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다빈치 코드>의 반기독교적인, 명시적 묵시적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1. 신약성경은 믿을 수 없는 거짓이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아들 하나님이 아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주가 아니다.
<다빈치 코드>의 반기독교적 줄거리
안양대 추태화 교수는, <다빈치코드>의 반기독교적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q. in "렝던 죽이기" in www.newspower.co.kr):
1. 예수 그리스도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
2.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남자 제자들에게 박해를 받아 프랑스로 도피했다
3. 남자 제자들은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몰아내기 위하여 부정한 여인이라는 음모를 꾸며 “여성"을 제거했다.
4. 콘스탄틴 왕은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성경을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재편집하게 했다.
5. 예수와 마리아의 후손들이 프랑스 메롤링어가와 결혼하여 그 혈통의 선조가 되었다.
6. 한편 가톨릭 교회는 이 사실이 공개되지 못하도록 지속적인 방해공작을 해왔다.
7. 예수의 후손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시온수도회의 이름으로 성전기사단을 설립하여 그 후손을 보호해왔다.
8. 시온수도회는 성배와 예술을 상징적으로 활용하여 이 비밀을 간직해 왔다.
9. 더 이상 그 비밀을 묻어둘 수 없어 세상에 폭로할 때가 되었다.
10. 기독교는 위 사실을 숨겨왔기에 선을 가장한 위선적인 종교이다.
머리말
5월 18일에 <다빈치코드>라는 영화가 개봉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영화를 관람하셔도 되지만,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아마 영화 관람후 기분이 매우 언짢고 혼란스러울 겁니다.
그 배후에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와 역사적 진실을 부인하는 악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여기서 먼저 분명하게 해 두고 싶은 것은, <다빈치 코드>가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책이며, 따라서 거짓으로 가득 찬 이야기라는 겁니다.
어떤 악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기 위해 국에다 소량의 극독을 넣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그것을 먹고 죽었습니다.
<다빈치코드>는 역사적 소재들라는 국 속에 자칭 "역사적 진실"(실제는 거짓)이라는 극약을 타 놓았습니다. 그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자는 영적으로 모두 죽습니다.
저자 댄 브라운이 사용한 국 즉 역사적 소재들은 예수 그리스도, 막달라 마리아, 콘스탄틴 대제와 종교회의, 영지주의 문서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화 "최후의 만찬," 성배(최후의 성만찬에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신 잔) 등입니다.
댄 브라운은 이런 소재들 속에 거짓이라는 독을 집어 넣었습니다. 즉, 읽는 이가 영적으로 죽도록 하기 위해, 모든 역사적 진실을 뒤집어,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댄 브라운은 모든 역사적 소재들을 그럴듯하게 완전히 왜곡시켜 놓았습니다. 역사적 진실과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속아 넘어가기 안성맞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거짓말은, 최대한도의 역사적 사실들에 최소한도의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거짓을 집어 넣어 전체의 진실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량의 국에 소량의 극약을 타 국전체를 독약으로 만드는 매우 악랄한 수법이죠. 댄 브라운도 이런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2.
나아가 댄 브라운은, 자신의 거짓 주장을 주인공들의 입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저자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주인공들이 마치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 의인들, 선한 사람들인 것처럼 꾸며 놓았습니다. 그들이 경찰에 쫓기면서 진실을 파헤쳐가는 것처럼 줄거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독자는 긴장감과 흥미 때문에 손에 땀을 쥐게 됩니다.
그런데 주인공과 자신을 무의식중 동일시하는 것이 독자들의 심리죠.
그러므로 역사적 진실을 모르는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의 거짓말에 세뇌당할 수 있습니다. 댄 브라운이 노린 게 이것입니다!
3.
또 하나, 저자는, 교회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의 이미지를 아주 나쁘게 그림으로써 간접적으로 교회를 욕하고 있습니다. 독자들과 교회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는 거죠. 이것은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사용한 수법입니다. 하나님을 나쁘게 묘사함으로써 하나님과 하와를 이간질시켜 하와가 하나님께 불만을 품고 범죄하게 한 거죠.
4.
