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있었던 강의이고, 공개강의 였어서
아마도 조만간 youtube ' 양평자유발도르프-동서통합인지학당 - YouTube '에 업로드 될거예요.
듣고 저혼자 정리했다가, 자료로 공유합니다.(공개강의였으니 이렇게 공유해도 문제는 없겠지요;;;)
제2회 양평국제발도르프포럼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부모와 교사의 협력]
김학철> 오늘 강의에서 앞서 질문들을 받았는데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부모는 이해가 가지 않아도 교사들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하나.
두 번째, 교사로서는 학부모가 원하는대로 하면 교육원칙이 흔들린다.
정리하자면, 어느 정도에서 선을 그어서 경계를 지키는 것이 좋을까.
현장질문자> 첫째 문제를 이렇게 바꾸어도 좋을지 같은 뜻인지 확인해 달라.
교사를 따라야하는 상황인데 이해가 안가서 따를 수 없을 때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김학철>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것이 현상적으로는, 나는 이해는 안가지만 따르겠어라고 결정하면 교조주의가 된다. 내가 이해가 안되니까 따르지 않겠어는 극단적으로 보면 한국 공교육에서 벌어지는 교권추락 상황이 만들어진다.
따르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다. 이렇게 주제를 잡고, 여기 계시는 선생님들의 생각을 들어보려 한다.
스티븐> 지금 하는 답변은 큰 이야기의 작은 부분이다. 20년 전 나는 초등과정의 administrator였다. (교사회 의장이라 할 수도 있고 부모, 교사 있으면 셋을 아우르며 이끌어가는. 교장 비슷하지만 교장은 아니다.) 그 때 이와 비슷한 질문상황이 있었다.
그래서 교사회의를 할 때, 교사들에게 학부모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쪽지에 쓰라고 했다. 나온 것은 예를 들면, 아침에 질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것이었다. 아침에 수업준비해야하는데 그 때 질문을 하게 되면 질문은 중요하지만 수업준비를 할 수 없다. 9~10시에는 전화하지 말아 달라. 등. 이런 내용으로부터 내가 알게 된 것은 경계설정, 특히 언제 소통하면 좋을까의 경계설정이었다.
반대로 부모들에게도 쓰라고 했고 이 둘을 합쳐서 서로에게 바라는 것을 10~15개 정도로 정리하여 소책자로 만들었다. 아직도 그 책은 남아 있다.
개리> 일단,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질문이 한국 상황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잘 갖춰진 역사가 있는 학교에 간다면 그런 신뢰관계가 쌓아온 역사덕분에 소통이 쉬울 수는 있다. 반대로 더 쉽게 무너질 수도 있고.
부모와의 소통과정에서 깨우쳤던 경험이 있다. 아이들은 집에 가서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 부모들은 그 아이가 경험한 것을 듣고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아이가 말하여. 그 부모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 경험들이 아주 힘들었다.
나는 교사로서 인정해야 한다. 가정에서 일어난 일은 부모들이 잘 안다는 것. 반대로 학교의 일은 교사가 더 잘안다. 교사로 해야 하는 일은.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가정에서 전해주는 아이의 경험에 대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학교구조에 관한 것이다. 이 구조는 한편으로는 부모가 좀 더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전달하도록 반대편에서는 부모의 의견이 교사에게 공격으로 다가오지 않게 하는 일종의 보호막, 또는 전달할 수 있는 중간 장치가 잘 기능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발도르프학교에서 교사로 일한다는 것은 교사들은 인격적인 노력과 헌신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서 수업은 개인적으로 가져온 경험, 영감들이 반영되어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 교사의 수업에 대한 의견 표현이 종종 교사 입장에서는 개인적 인격적으로 형성한 수업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구조, 보호막 또는 거름장치. 교사들에게는 부모의 의견이 직접적인 공격으로 다가오지 않게 하는, 영향에 너무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도와주고. 반대로 부모들로서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게 서로 잘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도움이 될 것이다.
칼리사> 앞의 두 선생님은 상급과정이고 나는 초급과정 5학년이다.
