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남동1번지. 복사기, 팩시밀리, 프린터 등 사무기기를 만들어 내는 신도리코(회장 禹石亨ㆍ50) 아산 工場이 바로 그곳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형 油槽船(유조선)을 딱 절반으로 쪼갠 것 같은 半유선형의 공장 본관 건물은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중 한 사람인 閔賢植(민현식·57) 한국종합예술학교 건축과 교수의 작품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閔교수는 1997년, 건축가들이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이 건물은 朝鮮日報가 선정한 「20세기 걸작 건축물 20選(선)」에도 들었다.
전문가 설문조사를 거쳐 朝鮮日報가 선정한 걸작 건축물 중에는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환기미술관, 「空間」 사옥, 올림픽경기장, 3ㆍ1빌딩, 포스코센터 같은 건물 등이 포함돼 있다. 공장 건물로는 유일하게 낀 「작품」이 바로 신도리코 아산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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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 미술관처럼 보이는 이유는 물론 있다. 신축 B棟(동) 1층 복도에 100여 평 크기의 진짜 갤러리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형식만의 갤러리가 아니다. 거기엔 유명화가의 미술품이 전시돼 있다. 작가 이름을 거명하면 金基昶(김기창), 金昌烈(김창렬), 朴栖甫(박서보), 南寬(남관), 徐世鈺(서세옥), 이반 등 작품가격이 호당(엽서 크기) 고액을 호가하는 쟁쟁한 화가들이다.
본관 건물에 들어서면 정면에는 2층에서부터 작은 폭포가 흘러내리고, 왼쪽 벽에는 동덕여대 미술학부 張美燕(장미연) 교수의 조각품 「안식처」가 자리 잡고 있다. 4층 대회의실 밖 공간에는 네덜란드의 유명 설치미술가 프레일겐이 만든 球形(구형) 작품 「천국에 이르는 일곱 계단(Seven Steps to Heaven)」이 客(객)을 반긴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에서 프레일겐 부부가 직접 와서 설치했다고 한다. 공장 내부 곳곳에는 조각·그림 작품이 전시돼 있고, 기계가 돌아가는 생산라인 옆에는 고급 의자와 탁자가 비치된 휴식공간을 마련해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돼 있다. 휴게실 등에 마련된 가구는 최고급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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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석 규모의 劇場(극장), 1000명을 수용하는 국제규격의 농구장, 헬스클럽, 도서실, 의무실, 카페와 노래방은 물론, 500여 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 1500명이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탈의실도 공장 안에 들어서 있다. 연건평 2400여 평의 본관 건물 가운데 70%가 직원들의 후생과 복지를 위한 공간이다.
건물 바깥에는 全사원이 가족들과 함께 가든파티를 벌일 수 있는 널찍한 잔디밭, 나무의자가 마련된 야외극장, 순 한국식 亭子(정자), 야생 청둥오리가 새끼를 부화할 정도로 호젓한 숲과 호수도 있다. 길가마다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봄에는 벚꽃동산을 이루며, 공장 바로 코앞에 우뚝 솟아 있는 배방산(해발 361m)은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좋은 자연공원이다.
이만하면 『문화회관 같다』고 해도 되는 것 아닐까.
공장이라면 물건만 싸게 잘 만들어 내면 되지, 미술품은 무엇이고, 극장이 무어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업이란 경쟁력을 높여 이윤을 창출하는 조직 아니냐는 물음이다. 그 반문에 대한 답은 『당연한 말씀』이다. 당연히 이윤을 많이 창출하기 위해서 그런다는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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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리코의 禹石亨(우석형) 회장은 『21세기 기업의 경쟁력은 문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문화적으로 충만한 기업이 창의력과 생명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쾌적한 일터가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궁극적으로 회사에 높은 이윤을 안겨 준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신도리코는 건축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아산 공장 본관 건물 말고, 1999년 완공된 서울 성동구 성수동 공장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내리면 5분 거리에 있는 빨간 벽돌의 신도리코 공장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건물이지만 일단 안에 들어서면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원목으로 깔린 마룻바닥, 국제규격의 농구장, 공장 사이사이 공간에 마련된 미니정원, 지하식당 앞 대나무와 분수대 등은 공장이라기보다 산 속 별장에 온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는 대형 닭집을 방불하듯, 멋없이 네모 반듯한 건물은 없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가능한 한 많은 공간을 두었고, 건물 사이를 폭 2m 정도의 구름다리로 이어놓았다. 총각 사원들은 일이 끝나도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정도다.
