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3년 전에 제 동창회 사이트에 올린 글입니다. 선생님을 감히 이렇게 평가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강좌를 신청하게 된 이유가 담겨 있기도 한 글입니다.
(오래 전에 쓴 글이니까, 비어는 애교로 봐주세요^^)
TV에서 몇 번 본 젊은 소설가 이만교에 대해 내가 받은 인상을 얘기하자면, 외모는 거의 신승훈과 성시경 스타일로 안경을 낀 계란형의 핸섬한 얼굴이고 앉아 있는 모습만 보았지만 분명 늘씬한 키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다가 말은 얼마나 조리있게 하는지 웬만한 교수들의 말솜씨 보다 훨씬 더 세련스럽고, 솜씨뿐만 아니라 말의 내용도 정확하고 충실했다. 한마디로 세련된 외모에 해박한 지식, 그리고 유창한 언어 구사력의 소유자로 보였다. 여러가지를 두루 갖추었으니 좀 샘이 났다. 텔레비젼에서 본 몇 번의 인터뷰와 토론 프로그램에서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분명 서울대를 나왔고 아마 국문과를 다녔을 것이며 90년대 초반 학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에 적힌 그의 프로필을 보니 나이는 불과 나보다 두 살 아래이고 배재대학과 인천대를 거쳐서 책이 발간된 2000년 당시 인하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이 <오늘의 작가상>을 받고 출간될 당시부터 이 책을 읽을 마음이 별로 없었다. 결혼이 반드시 미친 짓은 아니지만 비합리적인 제도라는 것은 누구다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라는 생각과 함께 한 젊은 놈이 누구나 다 알고는 있지만 공공연히 말하지 않는 사실을 센세이셔널하게 발표했구나 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뒤로 소설이 엄정화, 감우성 주연으로 영화화 되고나자 소설을 읽을 마음은 더더욱 없어지고 말았다. 사실 영화도 보지 않았다(나중에 보았음). 텔레비젼 영화정보 프로그램에서 짧게 요약된 내용을 보고는 이것은 분명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와 같은 영화같지도 않은 영화라고 단정지어버렸다. 더구나 엄정화는 나에게 전혀 섹시하지 않는 여자이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TV 독서프로그램인 <TV 책을 말하다>에 나온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의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핸섬한 도시적 얼굴과 해박한 지식, 특유의 달변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이끌어 가는 주된 내용은 물론 두 남녀의 애정행각이다. 소개팅으로 두 남녀가 만나고 만난 첫날 차 마시고 영화 보고 술 마시고 그리고 결국 여관으로 가고......
그런 다음 둘은 수시로 만나 섹스하고 여자는 시간강사인 남자가 좋긴 하지만 인생을 걸기에는 계산이 맞지 않자 의사와 결혼한 뒤 계속 남자를 만나고, 시간강사인 남자 주인공은 결혼의 환상과 위선을 공격하면서 독신이 주는 자유로움에 젖어지내고......
별반 대수로울 것도 없는 줄거리이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센세이셔널 하지도 않다. 그냥 잘 놀고 있는 현대의, 우리 시대의 청춘 남녀의 모습을 그린 소설(영화)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소설은 재미있게 읽힌다. 영화보다 섹스어필하고 유머러스하다. 이 소설의 경우도 영화가 소설을 망쳤다. 이 소설의 장점은 별반 대수로울 것도 없는, 그렇게 센세이셔널 하지도 않는 두 남녀의 애정행각을 지루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끌고 간다는 점이다.
가령, 둘이 나이트에 갔을 때
“ 「솔직하게 말해봐!」
「뭘?」
「도대체 너한테 나는 누구야?」
「뭐가?」
「우리는 도대체 어떤 사이냐구!」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
「나도 몰라」
「그러면 누가 알아?」
「옆 테이블에 가서 물어볼까?」
나는 일어나 옆 테이블로 가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에게 물었다.
「저 여자와 내가 어떤 사이 같아요?」
여자가 그녀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애인 사이요」 남자 녀석은 시니컬한
표정으로 농담했다. 「신혼 부부죠?」
나는 돌아와서 그녀에게 대답했다.
