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날의 꿈
민 경 준
손가락으로 숫자 하나하나 짚으면서 같은 번호일 때마다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고 숨이 멎을 듯하다. 1등이다. 서울에 갔다가 미국복권 구매대행 부스에서 산 슈퍼볼 복권, 10여 차례 이월된 끝에 내게 1등을 안겨 주었다. 횡재를 만났다. 엄청난 돈이 들어왔다. 매일 뜻있게 쓰든, 흥청망청 쓰든, 하여튼 생전에는 다 못 쓸듯... 이걸 어디에 쓸까? 쓸데가 걱정될 정도의 큰 거금, 그렇다! 나는 전부터 이런 돈이 생기면 첫째로 국가를 위해서 쓴다고 평소 지인들에게 수없이 한말이 있다. 국방부에 전화를 건다. F-35A 스텔스 전투기 한 대 가격이 얼마나 되느냐고? 대당 가격이 1200억 정도이고, 군수지원과 무장비용까지 합하면, 1850억 정도란다. 별거 아니네 열 대 기증하고 싶으니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비가 오니 또 시작이네' 라며 내 의사에 반하여 전화를 끊는다. 정신이상자로 취급하는 듯하다. 또다시 전화를 건다. "강한 국방력 아래 억지력이 있어야 국민이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이다."라고 오히려 내가 호통을 친다. '띵동' 휴대폰에서 위치 확인 신호가 울린다. 위치 파악을 했는 모양이다.
미국 스페이스 X에 우주여행 일정 및 여행 요금을 알려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부부 동반으로 화성까지 30박 31일 요금이 100억은 된단다. 많이 싸졌다고 하면서 예약을 하라고 보챈다. 한 번 가봐야지,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세계 최고급 자동차 전시장에 갔다. 당연히 제일 비싼 차를 구경한다. 아내를 불러낸다. 맘에 드는 차를 선택하라고 호기를 부린다. 꿈에 그리던 차라며 예약을 한다. 나도 최고급 차량에 풀 옵션한 차를 예약을 하고, 향기 좋은 차(茶)를 대접받은 후 시건방진 자세로 영업 사원들에게 거드름을 부린다. 돈이 뭔지~ 모두가 내게 굽신거림의 연속이다. 사람 나고 돈 나왔거늘, 돈의 위력이 천상천하 최상 위치로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며칠 후 검은 양복에 짙은 안경을 쓴 사람들이 찾아왔다. 국방부의 밀명으로 사찰 나왔다고 한다. 신분증을 보니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 요원들이었다.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는 듯한 눈빛이 어쩜 섬뜩함을 느낀다. 독수리의 사냥감이 포착되는 순간의 느낌이다. 신분증을 요구했다. 아마 형식으로 요구하는 거 같다. 이미 휴대폰 번호로 신원이 확인됐으리라. 전화한 사실이 있냐? 있으면 그 말이 진담이냐? 진담이면 무엇으로 보장을 할 것인가? 꼬치꼬치 묻는다. 한 마디로 돈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내가 뱉은 말은 그 자체가 법이다" 라며 통장을 보여줬다. 눈이 휘둥굴 해지고 통장을 뚫어지도록 쳐다보며 일, 십,백, 천,만, 십만, 백만, 천만, 억 , 십억, 백억.... 계속 손가락으로 찍어가며 숫자를 헤아린다.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한다. 기자를 대기시키라고 전화를 하는 듯하다. 돈의 위력이 또 발휘되는 순간이다.
이튿날 7개 일간지에 기사가 나왔다. 청주에 거주하는 민모씨가 선국후사(先國後私)정신으로 쾌척했다느니, 안보관이 투철하다느니, 비리 경영인들과 비교를 해 가며 칭찬으로 도배를 했다. 기사가 나간 후,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 단체에서 협조해 달라는 전화와, 숱한 지인들이 줄줄이 손을 벌린다. 서운치 않게 골고루 나누어 주니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다 준건 아니다. 일부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줄 사람도 있었다. 매일매일 앤드로 핀이 몸을 적신다. 이 세상이 도원경(桃源境)이로다.
이 시간이 영원하길... 사무실에서 조용히 상념에 젖어든다. 이때 건물 옥상에서 분변이 계단을 타고 몰아쳐 내려온다. 문을 힘껏 밀고 방어해 보지만 역부족, 사무실 안에 분변이 가득하다. 사무실 건너편에서 수십마리의 돼지가 몰려온다. 의자로 막고 때려 보지만 이것도 역부족, 최후의 방법, 제일 큰 놈의 머리에 주먹과 발길로 세게 질러대고 걷어찬다. 아악! 잠이 깼다. 발로 벽을 후려 찬 것이다. 아 꿈이었구나! 일어나서 불을 켠다. 발이 부었고 통증이 심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몽환(夢幻)이 아른거린다. 아! 이 일을 어찌할꼬? 국방부와의 약속, 스페이스 X 여행 예약, 고급 차 예약, 비록 꿈이었지만, 난감하기만 하다. 그럼 분변 꿈, 돼지꿈을 왜 이때에 꿨는지? 복권을 사라는 계시인가? 꿈 해몽을 찾아본다. 결과는 나쁘단다. 분변을 뒤집어쓰고 돼지를 자식처럼 기쁜 마음으로 끌어안아야 되는 건데, 차 버렸으니...
조간신문을 보자. 미국 럭비 국가대표 선수 12명이 설악산에 여행을 왔다. 흔들바위에 올라 가이드가 한 말, '수 십 명이 밀어도 끄떡끄떡 만 할 뿐, 구르진 않는다'라고 하니, 이 말이 우습기도 한 듯, 흔들흔들 밀면서 힘자랑을 했다. 한 번에 힘을 모으니 바위가 아래로 굴러 떨어져 나갔다.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고 구르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며,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니, 그 소리인즉 뻥이요~~
정신을 차리고 출근을 해야지, 하면서 달력을 보니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첫댓글 스케일이 크십니다 ㅎㅎ
저는 15억 가지고 어찌 쓸까 연구하다 포기했어요. 모자라더라구요 ㅎㅎ
글이 막힘없이 잘 읽힙니다.
ㅎㅎㅎ...
올해는 만우절인 줄도 모른 채 지나갔군요.
처음엔 잠시 진짠가? 하다가 아니구먼 했지요.
꿈이든 거짓이든 잠시나마 대리만족 하고 갑니다.
술술 읽히는 문장에 눈을 뗄 수가 없네요.
흔적 감사합니다.
큰 꿈을 가져야지요.
나는 고작 태국이나 한 번 가봤으면,
대만이나 인도네시아도 가보면 어떨까 하다가
올 겨울엔 제주올레길 남은 구간을 걸어야지 하다가
일요일엔 옥화구곡길이나 가자 했다가
그 꿈마저 사그라드는 중인데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읽다가 ㅋㅋㅋㅋ
대단하십니다. 민씨 남자는 같지 않아요.ㅋㅋ
ㅋㅋ~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