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행선지 |
기차 |
시간 |
내용 |
식사 |
숙소 |
예산 | ||
1st |
논산 용산 |
새 |
12:51 15:16 |
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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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네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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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
용산 광주 |
무 |
06:05 1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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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담양 |
버스 |
10분 간격 |
죽녹원 (광주역 뒤에서 311번) 메타세콰이어길 |
점심 : 덕인관 떡갈비 (061-381-2194) |
명희네 집 |
버스 1,800 (×2) 입장료 1,000 | ||
광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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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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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
송정리 순천 |
무 |
10:07 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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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여수 |
무 |
13:21 14:02 |
오동도(도보로 가능), 진남관 |
점심 : 구백식당(서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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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음악분수, 돌산공원에서 돌산대교 야경 |
저녁 : 두꺼비/황소식당(게장백반) |
돌산해수찜질방 |
찜질방 7,000 | |||
4th |
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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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기상 |
향일암 일출 (111번 버스 탑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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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순천 |
무 |
06:50 07:29 |
07:00 07:43 |
순천만 (순천역 건너편 서울약국 앞에서 67번 버스 탑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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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 | |
순천 진주 |
무 |
13:50 15:22 |
15:22 17:20 |
진주성, 촉석루(남강), 진양호공원 |
저녁 : 제일식당 육회비빔밥 |
남강워터피아찜질방 |
찜질방 | ||
5th |
진주 부전 |
무 |
10:30 13:20 |
혜진 만남 태종대, 남포동 |
점심 : 밀면 저녁 : 남포동 완당 |
찜질방 (스파렉스 / 베스타) |
태종대 다누비 1,500 찜질방 | ||
6th |
부전 불국사 |
무 |
10:25 12:18 |
12:07 13:56 |
불국사 안압지, 첨성대 일대 (자전거 투어) |
황남맷돌순두부(비빔밥, 첨성대뒤편) / 숙영식당 |
조선온천호텔 찜질방 |
입장료 찜질방 7,000 | |
7th |
금장 포항 |
무 |
10:04 10:34 |
11:24 11:54 |
민환 만남 호미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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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대전 |
새 |
17:20 2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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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전 논산 |
무 |
21:25 2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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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첫째날 : 논산→용산
(2008년 8월 11일 월요일)
오전에 학원수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용산 가는 새마을호에 올랐다.
오늘부터 여행이 시작되었지만, 피치 못하게 오늘은 서울의 병원에 들러야했기에 조금 마음이 급했다.
어젯밤에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살짝 긴장을 해서인지 기차 안에서도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나의 놀이터, 용산역 도착!
그러나 6키로짜리 배낭을 메고 있는 오늘은 좀 다른 기분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큰 배낭을 지고 서 있으려니 역시 기분이 묘했다.
병원에 들렀다가 친구네 집에서 묵었는데, 친구는 나의 여행을 응원하며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주었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니 여행 중이라는 실감이 안 났지만, 내일은 새벽 6시 5분 열차로 광주엘 가야하기 때문에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늦잠에 익숙해져 있던 나인데.. 슬슬 걱정이 되었다.
#4. 둘째날 : 용산→광주→담양
(2008년 8월 12일 화요일)
어제 결국 2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일찍 자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덕분에 난 4시 30분이었던 기상시간을 4시 50분으로 늦추고, 머리도 안 감고 세수만 한 채 집을 나서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눈을 떴는데, 창밖으로 비가 무섭게 내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배낭 밑에서 방수덮개를 끄집어내 배낭을 폭 감쌌다. 방수덮개 색깔 때문에 쌀포대 같은 배낭을 메고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섰다.
용산역에 들어서니 5시 40분. 열차 시간인 6시 5분까지는 아주 여유가 있었다. 꽤 순조로운 출발에 기분이 좋았다.
새벽의 용산역은... 정말 더웠다;;; 후끈-하달까; 뭐 에어컨도 잠을 자야 하니 어쩔 수 없지만..
그리고, 무척 휑-했다. 어제 오후 도착했을 때의 용산역과는 대조적이었다.
곳곳에 큰 배낭을 베고 누워 자고 있는 젊은이들도 몇몇 보였다. 혹시 내일로?????
'흠, 나도 머리는 안 감았지만 여기선 내가 제일 말짱한 내일로군;' 이라고 혼자 생각하며.. 열차에 탑승.
무궁화였기에 난 우선 1호차를 노렸다. 1호차를 타서 맨 뒤로 갔다. 옆에 배낭을 놓고 자려고 애썼으나 역시 잠은 오지 않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4시간 반 뒤 도착한 빛고을 광주. 내 친구 명희가 사는 곳. 명희는 고등학교 때 절친하던 친구인데, 광주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다. 맨날 놀러간다고 해놓고, 대학 4년동안 한번도 와보지 못했던 광주;;
광주역에서 드디어 내일로 목걸이를 받을 수 있었다! (용산역은 다 떨어졌대서 ㅠㅠ)
명희네 집에 들러서 배낭을 내려놓고, 담양엘 가기 위해 나왔다.
우선 시내버스를 타고 서방시장에 가서, 담양 가는 311번 버스를 탔다. 버스요금은 교통카드로 1500원.
담양은 금방 도착했다. 죽녹원까지 가는 버스였지만, 우리는 먼저 배를 채워야했기에 터미널에서 내려 떡갈비집을 찾아갔다. 식당에 전화해서 위치를 물었더니, 읍사무소 옆이라기에 우리는 읍사무소를 찾아 계속 걸었다. 한참을 걸은 끝에 드디어 찾았다! 덕인관 떡갈비집!! ㅎㅎㅎ 점심시간이라 사람 많은 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손님은 한 테이블 뿐;; 우리가 먹고 있을 때 몇 팀이 더 들어왔다. 어떤 아저씨는 서울에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내가 몇년 전부터 고대해온 담양 떡갈비!!!! 오오- 맛있다 맛있어!!! > <
배불리 자알~ 먹고 나와서, 죽녹원을 향해 걸었다. 식당에서 죽녹원까지는 멀지 않았다.
가는 길에 옆으로 내천 같은 게 흘렀는데, 오리가족이 줄지어 떠다니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죽녹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입장료 천원.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등 이름 지어진 길이 여덟 가지나 있었다. 그러나 슬슬 걷다보면 금방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난 대나무들이 시원시원했다. 아, 상쾌한 죽림욕!
그러나 우린 빗속에서 지쳐버려 모든 길을 돌아보진 못했다. 절반 정도만 돌아보고, 다음을 기약하며 나오고 말았다.
아, 죽녹원과 담양터미널에서 내일로 여행객을 네 명 정도 보았다. 아쉽게도 아는 척은 하지 못했다; 난 목걸이도 걸지 않고 있었을 뿐 아니라 배낭도 떨궈놓고 와서; 내일로의 면모를 잃어버린 상태였으므로..
3시 반 쯤 죽녹원을 나와 다시 311번 버스를 타고 광주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렸더니 말바우 시장이었는데, 마침 장날이라 길가에 과일이니 생선이니 옥수수 등 맛있는 것들이 잔뜩 줄지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젖은 운동화를 말리고 있는 지금, 상당히 피곤하다.. 겨우 하루 여행했을 뿐인데;; 사람이 잠을 못자면 이렇게 되나보다. 전남대 캠퍼스 구경은 생략하고 얼른 잠을 청해야 할 것 같다.
내일은 여수로 고고!
#5. 셋째날 : 송정리→순천→여수
(2008년 8월 13일 수요일)
친구가 알려주는 대로 버스를 타고 송정리역에 가서 순천행 열차를 탔다. 12시 반 쯤, 순천역 도착. 여수로 가는 열차로 환승하기 위해선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순천역 사진이나 찍어볼까 하고 역을 나오는 순간, 맑은 하늘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랏- 여수는 비 오지 말아야는데 ㅠㅠ 조금 걱정이 되었다.
순천역엔 내일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반갑기도 하고 쑥쓰럽기도 하고 그랬다. 나는 소심하게 그냥 모른 척 앉아서 올림픽 탁구경기를 봤다.
2시, 여수역 도착! 하늘은 쨍쨍!
