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역사여행 - 서울에서 만나는 역사
모든 도시에는 성곽이 있었다. 성곽은 도시를 방어하는 구조물이자 도시와 그 외 지역을 구분 짓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물론 성곽을 가지지 않은 도시들도 있지만 대개의 도시들, 특히 서울과 같은 도읍은 으레 성곽을 갖추고 있었다. 전 세계 수많은 도시들이 성곽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성곽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는 극히 드물다. 역사도시 서울에도 성곽이 있다. 600년 넘게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한양도성이 그것이다. 한양으로 천도한 태조 이성계는 궁궐과 종묘사직이 자리를 잡자 도성의 축조를 시작했다. 한양도성은 한양사람들의 생활공간에 질서를 부여했고 성문이 여닫히는 리듬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았다.
한양도성은 서울을 둘러싼 네 산을 따라 축조된 까닭에 상당부분이 잘 남아있다. 산성을 쌓는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는 고구려 때부터 산성과 도성을 일체시킨 한국식 도성제를 발전시켜왔다. 내사산을 성곽으로 이어 평지성과 산성을 결합시킨 독특한 도성형식은 한양도성이 유일하다. 내부는 효과적인 도시 관리를 위해 격자형으로 구획했다. 중앙에 주작대로를 두고 종로와 남대문로를 두었다. 내부의 야트막한 구릉과 소하천이 지나는 세부 지형을 존중한 까닭에 경복궁과 숭례문은 일직선의 축을 이루지는 않는다.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격자형 가로망을 구현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역력히 배어있다. 한양도성은 자연을 이용하여 도시를 건설한 지혜와 합리성이 빚어낸 걸작이다. 이러한 가치를 근거로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유산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세계유산에 선정될 날도 머지않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낙산구간
마을과 아파트가 있던 이곳은 최근 들어 공원으로 단장되었다. 혜화문에서 출발하여 흥인지문까지 야트막한 비탈과 마을길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진 도성길은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게 걸을 수 있다. 장수마을로 잘 알려진 삼선동 인근의 도성에서는 세종 때 쌓은 도성의 성벽과 각자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부터 길안내가 친절하게 되어 있다.
출처:(문화유산 한양도성도감)
동숭동(Dongsung-dong, 東崇洞)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동.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 때 쌍계동(雙溪洞), 하백동(下栢洞), 신대동(新垈洞), 상백동 등이 동숭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대동, 하백동, 상백동, 쌍계동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동숭동이 되었으며, 같은 해 9월 경성부 동부출장소 동숭동이 되었다가 1915년 6월 출장소 제도가 폐지되어 경성부 동숭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동숭정이 되었으며, 1943년 4월 구제(區制) 실시로 신설된 종로구 동숭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이 동(洞)으로 바뀔 때 동숭동이 되었다. 법정동인 동숭동은 행정동인 이화동(梨花洞) 관할하에 있다. 동숭이란 지명은 숭교방(崇敎坊) 동쪽에 있다는 데 연유한다. 남상문, 쌍계동, 웃잣골, 아랫잣골, 신댓골 등의 자연마을, 신대우물, 백동우물, 큰우물,어수물 등의 우물이 있었다. 남상문은 조선 선조 때 군수를 역임한 남상문의 이름에서, 웃잣골은 잣나무가 있다는 데, 신댓골은 중종 때의 학자 신광한(申光漢)이 마을의 풍치가 아름다워 '신대명승(申臺名勝)'이라고 명명한 데 명칭이 연유하며, 129번지는 신광한이 살던 곳이다. 교육·공공기관으로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 국제교육진흥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구 서울대학교 본관(사적 278), 구 공업전습소 본관(사적 279) 등이 있다. 문화·휴식공간으로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예회관, 코메디아트홀, 학전블루, 마로니에극장, 문예회관소극장, 동숭공원(일명 마로니에공원) 등이 있는데 연면적은 각각 1512평, 60평, 122평, 57평, 138평이다.
출처:(두산백과)
동숭동 대학로((東崇洞大學路)
Dongsung-dong, Daehak-ro)
서울문화 대표하는 예술의 거리
1985년, ‘대학로’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됐다. 정부 주도로 ‘문화예술의 거리’를 조성하면서 사용된 명칭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곳은 경성제국대학이 들어서고 이후 서울대학으로 바뀌면서 대학가 문화가 주를 이뤘던 곳이다. 대학이 옮겨간 자리에 신촌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문화단체와 극장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2004년에는 인사동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 ‘문화지구’로 지정돼 서울의 문화를 대표하는 거리가 됐다.
