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동의 지역적 특성과 본당 설립 배경
묵동(墨洞)이라는 이름은 ‘먹골’이라는 한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옛날에 먹을 제조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국립여관인 송계원이 있었기 때문에 송계동이라고 하였다. 묵동은 중랑천을 끼고 봉화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아직도 배 밭이 있다. 산, 내, 배밭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경을 이룬 마을이었다. 배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대항하여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한 사육신은 처형당하고 단종은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가게 되었다. 이때 호송을 책임졌던 금부도사 왕방연은 단종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목적지까지 가슴 졸이며 호송한 후 돌아와 관직을 그만두고 봉화산 아래 중랑천 가에 자리를 잡아 필묵과 벗하며 키우기 시작한 것이 배나무였다. 유배지를 떠나는 단종이 갈증으로 인해 물을 마시고 싶어 했으나 물 한 그릇도 국법에 어긋난다 하여 올리지 못했던 그는 단종이 승하한 날이 되면 자신이 가꾼 배나무에서 수확한 배를 가득 바구니에 담아 영월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또 그가 단종을 호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울적한 심정을 읊은 시조는 다음과 같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듸 없어 냇가에 안자시니
져 물도 내 안 같아여 우러 밤길 녜놋다.
*여희옵고;이별하고 *고운 님;사랑하는 님 , 단종 *물: 작자의 감정이 입된 공간
*내 안; 내 마음 *녜놋다;가는구나
왕방연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 묻혔으나, 후손에 의해 이장되었고 그가 심었던 배나무만 사방으로 번식하였다고 한다. 이 일대의 배 밭이 그렇게 해서 생겼으며, 그의 눈물과 정성이 스며들어 단듯하면서 혀끝에 여운이 남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 먹골배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고려 시대 유명한 학자 이조년(1269-1342)이 말년에 지은 시조도 이 지역이 배경이 되었다 한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화(梨花): 배꽃. 청초, 결백, 냉담 등의 속성을 담고 있다. *월백(月白):달이 환하게 비침
*은한(銀漢):은하수 *삼경(三更):자정, 한밤중 *일지춘심(一枝春心): 한 가지 배꽃에 어린 봄의 정취
이조년은 충혜왕때 대제학으로 왕에게 충간하다가 벼슬을 내놓고 물러났다. 그런 만년의 심경(배꽃과 달과 두견새의 소리를 잘 조화시켜 임금님에 대한 애절함)을 이 시조를 통해 읊은 것으로 보인다.
묵동(墨洞)은 봉화산을 끼고 있는 여러 동 중의 하나, 서쪽으로는 중랑천에 연해 그 건너편에는 성북구 석관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묵동천을 경계로 노원구 공릉동과 인접해 있다. 또한 동쪽으로는 봉화산 능선을 따라 신내동과 구분되고 남쪽으로는 중화동이 있다. 봉화산 정상에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5호인 아차산 봉수대가 있다. 비록 해발 고도는 낮으나 주위에 높은 산들이 가로막지 않아서 탁 트인 지세로 남산의 목멱산 봉수와 양주의 한이산 봉수로 일망부제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여서 봉수대의 위치로는 적격이었나 보다. 1993년 서울 시립대부설 박물관의 고증을 통해 복원 계획을 수립하여 복원되었다. 중랑천(中浪川)은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산북리 불국산(佛國山) 남쪽 골짜기에서 그 첫 줄기를 마련한다. 이 내는 계속 남으로 흘러내려서 북한산과 북악산 사이의 물줄기인 쇠귀내(우이천)도 아우르고 수락산, 용마산, 아차산 서쪽 비탈의 물들을 몽땅 모아 흐르고는 서울 남동부 지역에 이르러서 서울 장안의 큰 물줄기인 청계천까지 아울러버린다. 이렇게 당당히 큰 몸집을 만들고 나서 한강으로 흘러든다. 중랑천의 하류에는 ‘중량교(中梁橋)’라는 옛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는 나무로 이어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 왕들이 능행차 때 이용한 다리였다. 서울에서 경기도 방면으로 나가는 나그네들의 교통 관문 역할도 했다. 1934년 일제시대에 콘크리트로 다리를 놓으면서 ‘중랑교(中浪橋)’로 달리하여 표기하여 놓았다. 그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중랑구홈페이지참조 *http://www.namelove.com/menu5_60junglang.htm
묵동 공소의 발족과 묵동 본당 설립
묵동은 조선말까지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 면에, 광복이후에는 경기도 양주군 구리 면에 속해 있다가 1963년 1월 상봉리, 중화리, 신내리와 함께 동대문구에 편입되었다. 다시 1988년 1월 1일 중랑구가 증설되어 중랑구로 분리되었다.
묵동 지역은 중화동, 공릉동과 함께 1970년 11월 설립된 상봉동 본당 소속이었다. 상봉동 본당의 계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명동(종현,1898년)→혜화동(백동,1927년)→제기동( 1942년)→청량리(1955년)→이문동(1962년)→상봉동(1970년)>
혜화동(백동) 본당은 중림동(약현) 본당과 명동 대성당에 이어 서울대교구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본당으로 1936년 당시 본당 교우수가 2,844명이었는데 그 중 14개 공소 1,444명의 신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혜화동 본당의 제 3대 주임 오기선 신부가 양주군의 ‘피울공소’를 1936년에 설립하였는데, 당시 이 공소에 다니던 신자들이 불암동, 태릉, 공릉동, 중화동, 퇴계원, 구리, 면목동, 상봉동과 양주군, 고양군 일부 지역에 거주하던 신자들이었다고 한다. ‘피울공소’는 일명 신내리 공소였는데 지금의 중랑구 신내동 지역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옹기를 굽던 곳이었다.<*서울대교구 교구총람 709쪽, 면목동 본당 25년사 39쪽 참고>.
당시 상봉동까지의 교통이 불편하고, 신흥주택 개발로 신자 수도 증가하자 김진영 프란치스코를 대표로한 70여명의 묵동 지역 신자들이 ‘74년 5월 6일 ,상봉동 본당 명 프란치스코 신부에게 묵동 공소 설치를 건의하였다. 명 신부는 성 골롬바노 외방 선교회 소속 신부로 개척 정신이 강해 성당 분리에도 적극적이었다. 명 신부는 마침 상봉동 본당에 와 있던 구 바드리시오 신부에게 묵동 지역의 신자 가정방문을 하게 하였다. 가정방문 결과, 묵동 지역은 공소보다는 성당을 설립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정춘화 엘리사벳의 인터뷰에서*
당시 본당 부지로는 세 군데가 물망에 올랐는데 첫 번째는 현재의 태릉고 자리 맞은편이며 두 번째는 당시 신자들이 가장 좋다고 여긴 중화동의 묵동 초등학교 근처의 터였고, 세 번째는 블록 공장이 있었던 현재의 본당 터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는 이곳을 선택하였다. 1974년 8월, 명신부는 성 골롬바노 외방 선교회의 자금 지원을 받아 동대문구 묵동 238-2번지의 대지 357평을 1,320만원에 구입하였다. 당시 성골롬바노 외방 선교회는 300평의 대지 매입금을 지원해주었고 본당 터는 357평을 다 구입해야만 하는 땅이라 명 신부는 그 나머지 대금을 본인의 자동차를 팔아 충당하였다고 한다. *강일영 요아킴의 인터뷰에서*
1974년 9월 1일, 임시 성당으로 강당(70평)을 신축 착공하였고, 9월 30일 상봉동 본당 묵동 공소가 발족되었다.
<사진>
1974년 9월 30일, 상봉동 본당 명 프란치스코 신부의 집전으로 공소 발족 기념 추석합동 미사가 노천에서 봉헌되었다. 당시 신자 수는 약 250명 정도였으며, 이때 첫 봉헌금은 39,000원이었다. 11월에 강당 신축이 완공되었고, 12월부터 주일에 상봉동 주임 명 신부의 집전으로 주일 미사가 2대 봉헌되었으며, 신자 참례수는 60~70명이었다.
묵동 공소 설립 직후부터 신자들은 신심 강화와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을 조직, ‘74년 10월 25일 ‘은총의 모후’쁘레시디움 (단장: 김진영 프란치스코)이 창단되었다. 당시 뚝방에는 각지에서 모여든 철거난민들이 가건물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그 중에 냉담자가 많아 레지오 단원들의 활동 대상이 되었다. 또한 이 냉담자들이 강당 신축공사 때에 블록을 나르는 등 많은 일을 해주었다고 한다.*강일영 요아킴의 인터뷰*
‘75년 8월13일에는 ’복되신 모후‘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고, 이 레지오 단원들의 전입 신자 및 냉담자 가정 방문 등 적극적인 전교활동으로 불과 1년 만에 신자 수가 720명에 이르게 되었다. 마침내 서울 대교구는 1975년 9월 8일 묵동 본당 설립을 승인하였다. 당시 상봉동 본당에서 이관된 관할 구역은 묵동, 중화동, 공릉동, 불암동, 양주군 별내면 일부였으며, 신자수는 350세대 890명(남 379명,여 511명)이었다.
