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lar Kang
지난 2월, 중학교 1학년이 되는 아이가 다닐 학원을 알아보느라 학원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어느 수학 학원은 중1반도 가장 늦은 진도가 2학년 2학기였고, 영어 학원 역시 중간 레벨인데 고등학교 어휘를 공부하고 있었다. 학원은 많았지만 진도나 수업 시간 등 조건이 맞는 학원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그중 한 학원에 입학 테스트를 보러 갔다. 아이는 시험 보러 들어가고 안내해주시는 분이 물었다.
“어머니, 결과는 시험 종료 후 10분 후에 나옵니다. 기다리시겠어요? 전화를 드릴까요?”
“아, 그래요...? 그럼 전화로 알려주세요.”
아이에게 잘 맞는 학원을 고르겠다는 의욕보다는 등록 거부를 당하더라도 위축되지 말자는 결심이 더 컸다. ‘어머니, 죄송한데 저희 학원에는 학생 수준에 맞는 반이 없습니다’ 긴 시간을 기다려 그 말 한마디 듣는다면 민망할 거 같았다. 전화 상담이 가능하다니 다행이다 싶어 서둘러 학원을 빠져나왔다.
아이들은 이미 너무 많은 공부를 해오고 있었다. 벌써 고등 수준의 영어, 수학을 공부하려면 초등 시절에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한단 말인가? 이제 공부를 시작해보려는 딸아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제 시작인데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좋은 학교의 기준
중학교 시험은 90점 이상이면 A를 받는 절대평가(성취평가제)가 적용된다. 선행 과정 출제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시험문제도 어렵게 나오지 않고 선행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왜 많은 중1 아이들이 중3, 고1 과정을 공부하고 있을까? 고등학교에 가서 잘하기 위해서다. 고등 내신과 수능은 자신이 상위 몇 %에 속하는지로 등급이 결정되는 상대평가가 적용된다. 고교에 진학해서 좋은 등급을 받으려면 중2 때는 고등수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대 공식처럼 퍼져 있다. 그러니 앞서가는 아이들은 중1 때 고등 과정을 공부한다. 학교 내신과 수능은 상위 4%를 가리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고, 틀리라고 내는 문제를 맞추기 위해서 아이들은 일찍부터 공부에 온 시간을 쏟아붓는다.
고등학교의 선택 기준을 묻는 질문에 어느 교육 전문가는
“아이가 열심히 공부했을 때 성적이 오르는 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답을 했다. 그는 소위 ‘학군지’라는 곳은 워낙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성적 올리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 성적이 괜찮은 학생도 자신감을 잃고 자기 비하에 빠지는 쉽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 역시 아이에게는 “쫄 거 없어. 이제 시작이니까 기죽지 마.”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벌어진 격차를 과연 좁힐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상대평가 헌법소원, 변호사 100인의 선언
상대평가와 경쟁으로 인한 학생들의 교육권 침해는 참담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흥미와 동기 저하 문제는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심각합니다. 연구에서는 그 원인을 통제적인 학습환경, 경쟁으로 인한 불안과 스트레스, 빈번한 상대평가에서 오는 유능감의 박탈 등으로 파악하였습니다. 승리를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은 경쟁에서 이기는데 도움이 되는 손쉬운 수단만을 추구하고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지 않게 되므로 궁극적으로는 실패를 극복하는 힘을 잃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대입 상대평가가 야기한 경쟁교육 고통이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안기고 있는 인권 침해 수준의 현실을 사교육걱정과 100명의 변호사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오늘 헌법소원 및 위헌 선언에 나선 것입니다. ... (중략) 이 자리를 통해 사교육걱정과 100인의 변호사는 살인적인 경쟁을 유발하는 상대평가가 위헌임을 선언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 결정을 구합니다. 헌법재판소가 우리 학생들의 교육권, 행복추구권, 건강권, 수면권, 여가권을 보장하고 나아가 학생들의 삶과 생명을 살리는 결정을 해 줄 것을 간곡히 촉구합니다.'
- 대입 상대평가 헌법소원 기자회견 중에서
©연합뉴스
좋은 평가의 기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제기한 상대평가 헌법 소원이 법리적으로 얼마나 가능성 있는 싸움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100인의 변호사 선언문에 나와 있는 문장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인다.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유치, 초등 때부터 아이들은 영어, 수학 공부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공부를 하고도 불안하다. 이러다가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그 감각을 영영 잃어버릴까 걱정된다. 교육과 평가의 목적은 최상위권 변별이 아니다. 그 나이 때 학생에게 요구하는 적정 수준의 성취에 도달했다면 모두가 그에 걸맞는 점수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친구의 성취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성실히 노력한 자체만으로 제대로 평가받고 배움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길 바란다. 그러려면 절대 평가는 필수적인 선결 조건이다.
‘우리 아이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불행합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언론 르 몽드 지에서 한국교육을 취재한 뒤 내린 결론입니다. "한국의 아이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교육은 가장 경쟁적이고, 가장 고통을 주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을 언제까지 이러한 불행 상태에 방치해 둘 겁니까?'
-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 지지발언 중에서
헌법재판소가 아이들의 고통을 살펴 배움과 성장이 함께하는 교육의 길을 열어주길 기대한다. 과열된 이 경쟁 열기를 한 번에 끌 순 없더라도 절대평가는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누가 누가 ‘더’ 잘 하나가 아니라 우리 모두 잘 한다로, 한 벌 밀리면 끝장이 아니라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교육으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른이 할 일이다.
■ 글. 노워리기자단 송미소
학원에서 10년간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운동과 글쓰기를 꾸준히 하며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도 잘한다. 등대지역모임, 노워리 상담넷을 거치며 든든한 친구를 얻었다. 중학교 1학년 딸을 둔, 호기심만큼이나 걱정도 많은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