늘어나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2000만 달러를 들여 2003년 10월 말 완공한 중국 靑島(청도)의 신도리코 공장도 아산 공장과 똑같이 지었다고 한다. 특히 靑島 공장은 「바람, 돌, 물, 잔디 테마공원」이다. 5만 평의 공장 부지에 건물은 1만 평만 들어서 있고 4만 평이 공원이다. 이 공장은 중국 정부에 의해 VIP 시찰코스로 선정됐다고 한다.
1986년부터 신도리코의 사장을 맡아 온 禹회장은 처음부터 종업원들이 일하고 잠자는 건물에 큰 관심을 쏟았다. 1990년 아산 공장에 지은 기숙사부터 시작하여 중요한 신축건물은 물론이고 改築(개축)건물의 설계까지 모두 閔賢植 교수에게 맡겼다. 禹회장은 건축가의 창의를 100% 존중해 줌으로써 전통적 의미의 효율에 앞서 예술성 짙고 쾌적한 공간이 생산라인에까지 갖춰진 공장 건물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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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禹石亨 회장의 신념은 2002년 작고한 부친 禹相琦(우상기) 창업주(1919~2002)의 경영철학에서 싹이 텄다. 禹相琦 창업주는 月刊朝鮮이 선정한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 23명」에 들어갈 만큼 뛰어난 「한국 자본주의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禹相琦 창업주의 창업이념이자 경영철학은 「三愛精神(삼애정신)」. 「나라를 사랑하고, 직장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세금을 잘 내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종업원들이 직장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이 三愛의 실천 방법이라는 것이다.
「三愛精神」을 구체화한 것이 「3대3대3대1의 원칙」이다. 3은 기업의 영속적인 발전을 위해 재투자하고, 3은 자본을 투자한 주주들에게 배당하며, 3은 이익을 내준 종업원 몫으로 돌린다. 1은 기업의 존재를 가능케 한 국가사회에 대한 공익사업을 위해 쓴다는 것이다. 그런 신념에 따라 돈이 얼마가 들 든 직장 건물을 예술품 수준으로 짓는다는 얘기다.
이 회사가 종업원들을 대하는 태도는 『직원님, 직원님, 우리 직원님』으로 표현할 수 있다. 직원을 「직원님」으로 대접하는 모습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공장의 구내식당이다. 직원들에게 밥을 반드시 뚜껑 덮인 하얀 사기 그릇에 담아 보온실에 넣어 뒀다가 주는 것이다. 식사 한 끼라도 집에서 가족에게 먹이는 것처럼 따뜻한 情(정)이 넘쳐야 한다는 禹相琦 창업주의 지시에 따라 처음 시작됐다. 일손이 많이 간다는 일부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아주머니를 몇 명 더 고용하여 식당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공기밥 배식을 계속하고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밥 한 그릇이라도 어머니나 아내가 차려 주는 것 같은 밥상과 식판에 퍼주는 밥과는 느낌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우수사원은 포상으로 1년 안팎의 중단기 해외연수를 보내고, 7년차 사원은 예외없이 선진국 업체에 견학을 시킨다. 그래서 이 회사 임직원의 10%는 늘 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되어 있다. 사원들의 결혼기념일에 회사 비용으로 부부동반 1박2일 여행을 보내 주는 것이나, 1년에 한 번씩 가족동반으로 여는 가든파티도 「직원님」에 대한 배려다.
