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 災
강 형진
인제로 달려가는 46번국도 변으로 지난 수해에 몸살을 앓았던 하천의 제방공사가 한창이었다.
누가보아도 육중한 레미콘이 쏟아내는 시멘트 덩어리는 제방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등 공신이었다.
현장의 인부들은 장마가 다가온다는 감독관청의 채근에 일개미 움직이는 모습보다 더 바지런을 떨었다.
“오늘내로 다 마무리 되는 건가?”
“예 이곳 50M만 감으면 끝입니다.”
“그런데 원래 저 중간은 안으로 좀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요 그리로 더 파고 들어가야 만곡이 좀 생기겠지만 시방서대로 가야죠 우리마음대로 옮길 수 없잖아요~ 더군다나 도로를 뒤로 밀어야 하는데 공사도 커지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김 주사는 씁쓸한 웃음을 웃는다.
올봄 지방 공무원 발령을 받은 친구의 말치고는 너무 현장을 잘 아는 사람처럼 하는 말에 신선함이라곤 찾기 힘들었다.
하기야 100년 만에 아니면 그 이상 비가 올 확률을 염두하고 공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공사란 것이 거저 하는 것이 아니고 예산이 들어가야 하고 자치단체들은 국고보조금을 한 푼이라도 더 타야 편할 판이니 적당한 선에서의 절충이 마치 노하우처럼 되어버린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조금이라도 공사가 늦어지면 방송에선 방송대로 행정관청에선 관청대로 닦달을 하니 공사를 하는 사람들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판이었다.
공사감독을 나온 공무원들은 마지막 레미콘이 떠나고 잔칫집 분위기로 자리를 떴다.
날이 도왔다.
장마가 예고되었지만 열흘 가까이 초여름의 더운 바람과 볕이 사정없이 공사장을 감고 돌았다.
아직 거푸집을 벗기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현장사무소가 철수 되면서 부랴부랴 거푸집을 벗기기 시작했다.
만일 큰비라도 오면 밑단이 쓸려 내려갈 것 같아 무너질 것이 염려스러웠지만 어찌된 일인지 관계자들은 모두 철수하기에 급했다.
수해복구 공사이후 개천이 달라진 것이라면 평상시는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마르고 비만 오면 급하게 물이 불어난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하천에서 공사가 시작되면 바로 고속도로처럼 쭉 뻗은 수로를 만들어 주는 꼴이 되었다.
물살이 너무 빨라 물고기조차 버티지 못했고 그 흔한 물풀들조차 수량의 기복이 심하여 자라지 못했다.
생명이 존재하기 보다는 그나마 남은 몇 가지의 생명들이 연명을 하는 모습이었다.
인위적인 모습으로 잘 정비된 하천제방은 지방신문에 화보로 군수와 의회의장, 지역관계자와 공사회사의 간부들이 포즈를 취하고 함박 웃는 모습으로 지면을 장식했다.
무엇을 축하하려는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많은 예산을 들여 자연이라곤 씨를 말리기 직전까지 몰고 간 제방이었다.
道 전체를 따지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지난해 너무도 지독한 물난리에 치가 떨려서인지 철옹성과 같은 콘크리트 제방을 바라보면서 안도의 미소를 보였다.
김 주사는 그렇게 지난수해의 공사가 마무리된 것에 대하여 서서히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장마라고 하였지만 큰비는 오지 않았다.
어쩌면 기후가 변해간다는 말이 사실인지 장마보다는 추석을 전후하여 찾아오는 태풍이 더 곤혹스러운 놈으로 변해갔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이제 온 논과 밭을 황톳물로 뒤덮어 버리고 마을 앞 개천을 넘실거리면서 범람하기 시작했다.
이미 동내로 들어오는 길은 군데군데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놓고는 승용차와 작은 화물차들은 통행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산비탈을 끼고 벌려 놓은 버섯하우스는 무너지는 토사 때문에 얼마나 버텨 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 비에 어디를 가?”
“막꼴에 올라가요?”
“이 비에 거긴 왜?”
“돼지우리가 걱정이서요 그런데 어딜 가세요?”
“하우스에 점심때부터 자꾸 흙이 내려와서…….”
“오늘밤이 고비라던데 괜찮겠죠…….”
“별일이야 있겠어? 물만 잘 빠지면 괜찮을 거야 걱정 말고 다녀와 조심하고~ 워낙 막꼴이 진창이잖아 엄청 미끄러울 거여 조심해 ~”
“전번부터 막꼴 배수로 좀 정비해 달라고 그렇게 면에다 이야기를 했는데 종무소식이더니 결국 물난리가 나는 모양이네요~.”