1975년 9월 8일에 설립된 묵동 본당은 1986년까지 12년 동안 성 골롬바노 외방 선교회 소속의 선교사들이 사목을 맡았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는 중국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아일랜드의 에드워드 갈빈(Edward Galvin) 신부와 존 블로윅(John Blowick)신부에 의해 1918년 창설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33년 6월 교황청으로부터 전라남도에서 일할 것을 제의받고 10월 29일 10명의 회원이 최초로 파견되었다. 제주도와 강원도까지 두루 활동하였으며 일제시대 때는 강제 추방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히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6.25전쟁 때는 공산군에 체포되어 서울과 평양을 거쳐 중강진까지 열흘 동안 밤낮없이 눈길을 걸은 ‘죽음의 행진’에 끌려간 신부들도 있었다. 전쟁 직후 기아와 질병이 가장 큰 문제였으므로 교회는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는 구호센터의 역할도 하였다. 1953년 5월, 목포 산정동 주임 원요한 신부가 ‘레지오 마리애’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하여 전국 본당에 뿌리내리게 하였다. 1970년대에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한 사목활동이 시작되었으며 1978년 무렵에는 서울에만 25개의 본당을 개척하게 되었다. 성 골롬반회가 지향하는 활동은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현장에서 함께하는 것이며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한국지부 홈페이지 참고*
초대 주임 신부 천요한 신부 재임시기(1975.9.21-1979.12.29)
천신부의 부임과 사제관 신축
천요한(Smyth John) 신부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 아일랜드인으로 1962년 12월 21일 사제서품 후 바로
한국에 입국하여 돈암동 본부에서 1년간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춘천교구 묵호성당 보좌. 창평 성당주임, 홍천 성당보좌를 거쳐 묵동 본당에 부임하였다.
천신부가 부임했을 때는 본당이라고 해야 강당 한 채뿐. 사제관과 사무실이 없는 상태여서 제일 시급한 것이 사제관과 사무실의 신축이었다. 부임하자마 강당 건물 2층에 사제관(37평)과 부대 건물 (12평)을 총공사비 6,001,000원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천 신부는 돈암동 성 골롬반 지부에서 출퇴근을 하였으며, 착공 80일 만인 12월 15일 사제관의 완공으로 상주하여 본격적인 성당 업무에 들어갔다.
성모회 설립과 전교회장 임명
‘75년 11월 15일 본당 여교우들의 친목과 신심 생활 향상을 위한 ‘성모회’(회장;서 모니카)가 회원 15명으로 구성되어 비로소 신자들의 본당 봉사 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12월 1일, 상봉동 성당에서 전교회장으로 근무하던 남정자 스콜라스티카를 전교 회장으로 임명하였다. <상봉 25년사>에는 ‘초창기의 그 어려운 때 스콜라스티카 전교회장의 피나는 노력과 남다른 전교 수완으로 교세 확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적혀있다. 남 회장의 본당 부임으로 비로소 본당에서 첫 예비자 입교식을 갖게 되었다. 이 때의 입교 예비자는 28명이었다.
1975년 12월 24일 본당에서는 첫 영세식이 있었다. 28명이 영세를 받았다, 이들은 상봉동 본당 공소 시절부터 교리를 받고 있던 신자들로 남 회장의 본당 임명과 함께 본당에서 천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세례대장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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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사목 조직과 사제관 축성식
본당이 어느 정도 안정 되어 가자 천신부는 본당의 발전과 합리적인 사목 활동을 위하여 ‘76년 4월 5일 사목위원회를 다음과 같이 조직하여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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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주도웅 베드로
회원; 김영진 율리오, 김진영 방지거, 신영철 노렌조, 권혁찬 돈보스코, 선우 중호 시에온, 윤재후 스테파노,
강후진 알벨도, 이찬영 토마스, 홍상현 토마스, 신원식 요왕, 조철연 아오스딩, 이재근 시에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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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말부터 중화 2동과 성당 주변 구역 반상회가 시작이 되었고 본당 구역 반장회는 ‘76년 5월부터 매월 회합이 있었다.
1976년 7월 1일, 본당의 일반 사무를 위해 사무장 강일영 요아킴을 채용하였다.
1976년 5월 5일에는 본당에서의 첫 견진성사(142명)와 함께 강당 및 사제관 축성식이 김수환 추기경(스테파노) 집전으로 있었다.<사진>
성전 신축과정과 주보의 발간
1977년도에 들어서 신자 수는 1.800여명에 달하여 강당에서 주일 미사 5대로도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자 새 성전 신축이 절실하게 되었다. 우선 사목위원회는 ‘77년 5월 7일 제1차 모임을 갖고 본당 신축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를 신자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 주보를 발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77년 7월 3일 <묵동주보> 제1호를 창간하였다.
<사진>
주보 1호의 <사목회 소식>란에는 사목위원회의 회의 (6월 25일)에서 결정된 사항 두 가지를 게재하였다. ‘교회주보의 발간’과 ‘성당 신축 문제’였다. 첫 번째, 주보 발간의 목적은 교회와 교우 간의 거리를 좁히고 교회 내의 일을 교우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이며 주보 발간 비용은 사목위원들이 맡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 현재 사용 중인 건물은 사제관 및 강당으로 사용하기위한 건물이니 하루빨리 우리 손에 의한 성당이 건립되어야겠다는 것으로 건립자금은 약 2천만원의 자금이 소요될 예정이므로 교우들의 신립을 받기로 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묵동 주보’는 1979년 1월 7일 제81호에서 서울교구에서 발행하는 ‘ 서울 주보’ 제 38호와 통합되었다.
성전 신축 기금 모금운동
주보의 발행과 함께 성전 신축기금 모금운동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천신부가 앞장서서 제일 먼저 1,000,000원을 신립하였으며, 반장과 함께 가정 방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성당 입구에서 매주일 미사 때에 사목위원들이 신립금을 접수받았으며 매주 주보에는 신립자의 명단 및 액수가 실렸다. ‘77년 10월부터는 마지막 주에 신축기금 마련을 위한 2차 헌금을 봉헌하였다.
’77년 11월 20일 ‘묵동주보’에는 <성당 신축금 신립안내>가 실렸는데 ‘교우 여러분의 열렬한 소망과 정성으로 신축기금신립액은 이제 목표액의 절반을 넘어서게 되었으나 지금까지 신립세대는 불과 200세대에 지나지 않다’는 것과 ‘가급적 신립액을 일찍 내면 물가가 날로 인상되고 있으므로 미리 자재를 사두면 큰 도움이 되겠다’는 내용이었다.
‘77년 10월 16일에는 사목위원회가 다시 편성되었고 사목회 회칙도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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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장; 주도웅 베드로
총무위원; 김진영 프란치스코, 김대삼 프란치스코, 윤재후 스테파노
재무위원; 김영진 율리오, 장후진 알벨도, 홍상현 토마스, 이재근 시메온
운영위원; 신영철 라우렌시오. 조철현 아우구스티노, 이찬영 토마스아퀴나스, 권혁창 돈보스코
출판위원; 선우중호 시몬, 신원식 요왕 (이상 1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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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을 신축하기 앞서 신축 계획서 및 자금 조달 계획 등이 다음과 같이 주보(1978년 2월 19일)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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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증축 계획서와 신축 공사비 소요 예산 및 자원 조달 계획
<본당 증축 계획>
1.현황; 1층 70평(수용인원 350명) 2층 37평 계107평
2. 증축; 지하 88평, 1층 108평(수용인원 800명) 2층 18평 계214평
3. 공사 기간; 1978년 3월 20일 ~1978년 8월 30일 준공 예정
<신축 공사비 소용 예산>
기초 공사 1,500,000원
철근 및 콘크리트 15,000,000원
타일 및 테라조 공사 1,000,000원
벽돌 공사 5,500,000원
나무 공사 1,300,000원
방수 및 미장 공사 5,000,000원
창호 및 유리 공사 2,400,000원
도장 공사 1,300,000원
전기 설비 공사 2,000,000원
조경 및 울타리 공사 38,000,000원
공과잡비 및 예비비 3,261,000원
총 계 41,261,000원
<자원 조달 계획>
1. 신축 기금 신립 22,245,000원 ( 산출 근거 별첨 1)
1차 (78.2.12 현재) 16,245,000원
2차 (78.8.30 예상) 6,000,000원
2. 77년도 잉여 이월금 3,680,000원
3. 78.1~78.8 본당 결산 잔액 예상 5,336,000원 ( 산출 근거 별첨 2)
4. 외부 기채 10,000,000원( 상환 계획 별첨 3)
총 계 41,261,000원
* 산출 근거 참고 자료
1. 신축 기금 신립 현황 및 전망
총세대 552세대(실세대수)
78년 2월 이후 증가율 계획에서 제외
가. 1차 신립 현황 (78.2.12 현재)
신립세대;240세대 (43.4%)
신립 총액; 16,245,000원 (세대당 평균 67,680원)
나. 2차 신립 전망 (78.8.30예상)
미신립 세대;312세대
신립 예상 세대; 200세대 (64%)
신립 예상액; 6,000,000원( 세대당 평균 3,000원)
2. 78년도 매월 입금액 및 지출 잔액 예상
입금예상: 1,300,000원
78년 1월 기준 교무금
헌금, 미사 예물 및 기타 잡수입
지출 예상;630,000원( 본당 경상 운용액)
잔액 예상;670,000원( 신축금 전용 가용액)
3. 채무금 상환 계획
79년 1월 -12월 월 500,000원*12=6,000,000원
80년 1월-8월 월 500,000원*8=4,000,000원
계 10,000,000원
79년도 매월 운용비 잔액으로 상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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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비용을 절감하기위해 건축설계 및 감리는 사목위원 이찬영 토마스아퀴나스가, 현장 감독은 김진영 프란치스코가 맡았다.