내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엄마가 해준 이야기이다. 엄마는 내가 유치원에서 고등부에 이르기까지. 부모교사회의(미국에는 연 2회의 부모교사회의가 있다. 회의라기 보다 수 백 명 대상으로 설명하는 자리, 주로 아이들의 발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에 우리 엄마는 딱 한 번만 갔다. 그것은 중학교 때 수학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이유는 내가 과제가 너무 많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수학교과과정 물어보았고. 수학선생님은 칼리사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더 어려운 과정을 들은 것이고, 그게 과정에서 칼리사가 힘들었고 그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상황이라 말했고, 그걸 알고 엄마는 감사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것이 내 학창기에서 딱 한 번의 불평경험이었고 동시에 엄마로서는 교사를 신뢰하지 못했던 단 한 번의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대가 바뀐 것 같다. 요즘 미국공립학교는 불신하는 분위기가 퍼져있다. 어떤 학교에서는 수업 전에 수업계획을 부모가 미리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학생들은 불평, 문제제기한다. 내 친구는 공립학교에서 5학년만 25년 가르쳤다. 사랑받는 선생님이었으나 최근에 사직했다. 친구는 이런 불신이 가득찬 분위기에서는, 부모들이나 학생들이 수업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불만표하는 상황 속에서는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발도르프 교사라 감사하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교사는 직원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교사는 아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는 파트너이다. 이영해 선생님 반의 한 부모가 ‘이영해쌤은 우리 아이의 두 번째 엄마’라고 말했다.(아버지 아니고 ㅋㅋ)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면, 책임감, 존중이 자라난다. 이렇게 아이를 가운데에 두고 부모와 교사가 잘 소통하게 된다면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다. 6학년 되기전에 ‘6학년이 되면 교사인 저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할 거예요. 그리고 부모님인 당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불평할 것입니다’
개리> 구조에 대한 이야기였다. 부모와 교사가 서로 존중하며 다치지 않으면서 생각을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자리구조. 이미 갈등이 벌어지면 중재가 어렵기 때문에 미리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스티브>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교사는 인간이다. 부모도 인간이다. 그리고 둘 다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좋은 보살핌을 주는 것이다.
둘이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한국에서는 인간관계를 통한 신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미국에서는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 식사를 같이 한다. 이러면 공격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같이 식사하는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가 의무는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부모는 온다.
두 번째, 일을 같이 한다. 미국에서는 학기전 1주일 동안 학교정비시간이 있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는 한 부모가 있는데 유명한 은행가다. 연봉도 높고 할텐데 학교정비기간에 작업복입고 와서 바닥을 엄청 열심히 닦는다. 내가 본 은행가 걸레질 중 최고였다. 그 사람은 그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나를 곤란하게 할 수도, 도움을 많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같이 일할 때 신뢰가 생긴다고 느꼈다.
칼리사> 이러한 신뢰는 교사-부모 사이만 중요한 것이아니라 부모-부모사이도 중요하다. 나는 담임과 교사가 만나는 ‘반모임’을 1년에 3회한다.
이 시간은 반 이야기, 아이 이야기, 아이의 발달을 이야기함으로서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행동특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슈타이너의 발달론도 이야기하고 몬테소리도 이야기한다. 이 시기의 중심목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런 것들을 부모와 나누는 것은 중요하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해마다 변한다는 사실. 어느 해는 부드럽고 어느 해는 난기류같다.
또한 부모들은 아이들이 다양한 기질과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급공동체 안에는 다양성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들에게 만약 학급이 숲이라면 어떤 아이는 은행나무, 밤나무, 참나무라고 비유하며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를 함으로서 부모들은 학급전체에 대한 상을 갖게 된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전체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아이가 집에 가서 낮에 같이 놀았던 거친 아이에 대해 불평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상을 공유하고 있을 때 부모가 무작정 화를 내며 아이를 감싸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부모는 그럴 때 아 오늘 우리 아이는 떡갈나무 같은 아이와 놀았구나. 이해하고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해줄 수 있다. 물론 여기 경계가 중요하다. 폭력은 안 된다. 안전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부모들이 알아야하는 것은 늘 갈등이 있고 그 속에서 사회성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현장질문자> 교과서적인 답이란 느낌이 들었다. 발도르프 학교 들어오면 웬만큼 아는 이야기다. 문제는 예외적인 경우의 발생이다. 예를 들어 특정아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든가. 장미가 떡갈나무한테 매일 당한다든가. 반복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학교에 농구대가 필요해. 아이가 좋아해. 하고 싶은데 농구대를 안줘. 발달상 안맞다고 하면서 안해줘. 혹은 예산이 없어. 이러면서. 시설에 대한 불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교육 컨텐츠나 교습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고 생각을 해서 미국과 다른 것 같다. 교육내용보다는 외적인 것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칼리사> 잘못된 행동에 대한 규칙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학교에서는 때리면 바로 집으로 보낸다. 부모면담 전에는 등교 못 한다. 부모가 이 학교에서 우리 아이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부모-교사간 신뢰도 형성될 수 없다 그래서 규칙은 매우 중요하고 어릴 때 더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행동이 더 은밀해지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학급규칙으로서도 강조하고 학교 전체문화로 만들기 위해. 상급학생들이 저학년들에게 잘못된 것을 알려주는 것을 하기도 한다.
