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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셀 스크랩 어느 개척교회 목사의 셀교회 그리기
김승관 추천 0 조회 18 10.05.02 21: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어느 개척교회 목사의 셀교회 그리기

셀교회(Cell Church)라는 교회의 틀을 그리면서…

이렇게 개척지와 개척 장소에 대한 지침을 정하고 나니 내가 개척할 교회의 시스템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떤 스타일, 시스템의 교회로 성장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생각하였다. 그동안 나는 기독교교육을 전공했고 교회진흥원에서 적지않은 시간 동안 미국 남침례교회의 교육시스템을 원용한 침례교 특유의 교육시스템에 매우 익숙해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제자훈련을 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서 신앙이 자라왔고(주로 네비게이토선교회 계통의 훈련이었다) 제자훈련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훈련시켜왔던 경험이 있었다. 제자가 되고 제자를 삼는 것이 내 삶의 중요한 사역이라고 생각했었기에 군복무 중에도 없는 틈을 내어 같은 내무반의 병사를 제자 양육했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서 침례교 특유의 교육시스템과 제자훈련은 교회의 기초를 이루는 근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대학원(M.A.C.E.) 과정을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박영철 교수님으로부터 셀교회(Cell Church)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셀교회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침례교 특유의 교육 시스템이 가지는 장점을 살리면서도 셀교회를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계속 되었기에 셀교회를 하겠다는 결정을 계속 유보하고 있는 상태였다. 더욱이 내가 대학원 강의를 들을 당시에는 셀교회를 하려고 하는 분들에게서는 교회학교 무용성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학교(사실 성경학교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나은 표현인 것 같다)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셀에서는 양육과 돌봄, 훈련, 친밀한 교제와 상호책임성 등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보다 체계적인 성경교육과 전체교회라는 대그룹에서 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원과 훈련 등이 너무 간과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계속적인 의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의 필요성과 중요성도 분명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실 셀이라는 것은 그동안 경험해왔던 제자훈련의 시스템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욱 필요성과 중요성이 느껴졌다. 그동안 왜 제자훈련이 일반 교회 안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을까에 대한 아쉬움과 교회 내에서 이러한 제자 양육 시스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셀은 당연하게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본적 방침으로는 셀교회를 하겠다는 것이었으나 많은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2001년 1월에 있었던 제1회 셀교회 컨벤션(Touch Korea 주최, 한국 NCD 후원)에 참석하면서 그동안 내가 과제로 안고 있었던 셀교회 시스템과 침례교 특유의 교육시스템의 상호연계성을 명쾌하게 정립할 수 있었다. 당시의 주강사였던 랄프 네이버(Ralph W. Neighbour) 박사의 강의는 내게 명쾌한 해답을 주었다. 아마도 내가 침례교 교육시스템에 익숙한 목사였고 랄프 네이버 박사 역시 침례교 토양에서 셀교회를 정립했기 때문에 서로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을 듯싶다. 나는 소그룹인 셀과 대그룹인 전체 회중(전체 교회)에 대해 이해하기를 마치 미국 남침례교 총회의 시스템으로 빗대어 이해하니까 쉽게 풀린 것이었다. 미국 남침례교회는 개교회주의이다(여기서 한국침례교도 같은 정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남침례교를 빗대어 말하는 것은 미국 남침례교가 더욱 그 정신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교회가 독립적으로 사역을 해나가지만 선교나 체계적인 성경교육, 훈련 등의 기획과 실행을 위해 해외선교부니 선데이스쿨보드(Sunday School Board) 등을 두어 서로 지원하고 도움을 받듯이 셀교회에서도 셀은 하나의 교회로서 역할을 담당하지만 체계적인 성경교육을 위해 교회학교도 둘 수 있고, 신앙훈련회도 둘 수 있고, 선교회도 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러한 정신을 원용하니 셀의 정신을 살리면서도 대그룹(교회 전체 사역이나 회중)의 사역도 그 의미가 생긴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생각을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그려보았다(원래의 글에는 아래의 그림이 밑에는 수많은 셀들로 구성된 기초석, 가운데 세 가지는 기둥, 위의 축제예배와 공동체 사역은 삼각형 모양의 지붕 모양인데 여기에서는 그러한 그림이 지원되지 않아 글만 보임을 양해해 달라).


