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래생활 에 있어서의 세시풍속과 절식에 관한 연구
- 문헌고찰를 중심으로 -
삼우당 김 명 자
목 차
Ⅰ. 서 론
Ⅱ. 본론(문헌고찰)
Ⅲ. 연구목적
Ⅳ. 해석
Ⅰ. 서론
농업을 위주로 생활하였던 우리 민족은 1년을 24절후로 구분하고 정월에는 입춘과 우수가 들어있고 입춘은 봄이 든다는 뜻이고 우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계절이여서 농부들은 농경에 지장이 없도록 제반준비를 하게 되고 또 정월에는 원단(설)과 대보름의 명절이 들어 있다. 2월에는 경칩과 춘분이 3월에는 청명과 곡우가 4월에는 입하와 소만 5월에는 망종과 하지가 들어 있으며 6월에는 소서와 대서 7월에는 입추와 처서8월에는 백로와 추분 9월에는 한로와 상강 10월에는 입동과 소한 11월에는 대설과 동지12월에는 소한과 대한이와같이 우리나라에는 농경에 필요한 24절후가 들어 있으며 농부들은 그 절후에 따라 해야 할 농사 일들이 정해져 있어 매년 되풀이 하게 되어 농년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또 우리 조상들은 24 절후에 따라 씨를 뿌리는 시기와 가꾸는 시기 수확하는 시기를 알고 1년의 행사계획을 과학적
으로 실천하였고 잊혀져 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의 것을 다시 찾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사람이 단순히 먹고 사는 동물적인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가지는 존재로서 승화시키고 주기적으로 매년 반복케 하고 생활하도록 하였으며 조상을 위하고 어른들을 공경하고 이웃끼리 협동하는 것을 한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고 매년 되풀이 하는데서 우리 민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Ⅱ. 연구목적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교통망 매스미디아 세계 각국간의 문화교류이 모든 면에 있어서 눈부신 발전에 발달을 거듭하고 있으며 농업에 있어서도 절후를 무시한 전천후농업이며 기계영농화 등 고도 로 기술이 향상되어 있어 기쁜 일이다. 각가정에서도 생활양식 자녀들의 교육방법 사람들의 사고 등 여러 가지로 국제화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완전한 서구사상이나 문명이 우리의 것으로 정착되지도 못하고 또 우리의 것도 계승하지도 못하는 어쩡쩡한 상태여서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우선 우리 민간에 일반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세시풍속과 절식을 문헌을 통하여 고찰해 봄으로서 우리 조상들의 과학성과 문화를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Ⅲ. 본론
1. 1월
1) 원단의 세시풍속
원단은 1년의 첫날이다. 일반적으로는 「설」또는 「설날」이라고도 한다. 「설」이란 한자로 「신이라고 쓰는데 이는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간다는 뜻이다. 설날을 시점으로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 바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민속은 새로운 정신과 몸가짐으로 1년의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신라시대에 「원일상경 시일배일월신이라 하여 1년동안의 우순풍조를 기원하는 근신하는 마음에서 신에게 제사하고 여러 가지 행사도 하는 풍속이 마련되었든것이다다. 어린이들이 새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세장이라 하고 문중의 친척 어른 노인들을 찾아가서 문안하고 절하는 것을 세배라 한다. 이때에 먹으라고 주는 것을 세찬이라 하고 술을 세주라 한다.
설날에서 3일까지는 많은 남녀들이 설빔 세비음)을 하고 왕래하기에 부산하며 만일 길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새해에는 운수대통 하시오」등 좋은 말로 하례를 한다. 즉 상대방이 바라는 것을 인사말로 하는 것을 덕담이라 한다.3) 경도잡지에서는 설날 주인은 아침부터 새해의 하례를 하려고 나가고 다만 대청마루에 책상과 백지 벼루 붓을 갖추어 놓아두면 하례 드리러 오는 사람은 그 명부에 자기 이름을 기록하고 돌아간다. 맞이하지도 전송하지도 않는다. 이것을 세함이라 한다. 이 설날 풍속은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의 것으로 뿌리깊게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객지에 나가있던 가족들이 모두 고향에 돌아가 제사모시고 어른들에게 인사드리는 좋은 미풍
양속으로 남아 있다. 섣날 그믐날, 추석 전날 귀성객들로 붐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설날의 절식으로는 대표적인 것이 떡국이다.
2) 원단의 절식
동국세시기에 떡국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찐 쌀가루를 떡메로 쳐서 이것을 길게 만들면 흰떡이 되고 이 떡을 돈닙모양 잘게 썰어서 장국에 넣고 쇠고기 꿩고기를 탕쳐서 끓인 후 고춧가루를 친 것이 병탕 혹은 떡국이라 하여 이 음식은 제사상에 올려 제사도 모시고 손님을 맞이함에도 쓰이고 있으므로 세찬의 음식으로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5)경도잡지에 멥쌀로 떡을 만들어 비비고 쳐서 뽑는다. 이 떡이 굳어지기 전에 이것을 가로 썰어서 얄팍한 돈닙과 같이 만든다. 이 떡을 끓이다가 꿩고기를 넣고 또 후추가루 등의 양념을 섞어 만드는데 세찬에 없어서는 않될 음식이다.7) 윤의 한국절식풍속에 의하면 탕병방흰떡국을 말함. 한양세시기의 기록에 멥쌀을 안마하여 가래로 만든후 돈짝만 하게 썰어서 꿩고기와 호초 가루 등으로 요리하는 것으로 세찬으로 불가결한 것이다. 이상 문헌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떡국은 우리 설날 절식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절식음식으로서 옛 풍속에는 모루 돈닙 모양 둥글게 썰었던 것이 지금은 그 모양을 더하기 위해서 어슷썰기로 변하였으며 옛날에는 지금처럼 소고기가 흔하지가 않아 꿩고기를 많이 썼던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떡국 요리로 계란지단 채썬 것 고기다져 볶은 것 또는 김가루 또는 산적을 얹어서 그 모양과 맛을 더하고 있다. 옛날에는 흰떡을 모두 집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세모가 되면 떡매 소리가 골목을 메워서 저절로 흥겹고 즐겁고 벌써 설 기분으로 아이들은 흥분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기계화되어 있으며 또 노동의 사회화로 인하여 집에서 흰떡을 만드는 일은 없고 「방앗간」에서 만들어 온다. 그러나 설날 흰떡국을 끓여 차례 모시고 설날아침에 모든 식구들이 즐겨 먹는 절식음식으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보존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설날의 세찬으로 떡국과 함께 세배하러 오는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이 강정류
이다. 강정류는 유과 다식전과 약과 연강정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 중 설 절식으로 유과전과 곶감쌈이다. 윤의 절식풍속에는 강정방 김화경독기에
있기를 세찬에는 탕병과 함께 강정 밀양시병 같은 과정류도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매세모가 되면 시사 음식 파는 가게) 에서는 홍 황 백 갖가지 색의 강정을 팔고 삼남지방에서는 시병 곶감)을 친지들에게 궤송해 왔다. 이로서 강정이 설의 절식으로서 떡국과 함께 마련됨을 알 수 있으며 삼남지방에서는 곶감의 소출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밀양시병 지금의 「수전과」를 말한다.