잠시 루트를 고민했다. 진남관에 갔다가 오동도에 갈까, 오동도에 갔다가 진남관 쪽으로 나갈까.. 10여분 간 이랬다저랬다 하다가, 맘을 정하고 오동도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 여행에서 난 웬만하면 도보로 해결한다. (for 경비 절약&다이어트)
8분을 걸었더니, 2012 여수엑스포 홍보관이 나타났다. 한번 들어가봤다. 와우! 시원하고 깨끗하고~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무슨 영상이 준비되어 있으니 들어가서 보라는데 그거엔 관심 없고, 엄청 깨끗해 보이는 화장실에 들어가 긴팔 옷으로 갈아입고 생수병에 물을 떴다. 홍보관을 나와 다시 8분을 걸었더니 오동도 입구에 도착!
안타깝게도 동백열차가 내 눈앞에서 출발해버렸다. '기다리느니 걷지' 싶어 또 걸었다. 와.. 양 옆으로 보이는 바다가 정말 파랬다! '역시 남해구나!!' 싶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기다란 길을 15분 정도 걸어가 '용굴 가는 길'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니 양쪽으로 동백나무가 우거진 오솔길(비록 보도블럭이 깔려있지만;) 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 길로 쭈욱 쭈욱 걷는다. 경사가 좀 있다. 많이 더웠다. 헥헥-
용굴에 거의 다다라서, 용굴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가까이 가는 길은 다소 험난했다. 뭐 바위 같은 걸 몇개 뛰어넘고 이런 식; 어딜 가든 커플들이 많아서 서로 손을 잡아 주고 뭐 그런 시츄에이션이 눈 앞에 펼쳐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바위 사이를 풀쩍풀쩍 뛰어 용굴에 다가섰다. 와! 용굴 아래 흐르는 물이 정말 맑았다. 아래 조약돌이 훤히 보이는! 청정 그 자체!
그 좁은 공간에서 난 삼각대를 세우고 셀카를 찍는 뻔뻔함도 발휘했다. 바다와 바로 접한 바위라 그런지 바람이 쌩쌩 불어 삼각대가 픽 쓰러지려고 하는 걸 여러번 구해냈다.
시원했다. 여수는 참 시원한 도시인 것 같았다.
아, 용굴 가는 길에서 내 앞에 걸어가던 내 또래 여자애들 세 명. 여행을 온 것 같았는데, 내일로는 아닌가 보다.
내 모습을 보고 생각나서 하는 소린지, 그냥 저희들끼리 하는 얘긴지 모르겠는데, 내가 지나가니까 내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3일간인가, 기차 맘대로 탄대" "맞어~ 7만원인가 그렇다더라" "우와, 괜찮네 그거??"
다들 잘못 알고 있길래, 내일로 티켓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내년엔 그들도 내일로 여행에 꼭 동참하기를 ^^
용굴 앞에서 한참 감상을 하고, 등대 쪽으로 갔다. 그런 식으로 세워논 전망대 비슷한 것들이 다 그렇듯이, 뭐 별로 멋진 건 없었다. 풍경이라는 건, 눈 앞에서 직접 봐야지, 유리창 같은 게 가로막고 있으면 정말 실감 안나는 법.
얼른 내려와서 음악분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밤에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낮에도 시원하게 분수가 솟구치고 있었다. 이건 오늘밤에도 보러 올 것이므로 패스~
다시 걸어서 오동도를 벗어난다. 이렇게 해서 오동도 안에서 무려 3시간이나 보냈다. 생각보다 무지하게 큰 섬이었다. '시티투어 안하길 잘했네, 내맘대로 원하는 곳에 오래 있는 게 자유여행의 매력이지' 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동도 입구 쯤에서 2번 버스를 타고 진남관으로 고고-
5분 만에 도착. 버스에서 내려서 몸만 틀면 진남관이 코앞에 보인다. 계단을 올라갔다. 또 올라갔다.
와! 진남관이다!
의미를 붙이자면 '국내 최대 단층 목조 건물'이란 것을 어디에선가 봤다. 크긴 컸다.
사람들이 마루에 올라앉아 쉬고 있었다. 나도 얼른 자리를 잡았다. 누워보았다. 엄청 시원했다. 바람이 슝슝~ 에어컨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이거, 낮잠자기에 짱 좋은 곳인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30분 정도 혼자 놀다가, 나물이를 마중하기 위해 여수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버스가 들어온다는 곳에 앉아서 조금 기다렸다. 터미널조차도 시원했다. 바람이 슝슝~
얼마 후, 마산에서 오는 버스가 들어오더니 나물이가 내렸다! 1년 만인지 2년 만인지 암튼 무진장 오랜만에 만난 나물이와 저녁을 먹기 위해 맛집을 찾아 나섰다.
나물이는 3년 전 여름, 딱 요맘때, 필봉 전수관에서 만난 친구다. 나물이는 아주대학교 풍물패인데(백두마루였던가?) 밤에 술먹고 게임하고 노는 과정에서 우리 패와 엄청 친해졌다. 특히, 나와? ㅋㅋ 그래서 그 뒤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그랬는데, 해병대에 갔던 나물이가 마침 바로 2주전 쯤 전역을 한 것이었다. 원래는 내가 창원에 가서 만나려다가, 서로의 스케쥴 상 어찌어찌하여 나물이가 여수로 오게 되었다. 무척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
여수에서 유명한 서대회를 먹으러 구백식당이란 곳을 찾아갔다. 엄청 맛있다던데, 기대기대 > <
주문 받으시는 아주머니의 권유로 서대회와 갈치구이를 시켰다. 밥이 나왔는데, 내 밥은 여자밥 나물이 밥은 남자밥.. 양이 확 달랐다. 나 배고푼데 ㅠ ㅠ
서대회 등장. 와 - 서대회 짱 맛있다!! 언제 어디선가 서대라는 생선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납작하고 볼품없이 생긴 쬐만한 생선인 걸로 기억하는데, 어쩜 이리 맛있어?!
게다가, 요건 양념 맛이 관건이었다. 발효시킨 막걸리 식초로 새콤달콤하게 버무린 서대회, 정신없이 밥 한그릇을 비우고도 난 양이 안 차서 괜히 나물이에게 "너 더 먹을꺼지??"라고 대충 묻고선 밥을 한그릇 더 받아다 먹었다. ㅋㅋ
나물이도 "내 여기 또 오게 될 꺼 같은데"라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흐흣- 점심을 굶은 보람이 있다.
구백식당을 나와 밤의 음악분수를 보기 위해 다시 오동도로 갔다.
아까는 힘들어서 못 올라갔던 오동도 입구 '전망 좋은 곳'에 올라갔다. 계단의 연속. 낑낑대며 겨우 올라간 그곳에는 흑염소 몇 마리와 나무가 썩어서 걸터앉으면 떨어질 수도 있다는 허름한 정자가 있었다. 그치만, 경치는 좋았다. 오동도 가는 길과 오동도가 내려다보이는~
오동도에 도착하니 딱 8시. 음악분수가 바로 시작했다.
밤에는 낮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동네 사람들도 산책 겸 죄다 나오는 것 같았다. 이런 동네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ㅡ' 음악분수는 전에 예술의 전당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오동도의 음악분수가 더 예쁜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선곡이 참 괜찮았다 :D 분수 사진을 차르륵 찍고, 우리 사진도 몇 방 찍고, 돌산 공원으로 가기 위해 오동도를 나왔다.
밤 9시 18분.
돌산 공원에 가는 이유는 돌산대교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
친절한 택시 기사님께 "여수 살기 좋아요?"라고 여쭸더니, "고럼~ 여수처럼 살기 좋은 데가 없지~"하셨다. 오호~
그리고는 "돌산대교 야경 보면은 가슴이 뻥! 뚫릴거라~"고 하셨는데, 넉살 좋은 나물이가 맞장구까지 쳐대서 정말 재밌었다.
돌산대교의 야경은, 음.. 아무래도 광안대교 만큼의 웅장함은 없었지만, 아름다웠다. 특히, 다리의 색깔이 바뀌는 게 매력 포인트였다. 한 가지 색으로도 되었다가 무지개 빛으로도 되었다가 했는데, 난 노란색일 때와 하얀색일 때가 제일 멋져 보였다. 한참 야경을 구경하고선, 돌산 공원 바로 아래에 있는 돌산관광해수찜질방으로 내려갔다.
오늘 많이 걸어서 그런지 좀 피곤했다. 황금어장을 보고 잠이 들었다. 내일은 향일암 일출을 봐야한다!