현장질문자> 때렸을 때 바로 보낸다고 하는데, 때린게 아니라 따돌림 행동이라면, 물리적 접촉 없어도 집에 보내나?
칼리사> 상황에 따라 다르다. 심리적 괴롭힘은 물리적으로 때리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때로는 부모 개별 면담을 하기도, 학급전체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현장질문자> 5명이 1명 괴롭히면 5명 모두 보내나?
칼리사> 그렇다.
현장질문자> 정학제도가 있나? 부모가 일하는 중이라 집에 없으면? 정학결정이 애매할 때 누가 하는가?
칼리사> 집에 부모가 없다면 교무실에서 학교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부모가 픽업한다.
결정은 담임교사만이 아니라 coordinator(administrator의 한 형태)와 결정한다. 아이를 수업에서 내보내는 것은 아이와 부모에게 강력한 효과가 있고, 우리 반에서는 이 것을 부모님들이 매우 지지한다. 아무도 자신의 아이가 때리거나 맞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강력하게 작동한다. 아이가 교실에 다시 오기 전에. 강한 메시지를 반아이들에게도 준다.
스티븐> 만약 내가 아이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탕을 훔치지마’ 라고 한다면 이 아이는 머릿속에 훔치는 상을 갖게 된다. ‘하지마’라고 말하는 것들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좁은 도덕적 상을 주는 것보다 좋은 행동에 대한 상을 갖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 바람직한 행동을 전달하는 좋은 이야기는 발도르프 교육에는 잘 남아있다. 그런데 이것을 통해 변화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고. 칼 리사 선생님이 말한 것은 즉각적으로 행해져야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칼리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행동에 대해서는 절대 허용하지 않고 즉각 멈추게 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아이들은 선한 존재이며 성장중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성장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경험인데, 쉬는 시간 마치고 들어가는 길에 4학년 존이 브래드에게 태클 거는 모습을 보았다. 본능적으로 “뭐하니. 나쁜 짓이야. 교무실로 가서 집으로가”라고 말하려다가, 심호흡을 하고 쓰러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한 후 둘을 다 안아주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서로에게 태클하지 않아”, “존 이건 너답지 않아. 왜 브래드한테 태클을 거는 거니?” “브래드가 먼저 오하이오에 대해 놀렸어요”(전날 오하이가 축구에서 졌음), 이 대화를 나누자 서로 사과하고 마무리되었다.
나중에 태클한 아이에게 다음번에도 화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하게 했고,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집에 돌려보낼거라고 확실하게 말했다. 이러한 제제조치는 즉각적으로 해야하는 것이고, 동시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 알려주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벌과 귀가만 이루어져야하는 것이 아니다.
개리> 칼리사가 한 이야기가 상충되는 말처럼 들릴 수 있는데 상황마다 다르게 대처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가 만들어진다.
칼리사> 맞다. 남자아이들이 미식축구 태클 과격한 장난을 하는 것과 직접 때리는 것은 다르다.
스티븐> 소통에 관한 한 가지 원칙을 나누고 싶다. 이것은 세계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이메일은 면대면과 비교할 수 없다. 줌도 마찬가지로 한 방에서 나누는 것과 다르다. 이메일을 보내면 상대방이 잘 읽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직접적 관계 소통이 중요하다.
김학철> 우리가 적극적으로 자리를 마련해서 소통함으로써 신뢰를 가져야한다.로 정리된다.
이 시점에서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왕따, 일진, 이런 대책을 어떻게 할까. 칼리사 선생님은 명확한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한다고 했다. 정학 같은. 스티븐 선생님은 나쁜 것을 못하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을 할 수있도록 유도해야한다고 했다.
합쳐서 말하자면 명확하게 규칙을 적용하되 - 이렇게만 말하면 옛날 학교의 권위적인 것이 떠오르지 - 기계적 매뉴얼이되면 안된다. 즉 냉정하게 적용하되 따듯함과 유연성이 포함되어야한다.
박규현> 시간이 짧고 해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기 힘들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라고 했는데, 실제 학교에서 보면 하루하루가 전쟁이라 느낀다. 본인이 긴장해서든, 할 일이 많아서든. 긴장되게 하루를 보낸다.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는 딱 3가지인데 앞뒤로 한 두 개 붙이겠다.