축제 예배, 공동체 사역


성 신 선
경 앙 교
교 훈 사
육 련 역


셀 들


교회의 기초는 셀들이 이루고 있다. 모든 성도는 셀에 속해 있게 된다. 그리고 셀 안에서는 상호책임성 있는 공동체로서 친밀감 있는 교제와 전도, 일대일 양육, 예배, 사역 등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각 연령별로 이루어지는 성경교육(교회학교)은 교회 전체인 대그룹에서 운영을 하여 마치 우리들의 자녀들이 가정이 있으면서 학교에 가서 공부하듯이 체계적인 성경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셀에 속해있으면서 필요한 부분은 선택적으로 새신자, 기신자, 지도자 등의 단계를 나누어 훈련학교 등을 통해 특별한 부분에 있어서의 필요한 훈련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셀에서 선교를 후원하고 참여하고 사역을 하지만 보다 효율적으로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교회 전체의 기관으로 선교회를 두어서 후원, 조정, 선교교육, 실질적 참여 등의 선교 사역을 실행하게 한다. 선교의 측면에서는 지역사회를 돕는 섬김과 봉사의 프로그램도 둘 수 있으며 이 사역을 별도로 독립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독립시킨다면 기둥하나가 더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전체 교회의 조화로운 유기적 관계 속에서 역동적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전체 회중예배가 마치 축제처럼 드려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름대로의 교회의 시스템을 계획하다보니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초의 셀을 제대로 형성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셀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유기적이며 생명체이기 때문에 번식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처음의 셀이 건강하지 못하면 계속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셀이 번식될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처음 1년 정도는 첫 셀을 잘 형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많은 인원이 모이는 것보다는 제대로 양육 받은 후 앞으로 셀의 리더가 될 12명 이내의 첫 셀의 구성원이 모여 셀 모임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한 셀은 12명 이내(부부일 경우 6쌍 정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우리 새비전교회의 성도수는 3,000명 정도가 최고가 될 것이라는 제한 목표를 두게 되었다. 아마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사람이 3,000명을, 그것도 제한하는 목표로 한다는 것은 조금 당돌할지는 모르겠지만 3,000명이 넘으면 100명에서 200명 정도를 떼어 따로 개척을 시켜 늘 3,000명 정도만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건강한 교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3,000명 정도가 되어야 교회가 나름대로 대외적인 사역을 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으리라는 것 때문에 그 정도의 많은 인원을 목표로 둔 것이고 그 이상은 그저 교회가 크다는 것 외에는 성도의 양육이나 돌봄, 관리 등에 있어서 무리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3,000명을 제한 목표로 두다 보니까 1,000명을 담당하는 이를테면 천부장 3명이 필요하고 천부장 밑에는 백 명을 담당하는 백부장 열명이 있게 될 것이고 백부장 밑에는 열 명을 담당하는 십부장이 열 명 정도 있게 될 것이다. 십부장의 최소 셀의 리더인데 나는 이 최소 단위의 셀을 “우리”라고 부르려고 한다. 소우리, 닭우리 하듯이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공동체란 말도 되고 “우리”라는 1인칭 복수대명사이기도 하여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십부장의 명칭은 “우리지기” 또는 “울지기”라고 부르려고 한다. 그리고 열 개의 셀이 모이면 이를 목장이라고 하여 백부장은 목장지기라고 부르려고 한다. 또한 열 개의 목장이 모이면 이를 “초장”이라 부르려고 하고 이를 담당하는 천부장을 “초장지기” 또는 “목자”라고 부르려고 한다. 그리고 담임목사는 이 세 명의 “초장지기”를 담당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명칭은 후에 변경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전도사나 목사를 채용하는 방식으로 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 교회에 등록한 성도 중에서(신학교를 졸업했든, 안했든) 비전이 같고 서로 인격적 관계뿐만이 아니라 담임목사와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를 “초장지기”로 두고 싶다. 신학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후에 신학교육을 받도록 하면 되고 이에 대한 지원은 교회 공동체에서 하려고 한다.