이런 일도 있다. 아산 공장 본관 1층에 있는 도서관을 개관할 때다. 禹相琦 선대 회장은 도서관을 완전 開架式(개가식)으로 할 것을 지시했다. 책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관련 직원들이 반대하자, 『책 좀 잃어버리면 어떠냐, 괜찮다. 결국은 우리 직원 손에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직원에 대한 끔찍한 신뢰이자 애정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이 도서관은 가끔씩 없어지는 책도 있지만, 대체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형식에 못지않게 직원들의 마음을 사는 것은 회사가 사원들을 同格(동격)으로 취급해 주는 태도다. 禹石亨 회장은 매월 각 부서의 사원 대표를 불러 경영설명회를 갖는다. 이 모임은 아산 공장의 경우는 매월 10일쯤 실내극장에서, 성수동 공장의 경우는 매월 초 SDNA棟 계단식 강의장에서 열린다. 그래서 직원들은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대부분 훤히 안다.
사실은 회사의 회계장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산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경영 내용을 숨길 게 없다. 컴퓨터만 열어 보면 누구나 투명하게 경영내용을 알 수 있다. 세무서에서도 이 컴퓨터 내용 그대로 세금을 매길 만큼 공신력을 갖춘 자료다. 그런데도 설명회를 갖는다.
그러나 월급쟁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의 안정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대우를 해주면 뭐하겠는가. 언제 일자리가 없어질지 모른다면 충성심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회사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인위적으로 감원을 한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직원수가 적은 것도 아니다. 현재 직원수는 2500명(계열사 포함하면 35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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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해고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일단 채용한 사람은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에서다. 직원이 일을 잘 못하는 것도,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는 것도 모두 회사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회장이 직접 면접하고 입사서류를 자세히 읽어 본다고 한다. 수시로 사원들을 접촉하기 때문에 일반 직원들의 이름을 대부분 알 정도다. 아산 공장의 역사관에 가보면 대표이사 회장, 사장에서부터 말단사원까지 全직원의 얼굴 사진이 부착된 판자가 눈에 띈다. 회장의 뜻에 따라 창업 40주년인 2000년, 영구보관용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회사에 노사분규가 있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 회사에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노동조합이 결성된 적이 없고, 노동쟁의도 없었다.
신도리코란 도대체 어떤 회사기에, 재벌급 회사에서도 실천하지 못할 방식으로 工場을 짓고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이 회사의 경영실적(손익계산서)과 재무구조(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자. 2002년 매출액은 5141억원(수출 2559억원, 내수 2582억원), 영업이익 619억원, 경상이익 881억원, 순이익 629억원이다. 예상되는 2003년 매출액은 6300억원, 순이익은 720억원대다.
內需(내수)부진 때문에 대부분 기업들의 2003년 순익은 작년에 비해 반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매출액 對比(대비) 순익률이 10%가 넘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회계방법에 따라 순익은 어느 정도 粉飾(분식)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 회사는 한해 두해가 아니라 창업 이래 지금까지 43년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는 점이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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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불황 속에 잘 나가는 기업」이라는 연구보고서를 작성, 농심·태평양·한샘·신세계와 함께 신도리코를 內需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高성장세를 유지하는 5개 기업의 하나로 꼽았다. 내수비중 50%, 주력제품 시장점유율 47%, 매출성장률(1996~2002) 12%(업종평균 5%), 순이익률 14.4%(업종평균 7.2%)였다.
