는 아내가 자식만을 감싸며 정신병자 취급할 때는 어린 날 아버지가 자기에게 했던 것처럼 처자식을 모두 물 속에 거꾸로 빠뜨리고 싶었다. 남편과 시가(媤家)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는 저주에 가까웠다.
아이들 역시 아내를 닮아 점점 그를 멀리 했다. 아내보다는 그를 더 많이 닮았는지도 모른다. 어린 날 그가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아이들도 그를 대하면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가정에서 소외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그는 자꾸 밖으로만 돌았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주는 것을 좋아했다. 집안에는 돈 한푼 들여놓지 않았다. 참다못한 아내가 월급 통장을 제가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내는 결혼 이후 십 년을 같이 살면서 한번도 아침상을 준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맞벌이를 하느라고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는 저녁도 준비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처부모는 아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다시피 했다. 사업이 부도났기 때문이었다. 밥도 안 하는 아내, 그녀는 완전한 타인이었다. 그는 나중에야 알았다.
아내는 밥상머리에서조차 남편의 얼굴을 마주치기 싫어했던 것이다.
부부는 각방을 썼다. 남들보다 못한 처지가 되어 결국에는 이혼 도장을 찍었다.
종철이는 그 모든 탓을 아내에게 돌렸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자신에 대한 미움과 분노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원인을 따져보자면 자신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기란 죽기보다 싫었다. 그의 인간성은 점점 황폐해져 갔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야수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남들에게 친절하고 포용력 있는 태도로 대했다.
저쪽에서 악수(惡手)를 먼저 내밀지 않는 한 고분고분하고 잘 참아주는 체 했다. 그러다 돌아서서 내면의 자아(自我)와 맞부딪쳤을 때 그는 생경함 이질감을 느꼈다. 두 개의 자아가 서로 대립하면서 철저한 감정의 이중구조가 형성되고 있었다. 때때로 그의 감정은 마구 엇갈리면서 혼미를 거듭했다. 빠른 두뇌 회전으로 감정의 위기는 잘 넘겼지만 허무와 번민은 날로 한계를 치달았다. 그의 기억은 과거 고향에서의 일을 자주 떠올렸다.
동네 꼬마와 피 터지게 싸우고 돌아오던 날, 하필이면 재수 없게도 아버지가 집에 와 있었다. 아버지를 대하는 순간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이크 잘못 걸리면 오늘 밤 맞아죽겠군 생각하는데 때린 아이의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나타났다. 아이와 함께.
아이의 상처를 보여주며 치료비를 물어내라고 하자 아버지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주었다. 따지거나 싫은 소리 한마디 없었다. 아이엄마가 돌아가고 나자 억세 손아귀가 종철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숨이 막혀 캑캑거리는 데도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동네 개울물로 갔다.
비 온 다음날이라 물이 꽤 많이 불어 있었다. 어른의 허리 부분까지 물이 차올라 물결도 빠르고 수심도 깊었다. 아이를 거꾸로 든 악귀 같은 손이 물 속에 아이를 처박았다. 흙탕물이 입과 콧속으로 마구 빨려들어 갔다. 질식할 것 같았다.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었다. 숨이 막혀 기절할 때였다. 그 억센 손을 잡아끄는 또 다른 손길이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러다가 아이를 죽이겠습니다"
언젠가 종숙이와 함께 가서 사탕을 타먹었던 교회의 전도사였다. 자신 보다 열 다섯 살이나 어린 전도사의 항변에 아버지는 움찔했다. 이상했다. 전도사가 아이를 안고 물을 토하게 했다. 토하면서 그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전도사의 항변이 이어졌다. 살인 행위 자식사랑 어쩌구하는 말이 들렸던 것 같다. 전도사는 축 늘어진 그를 안고 교회로 데려갔다.
본당 앞 의자 위에 그를 누이고 밤새도록 찬양을 했다.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 떠오르는 건 피에 대한 구절이었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한 피로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깬 그는 피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라니… 연이어 피에 대한 찬양이 이어졌다.
흉악한 죄인 괴수라도 예수는 능히 구원하네, 온몸을 피에 담글 때에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에 피를 볼 때 내가 너를 넘어가리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전도사가 그대로 누워 있으라고 했다. 전도사가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로서 종철이의 가족 위에 내린 모두 저주를 끊어주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말미암아 조상들의 죄로 인한 용서를 청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기시고 피 흘리심으로 인생의 모든 죄와 저주를 속량하셨으니, 죄사함로 인한 자유와 기쁨을 이 가정에 허락해 주옵소서. 가계에 흐르는 쓴뿌리와 저주를 차단시켜 주옵소서, 어둠 속을 걸어 갈 때 이 아들의 손을 잡아 주시고 주님의 피 묻은 손을 결코 놓지 않는 아들이 되게 하옵소서, 항상 주님 편에 서서 일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사랑의 손길로 감싸주시고 아들의 상처난 마음을 만져 주옵소서."