“그러게나. 말이야 사람들이 꼭 일이 닥치고 나야 신경을 쓰니 말이야 조심해!”
“ 예 형님도 그럼 일 보고 들어가세요.”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아마도 하늘이 구멍이라도 났는지 연신 퍼 붓는 빗줄기는 사람들에게 서서히 공포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겨우 차 한 대 들락거릴 마을길에는 흙탕물이 찰랑거리면서 마을 주민들의 발을 묶기 시작했다.
낙뢰와 천둥이 밤새 수없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에 서서히 불안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미 전기도 끊긴 상태였다.
낙뢰가 치면서 전신주가 넘어지고 변압기가 터졌는지 전기가 나간지도 두어 시간이 흘렀다.
마을 사람들의 입에선 한숨조차 들리지 않았다.
공포였다.
진저리가 쳐 지도록 다가오던 작년의 수해의 악몽은 마을사람들에게 하나, 둘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로가 침수되고 전기가 나가고 그리고 산이 울기 시작했다.
물을 먹고 몸집이 커진 산은 더 이상 포근한 뒷동산도 앞산도 아닌 언제 무너져 마을을 휩쓸지 모르는 어둠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워낙 많은 비가 쏟아졌다.
“작년 꼴 날라고 이러나 하늘이 왜 이리 지랄이야.”
“그러게 말이야 하루 종일이네 그나저나 개울이 넘치고 있는데 괜찮을라나…”
충식은 혼자말로 두려움을 달랬다.
마치 곁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을 흘려야 두려움이 덜할 것 같았다.
큰 길로 달리는 차 소리조차 없었다.
마당에서 목을 조금만 빼면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자동차의 굉음들은 공기를 타고 흘러들던 마을이었다.
밤이라 그럴까?
충식은 온 마을이 작년처럼 완전하고 철저하게 고립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휴대전화를 열어보았다.
새벽2시 마땅히 전화를 걸 곳도 없다.
119에 전화하여 도와 달라고 할 상황도 아니고, 밀려드는 상황을 보면서 스스로 공포를 즐길 상황도 아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손전등을 들고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어둠과 같이 찾아오는 불안은 이미 온 마을을 감싸기 시작했다.
누구의 집이라 할 것 없이 방문을 비스듬히 열어놓고는 어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잠든 사이 온 마을이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에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있는 눈빛으로 원망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눈빛으로 하늘을 응시했다.
“왜 추적거리고 다녀 심란한데….”
“안 주무셨어요?”
“어떻게 자~! 잠이 와야지. 그래 위험한데는 없어?”
“글쎄요 아직은 모르겠고 막꼴에 돼지우리는 위험하겠던데 잘 모르지요…”
“숨 달린 짐승인데…”
“그러게요 뭘 아는지 잔뜩 웅크리고 울기만 해요. ‘
“이러지 말고 어디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까요?”
막상 말을 해 놓았지만 새벽 두시에 마을사람을 모아 한곳으로 안전하게 옮길 만한 곳은 없었다.
진작 그럴 것이었다면 면사무소 주변의 농협창고나 아니면 학교로 대피하여야 했는데 설마 하는 통에 영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비가 이렇게 올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우회도로가 계설되면서 정비된 하천은 마치 물길을 미사일처럼 흐르게 만들어 순식간에 마을을 고립시키고 말았다.
유속은 이미 사람의 힘으로 통제하기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번에 완공된 제방이 무너지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충식이 무릎까지 밀려드는 물을 헤치고 제방 앞으로 나갔다.
코앞일 것 같은 저편에는 그나마 길 위로 군에서 나온 트럭이 마을로 들어서는 다리를 찾느라 준비하는 모양 이었다.
하지만 이미 다리난간이 유실되어 안전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마을에는 고령의 노인들이라 물길을 헤치고 움직인다는 것이 위험천만한 일이 되어버렸다.
“병신새끼들 올라면 진작오던지….”
마을로 발을 옮겨야 했다.
만일 구조하려고 온 차량이라면 마을사람들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꼴 동식이 할아버지는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아랫집 현숙이네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하고 팔순이 다된 할머니하고 있고 그리고 삼거리로 내려와 우삼이 아버지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반장네 집에 두 부부와 손자 녀석 하나 그리고 서울에서 살다가 암이라고 요양하다 죽을 거라면서 이사 내려와 집을 짓는 환갑 잡이 부부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은 몰라도 아무튼 사람이라고 생겨먹은 것은 자신과 어머니를 합치면 마을사람 전부였다.