생강을 거피하여 얇게 썰어서 호초와 함께 냄비에 넣고 감천수 좋은물를 넣고 한참 끓여서 자기항아리에 담고 여기에 시설이 많은 좋은 시병 곶감)을 넣어서 항아리를 꼭 봉한 후 하룻밤 지나가면 백밀을 타서 해송자를 띄워서 먹는다. 지금의 「수전과」만드는 법과 같다. 지금은 기호에 따라 생강 설탕 통후추 계피를 같이 넣고 연수로 끓여 채에 바쳐서 항아리에 담는다. 우리의 절식풍속은 삼국시대에서 신라시대를 거쳐서 고려조 조선조로 이어져 내려
왔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옛 풍속이나 절식음식이 많이 퇴색되어 현대 젊은 층에서는 그 유래와 풍속을 모르고 있는 실정이며 강정류는 전문화되어 공장에서 다량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다
3) 입춘 의 세시풍속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대궐 안에서는 춘첩자를 붙이며 대신과 사대부 일반민가와 상점 등에도 춘련을 붙이고 축하한다. 이것을 말하여 춘축이라 한다. 형초세시기에도 입춘이 되면 봄에 합당한 문장을 만들어 각 가정에서는 대문기둥이나 대들보 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며 이를 춘축이라 한다.입춘문은 대개 정해져 있으나 가장 널리 쓰여지는 입춘축은 다음과 같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국태민안 가급인족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천증세월인층수 춘만건곤복만가
문영춘하추동복 호납동서남북재
이와같은 글귀가 널리 쓰여지고 50여년전만 해도 우리 민가에서도 그러한 입춘방을 써서 대문이나 기둥 문설주 등에 붙여서 입춘을 축하했던 것인데 현재는 그 모습이 사라지고 볼 수 없게 되었다. 입춘은 24절후중의 하나인데 그 명칭이 지칭하는 바와 같이 봄으로 접어 든다는 절후이다. 정월은 새해의 첫 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 번째 드는 절기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여러 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입춘첩을 써 붙이는 일이었다. 모든 행복을 나타내는 좋은 글귀를 써서 대문이나 기둥 문설주에 부쳐서 일년 내내 가내가 화평하고 액과 재는 멀리 멀리 물러가라고 기원했었다. 옛 우리의 선조님들께서는 정서적으로 풍부한 성품을 엿볼수 있어 흐뭇하기만 하다.
4) 입춘의 절식
입춘의 절식은 오신반이다. 입춘에는 오종의 신날채 매운 맛이 있는 채소를 먹으면서 영춘의 뜻을 더욱 새로이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세시기에 산수가 좋던 기협육읍에서는 양근 지평 포천 가평 삭영 연천 등에서는 총아 멧갓산개. 승검초 신감초등을 진상한다. 멧갓은 눈녹을 무렵의 이른 봄 산속에 자라는 개자라한다. 멧갓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이에 초장을 묻혀서 먹으면 맛이 멥쌀하여 고기를 먹는 입가심으로 제법 좋다. 입춘을 맞아서 무와 미나리로 채반을 만들어 손님을 대접했다고 말하였으며 소동파의 시에 새파란 쑥과 부추가 봄 채반상에 올랏도다 라고 하였다. 경도잡지에도 희귀하였던 옛날의 실정을 감안할 때 이 오신반지금의 냉채 또는 개자채은 매우 영양적이고 과학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어 다시 한번 우리 선조들의 슬기를 느낄 수 있다. 지금은 과학영농 전천후영농으로 1년내내 신선한 생야채가 공급되어 입춘의 오신반절식풍속은 사라지고 있다.
5) 상원정월보름)의 세시풍속
동국세시기에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 왕이 천천정에 행차했을 때 날아온 까마귀가 왕을 깨닫게 하여 왕의 화를 면할 수가 있다 하여 우리의 풍속에 정월 보름날 찹쌀로 밥을 지어 까마귀를 위하여 제사 지내고 가마귀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19)상원은 새해 들어 첫 만월의 날이다. 고대사회에 있어 달은 고마운 존재이고 만월방은 음주 포식가무하는 일이 많았다. 또 15일은 새해 농사의 시점이라 하여 농사일과 관계있는 일들을 하지마는 15일은 보름 명절이고 16일은 귀신날로 일손을 놓게 되어 있어 농사의 시발행사는 14일에 한다. 보름날 즉 정월 대보름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여러 가지 행사가 있으나 민간에 널리 알려진 것을 고찰하여 본다 아이들이 봄을 타서 살색이 검어지고 매마르면 그 아이에게는 보름날 백집의 밥을 빌어서 이 밥을 절구 통에 얹어서 개와 같이 그 밥을 먹으면 다시는 그런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보름날 개에게는 따로이 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개에게 밥을 먹이면 그해 여름에는 파리가 들끓고 개의 몸이 여위기 때문이라 한다. 이 때문에 속담에 굶은 것을 개 보름쇠듯 한다고 한다. 과실나무에 돌맹이를 끼워 두면 그 해는 과실이 많이 열린다고 하여 과전에서는 과일 나뭇가지 사이에 돌맹이를 끼우는 일을 한다. 이것을 가수라 한다. 즉 달빛이 붉으면 그해 가뭄이 들 징조요 달빛이 희면 장마가 들 징조요 달빛이 사방에 비치는 모양이 두터우면 풍년이 들 징조요 빛이 엷으면 흉년이 들 징조이다.
