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담배 연기가 한 가득 매우고 있는 화려한 룸 안엔 걸걸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 가운데에 앉아 있던 우락부락한 남자가 하얀 셔츠를 벗어던지더니 이내 제 굵은 팔뚝에 그려져 있는 용무늬를 과시하는 듯 했다. 서로 마주보며 앉아있는 나머지 두 남자는 이내 웃음을 멈추고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팔뚝을 바라보다 눈을 제 자리로 돌려 버린다.
“됐다. 마, 처음 보나?”
“아닙니다. 형님.”
“그래. 내가 알아보라는 건 알아 봤노?”
“예. 그…, 왜 근래 형님을 쫓던 짭새들 중에 웬 여 형사 하나가 더 개입됐다는데 그 년이 바로, 그 마카오 건 하나를 건져냈답니다.”
“내 쫓던 짭새들 중에? 그 팀에 여 형사 하나가 들어갔따고?”
“예.”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제 부하의 말에 오만상을 찡그리며 담배 하나를 들어 물었다. 2년이 다 되도록 저를 쫓고 있던 강남 경찰서, 강력반에 대해 남자는 모두 파악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여 형사에게 말미를 붙잡혔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고개를 삐딱거리며 담뱃불만 바라보다 이내 제 부하들을 향해 소리친다.
“누가 뭐래도 오늘은 좋은 날 아니가?”
“예. 형님.”
“어쨌든 거래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축하는 하자꼬.”
남자의 손이 공중으로 올라섰다. 그의 굵고 큰 손이 까딱 대자 그들의 앞에 서서 벌벌 떨고 있던 웨이터가 문을 열었다. 거의 벌거벗은 야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안으로 차례로 들어섰다. 그들의 앞에 선 여자들은 한 명 씩 고개를 숙이며 제 호칭을 불렀다. 여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입을 다시며 남자들은 눈을 흘겼다. 그러다 제일 눈에 띄는 금발 머리의 여자가 가운데 앉아있던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목소리를 낸다.
“체리입니다.”
그의 눈은 여자에게서 떼어지질 못하고 있었다. 여자는 화장이 하얗게 뜬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옅은 화장에 살짝 진 쌍꺼풀, 왠지 빛이 나는 듯 하는 뽀얀 얼굴에 요목 조목 이목구비가 예쁘게 박혀있었다. 왠지 모를 고풍적인 느낌이 풍기는 여자다. 그 여자는 제 눈을 아래로 내리 깔고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일부러 그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못생긴 여자들을 끼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그 중 제일 예뻤다.
아니, 한 눈에 들어올 만큼 아름다웠다. 그는 여자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제가 들고 있던 거의 다 타 들어간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끄곤 손가락으로 여자를 짚었다. 여자들은 당연, 그녀를 짚을 거라 예감했단 듯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는 이 클럽에 VIP 중, 가장 단골손님이었고 무엇보다도 그에게 택해지면 안 좋을 것은 없었다. 여자의 눈이 반짝 뜨여지며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에게 택해진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그녀는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에 남자는 인상을 찌푸릴 만도 한데 그저 그녀가 다가와 앉는 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나본지 그녀가 옆에 앉자마자 어깨에 제 손을 올렸다. 아무런 표정 없이 술을 들어 달고 있는 그녀는 고혹적이며 도도해보였다. 남자는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한 번 쓰다듬었다.
여자는 그의 손이 제 턱에 닿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어 두 눈을 꽉, 감고 살짝 입술을 구기며 술잔을 들었다. 그리곤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눈을 살며시 뜬다.
“저도 술 한잔만 마시면 좋겠는데.”
남자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녀의 훤히 보이는 가슴께를 훑더니 술병을 들어 그녀의 잔에 담았다. 입에 한 번에 담아내 마시는 그녀를 보며 크게 웃던 남자가 어깨춤을 더 능글맞게 어루만졌다.
“그래. 마이 마셔라.”
더욱이 달라붙으려는 남자로 인해 그녀의 손이 잔을 붙든 채 떨고 있었다. 힘이 조금 과했던지 잔을 놓은 탁자 위로 옅은 굉음이 일었다. 그것도 잠시 남자의 거뭇한 수염이 이내 볼을 스쳤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 눈짓을 보내기 위해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웨이터가 제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결국 엉덩이를 들추던 것을 말고 제 정신을 차렸다.
‘아직 때가 아닙니다.’