모두 있다 해도 14명이 다였다.
물길건너 이장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데 빗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에 묻혀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이 웅웅 거리기만 했다.
일단 쏟아지는 비를 몽땅 맞으면서 노인과 아이들을 내 놓을 수는 없었다.
우삼이 아버지도 날씨가 심상치 않은지 영 잠을 자지 못한 모양이었다.
“형님! 형님 자요~.”
“자긴 이판에 잠이 오겠어?
“다리 앞에 트럭이 와있는데 넘어오질 못하는데 우리가 나가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 비에 노인네하고 아이들뿐인데 어떻게 움직여?”
“그렇다고 이대로 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째요.”
“하긴 그렇지만 별일 없이 잘 넘어가길 빌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동내 한 바쿠 휭 하니 돌고 올 테니 그때보자구여.”
옷은 입으나 마나한 존재였다.
세찬 비는 아니지만 물레방아 넘치듯이 하늘에서는 꾸준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실 이곳의 비는 지금 내리는 양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북쪽으로 나 있는 인제 쪽에서 내려오는 물의 양과 내린 천 줄기일부가 돌아치어 화양 강을 이루는 물이 더욱 위험한 요소였다.
그곳은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진 모양 이었다.
작년 수해도 그랬다.
사실 이곳은 그리 위험할 정도의 비가 오지 않았지만 결국 그쪽의 물이 마을을 덮치며 초토화를 만들어 놓았다.
사실 그때 실종된 시신을 아직도 찾지 못한 가족들은 얼마나 허망한지 말로 다할 수 없는 지경이다.
막꼴에 동식이네는 작년 수해에 할머니를 잃었다.
동식아버지가 어머니 시신이라도 수습한다고 집을 나선지도 1년이 다 되었고 두어 달에 한번 씩 집에 들르는 모양이었다.
현숙이네는 아버지를 잃고 엄마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서울로 줄행랑을 쳤다.
처음에는 생활비를 보낸다 하더니 서너 달이 지나면서 연락조차도 끈긴 상태였다.
그들에게 느끼는 이 밤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였다.
집집마다 전기가 나가 초로 불을 밝혔지만 마당에 들어선 사람 소리에 문을 열어 보였다.
“누구요?”
몸은 불편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동식이 할아버지는 충식의 발에 세웠다.
“저 위 돼지우리에 난리여 저놈들도 무서운 가벼 짐승이 난리를 치면 일이 터지는데 걱정이여.”
“걱정 마세요 무슨 일 있겠어요?…큰길에 군에서 보낸 차가 마을로 들어오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혹시 위험해지면 모시고 가려고 확인 하려고 다니고 있습니다.”
“애쓰는구먼. 난 괜찮으니 이것들이나 챙겨줘 나야 무슨 일 나서 마누라 곁으로 가면 좋은 일이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니야 몰라서 그래 큰일 앞에 나 같은 늙은이는 짐이지 짐….”
“쓸데없는 말마시고 혹시 모르니 준비 좀 하세요.”
“고마워.”
마을을 돌아 우삼이네 앞까지 돌아왔다.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었다.
우삼 아버지는 무릎까지 넘치는 물을 헤치면서 마을 앞까지 나가보았다.
개울이 큰 것은 아니지만 물을 흐름은 차가 건너기엔 불가능한 모습 이었다.
간간이 산에서 간벌한 나무들이 다리발을 막았는지 물은 어느 지점에서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어디가 다리인지 구별하기 힘든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갈 수나 있겠나?”
혼잣말로 투덜거려 보았지만 공포와 불안의 그림자는 털어버려지지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기 시작했다.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인력동원이 되었으며 郡의 관계자들이 하나둘씩 도착하였다.
방송국에서도 작년에 이어 연이어 당하는 수해라며 방송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평소 10여M의 강폭이 이제 그 세배가 넘고 유속은 마치 성난 바다처럼 보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곳곳에 걸려있는 간벌 목의 잔해들은 물길을 방해하고 협곡을 만들고 물이 마을로 들어오는 이유가 되었다.
