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십자가 성 요한의 정화론(淨化論)
김 광서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논문
들어가는 말
1. 연구의 동기와 목적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실존이 불안하고 무의미하게 느낄수록 자신의 존재 의미와 근거 및 불안한 자아를 되살려 주는 사랑의 체험을 애타게 목말라 하면서 찾아다닌다. 진리에의 다양한 메시지들이 열려져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여러 사상들 사이에서 방황하며 더 새롭게 최신의 해석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400여년이 지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사상이 오늘날에 와서도 설득력을 지니면서 현대가 고민하는 실존의 의미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확실한 존재의 원천을 밝혀주는 빛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인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사상을 처음 대할 때 다른 저서들보다 먼저 『가르멜의 산길』이나 『어둔 밤』을 접하다보면 겁부터 난다. 왜냐하면,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완전히 버리고 고통과 무미건조한 ‘어두운 밤’을 지나야 한다고 결론을 짓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철저한 논증과 엄격성 앞에 놀라고 자신이 없어져,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사상을 단순히 엄격하고 극단적인 것으로만 해석하는 단편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이 철저한 자기 부정과 고통의 정화 과정에서만 주목하다 보면 십자가의 성 요한이 시도하는 여러 가지 설명을 다만 지상 것에서의 박탈의 절대적 필요성만을 이해시키려는 줄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소극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편견과 선입견을 갖게 되면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근본적 의도와 핵심 사상을 잘못 이해하여 피상적인 접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1)
그러나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근본적인 의도는 ‘하느님의 사랑’의 참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를 원한 것이었음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평면적인 관점은 십자가의 성 요한의 하느님 사랑에 대한 심원한 이해 지평을 축소시키고 십자가의 성 요한의 메시지가 갖고 있는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감소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사랑’이 인간의 최종적이면서 유일한 소명이라는 사실과 인간은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을 위해서 창조 이전부터 정향(定向)된 존재라는 것을 증언하는 데 자신의 모든 노력과 힘을 기울였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있어서 사랑은 인간의 ‘자연적’ 이고도 ‘초자연적’삶의 자리이다. 즉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사랑이 현세에서의 자연적인 삶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이 사랑은 현세의 조건들이 모두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계속 유지되는 초자연적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은 내세에서의 새로운 존재방식이 되며 은총의 본질이 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사랑이 바로 인간의 전존재를 내포하는 역동성이며 영혼의 구원으로서, 인간이 죄와 욕으로 인해 잃어버린 하느님과의 일치와 사랑의 합일을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라는 것을, 또 동시에 인간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역설하는데 온 생애를 다 바친 분이라 하겠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이었기에 이와 같은 사랑의 친교에 우리 영혼을 초대하기 위해서 그토록 강한 어조로 ‘무(無)와 ’자기부정‘의 정화과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를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담을 수 있도록 또 그 사랑에 맞갖은 영혼이 준비되기를 소망하였기에 사랑의 다른 모습으로서 정화를 제시하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무의 학자’ 또는 ‘어두움의 박사’라고 부르고 있지만,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사상이 단순히 ‘무를 위한 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인간에 대해 최대한의 경의로 접근하여 인간의 거룩한 완성과 ‘인간의 하느님께로의 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1927년 교회의 성 학자로 선포되었음을 통해 알 수 있다.
현대 교회의 인간에 대한 전망이 드러나 있는 사목헌장에서, “인간 존엄성의 가장 숭고한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과 결합되기 위해 불리웠다는데 있다. 인간은 날 때부터 하느님과 더불어 대화하도록 초대받는다. 사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지탱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도 없고, 하느님의 이 사랑을 자유로이 인정하며 자신을 창조주께 맡겨드리지 않고서는 인간이 진리를 따라 산다고는 할 수 없다.”2) 고 말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사상의 핵심으로서의 ‘인간의 본질적 소명의식’과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은 단순히 과거의 하나의 견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초월하여 인간의 존재의미를 해명하는 뛰어난 관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에로 불리운 인간의 본질적인 소명에 연결된 전체적인 인간관에 입각하여 정화의 의미를 해명해 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2. 연구 방법과 범위
본 논문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저서를 중심으로 하여3) 영혼의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로서의 정화과정을 서술해 보는 것으로 구성하였다. 즉 정화에 대한 평면적인 접근 방식의 해석은 영혼의 정화 여정을 한편에서는 죄와 욕으로 더럽혀진 인간 본성이라는 출발점으로 하여 보속과 고행의 형식을 통해 정화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구성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최종적으로 승리한 정화의 완성만을 가장 중시하여 구성하는 출발과 목표를 분리시키는 방식이라 하겠다. 반면, 본 논문에서는 정화의 원천과 근거 및 목표를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일관되게 연결하여 해석하는 방법을 따라 구성하였다. 이것은 정화가 결코 사랑과 분리된 가치가 아니라 사랑의 다른 측면이라는 것에 의거하는 것이며 또 정화를 추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인간의 내면 속에서 하느님과 연결되는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화의 원천이 사랑이기에 정화의 동기와 출발이 사랑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정화의 목표 역시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정화의 전 과정을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가치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과 이런 전망에 바탕으로 하여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 과정으로서 정화의 전반적 과정을 밝혀보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이 이해하고 있는 인간의 의미를 단순히 죄와 욕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런 타락한 본성 속에 주어진 거룩함에로의 불리움,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에로 불리운 존재로서의 인간의 의미와 인간의 본질적 소명을 다루게 된다. 실존적으로는 죄의 상황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영혼 안에 주어진 사랑의 합일의 가능성에 근거하여 다시 쇄신되고 재정향되어야 하는 인간의 본질적 소명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제2장에서는 정화의 의미를 사랑의 또 다른 측면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욕이 영혼을 해치는 부정적 의미를 분명히 분석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욕 안에 내재하는 역동적인 성격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랑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또 사랑이 정화의 기준점이 되고 사랑에 의해 정화의 좌표와 방향이 제시되는 것을 고찰하여 십자가의 성 요한에 있어서의 사랑의 의미와 성격-특히 사랑의 대신덕적 차원-을 밝혀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화과정으로서 십자가의 성 요한이 제시하는 ‘밤’이 하느님 사랑의 배려이며 은총의 정화과정이라는 것을 고찰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정화의 길을 십자가의 성 요한은 무(無- NADA)와 전(全-TODO)의 변증법적 방법을 통해 나아갔다. 즉 왜 십자가의 성 요한이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무의 길’을 정화의 방법으로 제시하였는지를 고찰하여 본다.
