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는 로버트 치알디니가 저술한 『설득의 심리학』을 같이 읽었습니다.
꽤 오래 전에 『설득의 심리학』 책을 접했었는데 벌쩌 20년이 지나 20주년 기념 개정증보판이 나왔네요. 이정도면 이 분야의 고전이자 스테디셀러임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책의 초판 서문에서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네’라는 승낙을 이끌어내는 요인은 무엇일까? 어떤 기술을 사용해야 상대방을 가장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똑같은 요청도 이런 식으로 하면 단칼에 거절당하는데, 방법을 약간만 바꿔 저런 식으로 하면 놀라운 성공을 거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토대로 저자는 3년에 걸친 참여관찰 연구 과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유익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설득의 달인들이 상대로부터 ‘네’라는 응답을 끌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책략은 수천 가지에 이르지만, 대부분의 책략이 여섯 가지 기본 범주 중 하나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 범주는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온갖 책략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심리 원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에 설득의 달인들은 상대방에게 구매나 기부, 허락, 투표, 동의 등을 요청할 때 그런 원칙들을 능숙하게 적용해 그 엄청난 힘을 활용하여 막대한 득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대응력을 갖춰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급속히 발전하는 정보 과잉의 현대 사회에서 무의식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이런 특별한 기술들로 인해 우리가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이런 무의식적 설득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 그것들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ART 1 설득의 무기
우리는 현재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적응하려면 지름길이 필요합니다. 단 하루라도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건, 상황의 모든 측면을 전부 인식하고 철저히 분석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럴 만한 시간도, 에너지도, 능력도 부족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정관념이나 경험 법칙 등을 사용해 몇 가지 핵심적인 특징으로 대상을 분류하고, 이러한 특징들이 나타날 때에는 특별한 사고 과정 없이 자동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정형화된 행동 방식이 주어진 상황에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고정관념이나 유발 요인이라 할지라도 항상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고정관념의 부정확성을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목록을 만들고 평가하고 숙고하느라 꼼짝 못한 채 시간만 보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현대 사회의 징후들을 보면 앞으로는 이런 고정관념에 더욱더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점점 더 복잡다단해지는 삶의 자극에 대처하려면 지름길을 활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최근 연구에서, 우리가 일상적인 판단을 내릴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의사결정의 지름길을 밝혀냈습니다. ‘판단의 휴리스틱스(heuristics)’라는 이 지름길은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원칙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휴리스틱스는 모든 경우를 고려하는 대신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발견한 편리한 기준에 따라 일부만 고려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사고 과정을 단순화시키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효과를 발휘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믿고 따르게 하는 휴리스틱스입니다. 예를 들어 ‘전문가의 말은 진실’이라는 지름길 원칙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특정 분야의 권위자로 여기는 사람의 발언과 지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어리석은 경향이 있습니다. 전문가의 주장을 스스로 검토한 후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과는 상관없이 ‘전문가’라는 지위에 설득을 당하는 것입니다. 특정 상황에서 주어진 하나의 정보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이런 경향이 바로 ‘누르면, 작동하는’ 방식의 자동반응입니다.
요즘처럼 빠르고 복잡한 사회에서는 자신과 관련 있는 중요한 주제조차도 심사숙고해 결정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고민해야 할 주제는 복잡하고, 시간도 촉박하며, 주변은 산만한데다 감정적으로는 흥분해 있고, 정신적으로 피곤하기까지 하면 조리 있게 사고할 여유가 도저히 생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라면 중요한 주제든 아니든, 지름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 특유의 자동화된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동물들의 반응은 대체로 본능에서 비롯되지만, 인간의 자동화된 행동의 기록 장치는 대개 학습을 통해 습득한 심리 원칙이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 위력은 천차만별이지만 이 중에는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 원칙들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원칙들에 복종해왔고, 자라면서 계속해서 매우 광범위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위력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원칙들을 전부 파악하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무기로, 즉 자동화된 반응을 이끌어내는 설득의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응을 유발하는 설득의 무기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며, 그런 무기를 능숙하게 사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저런 사회적 만남을 통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데, 성공 확률은 눈부실 정도입니다. 그러한 성공의 비밀은 자신의 요청을 구조화하는 방법, 그리고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설득의 무기를 파악해 활용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어쩌면 강력한 심리 원칙을 끌어들여 우리의 자동화된 행동을 유도하는 기록 장치를 작동시킬 적절한 단어 하나만 찾아내면 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심리 원칙에 따라 자동적인 반응을 보이는 인간의 성향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방법은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설득의 무기들을 사용해 목표물을 공략할 뿐 자기 힘은 거의 들이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또 하나의 엄청난 부가 이득이 존재하는데, 바로 상대를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상대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심지어 당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 스스로도 어떤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의 계획에 따라 자신이 설득당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힘에 따라 행동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각각의 심리 원칙에 따른 자기만의 방어 논리가 있어야 겠습니다.