물론 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역자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교육이라든가, 행정, 음악 등의 전문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사역자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들도 셀 안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며 거쳐 가는 사역자가 아니라 평생의 비전을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어 선교사나 개척자로 내보낼 수도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럴 때에는 마치 계속되는 연결고리마냥 훈련된 다음 사역자가 있을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그 뒤를 이으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역자를 임명하고 사역자가 사역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전 공동체가 인정하고 협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생가하면서 또 한 가지 갖게 된 생각 중에 하나는 집사를 함부로 임명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집사는 원어의 뜻을 생각해볼 때 “일꾼”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훨씬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의 집사는 마치 교회 안에서의 계급적(?) 신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집사에 떨어지면(?) 상처받고 교회를 옮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서리집사를 두지 않기로 마음에 작정을 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정말 일꾼다운 집사로 인정하고 교회의 사역에 머슴처럼 임하면서도 지도자적인 자격과 인격이 있는 사람을 안수주어 집사로 삼으려고 한다. 사실 초대교회였던 예루살렘교회도 수천 명의 성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명의 집사만 선출했다는 것을 볼 때 오늘날처럼 그렇게 많은 이름뿐인 집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기술하고 보니 어마어마한 생각 같지만 그러한 목표를 세우고 지금은 그 첫 단계인 첫 셀을 잘 만들어 가는 것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아직 첫 셀이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아직 첫 셀을 구성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첫 셀을 만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만나고 교제하고 훈련을 주고받는 중이다. 이 첫 셀을 만들어 가는 상황에 대한 것은 후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교회의 시스템에 대한 정리를 끝냈다. 나름대로 개척할 교회의 큰 틀은 세운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큰 틀과 그림은 교회를 개척한 후 두 달 정도까지 계속된 작업 속에서 완성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도움은 국제 셀사역 본부인 국제터치사역의 한국본부(Touch Korea)의 각종 세미나와 셀클리닉 등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사용할 셀그룹의 일대일 양육교재도 도서출판 NCD에서 출간한 『새로운 삶 시리즈』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시스템도 우리 교회에 맞게 변형이 되겠지만 Touch Korea의 시스템을 많이 참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NCD를 통한 건강한 교회의 여덟 가지 질적 특성이라는 기준을 두고 교회의 훈련과 양육과 교육의 시스템이 그 기초를 세우고 목회사역에서도 그러한 기준에 부합되어 건강한 교회, 교회의 본질을 회복한 교회로 세워가고 싶다. 아직은 꿈이고, 미래에 내게 보여질 것이지만 마라기는 이러한 나의 꿈과 비전이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되길 바라고 그래서 많은 교회들에게 도전을 주고 본을 보일 수 있는 교회가 되길 기도할 뿐이다.

새로운 도전 셀 그룹 교회

우리 냉정하게 현실을 보자. 과연 우리가 따르고 추구하고 있는 교회론은 무엇인가? 아니 우리는 한 교회를 목회하는 리더로서 성경에 기반한 교회론을 정립하고 있는가? 또 그것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을 불태우고 있는가? 이 질문이 추상적이라면 거꾸로 하나의 모델을 두고서 우리 교회를 평가해보자.

그 모델이란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치던 종교지도자들과 군중들, 정치지도자들 앞에서 목숨을 내놓고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그들 모습과 우리들 자신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또 날마다 성전에 모여 떡을 떼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며 자신의 재산까지 내놓던 그들의 헌신이 오늘 우리의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바로 우리 교회의 형제 자매들과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이다. 방언이 터지고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며, 날마다 주께로 돌아오는 숫자가 늘어나던 초대교회는 오늘 우리 공동체와 얼마나 먼 거리에 존재하는지 정직히 확인하는 것이다.

얼마나 다른가? 초대교회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강 건너 저 편의 이야기인가? 초대교회를 그렇게 도달하지 못할 이상으로 떼내 버린 교회론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교회를 꽃 피울 수 있을까?

이 수많은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다행히 하나의 대안을 발견한다. '셀그룹교회'라 불리는 거센 물결이 그것이다. 지금 성공적인 셀그룹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은 초대교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아니다. 이 강력한 도전 앞에서 세계 교회는 흥분하고 있다.

먼저 ‘셀그룹교회'의 개념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겠다. 무엇이 셀그룹교회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세계적인 셀그룹교회인 싱가포르 신앙공동체침례교회(FCBC)의 로렌스 콩 목사는 <사도적 셀교회(The Apostolic Cell Church)>란 최근의 저서에서 다음의 다섯가지 대답을 적어놓고 있다.

“첫째 셀그룹교회에서의 셀은 곧 교회이다. 둘째 셀그룹교회에서 모든 셀 번식(배가)과 새로운 셀의 탄생은 전도로 이뤄진다. 셋째 셀그룹교회에서의 셀은 또 다른 상위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잘 조직화된다. 넷째 모든 셀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중국의 가정교회처럼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거대한 하나의 교회로 연계되어 있다. 다섯째 모든 셀은 하나의 리더십 아래로 들어와 함께 축제의 만남을 가진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 들을 때 이것은 금방 와닿는 개념일수는 없다. 분명히 해 둘 것은 셀은 구역과 다르며, 제자모임과도 다르다. 이들을 서로 구분하는 것이 “셀은 교회다"는 명제를 설명하는데 있어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우선 구역과 제자모임 모두 교회의 사역을 돕는 하나의 부서이거나 과정이다. 다시 말해서 구역모임이나 제자모임은 필수라기보다 오히려 선택적인 경향이 짙다. 또 구역모임이 예배중심이라면, 제자모임은 다분히 성경공부에 많은 비중을 둔다. 그러나 셀은 나눔과 섬김, 치료와 사역이 함께 일어남으로써 교회가 해야 할 다양한 역할들을 모두 수행한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리더십, 곧 담임목사의 리더십 아래서 동질의 색깔을 유지하고 더 큰 비전을 향해 동력을 제공한다.