웨이터와 그녀는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은 채 침묵을 유지했다. 웨이터는 딴청을 피우는 척 하려 노력해보이지만 질질 흘리고 있는 땀을 보니 영, 간 떨리는 게 아닌가 보았다.
“니 말이다. 출신은 어디고?”
남자의 손이 그녀의 허리춤을 쓸며 내려갔다. 그 때, 웨이터 복장을 하고 있던 영우는 그 모습을 발견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이 상황을 얕보았다간 안 된 다는 것을 되생각하며 이를 악 물었다. 밖에서 어떤 사인이 있기 전까지 영우와 그녀는 그들이 하고 있던 웨이터와 술집 여자 행세를 계속 해야만 했다. 거의 남자의 손이 그녀의 앞섶으로 향할 때였다.
밖에서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이 원하고 원했던 사인이 떨어졌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영우와 그녀는 제 할 일을 마저 해야겠단 생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영우는 문을 보란 듯이 열어 보였고 그녀는 어깨에 걸쳐있던 우락부락한 남자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어 온 힘을 다해 테이블에 엎어버린다.
“출신이 어디냐고 물었어?”
“아악! 너, 너. 뭐꼬?”
“나? 너 잡으러온 서울 강남 경찰서, 강력반이다. 왜. 그, 힘 좀 써보시지?”
“이 거, 안 놓노?”
문이 열리자마자 총을 들이밀며 들어서는 그녀와 영우의 동료들, 그리고 긴장감이 룸 안을 휩쌌다. 그녀는 그들의 앞에서 테이블을 엎을 정도로 힘을 가세해 남자를 제압했다. 그리곤 숨겨두었던 수갑을 꺼내어 그의 손에 무자비하게 채워 버린다.
“마일구, 널 마약 거래 혐의자로 체포한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 할 수 있겠지만.”
“……….”
“어차피 넌 감방 감이야.”
정말이지 누가 더 힘이 센 남자인지 모를 만큼 그녀는 자신보다 두 배 만큼 되는 남자를 쓰러뜨려 눕힌 채 그 위를 완전 섭렵하고 있었다. 그리곤 그녀는 남자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씨익, 입술을 올려 보였다. 남자의 눈엔 그게 그렇게 사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내, 이 마일구가 이대로 감방 감으로 들어갈 줄….”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 갑자기 쫙 펴진 손바닥이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남자의 뒤통수가 그녀의 손에 의해 타격을 입었고 안에 있던 그녀의 동료를 비롯한 남자를 형님, 하며 모시는 부하들 까지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남자의 얼굴이 바닥에 한 번 내리 꽂아지고 올라왔다. 그녀가 바라는 대로 남자의 코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형님!”
“마, 내 죽겠다!”
“너 따위 벌레만도 못한 새끼 잡느라고 시간 허비한 거 생각하면 넌 죽어도 싸. 이쯤에서 끝내는 걸 다행으로 알아. 알아들었어?”
“……….”
“이 새끼 데리고 가. 저 나머지 애들도 잡았으면 딸려 보내고.”
그녀의 지시에 모두들 바쁘게 움직였고 그 앞에 벙 찐 채로 서서보고 있던 영우는 이내 그녀를 향해 박수를 쳤다. 초롱초롱한 영우의 눈망울에 그녀가 정면으로 꽂혔고 그대로 다가와 영우의 머리를 헝클인다.
“신입. 수고 했어.”
웃음을 짓지 않았어도 따뜻한 말 한마디 더 붙이지 않았어도 친근하게 ‘신입’이라 불러주는 그녀의 목소리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제 자리에 서서 웃음을 짓고 있다 어수선한 클럽에서 밖으로 나서는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영우다.
이 번 건이 뒤쳐져서 선배님이라 불렀지, 원랜 강남 경찰서 강력 1반의 제일 높은 직위를 맡고 있는 그녀이다. 마약과 관련 된 사건은 워낙에 처리가 빨라 뒷덜미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데 그녀의 유능함 때문인지 조금은 오래 걸렸어도 평생 잡지 못할 수도 있던 것을 이번 몇 개월 간, 순식간에 마일구를 비롯한 꽤 유명한 마약 거래 단을 모조리 잡아버렸다. 영우는 선배인 그녀가 정말 자랑스럽기만 하다.
