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헤어진 부산항
“오빠, 이제는 만나지 말아요,”
어제의 따스하고 밝은 웃음을 머금은 순이가 아니라는 느낌 속에서 이런 청천벽력의 말을 ...
순이는 2년 후배로 동네에서 예쁜 얼굴과 맑은 웃음이 있는 인기짱으로
나는 행운으로 순이를 만나, 몰래 배밑에 백사장에 가곤 하였는데,,
순이를 만나자 대뜸
하나 둘 서울. 부산으로 떠나는 동네 친구들을 부러워 하면서 나도 도회지로 가고 싶어하던 차에 때마침 마음이 통하였던가! 순이가 부산으로 같이 가자고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순이를 혼자 보낼 수 없었고, 이번에 떨어저 있게 되면 영원히 헤어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나도 함께 가기로 결정하여,
그해 3월초 어머니에게 말도 못하고 둘이서 몰래 동네를 빠져나와 진고지를 돌아 동래두로 걸아가는 두사람의 마음은 몹시도 두려웠고 무거워 서로 말없이 손만 잡고서!
이 당시 동래두는 동방여객 마즈막 정거장으로 나로도에 오가는 손님을 고흥으로
우리 동내 사람도 타지로 나갈때는 이곳까지 와서 차나 배를 타거나 하였던 곳으로, 이곳에는 조그마한 상점도 있었고,,
차를 놓치면 그 다음날 동네에서 까막재로 넘어가서 기다리면 버스를 타곤 했는데 부산으로 가는데는 차로 가면 돈도 비싸고,
순천에서 하동.진주. 마산을 걸쳐 가기 때문에 배로 가는것과 같은 시간이 걸리는데 버스는 자주 고장도 나고 한곳에서 오랫동안 지체하고 이러니
여수에서 대부분 배로 가는데 여기 동래두에서 한 두시간 기다려 “조도”호를 타고 4시간 정도 걸려 여수에 도착 하는데
여수에 도착하여 오후내내 기다려 밤에 출발하는 밤배연락선, 한일호를 타는데,
낙동강 근처를 지나 갈때는 물쌀이 세어 이리 저리 나둥겨 지고 껴안고 하여 3등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어느새 부산항에 도착하게 되고,,, 순이는 친구 영희 한테로 가고 나는 영도에 살고 있는 친구한테 며칠 함께 있다가 중국집 배달원으로 이때부터 말 못하는 타향살이 고생은 시작되고
이렇게 부산에 온지 2년이 지나가는 무렵 순이는 방직공장에서 일하고 나는 사상에 있는 기계공장에 운좋게 다니고 있섰다.
그동안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한달에 한번정도 만나서 정다웁게 영화도 보고, 해운대 구경도 하였는데,,,
순이는 그공장에서 얼굴도 예쁘고, 일도 잘 함으로 인기가 좋았는데
나는 내처지가 너무 슬펐다. “너보다 열배, 더낳은 여자랑 결혼할 거야!” 마음속으로 울면서 그 얼마나, 맹세 했던가?
이젠 부산은 싫었다. 남포동 그거리 부산극장도 서면로타리도 영도다리도 싫어졌다.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을 움켜잡고,
또 다시 무작정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일 년을 방황 한후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나에겐 돈도 빽도 후원자도 없으니 오직 내 실력 만이,,,,
순이는 그 사랑도 실패 하여 어디론가 가버려 다는 소문만 들었으나 그 후 오랫동안 아무 소식도 듣지를 못했으나 엊그제 고향 친구로부터 미국에서 쓸쓸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문뜩 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오늘 야간 KTX 열차를 타고 자주 만났던 부산항 영도다리로 온 것이다.
여수 부산을 왕래하던 한일호가 자갈치 시장 옆으로 접근하면서 뱃고동 소리를 내면서 속력을 줄이면
영도다리 첮번째 난간이 올라 가는데 사람도 차도 건너지 못하고 꼼짝 없이 기다렸던 추억이,,,
이 다리 위에서 사랑하는 순이를 기다리며 콧노래 부르며 서 있던 옛 나의모습이 물위에 비쳐진다!
그 후 한일호는 1967년 가덕도 앞에서 군 수송함과 침몰하여 100여명이 사망하고 침몰해 버렸고
이제는 영도다리는 들려지지도 안으며 순이 만날 려고 기다리던 다정한 정감도 다 사라지고 없는데,,,
그 옆에 새로운 다리도 휘황 찬란하게 보이고 초라했던 자갈치 시장도 현대화 되여 그 모습도 너무나 많이 변하였고
용두산 전망대는 야밤에 더욱 빛나며 배 고픈때 먹고 싶어 했던 곰장어 냄새는 얼마나 좋았던가!
부산항 항구의 불빛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화려 하지만 내 마음속의 순이는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 하는 향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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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친구여 누구에 이야기인가 궁금하네그려 옛날추억은 어제나 아름다운것..........