제3장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이 구체적이면서 실제적으로 제시하는 정화 과정과 정화 방법 중 먼저 인간 편에서 수행해야 하는 정화 노력으로서 능동적 정화를 다루어 본다. 능동적 정화에서는 영혼의 하부 구조인 감각에서의 능동적 정화와 상부 구조인 영의 능동적 정화를 살펴본다.
제4장에서는 인간 편에서 수행하는 정화의 한계를 초월하여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여 영혼을 정화하시게 되는 수동적 정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느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시어 영혼을 정화하시는 이유와 수동적 정화의 의미 및 영혼이 수동적 정화를 거치는 동안 겪게 되는 고통과 그 열매를 다루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5장에서는 정화의 목적으로서 영혼이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사랑의 합일 단계를 고찰한다. ‘영적 약혼’과 ‘영적 결혼’ 그리고 지상에서 영혼이 도달하는 합일의 절정으로서의 ‘변모의 합일’을 살펴보고 이러한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이 갖는 의미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지평의 성격을 밝혀보고자 한다.
또 본 논문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이 정화 과정의 변화에 상응하여 함께 진행하여 설명하는 기도의 단계나 기도의 종류에 대해서는 본 논문의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이므로 다음을 기약하고 여기서는 제외하여 다루지는 않겠다.
주 註 ◁
1.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사상적 핵심적인 의미와 의도를 알기 위해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 중에서 맨 먼
저 『영혼의 노래』를 읽기를 권장하는 이들이 많다. 말하자면 『영혼의 노래』 는 그 첫머리에서부터,
십자가의 성 요한이 우리를 인도하려는 목표와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을 통해 누리게 되는 지극한 행복
의 경지를 보여줌으로써 십자가의 성 요한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하느님과의
깊은 사랑의 일치와 친교에로 부르시는 영신적 전망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부풀고 설레 이게 된다. 따라서
온갖 고통과 힘든 과정을 무릎 쓰고서라도 ‘하느님과의 사랑의합일’이라는 목표에 한 번 도달해 보려는 의
욕과 희망이 생겨나게 된다. 그렇게 아름다운 목표에 온통 몰두하게 된다면,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금
욕과 자아 포기 및 무의 길 등 고통스런 정화의 십자가를 제시하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2.『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19항
3. 본 논문에서 참고로 한 기초적인 자료로는 다음과 같다.
십자가의 성 요한, 『 가르멜의 산길』, 최민순 옮김, 성 바오로 출판사, 1993.
,『어둔 밤』, 최민순 옮김, 성 바오로 출판사, 1994.
,『靈的 讚歌』, 박병해 옮김, 만남, 1996.
,『영혼의 노래』, 부산가르멜여자수도원 옮김, 1990.(미간행)
,『사랑의 산 불꽃』, 대구가르멜여자수도원 옮김, 1991.(미간행)
,『살아있는 사랑의 불꽃』, 박병해 옮김, 만남, 1997.
,『십자가의 성 요한 소품집』, 대전가르멜여자수도원 옮김, 햇빛 출판사, 1991.
, 『잠언과 영적 권고』, 서울 가르멜여자수도원 옮김, 가톨릭 출판사, 1991.
영어권 자료는, E. Allison Peers(ed), The Complete Works Of Saint John Of The Cross, London, Burns And Oates, 1964; Kieran Kavanaugh(ed), John of the Cross: Selected Writings, New York. Mahwah, Paulist Press, 1987.
본 논문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들을 일차적인 자료로서 수시로 인용하게 될 것이므로 편의상 다음과 같은 약어의 범례로 표기하고자 한다.
『가르멜의 산길』제1권 제1장 제1절은 산길 1,1,1.로, 『어둔 밤』제1권 제1장 제1절은 밤 1,1,1.로, 『영혼의 노래』A(혹은 B) 제1장 제1절은 노래 A(혹은 B)1,1.로, 『사랑의 산 불꽃』제1부 제1장 제1절은 불꽃 1,1,1.로 표시하겠다.
|
|
| ||
|
첫댓글 스크랩 해 갑니다. 장마비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