특이한 항목은 이익 부분이다. 일반기업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영업이익이 가장 많고 경상이익, 순이익 순으로 줄어드는 것이 정상이다. 영업이익에서 영업비용을 뺀 것이 경상이익이고, 경상이익에서 법인세를 제외하면 순이익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경상이익과 순이익이 영업이익보다 많다. 영업 외 수익이 336억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영업 외 수익이란 이자수익, 투자자산 처분 이익, 외환차익, 배당금 등을 말하는데, 이 중에서 금융기관에 여유자금을 예치해서 받는 이자가 119억원이다. 기업이 기업활동을 하려면, 금융기관 등에서 투자자금이나 운영자금을 빌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 회사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는커녕 반대로 이자를 받는다.
자기자본과 빚의 비율을 부채비율이라고도 하고, 자기자본비율이라고도 하는 이 수치는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예컨대 부채비율이 100%라고 하면 자기자본과 他人자본(빚)이 50대 50이라는 이야기다. 자기자본비율은 물론 50%다. 이런 기업이 있다면 대단히 재무구조가 우수한 우량기업이다. 소위 財閥(재벌)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대기업群의 부채비율은 200~400%臺(대)다. 삼성그룹만이 200% 미만으로 우수한 편이다.
이 회사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2002년말 현재 자산은 5363억원으로, 자기자본이 4366억원(자본금 504억원, 社內 留保金 3862억원), 부채 997억원이다. 이는 자기자본비율 80%, 부채비율은 25%라는 말이다. 현금성 자산이 3800억원이 넘는 우량기업 중에서도 초우량기업이다.
부채라는 것도 내용을 따지면 별것 아니다. 은행차입금은 전혀 없고, 매입채무(외상값), 預受金(예수금: 대리점 등에서 보증금으로 맡긴 돈), 아직 지급하지 않은 배당금, 퇴직금 충당금 등이 주류를 이룬다. 기업회계상 부채항목에 포함시키긴 했지만, 남의 돈을 빌려서 생긴 부채가 아니니까, 실제로는 빚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아산 공장을 비롯해서 회사 건물의 건축비는 모두 회사 스스로 벌어들인 이익금으로 충당했다.
신도리코 말고도 무차입 경영을 하는 기업은 꽤 있다. 그러나 신도리코처럼 기업을 일으킨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기업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영업 실적이 좋다 보니까 「三愛精神」에 따라 株主(주주)들에게 배당을 높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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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성향이란 회사의 순익 가운데 얼마를 株主에게 배당했는지를 보여 주는 수치다. 신도리코의 배당률은 요즘처럼 물가가 한 자리 숫자에 머물고 정기예금 금리가 낮은 것을 감안한다면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객관적 기업가치인 株價(주가)도 2003년 11월 말 현재 6만4000원(액면가 5000원)대다.
신도리코는 企業史(기업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연구 사례로 꼽힐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엔 일본에서 상품을 수입하고, 로열티를 주며 기술을 이전받아 제품을 생산, 성장했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과 비슷한 과정을 거쳤지만, 元祖의 수준을 뛰어넘는 독자적 기술을 개발하여 오늘날에는 그 회사에 逆(역)으로 완제품을 수출하는 보기 드문 「靑出於藍(청출어람)」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도리코가 만든 제품은 대부분 「국내 최초」다.
신도리코의 성장사를 일별해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아무런 事前(사전)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을 따라잡는 그 과정은 맨주먹으로 시작한 만큼 艱難辛苦(간난신고)의 연속이었다.
「松商(송상)」으로 불리는 개성의 상인 가정에서 태어나 개성상업학교를 나온 창업주 禹相琦는 개성에서 이웃 가게의 종업원으로 일하며 경리와 상술을 익혔다. 1949년 월남, 무역업을 하다 6ㆍ25 전쟁 이후 새로운 사업을 물색 중이던 그는 1959년 산업은행 조사부에 들렀다가 우연히 일본신문에 실린 (주)리코의 복사기 광고를 보게 되었다. 당시 문서 복사는 먹지와 등사기가 동원되던 시대였다. 기계로 같은 문서를 복사해 내는 것은 驚異(경이)로운 일이었다. 사업이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이 첨단기계를 국내에 도입하는 일에 나섰다.
