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열심히 일하고 혈색도 좋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다시는 회복되지 못한다. 우리 주변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이같은 돌연사 혹은 과로사의 원인은 심근경색 등 관상동맥경화에서 오는 허혈성 심장질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빨리 걷거나 계단을 오를 때 가슴이 조이거나 뻐근한 통증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더러는 잠을 자다가도 통증을 참지 못해 잠을 깬다. 이럴 때는 또 다른 허혈성 심장질환인 협심증을 의심해볼만하다. 허혈성 심장질환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통로인 관상동맥에 지방성분 등의 노폐물이 쌓이면서 혈관이 좁아져(동맥경화) 심장근육에 충분한 양의 피가 공급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글자 그대로 심장에 피가 모자라(虛血) 산소가 부족하게 됨으로써 생명을 위협받게 되는 것. 좁아진 혈관 때문에 심장으로 피가 제대로 못가게 되는 것이 협심증이고, 혈관이 완전히 막혀 심장으로 피가 전혀 못 들어가게 되는 것이 심근경색이다. 삼성의료 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관상동맥경화증 발병률은 5배나 높아졌다. 산재질병으로 사망하는 우리나라 근로자 4명 가운데 3명의 사인(死因)은 과로나 직업성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뇌, 심장혈관질환이다.
삼성의료원 내과부장 이원로박사는 『협심증은 심장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예고하는 증세로, 어떤 의미에서는 대책을 마련하는 단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협심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가슴통증. 주로 가슴 한복판에서 가슴 전체로 묵직한 압박감이 확산된다. 목이나 팔(대개 왼팔)까지 통증이 퍼지기도 한다. 흉통은 없고 턱과 양쪽 뺨 아래 부분에 통증을 느껴 치과를 찾거나 어깨와 팔 통증으로 정형외과를 찾는 협심증환자들도 있다. 통증은 최소 1분에서 10분 정도까지 계속되다가 씻은 듯이 가라앉으며, 주로 운동량에 비례해 생긴다. 즉 언덕이나 계단을 오를 때는 통증이 느껴졌다가 움직임을 멈추면 깨끗이 사라진다. 흉통이 있을 때 가슴을 손으로 눌러 통증이 느껴지면 이는 흉벽에서 오는 것이지 심장에서 오는 통증은 아니다.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심장 노이로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갑작스런 긴장이나 흥분으로 심장의 고동이 높아지는 심계항진도 협심증 증상의 하나이다. 전형적인 협심증은 이처럼 증상이 명확해 문진(問診)만으로도 90% 이상 진단이 가능하다. 협심증 발작을 가라앉히려면 안정을 취하거나 관상동맥확장제인 니트로글리세린을 혀밑에 넣고 녹이면 된다. 통증이 15분 이상 몇시간씩 계속되면 불안정형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으로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협심증이 있는 사람이 니트로글리세린을 3분 간격으로 2회 이상 넣어도 효과가 없으면 일단 심근경색을 의심해야 한다. 흉통이 느껴지지 않는 이른바 무통증 심근경색도 조심해야 한다. 이 경우 흉통은 없더라도 갑작스럽게 무력감에 빠지거나 호흡이 곤란해지고 현기증이 생기거나 땀을 많이 흘리는 등 심근경색의 다른 증상들이 발견된다. 심근경색이 되면 신체의 자체보호 시스템에 따라 막혔던 혈관이 자연스럽게 다시 뚫리는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때문에 심근이 소생되기 힘들 정도로 썩어들어가기 전에 병원으로 옮겨 응급조치를 받게 해야 생명을 건질 수 있다. 심근경색이 되면 심장의 수축력이 약화되어 혈압이 떨어지고 폐에 물이 차고 몸이 붓는 심부전증 증세가 온다. 심부전증이 심해지면 대개는 사망한다. 대체로 심근경색 발병후 6시간이내를 치료 가능시기로 보고 있지만, 1시간안에 혈전용해제를 투여해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것이 좋다. 치료방법의 발전에 따라 요즘은 최장 12시간 이내까지도 소생이 가능해졌다. 허혈성 심장질환의 진단과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은 혈관조영술. 허벅지나 팔의 동맥에 「카테터」라는 가느다란 튜브를 연결하고 관상동맥안으로 조영제를 주사해 관상동맥의 막힌 위치와 정도를 모니터로 관찰하는 방법이다. 흔히 「풍선확장수술」이라고 불리는 경피적 관상동맥 성형술은 끝부분에 풍선이 달린 카테터를 관상동맥 안에 밀어넣은 다음 좁아진 동맥 부분에서 풍선을 확장시켜 혈관을 확장시키는 방법이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심장에서 기구를 조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험부담이 따르고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풍선 대신 레이저나 빠르게 회전하는 금속의 마모력을 이용해 경화된 부위를 없애주는 방법도 있다. 요즘엔 확장시킨 혈관이 다시 좁아지지 않게 「스텐트」라는 일종의 철망을 혈관속에 고정시키는 방법도 이용된다. 약물치료나 풍선확장수술이 여의치 않을 경우 관상동맥 우회수술을 실시하기도 한다. 다리의 정맥이나 가슴의 벽에 있는 동맥을 떼어 좁아진 관상동맥 부근에 우회로를 만들어 주는 방법이다. 도로가 혼잡할 때 고가도로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이식한 정맥은 경화가 더 빨리 진행되는 수도 있다.
