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8일 토요일
아직까지 기억의 끝자락에 남아있는 강릉과 설악산, 다시 기억을 더듬어가며 길을 나선다.
비가 내리는 대구를 떠나 춘천까지 쉼 없이 달릴 수 있는 중앙고속도로 위에 차를 올렸다. 의성을 지나면서 비는 눈으로 바뀌었고 죽령터널을 지나고 단양지역으로 들어서니 폭설이 내린다.
봄의 문턱에 들어 선지 5일이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겨울이 옹이처럼 박혀있다.
중앙고속도로 단양휴게소는 말끔하게 정돈되어 휴식하기 좋았고, 전시되어있는 수석과 나무공예가 인상적이었다. 효진 효은과 눈 뭉치를 주고받기도 했다.
만종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길을 바꾸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추억을 되살려 치악산을 뒤로한다. 경기도와 서울 차량이 즐비한 소사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챙겨먹었다.
경원이가 졸졸 따라다니며 재롱을 부리는 통에 절로 웃음이 난다.
휴게소를 벗어나면 보이는 파스퇴르 우유공장과 나란히 위치한 민족사관학교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관령으로 다가설수록 눈발은 더욱 굵어지고 그 양은 많아진다.
강릉에서 바로 정동진으로 향했다. 눈은 비로 바뀌어 내리다가 다시 눈이 되기도 한다. 가는 길 곳곳에서 사고차량이 견인되고 있다.
정동진 앞 바다를 내려다 보고있는 거대한 배가 멀리서부터 시선을 당긴다. 부산과 일본을 왕복하던 이 배는 지금은 산 위로 올라와 썬크루즈라는 이름으로 객실과 음식점을 갖추고 주변에 조각공원과 장승공원을 조성해 거금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어른 1인에 4,000원으로 다 둘러보고 나서는 바로 후회가 뒤따른다. 알맹이에 비해 대가가 너무 크다.
짓궂은 날씨 탓에 장승공원과 조각공원은 관람하지 못했고, 9층 전망대에서 정동진 앞 바다를 바라보는 것으로 이곳 관람을 마쳤다.
괜히 효진이 눈에 눈물만 흘리게 한 이곳을 부랴부랴 빠져나와 정동진 역으로 향했다.
모래시계공원을 선 눈으로 지나고 기념품을 파는 포장마차가 줄을 이어 즐비한 정동진 역에서 400원짜리 입장권을 사서 모래시계나무를 배경으로, 정동진 시비를 배경으로, 철까지를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해가 떨어져 동쪽 바다는 검은 빛으로 변해간다. 늦은 시간이라 등명낙가사를 그냥 지났고 해군퇴역함과 북한잠수함이 전시되어있는 통일공원은 문을 닫았다.
강릉 경포호수 뒤쪽 강릉고등학교 앞 초당마을 할머니 순두부식당에서 두부의 깊은 맛을 음미하고 전경부대를 개조해서 경찰 연수원으로 만든 숙소로 들어갔다.
3, 6, 9 게임을 하며 짧은 저녁시간을 즐겼다.
2003년 2월 9일 일요일
연수원 대형 식당에 우리 가족만 썰렁하게 둘러앉아 밥을 먹고 참소리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은 아파트 한 동을 개조해 옛날 축음기, 사진기, 티브이 등을 전시해 놓고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일찍 서둘러 와서 9시가 안 되어 표를 사지 않고 잠깐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이 박물관은 경포호수 옆에 새로운 이전 부지를 마련해 놓고 있다.
서쪽으로 흰 눈을 덮어쓰고 남에서 북으로 뻗어 올라가는 백두대간이 나를 불러 손짓하는 듯 하다. 자꾸만 그쪽으로 달려가고 싶다.
주문진 항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항구로 들어온 배에서 잡은 고기를 내리는 사람들과 그 고기를 소리쳐 파는 사람들, 이 고기 저 고기 견주어가며 고기를 사려는 사람들이 어울려 정겹게 사람 살아가는 냄새를 풍기고 있다.
설악산 국립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면 당일 4,000원을 주고 차를 대야한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성인 1인 2,800원이다.
공원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번데기 삶는 냄새다. 번데기 한 컵에 2,000원이고 그 옆에서 할머니가 강냉이 엿을 파는데 나무젓가락에 말아서 500원이다.
권금성까지 왕복하는 케이블카는 올 7월까지 보수공사를 하느라 운행이 중지되어있어 신흥사를 둘러보러 발길을 옮긴다.
대청봉에서 설악동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과 북쪽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과 저항령, 그리고 일부만 모습을 보여주는 황철봉이 기억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는 그 날의 기억을 다시 살려 올린다.
신흥사입구에는 거대한 청동부처가 새롭다.
속초공항 뒤편에 자리한 동치미 메밀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찾아간다.
길을 잘 못 들어 지난 여름 수해를 입어 피해가 막심한 동네로 들어섰다. 아직 복구가 되지 않아 도로가 여러 군데 유실되었고 눈이 녹아 곳곳이 진흙탕길이다.
맛으로 제일 유명하다는 식당은 일요일마다 쉰다고 하여 그곳 맛은 보지 못했고, 풍년식당에서 동치미메밀국수와 돼지 수육을 시켰다.
특별한 맛이 숨어있었다.
한계령에서 잠시 설경을 감상하고 필레약수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색약수와 맛이 비슷하다. 약수터 입구에 통나무로 지은 휴게소와 헛간에 겹겹이 쌓여있는 장작더미는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인제까지 이어지는 길은 깊은 강원도 산골 한겨울 정취에 흠씬 취할 수 있는 길이다. 이따금 보이는 집들은 두텁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인적은 끊겼고 작은 굴뚝에서 가늘게 연기만 모락모락 피어난다. 개 짖는 소리마저 쌓인 눈이 삼켜버린다.
군부대가 연이어지는 인제를 벗어난다.
소양호에서는 얼음 낚시가 한창이다. 두꺼운 얼음위로 차를 몰았다. 낚시로 잡아 올리는 빙어를 날것으로 초장에 찍어 맛을 본다. 물컹하고 비릿한 느낌이 차갑게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린다.
중앙고속도로 홍천톨게이트로 차를 올려 안개가 짙어 운전하기가 힘든 도로를 달려 대구로 돌아왔다.
첫댓글 2년전에 여행기를 읽어보니 그때 생각이 나네요.ㅜㅜ
그래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