밖으로 나서니 조금은 매서운 밤바람이 사건을 뒷수습 하는 그들 사이를 비집으며 불고 있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서자마자 담배를 물고 제 어깨를 털어냈다. 아까 자꾸만 비비적대던 마약 범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은 터였다. 그저 서서 바쁜 광경을 보고 있는데 영우가 불쑥, 튀어 나왔다.
“축하합니다. 유 선배님. 아니, 이제 반장님이라 불러야 되는 건가요?”
“…놀랬잖아.”
“오늘은 회식 가실 거죠?”
손에 들려있던 담배가 발밑으로 떨어졌다. 아직 다 가시지 않은 담뱃불을 비벼 끄며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유진아. 정말 수고 많이 했어.”
“다들 박수라도 한 번 쳐주는 건 어때요?”
영우의 말에 다들 박수를 치려 두 손을 들었지만 그녀가 절래 고개를 저으며 쓰고 있던 금발의 가발을 벗었다.
“됐어. 박수는 무슨. 나 먼저 간다.”
살짝 땀에 젖은 그녀의 얼굴이 영우의 눈에 들어왔다.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 서서 바라보고 있다 영우는 그녀의 뒤를 쫓아 나선다.
“이대로 걸어가시려고요?”
“……….”
“제 차라도 어떻게, 타고 가실래요?”
“신입.”
걸음을 멈추고 손바닥을 들어 보이는 그녀, 영우의 걸음도 따라 멈추어 선다.
“그만. 네 차도 안타고 나 혼자 걸어 갈 수 있으니까.”
“…예.”
“따라오지 마. 그리고 언제 네가 고기 같은 거 먹을 수 있다고, 지금 가서 실컷 먹어둬. 간다.”
그대로 돌아서 버리는 그녀를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어 멀리서만 지켜보다가 영우는 소리친다.
“안녕히 들어가십쇼. 유 반장님!”
영우의 말에 대응이라도 하는 듯 그저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제 발걸음을 빨리 하는 그녀이다. 집이 그리 가까운 것도 아닌데 걸어가는 거 보면 희한한 일인데다 으슥한 밤인데도 불구하고 다 벗은 옷차림으로 밤거리를 거닐 수 있는 건 오직 그녀뿐일 것이다. 영우는 강력계로 발령 난지도 반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과 달리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끌린 이유는 예쁘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따로 있었다. 또 예쁜 데에 입도 거칠고 웬만한 남자들보다 일 처리까지 확실해서도 아니었다.
그녀는 슬픈 눈빛을 지녔다. 곧장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촉촉한 눈빛을 볼 때면 맞아죽어도 그녀를 보호해주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끌렸다.
“야. 신입. 무슨 생각 하냐? 개독 갔어?”
서서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영우에게 선배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개독’이라 하면 그녀를 일컫는 말이다. ‘개같이 독하다’, 뭐 이런 뜻에서 나온 명칭이었다. 저렇게도 예쁜 그녀를 그렇게 부른 다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성격 하나는 알아줘야 했기 때문에 지어진 별명이라 한다.
“예. 갔습니다.”
“너도 봤지? 걔 개독, 현장에서는 더 무섭다고. 오늘 내가 다 무서웠다니까. 어쨌든 그만 여기서 얼쩡대고 회식이나 가자.”
선배가 영우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잡아끌었고 그는 사라지는 진아의 뒷모습도 확인하지 못한 채 회식자리로 끌려가야 했다.
“근데 원래부터 유 선배, 저러셨어요? 강력계로 발령난지는 별로 안 됐다고 들었는데.”
“음…. 그렇지. 근데 3년 전에 남편이 우리 팀 반장이었어. 강시원 반장이라고.”
영우가 우뚝 서 놀라며 물었다.
“남편이요?”
“뭘 그렇게 놀래.”
“유 선배한테 남편이라니….”
“죽었어. 강시원 반장. 차 교통사고로 말이야.”
“아…….”
왠지 그녀의 슬픈 눈빛이 스쳐지나갔다. 왜 그렇게 뭘, 그렇게 아파해야 하는지 직감이 왔다. 그가 진아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뒤를 돌아보기도 전,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일에 목을 매는 건 그 이유야. 남편을 너무 사랑했거든.”
그리곤 영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다시 바라보아야 했다.
“야. 안 가냐?”
“갑니다!”
다시 큰 목소리의 부름에 영우는 생각할 틈도 없이 불려간다.
