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에서 자려던 계획이 취소하고 집에서 잤다. 이민 가방 3개와 큰 여행가바 3개에 짐을 가득 싸고 저녁에 동생 차에 미리 실어 놓았다. 아침 6:00에 기상해서 아이들을 씻기고 부지런히 준비해서 출발했다.(07:10) 금촌 시내에 들러서 김밥 8줄을 샀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영국으로부터 온 지은이 전화를 받았다. 생각하지도 못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라고 했다. 짜-식, 외국에 가더니 믿음이 목사보다 나아졌다.
공항에 도착해서 3층에 짐을 내리고 차량주차는 대행을 시켰다. 한시간에 11000원이고 시간당 천원씩 올라간단다. 짐을 부치고 티켙을 교환했다. 6개의 큰 짐을 맡기고 나니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다. 출국 신고서를 쓰고 공항 이용료를 납부했다.
인천에서 장인, 장모님이 배웅을 나오셨다. 처남이 500불을 보냈다. 현금이 부족했는데 이렇게 또 해결되었다. 식구들과 사진 한방 찍고 인사를 나눈 후 Gate25로 갔다. 면세점을 둘러보다가 대우자동차 도우미 누나가 새힘이에게 뽀뽀를 해주고 차를 태워주었다. 자기도 남자라고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나중에 비행기 안에서 엄마에게 그랬단다. "엄마, 비밀이 있는데 그 누나가 나 뽀뽀해줬는데 자꾸 생각이나..."
공항에서 하범만 소령(군의관)과 만났다. 육사 48기(88학번)인데 서울의대에 위탁교육을 받아 군의관으로 전과를 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학교 동아리에서 만났다는 간호학과 출신의 와이프는 씩씩하고 붙임성이 있어서 성격이 아주 좋다. 8살짜리 아들 석진이는 한국에서 입학해서 2개월을 다녔는데 8월에는 미국 학교에 입학하려고 한단다. 미국은 학년의 시작이 우리와 달리 가을학기 8월부터다. 하소령네와는 DLI까지 같은 비행기로 동행하고 어학과정 9주를 함께 받는 동기생이다.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뮤지컬 프라미스팀을 만났다. 본대가 먼저 가고 마지막으로 귀국하는 그룹이란다. 예수님 역을 맡았던 배우와 악수도 하고 인사 했다. 군목이라고 말하니 반갑게 대우했고 자기들의 무대를 보았다고 하니 더 관심있게 여러 가지를 물어주었다. 이번에 텍사스에서 또 공연을 한다고 했다.
드디어 11시가 되서 비행기에 탑승한다. 장장 12시간 40분을 가야 한다. 좌석을 창측에 두 석씩 앞뒤로 배정 받았다. 앞에는 새힘이와 엄마가, 뒤에는 새영이와 아빠가 앉았다. 이륙 3시간 후에 한 번, 6시간 이후에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기내식(비빔밥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요리)이 나왔다. 다행히 대한항공이라 밥이 입에 맞는지 아이들도 잘 먹는다.
태평양에 들어서면서 날이 어두워져 날짜 변경선을 넘어 미대륙에 들어서기까지는 밤이었다가 금새 날이 밝았다. 해가 뜨는 동쪽으로 왔기 때문인가 보다. 새힘이는 왜 이렇게 빨리 밤이 되냐고 해서 엄마가 비행기가 너무 빨라서 밤이 된 지구 반대편에 먼저 도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니까 알아듣겠다고 한다.
옆에 있던 사람이 아이들이 귀엽다며 말을 건다. 자기 딸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고... 한국엔 어떻게 오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뮤지컬 프라미스 공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배우가 아니고 엔지니어라고... 또 반갑게 인사하고 공연을 보았다고 했다. 텍사스에서 공연하는데 꼭 오라며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 준다.
달라스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여권과 ITO를 함께 보여주니 "Military Student!" 하면서 쉽게 통과시켜 주었다. 달라스 공항의 검문, 검색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쉽게 끝났다. 음식물에 대한 질문도 없었고 짐에 대한 시비도 없었다. 다시 샌안토니오로 짐을 부쳤다. 조금 후에 하소령네가 나왔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샌안토니오 비행기로 옮겨났다. 하소령네는 2시간 늦은 비행기라서 우리가 먼저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좌석이 네 줄 짜리인 작은 비행기를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타듯이 탑승한다. 음료수 한 잔을 먹고 나니 금방 도착(1시간)했다. 공중에서 보는 미국은 참 예쁘고 한가하다. 집들이 다 똑 같아 보인다. 땅이 넓고 여유가 있고 나무가 많아서 좋다.