하늘의 비는 잦아지고 있었지만 개천을 달려가는 물의 양은 시간당 수위가 점점 더 올라가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119구조대원이 허리에 로프를 매고는 다리위에서서 한발 한발 움직여 보았지만 체 다섯 발자국을 옮기지 못하고 물살에 휩쓸려 구조를 당하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공중에 줄을 메어 당기는 것도 젊은 사람들이 이야기지 병자와 늙은 노약자들에겐 그 이동 자체가 치명적인 상태를 만들 수 있음에 모두들 발만 동동 구르는 형편이었다.
두 번 세 번 여러 번의 도전 끝에 결국 다리를 건너는 일에 성공을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육중한 4.5t 트럭에 앞에 장착한 린치를 이용하여 다리건너의 아름드리나무에 묵어 놓고는 서서히 감기 시작했고 운전병은 천천히 앞으로 전진을 시작했다.
물살은 트럭에 부딪히며 흔들거리면서도 앞으로 전진을 거듭하여 마을에 다 달았다.
운전병과 인솔 장교는 지체 없이 사람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자 마을 사람들을 차에 태워야 합니다. 더 이상은 위험하고 계속하여 상류에서 비가 내리기 때문에 자칫 위험할 수 있으니 한분도 빠짐없이 오셔야 합니다.”
무도가 거들어 하나 둘 마을사람들은 그렇게 군용트럭에 몸을 싣고 트럭은 후진을 하면서 겨우 길을 건너 나왔다.
그날 밤, 상류의 빗줄기는 굵기를 더 하는가 싶더니 결국 마을을 초토화 시켜 버렸다.
철수작전은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할 만큼이나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다.
연이은 수해는 사람의 진을 빼버렸다.
면사무소에 임시거처를 만들고 적십자 봉사단들이 돕는다고 나서보았지만 막상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 참혹한 현실 앞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물론 작년의 수해만큼의 피해는 아니었지만 논밭의 작물은 깡그리 뒤집어지고 축사들은 곳곳이 주저앉아 소며 돼지들이 제각각 물 빠진 마을을 돌아다녔다.
하천의 물은 하루가 지나자 급격하게 줄기 시작하여 언제 수해가 났냐고 묻는 것처럼 잔잔한 천으로 돌변해 버렸다.
새롭게 만든 제방과 다리들은 군데군데 상처가 나고 무너지고 다리발에는 간벌한 나무덩이가 덩그렇게 물길을 막았다 이제는 다리와 하나 되어 흔적만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충식과 우삼 아버지는 물이 빠지자 제일먼저 집으로 달려갔다.
충식은 막꼴에 있는 돼지우리가 걱정이었고 우삼이네는 버섯하우스가 눈에 밟혀 가만있지 못할 지경이었다.
충식이네 돼지들은 떠내려가지는 않았지만 이미 물을 먹어 정상은 아니었다.
우삼이네 버섯은 하우스 밑단이 물에 쓸려 파이프들이 공중에 떠 있는 지경이었다.
망연자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넋이 나간 사람마냥 그렇게 마을을 돌아다녔다.
건질 것 이라곤 별로 없었지만 행여 하는 마음으로 마을을 돌아다녀보았다.
해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늦더위처럼 뜨겁게 내리 쬐는 볕은 사람을 지치게 했다.
삽질이 될 리가 없고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살아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연이은 수해는 사람의 진을 모조리 소진시키고 있었다.
“형님 우리 어떻게 살아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죽으라는 건지 살라는 건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산자에게도 혹은 죽은 자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형평성의 잣대를 이용하여 공평하게 흘러갔다.
처음 그렇게 막연하던 모습은 서서히 자리를 잡고 軍부대와 지역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하나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물에 휩쓸려 날아간 다리의 난간은 임시로 부설되고 다리발을 가로막았던 나무둥치들은 말끔하게 치워지면서 물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방송국에서 그리고 郡 의 재난상황실에서 뻔질나게 마을을 돌아보면서 피해규모를 조사했고 원인을 찾느라 골몰했다.
“죽일 놈들 뭐래 막꼴에서 내려오는 도랑 좀 치워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건만 그랬으면 물이 잘빠져서 돼지새끼들은 죽었겠어?”
“꼭 그렇게만 말하지 말아 워낙 많이 쏟아졌어야지 그나마 작년처럼 산사태가 나지 않았으니 살았지 안 그래?”
“모르는 소리 하지도 마세요, 저 산에 누가 올라가요 한 한 달은 물을 토해야 올라갈 수 있으려나~ 모르긴 해도 이번 추석에는 밤 한 톨 이 산에서 얻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긴 산이 그렇게 물을 처먹었는데 흙이라고 가만히 있겠어! 그냥 무너지고 흘러내리지….”