한국민속대관의 기록을 고찰하여 보면 보름날 전 즉 14일에는 농사일을 시작하였고 남자는 나무를 9짐 해야 하며 여자는 삼베를 9광주리 삼아야 하며 1년동안 집에서 쓸 수수비를 매야 하며 14일 하루를 분주히 보내고 금년에도 부지런히 농사일을 시작하였으니 풍년이 되어 달라는 기원을 마음속으로 했을 것이다. 영월을 하고 부럼을 깨물어 마당에 버리고 이명주를 마시고 오곡밥을 지어 9번 밥을 먹고 복쌈 진채식을 하고 솔떡을 만들어 먹었다. 이러한 음식들은 배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고 민속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생각하면 50여년전만 해도 오곡밥, 찰밥(약밥이라고도 함) 각종 나물, 복쌈을 만들어 이웃끼리 나누어 먹기도 하며 이날은 누구나 오곡밥을 얻으러 오면 이날만큼은 시른 기색없이 기꺼이 나누어 주었던 추억이 있다. 이 얼마나 인심이 후하며 소박한 풍속이었던가? 또 대보름날 저녁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달맞이를 하기 위해서 산에 올라간다.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길하다고 했고, 동쪽 하늘이 붉어지고 대보름달이 솟아 오르면 횃불을 땅에 꽂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제각기 소원하는 바를 기원한다. 이상 고찰한 바와 같이 상원에는 모든 놀이가 집중되어 있는 명절이고 세시풍속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농민들에게는 가장 흥겹고 한가한 시계이다. 이러한 세시풍속도 이제는 사라지고 그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며 젊은 세대에서는 이러한 옛 풍속이 있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으며 다만 절식으로서가 아니고 그저 정월 보름날은 오곡밥 또는 찰밥 (약밥)을 해먹는 것으로만 알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이와같은 기록으로 고찰하여 보았을 때 지금의 약식 만드는 법은 멀리 신라시대때부터 전해진 것과 같다. 지금도 정월 보름이면 약밥을 찌고 갖가지 나물을 마련하여 즐기는 풍속은 지금도 남아 있다. 동국세시기에 여러 가지 채소를 말려 두었더가 나물로 무쳐 먹는데 이것은 진채나물이라 한다. 이 나물을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또 배추잎과 김으로 밥을 싸먹는데 이것을 복쌈이라 한다
또 부름이라 하여 정월 보름날 새벽에 호두 은행 무우 등을 깨물면 1년 열두달동안 무사태평하여 종기와 부스럼등이 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고 축수하였던 풍속이 지금도 남아 있어 호두, 잣, 땅콩 등을 즐겨 먹고 있다.
그 이유는 모르고 그저 정월 보름날은 그런 것을 먹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
6) 월내
그 달에 거행할 행사를 월내라 한다. 그 달중 어느날에 그 행사를 거행하던 그것은 그 달의 행사를 집행하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1. 2월
1) 삭일 초하루의 세시풍속
① 궁중에서는 왕께서 중화자를 재상과 시종대신
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사를 한다. 이것은 중국 당나라 때 제정된 중화절의 옛 일을 본 받을 것이다. 28)이 세시풍속은 열양세시기 경도잡지에도 동일한 기록이 있다.
② 노비일 머슴날
가을 추수가 끝난 후 겨우내내 쉬고 있던 머슴들이 2월이 되면 농사일을 시작하게 되므로 머슴들을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위로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루를 즐겁게 쉬게 하는 풍속이다.
2월 1일 이날은 집안의 청소를 정결하게 하고 종이를 잘라서 향낭각씨의 노리개를 만들어 향낭각씨속거천리라는 한문자를 써서 서까래에 매달아 둔다. 즉 내용은 향낭각씨가 빨리 천리밖으로 도망가라는 뜻이다. 우리 풍속에 향낭각씨라 한 것은 노래기 즉 마륙을 미화해서 표현한 것으로 이것은 노래기를 증오하고 물리치려는 뜻이다. 지금은 지붕을 개량하여 집단으로 지붕을 하는 집이 없어졌으며 오야간도 깨끗이 소독을 하므로 노래기는 없어졌다. 따라서 향낭각씨속거천리라는 부적을 써서 서까래에 붙이는 풍속은 자동적으로 없어졌다. 일어난다고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2월 1일 영등할머니가 내려온다
2) 삭일의 절식 중화절식
동국세시기에 정월 보름날 화간의 벼 이삭을 가져다 흰 떡을 만든다. 그 크기는 손바닥만 하며 또 작게는 계란만하게 만들어 그 모양은 반쪽의 둥근 옥모양 같다. 콩을 불려서 쪄서 시루안에 넣고 또 솔잎을 겹겹이 깔아넣어서 찐다. 그리하여 그것이 푹 익은 다음에 꺼내 물로 닦고 참기름을 바른다. 이것을 말하여 송병이라 한다. 이 떡을 종들에게 나이 수 대로 먹인다 라고 하였고, 경도잡지에는 정월 보름에 세웠던 화간의 솔잎을 내려서 겹겹이 깔고 떡을 만들어 노비들에게 먹이는 풍속이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3) 한식
경도잡지에 도성 사람은 성묘를 하되 단오 중추 원단 한식 등 네 명절에 한다. 그러나 한식과 중추가 더욱 성행하는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동국세시기에 서울 풍속에 산소에 가서 제사를 올리는 풍속은 원단아침 한식 단오 중추 네 명절에 행한다 또 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한식날 조상의 묘를 찾아가 성묘하는 풍속은 조선조 태종 15년에 한식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으며 세종 13년에는 한식때는 바람이 부는 일이 많으니 금화케 하라고 지시하여 그때도 산불조심에 주의하고 있었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식날 조상의 묘를 돌보고 손질한다는 풍속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어 우리 민족들이 조상을 숭배하며 나아가서는 우리 민족의 뿌리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 우수한 민족임을 자랑하고 있다.
4) 월내
20일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들 징조요 조금만 흐려도 길조이다. 또 농가에서는 6일 초저녁에 묘성과 달의 거리가 멀고 가까운 것을 보고 그해의 농사일을 점친다. 즉 별이 달과 같이 나란히 가거나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앞에 있으면 길하고 만일 달 앞뒤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해는 흉년이 들어 어린아이들 먹을 것도 없다 한다. 또 이때는 냉이국을 끓여 먹는다. 이것은 잃었던 구미를 돋우는데도 일미려니와 부족했던 비타민의 보충도 되어 일조이석인 격이다. 또 새쑥을 캐어다 쑥국도 끓이며 또 쑥떡도 만들어 구미를 돋운다. 이 떡을 쑥버무리라 하여 이 시절의 시식이다. 배탈이 나서 앓는 사람이 쑥밥을 해 먹기도 한다.