‘78년 3월 19일 본당 신축 기공식이 오전 11시 미사 후에 있었다.
<사진>
‘78년 1월부터는 각 가정의 성화와 본당신축을 위해 매주 구역미사를 봉헌하여 구역예물을 신축금으로 사용하였으며 부활절에도 합동미사를 봉헌하여 그 예물 등을 신축금으로 충당하였다. 각 단체의 보조금은 물론 사제 생활비도 절약하여 신축금으로 운용하였다.
이후 ‘78년 5월 21일에는 다음과 같은 신축 공사 중간보고가 주보에 실렸다.
<약 40%의 진도를 보이고 있으며 공사 전 예산액은 41,261,000원이었으나 건축 자재 인상으로 45,000,000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5월 25일 현재 자금 확보 현황은 신립액 총 18,487,000원 중에 13,302.000원이 납입되었으며, 기타 성금으로 897,209원, 작년 및 금년 4월까지의 본당 운영 예산 절약금 7,599,665원이 입금되어 총 확보액은 21,768,874원이다.>
‘78년 6월 18일 주보에는 사목회 총회장 (주도웅 베드로)의 신축금 재 신립을 부탁하는 간곡한 글이 게재되자 1차 신축 신립금을 완납한 교우들이 또 다시 재 신립을 많이 하였으며 신축금을 위한 이차헌금도 실시하는 등 타 본당의 도움없이 자력으로 해보려는 노력은 성전이 지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주보성인을 ‘통고의 성모’로
1978년 9월 15일. 통고의 성모 축일을 맞아 본당의 주보성인을 ‘통고의 성모’로 정하였다.
<사진>
어렵게 완성한 성전과 낙성식
성당이 거의 다 지어질 무렵부터 새 성당의 내부 장식을 위해 각 가정 별로 제대, 감실, 세례대, 강론대, 14처상, 성모상, 음향장치, 외부 성모상과 십자가 등을 하나씩 기증받아 새 성당의 마무리를 착실히 해나갔다. 장궤틀 50개는 1개나 2개씩 신립을 받아 마련하였으며(개당 45,000원), 성당 안의 십자가는 최종태 요셉(당시 서울 미대 교수)이 제작하여 기증하였다.<사진>
마침내 ‘78년 10월 1일 새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새 성당 축성식은 견진 성사와 함께 1979년 4월 22일 오후 2시에 경갑룡 주교의 집전으로 손님 신부 19명과 수녀 6명, 그리고 타 본당의 내빈 들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 날 미사 후에는 준공식과 축하연이 있었는데, 유공자들에게는 감사패가 수여되었다.(김진영 프란치스코, 이찬영 토마스아퀴나스, 서울미대 교수-임영방 베드로, 조국정, 최종태 요셉, 김교만 아우구스티노)
이 축성식에서 천 신부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하였다.
“이곳 묵동에 본당이 들어선 지 만 4년 만에, 오늘 우리는 비로소 바라던 새 성전을 마련하고 많은 귀빈을 모신 가운데 우리의 새 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하게 되었으니 우리의 기쁨은 끝이 없습니다. 우선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날 강당을 임시 성전으로 사용하면서 새 성전이 이룩되기를 애타게 고대하고 온갖 정성과 희생을 다 바쳤습니다. 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갖은 난관과 막대한 공사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여러분들의 갖가지 희생과 노고에 대한 감사의 말씀은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같이 모든 것이 어려운 여건 하에 착공한지 불과 1년 만에 완전한 우리의 힘으로 이와 같이 훌륭한 성전을 주님께 봉헌하는 우리의 기쁨은 더욱 가슴 벅찬 자랑이며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이 닥쳐도 그것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희생정신과 단결력이 우리 안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본당의 신축 성업은 새로운 의의를 가진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우리의 이 정신을 바탕으로 본당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로 다짐하면서 기쁨과 감사의 기도를 정성껏 바칩시다.”
또한 신자들은 천 신부에게 다음과 같은 감사패를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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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는 본당 초대 주임 신부로서 본당 사목과 지역 주민의 신심 정화를 위하여 헌신 봉사하신 은공으로 오늘날 본당 신축이 이룩되었음을 감사를 드리오며 정성을 모아 본당 축성 기념으로 이패를 드립니다.
-1977.4.22 천주교 서울 대교구 묵동 교회 신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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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울주보’ 제54호에는 본당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 < 묵동 성당 낙성식>**************************************************************************************
지난 4월 22일 오후 2시, 경갑룡 주교님은 최근 완공된 묵동 성당을 축성하였다. 대지 356평에 연건평 295평으로 신축된 성당에는 강당과 주일학교 교사 및 사제관도 포함되어 있다. 묵동 성당은 1975년 9월, 본당 발족 이래 초대 주임 신부로 천요한 신부와 2,500명의 신자들이 하나가 되어 성당 건립은 물론 깊은 신앙심과 활기찬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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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식과 신심단체
전교회장이 임명된 후 교리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져 당시의 예비자 교리는 1단계(화, 금요일 오전 10시 30분 오후 8시)와 2단계(목, 오후8시), 일요일 오전 10시 그리고 노인반으로 나뉘어 실시되었으며, 중.고등 학생과 아동 교리는 토요일 5시에 있었고,‘77년 9월 25일부터는 직장다니는 아빠들을 위한 특별교리도 실시되었다.
당시 본당에서는 전교회장(남 스콜라스티카) 혼자 예비자 교리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교리교사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그런데 때마침 사무장이 그만두게 되자(‘78년 4월), 천신부는 묵호 본당 보좌로 있을 때 묵호 본당 사무장이었던 김형보 라우렌시오가 교리교사를 겸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등촌동 본당에 와 있던 그를 사무장으로 불러 들였다.* (김형보 라우렌시오의 인터뷰에서). ’78년 4월 1일 제2대 사무장으로 김형보 라우렌시오가 부임하자 본당과 거리가 먼 불암동 구역의 예비자 교리가 매주 수요일 저녁 8시에 그 구역에서 실시되었다.
본당에서의 첫 영세식은 1975년 12월 24일에 있었으며 28명이 영세를 받았다.(*세례대장 참고)
<사진>
‘76년 4월 부활절에는 11명이.’77년에 2번;‘78년에는 3번의 영세식이 있었다.
‘78년 4월 23일에는 110명이 견진성사를 받았다.
<사진>
성모회 활동과 신심회 발족
15명의 회원으로 발족된 성모회는 ‘77년도에는 50명의 회원으로 본당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였으며, 생필품을 팔아 본당 신축기금으로 100만원(’78년 8월 20일), 전자 올겐 구입시 60만원 등을 봉헌하였다. 매주 매월 첫 토요일을 성모회 미사로 봉헌, 월례회를 가졌으며 매주 금요일에는 성서공부 모임을 가졌다.
여교우들의 모임인 성모회가 창단된 지 3년 만에 기혼 남자 교우들의 모임인 ‘신심회’가 1978년 12월 17일 창단되었다.
11월 19일 평신도의 날 미사 후 남자 교우들의 친목회 첫 모임을 가졌는데 이날 80여명이 서로 따뜻한 인사를 나눔으로써 친목 및 신심 생활 향상, 그리고 본당 봉사를 위한 신심회를 조직하게 되었다.(회장; 권중석 다니엘, 총무; 고종일 그레고리오)
레지오 마리애와 꾸리아 창단
성 골롬반회의 원요한 신부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레지오 마리애를 소개하여 전국 본당에 뿌리내리게 된 것처럼 천신부도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컸기 때문에 본당에서도 잇따라 쁘레시디움이 창단 되었다. 묵동 공소 시절 ‘은총의 모후’와 ‘복되신 모후’가 창단된 이후 ‘77년 3월에 ‘평화의 모후’, ‘78년 3월에는 ‘인자하신 모후’, 4월에 ‘자비하신 모후’ 그리고 5월에는 청년 레지오 ‘샛별의 모후’가 창단되었으며 ‘79년 6월에는 남성만의 유일한 레지오 단체 ’사도의 모후‘가 창단되었다. 그리고 1979년 11월 25일 , 묵동 본당 만의 꾸리아 ’통고의 성모‘ (단장;김진영 프란치스코)가 창단되었다. 본당의 레지오 단원들의 적극적인 전교 활동으로 본당의 영세자가 꾸준히 증가하였고, 전입 신자와 냉담자 가정 방문에도 적극적이었다.