그러면 이런 셀그룹교회가 그렇지 않은 교회들에 비해서 역동적이고,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는 제도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생각지 않는다. 셀그룹교회 역시 하나의 제도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셀그룹교회는 ‘새 부대(New Wineskin)'일 뿐이다. 새 부대란 새 포도주를 전제한다. 새 술이 없다면 새 부대의 존재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셀그룹교회란 새 부대 역시 셀의 강한 성장과 헌신과 공동체성이라는 새 술을 전제하는 것이다. 분명히 하자, 셀그룹교회의 성공은 ‘형식'의 변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변화를 담은 형식'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새 부대에 담아야 할 새 술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새 술이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변화이다. 아무런 갈등이 빚어지지 않는 갱신 차원에서도 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런 길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선 아직 명확한 대답을 할 단계가 아니다. 검증단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혁명적 차원에서 시도한 변화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예수님의 성전정화를 갱신으로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일종의 혁명이다. 피를 흘려야 하는, 물론 주님 스스로 피를 흘리셨지만, 그것은 피의 댓가를 요구하는 큰 각도의 변화였다. 셀그룹교회로의 전환은 바로 이런 혁명하는 사람, 곧 혁명가의 자세로 달려들어야 할 일인지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왔기 때문이다. 2000년의 세월동안 본질을 상실한 채 ‘또 다른 무엇(?)'을 추구하며 초대교회의 그 본질에서 꾸준히 벗어나온 것이다. 이 변화의 방법과 폭은 다음 호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자.

새 술의 본질을 밝히는 데 다시 초점을 맞춰보자. 눈에 띄는 세 가지의 교회본질, 우리가 상실해 버린 그것은 그리스도의 주재권, 교회의 공동체성, 만인제사장설이다. 많은 본질들 가운데 이 세 가지를 드는 까닭은 이것이 우리가 무엇보다 회복해야 할 가치이자, 셀그룹교회에서 가장 선명하게 회복되고 있는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의미하는 주재권이란 ‘주재권 구원'과 함께 한다. 주재권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 곧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것을 의미하지만, 예수를 진정으로 자신의 생애에 주님으로 모신 사람에게선 실질적으로 그의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주재권으로 말미암는 변화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가 있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는 논리다. 마치 행위구원으로 비칠 우려가 없지 않으나 이것은 은혜구원과 배치되지 않고 동전의 양면 같은 포괄적 명제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셀그룹교회의 성도들 사이에 나타나는 헌신, 그것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인정되는 헌신이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목숨을 건 행위였던 것과 같다. 돈, 명예, 권력, 문화…, 이 모든 가치들로부터 자유하며 결단하는 헌신들의 문화가 셀그룹교회를 새 부대로 삼아 보존되고 성장하는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공동체의 영성을 가지며, 모든 성도들이 이것을 경험하는 것 또한 교회본질이다. 우리는 바울이 자주 교회를 하나의 가족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다 교회 그것은 ‘또 하나의 가족'인 셈이다. 광고문구 속에서 거대한 시장을 연상시키는 가족이 아닌 진짜 가족, 그것이 교회란 공동체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주인과 노예, 때론 서로 다른 인종들…, 그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이 서로간의 간격, 그 다름의 간격을 이어주는 인력은 사랑이다.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함께 바라보는 사람들의 형제의식이다. 교회의 매력은 여기에 기인한다. 한 번 오면 떠날 수 없는 매력, 그것은 마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진한 하나됨을 맛보기 때문이다. 공동체성, 그것은 다양성과 함께 존재하는 하나됨의 힘이다. 초대교회에 있었던 그 영성이 지금 셀그룹교회를 통해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셀모임을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셀 속의 공동체성으로 인해 흥분된다. 진짜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가족의 경험이 셀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만인제사장설, 이것은 '모든 성도의 사역자화'를 의미한다. 놀고 먹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사역에 참여할 권리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모든 성도의 사역 참여권, 이 성도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체제가 셀그룹교회이다. 그것은 셀의 생명력을 키우는 또 하나의 힘이기도 하다. 삶을 선교 곧 미션으로 인식한다면 생활이 일어나는 모든 터전은 선교지가 된다. 모든 불신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살아가도록 격려하는 것이 셀모임의 중요한 목적임을 감안하면 왜 셀이 번식할 수밖에 없으며, 성장을 촉진할 수밖에 없는 지 명확해진다. 셀은 그야말로 강한 생명력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치열한 서바이벌의 현장으로 단련되어 가는 것이다. 여기서 어느 누구도 사역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는다. 모두가 셀의 리더가 되며, 사역자로 심방하고 전도하며 그들의 달란트에 맞춰 양육한다.

