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67년 이른 봄.
발해 바다는 동북쪽으로 깊숙이 침입해 서압록西鴨綠(지금의 요하)을 움켜잡아 채찍인 듯 휘두르고, 남편으로는 삽질을 했나 하나의 웅덩이를 팠다. 동쪽으로는 입을 열어 한반도의 황해와 맞닿아 있지만, 서쪽으로도 세를 넓혀, 한漢나라가 설치한 “발해군” 지역을 바라본다.
그 발해군 안에 하간현河間縣(하간시)이 있다.
하간현의 서북방면 십이 리쯤엔 고려성의 옛 자취가 엿보인다고 한다.
고려성高麗城.
북경 남쪽 수백 리다. 그것은 그 땅이 중국의 영토가 된 이후, 훗날 중국 사람들이 통속적으로 부른 보통명사일 터다. 그렇다면, 하간현 고려성의 본명은 고구려와 함께 역사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는가?
(당대인들은 고구려를 보통 “고려”라 칭했다. 후대 왕건의 근세고려와 혼동해서는 아니 된다. 본서에서도 이하 동일하게 사용했다.)
혹시, 하간현 고려성의 본 이름이 처음부터 “고려성”은 아니었을까? 그건 기대지만,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곳은 우리 고려(고구려)의 고토다’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주지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당대에도 그 성과 인접한 국경지대의 당나라 사람들은 그 성을 보통 고려성이라고 일컬었으리라. 왜냐하면 그 성은, 중국의 당나라가 세워지기 오백 년 전인 후한 시대에 고구려인들이 쌓은 고구려의 성이었으니 말이다.
아, 고려성!
하간현 고려성은 고구려 임금 태조무열제(재위 서기 54-146)가 쌓은 성이다(신채호 <조선상고사>, <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삼국사기/고구려본기>). 태조무열제는 고구려의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영웅이다.
하간현 고려성은 당나라 국경과 인접한 고구려 최남단의 성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라의 파수대 역할을 한 군사 요충지였다.
고려성의 소재지 하간현河間縣 사람, 명나라의 시인 반심攀深이 고소한 심정으로 노래했든 서글픈 가슴으로 읊었든, 고려성의 폐허를 엿보고 이를 회고한 그의 시에는 영웅투쟁의 무상함과 세상영화의 허무함이 절실하게 배어있다.
적막한 고려성 옛터의 황혼을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僻 地 城 門 闢 벽 지 성 문 벽
雲 林 雉 堞 長 운 림 치 첩 장
水 明 留 晩 照 수 명 류 만 조
沙 暗 燭 星 光 사 암 촉 성 광
외진 땅의 성문은 활짝 열렸고
구름 숲속 성벽은 길기도 하고녀
황혼의 노을빛은 맑은 강에 머물고
모래밭 어두울 제 별빛은 촛불 같네
강변의 노을 빛 저녁이 제법 운치 있게 느껴지지만, 아침이 와도 인적 하나 없는 고성古城은 여전히 쓸쓸하기만 하다.
疊 鼓 連 雲 起 첩 고 연 운 기
新 花 拂 地 粧 신 화 불 지 장
居 然 朝 市 變 거 연 조 시 변
無 復 管 絃 鏘 무 복 관 현 장
비상의 북소리에 구름만 일어나고
꽃은 새로 흙을 털고 몸단장 바빠도
분주하던 아침 시장 적막만 감돌고
관현악의 울림은 다시 듣기 어려워라
그 옛날 이 성안에선 아침이면 백성들의 나들이가 활기차고 고구려 관병들의 악대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으리라. 군사들을 모으는 아침의 북소리가 지금도 울리는 듯하지만, 군사는 아니 오고 무심한 구름만 연달아 일어난다. 잡초 밭의 들꽃들은 먼지를 털며 스스로를 어여쁘게 단장하고 있다.
荊 棘 黃 塵 裡 형 극 황 진 리
蒿 蓬 古 道 傍 호 봉 고 도 방
輕 塵 埋 翡 翠 경 진 매 비 취
荒 隴 上 牛 羊 황 롱 상 우 양
無 奈 當 年 事 무 내 당 년 사
秋 聲 肅 鴈 行 추 성 숙 안 행
누런 먼지 속에는 가시덤불 무성타
옛길의 가에는 쑥대만이 흐드러져
비취의 보배는 먼지 속에 묻혔구나
거칠은 언덕 위엔 우양만이 한가하네
지나간 옛일을 이제 와서 어이 할꼬
가을소리 고요한데 기러기만 날아간다
옛 사람이 누리던 비취 빛 보배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제후와 여인들이 보석으로 치장하고 쟁쟁거리며 걷던 그곳은 가축의 초장과 들짐승의 굴혈로 변한지 오래다. 물같이 바람같이 해와 달이 흐르니, 지난 일과 청춘은 돌이킬 수 없어라. 어이 할꼬 인생아, 어이 할꼬 인생아.
{하간시 고려성의 유적을 답사한 북경 중앙언론사의 기자(당시) 김호림 씨에 의하면, 그곳은 현재 벽돌공장과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했다고 한다. 세월무상을 실감케 한다. 그 주변에는 지금도 고구려 왕족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한편, 단채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와 이맥의 <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에는 상기한 시의 작자가, 명나라 시인 반심이 아닌, 당나라 문인 번한樊漢으로 적혀있다. 김호림씨의 답사기에 실린 같은 시 “영고려성詠高麗城”은 몇 글자가 다른데, 필자는 <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의 것을 사용했다. }
후대의 사람이 이처럼 애달픈 시구로 고려성을 회고할 줄, 하간현 고려성의 성주 고중상高仲象(?-699)은 알았을까 몰랐을까?