성가정회(C.F.M)
결혼한 부부들이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이해함으로써 보다 행복한 가정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이 첫째 목적으로 설립되어 천신부의 적극적인 후원 하에 ‘76년 5월 화랑팀(5가정), ’77년 10월에 묵동 팀, ‘79년 우정(4가정) 공릉(6가정) 2팀이 구성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청년단체
초등부와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회는 1976년 3월에 조직되어 주일학교 봉사를 하였으며,‘77년 7월 20일’가톨릭노동 청년회(J.O.C)가 설립되었다. 당시 본당 구역 내에는 무궁화 메리야스공장과 크라운 제과, 그리고 가발공장 등이 있어 이곳에 근무하던 근로자들이 가입하였다. 청년 레지오 ‘샛별’쁘레시디움은 청년들의 활발한 성당활동을 도모하기위해 김형보 라우렌시오 사무장을(당시 청년이 아니었지만) 단장으로하여 창단되었다. 청년 레지오에서는 청소년과 본당 교우들을 위하여 교우들로부터 책을 기증받아 본당 도서실을 마련하여 활동했다, 그리고 ‘79년 1월 청년성가대가 창단되어 청년단체가 활발하게 되었다.
울뜨레아
1977년 7월 선우시몬이 33차 남성 꾸르실료에, 홍 데레사가 16차 여성 꾸르실료 교육을 받았으며 78년 3월에는 권혁창 돈보스코가 꾸르실료 교육을 받아, 1979년 4월에 울뜨레아 단체가 창단되었다.
주일학교
‘77년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주로 성경 공부를 하였으며, ’78년 여름방학에는 중고등부학생들에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주제로 피정이 있었다.‘77년 10월 16일에는 상봉동 주일학교와 친선 체육대회가 열렸으며, 79년 7월 22일에는 어린이 주일 행사로 본당에서 동화, 웅변 및 장기 자랑, 영화상영 등이 있었다.(530명 참가)
‘77년부터 ’78년 6월까지 방학을 이용하여 신학교의 서 글리엘모가 도와주다가 강원도 횡성으로 가고, ‘78년 9월부터 성탄 때까지는 대신학교 신학원생 조규호 도마 부제가 중.고생들을 지도해주었다
피정과 9일 기도
1979년 3월 9일부터11일까지 변갑선 신부 지도로 본당 피정이,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본당 사목위원들의 주도로 사순절 피정이 있었다. 그리고 12월 7일부터 9일까지 박도식 신부의 지도로 ‘신앙생활’이라는 주제로 피정이 있었다.
그리스도교 일치 사무국은 ‘78년 1월15일부터 25일까지를 일치주간으로 설정하여 8가지 지향으로 본당에서 “나는 이방인이 아닙니다” 라는 주제로 9일 기도를 바치게 하였다. 또한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78년도를 ‘기도의 해’로 정하여 본당에서는 5월 10일부터 19일 까지 매일 오후 3시에 9일 기도를 하였다. ‘79년 1월에는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 안에 일치되기를 지향하는 9일 기도를 하였고 성탄 때에는 성탄 준비 9일 기도를 하였다,
묵동 성당 대지 확정
처음 성당 대지 구입시 356평이었던 것이 서울특별시에서 구획정리 사업에 따른 환지 확정 결과 5.4평이 증평되어 본당 대지는 362.4평이 되었다.(1978년 10월31일)
어머니 성가대와 자모회
‘77년도에 7월 주보에 보면 ’부인성가대‘ 모집과 주일학교 어머니들의 회합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들의 활동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천요한 신부의 전임
천요한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사제관을 신축하고 약 1년 반 후에는 사목위원들과 신자들과 일치가 되어 사제 생활비조차 아끼는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성전을 신축하였다. 모든 예를 정성들여 거행하고, 레지오 회합 때마다 참석하여 훈화를 해주었으며, 언제나 신자들을 이해하고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만 4년 3개월간 영세자 수는 794명, 견진자 수는 411명, 혼인성사는 112명이었으며 신자 수는 1300여명에서 3,183명으로 증가하였다. ‘79년 12월 27일 신부님의 영명축일과 함께 송별 잔치를 하였다.
<사진>
제2대 주임 신부 구 바드리시오(Patrick konway)신부의 재임시기(1980.1.2~1982.9 )
제2대 구 바드리시오 신부의 부임
천요한 신부의 전임과 동시에 성골롬반 외방 선교회에서는 ’80년 1월 2일 구 바드리시오 신부를 묵동 본당 제2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구바드리시오 신부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1966년 12월 21일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67년 11월에 한국에 입국하여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춘천 교구 강릉, 화천, 가평 주임을 거쳐 원주 교구 문막 성당 주임으로 재임하다가 본당에 부임하였다. 초대주임 신부인 천신부가 성당 신축이라는 큰 과업을 달성시키고 떠나자 구 신부는 그 뒤를 이어 본당의 내실을 다지기위해 노력하였다.
사목회 조직
먼저 구 신부는 활동조직의 강화를 위하여 ‘80년 2월 1일 사목위원을 확충하여 제 2대 사목위원을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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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회장;김영진 율리오
부회장 : 주도웅 베드로
사목위원;김진영 프란치스코, 장옥진 알벨도, 신영철 라우렌시오, 선우중호 시몬, 권혁창 돈보스코, 윤재후 스테파노.이찬영 토마스아퀴나스 (이상 재임)
권중석 다니엘, 김석숭 바오로, 김종훈 마태오, 우형식 엠마누엘, 고종일 그레고리오 (이상 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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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부임과 수녀원 축성
신자 수의 증가로 사목에 어려움이 따르자 수녀회를 물색하던 중, 신길동 살레시오회에서 본당의 제안을 받아들여 수녀를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당시 수녀원이 확보되지 못한 상태라 토요일, 일요일에만 출근하기로 하고 ‘80년 4월 12일 이아네스 수녀와 이마리아 도미니카 수녀를 파견하였다. 따라서 본당에서는 수녀원 확보가 시급해져 ’80년도 본당의 제1목표로 정하고 수녀원 확보를 위한 모금활동을 하였다. 먼저 사목회에서는 수녀원을 위한 주택(묵동 239-35)을 2,050만원에 구입하였다.(‘80년 9월 20일) 여러 차례 기금마련을 위해 애를 썼지만 자금문제로 수녀원 수리공사가 늦어져 ’81년 3월 15일에 부임한 이분다 원장수녀와 박 엘리사벳 전교 수녀가 잠시 교우의 집(박재강 그레고리오, 이강자 엘리사벳)에 거처하였다. 수녀원은 ‘81년 4월 20일에야 완성되어 견진성사가 있던 6월 7일, 김수환 추기경에 의해 축성되었다.
<사진>
사목방문
‘80년 3월 7일, 경갑룡 주교의 사목 방문이 있었다. 신자 배가 운동을 위하여 구역 반 별로 또는 각 조직 단체 별로 세부 활동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점, 계층 별로 깊이 있는 피정 계획을 추진한 점, 9일 기도로 신앙심 앙양을 위한 자체활동과 C,F,M (그리스도교 가정운동)의 활발한 활동 등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한편 본당에서는 주교의 방문기회에 보좌 신부의 파견과 수녀원 확보를 위한 자금 지원, 공릉동 지역의 성당 신설 등을 건의하였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성직자의 부족으로 보좌신부의 파견은 어려운 실정이니 성직자 양성에 노력하라는 것과 수녀원 확보 자금은 자체 해결할 것, 신설 본당은 시급하지 않은 것으로 교구 장기 계획으로 관심을 갖겠다는 것이었다.
피정과 본당 소풍
구 신부부임 첫 해인 80년도에 들어서 본당 피정이 두 차례 있었다.
먼저 3월 28일, 부녀 단체 (반장단, 레지오 단원, 성모회원)의 피정이 본당에서 “가정의 성소”라는 주제로 원주의 최기식 신부지도로 있었으며(130명 참가), 8월 31일에는 신심회 및 성모회 피정이 변갑선 신부의 지도로 3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6월 5일에는‘풍수원 성당’으로 본당 소풍을 갔다. 풍수원 성당의 성체 거동 예식인 특별예식에 참가하였다. 본당에서는 200명이 참가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용문사에 들러 주임신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사진>
주일학교 및 청소년 교육
‘80년 부활절 감사헌금으로 주일학교 책상과 의자를 구입하여 시설물을 보충하였으며 주일학교 교사를 재교육시켜 임명하는 한편 전교 수녀의 부임으로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분리하여 중학생은 토요일에, 고등학생은 주일날 교리와 미사를 같이할 수 있게 하였다.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피정이나 수련회를 가졌으며, 여름 방학에는 여름성경학교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다. 본당에서의 여름성경학교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으며, 특히 구 바드리시오 신부는 프로그램 진행에 같이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리고 특기할만한 것은 ’81년도에는 중학교 여름 성경학교의 목적을 ‘성소의 씨’를 심어 주려는데 두고 10일간 여러 수도단체들의 회원들을 초빙하여 강론을 듣고 묵상하며 피정을 하였다.
신용협동조합의 발족
1980년 8월 17일 신심회 겸 신용조합 발기인 총회가 열렸고, 지역사회의 복지향상을 위하여 신용 협동 조합이 ‘80년 8월 31일이 조직되었다. 임원진으로는 이사장에 주도웅 베드로, 그 밖에 부이사장1명과 이사5명, 감사 3명으로 구성되었다.
창립 후 2주동안 가입금과 출자금 합계가 555,500원이었으며 121명이 가입하였다.