이렇게 언급한 세 가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교회에 있어선 지상명령처럼 명확하고 강한 도전이다. 어떻게 이 강한 도전에 응답할 것인가? 하나님께선 이 새 포도주를 담도록 새 부대를 허락하셨다. 셀그룹교회가 바로 그것이다.

정말 소중한 것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지 않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이 함께 그 좋은 걸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주님이 그렇게 소중히 여긴 공동체가 교회라면 결코 높은 담을 쌓거나, 가방끈 길이를 기준으로 몇몇 사람들에게만 교회문을 열어놓으시거나, 교회문 입구에 신학이니 제도니 하는 이름으로 함정들을 파서 들어오는 이들을 상대로 골탕 먹이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셀그룹교회, 이 원시적인 초대교회의 회복운동에 대해 전통교회들은 지금까지 해 온 습관대로 여전히 온갖 조항을 들이대며 제도권 밖으로 떠밀기에 바쁘다. 이 때문에 셀그룹교회에 호응하더라도 그 본질에 마음을 쏟기보다 오히려 이 전통과의 접목 내지는 전통 수호자들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목회자들을 자주 본다. 셀그룹교회는 그러나 단순히 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받아 들여선 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갱신, 곧 주님의 교회로의 회복을 지향하는 치열한 [운동] 차원에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제 자리를 잡는다. 거기 셀그룹교회 운동의 성패가 달려있다.

미국 LA에 위치한 셀그룹교회 BWPC(베다니 세계 기도센터, 래리 스탁스틸 목사)는 500개 이상의 셀에 7000여명의 성도가 움집하는 교회다. CCG(구라야킬 크리스천센터, 제리 스미스 목사), 에콰도르의 구아야킬에 위치한 이 셀그룹교회는 2000개의 셀과 7000명의 성도를 가졌다. 엘 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에 위치한 EC(엘림교회, 조지 갈린도 목사)는 5500개의셀과 3만 5000명의 성도들이 모이는 셀그룹교회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FCBC(신앙공동체 침례교회, 로렌스 콩 목사),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셀그룹교회로 550개의 셀에 6500명의 성도들이 모인다. 그리고 콜롬비아 보고타의 ICM(국제은사사역교회, 세자르 캐스젤라노스 목사), 2만 4000개의 셀이 있는 이 교회는 전체 성도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의 대교회다. 성장에 목 말라하는 목회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나열은 화려함 그 자체다. 이들의 공통점이 셀그룹교회란 사실을 알고나서 그들은 재 빨리 셀그룹교회란 낯선 모델에 흠뻑 젖어든다. 이것이 셀그룹교회로 가는 시작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전통교회가 셀그룹교회로 전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차라리 새롭게 시작하는 편이 낫다는 충고들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다. 셀그룹교회 사역자들이 제시하는 전통교회를 셀그룹교회로 만들기 과정이 있다. 몇몇 사례들을 나열해 본다.

충남 공주시의 한 침례교회. 300여명이 모이는 중소도시의 전형적인 전통교회가 셀그룹교회로의 길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 이 교회 담임목사의 셀목회 간증이다. 전신자사역훈련원 소식지 16호에서 옮겼다.

“공동체 목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교회에 부임한 96년 3월부터 공동체 목회를 시작하였다. 1차로 4년의 목회계획을 세우고 기존의 교인들을 변화시키고 성숙시켜 헌신케하며 증거하는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하는 일련의 단계를 계획하고 목회를 시작하였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목회는 철저한 준비와 계획 속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 교회에서 어떻게 청년 공동체목회를 시작했는가? (다음은 그 변화의 단계들이다)

첫째 설교를 통해 변화시켜라. 먼저 청년들과 함께 공동체 목회를 시작한 이유는 기존 전통과 습관에 젖어 있는 기성세대보다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는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더 쉬우며 그들에게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변화를 시키기 위해 설교만큼 중요하고 좋은 시간은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떤 것을 추구해야 되는지를 계속해서 설교하라.