#6. 넷째날 (여수→순천→진주)
(2008년 8월 14일 목요일)
향일암으로 가는 첫차를 타기 위해 맞춰 놓은 알람시간은 4시 정각.
다행히 아직 해병대의 기상 시간에 길들여져 있는 나물이 덕분에 겨우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후다닥 씻고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4시반 첫차인 버스는 4시 50분 쯤 찜질방 앞에 나타났다. 근데 이게 웬일! 첫차가 분명한데, 만석이었다. 이미 서있는 사람도 여럿이었고-
'와, 사람들이 이렇게 부지런하게 열심히 사는구나' 싶어 마음이 좀 숙연해졌다.
한참을 달려 향일암 입구에 내렸을 때는, 5시 30분.
내가 기상청에 알아본 일출 시간은 5시 48분이었는데, 이미 주위는 어스름하게 밝았다. '뭐야, 해뜬거야? -_-'
그리고, 여긴 아직 향일암 입구일 뿐. 향일암까지는 그야말로 멀고먼 대장정의 길이었다 ;;
우선 경사가 70도는 됨직한 오르막길을 오른다. 여기서 허리를 똑바로 세우면 바로 뒤로 누워버릴 듯한 경사다.
향일암 매표소가 나타난다. 새벽이므로 매표는 안한다. 계단을 오른다. 계속해서 계단을 오른다. 끝날 듯 하면 계단은 또 나타난다. 엄청나게 오른다. 온몸이 땀 범벅이 된다. 좁다란 바위 틈을 한번 거친다. 계단을 또 오른다. 이렇게 해서 향일암 대웅전 앞에 선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떼가 발그스름하게 젖어있다. 아직 일출 전이다!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동그랗고 다홍빛이 도는 해가 바야흐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이다. 중간중간 구름에 가리기도 하고 그런다. 그래도 꾸준히 떠오른다. 금방이다. 소원을 빈다. 옆에 있는 나물이에게 소원을 빌으라고 했더니 벌써 빌었댄다. 흐흣. 우리 소원 꼭 이루어주세요 햇님!
멋지다. 올해 처음으로 일출을 보는 것 같다. 태어나서는 네번째쯤 보는 일출이다만, 이렇게 새벽에 자발적으로 일어나 낑낑 산을 올라 보는 일출은 난생 처음이다. 그래서 더 값진 순간이다.
햇님을 배경으로(비록 역광이었지만) 사진을 좀 찍고, 내려왔다. 내려올 땐 훨훨 날아서~
여기서 나가는 버스가 몇 시일까를 걱정하며 내려온 순간, 우리 눈 앞으로 버스가 오고 있었다.
와, 대박! 나물이가 내 여행에 운이 따르는 거라고 말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
버스는 7시에 향일암 입구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여수역 부근에서 내린 건 7시 50~55분 쯤.
8시 기차를 타려는 내일로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9시 기차를 탔다.
난 순천에서 내리고, 나물이는 쭉 타고 임실(전수관)로-
잘 가, 나물아 ㅠ 네가 있어서 정말로 든든하고 재미있는 이틀이었어.
돌산대교 야경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향일암 일출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모두다 네 덕분!!
사진도 잘 찍어주고~ 다소 외로운 내 여행에 웃음을 줘서 고마워! 이 센스쟁이,ㅋㅋ
내년에는 둘다 배낭 메고 어느 기차역에선가 마주칠 수 있기를.. :D
오전 9시 43분, 순천역.
오늘도 역시 쨍쨍하다. 아주 짧은 반팔을 입은 게 걱정스러웠지만, '에잇, 탈라면 타라지'하고 순천만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이게 화근이었다. 꼭 긴팔을 입었어야 했다. 저녁에 샤워하면서 깜짝 놀람 -_-; 거울 앞에 웬 흑인이;;;) 67번 버스는 한참만에 왔지만(10시 15분 승차), 순천만까지는 딸랑 15분만에 갔다.
곧바로 순천만으로 갔다. 광활한 갈대밭 위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끔 우드데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드넓은 갈대밭, 여름이라 아직 초록인 갈대들, 눈길을 아래로 돌려 뻘을 쳐다보니 쬐그만 게들과 짱뚱어들이 신나게 활보하고 있었다. 악, 짱 귀여워!!!
뻘에 구멍이 뻥뻥 뚫린 게 다 게들의 집이었다. 짱뚱어들은 희한하게 지느러미인지 발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헤엄을 치며 다녔다. ㅋㅋ 게들도 구경하고 초록갈대도 구경하며 느리게 걸었다.
그런데, 데크가 설치된 길은 모두 한바퀴 돌았는데, 도대체가 용산전망대란 곳이 안 보이는 거였다. 결국 다시 입구로 나왔다. 분명히 저 안쪽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대체 어디란 말인가 ㅠ ㅠ 다시 들어가서 마주오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까 내가 '저긴 가봤자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라고 판단해 패스한 길이 바로 용산전망대로 가는 길이었던 것이었다. 쿠궁;; 좀 후미진 곳이었는데, 안내 표지판 하나 세워놓지!! -_- 순천만 나빠;
결국 다시 그 길까지 가서 용산전망대로 향했다.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건 뭐, 세미 등산 수준 ;; 웬만한 동산 하나 넘는 정도는 되었다. 우리집 뒷산보다 훨씬 힘들었다. ㅠ 게다가 난 배낭도 메고 있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겨우겨우 걸음을 뗐다. 힘들다고 투정할 사람도, 손 잡아 끌어달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이게 혼자라는 증거였다. 휴~ 꿋꿋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 용산전망대에 다다랐다. 중간중간 '여기인가? 다왔나?'하고 착각할 만한 곳이 몇군데 있었다. 이것도 순천만이 나쁜 이유 중 하나 ;; 표지판이 아주 큰 글씨로 "용산전망대"라고 써놓고 밑에다 아주 쬐그맣게 "100m 앞" 뭐 이런 식이다. 정말 사기꾼스럽다 ;; 췌엣-
암튼 간에 무사히 올라온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순천만은 멋있었다. 그 유명한 S자로 흐르는 물줄기와 함께 보이는 습지의 풍경이 마치 멈춰버린 스냅사진처럼 여유로웠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마침 아무도 없어서 삼각대를 세워놓고 온갖 포즈를 잡아가며 셀카도 찍었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사진이라도 많이 남겨야지! 하는 오기를 가지고 ;;
내려가는 길은 역시 훨훨 날았다. 올라오고 있는 내일로를 한팀 보았다. 그들은 배낭 없이 초록색 목걸이만 달고 있었다. 부럽다..
다시 광활한 갈대밭을 지나 순천만을 나오니, 무려 3시간이 지나있었다. ㅋㅋㅋ 용산전망대를 못찾고 헤맸던 것이 화근. 피곤하다 ㅠ 그런데 마침 순천만 앞에서 농협 무농약 쌀을 홍보하러 나오신 분들이 500g짜리 견본쌀(?)을 주셨다. 뭔가 수확 잡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급 좋아졌다. 흐흣.
30분 정도 기다려 다시 67번 버스를 타고 순천역에 내려 환승을 해서 이마트엘 갔다. 우유랑 아침에사과랑 프렌치카페를 샀다. 와- 처음으로 하는 군것질! 신났다 ㅋㅋ 열차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걸어서 역으로 갔다. 근데 뭥미.. 내 계획표에 적혀진 열차시간은 잘못 적은 거고, 진짜 열차는 무려 1시간 뒤에 떠나는 것이었다. 우째 이런 실수를 -_-; 하는 수 없이 앉아서 아침에사과를 퍼먹으며 기다렸다. 다행히 요즘은 올림픽 시즌이라 시간 남을 땐 언제 어디서든 올림픽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ㅎㅎ
마침 내 뒤에 내일로 소녀 둘이 보이길래 잠시 짐을 맡기고 역 앞 우체국에도 다녀왔다. 여행 중 만난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돌아와서 다시 올림픽을 보며 앉아있자니, 옆에 있던 내일로 청년 하나가 말을 걸었다. "중앙대 람보이신가봐요?" 헉.. 날 한순간에 파악하다니 -_-! 깜놀! 알고보니, 내 모자에 찍힌 CAU와 낙서처럼 쓰여진 롤링페이퍼에서 '람보'를 본 것이었다. 후훗- 그렇게 잠시 인사를 나누고 짧은 대화를 했다. 그 청년은 창원으로 술 마시러 가는 길이라던 것만 기억이 난다 ;;
자, 이제 3시 50분 열차를 타고 진주로 간다. 내 여행도 딱 절반이 지나간 셈이다.
