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장씨제학공파(丹山張氏) ●인동(仁同)을 관향(貫鄕)으로 쓰는 인동장씨(仁同張氏)
①상장군 장금용(上將軍 張金用)계
②직제학 장계(直提學 張桂)계
③문숙공 장순손(文肅公 張順孫)계
④안동장씨 장수명(安東張氏 張壽命)계
⑤흥성장씨 장연좌(興城張氏 張延佐)계
⑥안동장씨 장용서(安東張氏 張龍瑞)계 6계통으로 시조(始祖)를 각각 다르게 모시고 있다.
혹자는 고려의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토벌한 안동장씨(安東張氏)의 시조인 장정필(張貞弼)을 인동장씨의 도시조(都始祖)라
하지만 고증할 문헌이 없으며 상장군계나 직제학계 종중(宗中)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①상장군(上將軍) 장금용(張金用)계 인동장씨(仁同張氏)
시조는 고려의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三重大匡 神虎衛 上將軍)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이며 그의 아들인 선(善)이 1072년(고려 문종 26년) 금오위 상장군(金吾衛 上將軍)에 올라 후손들이 옥산(玉山)에 정착하여 본관(本貫)을 옥산으로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에 옥산이 인동(仁同)으로 개칭됨에 따라 인동을 관향(貫鄕)으로 삼았으나 일부는 옥산을 본관으로 고집하며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 옥산장씨는 상장군계 인동장씨와 같은 집안이다.
•종파(宗派) •남산파(南山派) •진가파(眞佳派) •진평파(眞坪派) •황상파(凰顙派)
•함평파(咸平派) •흥해파(興海派) •화순파(和順派) •청안파(淸安派) •영광파(靈光派)
•청주파(淸州派) •가평파(加平派) •경파(京派) •고흥파(高興派) •금구파(金溝派)
•의흥파(義興派) •영덕파(盈德派) •양월파(良月派) •안성파(安城派) •양양파(襄陽派)
•초계파(草溪派) •양주파(楊州派) •호명파(虎鳴派) •울진파(蔚珍派) •무안파(務安派)
②직제학(直提學) 장계(張桂)계 인동장씨(仁同張氏)
충렬왕 31년(1305년) 국자진사(國子進士)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에 등과하여 보문각(寶文閣) 직제학(直提學)을 지내고 옥산공(玉山公)에 봉해졌던 장계(張桂)를 시조로 삼아 인동현(仁同縣) 발영전(拔英田)에 전거(奠居)하였다. 조선초(朝鮮初)에 5개 파로 분파(分派)되어 임지(任地)에 따라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주(榮州), 예천(醴泉), 문경(聞慶)과 충청북도(忠淸北道) 단양 지역(丹陽地域)으로 옮겨 살았다.
•송암공파(松菴公派) •판관공파(判官公派) •안양공파(安襄公派)
•주부공파(主簿公派) •동정공파(同正公派)
③문충공(文忠公) 장계임(張繼任)계 인동장씨(仁同張氏)+문숙공(文肅公) 장순손(張順孫)계
고려 충렬왕(忠烈王)때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역임하고 후에 삼중대광도첨의(三重大匡都僉議), 정승(政丞), 춘추관사(春秋舘事)의 증직이 내린 문충공(文忠公) 장계임(張繼任)을 시조로 하는데 이는 문충공의 8세손 문숙공(文肅公) 장순손(張順孫)이 중종 17년(1522) 병조판서(兵曹判書)때 그 아버지 증좌찬성(贈左贊成) 장중지(張重智)와 어머니 정경부인(貞敬夫人) 개성고씨의 묘비문에 첫 선조로 기록한 것에서 유래한다.
•선파(僐派) 또는 생원파(生員派)
•국로파(國老派)
•종손파(終孫派) 또는 도정승지공파(都政丞旨公派)
•경량파(景良派) 또는 증좌승지공파(贈左承旨公派)
•경안파(景安派) 또는 증이조판서공파(贈吏曹判書公派)
•경복파(景福派) 또는 문장영공파 •계지파(季智派)
•사신파(士新派) 또는 부사직공파(副司直公派)
•만선파(萬善派) 또는 통정대부공파(通政大夫公派)
④안동장씨(安東張氏) 장수명(張壽命)계 인동장씨(仁同張氏)
안동장씨(安東張氏)계의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장태사(張太師)의 장손(長孫) 장금선(張錦善)의 후손(後孫) 장수명(張壽命)계로 본관(本貫)을 안동(安東)과 인동(仁同)으로 쓰는데 함경도(咸鏡道)의 함흥(咸興)과 영흥(永興), 북청 지방(北靑地方)에 사는 장씨(張氏)는 옥산장씨(玉山張氏)로 족보(族譜)를 해오다가 뒤에 인동(仁同)으로 개관(改貫)하였다.
⑤흥성장씨(興城張氏) 장연좌(張延佐)계 인동장씨(仁同張氏)
흥성장씨(興城張氏) 시조(始祖)인 시랑(侍郞) 장유(張儒)의 둘째아들 호부상서(戶部尙書) 장연좌(張延佐) 계의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장연좌(張延佐)가 옥산군(玉山君)에 봉(封)해졌다하여 옥산장씨(玉山張氏)라 하다가 관적(貫籍)을 인동(仁同)으로 하였다고 한다. 흥성장씨(興城張氏)와 족보(族譜)를 같이하고 있다.
⑥예빈경(禮賓卿) 장용서(張龍瑞)계 인동장씨(仁同張氏)
고려말(高麗末) 예빈경(禮賓卿) 장용서(張龍瑞=혹은 用瑞)계(系)의 인동장씨(仁同張氏)는 과거(過去) 장연(張淵)이라고도 하고 주로 북한(北韓)의 평안도(平安道)에 많이 살았는데 8.15 해방후(解放後) 월남(越南)하였으며 본관을 옥산(玉山)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인동(仁同)으로 많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