현재 풍선확장수술은 30∼40%, 스텐트를 설치하는 경우 20% 정도의 재발률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심장질환 치료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재발률을 낮추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예컨대 스텐트에 방사성동위원소를 입혀 혈관조직에 영향을 줌으로써 조직의 성장을 저해하는 방법 등이 임상시험단계에 있다. 한방치료에서는 자각증상을 특히 중요시한다. 경희의료원 한방2내과장 배형섭박사의 설명. 『심장질환은 한사(寒邪·찬 공기, 혹은 외부의 나쁜 기운) 화열(火熱) 담음(痰飮·불필요한 체액) 어혈(瘀血) 등 다양한 원인에서 발병하므로 직접적인 병리학적 치료보다는 증상의 증후군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고려대의료원 순환기내과장 노영무박사는 『동맥경화로 인한 심장질환은 예방이 가능하며, 또한 예방이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고지 방식을 적게 섭취하는 식생활, 금연, 적당한 운동 등 당장 실천이 가능한 예방법이 대부분이라는 것. 동맥경화는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찾아온다. 가족 중에 동맥경화 환자가 있는 경우 다른 가족에게도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관상동맥경화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다. 이같은 나이 가족력 남성 등의 위험인자들은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피할 수 없는 조건들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위험인자들은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흔히 동맥경화의 「3대 위험인자」로 알려진 고지혈 고혈압 흡연이 바로 이런 부류. 고지혈증은 육류 등 고지방식 섭취가 늘면서 혈중콜레스테롤이 증가하는 것이 원인. 지방성분인 콜레스테롤이 혈관벽에 쌓이면 정상적인 피의 흐름을 방해한다. 비단 육류뿐 아니라 오징어 낙지 생굴 등 가시가 없는 해산물, 달걀 노른자, 내장 등은 「콜레스테롤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 뚱뚱한 사람들에게 고혈압과 동맥경화가 많은 것도 이들이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즐기기 때문. 몸무게가 정상체중의 20%만 넘어도 고혈압 발병률이 10배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비만해지면 혈액을 공급할 면적도 그만큼 넓어져 심장의 부담이 커진다. 비만한 사람들은 당뇨병에 걸리기도 쉬운데, 당뇨병 역시 동맥경화의 주요 위험인자이다.
콜레스테롤과 관련해서는 두가지 잘못된 상식이 알려져있다. 우리 국민들의 지방섭취율이 서양에 비해 낮기 때문에 아직 콜레스테롤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할 시점이 아니라는 것과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도 오히려 동맥경화를 막아주는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 수 있으므로 걱정할게 없다는 논리가 그것.
그러나 노영무박사는 『국민 전체로는 지방섭취율이 서양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식성이 맞지 않아 고기를 안먹는 사람, 형편이 어려워 고기를 못먹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단순히 평균 육류소비량을 놓고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한다.
이원로박사는 「HDL 맹신」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총 콜레스테롤에서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이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 되지 않는다. 따라서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일단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 수치도 높다고 봐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엔 총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지만 LDL 수치는 높은 사람들이 많다』
고혈압은 정도가 아주 심하거나 합병증이 생기기 전까지는 별다른 증세가 없어 주기적으로 혈압을 재보지 않을 경우 그대로 방치하기 쉽다. 우리나라 성인의 20∼25%가 고혈압이라는 통계가 나와있다. 대개 최고혈압이 140mmHg 이상이거나 최저 혈압이 90mmHg 이상이면 고혈압으로 본다. 고혈압은 동맥경화로 이어져 심장에서는 심근경색, 뇌에서는 뇌졸중, 신장에서는 신부전증 등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표」 참조). 가족 중 50세 이전에 심장마비가 온 사람이 있거나 기타 심장질환, 고혈압, 당뇨병 환자가 있을 경우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이 많을 경우에도 주의해야 한다.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길은 바로 이같은 직접적인 위험인자들을 피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스트레스 관리가 요구된다. 운동은 일단 심장질환이 발병한 이후라면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어 의사와 상의해야 하지만, 예방 차원에서는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수영 빨리걷기 조깅 등산 자전거타기 등 혼자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유산소운동이 권장되지만,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산책이나 맨손체조라도 해서 기분전환을 시키는게 좋다. 사무실이 고층에 있다면 3층 정도는 걸어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도록 한다. 다만 웨이트 트레이닝 등 과격한 운동은 혈압을 올리고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최근 「내 몸에 맞는 운동으로 현대병을 고친다」는 책을 펴낸 연세대의대 황수관교수(생리학)는 『자기 심장의 능력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운동은 심장병환자의 사망률을 30% 이상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충고한다. 또한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서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일을 완전히 잊고 직업과 무관한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약품의 오남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TV광고 등에서 흔히 혈전용해제라고 선전되는 일부 약들은 대개 효소제제들로, 먹으면 바로 소화되기 때문에 별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임상실험 여부도 의문스럽다는 것. 혈전용해제란 이미 생긴 혈전을 녹이는 치료약이지, 혈전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먹는 약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저렴하고 효과적인 혈전예방약으로는 아스피린이 권장된다. 물론 아스피린도 부작용을 고려해 의사와 상의한 뒤 복용해야겠지만, 성인용의 5분의 1 용량인 어린이용 아스피린을 하루 한알 정도 먹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