2. 3월
1) 3월3일 삼짇날이 세시풍속
세속에 3월 삼짇날에는 강남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그것은 날씨가 온화하고 완연한 봄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때가 되면 산야에 꽃이 만발하며 초목은 새싹으로 파랗고 계곡의 물은 졸졸 흐르며 저절로 어깨가 으쓱하며 흥겨운 계절이다. 선비들은 경치좋은 곳에서 주식을 마련하여 하루를 즐기는 만춘연이 있었고 이 때에 시도 읊고 시조를 영창하면서 봄을 즐겼고 궁사들은 사정에 모여 궁술대회를 열어 솜씨 자랑을 하며 봄을 즐긴다.
여인들은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무당을 초빙하여 삼신당에 가서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정성을 다하여 빌기도 한다.
2) 삼짇날의 절식
동국세시기에 이날은 진달래 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빚어서 둥근 떡을 만들고 또 그것을 화전이라 한다. 지금은 자연보호로 함부로 진달래 꽃을 뜯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빛깔과 향기, 맛이 모두가 삼짇날의 절식으로 일품이다. 지금은 수면을 만들 때 오미자로 분홍빛을 내어 꿀을 타서 만든다.
3) 월내
녹두묵을 만들어 잘게 썰고 돼지고기 미나리 김을 섞어 초장을 무쳐서 몹시 서늘한 봄날 저녁에 먹을 수 있게 만든 음식을 탕평채라 한다. 계란을 끓는 물에 넣어 반쯤 익혀서 초장을 친 것을 수란이라 한다. 복사꽃이 떨어지기 전에 하돈 복어에 새파란 미나리와 기름과 간장을 섞어서 국을 끓이면 그맛이 진미롭다. 하돈을 꺼리는 사람은 도미 어. 독미어도 시절음식으로서 별미롭다. 이 시절음식은 지금도 즐겨 먹는다.
3. 4월
1) 4월 8월의 세시풍속
초파일은 세존께서 탄생한 날이다. 이날 등불을 켜놓으므로 이 날을 등석절이라고도 한다. 동국세시기에 수일전부터 인가에서는 각기 등간을 세우며 위에는 꿩의 꼬리를 장식을 하며 여기에 여러 가지 색의 비단으로 깃발을 많이 달아놓는다. 또 작은 집들은 깃대 위에 소나무 가지를 붙들어 매단다. 그 밖의 민가에서도 집안 식구의 수대로 등을 달아매고 밝은 것을 길하게 여긴다고 전한다.
2) 월내
①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조금씩 떼엇 술을 두고 빚어서 이것이 부풀어 오르게 한 후 방울모양 만든다. 이렇게 만든 떡속에 소를 넣고 만드는데 이것이 증병이라 한다. 이 증병은 새콤 달콤하여 그 맛이 별미이며 빨리 상하지도 않으며 근자에는 대추살 채썬 것 섞이버섯 채썬 것으로 고명을 얹어 만들며 이 증병은 4월부터 여름에 만든다. 4월~7월
② 노란색 장미꽃잎을 따서 떡에다 두고 기름에 지져먹기도 한다. 마치 삼짇날에 만드는 화전과 같다.
③ 생선을 길게 썰고 이것을 기름에 익히고 여기에 외나물 국화잎 파 송이버섯 삶은 전복 계란들을 섞어서 만든 것을 어채라고 한다.
④ 생선을 두껍고 넓게 포를 떠서 고기 소를 넣은 것을 어만두라 한다.
⑤ 삶은 미나리와 파를 섞어 버무려 이것을 회로 만들고 여기에 고춧가루와 간장을 쳐서 술안주로 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초여름의 시식이다. 이상과 같이 4월 초파일은 다른 명절과 달리 불가의 명절로서 종교성이 짙다. 이날은 욕불일이라고도 불리우는 날이다.
4. 5월
1) 5월 5일 단오의 세시풍속
단오는 설날 추석과 함께 중종 13년에 삼대명절로 정하였으며 춥지도 덥지도 않고 좋은 계절이다. 단오는 술의. 수리) 천중절 중오절 수릿날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① 궁중에서는 공조에서 단오선을 만들어 왕에게 바친다. 왕은 그것을 각 궁에 있는 하인과 재상 시종관 등에서 하사 하신다. 부채를 흰 종이나 천으로 만든 것을 백첩이라 하고 색깔을 칠한 것을 칠첩이라 한다. 부채를 얻은 사람들은 부채에 각기 기호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또 부채를 만든 고을 수령들은 부채를 왕에게 진상도 하며 친지들에게 선사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② 부적을 만들어 문설주에 붙여서 재액을 막게 하는 풍속이다. 부적의 글은 다음과 같다. 오월오일 천중지절 상득천록 하득지복 치우지신 동두철액 적구적설 사백사병 일시소멸 이라하여 한해의 모든 액을 소멸 함에 목적이 있엇다
③ 이날 여자들은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다. 그러면 머리에 윤기가 흐르고 빠지지 않는다 믿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창포로 술을 담아 마시기도하였고
④ 이날 오시에 익모초와 쑥을 뜯어서 햇볕에 말려서 약용으로 사용한다.
⑤ 대추나무 기타 과일나무를 단오날 오시 정오.에 도끼로 나뭇가지를 쳐서 놓아야 그해에 과일이 잘 달린다.
⑥ 단오날에는 장정들이 모여 좌우로 편을 가르고 깃발을 올리고 북을 치며 함성을 올리고 석전을 한다. 이때 사상자가 날지라도 승부가 나기 전에는 석전은 그만두지 않는다.
⑦ 남자들은 이 날 씨름을 한다.
⑧ 나이 어린 남자들은 그네뛰기 놀이를 한다. 빛깔나는 고운 옷과 맛좋은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모습은 설날과 같다. 이러한 풍속은 동구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씨름이나 석전 궁술대회등은 모두 군사들이 힘을 겨루는 것이다.