PART 2 상호성 원칙
상호성의 원칙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에 대해서는 심리학자 데니스 레건(Dennis Regan, 1971)이 실시한 실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진은 피험자를 다른 피험자 한 명과 함께 미술 작품 몇 점을 평가하도록 하는 ‘미술 감상’ 실험에 참가시켰습니다. 다른 한 명의 피험자(‘조’라고 합니다)는 동료 피험자인 척했지만 사실 레건 박사의 조수였습니다. 실험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조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조는 요청하지도 않은 작은 호의를 진짜 피험자에게 베풀었습니다. 실험 도중 휴식 시간에 조는 몇 분 동안 실험실을 나갔다가 콜라 두 병을 들고 들어와 한 병은 자신이 마시고 나머지 한 병은 피험자에게 건네주면서 “실험자한테 콜라 좀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해서, 같이 마시려고 한 병 더 사왔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실험에서 조는 피험자에게 아무런 호의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휴식 시간에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밖에 조의 모든 행동은 첫 번째 실험과 동일했습니다.
미술 작품 평가가 끝나고 실험자가 잠깐 실험실을 비운 사이, 조는 피험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당첨되면 신차를 받을 수 있는 복권을 자신이 지금 판매 중인데, 복권 최다 판매자는 상금으로 50달러를 받게 되어 있으니 한 장에 25센트짜리 복권을 구매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장만 사주셔도 됩니다.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요.” 이 연구의 주목적은 두 가지 조건에서 피험자가 구입하는 복권의 매수가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조는 당연히 처음에 콜라를 건네며 호의를 베풀었던 피험자에게 더 많은 복권을 팔았습니다. 조에게 뭔가 신세를 졌다는 생각을 한 첫 번째 피험자들은 아무런 호의도 제공받지 못한 두 번째 피험자들보다 두 배나 많은 복권을 구매했습니다.
레건의 연구는 상호성 원칙의 작동 방식을 매우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상호성의 원칙을 이용해 어떤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는 작은 호의로 비롯된 의무감이 훨씬 더 큰 호의에 대한 승낙을 얻어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상호성의 원칙에 따르면, 처음 호의를 제공하는 사람이 첫 번째 호의는 물론 보답의 형태까지 결정할 수 있는 까닭에 상호성의 원칙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불공평한 교환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를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레건의 실험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실험에서 조는 한 그룹의 피험자에게만 먼저 선물로 콜라를 제공한 다음, 실험 마지막에 전체 피험자에게 한 장에 25센트짜리인 복권을 구매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레건의 실험은 1960년대 후반, 즉 콜라 한 병 가격이 10센트이던 시절에 실시되었습니다. 물론 티켓을 일곱 장까지 구입한 인심 좋은 피험자도 있었지만, 10센트짜리 콜라를 받아 마신 피험자들은 평균적으로 복권을 두 장 정도 구입했습니다. 평균만 따져도 조는 상당한 이득을 올린 셈입니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500퍼센트라면 엄청난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빚진 느낌은 싫어합니다.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빨리 갚아버리고 싶어 합니다. 이런 기분의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호혜적 관계는 인간 사회에 매우 필수적이라 우리는 누구한테 신세를 지면 불편한 느낌이 들게끔 조건화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호의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호혜적 관계가 붕괴되면서 상대방은 다시는 먼저 호의를 베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은 사회에 전혀 유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갚아야 할 의무가 있을 때에는 불안한 느낌이 들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그렇다 보니 불편한 부채의식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받은 것보다 더 큰 호의를 베푸는 일까지 기꺼이 승낙합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상호성 원칙을 어겨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기만 하고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배척을 받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사람들은 때때로 불평등한 교환에 동의합니다.
