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1977-1996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1987년, 팝 음악계에는 작은 토픽이 하나
있었다. 'It was twenty years ago today, Sgt. Pepper taught the
band to play(20년 전 오늘이었지. 페퍼상사가 밴드에게 연주를 가르
쳐준 것은).' 바로 이렇게 시작하는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이 발매 20주년을 기념하여 CD로 재발매
되었던 일이었다. '팝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아티스트' 인 비틀즈가
발표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을 세상은 그렇게 기념하였다.
지미 핸드릭스가 데뷔하고 '사랑과 평화'로 상징되는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이 열렸던, 그리고 비틀즈가 'Sgt. Peepper's…'을 발표했던
1967년은 그래서 역사적인 해로 기억될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196
7년만큼 의미 있는 해가 있을까? '산울림 1977-1996'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산울림이 데뷔하였던 1977년의 일들을 기억할 수 있다. 경제 발전에
한창이던 그해. 대학가요제가 처음 열렸고 세상에는 대학 문화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학가요제를 통해 소개된 대학의 신선한 모습에
사회는 많은 변화를 일으켰으며, 그후 대학 문화는 더 이상 대학
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아마추어 그룹들을 비롯하여 통기타 서클
까지, 많은 대학인들이 사회로 나오고 싶어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 가장 용감했던 -
당시의 표현대로 - 이들이 바로 산울림이며, 지금까지 기억되어
오는 그 때의 수많은 이름들 중 아직도 유효한 이름이 '산울림'이다.
'산울림 1977-1996'의 발매는 '기록'과 '보존'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불행히도 기록과 보존에 소홀한 우리의 역사를 증명이나 하듯 '산울림
1977-1996'의 작업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작업에 대한
음반 업계의 인식은 물론이며, 마스터 테이프의 온전한 보관과 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그 모든 문제들을 나열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우
리 현실에 대한 보고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 완성
된 '산울림 1977-1996'은 우리에게 산울림의 20년 역사를 기록해 주
고 그들이 발표한 12장의 앨범을 보존해 줄 것이다. (물론 아직 3장
의 동요집이나 '기타가 있는 수필'과 영화 음악, 드라마 음악 등 개인
앨범이 남아 있지만 이 역시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
8장의 CD로 제작된 '산울림 1977-1996'에는 1977년부터 1996년까지
발표한 12장의 정규앨범의 모든 곡은 물론이며 총 16트랙의 보너스
트랙이 담겨 있다. 3장의 원 앨범을 2장의 CD에 나누어 수곡하는 방
법으로 12장의 앨범이 8장의 CD로 제작되었으며, 각 CD의 마지막에
보너스 트랙이 실려있다.
CD 1과 CD 2에는 2집에 실렸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둘이서',
'이 기쁨', '노래불러요'의 Demo Version이 실렸는데, 녹음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녹음 상태가 아주 열악하다는 것이 아쉽지만 귀
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식 앨범에서 발표된 곡과 비교하
여 연주와 가사가 다소 차이 나는데, 특히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기타 도입부가 이보다 십수년 후에 발표되는 Radio Head의 'Creep'을
연상하게 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심의로 인해 수정되기 전의 가
사인 '노래불러요'와 절망적인 분위기의 '둘이서' 역시 놀라운 충격을
전해줄 것이다.
CD 3에 수록된 2 곡의 캐럴은 산울림의 소속 레코드 회사에서 발표
한 모음집에 수록되었던 것으로 캐럴에 대한 산울림적 해석을 엿볼
수 있다. CD 4에는 두 곡의 미발표곡이 실려있는데, '우는 아희야'는
모 방송국 주최의 '노랫말 경연대회'의 수상작에 김창완이 곡을 붙인
것으로 노랫말은 후에 작사가로도 활동을 하였던 이건우씨의 작품이
다. '눈 뜬 어린애'는 미처 녹음이 완료되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던 곡
들 중에서 발췌된 것으로 독특한 드럼 연주가 빛을 발한다. 보컬 녹
음이 마무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쉽게도 연주곡의 상태로 수록되
었다.
CD 5에는 7집 앨범의 '독백'과 '청춘'의 초판 버전이 실려있다. '독백'
과 '청춘'은 앨범 발매후 다시 녹은 되어 재편집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는 재녹음 된 곡이 알려져 왔다. 그러나 원곡 역시 산울림적인 독창
성이 빛을 발함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1996년 11월 26일, 카
페 'Joker'에서 행해진 공연 실황 중에서 '가지마오'가 수록되었다.
'Joker'공연은 13집 레코딩 중에 '개구장이'모임 1주년을 기념해 기습
적으로 행해졌던 공연으로 원래 2-3곡만 부를 계획이었던 이날 공연
이 예정에도 없이 1시간 동안 펼쳐지는 바람에 녹음과 같은 치밀한
사전 준비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개구장이' 회원의 포터
블 녹음기에 열악한 상태로 녹음된 이날의 공연은 디지털 기술의
놀라운 힘을 빌어 '산울림 1977-1996'에 실리게 되었다.
CD 6에는 3곡의 공연 실황이 담겨있다. 이는 1996년 3월 23일에 산
울림 음악동호회 '개구장이' 주최로 비공개 리에 열렸던 카페 '곰팡
이'에서의 공연을 녹음한 것이다. 이날 공연은 김창완 혼자 진행하였
지만, 관객들의 열기는 공연장을 꽉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공연
실황 중에서 접속곡으로 불려진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와 '그
럴 수도 있겠지', 그리고 관객들이 함께 한 '지금은 잘 생각나질 않
네'가 그날의 열기를 전해준다.
CD 7과 CD 8에는 7집과 마찬가지로 초판 발매 후 재편집되었던 10
집 앨범의 '너의 의미', '지금 나보다'가 원곡으로 수록되어있다. 또
CD 8에는 97년 3월 15일에 연강홀에서 행해진 공연 실황으로 '개구
장이'가 실려있다.
참고로 말하면, 보너스 트랙의 일부는 LP에서 복원되었다. 즉, LP에
서 Noise Reduction의 과정을 통해 재녹음한 것으로 흔히 복각이라
고 얘기되는 작업이다 그러나 작업의 한계 때문에 다른 트랙에 비해
다소 음질이 뒤떨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10년전 비틀즈의 'Sgt. Pepper's…' CD를 보면서, 또 Led Zeppelin,
Queen, Pink Floyd 등의 CD Box Set을 비롯한 수많은 기념 앨범들
을 보면서 느꼈던 아쉬움들도 이제는 옛날의 기억이 될 것이다. '산
울림 1977-1996' 속에 우리는 암울했던 70년대에 시작하여 80년대를
가로질러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 록 음악의 작은 역사를 기록하였
다. 그리고 산울림이 데뷔하였던 1977년은 기념적인 해로 기억될 것
이다. 대학가요제가 탄생하고 청년 문화가 태동하였던 그 해는, 산울
림이 우리에게 음악을 가르쳐 준 20년 전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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