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특징과 방대함[편집]
어마어마한 분량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 빅토르 위고의 필생의 역작으로 그의 사상, 지식을 모두 쏟아 부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역사, 파리의 건축과 도시 설계, 정치, 도덕철학, 반정부주의, 정의, 종교, 낭만, 가족애의 유형과 인간의 본성,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 매우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또한 당대 최고의 인기 프랑스 소설이었으며 같은 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포르투갈어를 포함한 여러 외국어로 번역될 정도로 당대 유럽 최고의 인기 소설. 오늘날에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소설이다.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삶은 『레 미제라블』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위고는 나폴레옹 군대의 장교였던 그의 아버지, 왕정주의자였던 어머니, 그리고 십대 때부터 글로 생계를 꾸려갔던 문학 천재 위고가 어떤 역사적 격변을 거쳐 “기득권층의 든든한 기둥에서 망명자로, 눈부신 출세주의자에서 독립적인 저항자로, 중산층을 대변하는 인물에서 진보적 운동의 대변인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 극적인 변신에는 나폴레옹 3세와 형성한 대결 구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가난하고 탄압받으며 배척당하는 사람들에 관한 『레 미제라블』은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친위쿠데타에 저항하다가 브뤼셀로 망명한 위고 자신이 배척당하는 인물이 되면서 초고보다 확대되어 영국 왕실령 건지섬에서 『레 미제라블』이라는 걸작으로 탄생했다. 가난이라는 주제는 레 미제라블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 미제라블을 분석한 책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저술한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벨로스는 레 미제라블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가난과 빈곤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레 미제라블이 이 개념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강조했다. “가난 앞에서 품위가 떨어지고 비천해지지 않을 만큼 강인한 영혼은 많지 않다. 보통 서민들은 믿기 힘들 만큼 어리석다.” 이렇듯 18세기 말에 출간된 『백과전서』의 ‘가난’에 관한 항목은 가난한 이들이 겪는 곤경에 대해 당사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절실하게 필요해야만 분발해서 생산적인 노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낮은 계급’은 곧 ‘위험한 계급’으로 여겨졌다. ‘불운 탓에 비천해진 사람’에서 ‘돈이 부족한 사람’으로 빈민에 대한 의미가 점진적이지만 근본적으로 변화하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에 『레 미제라블』이 있다. 장 발장은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도 가치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인간의 본보기다. 장 발장이 계속되는 물리적, 도덕적, 감정적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은 그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당시의 지배적인 태도를 거부하며 사회적인 계급에 관계없이 만인에게 도덕적 진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데이비드 벨로스 교수는 위고에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두 가지 혁명을 서술하면서 그가 왜 이 두 혁명이 아닌 1832년 6월 봉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했는지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위고가 실제로 겪은 최초의 혁명은 들라크루아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표현한 1830년 7월 혁명이다. 그런데 사흘 만에 부르봉 왕조를 전복하고 루이 필리프가 정권을 잡게 된 사건에 『레 미제라블』의 초점을 맞추지 않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위고 자신이 직접 봉기에 참여하지 않았고, 아내 아델이 넷째 아이를 출산하려던 참이었고, 『파리의 노트르담』 집필을 더는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 필리프 왕정을 전복시킨 1848년 봉기는 1848년 2월 귀족원 의원이던 위고는 군대의 임시지휘관으로 2월 봉기에서 바리케이드를 내린 당사자였다. 이후 임시정부의 빈민 정책에 성난 노동계급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자 6월 계엄령이 선포되고, 위고는 이때 제헌의회 의원으로 무장 폭도에게 계엄을 선포하고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말하자면 『레 미제라블』은 바리케이드에서 싸운 사람이 아니라 바리케이드를 내린 군대의 임시 지휘관이 쓴 작품인 것이다. 1848년 혁명에 대한 경험은 위고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위고는 1848년 봉기 대신 루이 필리프 집권 초기인 1832년 6월 5~6일에 일어난 봉기를 작품 배경으로 선택한다.
