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겔33:10 - 11)
황해국목사
(서울서북노회/일산세광교회)
몇 년 전, 히트했던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 증권사의 펀드매니저가 주식으로 큰돈을 벌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고아원을 살리기 위해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고 하자 아들은 자기의 친부모를 죽이고 한 경찰관이 그를 수사하는 내용이다. 영화의 장면 중, 아들에 의해 죽어가던 어머니가 아들이 남긴 손톱을 삼키면서 죽는 모습이 나온다. 아들은 부모를 죽이는 패륜을 범했어도 부모는 자식이 그것 때문에 붙잡힐까봐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아들의 손톱을 삼켜 버린 것이다. 영화의 감독은 간접적으로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죄를 지은 우리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본문 11절에서는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하셨다. 이 말은 마치 부모가 패륜아들이라도 잘되기를 바라듯 하나님은 악한 자라도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말이다. 최근 총회는 300만 성도운동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각 노회별로 전진대회를 개최하고 전국 교회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여 새로운 영적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일을 현장에서 준비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 일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고 당연한 일인데도 이 일을 준비하고 실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도를 위해 힘을 쏟을수록 그만큼 훼방도 많고 할 일도 많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많은 학자들, 전문가들은 우리가 전도를 잘하려면 가장 먼저 우리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는 목표를 분명히 알아야 그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을 수도 있고 그곳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첫째, 영혼을 살리는 것,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그들이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했다(11절). 그러면서 돌이킨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어 나온다. 이 말은 ‘돌아간다, 회복한다, 새롭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악인이라도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이유는 그들도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은 그 어떤 영혼도 사망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선교하던 몰간 이라는 선교사가 있었다. 그가 열심히 선교했지만 주민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효과적인 선교사역을 위해 2주 동안 금식한 후 산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부인이 새파랗게 질려서 딸이 열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었다. 몰간은 딸을 위해 다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데 ‘몰간아, 너는 죽어가는 네 딸 때문에 그렇게 마음 아픈데, 지금 병들고 못 먹고 죄로 인해 죽어가는 저 많은 백성을 바라보는 아버지로서의 내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느냐?’ 하셨다. 몰간은 깜짝 놀라 부인에게 그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는 기도를 바꾸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기 딸의 건강과 회복보다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여러 민족과 불신 세계의 전도를 위해 그날 밤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중 날이 밝았는데, 그가 딸에게 갔을 때는 그 딸 아이가 깨끗이 회복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자녀들은 너무 소중하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자기의 목숨이라도 바꿀 마음이 있다.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사역과 마음에서 다시 확실해 진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 자기를 모욕하고 멸시하는 저들을 향해 예수님은 ‘하나님, 용서하소서! 저들은 지금 자기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간청했고, 눅13:6 이후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비유를 보면 열매 없는 무화과를 보면서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라고 주인에게 간청을 하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영성 학자는 예수님의 심장을 쪼개면 다 타서 새까맣고, 그 장을 살피면 단장의 모습을 가졌을 거라고 말한다.