깊고 푸른색의 청자를 한동안 서서 바라보는 남자가 있다. 오직 아름다운 예술품만이 제 현란함을 뽐내며 새하얀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그 곳엔 남자 혼자만이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창문 밖은 곧 컴컴해질 것 마냥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가 미술관 위층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단지, 이 청자 하나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이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는 아무도 침묵을 깰 것 같지 않은 그 안에 서서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새하얀 얼굴은 불빛 아래 서니 더욱 빛이 났다. 누군가 그 한 공간 안에 서있는 그를 보노라면 분명, 그도 예술품이라 착각할 것이었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얇게 진 쌍꺼풀이 제 자리를 찾았고 곧게 뻗은 콧날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남자는 자신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 지 그저 한편에 서있는 조각상처럼 멈추어 있다.
지이이잉- 작은 진동소리에 침묵은 깨졌다. 남자는 그의 호주머니에 자리 잡고 있던 전화를 꺼내 들었다. 잠시간, 귀찮을 거란 생각에 전화를 넣어두고 싶었지만 또 그를 걱정하며 본가에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리할 수만은 없어 목소리를 가다듬고 받는다.
“이 시간엔 무슨 일이세요?”
- 넌 내가 무슨 전화만 하면 무슨 일이냐고 물어. 그냥 용건 없이 아들한테 전화하면 안 되는 거야?
“지금 바빠서요.”
- 그래? 민규야. 나 정말 미치겠다. 민정이 걔가 또 사고를 쳤나 보구나.
“민정이가요?”
- 난 어딘지 모르는데 강남 어디 쪽 클럽이라고 한 것 같은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라니. 민정이 친구한테 전화 왔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네가 좀 가보겠니?
“알겠어요.”
전화를 끊자마자 동생 민정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요새 본가에 들른 적이 없어 꽤 오래 보지 못했던 민정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니 문득 걱정이 들어왔다. 전화가 닿자마자 그는 클럽의 위치를 어렴풋이 기억해내 출발했다.
한동안 연예인을 한다며 이 곳, 저 곳을 전전긍긍하더니 못 본 사이에 사고까지 친 동생, 민정은 그와 일곱 살이나 차이나는 스물셋의 대학교 졸업반이다. 어릴 때부터 그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민정은 언제나 그의 오피스텔에 들러 안부를 묻곤 했다. 하지만 요 근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님 바빠서인지 그녀의 목소리조차 못 들은 터였다.
그가 외국 유학을 마친 후 한국에 들어와 혼자 살기 시작한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열다섯에 가, 10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많이 낯설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대형 미술관을 맡아 일을 하는 동안 점차 한국에 익숙해졌다.
어쩌면 한국으로 아예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텐데. 그는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자꾸만 그의 머리를 휘 집어 놓는 누군가 때문에. 그는 견딜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유학 생활을 겨우 이겨냈다. 그것도 그 누군가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찾아 낼 거라 여겼던 작고 연약했던 여자아이,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그 아이로 인해 그리움에 사무칠 때면 곪을 때로 곪음 슬픔이 더욱 더 깊어진다.
“민규야.”
작은 얼굴에 붉은 입술로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여자아이는 영원히 떠나가 버렸다. 너무나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너무나도 그리운데. 찾을 수 없는 곳에 꽁꽁 숨어버린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자꾸만 머릿속을 들추는 그 아이의 얼굴, 자그마치 15년이다. 지겹다 못해 웃는 그 아이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잊을 만 할 때도 됐는데…, 따뜻한 봄날의 추운 기억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
“……….”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어. 그 때의 너를 기억하며 지금의 너를 상상한다. 우리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너를 지켰더라면 그 때의 내가 후회를 하지 않았으며 지금의 내가 조금은 달라져 있었을까? 나는 나를 원망하며 나에게 벌을 주고 어디 있을지 모를 너에게 속죄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네가 너무도 그립다. 그리워서 미칠 때면 정말 내가 미치기라도 한 듯 너를 찾으며 울부짖어. 너는 날 기억하고 있어? 너도 날 그리워하고 있는 거야?’
끼익, 소리를 내며 그의 차가 유흥가 어디 쯤 멈추어 섰다. 그는 잠시 취해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차에서 내렸다.