내적인 불쾌감과 외적인 수치심이 결합하면 상당한 심리적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 심리적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호성 원칙에 따라 종종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내주는 사람들의 행동도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보답할 수 없는 처지일 때는 꼭 필요한 부탁조차 하지 않으려는 심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물질적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심리적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상호성 원칙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 위력을 차근차근 약화시키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호의와 양보를 모조리 거부하는 것은 추천할 만한 전략이 아닙니다. 이를 위한 보다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호의를 받아들일 때 무조건 선의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우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언젠가 보답을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런 식의 관계는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상대한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류 문명의 형성기부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유익했던 ‘명예로운 의무의 네트워크’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상대의 호의가 그에 보답하는 우리에게 더 큰 호의를 노리고 특별히 계획한 수단이자 술책이며 계략으로 밝혀진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이런 상대는 호의를 베풀려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이용하려는 사람입니다. 이 경우에는 우리도 정확히 동일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우선 상대의 제안이 호의가 아니라 설득 전략이라고 판단했다면 그에 알맞은 대응으로 상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상대의 행동이 호의가 아니라 설득 기술이라고 우리가 인식하는 한, 상대는 더 이상 상호성의 원칙을 동맹군으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상호성의 원칙이란 호의를 호의로 갚는 것이지, 속임수를 호의로 갚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상대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합니다. 그것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상황을 재정의하는 것입니다. 영업 사원한테 받은 모든 것은 선물이 아니라 판촉 물품과 같은 영업 도구였다고 재정의하면, 상호성의 원칙에 걸려들지 않고 자유롭게 구매 제안을 거절 또는 수락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호의에는 보답해야 하지만, 영업 전략에는 보답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상호성 원칙의 위력을 이용해 승낙을 얻어내려는 사람을 상대하는 최선의 방어 전략은 상대의 제안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첫 번째 호의나 양보는 선의로 받아들이되, 나중에 음흉한 속셈이 드러날 경우 호의나 양보를 술책으로 재정의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됩니다. 일단 그런 식으로 재정의하고 나면 상대에게 호의나 양보로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PART 3 일관성의 원칙
다른 무기들과 마찬가지로 이 설득의 무기도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조용히 우리의 행동을 조종합니다. 바로 자신이 이미 한 말이나 행동과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그리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이려는 욕망입니다. 일단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면, 우리는 스스로나 다른 사람에게 기존의 태도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습니다. 그 압력 때문에 우리는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할 수 있고, 당연히 그 결정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은 경우에 따라 우리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행동까지 하게 합니다.
일관성이 이토록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는 이유는, 일관성이 대부분의 상황에 적합한 가치 있는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일관성이 없는 성격을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으로 여깁니다. 신념과 행동, 말 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엉뚱하거나 표리부동한 사람, 심지어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반면에 수준 높은 일관성은 대개 뛰어난 인격과 지성이 연상됩니다. 일관성은 논리와 합리성, 견실함과 정직함의 핵심입니다.
일관성 있는 성격은 확실히 우리 문화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로 언제나 일관성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분명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관성이 없다면,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동화된 대부분의 반응과 마찬가지로, 일관성 역시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 지름길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주제에 대해 일단 마음을 정하면, 일관성을 고수하는 편이 훨씬 편합니다. 그 주제에 대해 더 이상 궁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제에 관한 자료를 찾아 정보의 바다를 헤맬 필요도 없고, 찬반을 결정하려고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도 없으며, 어려운 결정을 내리느라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주제와 맞닥뜨렸을 때 그저 일관성 기록 장치만 ‘누르고, 작동하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바로 알게 됩니다. 과거에 내린 결정에 맞춰 일관성 있는 생각과 말, 행동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과연 무엇이 강력한 일관성 기록 장치를 ‘눌러, 작동하는’ 것일까요? 사회심리학자들은 그 답을 ‘입장 정립’에서 찾아냈습니다. 일단 상대에게 어떤 입장이나 태도를 취하게 한다면, 이후로는 일관성의 원칙을 이용해 상대에게 자동적이고 무분별한 행동을 유도해내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단 어떤 입장을 정하면 그 입장과 일관성 있게 행동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심지어 최종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에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최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는 설득의 달인들은 입장 정립 전략을 이용해 우리를 공략합니다. 이런 전략들의 공통적인 목적은 일단 우리로 하여금 어떤 발언이나 행동을 하도록 한 다음 이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요구를 승낙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부 부도덕한 설득의 달인들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막대한 이득을 취합니다. 우리가 일단 어떤 선택을 하면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악용해, 그들은 그럴듯한 유인 요소를 제공해 선택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결정을 내리면 그들은 그 유인 요소를 제거해버립니다. 우리가 새로 만들어낸 이유와 근거를 바탕으로 기존 결정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장 정립과 일관성 원칙이 결합된 설득의 무기를 방어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일관성 원칙에 따르는 것이 대체로 유용하고 때로 필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어리석고 경직된 측면도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기계적인 입장 정립과 일관성 반응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자동적이고 무분별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동적 일관성은 대체로 경제적이고 적절한 반응을 가능하게 하는 유용한 측면도 있어 우리 삶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끔찍한 결과가 벌어질 것입니다. 만약 이전의 결정이나 행동을 자동적으로 반복하지 않고 일일이 모든 것을 심사숙고해서 행동해야 한다면 중요한 일을 수행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위험하고 기계적인 일관성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관성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일관성이 어리석은 선택을 유도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두 가지를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입장 정립과 일관성 함정에 빠져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승낙해야 할 때라면 상대에게 어리석은 일관성을 유지하느라 불합리한 요구에 응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초의 입장 정립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없을 때는 “시간을 되돌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같은 입장을 취했을까?”라고 자문해봐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적인 느낌이 정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PART 4 사회적 증거의 원칙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려는 우리의 성향을 악용해 이득을 취합니다. 바텐더들은 영업 시작 전에 마치 손님들이 남겨둔 팁인 양 팁 담는 병에 미리 지폐를 몇 장 넣어둡니다. 그렇게 지폐를 접어 팁 병에 넣는 것이 바의 관례라는 인상을 주기 위함입니다. 광고주들은 자사 제품에 대해 ‘최다 판매’나 ‘초고속 성장’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렇게 하면 품질이 우수하다고 직접적으로 광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일부 나이트클럽 주인들은 입장 공간이 충분한데도 손님들을 문 밖에 길게 세워놓고는 가장 인기 좋은 나이트클럽이라는 사회적 증거를 조작하기도 합니다. 영업사원들도 구매를 권유할 때 이미 제품을 구매한 기존 고객들의 이름을 최대한 많이 언급하라고 배웁니다. 영업교육 및 동기부여 강사인 카베트 로버트(Cavett Robert)는 이 원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확히 표현한 바 있습니다. “주도자는 5퍼센트뿐이고, 나머지 95퍼센트는 ‘따라쟁이’들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은 영업사원이 제시하는 어떤 증거보다 더 설득력이 높다.”