오후 5시 20분, 진주역에 도착.
진주역 매표구에 있던 직원 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촉석루 가는 법, 모텔 많은 곳, 제일식당 가는 법 등등.. 언니는 경상도 사투리로 엄청 친절하게 모든 걸 답해주셨다. 완전 감동♡ 요래저래 찾아서 내 질문 외에도 많은 팁들을 주셨다.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예쁜 언니였다~ +_+
진주역 앞 큰 길을 건너 xx병원 맞은편에서 촉석루(진주성 내에 위치)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노선도가 붙어있긴 하나 좀 복잡스러워서, 같이 버스 기다리고 있던 진주시민에게 물어보아 버스를 탔다. 진주성은 남강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내리면 된다. 왼쪽으로는 진주성이 있고, 오른쪽으로 모텔밀집지역이 있다. 오늘은 좀 푹 쉬고 싶어서 큰 맘 먹고 모텔을 찾았다. 삼만원을 예상했는데, 좋아보이는 모텔은 모두 사만원, 사만오천원을 불러댔다. 휴우 ㅠ 고민을 좀 하다가, 비교적 허름한(;;) 모텔에 들어갔더니 인터넷 되는 방은 삼만오천, 안되는 방은 삼만원이란다. 오늘 꼭 인터넷을 할 셈이었으나, 인터넷이 느리다고 대놓고 말하길래 그냥 삼만원짜리 방에 묵기로 했다. 키를 받고 보니, 방은 5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는 없다고 했다 -_-; 뭐야, 이동네 왜이리 비싸;;; 하는 수 없이 걸어서 방으로 올라갔는데, 방은 코딱지 만했다. ㅋㅋ 침대와 화장대, TV가 맞붙어있는..ㅋㅋ 그래도 순천만의 여파로 몹시 피곤했던 나는 얼른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진주성의 촉석루를 보기 위해 서둘러 모텔을 나왔다. 벌써 7시가 다 되어 해가 지고 있었다.
우선 세탁소를 찾았다. 매일 땀이 범벅이 되어서 젖은 티셔츠만 세 개, 반바지 한 개.. 모텔에서 빨면 말리기가 힘들 것 같고, 사실 빨래하기엔 힘이 부쳤다. ㅠ 그래서 세탁소에 물빨래를 맡겼는데, 한 벌에 \2,000 씩 \8,000 이었다. 아양을 좀 떨어서 큰 손수건 하나는 덤으로 맡겼다 ;
여기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진주성!
6시 이후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단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6시 이후엔 촉석루 내에 들어갈 수가 없다. 담 넘어로 봐야만 한다. ㅠ ㅠ
진주성은 매우 큰 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 촉석루 뿐만 아니라 국립진주박물관도 있고, 그 외에도 많은 문화재 건물들이 있었다. 촉석루는 담 너머로 힐끗힐끗 보고, 그 앞에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았다. 마치 한강 둔치처럼 남강 둔치를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랬다.
진주성 안에도 산책이나 운동 나온 주민들이 많이 있었다. 어제의 오동도가 생각났다. 그치만 오늘 나는 혼자였다. 드넓은 진주성 내를 막연히 걷는데, 좀 쓸쓸했다. 날이 어스름해지자 벤치에 앉아 애정행각을 하려는 커플들도 보이고~ 가끔은 말상대라도 필요한 때와 장소가 있는 것 같다.
진주성을 한바퀴 돌자 8시가 다 되어, 배가 몹시 고프기 시작했다.
아까 진주역 언니가 가르쳐준대로, 지하도를 따라 중앙시장으로 갔다. 지하도를 따라 쭉 걸어가다가 맨 끝에서 오른쪽으로 나가면 중앙시장이다.
시장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상점들이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혹시나 식당들도 문을 닫을까봐서 걸음을 재촉했다. 장보러 나오신 한 아주머니께 '제일식당' 위치를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나를 직접 식당 간판이 보이는 곳까지 데려다 주셨다. 시장 골목은 복잡해서 말만 들어서는 못 찾을 거라면서.. 아주머니 쵝오!!
그렇게 무사히 제일식당을 찾아 비빔밥을 주문했다. 식당은 맛집이 분명했다. 시장통 안에 조그맣게 자리한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식당이었는데, 그 시간에도 안에는 사람이 꽉 차서 난 밖에 자리한 밥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이곳의 육회비빔밥은 \6,000. 주인 아주머니께서 서울에서 온 아가씨 심심하겠다며 내 옆에 앉아있어주시고 그랬다. ㅋㅋ 오늘만 해도 서울 손님이 여럿 왔었다고 하시길래 "제일식당 엄청 유명해요~"라고 조금 뻥을 보태서 말씀드렸다.
비빔밥은 괜찮았다. 진주역 언니가 "비빔밥이 다 똑같지, 별거 있나요~"라고 했는데, 음.. 사실 별건 없었다. ㅋㅋ 그냥 쫄깃한 육회와 참기름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난달까? 암튼 난 슥슥 비벼 맛있게 한그릇 뚝딱 해치웠다.
시장을 나오니 깜깜한 밤이었다. 서둘러 모텔로 고고-
11시쯤 불을 끄고 누웠는데, 번쩍하고 번개가 치더니 우르릉 쾅 천둥이 치더니 비가 쏴아- 왔다. 무서웠다 ;;
허전하기 그지없는 마음을 달래며 겨우 잠이 들었다.
다행히도,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땐 해가 쨍쨍했다.
#7. 다섯째날 (진주→부산)
(2008년 8월 15일 금요일)
모텔에서의 하룻밤은 썩 편안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침해가 반짝 떠오르자 난 가뿐하게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어젯밤의 천둥번개는 자취를 감추고 쨍쨍한 햇빛만이 모텔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행이다. 흣~
세탁소에 들러 맡긴 빨래를 찾고, 진주역으로 고고-
어제의 왕친절 언니께 내가 아껴둔 프렌치 카페를 드리려고 했으나, 아침엔 다른 언니가 근무이신가 보다. 어제의 그 언니는 찾을 수가 없었다.. ㅠ 아쉬웠다.
10시 30분 부전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오늘부터 휴일(광복절!!) 시작이라, 열차에 자리가 없을까봐 조금 두렵다. 어김없이 1호차 맨 뒤에 앉았다. 한참을 자다가 깨보니 내 옆에도 내일로 소녀 두 명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원동역에서 피서 가는 사람들(해변 가는 복장!!)이 우르르 타더니.. 난 자리를 뺏기고야 말았다. ㅠ ㅠ 이리저리 둘러봐도 빈자리는 없었다. 신기하게도 내 옆의 내일로 소녀 두 명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오~ 완전 운 좋은데?!'라고 부러워하며 난 정말로 찌질하게 그들 좌석 뒤의 빈 공간에 쭈그리고 앉았다.. -_-;;; 출입문 바로 앞이라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쭈그리고 있는 날 보고 흠칫 흠칫 놀랐다 ;; -_- ... 내 모습이 호러였나 ;;;
다행히도 부전역까지는 30분 정도 남은 때라 조금만 참으면 되었지만, 와.. 그렇게 열차 바닥에 앉아있는 건 생각보다 서러웠다.
부전역에 도착하니, 나의 대학시절 절친 똥글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흐흣! 반갑고나!!
이 녀석, 나의 배낭멘 초췌한 모습을 보고 마구 웃으며 사진을 찍어댄다. 싸이에 올리면 좀 부끄러운데.. =_=;
난 배가 몹시 고팠기에 서둘러 점심을 먹으러 맛집을 찾아 나섰다.
똥글이가 사전조사해 놓은 '개금밀면' 집에 가기로 했다. 처음 먹어보는 밀면~ 부산 쪽에선 아주 유명한 음식이다. 기대 만땅!!
와우~ 맛집답게 식당 밖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우리도 얼른 줄을 섰고, 매너 있는 손님들이 먹고 빨리빨리 나와주어서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냉면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면이 특색있다. 밀가루로 만든 면이라 냉면처럼 질기진 않으면서도, 아주 쫄깃쫄깃했다. 육수 맛도 냉면과는 좀 달랐다. 아무튼, 무척 맛있었다 > < 물밀면(?)은 곱배기를 시켰더니, 저렇게 면이 두덩이다. 다 먹고 나니까 위가 아주그냥 빵빵~해졌다 ;;
밀면으로 든든해진 몸을 이끌고, 우린 태종대로 갔다.