먼저, 우리가 대화를 할 때 대화를 망가뜨리는 가장 좋은 것이 추상적인 개념어를 매개로 대화하는 것이다.
‘발도르프적이다/아니다’ 이런 얘기는 앞세우지 말자. 어떤 추상개념에 대해서 말할 때 머릿속의 상은 각자 다르다. 자의적, 임의적으로 정당하다 생각하는 상을 것을 세워놓고 얘기하기 시작하면 부딪힌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정말로 이야기해야 할 때 또 추상으로 하면 소통이 안된다.
그래서 이것이 옳다/그르다, 정당하다/아니다, 가정된 선입관, 추상, 개념 이런것 다 빼고 이야기해야한다. 그걸 내세워서는 전혀 실질적인 소통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발도르프적이라는 말에는 정말 별로 유의미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너무나 짬뽕으로 섞여 있어서 그걸 앞세우면 이야기가 안된다.
그냥 인간대 인간으로 소통해야한다.
첫 번째, 학교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갈등이 부모의 갈등으로 전이된다. 재밌는 것은 아이들의 갈등은 해결되는데 부모의 갈등은 계속 자란다. 가장 흔하다.
아이들은 나름의 해결방식이 있는데 그것과 별개로 부모들은 나름대로의 감정적인 결을 갖고(교사-부모이든 부모-부모이든) 이것이 나의 의사가 얼마나 소통되거나 인정되는가에 대한 인정욕구 때문에 갈등이 증폭된다. 아이는 이미 까먹고 놀고 있다.
어른이 더 문제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아이들의 해결방식이, 어른은 어른의 해결방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유연한 구별과 연결과 이런 것을 우리가 잘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소통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 학교 목표도 그렇지만 우리 기준도 아이들의 상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어른들의 자기의 어떤 정의개념이나 자기의 감정을 끼워 이야기하면 ‘인생문제’로 벌어지게 된다. 각자의 인생관을 놓고, 가치관을 놓고 다투는 격이 된다. 이미 아이들 문제에서 떠난다. 그걸 조심해야한다는 것을 먼저 말씀 드리고 싶었다.
두 번째. 모든 소통이라는 것이 당연히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교사대 부모라고 하면 거대한 입장 대 입장이 된다.
우리는 입장도 있고 한 인간으로서의 품성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소통이라는 것은 입장 이전에 인간 대 인간의 인격적 소통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물론 말은 쉬운데 실제로 행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어떤 기능적 방법이나 제도, 구조, 지식, 매뉴얼이 모자르지 않다. 다 알고 있다.
어떤 원칙이 필요하고 어떤 매뉴얼이 필요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정책이 있어왔고 어떤 것이 실패했고 효과를 봤고. 그걸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결국 서로 간에 인간적 소통에 대한 미숙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실 우리는 정말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의식적이고 문화적이라 볼 수 있는 친밀감 같은 것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적 해결이 필요하다.
그게 안 되어 있으면 형식적으로 소통해도 하긴 해도 별 효과 없다.
세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우리가 뭔가 처리해야한다면.
내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국교육의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워낙 국가권력의 권위주의적 정책통치 역사가 길어서 사람들이 사회적 선입관을 굳혀진 채로 그대로 대안학교로 온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장’이라는 말. 공교육 교장하고 대안학교 교장은 180도 다르다. 공교육교장은 권한, 인사권, 예산권이 강제적으로 정해져있다. 대안학교 교장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름이 같아서.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어떻게 대해야한다는 일종의 루틴이 서있다. 그걸 생각하면서 소통하니까 안맞는다. 실제하고 안맞는 선입관갖고 하는것이니까.
사회의 선입관, 제도, 상식이 옳을 때도 있지만 굉장히 집단적으로 잘못된 통념적 사고를 상식이라 할 때도 있다. 상당히 많은데 그것을 그대로 전제하고 들어와서 소통하면 큰일 난다. 실제와 계속 부딪힌다.
모든 것을 현장의 필요를 살려서 소통하는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건데.
공식적으로 이말씀 드리고 싶다. 우리가 이 학교에 교사도 부모도 들어올 때 무엇 때문에 이걸 선택했고, 우리가 어떤 합의를 하고 시작했는가가 뚜렷해야한다.