마지막으로 저자는 일반인이 잘 모르는 사실들을 반기독교적으로 이슈화함으로써 최대한도의 상업적 흥행을 노렸습니다.
개요
<다빈치 코드>의 반기독교적인, 명시적 묵시적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1. 신약성경은 믿을 수 없는 거짓이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아들 하나님이 아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주가 아니다.
설명
자 그러면, 그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 볼까요?
1. 신약성경은 믿을 수 없는 거짓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크게 두 방면으로 논의할 수 있습니다.
(1)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믿을만한 것인가? (영지주의에 관해서는 맨뒤의 "주 2"를 보세요.)
<다빈치코드>에 의하면,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에서 콘스탄틴 대제와 성직자들이 80개 이상의 복음서들을 신약성경에서 제외하고 오직 4복음서만 채택했다고 합니다. "남성 우월적이고 성억압적인" 신학에 따라 이에 위배되는 책들은 배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는 최소한 3가지 이상의 오류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 콘스탄틴 대제와 니케아 종교회의 참석 성직자들은 신약의 정경 문제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 회의에서 논의된 주 의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냐, 아니면, 하나님보다 열등하냐? 라는 것입니다.
둘째, 문헌들의 확실한 증거에 의하면 신약성경 27권은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부터, 1세기부터 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정경 27권은 니케아 종교회의가 아닌 히포 종교회의(393년)와 카르타고 종교회의(397년)에서 재가되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확정된 게 아닙니다. 이미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교회에서 인정하고 있던 정경을 그 회의들에서 다시 확인했을 뿐입니다.
셋째, 다른 복음서들, 소위 영지주의 문헌들은 정경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어떤 책이 신약 정경으로서의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사도성(사도들이나 사도의 동역자들이 지은 것인가), 저작시기적절성(1세기 중에 저작되었는가), 교리적 적합성(구약성경 및 신약의 다른 성경과 교리적으로 일치하는가), 초대교회의 수납성(초대교회 여러 교회에서 이를 성경으로 받아들였는가), 성령의 영감성 등의 요소를 두루 갖추어야 하는데, 영지주의 문헌들은 이 중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저작자가 사도들과 전혀 무관합니다. 예컨대 <빌립복음서>를 빌립이나 그의 동역자가 지었다고 믿는 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둘. 왜냐하면 영지주의 문서들의 저작시기는 아무리 이른 시기로 잡아도 주후 150년 이후이기 때문입니다.
셋.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교리적으로 구약성경 및 신약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영지주의 문헌의 내용에는 허무맹랑하고 비성경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넷. 초대교회가 영지주의 문헌들을 성경으로 인정했었을까요? 천만에요. 영지주의는 사도들과 초대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은 사상입니다.
다섯. 신약의 정경 27권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들입니다. 그러나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성경과 영지주의 서적들을 비교해 읽어보면 그 질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 서적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지 않은, 오류 투성이 책들이기 때문입니다.
댄 브라운이 창조해낸 <다빈치코드>의 인물은 이런 모든 요소를 역전시켜 마치 신약성경은 가짜이고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진짜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2) 신약성경은 허구에 근거한 글인가?
<다빈치코드>에 따르면, 신약성경의 내용은 꾸며낸 이야기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가짜라는 거죠. 신약에서 묘사된 예수님은 진짜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꾸며지고 미화된 가짜 예수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많은 학자들이 소위 "역사적 예수," 진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애썼지만, 그들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문헌상의 증거나 고고학적인 증거도 제시할 수 없었고 오로지 추측과 자신의 편견으로 색칠한 엉터리 예수만을 그려놓았을 뿐입니다.
신약성경 기록의 역사적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John Warwick Montgomery, <History and Christianity>에서).
첫째, 성경의 본문이 현재까지 오류 없이 전달되었는가.