사회적 증거의 원칙은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증거를 제공하는 경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는 듯합니다. 바로 이것이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가진 위력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대체로 사회적 증거에서 제공한 정보를 선호합니다. 보통은 유용하고 가치 있는 정보들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증거를 참조하면 모든 일을 하나하나 꼼꼼히 조사하지 않고도 많은 결정을 손쉽게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제공하는 자동 판단장치는 비행기에 탑재된 자동 항법장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동 항법장치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주로 잘못된 비행 정보가 입력되는 경우입니다. 그럴 때 비행기는 궤도를 이탈하는데, 입력된 오류의 규모에 따라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증거의 원칙에서 제공하는 자동 항법장치는 대체로 실보다 득이 많아 함부로 연결을 차단해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이득을 안겨주지만 만만찮은 손해도 끼치는 이 장치를 과연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에 빠집니다.
다행히 한 가지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자동 항법장치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주로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는 경우이므로,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는 순간을 파악하면 됩니다. 자동 항법장치가 잘못된 정보를 기초로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작동시키려는 순간을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다면, 즉시 자동 장치의 연결을 차단하고 직접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동 항법장치가 객관적 사실이나 이전 경험, 이성적 판단 같은 다른 증거와 어긋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때때로 점검해야 합니다. 잠깐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노력이 그렇게 많이 들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다수가 보여주는 사회적 증거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따금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된 사회적 증거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원치않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ART 5 호감의 원칙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의 부탁은 웬만하면 들어주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잘 모르고 전혀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이 간단한 원칙을 이용해 우리한테서 온갖 허락을 받아낸다는 점입니다.
특히 설득의 달인들은 아직 우정이 형성되지 않은 관계에서도 호감의 원칙을 이용해 이득을 취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호감의 원칙을 이용하기 위해 상당히 직접적인 설득 전략을 사용하는데, 바로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는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크게 다섯 가지 요인들이 있습니다.
먼저 ‘신체적 매력’에 관한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자동적으로 능력 있고, 친절하고, 정직하고, 지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신체적 매력이 자신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 예로 채용 과정을 들 수 있습니다. 모의 면접 실험에서 외모가 단정한 구직자가 학력이나 경력 등 능력이 뛰어난 구직자보다 채용 확률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급여를 받을 때도 유리합니다. 경제학자들이 미국과 캐나다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매력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급여가 평균 12~14퍼센트 높았습니다. 그렇다면 설득의 달인들도 당연히 신체적 매력의 후광 효과를 자주 사용할 것입니다. 또한, 기업에서는 영업훈련 프로그램에 외모를 가꾸는 방법이 포함되고, 트렌디한 의류 매장에서는 외모가 뛰어난 점원을 선호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유사성’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비슷한 부분은 의견이나 성격, 배경, 라이프스타일 등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호감을 얻어서 어떤 승낙을 받아내려는 사람들도 당연히 목적 달성을 위해 다양한 부분에서 우리와 비슷해 보이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는 배경이나 관심사를 공유하는 척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중고차 매입 과정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영업사원이 당신의 트렁크에서 캠핑 장비를 발견한다면, 자신도 기회 있을 때마다 도시에서 벗어나 여행 다니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뒷좌석에서 골프공을 발견한다면, 내일 18홀을 돌 예정인데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또 자동차를 다른 도시에서 구매한 것을 알아차린다면, 고객에게 어느 지역 출신이냐고 묻고 나서 깜짝 놀란 얼굴로 자신도 동향 출신이라며 반가워할 것입니다. 이렇듯 아주 작은 공통점만 있어도 상대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공통점들은 얼마든지 위조가 가능해 ‘우린 서로 비슷하다’고 주장하며 접근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칭찬’에 관한 것입니다. 대체로 남의 칭찬을 별로 의심치 않고 칭찬해주는 사람에게 상당한 호감을 갖습니다. 노스캘리포니아 주에서 실시한 실험은 우리가 칭찬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피험자한테서 뭔가 얻어낼 것이 있는 사람이 피험자들한테 세 가지 종류의 말을 했습니다. 첫 번째 피험자 집단에게는 긍정적인 말만, 두 번째 집단에게는 부정적인 말만, 그리고 세 번째 집단에게는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을 섞어서 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세 가지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첫째, 피험자들은 긍정적인 말만 해준 사람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둘째, 긍정적인 말을 해준 사람이 뭔가 얻어낼 것이 있어 아부한다는 사실을 알아도 피험자들의 태도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셋째, 긍정이나 부정의 말과 달리 칭찬의 말만 하는 경우에는 칭찬 내용이 꼭 사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일단 아부꾼의 칭찬을 들은 사람들은 아부꾼을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은 칭찬만 들으면 자동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므로 호감을 얻으려는 의도가 노골적인 칭찬에도 쉽게 넘어갑니다. ‘누르면, 작동하는’ 반응입니다.
네 번째는 ‘익숙함’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대상과 자주 접촉할수록 그 대상에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사실은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한 예로 어느 실험에서 피험자들을 스크린 앞에 앉혀놓고 몇 사람의 얼굴을 잠깐씩 보여주었습니다. 얼굴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 피험자들은 화면에 얼굴이 더 자주 나타났던 사람에게 더 큰 호감을 보였습니다. 호감은 또한 사회적 영향력을 높여, 화면에 얼굴이 더 자주 나타난 사람일수록 피험자에게 더 큰 설득력을 발휘했습니다. 온라인 광고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일어납니다. 피험자가 읽고 있는 인터넷 기사 상단에 카메라 배너 광고를 각각 다섯 번, 스무 번,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실험을 했더니, 피험자들은 광고를 봤다는 인식조차 못한 상황에서도 광고가 자주 나타날수록 카메라에 대해 더 큰 호감을 보였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연상’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악의 없는 연상작용은 상대방에 대한 우리의 느낌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설득의 달인들은 자신이나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어떻게든 관련 지으려고 애를 씁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광고에는 대부분 매력적인 모델이 등장합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모델의 긍정적인 특징인 ‘아름다운 욕망의 대상’이 자동차로 전이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동차를 볼 때마다 자동적으로 매력적인 모델을 연상해 동일한 반응을 보이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그런 반응을 보입니다. 광고주들이 연상 원칙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또 다른 방법은 유명 인사들을 제품과 연관시키는 것입니다. 프로 운동선수들은 많은 돈을 받고 자기 분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제품(운동화, 테니스 라켓, 골프 공 등)이나 전혀 관련이 없는 제품(청량음료, 팝콘 냄비, 팬티스타킹 등)의 기업과 광고 및 후원 계약을 맺습니다. 대중은 유명 연예인 자체를 열망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자사 제품을 연예인과 연결 지으려고 고액의 광고비나 후원금을 지불합니다.