“그래도 자낸 돼지새끼가 죽지 않았잖아 그거라도 팔면 …?”
“누가 물먹은 돼지 사 주기나 해요 오늘은 멀쩡해도 한 이틀만 지나며 설사하고 픽하고 나자빠질 판인데.”
“하긴 이참에 싹 치우고 다른 것으로 바꿔보던지.”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치우고 나면 뭘 키워요 뭐 키울게 있어야지.”
나무그늘에 걸터앉아 연신 담배만 빨면서 한심하고 답답한 소리만 늘어졌다.
물 하면 지겹다 못해 넌덜머리가 나면서도 그래도 치우려면 물이 가장 필요했다.
가재도구며 이불빨래며 마당 하나 가득 들어찬 진흙은 삽으로 긁어내고 결국 물로 청소를 해야 했고 하다못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면 물이 필요했다.
속속 수재구호품들이 마당에 쌓였지만 공연히 종합선물 같은 생각만 들지 당장 필요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방송이고 어디고 들락거리는 일은 뻔질나도 결국 단시간에 너무도 많은 비가 오는 통에 불가학력적인 재앙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새롭게 단장된 제방 밑단은 또 그렇게 힘없이 무너지고 도로는 불안한 상태로 보수공사가 응급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공사관계자들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일사천리로 보수공사에 매달렸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태풍이 오면 이 공사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보수공사는 척척 진행되었다.
무너진 제방에는 응급복구를 위한 부목들이 설치되었으며 흩어진 축석 아래로는 장비들이 달라붙어 정비를 시작했다.
마치 어떠한 피해가 얼마나 올 것을 미리 알고 준비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김 주사는 복구 현황을 만들어 들고 다니면서 일일이 점검을 시작했다.
결국 모든 것은 예산의 집행의 이루어지는 일들이고 재산을 잃어 고통스런 사람이 있으면 공사를 통하여 부를 얻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현장 소장은 김 주사를 보고 눈을 찡긋 감았다.
“일찍 나왔어?”
“예 완공되고 두 달 만에 폭격입니다.”
“그렇지 뭐 원래 공사를 하려면 가을에 하고 겨울을 나고 봄을 지나야 하는데 작년은 예산편성 때문에 초여름에 공사하고 장마가 바로 왔고 또 태풍이 왔지 뭐랄까 일 년 동안 올 수 있는 부담이 두 달 만에 다 왔으니 무리가 가지.”
“소장님은 참 편하게 말 하시네.”
“그럼 어떻게 해 할 수 없는 일이지 안 그래?”
“그럼 이번에 복구를 하고도 큰 비가 오면 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군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큰비라면 만만하지는 않겠지!”
“큰비의 한계가 어디까집니까? 100mm 아니면 그 이상?”
“김 주사 왜이러시나 하천은 이곳의 비의 양하고는 관계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왜이러시나?”
김 주사는 공연히 짜증이 났다.
분명 누군가는 명쾌한 답을 내 놓아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모두가 침묵하는 분위기였다.
방송은 기상관측 이래 영서지역에 게릴라성 집중호우…하면서 모든 잘못을 천재지변으로 둔갑시키고 있었다.
김 주사는 자신의 공책에서 빼곡하게 적어 놓는 공사개요와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점을 하나둘 대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직선화되어버린 하천의 문제가 고스란히 지적되었으며 그로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경고가 또 다시 적중하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눈에 보여 지는 문제에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한다.
누구집 지붕이 내려앉던 산사태가 나던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한 부스러기 조작에 불과한 일일뿐이었다.
신문이 방송이 취재를 위하여 다가오면 재앙으로 시름에 잡혀있는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포즈를 취하고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이지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을 김 주사는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郡의 고위층에서부터 지역사회에서 방귀께나 뀐다는 인사들이 귀찮을 정도로 마을을 방문했다.
비단 이 지역만의 수해는 아니겠지만 작년의 수해가 너무도 혹독했고 연이은 수해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란 특이점 때문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방송에서도 완공 된지 얼마 되지 않은 하천의 제방의 유실에 대하여 부실문제를 지적하였지만 그리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였다.
아침이면 찾아드는 사람들 그리고 밤이면 썰물처럼 빠져가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마을사람의 공허한 마음은 더욱 커 갔다.
이유를 모르는 아이들은 연신 동네에 사람들이 북적이자 오히려 좋아하는 눈치였지만 내 놓고 좋아라.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충식은 그나마 거래하던 육가공 회사에서 돼지 일부를 수매하여주는 통에 숨통이 트였다.