2) 단오절의 절식
단오를 속어로 수릿날 술의일.이라 한다. 술의란 말은 우리말로 수레이다. 이날은 쑥잎을 따다가 찌고 멥쌀 가루속에 넣어 반죽을 하며 초록색이 나도록 하여 이것으로 떡을 만든다. 그리고 수레바퀴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다. 따라서 이날을 수릿날이라고도 한다. 궁중에서는 단오가 되면 내의원에서 제호탕을 만들어 바친다. 제호탕은 오매육사인 백단향 초과등 약재를 곱게 갈아서 꿀에 버무려 끓여 두었다가 냉수에 타서 마시는 청경음료의 하나이다.
3) 월내
① 5월 10일은 태종의 제삿날이다. 이 날이면 매해 비가 내리는데 이 비를 태종우(태종비)라 한다. 태종이 임종하실 때 세종에게 말하기를 가뭄이 몹시 심하여 내가 죽더라도 혼이 있다면 반드시 이 날에는 비가 오게 하리라고 한다.
단오를 전후하여 하지 이전에 황종 양.이 왕성할 무렵의 풀이나 과일은 바람을 치고 더위를 먹은 병에 효과가 있다 하여 익모초와 쑥 오이등을 말려 두었다가 약재로 쓰는 경우가 많다. 또 앞으로 닥칠 여름에 대비하여 내의원에서 제호탕을 바친것이나 익모초와 쑥 오이 등을 말렸다 약제로 사용했던 풍속은 하나의 형식적인 행사를 넘어선 의학적 풍속을 농가에서 세시의 행사로 거행한 것들은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5. 6월
1) 6월15일 유두일의 세시풍속
6월이면 무더운 햇빛으로 만물을 무성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잘못하면 만물을 썩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6월은 썩는 달이라고도 한다. 6월은 대서의 계절로서 초복 중복 등의 무더운 여름의 고비가 되는 것으로 이때의 행사는 더위를 피하는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도 같은 기록이 있으며 열양세시기에는 고구려 신라때에는 나라의 선비와 남녀들이 술과 음식을 만들어 동쪽에서 흐르는 물가로 가서 목욕도 하며 향연을 베풀고 즐기며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쳤다고한다.
2) 유두일의 절식
① 멥쌀 가루를 쪄서 떡을 길게 만들고 이것을 짤게 썰어서 구슬 모양을 만든다. 이것을 꿀물에 담그며 얼음을 채워서 먹고 또는 제사도 지낸다. 이것을 수단이라 한다. 건단도 있는데 이것은 물에 넣지 않은 것이다.
② 반죽한 밀가루에 콩 깨 꿀을 섞어서 비빈 것을 그대로 싸서 찐 것을 상화병이라 한다.
③ 보드랍게 맷돌질한 밀가루를 기름에 튀겨 나물 소를 싸고 또는 콩 깨 꿀을 섞은 것을 소로 싸서 각양각색의 행태로 만들어 이것을 오무린 것을 연병이라 한다.
④ 잎 모양 주름새를 곱게 잡아서 오무려 만들며 이것을 채롱에 쪄서 초장에 찍어 먹는다. 이것은 지금의 밀쌈이다.
양념을 섞어서 속을 만든후 밀어놓은 밀가루피에 싸고 양쪽을 오므려 쪄서 초장에 찍어 먹는다. 이것은 수각아라 한다. 이것은 지금의 편수이다.
윤의 한국의 절식풍속에는 수단과 상화병 과사아. 수각아를 유두일의 절식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조리법중 상화병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소개한다.
3) 월내
삼복 후한때 사람 반고가 쓴 한서에 초복은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을 중복은 네 번째 경일을 말하며 말복은 입추가 지난 첫 번 맞는 경일로서 이때가 절기중 가장 더운 때여서 땀을 많이 흘리고 몸이 허 하여지는 때이다. 이때의 행사로는 더위를 피하는 것이고 대서라는 명칭으로 무더위의 경종을 농민들에게 알렸던 것이며 이때의 세시의 행사는 작열하는 태양아래 힘들여 일하는 농민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고대세시행사에 근본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복중의 떡은 시루떡이나 인절미는 상하기 쉽고 맛이 텁텁하므로 잘 만들지 않고 쌀가루를 술에 반죽하여 알맞게 발효시켜서 찐 증편을 만든다. 증편을 일명「기주떡」이라고도 하여 위에다 대추 실백 석이버섯채 등을 얹어서 색스럽게 만든다.
6. 7월
1) 7, 7일 칠석의 세시풍속
칠석날에는 다가올 가을 겨울에 입을 옷을 햇빛에 말리는 것이 옛날부터의 풍속이다. 여름동안 장마와 습기로 축축한 옷을 햇빛에 쪼여서 거풍을 하지 않으면 벌레가 쓸기 쉽고 곰팡이도 나기 쉽다. 책도 말려두면 습기가 제거되어 좀이 쓸지 않으며 곰팡이도 나지 않는다. 또 칠석날에는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 만나는 날로 칠석날 저녁에 비가오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기뻐하는 해우의 눈물이고 그 이튿날 내리는 비는 서로 헤어지는 작별의 눈물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견우성과 직녀성의 위치며 또 은하계의 위치를 가리고 1년에 한번씩 칠석날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천상의 사실이었는데 이것을 한대에 와서 칠석의 전설로 성립시킨 것이라 한다.
2) 7월15일 백종일의 세시풍속
7월15일은 백종일 또는 망혼일이라고 한다. 또 이날을 중원, 백중일이라고도 한다. 또 우리나라 풍속에 이 날을 망혼일이라고 하는데 일반 사가의 사람들은 이날 달밤에 채소 과일 술 밥을 차려놓고 돌아가신 선조 영혼의 명복을 비는 제를 모시는 풍속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졌으며 다만 절에서는 제를 올린다.
3) 백종절의 절식
백종일 은 불가의 행사로 육식을 삼가고 정진요리로서 부처님께 공양하였기 때문에 자연생의 산채와 튀김류이다. 즉 절 음식으로는 산채와 튀각 부각류 묵 두부 종류가 유명하고 보편적이며. 자연생의 산채와 버섯류의 향미가 별미였으며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4) 월내
① 신라삼대왕은 7월15일에 6부의 여자를 대궐 뜰에 모아서 두 패로 나누고 두 패의 통솔자는 왕녀 두명으로 하여 통솔하게 하였다.