호감을 높이는 수많은 방법에 대해 일일이 방어 전략을 세우는 것은 무척이나 비효율적입니다. 그런 일대일 대응 전략으로 차단하기에는 호감을 높이는 방법이 정말 많습니다. 더욱이 신체적 매력이나 익숙함, 연상작용 등 호감을 이끌어내는 요소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용해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 각각의 요소에 대해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방어 전략을 적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신에 호감을 일으키는 요소가 우리의 결정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려 할 때마다 언제나 적용할 수 있는, 보다 일반적인 전략을 찾아내는 편이 유리합니다. 그런 접근 방식의 비밀은 ‘타이밍’에 있습니다. 호감을 일으키는 요소가 작동하기 전에 미리 알아채고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작동하도록 내버려둡니다. 설득의 달인을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게 하는 호감 유발 요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설득의 달인을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즉 특정 상황에서 특정 설득의 달인에 대해 필요 이상의 호감을 느끼면 바로 그 순간 방어 전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호감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집중하면, 호감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심리적 요인들을 파악하고 그것을 피하려고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설득의 달인들과 접촉할 때 호감과 관련해 오직 한 가지만 주의하면 됩니다.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빨리, 그리고 깊이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일단 그런 느낌이 든다면, 뭔가 술책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당장 필요한 조치에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어떤 부탁이나 거래 등을 승낙할 때는 항상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을 부탁이나 거래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일단 상대와 약간이라도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접촉을 하면 구분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물론 상대에 대해 별다른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는 구분이 흐려져도 특별히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에는 큰 실수를 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설득의 달인에게 불필요한 호감을 느끼지 않는지 항상 주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점에 있습니다. 그런 호감을 감지하면 즉시 상대가 제시하는 거래와 상대를 분리해 생각하면서, 오직 거래 조건만으로 구매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런 과정만 유의한다면, 설득의 달인들과 거래할 때마다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PART 6 권위의 원칙
권위자의 명령에 따르면 실제로 유익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나 교사처럼 우리보다 더 똑똑한 권위자를 따르는 것이 확실히 유익합니다. 그들이 더 지혜롭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상벌을 매길 권한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면 권위자가 고용주나 판사, 정부 지도자 등으로 대체되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이런 권위자들을 따르는 것이 유익합니다. 권위자들은 사회적 지위 덕분에 더 많은 정보와 힘을 갖고 있으므로 그들의 요구에 따르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것을 너무 당연시하다 보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명령에도 그대로 따르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권위의 압력이 상당히 강력하고 가시적으로 작용하는 의료 분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실제로 미국 의회에 보건의료 정책을 조언하는 의학협회에 따르면 입원 환자들에 대해 하루 평균 최소 한 번씩의 투약 실수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 중 한 사례로 ‘직장 귀염증’이라는 기이한 경우가 있습니다. 한 의사가 귀에 염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오른쪽 귀에 귀약을 넣으라고 처방했습니다. 그런데 처방전에 ‘오른쪽 귀(Right Ear)’라고 정확히 명시하지 않고 약자로 기록하는 바람에 ‘항문(R ear)’처럼 보였습니다. 처방전을 받은 담당 간호사는 즉시 지시대로 환자의 항문에 귀약을 넣었습니다.