짐이 너무 많아 정집사님께 전화하니 곧 나오시겠다고 한다. 한시간을 기다리며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민 온지 30년, 샌안토니오에 13년이 되셨단다. 50대 중반 정도인 정집사님은 남편 없이 아이 셋을 두고 막내 딸과 함께 산다고 했다. 군선교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에 대해 간증했다.
하 소령네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 5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아파트 관리실이 문을 닫을 시간이라 정집사님 댁으로 갔다. 텍사스 남부 한인침례교회의 15인승 밴을 타고 한 30분 정도 가니 전형적인 미국의 주택가가 나왔다. 집사님은 맛있는 열무 냉면과 과일을 풍성하게 대접해 주셨다. 여기는 과일과 야채, 고기가 질이 좋고 값이 싸서 정말 살만하다고 하셨다. 대접받고 밥값이라도 하겠다고 잔디를 깎았다. 잔디를 깎을 시간이 없을만큼 바쁘게 돌아 다니는 분이다. 잔디 깎는 기계를 돌리면서 앞으로 이런 집에서 한 번 살아볼 수 있으려나 생각했다.
밤 11시까지 미국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소령 내외에게 전도를 했다. 하소령은 고등부 학생회장까지 했다는데 육사에서 신앙생활을 그만두었단다. 군 생활하면서도 신자 지휘관들의 안 좋은 면을 보며 많이 실망했다고 한다. 우리는 속으로 하나님이 이 가정을 붙여주신 섭리를 생각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저들의 마음을 열어주소서..."
정집사님이 내일 아침 06:30분까지 김원래 증령에게 우리를 픽업하러 오라고 전화를 하셨다. 대화를 끝내고 2층 방에 들어가서 11:30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정신이 멍하고 피로가 몰려온다.
4월 30일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세면하고 DLI로 향할 준비를 했다. 이곳은 화장실이 방안에 놓여있는 것처럼 바닥에 물을 흘릴 수 없게 되어 있다. 정화와 아이들이 일찍 깼다. 시차 때문에 다들 엉망(?)이다.
나가기 전에 우리 식구들 모두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미국 잘 도착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이곳에서 좋은 경험하고 많이 배우게 해주세요. 우리 가정만이 아니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해주세요. 우리와 하소령네 모두의 앞길을 인도해 주세요. 오늘 하루의 일정도 주님께 맡깁니다..."
김원래 중령이 우리를 태워주었다. 친절하고 깍듯하다. 신자라고... 강태광목사님과 신용백 목사님 이야기를 했다. 공부하고 이동하는 부사관에게 차를 넘겨 받았다고 한다. 3800불짜리 10년 된 일본차였는데 상태가 아주 좋았다. 잘 산 것 같다고 한다. 이곳에서 차를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차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하나님, 우리도 적당한 차를 잘 사도록 인도해 주세요..."
410번을 타고 가다가 4번 출구로 나와 바로 좌회전하니 부대로 들어가는 정문이 앞에 있다. 여기서부터 차가 밀린다. 9.11이후로 검문이 강화되었단다. 부대에 들어가서 DLI로 들어갔다. 신입생 담당자에게 인계하고 김중령은 수업에 들어갔다.
ITO를 제출하고 번호와 명찰을 받았다. ID는 컴퓨터가 다운되서 다음 주에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담당행정관을 만났다. 군생활 25년 DLI 14년이라고 했다. 좋은 할아버지 같았다. 주의 사항을 들었다. 음주운전, 약물, 도난이나 성추행에 관한 것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장교들이 온다. 아랍이나 아프리카 계통이 많은 것은 미국의 전략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일 주일 먼저 온 조소령(해군)이 소개교육을 마치고 나왔다. 정집사님이 데리러 오셨다. 밴을 타고 세가정이 함께 다닌다. 먼저 메디칼 센터에 가서 예방 접종표를 확인하니 우리 애들은 세 번, 하 소령네는 두 번을 더 맞아야 한단다.