② 7월이 되면 밭매기와 논매기가 거의 끝나고 비교적 한가하여 속언에 「어정 7월 동동 8월」이라 하여 7월은 어정거리며 지내는 때이다. 마을에서 일정한 날을 정하여 호미씻이라는 것을 한다. 여름농사가 거의 끝나면 논이나 밭을 매는 호미가 필요없게 되어 씻어둔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③ 백종일을 전후해서 서는 시장은 백종장이라 하는데 이때는 여러 가지 놀이와 노름 흥행이 벌어지는 난장이 서는 때이다. 이 백종장이 서면 주인들은 머슴들에게 새옷 한 벌과 난장에 가서 먹고 쓰고 즐길 수 있는 돈을 준다. 머슴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고 집안의 장정과 아이들에게도 준다. 모두 새옷을 입고 난장터로 나가서 물건도 사고 마시고 먹고 꼉하며 하루를 즐기게 된다. 이렇게 백종일은 농부들과 머슴들의 명일이었다.
7. 8월
1) 8월15일 추석의 세시풍속
8월15일은 우리 풍속에 한가위 추석 가배 중추절 등으로 불리워지고 이 날은 성묘의 날이다. 추석을 2~3일 앞두고 도시나 농촌을 막론하고 차례 음식을 장만하고 산소에 벌초를 하는 부산한 행사가 벌어진다. 새 곡식은 이미 익고 추수가 멀지 않은 시절로서 햇 곡식과 햇 과일로 차례 모시고 성묘하며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즐기는 1년중 가장 중요한 명절로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옛 풍속이다.
2) 추석의 절식
추석에는 햇곡식과 햇과일을 먼저 조상님께 천신하는 마음에서 차례를 모시는데 제수를 푸짐하게 마련하는 것이 상례이다. 추석의 절식으로는 햅쌀로 술을 빚고 떡을 만드는데 떡중에서 송병이 대표적이다. 추석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송병이다. 송병은 추석절식으로서 오늘날도 이어지고 있다. 송병은 그 모양이 예쁘고 솔잎 향기와 또한 솔잎이 무쳐져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선의 문양이 한국적인 정서를 담뿍 안고 있다.
3) 월내
8월16일에 지방에 따라서는 씨름대회를 열고 술과 음식을 차려 먹으며 즐겨 노는곳도 있으며 또 추석을 전후하여 「반보기」중로상봉를 하였다. 이 풍속은 옛날에는 여자가 출가하면 여간해서 친정에 갈 수 없어 친정부모는 딸걱정 딸은 친정부모를 그리워 하면서 생활했다. 추석을 전후해서 서로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는데 보통 시댁과 친정의 중간쯤에 있는 산이나 골짜기를 택하여 친정어머니와 딸 또는 사돈끼리 만나서 서로 장만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서로의 집안 안부와 지낸 이야기를 하면서 즐기다가 저녁때 헤어진다. 이것을 「반보기」라 하는데 지금은 이 풍속이 없어지고 비교적 자유로히 여자들도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농가에서는 추석 뒤에 친정에 가서 놀다 오게 한다. 이때는 햅곡식으로 만든 떡과 술 안주 등을 보냈다. 이러한 풍속은 50여년전에만 해도 볼 수 있었던 풍속이고 현재는 이러한 풍속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8. 9월
1) 9월9일 중양절의 세시풍속
9월9일은 중양절 중구절이라고도 한다. 중양이란 양수가 겹쳤다는 뜻으로 양수는 흘수인데 1년중에 양수가 겹친날은 1월1일 3월3일 5월5일 7월7일 9월9일인데 그 중에서도 9는 양수가운데서 극양이므로 특별히 9월9일을 중양이라 한다. 그리고 중구일은 구가 겹쳤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양절은 명절도 아니요 세시행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9일경에 피는 국화를 관상하며 국화를 따다가 찹쌀떡을 빚어 먹으며 즐긴다.
2) 9월9일의 절식
중양절에는 국화주와 국화떡 국화전을 마련하여 국화와 단풍을 감상하며 풍류를 즐긴다. 국화주는 초가을 참쌀로 술을 빚어 거의 다되어 갈 때쯤 국화꽃잎을 따서 깨끗하게 씻어 함께 섞어 넣었다가 며칠후 걸러 또는 방법과 국화꽃잎을 따서 말렸다가 빚어 걸러논 항아리에 국화 꽃잎으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사용하기도 하며 바쁠때는 맑게 걸른 약주 술잔에 국화꽃잎을 금방 따다가 몇잎씩 동동 띄우기도 하여 술에 국향을 드리운다. 아울러 3월 삼짓날처럼 찹쌀가루에 황국꽃잎을 섞어 반죽하여 화전을 부친다. 이것이 국화전이다.
3) 월내
9월에는 만물이 모두 쇠망기에 들어서 그 이상 성장할 수 엇는 달이다. 따라서 입동을 앞두고 추위를 재촉하는 이슬도 차고 서리가 내리는 한로 상강 계절을 맞아서 이에 따라는 행사를 서둘러야 한다. 즉 겨울 채비를 하여야 한다. 즉 겨울 의복준비 식생활준비 가축들의 보살핌 모두가 추운 겨울에 지장이 없도록 이달에 대비하여야 한다.
9. 10월
1) 10월의 세시풍속
10월을 천지인 3자가 화합하는 상달이라 한다. 상달 중에서도 오일은 말의 날이다. 붉은 팥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소외양간에 상을 차려놓고 신에게 말의 건강을 축원한다. 그러나 같은 오일이라도 병오일은 제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병이 병과 그 음이 같으므로 말의 병을 꺼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오일이 가장 좋다. 고구려는 사당을 세워 귀신 사직 영성 등을 위하여 10월에 제천대회를 열고 이름을 동맹이라 하였다.
2) 10월상달의 절식
무오일에 고사떡을 마련하는데 고사떡은 팥시루떡이다. 팥시루떡을 시루 가득히 쪄서 시루채로 대청 장독대 대문등에 놓고 성주신을 맞이하여 집안의 태평을 빌었다. 성주신이란 집을 지키는 신령이다. 이 시루떡에는 무채 단호박곶이를 쌀가루에 섞어 넣고 붉은 팥 삶은 것 검은 콩 불린 것 등으로 고물을 소담스럽게 뿌리고 찐다. 쪄지면 시루채 떼어 소반에 올려놓고 시루위에는 정안수나 막걸이를 큰사발 가득히 부어놓고 정성을 다하여 집안의 평안을 빌었다.