귀 염증인데 항문에 투약을 하라는 얼토당토않은 처방이었는데도 환자나 간호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화의 중요한 교훈은 합법적인 권위자의 말은 비합리적이고 이상하다 할지라도 그냥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직접 전체 상황을 파악하는 대신 권위자의 말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분별없는 행동을 하면 틀림없이 거기서 이득을 취하려는 설득의 달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광고주들은 의사가 존경받는다는 점을 이용해 자사 제품 광고에 의사 역할을 맡은 배우를 출연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우 로버트 영(Robert Young)이 사람들에게 카페인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카페인이 없는 상카(Sanka) 브랜드 커피를 추천하는 TV 광고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광고는 대성공을 거둬 상카 커피 매출이 크게 늘어나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광고가 그토록 큰 효과를 발휘한 이유는 미국 대중이 로버트 영을 보면서 그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오랫동안 연기한 의학박사 마커스 웰비(Marcus Welby)를 연상했기 때문입니다. 건강 문제와 관련해 의사 역할을 연기한 배우의 조언에 좌지우지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고 상카 커피를 구입했습니다.
여기서 권위 있는 인물에게 보이는 우리의 자동반응과 관련해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르면, 작동하는’ 반응은 실제 권위자뿐 아니라 단순한 권위의 상징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징들 중 일부는 실제 권위자가 없는 경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권위를 갖추지 못한 설득의 달인들이 주로 이런 상징들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기꾼들이 늘 권위자의 직함이나 복장, 장식 등을 휘감고 다니는 것입니다. 멋진 옷차림으로 고급 차에서 내려 ‘먹잇감’ 후보들에게 자신을 의사나 판사, 교수, 무슨 위원이라고 소개하면, 상대가 금방 넘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위의 위력에 대항할 수 있는 한 가지 전략은 불시에 당하고 놀라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권위, 그리고 권위의 상징이 우리의 행동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므로 설득 상황에서 권위의 원칙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방어 전략은 권위의 위력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동시에 권위의 상징을 매우 위조하기 쉽다는 사실까지 인식한다면, 누군가 권위의 힘으로 설득하려 들 때 자신을 적절히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상당히 간단한 방법처럼 보입니다. 권위의 원칙이 작동하는 방식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가 한 가지 숨어 있습니다. 사실 모든 설득의 무기가 갖고 있는 전형적인 문제인데, 우리가 모든 종류의 권위에 저항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권위자들은 충분히 믿고 따를 만한 실력을 갖추었고, 그들은 대체로 전문가입니다. 따라서 권위자, 즉 전문가의 조언을 외면하고 훨씬 경험과 정보가 부족한 자신만의 판단을 따르는 것은 자칫 어리석은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권위자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 또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런 이유로 권위자의 지시에 따라야 할 때와 따르지 말아야 할 때를 간단히 분별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두 질문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권위를 행사하려는 이 사람이 정말 전문가인가? 이 전문가는 과연 얼마나 진실하게 행동하고 있는가? 첫 번째 질문을 통해 우리는 권위자가 신뢰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와, 그 자격이 당면한 현안과 관련이 있는지에 관한 진짜 권위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을 통해서는 전문가의 지식이 상황에 적합한 지식인지에 대한 여부뿐만 아니라 전문가가 얼마나 진실성 있게 대처하는지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혹시 자신에게 약간 불리한 정보를 먼저 제공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지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전략을 통해 일단 진실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형성되면 나머지 정보들이 더 믿을 만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상대의 권위를 입증할 증거를 찾다 보면 우리는 자동 복종이라는 심각한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PART 7 희귀성의 원칙
일반적으로 희귀하거나 희귀해질수록 그 품목의 가치는 높아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한정 판매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한정 판매는 희귀성의 원칙을 가장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로 고객들에게 어떤 제품이 수량 부족으로 금방 매진될 것 같다고 홍보하는 전략입니다.