민정의 친구 말로 보아하니 술에 취한 그녀가 클럽에서 꽤나 큰 행패를 부린 듯 했다. 그는 번쩍 거리는 거닐며 동생이 쓰러져 있을 그 클럽으로 향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클럽 앞은 매우 시끄러웠다. 경찰차와 웬 떼로 몰려다니는 경찰들이 수없이 많이 서있었다. 왠지 모를 걱정이 더욱 들자 그는 걸음을 빨리 했고 가장 먼저 눈에 뛰는 경찰을 붙잡았다.
“여기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말해주면 뭐, 알아요?”
경찰은 바쁜지 쌩 지나쳐 버렸다. 그는 걸음을 빨리해 그 수많은 인파를 뚫고 클럽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경찰들에게 끌려가며 크게 포효를 하는 남자를 보곤 민정과 전혀 관련 없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어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빨리 그의 눈앞에 민정이 나타나길 바랐다. 사건을 수습하고 있는 그들 사이에서 조금을 허우적대다 끝내 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금발의 여자가 문 앞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인데 그는 여자를 눈에 담았다. 한 젊은 남자가 나오더니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또 웬 남자 한명도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리곤 여자는 제 머리에 씌워져 있던 금발의 가발을 벗어내었다. 옅은 땀방울들이 흐르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아 했다. 꽉 묶은 검정색 머리카락이 조금씩 제 멋대로 튀어나와 있었지만 그는 그보다도 먼저 여자의 이목구비를 훑었다.
어딘가 굉장히 익숙하다. 좀 전까지 그의 머릿속을 헤집던 여자아이의 웃음이 그녀의 얼굴과 겹쳐졌다. 표정이 없는 여자는 이내 담배를 툭, 떨어뜨리더니 발걸음을 돌리고 혼자 걸었다. 남자가 그녀를 따라 나서려 하는 것 같았지만 끝까지 함께 걷지는 않았다.
여자의 붉은 입술이 자꾸만 눈에서 맴돌았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붉은 입술…, 그저 여자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여자를 잡고만 싶어져서였다. 무엇이 그를 이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를 잡아야 했다.
또각, 또각 구두 굽 소리를 내며 걷긴 걷는데 절뚝이는 다리를 보니 많이 아파보였다. 금색 큐빅이 박힌 현란한 빛깔의 미니 드레스는 여자의 온몸을 조이며 곡선을 그려냈다. 제 손에 든 금발 가발을 터덜거리며 걷는 그녀의 팔을 잡아 돌려 세웠다. 툭, 하고 가발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의 매서운 눈이 흠칫 놀라하며 민규를 쏘아보았다.
“……….”
“……….”
‘그 아이다.’
어릴 적 얼굴이 고스란히 얇은 화장 아래에 남아있다. 오뚝한 코하며 동그란 눈망울, 변한 것이 하나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팔이 붙잡히는 바람에 잔뜩 놀란 상태여서 방어 태세를 취해야 했다. 팔을 붙잡고서는 그녀의 얼굴을 저의 깊은 눈매로 훑는 남자에게서 벗어나려는데 마침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아….”
“………?”
“너 유진아 맞지?”
정확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 때문에 더욱 잡힌 팔이 간지러웠다. 재빨리 손을 빼내려는데 남자는 팔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 꽉 주었다. 마치 놓아주지 않을 사람처럼….
“누구야. 당신?”
“이 얼굴 기억 안나?”
“……….”
“난 널 딱 알아보겠는데.”
조금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부터 이마, 잘게 정리된 눈썹 그리고 눈을 타고 내려와 붉은 입술에 시선을 꽂았다. 그를 쏘아보던 진아는 점점 아려오는 팔을 뿌리쳤다.
“정말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누구냐고 묻잖아.”
그는 한톤이 정리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진아는 달랐다. 안 그래도 아픈 다리로 겨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들이닥쳐 자기를 아냐 묻는다니.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서 자신이 누군지도 제대로 설명 안하고 다짜고짜 모른다며 타박을 주는 남자를 무시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미친놈처럼 앞에 서서 거치적대는 남자를 무시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님, 나 모르는 척 하기, 뭐 이런 복수라도 꿈꿔왔던 건가?”
정말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 쯤, 그가 웃어보였다. 그녀를 잡기 위해 뛰어와서 인지 남자의 얼굴엔 작은 땀방울들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살짝 웃어보이던 남자가 그녀에게 더욱 바짝 붙어버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 채 저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되어 보이는 남자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나? 네가 더럽게 쫓아다니던 첫사랑, 박민규 님이시다.”
“……….”