단장의 아픔이란 중국 진나라 때, 나온 말인데, 한공이 배를 타고 좁은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는데 그의 종이 강변에서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잡았다. 그는 원숭이 새끼와 놀면서 강을 따라 내려갔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어미 원숭이가 구슬피 울며 배를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미가 발버둥 치며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었는데 그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또 이조 중종 때, 어떤 사람이 꾀꼬리 어미와 새끼를 함께 키우다 새끼를 다른 초롱에 넣었더니 어미 새가 먹이를 먹지 않고 자기 머리를 새장에 부딪쳐 죽었는데 그 새도 창자가 다 녹아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단장의 슬픔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의 마음은 다타들어갔고 그 장은 단장의 아픔을 지니셨다. 악인이라도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단장의 아픔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했다. 생명을 살리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시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요,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둘째,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이기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롬1:14~15에서 자기는 복음에 빚진 자라고 했다. 빚진 자란 채무를 졌다는 뜻으로 당시 관습으로는 채무를 갚지 않을 경우, 의무를 져버린 사람으로 취급되어 아주 엄한 형벌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빚진 자들은 빚을 진만큼 갚아야 하고, 주인의 탕감이 없는 한 원금과 이자를 반드시 정해진 기간 안에 갚아야 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빚진 자들이다. 복음 안에서 생명의 빚을 진자들이기에 우리도 빚진 자가 빚을 갚을 의무가 있었던 것처럼 생명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대문호 미우라 아야꼬는 훌륭한 작품을 많이 쓴 크리스천 문인이다. 그녀의 작품은 TV, 영화로 가장 많이 제작되었다. 그녀는 24세 때 폐결핵을 앓았고 특히 척추결핵 카리스에라는 질병으로 요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병원에 마에까와 다다시라는 폐병환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자기도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예수를 믿고 너무 감격하여 환자들에게 전도했다. 그녀의 전도를 받은 미우라 아야꼬는 그 후 13년간 병상에 있으면서도 믿음으로 병을 극복하게 되었다. 건강해 진 다음 미우라 아야꼬는 복음의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위대한 기독교의 진리를 드러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들이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고전9:16)고백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오늘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백성으로 하나님의 생명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빚을 지었는가?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 예수님의 희생, 그리고 누군가 나를 믿게 하기 위해 숨은 수고는 얼마나 했으며, 미숙한 나를 참아주고 기다려 준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 까닭에 오늘 내가 있는 게 아닌가? 에스더가 에스더 될 때까지 모르드개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듯이 오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이다.
칠레 늪지대 ‘리노데르마르’에는 개구리가 있다. 그들은 작은 개구리들이지만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수컷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젤리 같은 물질에 담고, 수컷은 이를 삼켜 식도의 소리주머니에 넣고는 그때부터 수컷은 먹지도 않고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알이 깰 때 비로소 입을 열어 올챙이를 쏟아내고 수컷은 탈진해 죽는다. 개구리 수컷이 계속해서 똑같은 희생을 해가기 때문에 이 개구리들은 엄청난 번식이 있게 되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기 까지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빚을 갚기 위한 똑같은 수고를 해야 되지 않겠는가?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입은 사람으로 서기까지 여러 사람의 은혜를 입었고 복음의 빚을 졌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전함으로 우리가 진 빚의 일부라도 갚아야하는 것이다.
셋째, 우리가 복음을 전할 가장 큰 이유는 이 일이 가장 중요하고 보람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람된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하나님은 악인을 깨우쳐 그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지 않으면 그 피 값을 우리에게서 찾겠다고 하셨다.(겔3:18) 왜 하나님은 저들의 피 값을 우리들에게서 찾겠다고 하셨을까? 이 말은 그만큼 저들을 소중히 생각하니 저 영혼들이 죽지 않도록 너희가 수고하라는 말이다.
최근 일본에서 ‘너를 잊지 않을 거야’라는 영화가 개봉 4주 만에 일본영화계에서 10위권을 차지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이 영화는 일본 도쿄 신고쿠보역에서 취객을 구하다 의롭게 생을 마친 이수현의 실화를 영화화 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수현씨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대단히 존경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찮은 술꾼의 생명도 소중히 여겨 자기의 목숨을 버렸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는 것이다.
영혼의 가치는 가장 작은 자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자라도 다 소중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을 건지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이다. 마18:6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다. 또한 마16:26에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고 했다. 이러한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만큼 영혼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하찮게 생각되는 생명이라도 영혼의 무게는 같은 것이고 하나님 편에서 모두 다 존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생명 건지는 일이 하나님 편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람된 일이 되는 것이다. 탤런트 한인수씨의 명함에는 이런 글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만난 후 당신이 나를 잊는다 해도 당신은 잃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 분을 잊는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는 자기보다 예수님을 잊지 않도록 명함에 새겨서 전한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 걸까? 이 일이 가장 크고 보람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차피 무슨 일이든 하면서 산다. 기왕 일하면서 살 인생이라면 가장 보람되고 중요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리라.’(단12:3)고 했다. 약5:19-20에서는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고 했다. 복음은 우리의 운명이요, 사명이다.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자. 우리 모두 가장 보람되고 중요한 이 일을 잘 감당하여 하늘에서 큰 자요, 칭찬받는 자로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