3) 월내
무당을 초빙하여 성조신을 맞이하여 떡과 과일을 차려놓고 빌며 집안의 태평을 축원한다. 20일에는 해마다 큰 바람이 분다. 이것을 손돌바람이라 한다. 여기에는 손석. 손돌이라는 뱃사공의 애틋한 전설이 있다.
10. 11월
1) 동지의 세시풍속
동지는 11월에 들기 때문에 11월은 동짓달이라고 한다. 동지는 하루의 해가 하지로부터 차츰 짧아지기 시작하여 극한까지 이르렀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로 1년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기도 하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일양이 생하도다」하여 경사스러운 날로 삼았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아세라고도 한다. 그것은 작은 명절로 삼고 지내며 앞으로 다가올 정월 큰 명절의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 세시풍속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고대 풍속에는 큰 명절이전에 반드시 작은 명절이 있는데 그것은 큰 명절을 만족하게 지내려는 준비과정으로 볼 수 있다. 동지에는 아동지와 노동지가 있는데 동짓달 상순에 들면 아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여 문짝에 뿔려 액운을 제거한다. 지금도 동지를 전후해서 책력이나 달력을 선물하고 있다. 이는 모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풍속이다.
2) 동지의 절식
동지의 절식은 팥죽이다. 팥죽을 쑬 때 찹쌀로 새알모양 빚은 모퉁이속에 꿀을 타서 먹는다. 또 내의원에서는 관계 후추 설탕 꿀등을 쇠가죽에 섞고 이것을 기름에 얽히도록 만든다. 이 약을 전약이라 하여 진상하고 이것을 관청에서도 만들어 가진다.68) 또 하나의 전약의 방법은 아교같이 된 꿀을 그릇에 담고 대추를 씨를 빼서 쪄서 고약처름 된 것 2그릇을 섞어 녹혀서 식거던 사미약 즉 백강 5 양계심 2양 정향 호초 각 1량씩 넣어서 잠깐 끓여서 식혀 받쳐 그릇에 담아두고 마셨다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겨울의 음료의 하나로서 추위에 대비하여 신체를 보하는 역할도 하였으리라.
3) 월내
① 청어를 태묘에 올린다. 청어는 통영에서 많이 생산되며 겨울과 이른봄에 진상을 한다. 또 통영에서는 전복과 대구어도 많이 생산이 되며 진상한다.
② 제주도의 목사는 귤 유자 밀감등을 진상한다.
③ 메밀국수를 무 배추 김치에 말아 여기에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이라 한다.
④ 잡채 벼 밥 쇠고기 돼지고기를 썬 것과 기름 간장을 국수에 섞은 것을 골동 즉 비빔국수라 부른다. 골동은 뒤섞은 것을 말하며 지금의 잡면 즉 비빔면이다.
⑤ 젓 포 회 구운고기등을 모두 밥에 넣고 만든 것을 반유반.골동 즉 비빕밥이다.
⑥ 무뿌리가 비교적 작은 것을 골라서 김치를 담근 것이 이른바 동치미 동침.이다.
⑦ 곶감을 물에다 넣고 생강 잣을 넛어서 만든 것을 수정과라 한다.
⑧ 새우를 담가 삭혀서 젓갈을 만들고 여기에 무 배추 마늘 생강 고추 청각 전복 소라 굴조개 조기 소금을 넣어서 막김치를 만들어 독에 저장하여 이것을 한 겨울동안 묵혀서 먹는다.
⑨ 무우 배추 미나리 생강 고추 등으로 장김치를 담갔다 먹기도 한다. 이러한 음식들은 모두 동짓달의 시절음식이다.
11. 12월
1) 납일의 세시풍속
납은 엽으로 짐승을 사냥하여 백신에게 제사하던 것이 나중에는 조상에게 제사하게 되었다. 이 납일은 신라때는 12월 인일에 고려문종은 술일로써 정하였으나 대체로 대한을 전후 진일로써 납일을 삼아 왔는데 조선조에서는 동지후 세 번째 말일로 납일을 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동방이고 동방은 목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납일에 약을 만들면 1년내내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옛날 내의원에 서는 여러 가지 환약을 만들어 진상하였다. 이것을 납약이라 한다. 상납된 납약은 근시와 지밀나인들에게 나누어 주어 병을 고치게 했다. 납약의 주된 환약은 청심원 안신원 소합원인데 청심원은 정신질병을 치료하는데 효력이 있고 안신원은 열을 다스리는데 효력이 있으며 소합원은 광란으로 토하는데 효력이 있다. 청심원은 “신단”이라 하여 중국에까지 그 이름이 유명했다.
2) 납일의 절식
산저육 산토끼 노루고기등을 적. 구이으로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산저육이 가장 특이한 맛이라 한다. 참새고기가 아이들의 마마에 좋다고 하여 이날은 참새잡기를 허용하였는데 참새를 털을 없애고 내장을 깨끗이 하고 겉껍질을 칼로 깨끗이 한후 기름과 소금에 절였다가 녹두가루에 묻혀 기름에 튀긴다.
3) 제석의 세시풍속
한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을 제석이라 한다. 이날은 작은 설이라 하여 묵은 세배를 한다. 년소자들이 친척어른들을 찾아가 묵은해의 문안 즉 묵은 세배를 한다. 또 제석과 설날에는 폭죽을 터트리고 귀신을 놀라게 하여 도망가게 한다. 또 일반민가에서는 다락 마루 방 부엌에 등잔불을 켜 놓고 흰 사기접시에 실로 심지를 만들어 그곳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서 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켜 놓고 대낮같이 밝게한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으니 이를 수세라 한다.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는 경신수세의 유속에서 제야에 눈을 붙이게 되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어린이 들은 속아서 잠을 자지 못한다. 간혹 자는 아이가 있으면 밀가루 분등을 몰래 물에 개여 눈썹에 바르고 깨워서 거울을 보게하면 정말로 눈썹이 희게 되었나 하고 놀라 울기도 한다.