“반갑다.”
‘널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한 채 일순간을 맞이했다. 금발 가발이 떨어진 것도 까먹은 채 그녀는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그의 이름은 박민규였다. 왠지 친숙한 남자의 이름, 그리고 새하얀 미소. 그녀는 이따금 아파오는 머리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15살의 봄이었다. 첫사랑의 기억은. 아주 시리고 시린 기억이 아찔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베베룬입니당 ㅎ.ㅎ
'끝사랑'을 가져온지도 얼마 안 되어 이렇게 열 망을 선 보이는데요. 사실, 끝사랑 같은 경우는 보류..로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애요. 끝사랑은 조금씩 써 내려갈 계획에 있구요. 한 편, 한 편 완성될 때마다 조금씩 선보이기로 하겠습니다. 미열도 수정은 하고 있는데..조금은 슬럼프 같네요T^T 독자님들, 이해 부탁드릴게요.이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 드리구..미열 꼭 완결까지 갈겁니다! 원래 미열은 15편~정도에서 끝낼 계획인데 분량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더 길어질지 아님 그대로 갈지..어쩄든 미열 꼭 다음에 들고 오겠습니다.
이 번 '열 망'이란 소설은 얼마 전 보고싶다라는 드라마를 보고 구상하게 된 것인데요..첫사랑과 마지막 사랑에서 갈등하는 역할인 여자주인공 진아도 참 상처가 많은 여자랍니다ㅜ^ㅜ..나중에 과거를 보심 아시게 될 것 같애요..ㅎ 민규는 또 어떠한 매력남으로 등장할 지 모르겠는데..ㅎ.ㅎ 많은 사랑 부탁드릴게요!
팸카에서 선연재 된다, 안 된다는 약속 못 드릴 것 같습니당. 문학공작소와 로작연이라는 카페에 동시 연재로 들어가게 될 것 같구...만약 거기서 뵙게 된다면, 꼭 아는 척 해주세요 T^T 참 외롭습니당..ㅎ..ㅎ
벌써 회원수가 700명인데..댓글 수는 적은 것 같아 슬프지만..절 위해 가입해주시고 많은 관심과 사랑,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보답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 애정합니다. 여러분!
첫댓글 와우!!일빠에요ㅋ
왠지사진보니까진구가나오길래설마했는데맞네요ㅎㅎ작가님도보고싶다보시는군요ㅋㅋ반갑습돠ㅋㅋ 강력계형사라는소재가새롭네요ㅋㅋ 여주가아픔이아픈사람인것같아요...기대합니다~~잘보구가요
(또...미열도너무보고싶어요ㅠㅠ흑흑 참고기다릴께요ㅋ)
재미있네요//
재미잇어요 ㅎㅎ 담편도 기대할께요
잼있어요...앞으로 민규랑 진아가 어떤모습을 보일지..
끝사랑도 잼있었는데..요것도 재미나네요~~~^^
아~~~미열도 기다리는데..기다려야할게 3개나 생겨버렸네요...ㅠㅠ
빨리 빨리 와주세요~~~^^
완전 기다립니다!!!!!ㅋㅌ
재미있서요~~~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잼있어요 다음편도 잼있겠죠?^^작가님 힘내세요^^
이소설도와장창기대됩니다ㅜㅋ기다리고있을게요!
헐 ㅠㅠ 끝사랑너무좋았는데 아쉽네여 ㅠㅠ 작가님 힘내시구 기다릴게용
재밌어요~~~♥.ㅋㅋㅋㅋㅌ다음편기대할게요^,^
작가님!! 힘내세요!!!^-^
열심히 연재해주세요
작가님~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수고하세요.
재밋어용~얼른연재됏으먼좋겟어용
재미있어요~~ ^^
진짜재밌어요!!^^
이거연재해요??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네요 담편보러 갑니다 슝~~
잘 읽었 습니다 기대되는 작품이네요 ㅎ
재회를 했네요!! 앞으로 기대되요^^
재밌어요!!!! 앞으로 두사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민규가 아닌
다른 사람이랑 결혼한건가요??
잼잇게잘읽엇습니당~ ㅋ
재밌읍니다^^ 기다리는 법을 익히는중입니다 다음편 볼려고 몇번을 들락거리다 보니 이젠 기다리는법은알게되네요~~~행복한 하루^^*
아픔이 많은 진아를 치유해줄수 잇는 남자는 과연 누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