고려성 성루에서 바라보는 동북편, 발해 바다 건너편 평양성의 하늘은 아직 푸르기만 하다.
검은 턱수염이 가슴 위를 장식하고 얼굴이 청수하며 기골이 장대한 삼십 여세의 장수가 누각에 올라 동쪽과 남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가끔씩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먼지 담은 세찬 봄바람에 허리에 찬 장검의 검수가 춤을 춘다.
‘남에서 일어나는 당나라의 구름이 저 하늘을 가리지만 않는다면, 북에서 오는 누런 모래바람쯤은 괜찮다.’
하지만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작년 여름에(<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의하면 666년 음력 6월, <자치통감>에 따르면, 666년 음력 5월의 일) 연개소문의 장남, 대막리지 연남생이 동생인 연남건에게 밀려나 당나라에 투항했다는 비보를 고려성에서 접했을 때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고려성이, 아니 고구려가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당시의 고구려 보장왕은 실권 없는 왕이었고, 실질적 통치자는 연개소문을 이은 그의 장남 연남생이었다. 동생 연남건에게 고구려의 정권을 빼앗기고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고구려의 실질적 통치자이자 서부(연나부) 대인(연나부의 통치자로서 고구려 왕족의 후예였음)이었던 연남생은 고구려 서부지방의 막강한 병력과 인구를 이끌고 당나라로 투항해버린 것이다.
뒤에서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한 어여쁜 여인이 아기를 안고 올라오고 있다.
“아니, 여보. 바람이 무척 찬데, 아이는 웬일로 이리로 데리고 올라왔소?”
“아기가 너무 보채서 나와 봤어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신기하게도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네요.”
장수는 아이를 받아 안고 아름다운 턱수염으로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이고, 볼을 그렇게 세게 문지르면 아이 뺨이 상하겠어요.”
장수는 아이가 귀여워서 죽겠다는 듯, 아이를 안고 한동안 이리저리 뒹굴렸다. 나라에 대한 시름도, 전쟁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도 그 순간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장수는 한참 후 아이를 부인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여기 성문에 나와 있지 말고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오. 부모님이 염려하시겠소. 어머님은 아이를 한시라도 보지 못하면, 숨이 곧 넘어갈 듯한 성미인데, 어서 가보오.”
장수가 부인을 재촉했다.
“아가야, 아가야, 너의 아버지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두렴.”
부인은 아이를 받아 안으며 장수의 얼굴을 훑어보다가 몸을 돌렸다.
“부인도 별 소릴 다하는 구려. 똑똑히 기억해 두라니. 내가 전장에서 죽기라도 바란단 말이오?”
장수가 얼굴에 웃음을 띠고 묻는다.
뒤돌아 내려가려던 여인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교태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휴! 당신도 참. 당신이 집안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으니, 아이가 커서도 당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걱정이에요.”
“허허허! 나라가 난리니, 적국과 국경을 마주한 여러 성들을 관할하는 몸으로 어쩌겠소? 당신이 이해해 주구려.”
여인은 대답을 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아가야, 아가야, 너의 아빠가 하는 말을 잘 들었지?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나 네가 아빠 품에 편하게 안길 날이 별로 없어도, 넌 아빠 같은 용사로 커야 한다. 알겠니?”
장수는 밑으로 내려가는 부인과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내 오늘 밤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집에 들어가리다.”
여인의 뒤를 향해 그가 말했다.
“아니에요. 집안은 염려하지 마세요.”
여인의 향취가 제자리에 남는 것을 시기한 나머지, 초봄의 세찬 바람이 주변에 훼방을 놓아버린다. 고중상은 하늘을 향해 한 차례 긴 휘파람을 분 후 몇 번 심호흡을 했다.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그 때였다.
“장군님, 남서쪽 평원에서 먼지구름이 이는 게 보이지 않습니까?”
한 장수가 황급히 뛰어올라오며 성주 고중상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오늘따라 시야가 좋지 않았다. 그가 시력을 모아 남서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수 백리 서남쪽에서 흐릿한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비대장 말이 맞네. 분명히 저건 먼지구름일세. 내가 직접 망대 위로 올라가봐야겠어.”
망대로 올라간 고중상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가 한참 동안 시력을 모아 먼지구름을 쏘아보다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적군의 큰 대열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구름의 모양으로 보건대, 군대의 사기가 충천하고 행군이 질서정연한 것 같습니다.”
“맞아. 나도 동감일세. 드디어 올 것이 왔네. 즉시 전군에 비상령을 내리고 전투태세에 돌입하게.”
작년 여름 연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할 때 느꼈던 그 불길한 감각이 다시 그의 온몸을 사로잡았다.
잠시 후 다급한 북소리가 고려성의 성첩들을 뒤흔들었다. 관병들은 일사분란하게 제자리를 찾고, 성중의 장정들도 모두 병장기를 들고 맡은 구역으로 줄달음질을 쳤다.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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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5. 5. 어린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