이때 수량이 부족하다는 정보는 진실인 경우도 있지만 완전히 거짓인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그 의도는 물품의 희귀성을 알려 가치를 높이려는 것입니다. 설득의 달인들은 이 간단한 도구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기본적인 방법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제품이 가장 희귀해진 순간, 즉 재고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순간에 제품을 판매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한정 판매와 비슷한 전략으로 ‘마감 시간(deadlime)’ 전략도 있습니다.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시간을 공식적으로 제한하는 전략입니다. 사람들은 평소라면 별로 하지 않았을 행동도 마감 시간이 임박하다는 이유만으로 행동에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리한 상인들은 이런 성향을 이용해 마감 시간을 공표함으로써 갑자기 고객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곤 합니다.
여기에 마감 시간 전략을 약간 변형해 구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궁극적인 마감 시간, 즉 ‘지금 당장’ 전략을 추가합니다. 지금 당장 구매하지 않으면 나중엔 더 높은 가격으로 구매해야 한다거나 아예 구매할 기회가 없다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TV 홈쇼핑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 희귀해지면 더 갖고 싶어 하지만, 그 물건이 경쟁 상태에 있으면 그보다 훨씬 더 갖고 싶어 합니다. 어떤 때는 한정된 물건을 놓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다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대규모 정리 세일 등에서 구매에 너무 열중하다 감정적으로 변하는 고객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경쟁자들이 몰려들면 평소라면 관심도 없었을 제품을 차지하려고 서로 밀쳐가며 몸싸움을 벌입니다.
전문 낚시꾼들과 백화점들은 이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해 낚아 올리고 싶은 고객 또는 물고기에게 경쟁적 열정을 일으킵니다. 물고기를 끌어들이고 자극하기 위해 낚시꾼들은 미리 밑밥을 뿌려둡니다. 마찬가지 목적으로 할인 판매에 들어가는 백화점들은 ‘미끼 상품’이라 불리는 질 좋고 저렴한 제품을 몇 개 골라 대대적으로 광고를 합니다. 그러면 물고기 떼가 밑밥에 몰려들듯 수많은 사람들이 미끼 상품을 구매하러 백화점으로 몰려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경쟁하다 보면 점점 흥분해 맹목적이 되어버립니다. 물고기나 사람이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잊어버리고 경쟁의 대상이 된 것에 무조건 달려드는 것입니다. 빈 낚싯바늘을 물고 갑판에서 퍼덕거리는 참치나, 백화점에서 잡동사니를 한아름 사들고 돌아와 어리둥절해하는 사람이나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희귀한 자원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마다 우리는 매우 높은 수준의 경계 태세를 취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희귀한 대상을 사용하는 데서가 아니라 소유하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 대해 희귀성의 압력을 느낄 때마다 자신이 그 대상에서 원하는 것이 소유 가치인지, 사용 가치인지 자문해야 합니다. 만약 희귀한 대상을 갈망하는 이유가 그것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사회적ㆍ경제적ㆍ심리적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그때는 희귀성의 압력에 굴복해도 됩니다. 그럼에도 희귀성의 압력을 통해 자신이 그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희귀성은 손에 넣기 어려울수록 가치는 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실제로 사용하려고 뭔가를 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먹고, 마시고, 만지고, 듣고, 운전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때에는 어떤 대상이 희귀하다는 이유만으로 더 맛있고 더 느낌이 좋고 더 운전이 잘되고 더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희귀한 대상을 접하면 사람은 감정적 동요를 일으켜 사고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먼저 흥분한 감정부터 진정시키고 자신이 그 대상을 원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검토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PART 8 의사결정의 지름길 사수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판단할 때 입수 가능한 모든 관련 정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전체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정보만 이용합니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들은 올바른 판단을 유도하는 경우도 많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실수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더욱이 영리한 설득의 달인들이 우리의 그런 실수를 이용하려 들면, 우리는 더 곤란하고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정보들을 자주 참고하는 이유는 우리를 바른 결정으로 인도해주는 가장 신뢰할 만한 정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설득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상호성, 일관성, 사회적 증거, 호감, 권위, 희귀성이라는 요소들을 그토록 자주, 그리고 자동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각각의 원칙이 어떤 경우 상대의 부탁을 수락해야 할지, 수락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매우 믿을 만한 단서를 제공해줍니다.