유 가롤로 신부와 전례회조직
신자 수의 증가와 함께 본당의 업무도 늘어남에 따라 1980년 10월 5일 성골롬바노회 소속 유 호주 가롤로 신부가 본당을 도와주게 되었다. 유 신부는 호주태생으로(그래서 이름도 호주) 강원도에서 본당을 맡아오다가 교회전례를 공부하러 본국에 갔다가 다시 입국하였다. 유 신부는 ‘전례란 무엇인가’(미사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사목위원과 각 단체 간부들, 신심회회원들을 대상으로 전례교육을 하였다.
‘80년 11월 5일 본당에서는 전례의 생활화를 위해서 7명의 회원으로 전례회를 조직하였다. (회장;고종일 그레고리오)
사목협의회의 개편과 구역 조직의 재개편
1981년도 교구의 새로운 사목협의회기구 개편 지시에 따라 본당에서는 1980년 12월 14일 본당 평신도사도직단체 총회를 열고, 새로운 사목협의회를 조직하여 각 분과위원회별로 평신도사도직 활동을 강화하게 하였다. 1981년도 본당사목활동계획서가 발간되었으며 본당사목 협의회 기구와 임명된 위원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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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장 ; 김영진 율리오
부회장겸 재무위원;주도웅 베드로
총무위원 ; 윤재후스테파노
관리전문위원 ; 이찬영 토마스아퀴나스
전례분과위원장; 신영철 라우렌시오(전례연수회, 성가단, 복사단 지도)
선교분과위원장; 권중섭 다니엘(신심회,성모회,레지오꾸리아, 꾸르실료, 성가정회)
교육분과위원장; 남정자스콜라스티카(성소후원회,성령쇄신봉사회,예비자교리지도단)
청소년분과위원장; 장후진알벨도(J.O.C,청년단체연합회,중고생지도단, 주일학교교사단)
사회복지분과위원장 ;우형식엠마누엘(노인회, 연령회, 신용협동조합)
구역분과위원장 ;김진영프란치스코(중화1,2구역. 묵동1,2,3구역.공릉1,2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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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역 단위의 기초공동체의 조직을 강화하기위하여 ‘80년 11월 1일자로 본당의 모든 세대를 7구역 44개 반으로 재개편하고 구역장을 임명하였으며, 각 반장에게는 소속된 세대의 사본을 배부하여 현황 파악에 정확성을 기하도록 하였다.
사회복지분과위원회의 이웃돕기 운동 전개
매년 대림절동안 2차 헌금을 실시하여 본당 내 불우 이웃을 돕다가, ‘81년 2월 난치병 어린이 돕기 운동을 시작으로 사회복지분과위원회에서 성당 내 ’사랑의 모금함‘을 설치하여 불우 이웃돕기를 계속해나갔다. 본당 교우가 아닌 개천가에서 방없이 사는 사람에게 옥수수 튀기는 기계(20만원)를 지원하기도 했다.
성령세미나와 성령기도회
하느님 성령을 공경하고 성령의 풍성한 은총과 은사를 얻기 위한 제3차 성령세미나가 ‘80년 9월 30일부터 7주간 열렸으며, 성령세미나의 참가자 50여명이 ’80년 11월 23일 기도회를 갖기 시작하여 1981년 1월 11일 성령기도회 (회장;조철연아우구스티노)가 발족되었다.
본당 첫 사제 탄생
본당 창설 5년 만에 ‘81년 2월 24일 구요비 프란치스코 부제가 명동 대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첫 미사는 3월 1일 11시30분 본당에서 있었으며, 첫 미사 강론은 영적지도 신부인 이한택 신부가 하였다. 구요비 신부는 부제시절 본당에서주일학교 학생들과 청년단체의 피정지도를 맡아하였다. 사제 서품 후 3월 12일까지 중.고등부 학생 미사와 청년 미사를 봉헌하며 매 미사 후에는 그들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구 신부는 이문동 보좌 겸 노동 청소년을 위해 서울 교구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 북부지부 지도 신부로 임명되어 본당을 떠났다.
청년 단체 연합회 발족
‘81년도 본당의 연령 계층별 신자수는 청년층이 신자 수의 23.1%로 단연 으뜸이었다. 본당의 청년단체는 레지오와 성가대, J.O.C, 주일학교 교사단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80년도에 들어서 피정과 수련회 및 성령세미나 등을 자주 가짐으로써 1981년 4월 26일 청년연합회를 발족하게 되었다. 연합회 발족 이후 유 가롤로 신부의 지도로 청년신앙수련회(’81년 6월 6일)가 본당에서‘크리스챤 공동체의 전례’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7월 25일에는 ‘젊은이의 밤’을 개최하여 본당의 젊은이들이 모두 모여 우의를 돈독히 하였으며, 9월 30일 1박2일로 과천 영보 수녀원에서 합동 피정을 하는 등 더욱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안나 요아킴회(노인회)의 발족
일생을 자녀들을 위해 희생해온 노인들이 노년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60세 이상의 노인들로 ‘81년 6월 24일 첫 모임을 가짐으로써 ’안나 요아킴회‘가 발족되었다. 109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교구 노인회 지도 신부 박고빈 신부와 면목동 본당 노인대학 회장 (김해진 아우구스티노)이 동석하여 축하와 함께 노인회의 목적을 설명하였다. 회장으로는 김윤식 토마스가 선출되었다.
본당 관할 구역 재조정 및 공릉동 본당 신설)
‘81년 7월, 상계동 본당에 속하여 왔으나 지리적으로 교통이 불편한 중계동 일부 지역의 신자 46세대 127명을 본당으로 편입하였으며, 9월에는 공릉동 성당 설립부지 374평(공릉동 389-8)을 1억원을 성 골롬바노회에서 차입하여(5년부로 2,000만원씩 상환 조건) 매입함으로써 본당 설립 6년 만에 새 본당을 분가하게 되었다. ’82년 1월 1일을 기하여 공릉동321세대 984명과 중계동 46세대 127명이 공릉동 본당으로 이적되었다.
‘81년 11월 유가롤로 신부가 전례연구를 위해 본당을 떠나자 전 야고버 신부가 본당에 와 잠시 본당 일을 도와주다 ’82년 1월 공릉동 본당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행사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행사는 지구별 신앙대회(‘81년 6월 14일)와 교구 신앙대회(‘81년 10월 18일)로 나뉘어 개최되었다. 이 신앙대회의 목적은 조선 교구설정 150주년을 맞이하여 순교 선조들의 행적과 업적을 기리면서 우리 교회의 역사적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1984년 있을 선교 200주년 행사를 준비하기위한 것이었다. 지구별 신앙대회는 묵동 본당이 속한 제3지구 신앙대회로, 청량리 중학교에서 12개 본당이 모여 ’와서 보시오‘ 라는 표어로 개최되었다.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교구신앙대회는 ‘평화가 우리와 함께’ 라는 주제로 김수환 추기경과 주교들이 공동 집전하였으며 전국의 신자 80만 명이 참가하였다. 본당에서는 버스 35대를 대절하여 행사장에 참석하였다.
신심회의 특별교육
본당 신심회에서는 교구 150주년을 기념하고 순교자들의 얼을 되새기기 위하여 본당의 모든 남자 교우들을 위한 특별교육을 수립하여 실시하였다. ‘81년 9월 19일부터 10월3일까지 토요일마다 3차례 있었다.
교육의 내용은 9월 19일은 사목협의회 김영진 회장의 “한국 천주교회사 개요”, 9월 26일은 한국교회사 연구소장 최석우 신부의“순교자와 교회역사와 현대사회인”. 10월 3일은 서울대 이원순교수의“조선교구설정의 배경”으로 실시되었다. 이 교육이 끝난 다음 10월 9일은 천주교 발상지를 답사하고자 천진암으로 성지순례를 갔다.
예비자 모집
1980년 12월 31일, 본당의 신자수는 3,129명(남;1,286명.여;1,843명)으로 냉담자수는 209명(남;85명.여;124명)이며 거주 불명자는 309명이었다. ‘81년 말 신자수는 4,624명(남;1,920명.여;2,704명)이었으나 공릉동 새 본당으로 1,111명(남;482명.여629명) 3,513명(남;1,438명.여;2,075명)이 되었다. ’82년도에는 신자수는 3,968명(남1,694명. 여;2,274명)으로 묵동지역 주민의 2.40%였다.
구 신부는 ‘81년도 본당의 사목계획서에서 본당 사목목표의 제일 첫 번째로 “신자 증가운동의 전개”를 꼽았다. 따라서 예비자 입교와 예비자 교육에 주력하여 1년에 3차례씩 예비자 입교식을 가졌는데, 구 신부 부임 후 첫 입교식인 1월 6일에는 72명, 두 번 째는 84명, 세 번째는 180명으로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영세자수는‘80년도에 226명, ‘81년도에 538명,’82년도에 526명이었으며 견진성사는 ‘80년 6월 8일 93명, ’81년 6월 7일172명, ‘82년 6월 13일 227명이었다.
전 야고버신부의 은경축 미사
1981년 12월 21일에는 구 바드리치오 주임 신부의 서품 15주년과 전 야고버 신부 서품 25주년 은경축 미사가 함께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오후 6시에 있었으며, 강당에서 축하 잔치가 열렸다.