이상한 일이었다. 이십 년도 훨씬 넘었는 데도 그 기도 내용이 또렷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악머구리 끓듯 그의 귓가에 자주 들려오던 저주의 함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담대함과 소망이 단단히 결속된 의지와 함께 그의 내부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혼 소식을 듣고 종숙이가 찾아왔다. 궁벽진 촌구석에 엎드려 노방전도와 기도로 핼쓱해진 종숙은 그의 이혼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다. 그간에 왕래가 없었던 터라 둘은 몹시 서먹서먹했다. 그러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을 그들은 나름대로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발설하기조차 싫은 옛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오랜만에 오누이 정을 확인했다.
"너는 지겹지도 않냐 맨날 촌구석에 엎드려서 노방전도나 다니고. 밥이나 제대로 먹고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난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 한 영혼 한 영혼이 구원받고 새사람으로 거듭날 때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껴."
"너도 차암 대단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 그 모진 매를 견디면서 교회를 나가더니만, 그때 우리 어릴 때 말이다. 여름 성경학교 갔다가 전도사한테서 사탕을 한 응큼 받아 가지고 돌아오던 날, 너 그날 죽도록 얻어맞은 거 기억나니?"
"왜 안 나겠어, 난 아버지의 매도 무서웠지만 교회 가는 걸 중단하는 게 더 무서웠어 그곳에만 가면 전도사님이 날 꼭 붙잡고 기도해 주던 생각이 나..."
"너한테도 그랬니. 나도 언젠가 물 속에 처박혀 죽을 뻔하던 날 그날도 그 전도사님이 날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분이 내 생명의 은인같애, 나 아직도 그 기도 내용이 생각난다. 그리스도의 피 어쩌구 하는."
"오빠 오빠도 이제 새언니를 용서하고 받아들여 오빠에게만 상처가 있는 건 아냐, 새 언니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와 분노가 있었을 거야. 상처는 우리 대에서 끝나야 해 경민이 동민이에게까지 이어져선 안돼."
"그 얘긴 꺼내지도 마라. 지 스스로 걸어나간 년이야. 그년이랑 십 년 넘게 살면서 내가 밥 얻어 먹은 적이 몇 번이나 되는 줄 아니, 제 자식밖에 모르는 년이야 제 서방 알기를 발가락에 때만큼도 안 여기는 년. 그런 년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라구, 제년이 먼저 와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도 시원찮은데 내가 먼저 어림없지 어림없어."
"오빠, 오빠는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어. 오빠는 아버지를 닮은 자신이 싫었던 거야 그러면서도 그 마음 속에는 아버지한테 사랑 받고 싶은 마음도 숨어 있었어, 그래서 더 많이 미웠던 거야, 나도 가끔씩 나에게서 아버지를 느껴 내 자신이 싫어질 때 말이야, 그럴 때마다 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 그 앞에 엎드려 내 상처 난 마음 어두운 기억들. 근심 걱정을 다 토하고 나면 마음이 너무나 자유롭고 평안해져. 그리고 과거의 상처들이 나를 공격할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예수님께 물어봐. 주님 그때 당신은 어디에 계셨었나요 왜 나를 도와 주시지 않았나요, 그러면 과거의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셔 난 그때에도 너와 함께 있었고 지금도 미래에도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과거의 기억 속에 얽매어 두고 우리를 괴롭히기 원해. 그 기억의 잔재로부터 미래로 나아가려면 예수님의 손을 붙잡아야 해."
"너 나한테 설교 할 생각 마라. 난 아버지 생각만 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고 소화가 안 된다, 그 인간 죽어서도 좋은 데 못 갔을 것이다. 제 처자식을 그렇게 미워하더니만."
"오빠, 우리 아버지를 용서해 드리자.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자 응, 오빠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상처와 고통을 다 예수님께 드려. 오빠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달라고 기도해. 예수님이 도와주실 거야. 그리고 오빠가 먼저 새 언니를 용서하고 받아들여 오빠가 먼저 사랑을 표시해 봐 새언니도 분명 달라질 거야. 남들은 자식도 버리고 도망간다는데 새언니는 재산을 포기하면서까지 경민이 동민이를 데리고 갔잖아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오빠도 잘한 것 없잖아."
종철은 돌아앉았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뇌리 속에는 아린 날 자신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전도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셨으니, 성경구절도 떠올랐다.
"오빠, 하나님은 육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사랑하신 우리의 진짜 아버지야 오빠도 경민이 동민이 사랑하지. 이제 상처는 우리 대에서 끝나야 돼 결코 동민이에게까지 이어지게 할 순 없어."
종철의 내부에 극심한 회오리가 몰아쳤다. 두 개의 상반된 자아(自我)가 결투를 벌이던 날 그는 문득 내부에서 들리는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 진짜 아버지 참 아버지란다."
돌아서는 데 또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 네 아버지란다."
사랑의 음성이 들려오자 결속된 과거의 끈이 점점 느슨해졌다. 그는 눈에 안 보이는 절대자를 향해 자꾸만 물었다. 하나님 나는 누구입니까, 당신은 당신은 누구시죠. 왜 나를 따라다니며 말씀하기는 겁니까.
그는 그 음성을 피해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길거리에서 전도대가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지나 나 알았네 주 밖에 없네.
그 사랑 내 안에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하네 고통받는 자녀 붙드시니 주밖에 없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나 알았네 주밖에 없네.'
찬양을 듣는 종철의 가슴속에 사랑과 평화의 음성이 강물처럼 넘실거리며 들려왔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