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선물
김순길*
유난히 추운 날씨이다. 사람들의 가슴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들을 비집고 뜻하지 않은 소포가 왔다. 미국에 살고 있는 막내딸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낸 것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선물 앞에서 손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은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급한 마음을 달래며 뜯어보니 예쁜 포장지에 베이지색 목도리가 들어 있었다.
유명 메이커 상표가 붙어 있어 꽤 비쌀 것 같았다. 엄마 입장에서는 좋은 선물을 받은 기쁨 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을지 염려부터 앞선다. 나는 바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내준 목도리 선물은 고맙게 잘 받았다. 너의 형편에 한 푼이 아쉬울 터인데 과용한 것 같아 염려된다.”
“뭐 그것쯤이야. 염려마시고 따뜻하게 하고 다니세요. 다음에 형편이 나아지면 더 좋은 것으로 사드릴게요.”
말만 들어도 천 불, 만 불짜리 선물을 받은 것처럼 겨울 내내 얼어붙은 몸이 사르르 녹는 듯하다.
며칠 전 후배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옷가게에 들렀는데 베이지색 목도리가 걸려 있었다. 후배는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코트와 색상이 잘 어울리니 사라고 간곡히 권했다. 나는 나중에 사겠다고 미루었는데 어쩌면 신기하게도 오늘 그와 똑같은 색깔과 모양의 목도리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심전심인가 보다. 수 백 리 떨어진 머나먼 이국에서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 않아도 무언으로 통하나보다.
막내딸은 한때 미국에서 유명한 디자이너로 잘 나갔었지만, 현재는 뜻하지 않은 경기불황을 맞아 도산 위기 등 큰 어려움 속에 있다.
주변의 가게들도 문을 닫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단다. 살기가 얼마나 어렵냐고 물었더니 저보다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 정도는 감사하다고 한다.
‘귀한 자식에게 고생은 사서 시키라’는 속담이 있듯이 고난은 참 귀중한 보배인 것 같다. 고난을 통하여 겸손에 처할 줄도 알고, 시련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고, 연단을 통하여 다른 사람으로 성숙한다. 곤경에서 감사할 줄 알고 아래를 처다 볼 줄 아는 겸손을 배우고, 이웃을 돌아보는 밝은 눈을 갖게 된다.
며칠 전에는 전화로 엄마는 어려운적 없었느냐는 질문을 하기에 삶이 어려웠을 때를 이야기 해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후에 알고 보니 아기의 우유 값이 없어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차마 엄마에게 우유 값이 없다는 이야기를 솔직히 못하고 속으로 꿀컥 삼키었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려움 없이 자란 막내딸이 다급한 형편에도 말 못하는 모습으로 변한 것이 성숙된 모습일까?
여자 팔자 두레박 팔자라더니 가장 많이 공부한 막내딸이 제일 못살고 있으니 늘 안쓰럽고 불쌍하다.
목도리는 남자들의 넥타이에 비유될 수 있을까?
와이셔츠와 양복 색상에 맞추어 넥타이를 맨다면 여자들은 옷의 색상에 맞추어 목도리를 두른다. 요사이는 목도리 매는 모양도 다양하여 개성 있게 변화를 주며 멋을 낸다.
내가 쓰고 있는 장롱 안에는 많은 목도리가 있다. 종류도 다양하여 코트 위에 길게 늘어뜨리는 일자형, 양복이나 원피스 정장 위에 두르는 사각형, 등산이나 운동할 때 개 목살에 매듯 목에 두르는 손수건 같은 작은 목도리도 있다. 그 중에 딸이 보내준 모직 목도리는 제 철을 기다리며 걸려있지만 거기에 담긴 효심이 내 마음에 살아 있어 보고픈 마음을 달래준다.