구 바드리시오 신부의 이임과 천바드리시오 신부 부임
구 바드리시오 신부는 새 성전 신축이후 본당의 숙원 사업이었던 ‘공릉동 본당’의 설립과 복음 전파에 많은 노력을 하여 영세자수를 증가시켰다. 또한 본당적인 차원에서 사회복지사업을 전개,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 신자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정이 많았으며 아일랜드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한국의 묵동 성당을 잊지 못해 진한 추억을 갖고 있다고 아일랜드에서 만나 본 구요비 신부가 전해왔다.
천 바드리시오 신부가 후임으로 ‘82년 9월 18일 부임하여,9월 26일 전 야고버 신부와 함께 송별미사를 집전하였다.
천 바드리시오 신부는 묵동 본당 초대 주임 천요한 신부의 형으로, 사제서품 후 곧바로 한국에 입국하여 20여 년간 산간 벽지 시골 본당에만 있다가 본당에 부임하여, 성 골롬바노회 방침에 따라 5개월 만인 2월 22일 본당을 떠났다.
제3대 주임 홍 야고버 신부 재임 시기(1983.2.19-87.2.19)
홍 야고버 신부 부임과 사목목표
홍 야고보 신부는 호주 태생으로 1955년 사제 서품을 받고 ‘56년 10월에 한국에 입국하여 1년간 한국어 공부를 마친 후 춘천 교구 홍천본당 보좌를 거쳐 원주 교구 원동, 단구동주임, 강릉 마리아 병원, 갈보리 병원에서 사목을 하고 춘천교구 간성, 가평본당 주임, 돈암동 본부 재정 담당, 서울교구 창동 본당 주임을 거쳐 묵동 본당에 오게 되었다.
홍 신부는 천 바드리시오 신부가 위임해놓은 사목회 (회장; 우형식 엠마누엘)를 그대로 이어받아 본당 내실화에 힘을 기울였다. 재임 기간 시 교구에서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는 큰 행사와 함께 그것을 준비하기위한 여러 행사가 열렸다. 홍 신부 재임 5년 동안의 본당 사목목표에서 반복되고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은 자기성화를 위한 ’성체조배’와, ‘복음의 전파’, ‘1인1단체가입’,‘사회복지사업’등을 들 수 있다.
성소후원회 활성화
‘82년 5월 9일, 성소후원회 지도 신부인 박 노현 신부가 본당에서 10시30분과 12시 미사에 강론을 하고 미사 후 후원신청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본당에 성소후원회가 조직되었다.(회장; 박인옥 마카리오) ’83년 2월 25일 성소후원회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소후원회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매달 마지막 주에 1번씩 후원회 미사를 봉헌, 매주 주보에 성소후원회 가입을 홍보한 결과 ‘83년 5월에는 64명이 정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성체 조배
‘83년 4월 10일부터 월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까지 성체를 성광에 넣어 제단 앞쪽에 모셔두고 구역 별로 정한 시간에 2,3명씩 조를 짜서 1시간씩 성체 앞에 조배를 하였다. 성체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성체 앞에 나와 감사드리며 잘못을 용서 청하고, 예수님의 힘과 은혜를 구하며 예수님과 가까이서 친밀하게 대화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자는 뜻에서 성체조배를 하였으며 이는 ’86년도 말까지 계속 실시되었다. 특히 ‘83년도는 한국순교복자들이 시성되기를 간구하며 “200주년 기도문”과 “복자 성월 기도문”,“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문”을 성체 조배 시에 기도하였다.
성령 세미나와 피정
‘83년 3월 29일 제8차 성령세미나를 시작으로 1년에 2번 7주간씩 열렸으며, ‘83년 3월에는 청년성령세미나도 7주간 열렸다. 특히 ’84년 중고생들의 여름성경학교는 영적 생활의 방법을 깊이 이해시키고 직접 체험토록하기위하여 경험 많은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2박3일 동안 성령세미나를 실시하였다.(100명 참가)
‘83년 4월 21일에는 본당에서 호주 태생의 성령 쇄신 지도자 부부(죠이 니꼴스, 로버트 니꼴스)피정이 시내 각 본당에서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또한 본당 성령기도회가 300회를 맞아 ‘86년 10월 24일 박용일 신부의 지도로 특별 기도와 치유의 밤을 가졌다.(500명 참석)
예비자 모집과 외짝 교우 특별 교리반 신설
복음 전파를 전 본당적 사업으로, 모든 신자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지시키며 계획적으로 운동을 전개하였다. ‘83년도에는 예비자 모집을 1월 23일, 4월 10일 , 6월 12일, 8월 14일, 10월 9일 ,12월 11일 등 6차례나 하였으며, ’84년부터 ‘86년까지는 5차례씩 있었다. 따라서 예비자 교리 교육도 월별 3단계로 나눠 실시하였고, 청년과 학생교리반도 별도로 운영되었다.
‘84년 6월 27일부터는 외짝 교우의 남편들이나 남자 직장인, 또 1주일에 한번 밖에 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특별 교리반을 신설, 주일 10시30분 미사 후와 저녁 6시 30분 미사 후에 있었다.
‘83년에는 견진성사교리 교육에 노인들을 위한 견진교리를 별도로 실시하였다.
교회 창설 200주년기념 시성식-시성을 위한 한국 순교자 현양 기도회
제3지구 신앙대회와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를 성공리에 마친 서울대교구는 본격적으로 200주년 행사준비를 하였다. 따라서 각 본당도 이에 맞추어 행사 준비를 해 나갔다. 교황 바오로 2세는 ‘83년 6월 9일 자로 ‘기적 심사 관면’을, 9월 27일에는 103위 복자의 시성을 허락하였다. 교황청에서는 한국 주교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103위 복자 시성식을 ’84년 한국에서 거행할 것을 공식 발표하였다.
본당에서는 ‘83년 4월 27일부터 5월 5일 까지 한국 순교 복자 유해 및 시성을 위한 9일 기도에 들어갔다.
5월 6일, 7일에는 교구 전체 차원에서 이루어진 “순교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 순회 기도회”에 따라 본당에서 유해를 모시고 기도회를 가졌다. 순회 기도회는 모두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먼저 제1부‘유해 모신 후 예절’에서는 유해 환영 (카톨릭 여학생회관에서 차량행렬로, 태릉 시장 앞 복개천 집합한 도보행렬 참가자와 합류하여 성당 도착),유해 안치. 개회 인사, 그리고 김대건 신부에 관하여 강론이 있었고, ‘유해 공경 전례’에서는 전신자의 유해 경배. 회개와 화해 예식, 본기도, 촛불점화, 그리고 미사와 성시간을 가졌다. 이어 제2부에서는 개인묵상 및 기도,특별 강론, 옥중 고별 서간 봉독, 철야기도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5월 7일 10시에 미사와 단체 묵상 및 기도가 있었고, 오후 4시에 미아 3동 본당으로 유해가 신자들이 도열한 가운데 성가 및 기도로 봉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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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주년 기념 신앙대회
김 수환 추기경은 1984년을 시작하면서 200주년을 맞아 ‘이땅에 빛을’ 염원한다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난하고 약한 이들, 고통 받고 있는 이들과 함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며. 우리 모두 새사람이 되어 ‘이 땅에 빛을’ 밝히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사도가 되기로 다짐하자”고 연두 교서에서 밝혔다. 2월에는 신앙대회 참가자 명단이 반장들을 통해 작성되었고, 4월에는 신앙대회 본당 위원(44명)이 구성되었으며, 그에 따른 교육도 실시되었다. 이때 본당에서는 황성순,김영진,주도웅,신계식,윤한섭,김종화,이숭중,이성용등 8명이 성체 분배 교육을 8주간 이수한 뒤 성체 분배권을 받았다. 안내 요원은 M.E 부부 5쌍(김수길 정현경 부부, 임원식 이해숙 부부, 우형식 홍지선 부부, 신성문 김추자 부부, 고종일 김정자 부부)이 맡았다. 이 밖에 영성체 안내원은 5명, 봉헌 요원은 11명, 안전 요원은 10명이었다.
4월 22일부터 200주년 9일 기도가 본당에서 있었다.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신앙 대회와 한국 순교 복자 103위 시성식이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이 땅에 빛을’ 이라는 주제아래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교황 바오로 2세는 한국 순교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정하상 바오로 등 103위를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본당에서는 버스 17대로 1190명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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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야외미사
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와 103위 시성식 등을 무사히 마친 후 본당에서 모든 신자들이 야외에서 주일 미사를 겸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자는 뜻에서 야외미사를 계획했다.
‘84년 6월10일 태릉 푸른 동산에서 본당 교우 1,000명이 참석하여 주일 미사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져 형제애를 굳게 다지는 하루였다. 준비와 봉사는 신심회와 청년회가 맡았으며 사목위원을 비롯하여 20여명이 경비를 찬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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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발족과 활동
1983년 5월 1일 불우한 이웃에 관심을 갖고 도움의 손길을 주고자 본당 차원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사업의 일환으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를 발족하였다. 본당에서는 5월 8일 명예회원 57명, 활동회원 10명으로 기부금, 회비, 사랑의 헌금 등 616,520원이 모여 불우한 형제 3명을 도와줌으로써 활동을 시작했다.(회장; 주도웅 베드로). ‘83년 5월부터 12월까지 극빈자 방문 97회, 환자 방문 6회, 냉담자 권유 3명, 상가 돌봄 3건, 가사 돌봄 99명, 병원 방문 4회 등의 활동을 했고, ’84년 2월에는 나환자촌을 방문하여 라디오 10대와 도서 450권을 전달했다. ’86년 5월 7일에는 성모회와 안나 요아킴회의 협조를 얻어 본당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하였다.(320여명 참석)
활동의 일환으로 喪家를 돌보는 연령회의 봉사자를 구성하였으며 회장에는 강일영 요아킴을 선출하였다.