둘째 양육을 통해 변화시키라. 처음 6개월동안은 집중적으로 양육훈련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이 변하고 삶이 변화되도록 밀착해서 가르쳤다. 체계적인 양육 프로그램과 과정들을 계획하고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훈련을 받도록 도전하였다. 철저한 양육을 통해 사람들은 변화되었고 그들은 공동체 목회의 디딤돌로 헌신하였다.

셋째 변화의 핵이 되는 리더를 세우라. 6개월 동안의 양육을 통해 배출된 7명의 목자들을 세웠다. 이들이 1기 목자가 되었고 이들과 다음 6개월 동안을 매주 3-4시간씩 목장모임을 통해 왜 공동체목회가 필요하며 목자는 누구이며, 목자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삶 속에서 체험하도록 하였다. 양육훈련을 포함하여 거의 1년동안을 이 7명의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공동체 목회의 기초토양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공동체 목회는 돌격 앞으로의 사고를 가지고는 안된다. 나를 따르라는 지도자의 자기희생과 헌신하는 모델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드디어 이런 과정을 거쳐 세워진 1기 목자들에 의해 다음 해에 7개의 목장이 시작되었다." ‘공동체 목회'로 표현한 용어는 셀목회를 의미한다. 이 교회의 경우 청년들이 첫 모델 셀이 됐다. 그 이유는 위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대구의 한 장로교회 또한 의미있는 셀그룹교회로의 시도(?)를 하고 있다. 700여명 가까운 성도들이 모이는 이 교회는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대표적인 전통교회다. 이 교회에 셀의 비전을 가진 젊은 목회자가 부임했다. 그는 이미 미국에서 이민교회를 통해 셀그룹교회의 ‘맛'을 체험했던 목회자다. 이 목사의 간증이 최근 기독신문에 실렸다.

“무엇보다 담임목사가 셀목회의 개념을 숙지해야 한다. 나의 경우 이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랄프 네이버의 책<셀목회 지침서>, 도서출판 서로사랑 펴냄)을 수없이 읽었으며, 빌 베켐의 <두번째 종교개혁> 등 많은 책을 읽었다. 또 셀그룹교회 컨퍼런스 등에 참여해 모르는 것은 물으면서 충분히 숙지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담임목사는 셀목회가 과연 성경적이고 예수님이 원하는 교회모습이라는 걸 확신해야 한다. 그 다음엔 한 두 개의 모델 셀을 만들어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그룹은 30대가 좋다고 본다. 우리 교회의 경우 여성도들로 구성된 30대 여섯 그룹은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들의 경우 시간적인 제약 때문도 있지만 구역으로 오기가 쉽지 않다."전통교회를 셀그룹교회로 만들고 있는 두 교회의 사례를 참고했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매우 희귀하기 때문에 많은 모델을 소개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성공적인 셀그룹교회로의 이동을 진행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이동과정 노하우'가 있다.

우선 헌신된 지도자다. 그는 셀그룹교회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숙지란 의미는 단순히 지식적인 채움만을 의미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방향을 모르는 추상적인 열정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지식과 열정이 겸비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 셀그룹교회에 대한 책을 구해서 정독을 거듭하고, 셀그룹교회를 찾아서 자신의 의문사항을 물어보면서 한 점의 의심도 없애가야 한다. 무엇보다 여러 셀그룹교회들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다음은 셀 모델을 설정하라는 것이 공통된 지침이다. 한꺼번에 교회구조를 확 바꾸고 재편해서 셀그룹교회 시스템을 구축해선 전통이란 벽에 금방 부딪치고 만다는 것이 이들의 조언이다. 우선 첫 열매를 교회 앞에 보이라는 말이다. “아 셀이란게 이런 것이구나, 셀목회를 하니 저렇게 변하는 구나, 교회에 생기가 도는 구나…,” 이런 이미지를 전체 성도들에게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이 모델로 적합한 세대는 청년세대다. 20대와 30대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첫 셀의 경험을 갖도록 하는 게 좋다고 그들은 말한다.
셋째 끊임 없이 설교하고 가르치라는 것. 이것이 셀그룹교회의 토양을 만드는 일이다. 이런 토양 가꿈 없이 맨 땅에 셀목회의 씨앗을 뿌릴 수는 없다. 설교와 또 다른 소그룹모임 등을 통해서 셀그룹교회 구조에 대해 꾸준히 역설해야 한다.