막상 지금 돼지를 먹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료는 젓고 집은 온통 수해의 흔적이고 마을을 다시 꾸미고 정리하는 일에도 쉽지 않은 노력이 들어갈 판에 돼지를 키운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님을 스스로도 잘 아는 터에 그나마 그 돼지라도 부주하는 샘치고 구입해 주는 회사가 너무도 고마웠다.
종돈이고 아니고는 차후 문제였다.
정리되고 나면 다시 씨돼지를 구입하면 그만인데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졌다.
오히려 이번 비에는 우삼이네가 더 혹독한 손해를 입었다.
매년 잘도 피해갔지만 이번은 우삼이네가 집중적인 공격의 목표가 되어 버렸는지 하우스 밑둥치가 모두 들떠서 공중에 있는 것 같은 형편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 속에서 자라던 버섯은 말할 것도 없이 다 망가지고 쓸려가고 오히려 치우는 비용도 생각하여야할 만큼의 피폐를 가져왔다.
하지만 우삼이 아버지는 웃었다.
무엇이 좋아 웃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살았다는 단순한 그 하나의 이유로 우삼이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형님 괜찮아요?”
“그런 괜찮아 작년한번 생각해 봐라 다 죽었어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아무도 상하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해야지.”
“그래도 당장 내일이…?”
충식이가 말을 맺지 못하자 우삼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투였다.
하루는 그리 길지 않았다.
아침나절에 주먹밥 한 덩이 적십자 자원봉사자들이 건네주면 그것 하나 입에 물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니 내 땅에 일을 거드는 이유 없는 사람보다 쥔인 사람이 더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인지 몇 안 되는 동네 사람들은 참으로 바지런히 움직였다.
한집이던 두 집이던 사람이 모여 살다보면 그 세간 살이 란 것이 늘면 늘었지 줄 턱은 없다.
그런 세간들이 모두 쓰레기로 변하고 당장 먹을 밑반찬조차 귀해져도 사람들은 그 난장판의 흔적들이 치워졌다는 이유하나만으로도 만족하는 듯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인지 모른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충식은 가만히 머릿속을 더듬는다.
모든 힘없는 사람이 이렇게 바지런을 떨 때 과연 책임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렇게 마을숙원사업 이야기를 할 때 뒷산이 지난해 폭우로 일부는 무너지고 더러는 가파른 절개 면이 생기고 도랑이 협소해지니 보수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 마다 이장에게 말했지만 워낙 사람이 없는 동네라 기회가 적었다.
아니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장도 그랬고 면장도 그랬고 새마을 지도자도 듣는 척하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안건으로 밀려나가기 다반사였고 사람이 없는 동네는 서럽고 억울해도 별 수 없음을 알았다.
또다시 이 마을에 저주와 같은 수해가 밀어 닥치고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서 사람들은 그동안 그렇게 주장하던 부분에 대하여는 모두 함구하는 눈치였다.
특히 자리나 차고 있는 사람들은 책임이라는 부분이 제 앞에 밀려들면 핑계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버린 승냥이처럼 구실을 찾지 못해서 안달이 난다.
점심때 이장이 담배를 권하면서 하던 말에 더욱 부아가 치밀었지만 대꾸조차 하기 싫어 입을 닫았다.
“충식이~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그래도 자네는 돼지가 다 나가는 것 같던데…”
“예 축산회사에서 계약한 물량이 있어서 출하 했어요?”
“그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게 밑천이 되면 자네는 워낙 부지런 하니까 금방 일어설 거야 우리가 돕지 힘내라고.” .
“고마워요… 그런데 먼저 장마 오기 전에 내가 이야기 했죠, 뒷산을 좀 다듬어야 한다고 워낙 가팔라 비가 오면 문제가 생긴다고….”
“맞아 자네가 그런 이야기를 했지 그런데 뭐랄까….”
이장은 입맛을 다셨다 아니 자신의 실수를 그대로 인정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도 면에다 그리고 군에도 이야기를 했지 그런데 말이야 워낙 군에 시행할 일들이 많이 있잖아 자네도 잘~ 알지! 전국청소년 역도 경기, 그런 큰 경기가 우리 같은 자그마한 군에서 유치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러려면 도로보수나 환경미화 이런 것이 예산집행이 먼저 되고 주민 수에 따라서 효율적인 예산이 집행되고 하다보면 작은 일은 뒤로 밀려나가게 되어있어, 안 그래~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고도 뭐가 석연치 않았는지 이장은 자리를 뜨면서 눈치를 살폈다.
