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18일, 목요일, Erzurum, Yeni Otel Cinar
(오늘의 경비 US $77: 숙박료 18, 점심 2, 저녁 8, 식품 5, 버스 $3, 20, 택시 15, $5, 비자 $20, 환율 US $1 = 1.45 lira)
오늘도 날씨가 흐렸다. 아침 8시쯤 조지아 Batumi의 숙소를 나와서 막 터키 국경으로 떠나는 미니버스에 올라서 20km 떨어진 국경으로 갔다. 국경에 도착해서 3개월 터키 비자를 $20 내고 받는 것으로 간단히 출입국 수속을 마쳤다. 국경에서 다시 미니버스에 올라서 20km 떨어진 도시 Hopa로 가는 동안 미니버스 안에서 본 터키 사람들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시끄럽고 투박해 보이는데 친절하기는 한 것 같다. 국경이라서 그럴까, 어쨌든 터키 사람들을 평하기는 너무 이르다.
터키 사람들은 남미의 mestizo 사람들을 연상케 한다. 다시 말해서 잡종 민족이라는 얘기다. 터키 사람들은 언어로 보면 몽골이나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우랄알타이 어족이다. 옛날 언젠가는 몽골이나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같은 말을 쓰는 민족이었을 것이고 생긴 것도 지금의 몽골 사람이나 카자흐스탄 사람 같았을 것이다. 지금 Altai 산맥 근처에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몽골 사람들은 다른 민족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반면에 유럽 가까이 서쪽으로 옮겨간 우랄알타이 어족 사람들은 인도유럽 계 (Indo-European) 말을 쓰는 민족들과 피가 섞여서 생긴 것이 많이 변해졌다. 그래서 터키 사람들은 흑안과 흑발이지만 골격은 유럽 사람들 같이 보인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의 피가 섞인 멕시코나 남미의 mestizo 사람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금발과 벽안도 보인다. 터키보다도 더 서쪽으로 옮겨간 우랄알타이 어족인 유럽의 헝가리, 핀란드,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터키 사람들보다 유럽 사람의 피가 더 많이 섞여서 완전히 유럽 사람처럼 보인다. 피가 섞이는 것은 수십 년이면 가능한 것이지만 언어가 변하는 것은 수백 년, 수천 년 걸리는 것이다. 이렇게 옮겨 다니면서 유럽의 여러 민족과 피를 섞은 우랄알타이 어족 사람들이 자기네 말을 잃어버리지 않게 된 이유는 주로 우랄알타이 어족 남자와 유럽 민족 여자의 피가 섞였을 것이고 (남미에서와 같이) 우랄알타이 어족 사람들이 지배계급을 형성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 같다 (역시 남미에서와 같이).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터키의 옆 나라인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터키 사람들과는 매우 다르게 생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랄알타이 어족도 아니고 우랄알타이 어족의 피도 거의 섞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바로 옆 나라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터키 계통의 민족이다.
터키는 방금 떠난 조지아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인 모양이다. 버스 정거장도 깨끗하고 버스도 새 버스다. 사람들은 별로 더 똑똑해 보이지 않는데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라 그런 것 같다. 국경도시 Hopa를 떠나서 내륙으로 산길을 올라가는데 주위는 전부 차밭이다. 가파른 경사가 진 차밭에서 차 잎을 따는 여자들도 보인다. 작년에 가본 스리랑카를 연상시킨다. 가끔 마을이 나오는데 마을 한 가운데에는 항상 조그만 회교사원이 있다. 버스 기사가 계속 담배를 피우면서 운전을 한다. 승객은 담배를 못 피우는데 기사와 차장은 피울 수 있도록 돼있단다. 이해할 수 없는 제도다.
Hopa에서 산을 하나 넘으니 Hopa가 있는 흑해 해변의 아열대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나온다. 그리고 거대한 댐 건설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댐은 다 된 것 같은데 도로를 산 위쪽으로 옮기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너무나 험준한 산이라 도로공사가 댐 공사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는 모양이다. 혹시 한국 회사가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터키에 들어와서 돈을 바꾸는 곳을 찾지 못해서 남은 조지아 돈과 미화를 쓰면서 왔다. 터키 돈 환율을 몰라서 답답했는데 (조지아에서 인터넷으로 알고 왔어야 했는데 깜박했다) 버스 휴게소에서 잠깐 만난 독일 여행객들로부터 알았다. 근래에 화폐개혁을 해서 new Turkish lira가 새로 생겼는데 미화와의 환율은 약 1.3대 1이란다. 조지아에서는 한집 건너가 환전상인데 터키는 환전상이 전혀 안 보이니 환율을 쉽게 알 수 없다. 빨리 인터넷을 체크하거나 은행에 들어가서 물어봐야겠다.