성경 원본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본들만 남아있는데요, 그것들이 오류없이 전해졌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신약성경의 일부 사본 단편들은 주후 125년까지 연대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헬라어와 라틴어 번역본까지 합해 1만 3000개 넘는 신약성경 사본들은 모두 한결같이 내용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필사자들은 진실된 마음으로 오류없이 필사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음이, 모든 사본들의 내용 일치에서 증명됩니다. 만일 일부러 왜곡하거나 미화하고자 했다면, 전혀 엉뚱한 내용들이 들어가고 사본들 간에 내용상으로 극심한 차이를 보였을 것입니다.
고대의 어떤 문헌도 신약성경처럼 많은 사본이 없고 신약성경처럼 원본과 사본간의 시간차(약 250년)가 적은 게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시이저가 쓴 <갈리아 전쟁기>는 사본 수가 고작 10개 뿐인데, 그것도 원본(주전 100년-44년 사이에 저술됨)과의 시간 차이가 무려 1천년이나 됩니다(최고로 오래된 사본이 주후 900년 경에 만들어짐).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런 고대 문헌들의 신빙성을 그다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그토록 집요한 공격을 받을까요!
둘째, 성경 자체가 성경을 오류없는 기록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엄격한 역사적 사실들을 조사한 다음, 이를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셋째, 고대의 다른 역사적 문헌들이 신약성경의 본문 내용이 정확함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유명한 역사가였던 요세푸스(주후 37년경 -100년경)도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도록 넘겨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게 당시의 예수 사건에 대해 보고한 문헌을 보면 그 내용이 성경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제자들이 조작하고 미화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조작하고 미화한 가짜를 위해 순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 때부터 지금까지 수백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가짜를 믿고 진실하게 살았다는 것도 개연성이 없습니다. 성경을 믿는 자는, 강도도 창녀도 살인자도 거짓말쟁이도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아들 하나님이 아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니케아종교회의에서 논의한 주의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냐, 그보다 열등하냐 라는 문제였습니다. 결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피조물로서 그 신성이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학설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니케아회의는 이 문제를 확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압도적인 지지로 (참석자 328명 중 두 명만이 반대), 성경의 증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며 아버지가 낳으신 분이고 그 신성이 아버지와 동등함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빈치코드>에 따르면, 콘스탄틴이 예수를 신격화시켰다고 합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혹은 아들 하나님이심을 확언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신성이 아버지와 동질이며 예수님의 영광과 권능이 아버지와 동등함을 명시 혹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지주의 문서들도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성경 내용의 진실성과 일맥상통합니다. 앞에서 이를 논했으므로 넘어갑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주가 아니다.
<다빈치코드>에 따르면,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사라는 갈리아 지방으로 가서 메로빙 왕조를 세웠고 그 후손들이 아직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무런 역사적 근거가 없는, 그리고 일고할 가치도 없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죽음 후 부활했으며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녀와 결혼했다면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이 사실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설은 영지주의 문서인 <빌립복음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에 의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동반자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예수는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다. 예수는 모든 제자들보다 더 자주 그녀의 ( )에 입을 맞추었다." { ( ) 안은 원문이 훼손된 부분임}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동반자"라는 단어이며 또 하나는 "예수님이 그녀의 ( )에 입을 맞추었다"는 문구입니다. <다빈치코드>에서 티빙이라는 인물은 이 단어가 아람어로 "배우자"를 뜻하기도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실상 <빌립복음서>는 아람어가 아닌 콥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아람어도, 콥트어도 아닌 헬라어 "코이노노스"(친구, 동료)에서 차용된 낱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낱말의 의미는 "동료"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가 들어간 위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동료였다." 누가복음 8:3에서 여러 여자들이 예수님 일행과 함께 하며 자신들의 소유물로 예수님과 12제자 일행을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이자 동료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현장에 관한 복음서들의 기록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한결같이 주인공으로 묘사된 점을 보면, 그녀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주님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입니다. 순결하신 주님은 부활 후까지도, 막달라 마리아가 너무 기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만지려 하자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버지께 아직 올라가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20:17).