「탤런트 아니냐고 하는데? 네가 너무 미인이래!」
그리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 춤판 속으로 들어갔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 「야경이 마음에 든다!」
그녀가 창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도시는 흐린 날 선글라스를 쓰고 바라보는 낮만큼 어두워져
있었다.
「턱없이 비싸긴 하지만 여기 스테이크 맛이 일품이야」 내가 추천했다. 그녀는 그러나 스파게
티를 시켰다.
「엊그제 비디오를 보는데 여주인공이 스파게티를 너무너무 맛있게 먹는 거야. 그 뒤로 계속
스파게티를 먹고 싶은 거 있지」
「실은」 내가 말했다. 「나도 스테이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게다가 여긴 처음이야」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아까 잡지책 보다가 기억해 두었지. <연인들이 함께 가볼 만한 서울의 음식점 50곳>에서」
「하하」 웃고 나서 그녀가 둘러보며 말했다. 「깨끗해 보여. 마음에 들어」”
이런 경쾌한 장면들을 엄정화와 감우성의 연기가 담아내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영화만큼이나 빠르게 읽히면서 만화만큼이나 킥킥대는, 그러나 소설답게 독자를 깊은 생각에 빠뜨려놓는 글을 쓰는 것이다” 라고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해 말한다.
영화에는 안 나오는 소설다운(?) 글을 소개하면,
“(......) 마치 텔레비젼의 채널처럼, 다양한 삶의 양식이 서로 어긋나는 삶의 공식들이 하나의 세계에 공존하고 있으며,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나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다만 채널을 돌려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을 너무나 또한 잘 알고 있다. 집이 소란하고 시끄러울 때는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쇼핑을 하면 된다. 친구들이 시덥잖을 때는 애인을, 애인이 시시할 때는, 그 애인과 따따부따하기보다는 채널 돌리듯 새애인으로 바꿔버리면 되는 것이다.
(......) 우리 세대는 각자의 내면이 아예 텔레비젼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우리는 텔레비젼으로 세계를 인식하며, 따라서 세계에 대해 논평하지 않고 텔레비젼에 나온 것들에 대해서 논평한다. 그나마 귀찮으면 우리는 텔레비젼을 끄듯이 신경을 끈다. 다시 세계가 궁금해지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듯 전화를 걸어보거나 각양각색의 공간들을 조금씩 기웃거려본다.”
다 맞는 말인가, 맞지 않는 말인가. 맞기도 하고 맞지 않는 것도 같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벨이 울린다. 그녀일지 모른다. 수화기에 손을 올려 놓은 채 나는 망설인다. 벨은 끊겼다가 다시 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나는 상관없는데, 그러나 한 가지만 선택해서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상관이 없다니, 나 같으면 간통죄를 계속 저지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는 상황일 텐데. 환장할만한 여유다. 한 채널도 잘 안나와서 낑낑대는 사람도 있는데, 여자를 채널 돌리듯 바꿔버린다고? 그래서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작가는 결혼을 했고, 작가 후기에 아내의 헌신적인 도움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극중인물과 실제인물을 곧잘 혼동’하는 우리 부모 세대들처럼 나는 아직도 작중 인물과 작가를 늘 혼동한다. 혼동이 아니라 거의 일치시킨다. 그래서 작가의 결혼과 ‘결혼은 미친짓’이라는 말을 연결하는 데 한참 시간을 들인다. 결혼이 미친 짓이든 아니든, 이 소설의 장점은 이런 내용과는 무관한 것 같다. 그냥 현대적 젊음의 한 모델을 경쾌하고 발랄하게, 시니컬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그리고 있다는 데 있다. 자, 이제 어떤 채널로 돌릴까. 무라카미 하루키 채널로 돌려볼까?
첫댓글 히. 나를 설대 졸업생으로 봤다니. 소설 인용문에서 주인공이 나이트에서 옆사람에게 자신의 정체를 물어보듯, 때로 타인의 평가야말로 한 사람의 실질적 객관적 정체성일진대, 어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