(tip. 태종대 가는 법 : 지하철 남포동역에서 6번 출구로 나가서 직진하다 보면 버스정류장이 나오는데 거기서 8, 30, 88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됨)
태종대는 중학교 시절 부모님과 남해안 순회(?)할 적에 처음 와보고, 이번이 두번째였다. 처음 부산에 왔던 날, 태종대 드라이브를 하고 용두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부산의 전경에 홀딱 반했었는데..ㅎㅎ 그래서 여전히 내 마음 속엔 부산이 우리나라에서 최고 멋진 도시로 자리하고 있다. 대학에 가서 우연히도 부산 아이들과 절친하게 된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뭔가 부산에 연고지가 생긴 기분이니 말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태종대에는 다누비 열차라는 게 있었다. 태종대를 다 누비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름!! 호홋~ 예전에는 차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었는데, 이젠 차량은 출입금지고 다누비 열차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손쉽게 올라갈 수 있다 :) 요금은 \1,500. 원하는 곳에서 내렸다가 다음 차를 탈 수도 있고~ 자유롭다.
다누비 열차를 타고 씽씽 달려 전망대에 도착했다. 여기도 걸어 올라오려면 등산 수준이다 ;; 다누비에게 감사~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남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뽕짝을 크게 틀어놓은 유람선이 신나게 바다를 질주하고 있었다.
우뚝 솟은 등대. '희망의 빛 영도등대'란다.
나는 등대를 보면 좀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한편으론 무척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밤이고 낮이고 그 등대를 지켜야 하는 '등대지기'란 말에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뚝뚝 묻어나는 느낌이랄까 ;
태종대에는 저런 희한하게 생긴 조형물도 있었다. 저게 뭘 의미하는 걸까?! 난 딱 보니깐 똥침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그만 따라하고 말았다 -_-;;
태종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다누비 열차를 타고 내려왔을 때는 저녁 7시쯤.
우선 남포동으로 갔다.
원래는 찜질방에서 자려고 했으나, 밤에 편안하게 술 한 잔과 함께 회포라도 풀려고 모텔을 잡았다. 역시 허름한 모텔, 삼만원. 그래도 어제 그곳보단 훨씬 나았다. 화장실에서 바퀴벌레 같은 것이 후다닥 몸을 숨긴 것 빼고는...
저녁을 먹으러 나왔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고민하던 중~ 똥글이가 일회용 렌즈를 사기 위해 들른 안경점에서 주변 맛집들을 추천받았다. 그 중 우리가 선택한 건 "부산족발"!!
(tip. 부산족발 가는 법 : 남포동 시내에서 파리바게뜨 카페와 KFC가 있는 큰 골목을 기준으로, 둘러보면 한 쪽은 옷가게가 밀집되어 있고 한 쪽은 약국이 밀집되어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 중 약국 쪽으로 쭈욱 가다보면, 약국을 지나(만물의 거리, 아리랑 거리 등을 지나) 고깃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보인다. 거기서 "부산족발" 간판 보임~)
우와~ 진짜 유명한 맛집인가 보다! 그 때 시간이 9시가 넘었는데, 드넓은 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밖에도 사람들이 우글우글 줄지어 있었다. 좀 짱인데?
우리는 구석 자리를 잡고, 냉채족발을 시켰다. 이 집은 냉채족발이 유명하단다. 냉채족발을 처음 개발(?)한 곳이라나 뭐라나~ 냉채족발은 톡 쏘는 겨자소스에 해파리, 오이, 당근 등과 함께 족발이 버무려져 있는 음식이었다. 맛있었다!!!! > < 부산 가시는 분들이나 남포동에서 노실 분들, 부산족발 가서 냉채족발 드셔보세요~ 강추에요~~ㅎㅎ
굳이 맛을 설명하자면 매콤하기도 하고 새콤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난 새콤한 건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전혀 상관없이 맛있었다. ㅋㅋㅋ
아주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하고 남포동 시내를 거닐다가 지하철역 물품보관함에서 배낭을 찾았다.
모텔로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좀 사고~ 각자 좋아하는 맥주와 함께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이 몇달만에 나누는 수다인가 ㅠ ㅠ 졸업을 한지 벌써 반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던 우리가 졸업 후 멀리 떨어져 각자의 삶에 쫓기며 한달에 한번 통화할까 말까 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사회생활이 눈코뜰새 없이 바쁜 것을 누구를 탓하리요; 우리는 그 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쉴새없이 떠들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마음은 편안해지고..
그렇게 부산에서의 뜻 깊은 하루가 저물어갔다.
#8. 여섯째날 (부산→포항→경주)
(2008년 8월 16일 토요일)
남포동의 허름한 모텔에서 똥글이와 함께한 밤. 우리는 새벽 3시까지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남포동 시내를 거쳐 전철을 타고 부전역으로 고고- 부전역 앞 대형 하나로 마트에서 김밥이랑 물을 사서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는 포항행 무궁화를 타고 무비무비!!
여기까진 참 좋았다. 그러나 . . .
원래 포항에 가면 대학친구 최군을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최군은 집이 포항인 녀석으로, 현재는 경기도에서 방위산업체에 근무중이다. 마침 광복절 연휴라 집에 내려온다 하여, 내가 포항 호미곶엘 가겠다고 했더니 순순히 "모셔다 드리죠"라며 차를 갖고 나온다는 거였다!! 나로선 뭐 완전 땡큐지~ 게다가 호미곶은 포항에서 좀 떨어진 구룡포에 있고 버스를 갈아타면서 가야 하는 등 교통편이 영 불편한 곳이었다. 우리는 최군만 믿고 있었다.
벗뜨, 최군이 연락이 되질 않았다;; 문자도 씹히고 전화도 안받고 -_-;;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 무궁화가 경주 쯤 지날 때(포항 도착을 한시간 남겨놓은 시점) 전화가 왔다. 최군이었다. 회사가 바빠서 휴일인데도 일을 하느라 못내려왔댄다!!!!!
'이런 OTL ...-_-; 진작 연락을 주던가!!' 이런 속마음을 숨기고, 애써 웃으며 알았다고 괜찮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휴우.. 속은 쓰렸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여행이지 남들이 내 여행에 스케줄을 맞춰줄 의무는 없었기에; 난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ㅠ
사실 최군만 믿고 호미곶에 가는 교통편을 자세히 알아오지 않았기에 조금 당황;; 게다가 그 무렵부터 차창 밖으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좋은 조짐..
포항역에 도착. 부슬부슬 흩뿌리는 비였다. 우산을 써도 비가 사방에서 뿌려져 은근히 온몸이 다 젖는 그런 비;;;
첫날처럼 배낭을 쌀포대로 만들고; 나는 일회용 우비를 입었다. 와.. 난 정말 우스운 꼴을 하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을 찾아 걸어가 구룡포행 200번 버스를 탔다.
(tip. 포항역에서 구룡포행 버스정류장 가는 법 : 포항역에서 전방 500m 직진 후 왼쪽으로 훼미리마트가 보이면 그 골목으로 120m 직진, 정면에 죽도시장이 보이면 우회전해서 외환은행 맞은편 정류장에서 200번 or 200-1번 좌석버스 탑승. 내리는 곳은 구룡포 해병전우의집 정류장. 버스비 \1,500)
버스는 거대한 포스코 단지를 지나고 커다란 해병대 부대(나물이가 있던 곳이 여기인가?! 흣~)도 지나 한참(45분 쯤)을 달려 구룡포 해병 전우의 집 앞에 섰다. 호미곶에 가려면, 여기서 내려 대보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내린 위치 바로 앞에 대보행 버스들이 보임)
바로 이 때부터 우리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
나는 원래 KB 후불 교통카드를 사용하는데, 이건 거의 전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KB 카드가 먹지 않는 두 곳이 있었으니.. 바로 부산과 포항이다 ; 부산이 먹지 않는다는 건 친구를 통해 알고 있었고 '설마 포항도?' 했는데 포항도 그랬다. -_ㅠ 경상도가 다 그런가 싶었는데 포항 다음에 간 경주는 다행히 KB 카드가 먹어줬다 ;;
아무튼, 눈 앞에 있는 대보행 버스를 타긴 탔는데 우리에겐 잔돈이 없었던 거다. 쿠궁.. 버스 기사님('님'자조차 붙이기 싫은 아저씨!!)이 당연히 만원짜리를 받아줄 리 없었다. 우린 당황.. 게다가 다음 버스는 한시간 뒤에나 있단다;;; 기사님과 실갱이 시작.