그는 왜 19세기 프랑스 역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만 기억하는 작은 봉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택했냐는 질문에 벨로스 교수는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은 혁명이 원론적으로 ‘혁명’의 의미를 설명하기에 좋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고는 정확한 역사 기록과 당대 사람들의 진술에 기초해서 1832년 6월 봉기를 재구성하면서 사실을 많이 바꾸기도 했다. 그는 이 혁명을 성난 하층민이 주도한 저항이 아니라 학생들이 혁명의 선봉에 서는 것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을 동원한 것은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싸우려고 하는 교육받은 투사들이 대화와 연설을 통해 서로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사람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혁명에 참여한 동기도 제각각이었다. 위고가 말하고자 한 바는 이 모든 태도를 끌어안고 조화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것이었다. 위고는 혁명과 폭동도 엄격히 구분했다. 소설을 잘 살펴보면 진실을 파악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데, 1848년 혁명의 의미에 관한 논평 대목에서 그는 민중의 ‘생명과도 같은 원칙을 향한 비뚤어진 폭력은 진압해야 한다’고 쓴다. 바리케이드에서 장 발장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데 자신의 기술을 이용한다. 위고는 총을 통해서만 진보할 수 있다는 앙졸라의 확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장 발장의 행동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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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팬들이 왜 소설판을 '벽돌'이라고 부르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
분량이 엄청나게 길어서 프랑스어 원문으로 65만 5,478개의 단어로 쓰여진 역사상 가장 긴 소설 중 하나이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레 미제라블은 역대 가장 긴 소설 25위에 해당.출처
국내 번역본 기준으로는 민음사판 레 미제라블은 5권 분량의 쪽 수는 2,556쪽으로 매우 길다. 뮤지컬, 축약본, 영화, 동화나 만화 등으로 본 작품을 먼저 접한 뒤 원본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말을 먼저 하자면, 원본은 대단히 방대하다. 오죽하면 팬덤측에서 소설 원판을 부를 때 '벽돌(The Brick)'이라고 부를 정도다. '빵을 훔쳐서 형을 살고 나왔다가 개심한 장 발장의 이야기'라는 개요나 편집본을 먼저 견문한 뒤 원본을 읽는 사람은 굉장히 놀라게 된다. 애초에 소설을 보면 제1편 역시 장 발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편집본에서는 그저 장 발장에게 친절을 베푸는 주교 정도로만 묘사되는 '미리엘 주교'의 신상과 행실, 사상 등을 100 페이지가 넘도록 기술하고 있다. 주인공인 장 발장은 제2장부터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장 발장의 이름은 제 1권이 아니라 마지막 책인 제 5권에 붙었다. 이러한 방대한 내용으로 이 책을 백과사전 처럼 읽는 사람들도 있다. 어휘도 엄청나게 풍부해 63만 단어 중에는 약 2만 개의 다른 단어들이 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전체 단어들만큼이나 많은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장 발장의 이야기가 주 내용이긴 하지만, 그 외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자세한 내력 성품, 환경 등을 몇 페이지를 할애하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1830년대를 전후로 하여 살아가는 가족을 먹여살리기위해 낙인이 찍힌 탈옥수, 학대당한 아이, 처절하게 사회 밑바닥 끝까지 몰락한 직공, 나폴레옹 지지자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의절당한 청년, 사기꾼 부모 때문에 콩가루가 된 가족, 세상을 바꾸려는 젊은이들, 그리고 엄벌주의에 집착하지만 결함을 가진 사회에 굴복한 경찰 등 프랑스의 많은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Les Misérables)'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다. 게다가 줄거리를 진행하다가 작가가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나오면 늘어지고, 또 진행하다가 또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나오면 늘어지고 하는 식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것도 인물 설명이나 그런 것도 아니고 무슨 이 수도원은 어떻고 저 거리는 옛날에 어떤 모습이었고. 이게 한두 페이지도 아니고 대부분 거의 100페이지에 달하는 그야말로 방대한 분량이기에 관두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프랑스의 문화배경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인이 읽기에는 묘사가 너무 빽빽하기 때문에 막상 읽어보면 흥미진진한 장발장의 메인 스토리를 읽기 위해 악바리를 쓰며 읽게 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수 있다. 사실 장 발장과 코제트, 그리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전체적인 혁명 사회의 모습을 한 번에 조망하기 위한 의도로 작성된 소설이기에 그렇다. 오죽하면 랑송이 이 작품을 일컬어 "이 소설은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이다."라고까지 말했을까. 다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극도로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책은 아니다. 분량이 매우 많을뿐이다.
또한,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은 레 미제라블 뿐 아니라 근대(19세기) 프랑스 소설의 주된 특징 중 하나라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위고와 함께 근대 프랑스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대표작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삼총사를 보더라도 아동-청소년기에 축약판만 읽어본 사람을 완역본으로 때려주면 벽돌에 맞은 것처럼 아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프랑스의 출판사들이 단어 수를 기준으로 원고료를 지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작가 입장에서는 작품을 길게 쓸수록 원고료를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 따라서 위고나 뒤마와 같은 거장들이 이 분량을 이용하여 주인공과 그 주변의 이야기 뿐 아니라 당대 사회 전반의 정경을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근대 프랑스 소설의 스타일(풍부한 묘사와 광범위한 배경)이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덕분에 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생활 모습 등을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작가가 기자 생활을 했고 시도 썼기 때문에 원작은 상당히 사회제도의 비판을 중심으로 서정적인 스토리가 나온다. 위고의 아버지가 워털루 전투 때 프랑스 육군 장교였기 때문에 워털루 전투 부분은 상당히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마리우스와 조르주 대령도 위고와 그의 아버지 조제프 레오폴의 오마주. 나폴레옹 1세의 몰락 이후 좌절에 빠진 프랑스인의 심경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불릴 만큼의 지위를 지닌 소설이다. 다만 역시 두께가 두께인지라 프랑스인들도 원전을 모두 읽은 사람은 드물고 축약본의 형태로 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