넷째 전통교회가 지닌 조직들을 지나치게 흔들지 말 것. 가령 구역이란 이름이 있는데도 당장 셀이란 명칭으로 바꿔버린다든지 기존의 제직회나 당회, 각 전도회 등을 없애거나 소홀히 하는 인상을 교회에 보이는 것이 옳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기존의 조직들을 인정하되 이들이 훈련받도록 장을 만들어 주며, 무엇보다 셀 조직의 강점을 살려가며 자연스럽게 셀이 전체 조직을 ?잡아 먹어버리도록" 움직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이 일이야 말로 내 목회의 전 생애 동안에 일궈낼 가치가 있는 멋진 사역이다"라고. 그들 ‘셀 전도사'들만의 이야기일까? 기대와 주목을 함께 가져본다

셀교회 운동에서 "비용을 계산하라"
(COUNTING THE COST" TO BE IN THE CELL CHURCH MOVEMENT)

셀교회 운동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50년이 넘게 진행되어 오고 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소그룹을 통해서 21세기에 추수하실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서 당신과 내가 가만히 있어도 자동적으로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참된 운동에 부분이 되는 것을 놓치게 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셀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운동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다 하더라도, 내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올리버 웬델 홈즈는 "우리 뒤와 앞에 놓인 작은 문제들은 우리 안에 있는 것들과 비교된다."라고 관찰했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서 무엇이 일어날지를 결정할 것이다. 누가복음 14:28-33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꼭 "비용을 예산"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당신은 전통적인 교회에 대한 부르심이 있는가? 지금 현재의 교회 구조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남아 있어라!

비용을 예산한다는 의미는 당신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셀 공동체"에 대한 부르심이 있는가? 당신은 아마도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를 공동체 가운데 일하도록 부르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라고 반응할지도 모르겠다. 밑에 있는 질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셨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당신은 모임을 관리하는 것 보다 돌보는 데에 관심이 있는가?
당신은 단순히 건물을 채우는 사람이기 보다 세계를 관통하여 보기 위한 부르심이 있다고 생각되는가?
주일날 모든 자원과 에너지가 교회 건물에서 쏟아지는 것이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가?
당신은 세상에서 주중에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가?
당신은 교회가 단지 사람의 능력보다 신약시대 때 행해졌던 영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보기 원하는가?
당신은 전통적인 교회가 건물유지비와 사례비로 많은 재정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가?
당신은 사람들이 단순히 "거룩한" 사람들이 되기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려고 사역하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주일 아침에 단지 다음 순서를 준비하기 위해서 분위기를 띄우는 예배가 아닌 하나님께 집중된 예배를 드리고 싶은가?
당신은 당신이 아는 교회가 이 세상의 수많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는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당신은 셀교회 운동의 부분으로 부르심을 입었는지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다.

비용을 예산하는 것은 당신의 주변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당신의 비전과 부르심이 셀교회의 부분이 되는 것이라면 당신의 사역환경은 어떠한가? 당신의 현재 삶의 상황이 당신으로 하여금 셀교회 운동의 부분이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상황이 하나님의 셀교회로의 부르심에 방해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다음의 상황들은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지위, 봉급, 가족의 필요, 퇴직, 교단입단, 과거의 방법론, 동역자들의 의견과 교회의 결정과정.

이런 삶의 환경들이 자주 큰 두려움 가운데 안전망이 되어 줄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실 때 모든 안전망을 거두신 후에 일하게 하실 때가 많이 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어린 독수리는 그가 알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만 이해한다: 둥지와 따뜻함, 안전함 뒤에 위험한 곳과 바위 , 그리고 두려움은 모른 채 어미 독수리에게만 의지한다. 어린 독수리가 자라나고 점점 커지면 마침내 어미는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새끼를 떠민다. 그러면 그 독수리는 그것이 운명이고 삶의 목적인 것에 대해서 알게 된다. 둥지는 끝없는 하늘에 비하면 아주 작은 제한된 장소이다. 위험한 곳과 바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미새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더 넓은 세상에 대해서 알지 못할 때 이야기이다.

