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풍습들: 양반들의 소일거리들(Moeurs coreennes: Les Occupations des Yang-Ban)
발레(J. C. Balet), 여행지(Le Journal des voyages), 1904년 1월 3일, pp. 85-86.
[주간지 인데 1903년 12월에서 1904년 5월까지 합본하여 85-86쪽에 있는 기사]
우리[프랑스]의 경제학들이 이유야 없지 않겠지만 불평들을 늘어놓는데, 그 중의 하나로서 관료주의가 생생한 고통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 대해서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을까? 양반들 즉 사대부들은, 민중 속담에 따르면 “한여름에 양우리[통시칸]에 파리떼처럼 우글거린다”
세습적 권리에 의해, 특히 매관제도와 과거시험의 통과에 의해서 일정한 정도의 지위를 유지하는, 양반들은 행정과 군사의 관료들이다. 한국의 사대부 지위[서양의 귀족지위]에서 그 권리와 동시에 의무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서도 하인(ha-nin)이라 불리는 하층민들의 등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인이란 즉 비인간(non-homme)으로서, 쟁이들[기술자들], 농민들, 상인들을 지칭한다.
그런데 궁정-담당관들[궁인들, 내시, 상궁 또는 궁의 하급관리, 더하여 지방의 육방 관속들 등, 이들은 양반에 속하지 않는다]을 포함하지 않고서, 양반들은 9백만에서 1천만의 인구에 중에서 15만 정도로 환상적 숫자에 이른다. [1.5% 정도이니 환상적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이 양반들만이 고위직에 올라갈 수 있고, 중류층들과 하층민들은 어떠한 고직위에도 오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기 서열을 유지해야 하고, 상위 계급을 사야하며[매관], 왕실 재정의 세금을 지불해야 한다. 인민은 거기에서 수세기 이래로, 아주 품위 있는 것으로 여기는 오만한 고급관리들에게, 괴물스런 방식으로 취급받는, 영원한 암소(éternelle vache à lait)이다. [내가 보기에 가렴주구의 번역인 것 같다. 가렴주구(苛斂誅求):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죽을 때까지 요구함. 세금을 악랄하게 거두는 혹독한 정치.] 그런데 천성적으로 지적이며, 덕성있고, 소탈한 주민이 백치 같은 무능에 대해 어떻게 놀라지 않겠는가? 몇 몇 부분적인 봉기들을 제외하고 인민들은 굽신거리는 것 이외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다. 만일 안녕[구원]이 인민에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밖에서, 아마도 일본인들에 의해서 일 것이다. 일본인들은 1894년에 일어났던 동학(Tong-hak 東學) 또는 동학도들의 봉기에 낯설지 않았었다. [인민이 스스로 주체로서 등장할 수 있는 그 기회를 그 당시 정부가 일본과 결탁하여 동학도를 짓밟았다. 저항하는 인민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은 1905년 반도를 날름 먹었다. / 현재도 박령은 군대와 검찰이라는 소족으로 인민의 저항을 억누르고 미제국에 기대고 있고 일본과는 암묵적으로 손잡고 있다. 그런데 이 판이 백년전과 달리 인민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항(resistance) 봉기(revolte) 혁명(revolution)이라는 트르와 제르(3R)은 어떤 균열에서는 폭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박령정부나 파랭이들은 여전히 외세의 마름들이다. (48OMB)]
양반들은 그들이 행하는 수탈하는 것들 이외에, 어떤 일거리들이 있는가? 무관들[군사지위]은 조선(Frais Matin)의 나라에서 존경 받지 못하고 있고, 그 훈련들도 더 이상 존경의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직한 인간으로 병사를 만들려 하지 않는 것은, 마치 더 이상 강철 덩어리로 징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시기부터 부유한 계급의 남자들은 하루 내내 그들의 집에서, 거리에서, 성체[사랑채]에서 수근 거리면서[험담하면서] 보낸다. 그들은, 버드나무 광주리가 걸린 긴 막대기로 알아보게 한 기생집(les restaurants, 요리집)에 들락거리기를 좋아한다. 그 집은 아주 비싸다. 담뱃대와 쌀술(막걸리)는 그들의 친구이다.
* [사진: 조선의 나라에서 활 쏘는 귀족들[사대부들] ..]
스포츠에 대한 사실들로는, 정월 초하루에 “돌 팔매싸움”(combat de pierres, 투석전)을 하는 것을 예외적인 것으로 친다면, 양반들에게는 활쏘기(le tir à l'arc) 만이 있다. 그들은 어떤 정념에 사로잡히지 않고서 냉정하게 활쏘기에 전념한다. 이와 똑같은 훈련의 애호가인 일본인들이 이것을 비난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활은 결코 남성적이지 않고 ... 을 닮았다. [- 이 기사는 여기에서 짤 려서 더 이상 알 수 없다]
주1) 제 318 (3호지)를 보라 [이 주는 본문에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활이 남성적이지(씩씩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이 기사를 쓴 이가 국궁(활)을 쏘아 보지 않아서 일 것이다. 만일 그가 활을 장력 50파운드 3순 정도만 쏘아보았더라도 이런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
* 그 아래에는 “주1) 제318호 제2계열을 보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이 기사는 문장 상으로 보아 다음에 쪽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고 주1)은 이기사의 주가 아닌 듯하다. 흐린 복사본으로는 본문에서 작을 올림글자일 주1)을 찾을 수 없다.]
* [기사 작성자는 동학을 알았는데, 그 봉기를 진압한 것이 일본이라는 것도 아는 것 같다. 작성자는 조선의 신분차가 너무 심한데도, 인민이 잘 성장하지 못한 것을 보고서, 외적 힘 또는 일본에 의해 이런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 이런 시각은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개척할 때 쓰는 수법에서 나온 것이다.]
(48PLJ) (48PMA)
* 이상에서 읽어 알 수 있듯이, 발레(J. C. Balet)는 일본의 침을 발라서 글을 썼다 마치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1854-1941)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A Study in Magic and Religion)”(. 1890년 초판에서 1936까지 13권)속에 나오는 서낭당, 무당 등이 비하되어 표현되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48QKF)
활기사1904여행지.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