“나도 할 만큼은 했어 면장한테 말도 해보고~ 그래도 작년처럼 사람이 상하진 않았잖은가 그게 어디야 안 그래 힘내자고.”
충식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뭐야 이 개새끼 그걸 터진 입이라고 그렇게 말해 그럼 이번에도 동네 사람들이 물에 휩쓸려 내려가야 좋겠냐. 이 시팔 새끼야.”
평소 남하고 다투는 일이 없는 충식이었다.
아니 다툴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좀 모자랄 정도로 사람 좋은 충식이가 결국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형 동생 하면서 지낸지 20년이 넘는 사이였고 도로하나를 두었지만 그래도 일이 있으면 품앗이를 마다않는 사람들이 결국 물난리 앞에서 불난리가 나고야 말았다.
마을길 청소에 땀이 밴 장병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 놓았지만 이미 이장의 얼굴에는 벌겋게 손자국이 나있었다.
"이놈 감히 니가 나를 때려 호로 새끼 같으니라고 내가니 죽은 작은 애비하고 술친구야 임마 그럼 나한테 삼촌이라고 해야 할 판에 이놈이 어딜 누구얼굴에 손이 왔다 갔다 해 처 죽일 놈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이놈! 힘들까봐 몇 마디 거들어 줬더니 어디서 지랄이야 지랄이. “
이장은 분기를 이기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그래 죽은 작은 아버지하고 술친구야~ 그럼 너도 죽어야지 친구가 죽었는데 아직 살았으면 호사한 거 아니야~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이참에 아주 가라 이 쓰레기 같은 놈아.”
충식이도 한발을 양보하지 않았다.
“ 예산이 어쩌고 어째, 그래 사람적은 동네는 산사태가 나던 물이 넘치던 예산 타령만 하면 그만이냐. 나~ 원… 참! 기가 막혀, 그리고 뭐야 금년에는 사람이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그럼 해마다 여긴 사람이 물에 빠져 뒤져야 속이 시원하겠냐. 이 개새끼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싸움이었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달려오고 우삼이 아버지도 하우스 철거작업을 하다 달려왔다.
“그만해 일하다 뭐하는 짓이야.”
“아니 형님 저 이장새끼 말 하는 거 들어보면 형님도 가만있지는 않을까요.”
“뭐라 했던 우릴 돕는다고 온 사람들이야 고만해.”
이미 달려오면서 충식이가 되받아치는 말속에 이장이 뭐랬는지 말이 다 나와 있었다.
“시골구석에 사는 게 죄야 부모 잘 만나서 원 없이 공부했으면 이런 시골구석에서 살았겠어. 서울에 강남에 떵떵거리는 아파트에서 등부치고 살았지, 그 동네는 눈이 와도 시에서 바로 차로 밀어 치우 더만 여기처럼 겨울에 첫눈 오면 봄까지 가지도 않아 돈이 웬수고 무식이 상전이다 알았어! 이제 고만해.”
충식은 고개를 떨궜다. 분해도 같은 아픔을 아는 사람이 이를 깨물고 피를 토하면서 자조 섞인 한탄을 하는 데는 재간이 없었다.
“아무리 못 배우고 힘이 없어도 이 땅에 사는 사람인데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고쳐 달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좀 들었어야지 해마다 이게 뭔 지랄이냐고요, 이러려고 세금을 물면서 이 나라에 사냐구요.”
충식은 꼬꾸라지듯이 땅바닥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이미 주변에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그리고 지방신문 기자들이 충식의 말 하나하나를 고스란히 지면으로 옮겨 전송을 시작했다.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 더러는 제 능력 밖에 일에 울분을 토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 혹여 더러는 공연히 없는 사람의 투정정도로 비하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의 눈빛은 각기 자신의 잣대에 맞추어진 모습으로 그렇게 바라볼 뿐이었다.
사태가 진정되자 사람들은 다시 자신이 하던 일로 모두 돌아섰다.
해마다 늘어나는 게릴라성 호우에 아무도 대비하지 않으면서 결국 계측이례 최대 강수량만을 운운하면서 선량한 피해자들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충식은 팔 다리에 힘이 모두 소진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울부짖으면서 말해도 누구한사람 꿈적하는 사람이 없다는 차가운 현실을 느끼면서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한 무관심과 이곳에 달려와 땀을 흘리는 봉사라는 이름의 행동에서의 이중적인 모습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심한 혼란이 밀려들었다.