매월 둘째 주일 10시 30분 미사를 빈첸시오회 미사로 봉헌, 자선사업을 위한 2차 헌금이 있었다.
‘86년 1월 16일, 본당 사회복지분과위원장 안재식 베드로가 빈첸시오회 중앙 이사회 제10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취임식이 있었다.
피정
‘83년과 ‘86년에 겨울방학 중 본당에서 중고생 피정이 있었으며 주일학교 교사는 ’86년 3월에 1박2일로 광주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피정을 하였다.
‘83년 2월 반장 및 어머니 피정이 본당에서, 11월에는 살레시오회관에서 있었다.
‘84년도에는 전신자 대상의 피정이 2번 있었다. 사순절 때 김보록 신부의 “기도와 영성 생활”이, 10월에는 모예수 신부와 박용일 신부의 지도로 피정이 있었다. ’85년 4월 오기선 신부의 지도로 “참회와 치유”, 12월에는 빈첸시오회 주관으로 양한모 토마스의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라는 주제로 피정이 있었다.
‘86년도에는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이 바오로 신부의 지도로 본당에서 대림절 1일 피정이 있었다.
본당 체육대회는 ’85년과 ‘86년에 소규모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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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동 본당 단독 꾸리아
‘80년 11월8일 묵동 ,공릉동, 석관동, 상계동으로 시작한 묵동 꾸리아가 ’83년 7월 석관동이 단독 꾸리아를 형성 분리 하였고, ‘84년 6월 24일은 상계동, 공릉동이 단독 꾸리로 분리 독립하여 묵동 본당 단독 꾸리아 ’통고의 성모‘ 가 창단되었다 .(단장; 이정욱 몬타노). 9월 30일 옥외행사가 태릉에서 있었다.
성가대 명칭 변경
‘85년 11월 10시30분 미사 어머니 성가대는 “글로리아 성가대”로, 12시 미사 장년 성가대는 “임마누엘 성가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86년 2월에 좀 더 효율적인 활동을 위하여 3개 성가단을 통합하여 그 성가단장에 임마누엘의 윤한섭 안셀모를 임명하였다. 86년 11월에는 임마누엘 성가대 남자 대원들이 피아노를 기증했다.
신심회가 “아버지 회”로 명칭 변경
‘86년 1월19일 첫 총회를 가지r 새로운 결심을 다지며 ‘아버지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신심회는 ‘83년에는 3월과 6월에 피정을 가졌으며.’84년 9월 23일에는 솔뫼성지로 성지 순례를, 10월 28일에는 장안 중학교에서 체육대회를 가졌다. ‘86년 4월 19일 1박2일로 한남동 성콘벤뚜알 피정의 집에서 피정을, 5월18일 12시 미사 후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모임을 가졌다. 11월 16일 12시 미사 후에는 ’한국 천주교회 박해의 역사‘라는 주제로 김영진 율리오의 강의를 들었다.
성당 확장을 위한 주택 매입
‘84년 11월 '마당 성모상'과 접한 주택(239-42)을 5,500만원에, '85년 11월에는 주택 (239-40호)을 3,300만원에 구입하였다. 성당 옆 개천이 복개되고 언젠가는 성당 정문을 복개된 도로 쪽으로 내기 위해서 성당 및 본당 건물들을 부분적으로 헐고 개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기회가 되는대로 성당과 이웃한 주택을 하나씩 매입하기 시작했다.. ‘86년에 239-127호와 6월 27일 239-41호, 12월 26일 239-36을 매입하였다. 주택 매입으로 부채가 많아지자 주택 매입 기부금을 신립받았다. 성모회가 100만원을 기부금으로 내놓았으며, 세상을 떠난 노인회원 정 로사 할머니 이름으로 가족들이 20만원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주일학교
초등부 어린이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교리실이 부족, 토요일 2시에는 1,2,3학년, 일요일에는 유치부, 4,5,6학년으로 나뉘어서 실시하였으며, 여름 성경학교 운영을 지원받기 위해 4주 동안 2차 헌금을 실시하였다.
d‘83년부터 초등부 여름성경학교도 1,2,3학년과 4,5,6학년을 나누어서 본당에서 실시하였다. ’84년 성모회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주일학교용 손가방 500개를 선물하였다.
‘84년 중고등부는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성령세미나를 개최하였으며 세미나 후 야외 수련대회를 2박 3일 동안 의정부 수련장에서 가졌다.
영세식과 견진 성사
‘83년도에는 5,8,10,12월에 445명이 세례성사를 받았으며, ’84년도에는 2,4,6,10,12월에 652명이, ‘85년에는 2,4,10,12월에 697명이, ‘86년에는 2,4,6,8,10,12월에 633명이세례성사를 받았다. 견진성사는 83년 5월 29일 경 갑룡 주교의 집전으로 236명, ‘84년 6월6일에는 경 갑룡 주교의 집전으로 156, ’85년 6월6일에는 김 수환 추기경 집전으로 172명, ‘86년 6월6일에는 김 옥균 주교의 집전으로 297명이 받았다.
연도경 낭송대회
‘84년 11월 18일 연령 성월을 맞이하여 각 반과 단체 별로 노인회와 구역분과 위원회 주최로 낭송대회가 강당에서 열렸다.
J.O.C 대화의 광장
‘84년 11월 25일에 가톨릭 노동청년회에서는 본당의 젊은 근로자들이 모여 ‘나의 하루’ 라는 주제로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여 노동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노동을 통해서 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며 자기 믿음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86년 4월 27일에는 선서식이 있었으며 ’86년 성탄 때에는 불우 이웃을 위해 찹쌀떡 판매를 하였다.
본당 10주년기념
‘85년 9월 15일 본당 주보 축일 (통고의 성모 마리아)를 맞이하여 C.F.M (행복한 가정 운동) 가정들이 공동으로 경비를 부담하여 본당 사진을 10주년 기념으로 나누어 주었으며, 신심회와 성모회에서는 미사 때 마다 떡 잔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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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전임
‘86년 2월 24일에는 곽 유스티나 수녀가 이임, 윤 스텔라 수녀가 취임하였으며 ’87년 2월 11일에는 윤 스텔라 수녀가 이임, 김 아가다 수녀가 부임했다.
이 분다 원장 수녀는 ‘81년 4월 20일 부임하여 6년간 헌신 봉사하다 2월 18일 이임했으며, 민 요안나 원장 수녀가 부임하였다.
홍 야고버 신부 이임
한국에서만 30년을 지낸 홍 야고버 신부는 2개월에 한번씩 예비자를 모집하여 신자 배가 운동에 힘썼다. “우리는 우리 주위와 멀리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사람들까지 생각하면서 사치 낭비가 없도록 절약하는 생활을 해야겠다”고 성탄메시지로 본당 신자들에게 한 말처럼 항상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많은 관심을 가졌다. 교우들은 홍 신부의 구멍난 운동화와 털털거리는 자전거, 낡은 가방을 기억했다. 2월 19일 3시 30분 성당 마당에서 교우들의 환성을 받으며 고국인 호주로 휴가차 떠났다.
제 4대 장홍선 요셉신부 재임 시절(1987,2-1992,10)
장홍선 요셉신부 부임
‘67년 12월 12일에 서품을 받고 종로, 아현동 본당의 보좌, 사회교정위원회 지도신부, 군종신부를 거쳐 길음동 주임,
대방동 보좌, 영등포 본당 주임, 대신학교처장으로 재직 중 본당에 부임하였다..
묵동 본당 설립 12년 만에 외방선교 관할에서 교구로 이관됨에 따라 한국인 첫 사제로 발령을 받아 2월 17일 오후 2시 서울 대교구관리 국장과 총회장 입회 하에 성 골롬반회로부터 인수인계 받아 2월 20일 부임하였다.
교우들과의 면담
장신부가 부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교우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신자들과 친숙해지기 위해 반별로 시간을 정해 신자들과 면담을 시작하였다. 가정의 대표교우 1명 이상씩 3월부터 화, 수, 목. 금요일 오전, 오후 반 별로 시간을 정하여 주보에 공고하였다. 그렇게 하루 5시간씩 할애해서 한 달 만에 면담을 끝냈다. 당시 묵동은 11구역 46개 반, 중화동은 8구역 27개 반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야외미사
부활 주일 장 신부는 주보에 “남을 헐뜯지 말며 상처를 입히지 말고 부활주일을 계기로 하여 우리 모두 참된 형제애로 서로 사랑하며 겸손하고 온후한 덕성을 쌓아 본당 발전에도 이바지하기 바란다”. 라고 부활 인사를 했다.