새힘이가 아침에 계속 토하고 탈진상태란다. 완전히 늘어져 있다. 아까는 차안에도 토했다고... 이 녀석을 보약을 먹였어야 하는건데... 자기 체력에 오버해서 놀다가 완전히 맛이 갔다. 오늘은 새벽부터 나오느라 아무 것도 못 먹고 모두 지금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는 정집사님도 같이 고생하는데 할 말이 없다. 가는 길에 물을 샀다. 이곳은 물에 석회질이 많아서 물을 사먹는다. 물통 12불짜리에 물을 사서 담았다. 이것도 일이다.
조 소령네는 오늘(금요일)부터 모레 아침까지 휴스턴으로 놀러간다고 차를 렌트했다. 계약하러 갔다가 국제면허증을 놓고 와서 다시 가지러 간다. 가는 길에 하소령네 아파트 계약하는 곳에 내려 주고 조소령네를 데려다 주러 아파트에 내렸는데 새힘이 주라고 스프와 죽을 두 개 주셨다.
이제 우리 집 계약하러 가려고 하는데 조소령이 갑자기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 안에 돈도 있는데 렌트 사무실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면허증을 가지고 급히 다시 렌트 사무실로 갔다. 여기는 가방을 두고 가면 돈만 빼고 돌려주는 일이 많다고 한다. 가는 길에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여기와서 하나님이 남들 기도까지 시키신다. 가방 잘 찾게 해달라고, 정집사님 봉사하는데 불미스런 일이 없게 해달라고...
다행히 잘 찾았다. 아까 계약하려던 흰색차는 그 사이 누가 렌트해 갔다. 아무튼 다행이다. 조소령과 인사하고 다시 시간이 늦어서 하소령네 계약하는 아파트로 갔다. 잠시 후 같이들 나왔는데 계약이 잘 안됐다고 한다. 아파트는 좋은데 준비가 안돼서 5월 5일부터나 입주가 가능하다고... 시간이 급하다. 할 수 없이 우리가 들어가려던 아파트를 같이 알아보기로 했다.
원래 하소령네는 육개월 이상 이곳에 머물예정이어서 학교가 좋은 동네로 가려고 했다. 큰 길을 사이로 강북과 강남이라 그곳은 학군도 좋고 돈도 비싸다. 우리가 머물려는 곳은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학교급식도 공짜고 렌트비용도 싸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하소령과 교회에 같이 나오라고 목사네와 같이 살게 하셨다고 해석하며 웃었다.
수도 없이 많은 서류에 사인하고 아파트를 계약했다. 우리는 1베드룸, 하소령네는 2베드룸이다. 급히 짐만 옮기고 저녁에 되기 전에 급히 몇일 먹을 부식을 사러 한인 가게로 향했다. 정집사님은 저녁에 또 손님이 있어서 함께 식사할 시간도 없다고 한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따라갔다. 쌀, 두부, 파, 마늘, 김치, 오이 등을 샀다. 한국마트와 똑 같이 없는게 없이 다 있었다. 차만 사면 바로 이곳음식에 적응하려고 했는데 일단은 급한데로 몇일 버텨야겠다. 다시 아파트에 우릴 내려 놓고 정집사님은 먼저 가셨다. 내일은 오후에 시간이 가능하면 차를 보러 가기로 했다.
짐을 풀어 정리했다. 여기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라는데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살만하다. 욕실에 페인트를 칠해서 내일까지는 샤워를 하지 말란다. 씨너 냄새가 나서 환기를 오래 시켰다. 2층짜리 가건물로 지은 아파트가 네 동씩 둘러있고 가운데는 풀장도 있다. 정화가 짐을 꼼꼼히 잘 싸서 분량은 조금 많았지만 풀어놓으니 이사 온 것처럼 별로 아쉬운 것이 없다.
급히 라면을 끓여 햇반을 말아 밥을 먹었다. 하루 종일 굶어서 맛이 있다. 새영이도 잘 먹는다. 새힘이는 스프를 먹였는데 다행히 잘 먹는다. 나중에 배가 고프다고 자기도 라면을 끓여달란다. 김치도 한 만원정도 하는 것 같은데 맛이 괜찮다. 한국에서처럼 똑 같이 먹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는 미국 음식에 더 익숙해 지기로 했다. 또 피곤이 몰려온다...
첫댓글 정말 놀랍군요, 시시때때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네요. 함께 그곳에 있는 것 같아요. 기도많이 할께요.^^
목사님 백호특공 군종병 남진규 입니다. 잘 지내신다니 너무 기쁘네요.. 이현식 목사님 뵙고서 목사님 동정을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곳에서도 샬롬입니다. 사모님도 또 새영이와 새힘이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