"어쩌죠? ㅠ ㅠ" "빨리 가서 바꿔와~" "어디 가서 바꾸죠? ㅠ 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_-... 이 아저씨 뭐야; 포항의 이미지가 와르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버스에 배낭을 떨궈놓고 얼른 내려가 정류장 앞에서 과일을 팔고 계시던 아주머니들께 사정했다. "잔돈 좀 바꿔주세요 ㅠ 오천원짜리랑 천원짜리 섞어서 주셔도 좋아요 ㅠ" 아주머니들은 매정하게도 "우리 잔돈 없는데~~ 저기 식당 가봐" 하셨다. 우린 빗속에서 무단횡단을 하며 맞은편 횟집들 중 첫번째 집에 들어가 "사장님, 저희가 잔돈이 없어서 버스를 못 타는데요 잔돈 좀.. ㅠ ㅠ" 와.. 그 식당 조폭같이 생긴 사장이란 작자는 무슨 우리를 구걸하러 온 거렁뱅이 취급하듯 눈살을 확 찌푸리고는 대답 한마디 없이 썩 꺼지라는 손짓을 했다. 훠이~훠이~ 포항, 뭐야, 이런 곳이었음? 왜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모냥이야!!! -_-
그 때 밖에선 버스가 경적을 울려댔다. 버스 출발하니까 우리보고 빨리 오라고.. -_-; 휴우... 그제서야 아까 그 과일 파시는 아주머니들, "이리와~ 바꿔줄게~ 버스 간대~" . . . . . '(속으로) 예에; 진작 좀 그러시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린 잔돈을 바꿔 버스를 타고 호미곶으로 갈 수 있었다. ㅠ ㅠ 휴... 힘들어....
버스 안에서, 난 빈정이 팍 상해 표정이 굳은 채로 앉아있었고 똥글이는 그런 나를 달래고 있었다. 우린 비난의 화살을 갑자기 최군에게로 돌려 이 모든 불운을 최군 탓으로 해버렸다. ㅋㅋㅋ 그 녀석이 약속대로 마중만 나왔어도;;; 뭐 이런 이기적인 원망이랄까..ㅋㅋ
약 20분을 달려 호미곶에 도착했다. 허걱!!! 바닷가라 그런지, 비바람이 폭풍 수준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ㅠ_ㅠ 이건 아니잖아~~~
날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는 후회가 호미곶 파도만큼이나 마구 밀려왔다. 똥글이가 쓰고 있던 내 우산은 몇번을 뒤집어져 결국 살이 다 부러지고, 호미곶 그 상생의 손인지 뭔지를 봐야하는데 방향을 잘못 잡아 반대쪽으로 한참을 걸으며 헤매고 말았다;; 버스에서 내린 후 20여분 만에 겨우겨우 찾은 '상생의 손'... 흑 ㅠ 그 자태는 과연 멋있었으나, 나도 모르게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리란 다짐을 하게 되는 건 왜일까 ;;;
힘들게 왔으니 사진은 꼭 남겨야지, 싶어 그 손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허연 우비를 아무렇게나 뒤집어 쓴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선.. 비에 젖은 머리는 꼬불꼬불 라면 머리가 되어있고, 반바지는 홀딱 젖어 다리에 찰싹 붙어있고, 흠뻑 젖은 이 운동화는 또 언제 말린다냐... ㅠ_ㅠ
우린 좀 진정하기 위해 포장마차에 들어가 컵라면과 핫도그를 먹었다. 감자가 덕지덕지 붙은 큼지막한 핫도그는 달콤하고 든든했다. 하지만 내 상태는 여전히 메롱이었다. (똥글이가 즐겨쓰는 '상태 메롱'이란 표현 인용)
"이것도 다 추억이야!! 이렇게 고생해서 더 기억에 남을거야!! 올해 최고의 개고생이지만, 너와 함께라서 정말 기뻐!!!"
난 빗속에서 똥글이에게 이렇게 외쳐댔다. 이 짜증나는 상황을 긍정의 힘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내 자신에게 주문이라도 거는 마음으로...
우린 사진을 몇 방 더 찍고 다음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돌아가는 버스 기사님은 다행히도 왕 친절하신 분이라 우리의 기분도 좀 누그러졌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포항을 떠났다..
그 날 저녁 수원에서 모임이 있다는 똥글이는 환승을 위해 동대구로 향하고 나는 도중에 금장역에서 내렸다.
나홀로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틀간 즐거움과 괴로움을 나와 함께해 준 똥글이에게 무한 감사를 드리며, 금장역에서 난 멋지게 손을 흔들었다.
금장역.
경주의 외곽에 새로이 생긴 쬐그만한 역이다. 포항과 경주를 잇는 무궁화는 거의 이 곳에서 정차한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이 곳에서 내렸다. 역 앞에 "금장역"이라는 큰 간판(?) 하나 없는 역이었다;;
여기 직원분께 여쭈어 경주역으로 나가는 버스정류장을 알아냈다. 버스정류장에 함께 서 있던 중딩으로 보이는 소녀에게 물어 경주역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금장역 직원분과 중딩 소녀 둘 다 KB 카드는 안 먹힐거라 말해서 난 그냥 천원짜리 한장을 냈다. 나중에 보니 경주에선 KB 카드가 먹혔다;; 이 때 무심코 내버린 천원짜리 한장이 훗날(훗날이래봤자 다음날;;) 내가 대릉원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된다.. ㅠ ㅠ
젊은 버스기사님은 왕 친절하신 훈남이셨다. 내가 안압지 가는 법을 묻자, 멀리서 오셨냐면서 안압지 야경이 쥑인다고 하시며 날 위해 버스정류장도 아닌 곳에 정차하셔서 내 갈 길을 편하게 인도해주셨다. 앤젤.. ㅠ ㅠ 이로써 경주의 이미지 급상승.
경주역에 들러 관광지도를 하나 얻었다. 지도 옆에 알아서 찍으라는 듯 스탬프도 나와 있었다. 내일로 여행 중 들른 역에서 스탬프를 찍어 오면 많이 찍어온 순서대로 상을 주는 이벤트가 있다. 하지만 난 그 상엔 관심이 없어서 여태 스탬프를 하나도 받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스탬프가 "나 좀 찍어줍쇼"하고 떡-하니 나와있으니 왠지 찍고 싶은 마음이 뭉실뭉실. 그래서 수첩을 펴고 석굴암이 그려진 경주역 스탬프를 꾸욱- 눌러주었다. ㅎㅎ
시간은 저녁 8시. 밖은 이미 껌껌해졌다.
경주역에서 안압지까지는 도보로 가능한 거리. 15~20분 정도 걸리는 듯하다.
사실 이 날 포항에서의 악몽으로 영 피곤하여 그냥 찜질방으로 들어갈까 싶었지만, 명성이 자자한 안압지 야경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껌껌한 경주 시내를 씩씩하게 걸어서 안압지로 갔다. 안압지로 들어서기 전 거대한 연꽃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조명을 받은 연꽃들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연꽃은 언제 봐도 참 예쁘다. 청순 그 자체다.
밤의 안압지엔 사람이 많았다. 입구에 관광버스도 여러 대 서있었다. 단체견학 온 초딩들도 많았고, 일본인 관광객도 있는 것 같았다.
안압지의 야경은.. 훈남 기사님의 말씀대로, 쥑여줬다. 'ㅡ'b 우왕, 굳-
금빛 조명을 받아 연못에 비친 세 개의 건물(? 적당한 표현이.. ; ㅠ)이 가히 환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상하이 외탄지구의 야경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뭐랄까, 적막하고 고요하면서 웅장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이랄까? 가슴이 탁 트인다기보단, 마음이 평안해지는 그런 빛의 경치였다.
매일 저녁 안압지의 야경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경주에 살고 싶어졌다.
DSLR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그 아름다운 빛의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조용히 걸었다. 그렇게 밤의 안압지를 한껏 만끽했다.