이번에는 내가 딸에게 선물을 보내줄 차례이다. 고향이 그립고 부모형제의 정에 갈증 난 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가 되고, 영생의 양식이 될 선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 대전 출생, 전 중등학교 교장, kimsk3527@hanmail.net
실눈 고기
김 윤 희*
새집으로 이사 하고
가게를 개업할 때
고사상에 오르는 손님
웃음 띤 얼굴
실눈 뜨고 입 벌리고 있음은
잡귀를 잡기 위함일까
돈 봉투를 받기 위함일까
고사상의 꽃 되어
융숭히 대접받는 까닭은
구제역 여파로
귀하신 몸 되었나니
시산제, 고사상에
귀물은 사라지고
편육에 족발이 오르락내리락
잡귀신은 누가 잡고
언제 다시 귀한 입에 지폐 한 닢
넣을거나
늙어서 좋은 일
어느 자리에서
가장 머물고 싶은 나이를 질문하니
뜻밖에 50대가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했다지
젊은 시절엔 돈도 없지
미래도 불확실하지
60이 넘으면 여기저기 아프지 아마도 외로울 것 같아서란다
50대는 경제적으로 안정 되어 있고
어느 정도 앞가림하는 자녀로부터 벗어 날 수 있으며
몸도 그런대로 쓸 만해서란다
내 나이 50대 중반
이제 경력 관리도 필요 없고
생명보험을 들 이유도 없다
따뜻한 가슴 하나면
마음 평온한 나이
작은 소망 하나 있다면
지혜로운 노인이 되는 것이다
지혜의 초원에는 난향이 그윽하지만
흔들리는 욕망은 겨울나무 숲일테니
*전북 전주 출생, 한밭대 문학창작과정 수료, kimyh330@naver.com
아름다운 유학
뢰우홍(雷雨虹)*
2008년 9월 5일은 제가 한국에서 유학을 시작한 날입니다. 그동안 유학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내용들을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한 날에 공교롭게도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30명의 우리 일행은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대학에서 마중 나오신 오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반 밖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열정적으로 해 주시는 가운데 버스는 어느 덧 고속도로를 벗어나 대전의 시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부드러운 주황색의 불빛, 쭉 뻗은 아스팔트, 높고 큰 번창한 나무…… 타국에 대한 생경함과 함께 작은 흥분이 밀려옴을 느꼈습니다. 하루 빨리 한국을 이해하고 이곳에 적응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멍한 상태에서 대전에 있는 외국인 기숙사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낯선 공간에서 세면을 하고 버스를 이용하여 학교에 갔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탑승객이 많지 않아 편하고 즐겁게 갈 수 있었습니다. 출근길이라 차가 약간은 밀리는 듯 했지만 깨끗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행인들 모두가 한국인일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황색인, 갈색인, 백인 등의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구의 모든 인종이 한 거리에서 다닌다는 것 자체가 새로워보였습니다. 황색인과 흑인 커플도 있고 황색아버지와 백색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행복해 보였습니다. 나도 자연스럽게 삼색인종에 합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한국에서의 언어공부는 학습여건이 좋아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오후 3시 30분이면 한국어 수업이 끝납니다. 그 이후의 시간에 저는 대부분 도서관에서 생활합니다. 열람실이나 서고에서 각종 서적들을 읽을 수 있고 컴퓨터를 이용해 전자책이나 논문 등을 열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 도서관은 취업준비 및 각종 자격시험을 취득하기 위해 드나드는 학생들로 항상 북적입니다. 학생들은 많지만 나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하고 조용하여 마음에 드는 공간입니다.
일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은 버스를 타고 도시를 감상할 때입니다. 기숙사까지 30분 남짓 걸리는 통학 시간이지만 다양한 인물과 사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화된 현대식 건물, 일본의 혼다, 한국의 현대, 기아, 간혹 외국의 명차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운이 좋을 때면 멋진 스포츠카도 볼 수 있습니다. 경주용차 특유의 모터소리가 들려올 때 흥분감도 느끼게 됩니다. 버스창문으로 올려다보면 귀엽고 검푸른 나뭇잎이 아주 울창하게 다가옵니다. 어제 보았던 짓푸른 나무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반겨 줍니다. 나무의 미소가 만들어 내는 공기는 녹색의 향료를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좀 더 높게 보면 깨끗한 하늘이 다가 옵니다. 흰 구름이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그 모습은 요염하고 다채롭습니다. 어떤 언어로도 내가 느끼고 있는 이곳의 자연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곳은 손을 뻗으면 하늘에 닿을 수 있는 지역입니다.
어느새 저는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어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생활하는 데에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배운 지식들을 중국에 가서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느끼는 지금의 감정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훗날 고향에 가서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행복한 유학생활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