김 주사는 바지 섶에 묻은 진흙을 털면서 충식의 앞으로 다가섰다.
“왜 그랬어요?”
“몰라서 그러슈?”
“아니요 알죠, 그 속 타는 심정을 왜 모르겠습니까?”
“아는 사람들이 그래요?”
“알아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요?”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지만 예산 집행 순서란 것이 있습니다. 이장도 아마 수차례 같은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그랬겠죠.”
“그런 사람을 손찌검까지 하면 되요, 당장 내일 어떻게 보시려구.”
“글쎄 말입니다, 아마 미쳤나 봅니다.”
체념 이었다
말 그대로, 충식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긍정하는 것도 아니 부정자체도 아닌 자신과 이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 대하여 체념 이었다.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치우다 보니 마을은 그럭저럭 모습을 찾아갔다.
큰 마을이 아니었고 시선이 집중되다 보니 郡 에서도 장비를 지원했고 인력동원도 넉넉한 형편이었다.
김 주사는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아니 충식이란 사람의 절규어린 통곡의 의미가 설명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이렇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이 난리를 피우기 전에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이 마을사람 서넛이 오순도순 모여서 파여진 웅덩이나 매우고 끝이 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말로 이런 수해가 天災 인가하는 생각이 김 주사의 머리에선 떠나질 않았다.
위험을 알면서 보여지는 현실에 맞추어 행동하는 그런 모순이 과연 天災 인가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간밤 4.5t트럭조차 위험천만하게 비틀거리던 다리는 이제 자신이 끌고 온 작은 경승용차에서 조차 미동도 없는 안전한 다리처럼 느껴졌다.
긴급도로 보수공사를 위하여 투입된 인부들과 현장 소장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음을 웃으면서 연신 트럭 꽁무니에서 흙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마을은 다 정리되었나?”
“예 거의 끝이 납니다.”
“우리도 거의 끝이나 읍내 나가서 한잔 어때?”
“보고서를 써야 해서요?”
“보고서는 무슨! 워낙 비가 많이 온대다 마을 주민들이 불법개간으로 산이 가파르고 배수로를 확보하지 못하여 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하천이 범람하여 일시적 고립사태를 유발하였다.
인명피해는 없으며 재산 피해도 경미한 현실이고 지방도로 일부구간이 급류에 휘말려 지반이 붕괴되어 시급한 보수가 요구 된다… 뭐 이렇게 쓰면 되지 않을까 원래 윗사람들 길게 쓰면 읽기 싫어해 짤게 그리고 요점만, 어때?“
“뭐가요? 그리고 이 동네에 불법으로 개간할만한 사람이나 있기나 해요… 다 늙고 병들고 마을사람이라야 전부 합쳐서 여섯 가구 17명으로 되어있는데 개간은 누가해요~”.
“김 주사 오늘따라 왜 이렇게 까칠해 난 김 주사 편하라고 문구를 잡아줬구만 막말로 우리가 이런 보수공사 하루이틀하나 다 그렇게 쓰면 된다 이거지. 안 그래”
“ 맞아 다 그렇게 쓰면 그냥 넘어가던데 먼저 인제군에서도 그렇게 소장님이 불러주는 데로 보고서 올렸다고 담당자가 말하던데.”
현장 인부 중 한사람이 소장에게 점수라도 따려는지 연신 맞장구를 치며 토를 달았다.
“이거 어디서 오는 흙입니까?”
“왜 흙 필요해?”
“아니요 이 흙 어디서 난거냐 구요?”
“왜이래 알면서…”
“알긴 뭘 알아요 내일까지 대토 반출증하고 첨부해서 들어오세요.”
“정말 김 주사 왜이래 그럼 응급복구 하는데 흙 구하러 뛰어 다녀야 하겠어? 길에서 보이지도 않아 걱정 말고 아무 탈 없이 3일이면 끝나 걱정 말고 저녁에 거기 알지 그리로 와 김 주사 무척 피곤한 모양이야 타박을 다하고!.”
답답하고 한심했다.
아니 이렇게 모든 일이 얼렁뚱땅 흘러가고 그 중심에 자신이 서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현기증이 느껴질 것 같았다.
수해는 분명 天災地變 일 것이다.
그러나 김 주사는 스스로 뇌까려 본다
진정한 천재지변보다 느슨한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人災地變 이 더 큰 재앙이라고 스스로에게 질문과 답을 던져본다.
밤새워 써 올린 보고서는 계장의 책상위에서 마냥 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