신도리코의 前身(전신)인 복사기 수입업체 신도교역을 차린 것이 1960년. 신도교역의 新都(신도)는 자신의 고향 개성에 대한 사랑과 새로운 사업 터전인 서울을 「新松都(신송도)」라고 칭하는 과정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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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43년간 신도리코는 복사기 수입, 기술제휴, 제품조립, 자체 기술로 제품 기획 및 개발 단계를 차근차근 밟으며 「스승」인 일본의 리코社를 따라잡아 이제는 앞질러가고 있다. 신도리코에서 자체 개발한 제품이 일본 리코社로 수출될 정도다.
신도리코는 한국의 사무기기 기술력을 세계가 알아줄 만큼 크게 도약시켰으며, 한 번도 업계 최고의 자리에서 밀려난 적이 없다. 미국의 「제록스」나 일본의 「캐논」 같은 세계적 거대기업이 토종업체에 밀린 유일한 나라가 신도리코가 버티고 있는 한국이다. 不敗(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삼성도 1990년대 초, 복사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신도리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 이면에는 이 회사의 社訓(사훈)인 「努力(노력), 創意(창의), 信義(신의)」의 힘이 숨어 있다. 努力과 創意 덕에 기술연구소는 일본을 능가하는 신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信義는 옛날에 신세졌던 일본 리코社의 이름을 회사 이름에 그대로 쓰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신도리코가 가진 경쟁력의 핵심은 바로 연구 인력. 신도리코는 1982년 7월, 기술연구소를 개설, 150여 명의 연구 인력을 확보했다. 신도리코의 전체 사원 수가 500명도 채 안 될 무렵이었다. 그들은 제휴선인 일본 리코社에 매년 교차로 연수를 다녀와 기술을 하나둘 축적, 오늘날의 신도리코를 있게 했다.
이 연구소가 개발한 제품들을 보자. 1983년 건식 복사기(FT Ser), 1988년 국내 최초 독자설계 팩시밀리 (K-7/10), 1991년 국내 최초 독자설계 복사기(FT-1000 Ser), 1994년 세계 최초 퍼지잼(Fussy Jam) 복사기 개발 및 우수품질 인정마크(EM) 획득, 1997년 디지털 복사기 시그마(Sigma) 개발 및 국산 신기술 인정마크(KM) 획득, 2000년 디지털 복사기 러시안(Russian) 개발, 2001년 보통용지 레이저 프린터 블랙풋(Blackfoot) 개발, 2003년 디지털 복사기 디지웍스(DGwox) 개발 등이다.
현재 기술연구소 인력은 7개 부서에 200여 명. 매년 매출액의 5%를 연구비로 쓰며 국내외 특허만 244개를 얻었고, 실용, 신안, 의장, 등록상표를 합치면 1500개 가까운 실적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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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리코 기술연구소의 최신 작품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디지웍스(DGwox)」다. 2003년 8월 신도리코가 자체 연구, 생산한 디지털 복사기다. 실제 모습과 거의 비슷한 고화질 복사와 스캔이 가능하며, 프린터 기능, 팩시밀리, 편집 기능도 갖는다. 이 기능들은 한꺼번에 모두 개인용 컴퓨터에 연결돼 필요할 때마다 복사, 스캔, 프린팅, 팩스 송수신이 가능하다. 디지웍스는 세계 시장에서 가장 수요가 큰 분당 20~30장급 출력속도를 가진 차세대 주력 기종. 대당 200만원이 넘는 이 복사기는 현재 국내 디지털 복사기 시장 점유율 1위이며 해외로 연간 20만 대씩 수출되고 있다.
QSU(Quick Start Up) 기술을 탑재해 豫熱(예열)시간이 15초, 재예열시간은 10초밖에 걸리지 않아 빠른 시간에 필요한 자료를 복사할 수 있다.