아스팔트에서 막걸리 먹던 대학로 문화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 대학로는 언제나 들썩거리는 거리였다. 주말과 휴일이면 전국에서 제일 넓은 횡단보도가 있다던 대학로는 차 없는 거리로 조성됐다. 대신 그 자리는 젊은이들이 거리공연을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탔으며 한쪽에서는 막걸리 판이 벌어지는 왁자지껄한 공간이었다. 또한 학생운동의 중심지였다. 서울 곳곳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대학로에서 연합행사와 집회를 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탈선과 퇴폐의 공간으로 지적 받기도 했다. 학생들의 음주와 집단행동으로 인해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고 서울의대 학생들은 면학분위기를 해친다며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학로가 이렇게 시끌벅적해진 것은 1975년 서울대 캠퍼스가 이전하고 나서부터다. 당시까진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과 학생들의 하숙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캠퍼스가 이전해 간 자리에 1976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시작으로 문예진흥원 미술관(현, 아르코미술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현, 아르코 예술극장)이 들어섰다. 1989년에는 1천 석 규모의 대극장 동숭아트센터가 건립돼 연극을 비롯한 문화 공연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56년부터 이어온 학림다방 이야기
동숭동 한복판에는 53년을 이어온 다방이 있다. 지하철 공사로 인해 건물을 새로 짓기도 했고 소위 ‘다방커피’의 맛이 바뀌기도 했지만 반세기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대학로 터줏대감이다. 23년 전부터 학림다방을 운영해온 이충열대표는 대학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켜야 할 무엇인가가 이곳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이어오고 있어요. 여기서 대학생들이 작당(?)을 하기도 했고, 문인들의 모임도 있었고….” 요즘 젊은이들이 대학로를 그저 소극장과 술집이 많은 유흥공간으로 아는 것이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술 마시는 것도 문화예요. 예전에도 그랬고, 바로 그게 대학로의 모습이겠죠, 다만 문화를 단시간에 인위적으로 발전시키고 개발하는 정책에는 반대해요. 행정주도로 만들어진 문화는 오래가지 못하더라고요”라며 대학로의 변화에 대해 말했다.
알고 보면 근현대 문화유산도 가득
대학로에는 극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대학문화가 이곳에서 꽃을 피웠으니 근현대 문화유산도 가득하다. 동성고등학교가 있는 혜화동 로터리에서 종로 방향으로 내려가면 왼편에 가톨릭청소년회관이 있다. 이어 지하철역 부근으로 가면 도산 안창호선생이 조직한 흥사단의 본부가 있고 마로니에 공원이 이어진다. 이곳은 서울대학교의 본관이 있던 곳으로 대학로의 중심지다. 우측은 서울대병원과 의과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반대편의 나지막한 언덕은 ‘낙산’이다. 10분 정도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낙산공원이 나온다.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책로는 지난 2002년 새롭게 단장했다. 공원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살던 곳이며 초대 내각을 구성했던 사적 497호 이화장이 있다. 처녀시절부터 이곳에 살았다는 71세 할머니는 “지금이야 재개발 얘기도 있고 어수선하지만 이곳이 역사와 문화가 있는 동네”라며 자랑했다.
흥사단(興士團) 갤러리
도산 안창호가 실력양성을 주장하며 시작된 단체인 흥사단은 대학로에 본부를 두고 있다. 잡지 <새벽>을 발간했으며 약 10만여 명의 회원이 있다. 민족통일운동본부, 투명사회운동본부, 교육운동본부 등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내리면 대학로다. 버스는 종로에서 서울 동북부로 가는 노선은 대부분 대학로를 지난다. 대학로는 주차공간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낙산공원은 마로니에 공원을 가로질러 ‘낙산공원길’로 올라가면 된다. 낙산공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출처:(길숲섬, 이다일, 경향신문)
서울 답사는 대부분 13시에 집결합니다만, 이번 대학로 주변 코스 중에 대한의원 건물 내부에 의학박물관이 있는데 토요일 12시까지만 개방하는 관계로 오전 9시에 집결합니다. 광나루는 13시에 서울 답사 코스를 마치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CHINA路-한중연행노정답사연구회에서 오후 13:30부터 진행하는 <역사 속 옛 길, 영상으로 만나다> 강연을 참가(참가비 1만원)할 예정입니다. 제1~2차 강연 테마는 '연행노정', 제3차는 '조선 선비 최부의 <표해록> 여정', 이번 제4차 강연 주제는 '조선시대 해외 파병과 조선군 이동 경로'입니다. 본 강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직접 신청하시거나 광나루에게 알려주셔도 됩니다. 광나루는 서울 답사 진행 이후에 참가할 예정입니다만, 서울 답사 신청자가 없으면 바로 강연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서울 문화유산 답사 코스는 해설을 하지 않으며, 코스 안내와 간단한 소개(답사 자료 제공)만 합니다. 안내비는 1만원이며, 신청과 함께 안내비 입금을 신청 확정으로 간주합니다. 간식이나 생수는 개별적으로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안내비 입금 계좌 : 국민은행 045501-04-068534(예금주 : 이광국) 운영자 : 광나루(010-5039-0243), 메일(kryi2@hanmail.net) (주)세계문화투어 : 관광사업등록증(국내여행업) - 등록번호(제2013-000008) 국내여행업 보증보험(2천만원) 증권번호 : 100-000-201600654622 |
대학로 주변 문화유산 답사 코스 동선 및 전체 위치도 |
장수(長壽)마을
낙산공원 동남쪽 성벽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로 한국전쟁 후에 형성된 판자촌에서 기원한다.