우리는 이런 단서들만 참고해 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습니다. 상황을 철저히 분석할 만한 의지나 시간, 에너지나 인지적 능력이 없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또한 바쁘고 압박감이 심하며 불확실하고 무관심하고 정신이 산만하고 피곤한 경우에도 되도록 최소한의 정보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을 내릴 때는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최선의 단편 정보’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그런 단편적인 정보라도 정말 신뢰할 만한 정보라면, 그 정보에만 집중해 자동반응을 보이는 방법이 딱히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평소라면 믿을 만한 단서였을 정보를 이용해 누군가 우리에게 잘못된 조언을 제공하고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유도하는 경우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수많은 설득의 달인들은 기계적이고 맹목적으로 지름길을 선택하는 우리의 성향을 이용해 이득을 얻습니다. 점점 빠르고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지름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분명히 이런 전략을 사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이익을 얻으려는 동기 자체를 적대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동기는 사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다 갖고 있습니다. 절대 묵과하면 안 되는 진짜 부당 행위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름길 반응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훼손시키는 경우입니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신뢰할 만한 지름길, 바람직한 경험의 법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지름길 반응을 일으키는 증거들을 조작하거나 위조, 또는 오도하는 설득의 달인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반격을 가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름길 원칙이 최대한 효과적이기를 원합니다.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계략으로 지름길 원칙이 제 기능을 못할수록, 우리는 점점 지름길 원칙의 사용을 꺼릴 것입니다. 그러면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일을 일일이 심사숙고한 뒤 결정해야 하는 곤란에 빠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에 단호히 맞서 귀중한 지름길 원칙을 사수해야 합니다.
이로써 설득 전문가 로버트 치알디니가 저술한 『설득의 심리학』을 같이 읽어 보았습니다. 책 읽기를 마무리하면서 간단히 책 내용을 되짚어 봅니다.
책의 첫 부분에는 어미 칠면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미 칠면조는 새끼를 보살피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양육 방법에 있어서는 묘한 점이 있습니다. 이는 새끼 칠면조가 내는 ‘칩칩’ 소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새끼가 ‘칩칩’ 소리를 내면 어미는 새끼를 보살핍니다. 새끼가 ‘칩칩’ 소리를 내지 않으면, 어미는 새끼를 무시하거나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한 가지 소리에만 의존하여 새끼를 보살피는 것이죠. 마치 버튼을 누르면 작동되는 로봇과도 같이 말입니다.
인간에게도 이와 비슷한 면들이 있습니다. 단 하나의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하여 행동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과거 그 어떤 시대와도 다르게 놀라운 기술 발전으로 정보와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그로 인해 선택권이 엄청나게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결정장애라는 말이 일상어가 될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것들에는 어미 칠면조의 ‘칩칩’ 소리와 같은 누르면 작동되는 ‘자동 판단 장치’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불순한 의도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곤란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심사숙고하여 결정한다는 것도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는 설득의 달인들에게 대항할 대응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책의 내용 중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응력은 ‘사회적 증거의 원칙’에 관한 것입니다. 이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주도자는 5퍼센트뿐이고, 나머지 95퍼센트는 ‘따라쟁이’들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은 영업사원이 제시하는 어떤 증거보다 더 설득력이 높다.”
사실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에 맞추어 따르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특히나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증거를 제공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이 주는 좋은 점은 모든 일을 하나하나 꼼꼼히 조사하지 않고도 많은 결정을 손쉽게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마치 비행기에 탑재된 자동 항법장치와 같이 사회적 증거가 제시하는 바에 따른 자동 판단 장치 하나를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잘못된 비행 정보가 주어진다면, 잠시 궤도를 이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자동 판단 장치가 객관적 사실이나 이전 경험, 이성적 판단 같은 다른 증거와 어긋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때때로 점검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다수가 보여주는 사회적 증거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는 이따금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된 사회적 증거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원치않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책에서 제시하는 여섯 가지 원칙들을 잘 숙지하여 부당한 이득을 보려는 설득의 달인들에게 ‘봉’이 되는 것과 같은 상황은 피해야겠습니다. 오히려 이 원칙들을 잘 활용하여 결정해야할 많은 것들을 단순화하여 삶의 질을 높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