한편의 드라마 그자체 입니다. 옛날 추억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슴에 절절한 이야기이네요 지금은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표현하실 수 있지만은 그때 당시라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텐데요. 그러나 가슴에 남아있는 그 알수없는 꿈틀거림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언젠가는 만나겠지요. 그러면 그마음속의 모든것이 봄 눈 녹듯이 시원스레 해소되겠지요.. 그러나 그다음에 내게 다가오느 또다른 무엇인가가 나를 슬프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좋은 글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화처럼 머리속에 그려집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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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어린시절 이야기가 애절한 추억의 이야기속에 묻혀서 네 줄에 표현해버리니 쉽게 얻은 대학입학자격 검정고시 합격이야기 같이 들려버리고 말았군요.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힘든일이 추억의 아련한 이야기보다도 더 값진 인생의 이야기 일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지금 현재의 선배님의 위치는 그때의 밑 바탕이 아니었을까요?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도 남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나 첫사랑의 감동과 이별의 애절함이 없겠습니까 마는 선배님의 로맨스는 우리 고향 애기와 곁들어서 들으니 더욱 절절 합니다 이루워지지 못한 사랑이 더욱 아름답고 아쉬움이 크기에 지금껏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것 같습니다 . 만나고 헤여짐은 필시 인연이라 했으니 사랑하는 그사람과는 인연이 아니엿나 봅니다.아니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아픔을 주었나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말이있잖습니까 글 잘읽었습니다.
이글은 친구의 실화이며,또한 연신목도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겪었기에 나의 심정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국민학교2학년 어린나이에 도시견학하러 아빠따라 우리배타고 조도타고 나로도가서 여수항 그때배이름 기억합니다 한일호 세삼 어릴적 부산가서 사촌동생과 범일동에서 범4동까지울며 길잃고 경찰서가서 찾아왔던 기억때문에 부산이 싫었었는데.. 부산에 대한 첫사랑의 추억이 참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더듬으며 살아 가는 인생. 첫사랑이 없다면 어찌 사랑을 논하리요!
연신목도 그런 아픈 기억들이 있는가? 첫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여~ 자네 이야기가 아니면, 이리도 자세히 표현 할수 있을까~~전원일기에 나오는 영감님이 시장에서 옥수수 파는 첫사랑의 할머니를 보고 .. 할머니 는 홍당무가 되고~~ 자~ 슬~슬~이야기 해보드라고~잉 날씨도 시원하구~ 얼릉해 보이소...
감사 합니다.!
선배님에 첫사랑 순이님 연락주세요^^*울 선배님이 그리워 하시므로 하루빨리 연락주시면 유미가 막걸리 한잔 쏘겠나이다^^* 선배님 잘보고 지가 함 광고 내볼라요^^*막걸리 두병도 쏠수있어라~
순이님. 유미님, 연락주세요!ㅋ,ㅋ,
선배님의 첫사랑이야기 감명깊게 잘 읽었답니다 한편에 드라마를 보는듯 합니다 감사합ㅂ니다
감사 합니다.
모두 자기자신이 옛날 겪어던 일처럼 추억으로 돌아 갑니다. 그중에서 살며시 꺼내보고 싶은게 첫사랑 아닐까요?
애절한 추억의 이야기.... 감동적입니다.
감사 드리며.
그사랑 그때 그심정 어이 말로 표현 할 수 있나요 그외엔 아무것도 필요없는 그심정 누구에게나 있을진데 성님의 글을 읽고 나니 내마음이 찡하면서 그때로 가버렸네요 형님 오래 살다보니 잊으면서 살아온게 어언 50 이 넘었네요 부디건강하세요
감사 합니다.
연신목 선배님 께서 저더러 첫사랑도 못해본 사람이 ....이 카면서 ㅋㅋ 지금이라도 첫 사랑해서 글 올리면 안되겠습니까? 선배님이 친구분을 빙자해서 본인의 절절한 사랑 이바구를 올리신걸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ㅎㅎ
하하 ,,,남의 첫사랑이 부러운가요! 이별의 눈물이 앞을 이루고 죽고싶은 마음을 어찌 글로 쓴단 말인가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으면 해보슈! ㅋ,ㅋ, 그후엔 사랑의 시가 감동을 진하게 줄터이니....
정말 멋진 첫사랑 얘기이군요. 부럽습니다. 지금이니까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이렇게 이야기할수 있겠지요. 당시에는 얼마나 가슴 무너지고 상처가 컸겠습니까? 또한 시간이 흐른다고 잊혀지겠습니까. 아픈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는 수준이겠지요. 연락은 되지 않지만 그분의 행복을 빌면서 살다보면 언제인가 한번 뵐날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냥 가슴에 앉고 배밑에 묻어버리고.살아가야 하는것이 순정인지 알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