오늘의 목적지인 Erzurum에 도착하니 오후 3시다. Erzurum에 들리는 이유는 이란과의 국경도시인 이곳에 이란 영사관이 있는데 이란 비자를 내기가 터키의 Istanbul이나 Ankara 같은 곳보다 쉽다고 Lonely Planet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국적의 여행자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는 단서가 있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는 생각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Lonely Planet을 다시 읽어보니 금요일은 영사관이 휴일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내일이 금요일이다. 회교 국가에서는 금요일이 기독교 국가의 일요일이나 마찬가지인데 깜박한 것이다. 오늘 영사관에 못 가면 내일은 못가고 토요일에나 갈 수 있는데 혹시 토요일도 닫으면 낭패다. 아르메니아 Yerevan에서 Karabakh 영사관을 이틀씩이나 갔다가 허탕치고 포기해버린 생각이 난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에 올라서 이란 영사관으로 달려갔다. 오후 4시까지만 일을 본다고 Lonely Planet에 쓰여 있는데 영사관에 당도하니 3시 반이다. 혹시나 닫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을 조였는데 다행이 아직 열려 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안 보인다. 다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는데 다행히 사람이 나온다. 보통 영사관을 방문하면 우선 영사관 직원과 상대하게 마련인데 이 영사관에는 직원도 없는 모양으로 나온 사람이 영사다.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일이 제대로 되려나 보다. 영사에게 미국 여권 소지자인 한국인인데 이란 비자를 내러 왔다고 하니 처음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라는 표정을 짓다가 금방 태도를 바꾸더니 신청서나 내보란다. 안될 것 같으면 신청서는 왜 내라나. 그러나 내봐서 손해날 것은 없겠다고 생각해서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쓰는 동안 영사의 태도가 점점 호의적으로 바뀐다. 비자 허가는 이란 외무부에서 결정하는데 2주 후에 자기에게 전화를 걸면 허가가 났는지 가르쳐줄 수 있단다. 허가가 났으면 그때 정식 비자 신청을 다시 해야 되는데 Istanbul에 있는 영사관에서 해도 되느냐고 물으니 된단다. 자기가 Istanbul 영사관에 있는 자기 친구에게 연락을 취하겠다고 한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비자 내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눈치다. 허가 결정은 본국 외무부에서 하지만 현지 영사가 추천만 잘 하면 될 것 같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www.iranianvisa.com이란 인터넷 여행사에 $40을 지불하고 이란 비자를 신청한지가 2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심사 중이라는 얘기만 듣고 있었는데 이곳 영사관 도움으로 비자를 받게 될 것 같다. Erzurum에 온 보람이 있게 되는 모양이다. 이란 비자가 나오면 터키여행을 끝낸 후 이란 여행을 하고 이란에서 투르크메니스탄 경유비자를 (transit visa) 얻어서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면 모든 일이 원래 계획대로 되는 것이다.
이제 하루 더 Erzurum에 머물 필요가 없으니 내일 Van으로 떠나야겠다. Lonely Planet에 Erzurum은 날씨가 나쁜 곳이라고 쓰여 있는데 정말 그런가보다. 5월 중순인데 한국의 12월초 같은 추운 날씨다. 한 겨울에는 얼마나 추울지 상상도 안 된다. 아마 2,000m 고도와 탁 터진 지형 때문에 그렇게 추운 모양이다. 추워서 술을 사 마시면 좀 나을까 해서 술을 파는 곳을 찾으니 없다. 막 떠나 온 조지아에는 술과 담배를 파는 상점이 한집 건너인데 이슬람교 나라인 이곳은 전혀 사정이 다르다. 조지아에서 술을 사가지고 올 것을 잘못했다.
터키의 국경도시 Hopa 버스 정류장
Erzurum과 Yusufeli 길 표지판, Yusufeli는 근처의 댐 공사가 끝나면 물속에 잠기게 된다
Yusufeli를 지나서 댐으로 흘러 내려가는 강
흑해 해변도시 Hopa에서는 날씨가 흐렸는데 고개를 넘어서 내륙으로 들어가니 전혀 다른 날씨다
산 경치도 흑해 근처의 초목이 울창한 푸른 산에서 돌산으로 바뀐다
포플러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Erzurum이 가까워 오면서 고도가 2,000m 정도로 오른다
원래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살던 땅인 Erzurum 근처의 경치는 아르메니아 경치와 비슷하다
마을마다 회교 사원이 꼭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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