60세 이상의 노인 거주 인구가 많아 장수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뉴타운 예정지였으나 주민투표로 뉴타운 재개발을 중단하고 마을재생 사업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주민들이 직접 집을 단장하고 골목길을 정비하여 지금처럼 산뜻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주민 참여형 마을재생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출처. 서울한양도성)
동숭동 대학로 내려가는 계단
동숭아트센터로 내려오면 대학로 골목에 맛집이 많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입구
파크 하얏트 서울
탄천 야경
성벽과 하늘이 잘 어울린다.
낙산 정상에서 바라본 낙산공원과 북한산
낙산공원
낙산공원
낙산공원 입구로 들어서면 성곽으로 오를수 있다
낙산구간의 중간쯤엔 낙산의 정상에 위치한 낙산공원이 있다
마을버스 정류장도 있다.
낙산공원
장수마을에서 암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들어가면 낙산공원 놀이광장이 나타난다. 낙산공원은 서울의 몽마르뜨 언덕이라 불릴 정도로 전망이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을과 야경은 특히 아름답다. 백악과 인왕산에서 서울의 원경이 보인다면, 이곳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도심을 느낄 수 있다.
(출처. 서울한양도성)
구불구불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돌아가는 성곽길
시원한 뷰를 자랑하는 낙산공원 옆 성곽길
뷰가 아름다운 장수마을 성곽길 성곽 너머로 저멀리로 북한산이 펼쳐져 있다.
성곽너머로 남산과 서울타워가 보인다.
한양도성길 낙산구간 흥인지문~이화마을~낙산공원~동숭동 대학로 거리 : 2.1km /소요시간 : 약 3시간 한양도성길의 낙산 구간인 낙산(124m)은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낮다. 생긴 모양이 낙타 등처럼 생겨 낙타산, 타락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낙산 구간은 경사가 완만하여 산책하듯 걷기에 적당하다. 흥인지문(興仁之門) <보물 제1호> 한양도성의 동대문이다. 현재의 흥인지문은 고종 6년(1869)에 다시 지은 것이다.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보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서울의 지세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동대문이 가장 취약하였다. 동대문 바깥쪽으로 옹성을 하나 더 쌓은 것은 이 때문이다. 1907년 좌우 성벽이 헐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서울 한양도성 안내판 작은 언덕에 조성된 미니 공원이다. 한양도성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 부속 동대문병원 일부를 철거하고 세운 서울디자인지원센터 1~3층에는 한양도성박물관이 있다. 방문객들에게 한양도성의 역사와 가치를 알려주며 순성 정보를 제공한다. (출처. 서울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오르다 돌아본 흥인지문과 주변 풍경 성곽길은 안쪽길과 바깥쪽 길로 다닐 수 있다. 성곽을 따라 걷는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성곽 넘어 창신동 절벽동네가 보인다. 사람사는 냄시 물씬 풍기는 성곽 길 흥인지문에서 낙산공원으로 오르다보면 '언덕을 타고 난 골목을 따라 '이화동 마을'이 나온다. 골목을 따라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전통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 성곽길을 따라 카페나 갤러리는 전망도 괜찮고 카페도 분위기가 있어 잠깐 쉬어가도 좋다. 이화마을 이화마을은 낙산 구간 성벽 바로 안쪽에 있다. 지은 지 오래된 주택이 많고 골목도 좁아 낙후지역으로 손꼽히던 곳이었다. 2006년부터 정부 지원 하에 예술가들이 건물 외벽에 그림을 그리고 빈터에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마을의 이미지가 밝고 화사하게 바뀌었다. 마을은 낙산 정상부까지 이어지는데 계단 끝에 오르면 한양도성이 울타리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성 안에 형성된 옛 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출처. 서울한양도성) 갈림길 옆 정자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남산을 비롯해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낙산 정상 |
2022-03-04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