현재 아산 공장에서 월 1만5000대, 성수동 공장에서 월 3000대가 생산되며, 2001년 出市된 레이저 프린터 「블랙풋(Blackfoot)」과 함께 양대 브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레이저 프린터의 경우, 2003년 7월 하순, 생산 1년 10개월 만에 100만 대 생산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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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리코가 개발, 생산하고 있는 제품은 품질에 비해 값이 싸기 때문에 외국에서 인기가 높다. 2002년까지만 해도 수출과 내수의 비율은 1대 1이었지만, 2003년부터 균형이 깨져 수출이 60%를 넘어섰다. 디지털 복사기와 레이저 프린터의 수출이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올해 수출회계연도(2002년 7월~2003년 6월) 기준으로 2억 달러를 넘어서서 지난 11월말 수출의 날에 2억 달러 수출탑을 받았고, 수출순위 공동19위를 차지했다. 연말기준으로 보면 수출액은 3억3000만 달러다.
국내에서는 연구개발, 생산, 판매를 모두 하지만, 해외에서는 마케팅을 현지기업에 맡기고 있다. 복사기는 일본의 리코社, 프린터는 미국의 렉스마크社가 맡아 자신들의 상표를 달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단순생산위탁(OEM) 방식이 아니라, 개발에서 생산까지 100%를 신도리코가 다 해내는 설계위탁생산(ODM)이기 때문에, 신도리코는 해외시장에서 제조능력을 갖춘 연구개발회사로 인식돼 있다. 단순 사무기기 제조회사가 아니라 전기ㆍ전자업체로 분류한다. 옛날과는 位相(위상)이 달라진 것이다.
일부에서는 自社 브랜드에 의한 수출이 아니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신도리코 측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같이 「세계 분업의 시대」에는 경쟁력 있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아산 공장장 張漢翼(장한익) 생산본부장(53ㆍ상무)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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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리코社는 2001년 11월, 아직 제조하지도 않은 「디지웍스」(수출명ㆍ리코 아피시오)를 3억5000만 달러어치나 미리 주문했다.
2000년 11월에는 프린터 시장 점유율 세계 2위이자, 미국 대표적 프린터 회사인 렉스마크社에 레이저 프린트 3억 달러어치를 수출계약했으며, 2001년 1억 달러를 추가계약했다. 2001년엔 영국의 제록스社에 디지털 복합기 피니셔 5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키로 계약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신도리코의 기술을 인정, 인증파트너십(MCP) 계약을 체결했다. MCP란 제품판매, 솔루션 공급, 기술지원, 교육 등 부문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전문성을 입증한 협력업체를 말하며, MS의 새로운 OA(사무기기)를 미리 공급받을 수 있어 디지털 복합기 및 프린터 드라이버를 더욱 더 빨리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신도리코의 판매조직도 강하기로 이름나 있다. 판매사원은 대졸자를 쓴다. 옛날부터 대졸자를 판매사원으로 뽑은 회사는 브리태니커, 제약회사, 신도리코 정도였다. 특히 ROTC(학군단) 출신이 많다. 그래서 판매조직에는 일사불란한 군대식 조직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각 기업체의 課(과), 부장 명함 100장 받아 오라는 식의 영업방식으로 사원들을 교육하고 있다.
판매조직이 강한 이유는 오너가 직접 앞장서서 조직을 지휘하고, 영업직과 일반직을 로테이션시켜 차별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禹石亨 회장은 사장 재직 때부터 판매조직을 직접 챙겼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과 소주를 먹으며 애환을 들어주고 한 달에 두 번 최우수 영업사원을 표창할 만큼 판매조직을 아낀다. 제록스社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신도리코의 영업조직이라는 말도 있다.
현재 전국에 지사 9개소, 서비스센터 12개, 판매점 500개, 네트워크 150여 점포가 있으며, 1000여 명이 판매일선에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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