어떤 목표, 어떤 교육과정, 실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자고 합의한 것이 있는데. 이게 모자랄 수도 있고, 합의에 없던 것 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먼저 뭘하려했는지 명확해야한다.
그 합의범위 내에서 풀 수 있다면 좋은데 풀 수 없는 것이 발생했다면 스티븐 선생님 말대로 계급장 떼고 모여서 그런...(로딩)... 합의에서 벗어나면. 뭐가... (로딩)
김학철> ... (박규현선생님 말씀을 정리하자면) 우리는 다 개별적인 사람들인데, 추상적인 언어로 소통하려다보니 개인이 가진 주관적인 단어에 대한 인상 같은 것을 갖고 서로 소통을 하고 있다. 추상적인 언어로 각자의 감정으로 이야기하는데. 예를 들면 ‘교장’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 머릿속 상이 달라서 소통이 제대로 안된다. ‘정학’, ‘처벌’도 마찬가지다. 우린 어떤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다. 예전의 권위주의적인 것을 떠올리면서 학교에서 처벌을 한다고? 우리가 실행하려는 것을 기존에 갖고 있던 인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규현 쌤은 우리가 애초에 학교에 들어올 때부터 합의를 잘 해야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단어의 의미 같은 것에 대해서 충분한 합의를 갖고 시작해야하고, 어떤 갈등이 생겼을 때 계속해서 우리가 가진 생각에 맞는 하나의 단어를 놓고 우리가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그것을 명확하게 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무리.
스티븐> 한국아이들 미국아이들 비슷한점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교사로서나 부모로서의 일도 비슷한 것 같다.
칼리사> 이 아름다운 유치원에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떠올렸으면 한다. 그것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좋은 음식, 좋은 잠, 자연에서의 많은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개리> 박쌤이 말한 이야기에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 속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 학교가 점점 커져가고 있고, 상급도 생기고 있다. 이렇게 변화함에 따라 마찬가지로 우리의 필요에 따라 표현하는 말도 함께 변화하고 발전해야한다.
박규현> 발도르프학교의 ‘부드러운 권위’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전에 강의한 것이 유튜브에 있다. 그냥 단적으로 말하자면, 권위에 대한 언론이 안 좋지만, 부드러운 권위는 ‘강한 신뢰’의 다른 말이다.
그런데 신뢰의 바탕은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저 사람이 나에게 호의적이다, 나는 안전하다라고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기에 서로가 내놓고 정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어른들이나 교사학생이나 부모자식도 마찬가지.
늘 이야기하는 것인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안된다. 정말 기본은 정말 정직해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교사가 많이 안다고 신뢰하지 않는다. 교사가 모르는 것은 ‘나도 모르는 건데 같이하자’고 할 때 신뢰한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이 어른이 능력이 있다고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나는 이게 모자라고 나는 너에게 이런 마음이 들었고’가 투명하게 서로 오갈 때 신뢰가 생긴다.
그런 기본 문제에서 인간적인, 인격적인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
그래서 발도르프학교는 아이들의 학교이기도 하지만 교사의 학교이기도하고, 부모의 학교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같이 자기교육을 한다는 심정으로 애쓰자는 말씀을 드리고싶다.
김학철> 정말 신뢰가 중요하다. 이런 신뢰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정직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과 나를 정직하게 그에게 표현하는 것은 둘 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열려있어야 한다. 용기가 있다는 것은 여기서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이니. 열려 있어야한다.
하나 덧붙이면 동감과 반감이라는 어려운 말로 쓰고 있지만 사실은 정말 동감을 사랑, 반감을 규칙의 적용이라 한다면 이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야하는구나. 어떤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는 그 안에 사랑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정리가 되었다.
thank you.
강의주제부터 매우.. 혹하여.. 마음이 쓰였는데...
들으면서 참 많은 상상과 공감과 또..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 참 녹녹하지 않구나.. 않겠구나 싶으면서도.. 어째선지 힘받는 시간이었습니다.^^
같이 즐겨요. ㅎㅎㅎ
첫댓글 요즘 뉴스로 마주하게 되는 여러 장면들이 주마등이처럼 지나가며, 참 감사히 읽었습니다.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미리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교육 공동체에서 부모와 교사, 부모와 부모.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고 함께 걸어가는 길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던 요즘. 와 닿는 이야기들이 많네요. 나누어 주셔서 감사해요^^!!
넘나 좋은 대담 이렇게 파일로 정리까지 해주시니 최고요! 영상 바로가기 링크 올려요~
https://youtu.be/4Umn_JEBgzY?si=gCeA78B9c9_YlM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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