Ⅳ. 해석
세시풍속이란 천체의 학문과도 깊은 연관이 있으며 몇천년 전에서부터 내려왔던 우리의 옛 풍속을 천학비재한 이 사람이 논할 수 있으리오 마는 지금도 우리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풍속을 월별로 간추려서 가장 보편적이고 세속적인 것만을 문헌을 통하여 고찰하여 보았다. 국가적으로 많은 학자들과 예산을 투입하여 조사 정리하여야 할 크나큰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세시풍속이란 1년중 계절에 따라서 행하여지는 자연 및 인간사에 관한 행사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한 가정 사회 국가를 영위하며 살아가려면 의 식 주에 따른 정치사회 경제 문화등 제반행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봄이오면 논과 밭에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어 가꾸고 가을이 되면 거두어 들인다. 이와같은 행사를 반복하는 가운데 풍속이나 관습은 자연적으로 생기게 되어 세시풍속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시풍속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적 조건인 풍토성과 그들이 가지는 역사성과 그들이 이룩한 사회성과 생업에 따라 이루어진다. 세시풍속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두고 생활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한 나라의 세시풍속은 그 나라의 정신의 소산이며 문화의 소산이다. 건전하고 선량한 미풍양속을 가진 민족은 부강을 길이 누리는 것이다. 따라서 그 민족의 세시풍속의 선악은 곧 그 나라의 흥망성쇠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세시풍속의 중요성이 있으며 다른 민족이 한 민족을 침략하여 국토를 점령하면 제일 먼저 행한 정책이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미풍양속을 말살하려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까운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일제침략하의 조선총감은 우리 민족의 근간이 되고 있는 세시풍속을 변질 또는 저하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우리 민족을 무마시키려는 흉계로 저속한 무속을 권장하여 정월명절을 위시하여 4대명절에는 반드시 무당의 굿을 허가했던 사실을 보아도 그와같은 흉계는 입증할 수 있으며 또 하나의 대표적인 것은 일본인어용학자
들을 시켜서 우리의 세시풍속을 조사 검토한 후 미신적 행위와 낭비성이 많은 세시풍속은 모두 고래의 미풍양속이다 하여 일정한 통제하에 방임을 둔 사실이다. 세시풍속은 시대의 변천 종교성에 따라 변할 수 있으며 통치자의 지도에 따라 변질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행정적으로 견제하고 있으나 아직도 태음력은 생활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한말에 우리나라가 개화하면서 태양력을 공포하였고 일제가 강조했으며 해방후에는 적극적으로 우리나라가 자주독립국으로서 세계의 대열속에 끼어들면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의식과 생활이 현대화 하였으나 구정과 추석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행정적으로 아무리 이중과세를 하지 못하도록 계몽을 하여도 음력으로 설과 추석을 맞이하고 있어 1985년부터는 구정을 「민속의 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한 것이며 귀성객을 위하여 임시열차를 운행한 것 등은 강한 세시풍속의 전통성을 실감케 하고 있다. 우리 민족으로서 우리의 것을 되찾아 우리 민족의 문화성과 자주성 주체성을 과시하여야 한다. 4월초8일은 석존의 탄생을 기리며 부처님께 불공드리고 탑돌이를 하며 등을 달며 가족들의 평안과 복을 빌며 느티떡을 하여 즐겼다. 5월에는 단오절이라 하여 4대명절중의 하나로 창포탕을 만들어 머리를 감고 창포뿌리를 곱게 깎어 끝에다 연지로 채색하여 머리에 꽂고 재액을 물리치며 수릿취절편을 하며 그네뛰기 남자들은 씨름 활쏘기를 한다. 6월15일 유두일에는 수단을 만들고 햇밀가루로 편수와 밀쌈을 만들어 시원한 계곡을 찾아 하루를 즐겼으며 7월15일에는 백종일이라 하여 갖가지 나물과 이때 생산되는 갖가지 과일 튀각류로써 불가에서는 제를 올리며 민가에서는 조상께 제를 올린다. 8월15일에는 햇쌀로 송병 비지고 햇과일로 조상에 제 지내며 성묘하여 부모님의 은덕에 감사드리며 9월9일에는 국향도 그윽한 국화주와 국화전을 마련하여 곱게 단풍으로 물들인 산야를 찾아 풍류를 즐기며 햇밤 햇대추로 조란을 만들고 다식을 만들어 즐기면 보드랍고 향긋한 맛이 사람의 마음을 온화하게 가라앉혀 준다. 10월에는 상달이리하여 술오일에 팥시루떡을 쪄서 집안 곳곳에 놓고 성주신을 맞이하여 1년의 농사가 대풍임을 알리고 가내가 평안하며 가족들의 태평을 빌었으며 이 고사떡은 동네 친지들에게 나누어 먹게끔 습관되어 있었으니 이는 곧 친목도 되며 단합도 되었으리라. 11월에는 동지로 판죽을 쑤어 먹는 풍속이 있다. 이 풍속은 삼국시대는 물론 조선조에 이르는 동안에 계속되어 온 풍속의 하나이다.
그 나라의 행사란 백성들의 재정낭비를 막으며 또 획일적으로 미풍양속을 권장하려면 세시기도 필요하며 또 이에 따르는 년중행사도 긴요한 것이다.
이와같이 세시행사의 입법정신으로 볼 때 동짓날은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이 가장 적합한 행사로 보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동짓날에는 해가 1년중 가장 짧고 또 추운때이며 농한기에는 대부분의 농민은 휴식상태에 있는 때이다.
12월 납일은 대한이 지난후 좀벌레등 모든 버러지가 몰살된 후 그해에 사용할 수 있는 기름 약 등을 준비하는 날이며 특히 참기름은 음식에도 필요 하지만 상처의 소독으로도 많이 쓰이기 때문에 납일에 많이 만들며 그 외의 약도 납일에 만들면 좀벌레가 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날에 많이 만들며 또 이날에는 수렵하는 풍토가 조성이 되어 멧돼지 노루 산토끼 등을 수렵 하였
으며 이 사냥을 하는 것으로 군사훈련도 겸하는 일조일석의 행사하였으며 그 사냥한 고기로 조려서 기름을 내거나 고기를 먹어도 기생충이 없기 때문에 인체에 큰 해가 없을 것으로 믿어진다. 지금까지 문헌을 통하여 우리 민가에서 실행하였던 세시풍속과 절식풍속에 대해서 미진하고 미흡하지만 우리의 옛 풍속 우리 선조님들의 슬기와 지혜 우리의 뿌리를 가정학적 견지에서 고찰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이와같은 옛 선조들의 멋과 지혜의 다양한 음식 문화가 잊처저감이 참으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