또 하나,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을 보면 입맞춤이 당시의 사회적 관습, 그리스도인들의 관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입맞추라."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어느 부분(아마 볼)에 입을 맞추었다는 것은 당시의 사회적 관습상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이 <빌립복음서>는 3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학자들이 추정하는, 믿을 수 없는 가짜 복음서라는 사실을 말이죠. 설사 위의 인용구가 역사적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을 증명하는 내용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결혼하셨다면 그 중대한 사실을 어찌하여, 그토록 진실하고 순결했던 제자들이 숨겼겠습니까? 또 역사적 문헌들에서 왜 그에 관한 아무런 증거도 발견되지 않습니까?
<다빈치코드>는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그린 성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오른 편에 있는 인물이 여자로서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하며 그녀가 바로 "성배"(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신 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다빈치가 그 그림 속에 그린 막달라 마리아가 바로 역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코드(암호)라는 겁니다. 여기에서 "다빈치 코드"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인물은 수염이 없고 여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당대 다른 작가들의 그림에서도 사도 요한은 수염 없는 여성스런 모습으로 나옵니다. 만일 그가 마리아라면 그림 속에서 요한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면 그는 인류의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나 죄인과 결혼한 평범한 인간이 인류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므로 유죄한 인간과 결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주장은 예수님의 구주 되심을 암묵적으로 부인하는 해괴망측한 거짓말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 후 그의 신부된 교회와 영적으로 결혼할 것입니다. 이것은 지상의 결혼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도 황홀하고 아름답고 거룩하고 행복한 영적 연합입니다.
4. 마지막으로, 기독교가 미트라 신화를 베꼈다는 주장도 고려할 가치가 없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미트라 신화가 생겨나기 수백년 전에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했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진리는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무엇을 흉내내거나 베낀 적이 없습니다.
결론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경만큼 많은 공격에 시달린 책도 없습니다! 기독교 만큼 많은 핍박과 공격을 당한 종교는 없습니다! 예수님 만큼 많은 오해와 의심을 받은 분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서 여전히 의연하게 서있고 기독교는 세계의 참된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주로 세계 수십억명의 사람들에게 경배와 숭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 분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저와 여러분의 구주, 무한히 자비로운 구주이십니다. 할렐루야!
<다빈치코드>는 성경과 기독교와 예수님에 관한 한 거짓말코드입니다. 악을 바꾸어 선으로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아멘.
주1 : 이 글은, 어윈 루처 저, <다빈치코드 깨기 The Davinci Deception>를 많이 참조했음을 밝혀 둡니다.
주2: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영적 지식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거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지식을 통해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영지주의는 원래 기독교 사상 더하기 페르샤 종교 및 각종 신비 종교 사상들이 혼합된, 일종의 혼합주의 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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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리 스트로벨의 저술, <다빈치코드 해체>(사랑플러스)에 의거해 국제제자훈련원에 서 만든 <다빈치코드>의 허구성에 관한 글을 여기에 수록합니다:
영화 '다빈치코드'가 개봉 11일만에 관객 240만 명을 동원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댄 브라운의 원작소설이 워낙 논란을 일으켰던 터라, 따로 마케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각종 미디어에서 대서특필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발길을 끌었습니다. 원작을 읽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원작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개봉과 더불어 극장을 찾았습니다.