보문단지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10번 버스를 타야할 지 11번 버스를 타야할 지 헷갈려서 옆에 앉아계신 아주머니께 여쭈었다. 아주머니는 시원스럽게 "10번 버스!!"라고 알려주시고는 혼자 여행하냐며 내게 급 관심을 보여주셨다. 내가 부러우시다는 뉘앙스로 "젊음이 좋다~"라고 하셨던가. 머지 않아 10번 버스가 오자 "버스 오네~ 즐거운 여행 해요!!"라며 웃어주셨다. 나도 급빵끗! 경주 시민들은 다들 친절하시다. (포항과는 달라..-_- 막 이래;ㅋㅋ)
잠깐 눈에 익힌 10번 버스 노선도를 기억해내려 애쓰며 나름 '여기다!' 싶은 정류장에 내렸는데, 우후훗-! 거기가 맞았다.
조선온천호텔 찜질방!! 온천이라니 +_+ 기대만빵. 피로를 좀 풀어야지, 흐흣.
찜질방은 호텔 뒷편으로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요금은 만원. But! 홈플러스 멤버쉽카드 소지자는 \7,000. 이런 양질의 정보를 알고 간 나는 당당히 홈플러스 카드를 내밀고 \7,000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이 때 주는 키로 찜질방 안의 모든 시설이나 식음료를 현금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띡 띡 찍어서 계산하고 다음날 찜질방을 떠날 때 한꺼번에 계산~
역시 온천답게 널찍한 욕탕은 아주 후끈했다. 여기저기 다양한 탕을 체험하고, 때를 밀기 시작했다. 매일 땀에 흠뻑 젖어 다녔으니 때가...-_-; 마침 옆에 계시는 처음 뵙는 아주머니께 등을 부탁했다 ;; 요즘엔 인심이 많이 박해져서 목욕탕에서 등을 부탁할 때 거절 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ㅠ 나도 언젠가 한번 거절당한 이후로 등을 부탁하는 것에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있는 터;; 그치만 이 날은 배낭 밑에서 매일 땀을 한바가지로 쏟아낸 등을 생각하니 영 안되겠어서 안면몰수하고 부탁을 드렸다. 천사 같은 아주머니는 흔쾌히 내 등을 벅벅 밀어주셨다 ㅠ ㅠ 아, 감동의 경주여!!! 그리고는 아주머니는 이미 다 밀으셨다며 나의 손길을 정중히 거절하셨다. 난 아무것도 해드릴 게 없어서, 나중에 아주머니가 목욕을 마치시고 나가실 때 벌떡 일어나 배꼽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나의 애청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이 막 시작하려는 참. 나는 아주머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TV 앞 평상에 앉아 드라마를 시청했다. 중간중간 일기도 좀 쓰고, 가계부도 좀 적고, 지도도 펴놓고 살펴보니 아주머니들이 의아한 눈길로 자꾸 쳐다보셨다. 드라마가 끝나고 찜질방으로 고고- 으악. 이게 웬일! 사람이 겁~나게 많았다. 광복절 연휴에 휴가 온 사람들인가? 갓난아기부터 노인분들까지 온 가족이 찜질방으로 여행을 왔나보다. 유딩 꼬맹이들은 미친듯이 꺅꺅거리며 뛰어댕기고, 초딩 꼬맹이들은 피씨방을 장악했다. 인터넷 좀 해볼랬드니 이 쬐그만 녀석들이 게임 삼매경에 빠져서 밤을 샐 작정인가 보다. 어른들은 올림픽 야구를 시청 중이다. 갑자기 환호성이 터진다. 우리나라가 이겼다.
나는 흐뭇한 기분으로 동굴 같이 생긴 수면실에 살그머니 들어가 벽에 붙어 잠을 청했다. 여전히 좀 소란스러웠지만, 난 어디서나 잘 자므로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한밤중에 수면실을 쩌렁쩌렁하게 만드는(동굴같이 생겨서 더 울린다!!) 코골이 오케스트라에 깜짝 깜짝 잠에서 깨긴 했지만... 이내 다시 잠들었다.
#9. 일곱째날 (경주→대전→논산)
(2008년 8월 17일 일요일)
일부러 느지막이 일어났다. 그 동굴 같은 수면실에서, 아직 자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눈치 없이 만담을 나누는 일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잠에서 깼다. 9시가 살짝 넘은 시각. 그냥 가기엔 아쉬워서 찜질을 좀 했다. 한여름의 찜질은 뜨끈하니 좋았다. 땀을 빼고 샤워를 하고 짐을 정비한 뒤 찜질방을 나왔다. 어젯밤 마신 식혜값 \2,000을 계산했다.
조선온천호텔 앞에서 길을 건너 직진하면 보문호가 나타난다. 보문호는 꽤 컸고, 그것을 둘러싼 산책로를 아주 잘 해놓았다. 커플자전거를 비비며 지나가는 중년의 부부를 보며 우리 부모님 생각이 나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꼬맹이들은 카트라이더 같은 걸 타고 다녔다. (바로 옆에 대여해주는 곳 있음) 이란성 쌍둥이인지, 쬐그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태운 쌍둥이용 유모차도 지나갔다. 아가들을 향해 나름 재밌는 표정을 지었더니, 그런 날 보고 애기엄마 왈, "이모가 어흥하네~" ... 그렇다. 난 이제 더이상 누나도 언니도 아닌 '이모'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된 것이다. -_-; 휴우.
아침의 보문호는 시원했다. 이른 아침은 아니었지만 아직 나무들이 이슬을 머금고 있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졌다.
보문단지는 맨 호텔과 콘도인데, 대명 리조트에 딸린 야외수영장의 흥분된 분위기가 울타리 밖에까지 전달되어 당장 뛰어 들어가고픈 마음이 들었다;; 경주가 가족 여행지로 참 괜찮다는 생각도 이 때 들었다. 내년엔 우리도 여기 콘도를 빌려 가족여행을 와야겠단 생각도 들고..
원래 계획상으로는 오늘 불국사에 가야했다. 어려서는 몇 번이나 가 본 곳이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가 보는 불국사는 느낌이 다를 것 같았다. 그치만, 늦잠을 자기도 했고 거기까지 가기가 좀 귀찮기도 해서 불국사는 포기. 대신에 급 넣은 행선지는 '분황사 석탑'. 분황사 석탑은 보문단지에서 안압지 쪽으로 나가는 중간에 있다. 어젯밤에 10번 버스를 타고 들어온 반대로 다시 나가면 되는 거다.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분황사 석탑'. 국보 30호다. (입장료 \1,300)
어차피 다시 지어 올린 거라지만, 그 모습이 호젓하고 고풍스러웠다. 네 마리의 석사자도 멋지고- 쌍여닫이 돌문도 근사했다.
분황사에서 나와 첨성대와 대릉원에 가기 위해 걸었다. 주변은 초록빛 들판 뿐이어서 눈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했다. 경주역에서 구한 경주 관광지도는 훌륭한 네비게이션이 되어주었다.
그 무렵,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하더니 금세 입이 바짝바짝 탈 만큼 몹시 고파졌다. 어제 저녁부터 찜질방 식혜 밖에 못먹은 게 생각났다. '밥부터 먹고보자'라는 생각으로 계획표에 적어온 '황남맷돌순두부집'을 찾아 헤맸다. 첨성대 뒷편에 있다고 했는데, 영 보이질 않았다. ㅠ ㅠ 식당들을 다 제치고 계속 걷다가 커브길이 나타났는데, 커브길 넘어서는 뭐가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배는 고파 죽겠는데, 저길 넘어갈까 말까 순간 엄청 고민을 하다가 넘어갔다. 흐흣. 비로소 황남맷돌순두부가 나타났다.