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께 사용 받았던 사람들은 모든 상황에서 그들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런 뒤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안전망 없이 하나님의 사랑만 가지고 그들의 믿음을 시험했다. 셀교회 운동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주를 섬기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당신이 참석하는 교회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고, 교회는 셀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도 않으며, 아무도 셀교회를 시작하는 것을 후원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의 삶의 상황이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실 수 있는 것을 알려 주는가? 당신이 편안하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는 부르심을 거부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비용을 예산하는 것은 당신의 헌신 정도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형태의 교회 모습에 대해서 행하실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헌신정도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아브라함이 옛 땅을 떠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약속의 땅"으로 발걸음을 디뎠던 것처럼 당신의 믿음을 훈련하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방법과 적은 군사로 나아갔던 기드온처럼 헌신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에 따라 움직였던 모세처럼 하나님과 함께 여행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즉각 순종하는 것에 대해서 당신에게 가르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피할 수 있는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후에는 절대로 그것으로부터 피하거나 도망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에서 전통 교회로부터 떠나서 셀교회 운동을 시작하라는 마음을 주셨다면 당신은 그 부르심으로부터 도망할 수 없다. 기쁘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모든 상황 가운데서 신뢰하는 것이 원하는 목적지를 향했다가 피할 수 없는 불순종의 결과를 경험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당신의 현 교회가 변화하려 하지 않고, 셀교회 운동에 관심도 없으며, 당신이 그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도 후원하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이 신학교에서 막 졸업하여 셀교회를 위한 중심지도자들이 모일 때까지 개척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의 부르심에 솔직하게 반응할 때 당신의 모든 안전망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의 삶 가운데 어떤 상황으로 인하여 순종하지 못하고 부르심을 거부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셀교회를 시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 당신이 받은 비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강하게 막고 있는 상황들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고, 골짜기로 이끄셔서 그 비전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도록 변화시키신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겁을 먹고 도망하는 곳도 그 골짜기에서다."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

출처 : 빌 벡햄(Dr. Bill Beckham) Touch 국제 사역 대표.
빌 벡햄 박사님은 한국교회에 셀을 정착, 보급시키신 셀(Cell) 전문가입니다. 또한 랄프 네이버와 함께 전세계에 셀 그룹 운동을 일으킨 세계적인 전략가이기도 합니다. 셀의 철학적인 토대를 놓은 분으로서, 그의 책 "제 2의 종교개혁"은 교회에서 셀을 하는데 있어 필독서가 되고 있습니다.


김성곤목사 2004-06-01 16:20:11

건강한 셀가족




21층 고층 아파트에 어느 날 한밤중에 부주의로 인해 불이 났다. 놀란 주민들이 급히 대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워낙 불길이 급하게 치솟은 탓에 21층에 살던 사람들은 대피를 하지 못하고 옥상으로 피하게 되었다. 구조헬기가 뜨고 옥상에서 구출작전이 진행되는데, 뒤늦게 옥상으로 대피한 한가정이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이렇게 3사람이었는데, 뒤늦은 탓에 구조헬기로도 손쓸 수가 없게 되었다. 불길은 자꾸만 치솟아 오르고...어쩔 수 없이 이들은 21층 옥상에서 뛰어내리기로 마음먹었다.

3식구가 크게 호흡을 가다듬고 한명씩 뛰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밑에서는 긴장하며 지켜보았습니다. 하나, 둘, 셋! 아버지의 구호에 따라 뛰어내렸다.
그 뒤 이 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사람도 다치지 않고 무사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제비족이고, 어머니는 날라리며,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전 부터 유행한 유머다. 한낱 우스개 소리로 지나갈법 하지만, 오늘날 가정 문제의 한단면을 풍자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가정의 위기, 가정의 파괴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교회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가정에 관심을 갖는 달이 바로 5월이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가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정이 건강할 때 사회도 건강해진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류 가운데 세우신 첫 제도이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가정을 귀중하게 여기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생명으로 하나된 영적인 가정을 주셨다. 그것은 다름 아닌 셀가족모임이다. 혈연으로 하나된 가정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바로 영적인 가정이다.

오늘날 왜 많은 크리스챤들이 세상 속에서 능력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가? 빛이요 소금이라 했는데 왜 그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
영적인 가정들이 온전히 회복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깨어진 가정들의 자녀들이 탈선율이 높은 것처럼 영적인 가정도 마찬가지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사회생활도 힘들다. 영적인 가정에서 충분히 교제하며, 화목하는 자는 교회나 세상에서도 승리한다.

성도라면 누구나 예배를 통해 힘을 얻고 인생의 답을 얻는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에 불과하다. 셀가족 모임에 참석하여 건강한 영적인 가정을 통해 힘을 얻고 다시 세상에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건강한 셀가족 모임은 어떠해야 할까?
첫째는건강한 셀가족은 서로가 모이기에 힘쓴다.
두 번째, 건강한 셀가족은 서로 노력한다.
셋째 건강한 셀가족은 서로를 책임진다.
넷째 건강한 셀가족은 가장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한다.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가정을 통해 쉼을 얻고, 회복되며, 힘을 얻는다.

셀가족 모임 역시 마찬가지다. 셀가족 역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가정이며 선물이다. 셀가족 모임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 새 힘을 얻는다.
그런데 그런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모이기를 힘쓰며, 서로 노력해야하고, 서로를 책임져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세상이 결코 감당 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 셀가족 모임 가운데 임하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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