물론 깐느 월드 프리미어 이후 평론가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고,‘야후 무비’에서의 평점도 평론가 C+, 관객 B로 낮아, 앞으로 그 기세가 어느 정도 유지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원작소설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지 못함으로 인해 영화는 원작에 비해 그 파장은 작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실제로 미국 박스오피스에서는 지난 주 개봉한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게 1위를 내주며, 개봉 후 1주일 만에 큰 격차로 2위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여부와 상관없이, 교회의 지도자인 우리에게는 '다빈치코드'와 관련해서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요구되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예일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의 탁월한 언론인으로, 교회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찬 냉소적인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변증가로 거듭난 리 스트로벨의 “다빈치코드 해체”(사랑플러스)를 중심으로 '다빈치코드'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단지 소설 혹은 영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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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1.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거짓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실제로 패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도 많습니다. 단적인 예로, 고대세계의 가장 큰 시민전쟁 중 하나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역시 승자인 스파르타가 아니라 패자인 아테네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누스가 등장하기 150~200년 전부터 정경은 이미 존재해 왔고,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예수의 신성 문제는 토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와 막달라 마리에 관한 비밀을 3천년 동안 전수해 왔다고 주장하는 시온수도회야말로 A.D. 1099년에 예루살렘에서 창설된 것이 아니라, 1956년 파리에서 피에르 플랑따르라는 사람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시온수도회는 플랑따르가 날조하여 파리 국립박물관에 숨겨둔 문서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며, 그 역시 1993년 자신이 전체 시온수도회 조직을 날조했다고 인정했습니다. 해체2. 사복음서는 의도적으로 가공된 이야기다? 또한 그가 어디에서 80개나 되는 복음서를 찾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복음서는 오히려 예수를 더욱 신비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신약성경에 포함된 복음서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강조하는 반면,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복음서는 예수를 오히려 더욱 초자연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복음서를 없앴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또한 댄 브라운이 인용한 복음서는 기독교 영지주의를 신봉했던 사람들이 쓴 것으로, 이 사상은 2세기와 3세기에 번창했던 사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신약성경의 복음서보다 휠씬 나중에 나온 것임으로, 이런 후기 문서들을 초기의 문서들보다 사실에 대해 더 정확히 알려 준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는 직간접적인 목격자들의 증언에 뿌리를 둔, 사건과 아주 가까운 시기에 쓰여진, 저자에게 조작이나 삭제의 자유가 있었다면 편집과정에서 분명히 삭제되었을 법한 제자들에 관한 당혹스런 내용이나 예수의 말이 담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과 성경 외부에 있는 고대 저들에 의해 그 정확성이 확증된 유일한 복음서인 것입니다. 해체3. 예수는 원조 페미니스트였다? '다빈치코드'는 신약의 복음서보다 휠씬 후에 나온 두 개의 영지주의 복음서인 빌립복음과 막달라마리아복음을 의존하여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데, 실제로 이들 중 어느 것도 예수가 누군가와 결혼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 저서는 성적인 행동을 본래 악한 것으로 보는 영지주의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성적 연합의 의미를 갖는 결혼이라는 개념 자체를 아예 배척했을 것이 뻔합니다. 또한 '다빈치코드'에서는 빌립복음에서 예수와 마리아와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동료’라는 말은 실제로는 아람어로 ‘배우자’를 뜻한다고 주장하지만, 빌립복음은 아람어가 아닌 곱트어로 쓰여졌으며, 이 단어는 십중팔구 ‘자매’를 의미하였을 것이라고 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의 입술에 키스했다고 추정되는 내용 역시 빌립복음의 실제 사본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세기 성자들의 공동체를 보면 결혼 안 한 랍비와 유대선생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1세기 랍비들은 결코 독신으로 지내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예수가 결혼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마리아라고 주장할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많은 미술사가들은 세 가지 이유에서 사도 요한이라고 인정합니다. 첫째는 요한은 그 그림의 다른 어디에도 없습니다. 둘째는 요한은 상당히 여성적인 외양을 갖춘 것으로 종종 묘사됩니다. 셋째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스스로 그 인물이 요한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더군다나 초기 스케치를 그리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해체4. 예수는 인간이었다? 부활과 관련해서는 다섯 가지의 기본적이고 거의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정말 죽었습니다. 로마인들이 그의 죽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둘째는 그는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 무덤 주인의 이름-아리마대 요셉-까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셋째는 그가 묻힌 무덤은 3일 후에 비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반대자들조차 인정한 것입니다. 넷째는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가 살아있는 것을 다시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거를 위해 기꺼이 죽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전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죽음에 직면했어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이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할까요? 그것은 바로 의심 때문입니다. 지난 20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교회가 했던 일에 대해 의심해 왔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다빈치코드'를 통해 자신들이 듣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보는 것일지 모릅니다. '다빈치코드'가 말하는 바가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믿고 싶었던 것들을 읽고 보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성경 대신 '다빈치코드'에 호감을 보이는 이유는 성경이 자기 포기, 즉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일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의 삶을 양도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이 싫어서 성경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다빈치코드'를 계기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진리가 얼마나 타당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말씀인지를 깨닫고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