(tip. 황남맷돌순두부 찾아가는 법 : 왼쪽으론 첨성대 오른쪽으론 대릉원을 둔 큰길로 쭈욱 걸어간다. 대릉원 쪽으로 식당들이 늘어서 있는데, 지나서 계속 가다보면 신라회관이던가 좀 큰 식당이 나온다. 그리고선 커브길이 보인다. 이 커브길을 넘어가야함!! 커브길을 계속 걸어가면 간판이 보인다. 전화번호는 054-771-7171)
종업원 아주머니들께서는 내 뒤에 누가 안들어오나 힐끔거리셨다. 내 일행이 있을 줄 아셨나보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혼자냐고 물으셨다.ㅋㅋ 순두부찌개와 해초비빔밥 세트가 있엇는데, 아직 해초가 준비되지 않았다 해서 그냥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7,000) 흐흣. 내가 꽤나 기대해서인지 별거 없는 순두부찌개가 나왔다. 정말 별거없었다. '뭐 이 순두부가 중요한 거겠지, 여기서 직접 만든 걸테니까..'라고 생각하며 싹싹 비웠다. 근데 반찬이 좀 독특했다. 멍게젓갈이랑 무슨 생선 말린 포를 양념한 것.. 처음보는 반찬들이 여러개 되었다. 아, 그리고 묵은지가 맛있었다. ^_^ 무엇보다 이 집에서 얻은 횡재는 '콩 비지'이다. 비지란 두부를 만들고 남는 찌꺼기. 돼지고기랑 김치 썰어넣고 찌개 끓여 먹으면 맛있다. :) 히히~ 다른 테이블에 앉은 아저씨가 비지를 한아름 얻어가길래, 나도 얼른 한아름 얻어왔다. '오늘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선물해야지♬' 이러면서..ㅋㅋㅋ
배를 채우고 나와서 첨성대를 보러 갔다.
식당에서 첨성대 가는 길에 있는 커다란 무덤들이 난 대릉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건 -였고, 대릉원은 길 건너에 따로 있었다. 어쨌든 난 첨성대로 고고- 길목에 앉아계시던 주민으로 보이시는 아저씨께서 갑자기 내게 말을 붙이시더니 경주 관광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해주셨다. 자전거를 빌려 타면 남산지구까지 싹 구경을 할 수 있다느니, 경주박물관도 꼭 보고 가시라느니..ㅎㅎ 묻지도 않았는데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시는 아저씨 말을 들으며 웃음이 났다. 아저씨의 경주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첨성대.. 옛날에 저 안에서 천체를 관측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저 쬐그만 돌건물 안에서..ㅋㅋ 내가 큰 건지 첨성대가 작아진 건지,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첨성대는 참 아담했다. 사진 한방 찍으려고 무심코 들어가다가, 입장료 안냈다고 면박 당하고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_- 민망해서 그냥 밖에서만 봤다. ㅋㅋㅋ 첨성대 입장료 500원인 거 알고 갔는데 왜 그랬을까 ;;; 나와서 보니 담 너머로 첨성대가 아주 잘 보이는 위치가 있었다. 벌써 여러 사람들이 거기 서서 dslr을 울타리에 들이밀고 사진을 찍는 중 ㅋ 나도 그 자리에서 셀카로 첨성대와 나를 함께 담을 수 있었다.
다시 대릉원을 향해 방금 왔던 길의 잔디를 또 밟았다. 핫핑크 꽃이 풍성한 배롱나무(백일홍나무)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아, 예쁘다 :)
대릉원 입구. 주말이라 어린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입장료 \1,500.
지갑 안에 2,000원이 들어있다고 확신한 나는 당당히 지갑을 열었는데... 헉! 딱 1,000원이 있는 게 아닌가 ㅠ ㅠ 동전지갑도 탈탈 털어보았지만, 50원 10원 다 합해서 고작 100원이 들어있었다. 헐 . . .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제가 배낭여행 중인데 잔돈이 없어서 여길 못 들어가거든요 ㅠ 1,500원만 좀..", 아니면 매표소 관리인에게 애걸복걸? 주변엔 허름한 기념품가게들 뿐이어서 돈을 뽑을 곳도 보이지 않았다. 이어지는 후회.. '아, 어제 버스탈 때 교통카드 찍었으면 1,000원 더 남았을텐데 ㅠ 아침에 찜질방 식혜값 카드로 계산할 껄..' 그리고, 결국엔, 대릉원을 포기하고 말았다. '들어가봤자 무덤 밖에 더있어!!! 천마총 까짓 거, 옛날에 다 봤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난 황남빵 집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ㅠ ㅠ
황남빵 가게에 도착. 큼지막한 간판들이 네 개나 걸려 있는 포스.. 헉! 1시간을 기다려야 빵이 나온단다. 대릉원에 들르지 못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아진 나는 주문을 하고 여유롭게 앉아서 기다렸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황남빵. 얇디얇은 빵피가 기술이고, 달지않은 팥이 매력이다. 팥이라면 좀 질색하고 보는 나도 황남빵은 야금야금 잘 먹는 편.ㅋㅋ 정확히 40분을 기다리니, 종업원 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양손에 묵직한 황남빵과 비지를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경주역으로 고고씽-
여행의 마지막은 화려하게 새마을호로 마무리~
주말이기도 하고 광복절 연휴이기도 해서 열차는 전부 매진인 듯 했다. 슬슬 걱정이 되었다. 준비해 온 등산용 방석을 사용할 때가 온 것인가.. ㅠ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서있는데, 내 앞에 선 열차칸에 써 있는 '식.당.칸'이라는 세 글자. 그제서야 나는 '아! 새마을엔 식당칸이 있댔지!'하고 딱 내 앞에 서준 식당칸에 감사하며 얼른 올라탔다. '내일로 싸이클럽'에서 배운 대로(?) 3,000원짜리 원두커피를 하나 시켜놓고 푹~~ 쉬었다. 엎어져 있다가 셀카도 찍다가 차창 밖도 보다가 사람 구경도 하다가.. 절반 쯤 갔을까, 식당칸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너무 추웠다;; 과도한 에어컨..ㅠ 그래서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옆 기차칸에 빈자리가 있는지 살폈다. 맨 앞에 빈자리 하나가 보였다. 난 거기로 자리를 옮겨서 따뜻하게(;) 잠을 청했다. 대전역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그 사이에 정차한 역도 없는데 갑자기 어디서 여자분이 나타나셔서(그동안 어디 계셨는지;;) "제 자리인데요" 하셨다. 윽 ㅋㅋ 남은 시간을 다시 식당칸에서 때우고 대전역에 하차. 살짝 비가 내리고 있었다.
논산에 가려면 서대전역에서 열차를 타야하기에, 대전지하철을 이용하여 서대전역으로 갔다. (지하철로 5분)
서대전사거리 지하철역에서 서대전역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이제 정말 집으로 가는구나... 나의 짧았던 일주일.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느릿느릿 걸었다. 이대로 더 걷고 싶었다. 며칠 더 돌아다니고 싶었다.
혼자인 게 익숙해지고자 노력한 여행이었다. 뭐 크게 노력했다기보다 저절로 적응이 된 것 같다. 그리 외롭지는 않았다. 혼자 걷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사진 찍고, 혼자 잠들고... 오히려 편하기도 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편했고,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편했다.
걷다가 힘들어도 투정부릴 사람이 없었다. 가파른 계단길에서도 손 잡아줄 누군가가 없었다. 그게 오히려 날 견디게 해주었다.
현실로 돌아가도 이번 여행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적지 않은 에너지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만만치 않은 이 세상을 꿋꿋하고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 이번 여행에서 난 그걸 얻은 것 같다.
#10. 에필로그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혼자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여행이었다.
나를 알아가기 위한 여행이었다기보단 나를 이기기 위한 여행이었다.
남에게 의지하기 좋아하는 나약한 나를 버리기 위한 여행이었다.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행이었다.
끈기 따위 갖고 있지 못한 내가 오기를 갖게 된 여행이었다.
끊임없이 나를 향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인생에는 해가 쨍쨍한 날도 있고 비바람이 불어대는 날도 있음을 알게 된 여행이었다.
나를 믿을 수 있게 된 여행이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여행이었다.
잘해보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 여행이었다.
가족의 소중함, 집의 소중함, 친구의 소중함을 느낀 여행이었다.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한 여행이었다.
나의 튼튼한 두 다리에 감사한 여행이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재발견하게 된 여행이었다.
기차의 편안함을 새로이 알게 된 여행이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친절함을 눈물겹게 느낀 여행이었다.
여행 중 만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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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은 인생에 소박한 소망 몇 가지를 더해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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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미래의 내일로 여행자분들께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감사할 일 투성이입니다.
한낱 외로운 여행객에 불과한 저에게 크나큰 친절을 베풀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웃을 수 있었고 힘내서 더 걸을 수 있었고 이렇게 좋은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몇몇 분의 불친절로 인해 제 기억 속에선 그 도시의 이미지가 깎여 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사사로운 느낌이므로 오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아무튼, 전 일주일간의 기차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내일로 기차여행을 계획하시는 여러분들,
부디 좋은 여행 하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