‘87년 5월 5일, 모든 신자가 한 형제임을 확인하고 즐거움을 나누기위한 야외미사의 행사를 가졌다. 500여명의 신자들이 가족과 함께 참여하였는데, 미사 후에 구역 및 단체별 성가 경연대회와 가족 게임 및 청년들의 사물놀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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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 반 미사
‘87년 5월 18일부터 성체 신비의 극치인 ’사랑의 실천‘을 행하고 더욱더 형제적 친교를 나누기위한 구역 반 미사를 시작하였다. 장 신부는 주보에 구역 반 미사를 안내하면서 다음과 같이 구역 미사의 참뜻을 알렸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서로 사랑하는 크리스찬 공동체에 의해 증거 됩니다. 이방인들이 초대 크리스챤 공동체에 대해 ‘보라 저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했듯이 우리 모두 주님 안에 하나 됩시다.”
화요일은 오전, 오후로 2구역씩, 수, 목, 금요일은 오후에 1구역씩, 미사를 봉헌하여 6월 16일 묵동 11구역을 마지막으로 구역미사를 모두 마쳤다.
가정방문
‘87년 9월 15일부터는 신자 가정의 신앙생활 실태와 그 밖의 상황을 파악하기위해 오전 오후로 2개 반씩 가정 방문을 시작하여 11월 17일 전신자의 가정 방문을 모두 마쳤다.
사목회 정기총회와 사목협의회 구성
장 신부는 부임 바로 전에 조직된 사목회를 그대로 두었다가 ‘87년 12월 27일 사목회 정기 총회를 개최하면서 천주교 묵동 교회 사목협의회 회칙을 제정하였고, 새로운 사목협의회를 구성하였다.
*사목협의회 임원 현황(88년-89년)********************************
총 회 장; 안재식 베드로
총 무; 정태성 베드로
부 총 무; 이승중빈첸시오, 전윤수 요셉
전례분과위원장; 강일영요아킴
선교분과위원장; 모경민 요셉
교육.청소년 분과위원장; 현중길 프란치스코
사회복지분과위원장; 박대현 아나타시오
구역분과위원장; 배지영 제올지아
< 부회장과 재정분과위원장은 공석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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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말 부임 첫해를 마감하는 총회보고서에서 장 신부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성체 안에 하나 됩시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요한 17,21)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께서 베풀어주신 노고와 희생에 감사드리며, 오늘 정기총회를 맞이하여 보다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롤 교회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보속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시면서 까지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절실한 숙제가 있다면 용서와 화해를 바탕으로 한 일치일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가 되려면 우선 자기를 비워야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한마음, 한 몸으로 묵동 교회가 이루어질 때, 이는 세상의 참 기쁨이요, 생명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자기를 버린 가운데 성체 안에서 하나 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참다운 신자 되도록 은혜를 간구하면서 각자의 가정과, 이웃과 일터, 또한 신앙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최선 을 다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정 성채조배
장 신부는 부임 첫 해를 교우들과의 친교와 신앙생활 파악에 힘을 쏟으면서 묵동 공동체가 성체 안에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되기를 절실히 바랐다. ‘88년도 새해 인사에서는 “철저하게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감으로써 교회, 가정 ,학교, 직장, 동네를 비 복음적 분위기에서 복음적인 분위기로 바꿔가야 참 신자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88년도 주교단 공동 사목교서는 ’89년 세계 성체 대회를 잘 치루기 위해 ‘성체 안에 하나 되어’로 정하여 몇 가지 실천사항을 권장하였는데 그중 한 가지는 성시간, 성체 조배를 다양하게 전개한다는 것이었다. 장 신부는 그에 맞추어 ‘88년 3월부터 가정 성체조배를 시작하였다. 모든 신자가 성체에 대한 신심을 높이고 깊게 하며 흠숭과 감사를 성체께 드리기 위해 구역 별로 한 가정에서 성체를 모시고 성체 조배를 하였다. ‘91년 3월까지 계속되었으며 매주 주보에 날짜. 구역 가정이 공고되었다.
제1회 성체대회 및 체육대회
세계성체대회의 준비 일환으로 본당 체육대회와 성체대회를 겸하기로 하였다.
‘88년 5월 29일, 제1회 성체대회 및 체육대회가 신묵초등학교 교정에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합시다‘ 라는 주제 하에 사목협의회 주최로 개최되었다. 삼위일체대축일미사를 시작으로 오전 경기와 오후 경기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중간 중간에 사물놀이가 있었다. 그리고 시상식이 끝난 다음에 성체강복이 있었다.
운동경기는 유치부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고 성모회에서는 음식물 코너를 마련하여 봉사하였다. 2,000여명의 본당 신자들이 한자리에 성체를 모시고 성체가 가르치는 사랑과 일치의 정신으로 모든 신자들이 한식구라는 다짐을 새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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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신부의 부임과 전교회장의 퇴임
‘80년도 주교단의 사목 방문 때 보좌신부 파견 요청을 건의한 이래, 8년 만에 첫 보좌신부가 부임하였다. 김세진 가브리엘 신부는 수유리 본당보좌로 재직하다가 ’88년 2월 26일 본당에 보좌신부로 부임하였다. 보좌 신부 부임 전에는 주일 9시 미사와 12시 미사를 대신학교의 윤 주병 베드로 신부가 도와주었다. 보좌 신부의 부임으로 평일 미사가 매일 2대씩 봉헌되었다.
‘75년 12월에 전교회장으로 부임한 남정자 스콜라스티카는 만 13년간 예비자 교리를 담당하였고 전교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본당 초창기에는 ‘81년도에 수녀가 부임할 때까지 전교수녀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여 본당에 공헌한 바가 컸으므로, ’88년 4월 1일 주일 2차 헌금으로 송별금을 마련, 감사패와 함께 증정했다.
장학금지급
장 신부는 특히 주일학교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두어 교회 앞날을 짊어질 청소년들을 격려하고 후원하기위해 주일학교 학생 중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며 가정이 어려운 학생을 선발하여 대학 입학생(2명)에게는 50만원씩, 고등학교 입학생(5명)에게는 1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하였다.(‘88년과 ’89년도만 실시)
엠마오교실 개원과 후원회 모집
장 신부는 본당 내 장애자 어린이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특별한 보호를 받고 또 그 어머니들의 아픈 마음과 노고를 위로해 주려는 뜻에서 한국교회에서는 최초로 본당 병설 조기 교육실을 ‘88년 3월 19 (성 요셉 대축일)일 특수 교사 1명과 장애아 6명의 어린이로 개원, 축성식을 가졌다. 이에 앞서 2월 21일 주보에 특수 교육을 전공한 신자 교사를 찾는 공고와 만4-6세 사이의 발달이 늦되는 아동( 정신박약 등) 중에서 특수 교육을 받고 싶은 아동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었다.
또한 신부는 서울 장애자 종합 복지관에서 장애의 조기 발견과 재활 서비스의 기회를 확대함과 동시에 장애 발생에 대한 예방과 계몽을 위한 순회 1차 무료 진료를 ‘88년 6월 13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본당에서 가졌다. 30명의 의료진으로 제주도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200여명이 진료를 받았다. 2차 진료는 14일 상봉동 본당에서 있었다.
그 후 엠마오 교실은 ‘90년 2월, 7명을 1회로 졸업시켜 일반 초등학교로 4명, 특수학교로 3명이 취학하였고, ‘90년 9월 당시에는 15명의 어린이들이 오전 오후 2반으로 나뉘어 교육받았다.
엠마오 교실에 대한 후원 모집은 ‘90년 9월 16일부터 시작되었는데 매월 셋째 주일에 후원자들을 위한 미사 봉헌과 후원회 모집이 있었다. 이후 매월 셋째 주 주보에는 엠마오후원 가입을 위한 공고가 실렸으며 ‘92년 1월 19일 주보에는 다음과 같은 공고가 실렸다.
- 지난 한 해 엠마오 교실의 어린이와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여러 은인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본 교실에서는 매년 신학기에 10명의 새 어린이들을 신입생으로 맞아들이고 있으나 지원자는 4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 이웃에 조기 교육을 필요로 하는 장애 어린이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최초로 시작한 본당 병설 장애 어린이 교육기관이니 이웃의 장애 어린이들을 위해 끊임없는 기도를 부탁드리며 후원사업에 동참합시다.
1992.1 주임신부 장홍선. 엠마오 교실 후원회장
장신부의 엠마오 교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는 본당을 이임하기까지 계속되었다.
신자 재교육과 피정
장 신부는 신자들에게 교리 지식과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영성 생활을 위한 방법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였다.
우선 사순절과 대림절의 특강과 피정, 묵상과 영화 감상이 있었으며, 해마다 본당 차원의 성지순례가 있었다.
‘87년 사순절 피정은“십자가 바라보라” 1일 피정이 있었고, 대림절에는 신앙 강좌가 4회 있었다.
1회는 주임 신부의‘구약에 나타난 메시아상’ 2회는 민 요안나 원장 수녀의‘대림절의 의미’ 3회는 사목 위원의‘대림절과 평신도’ 4회는 총회장의 ‘성탄과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로 강좌가 있었다.
‘87년 12월 5일 ’남자 교우의 대림절 봉쇄 피정‘ 이 꼰벤뚜알 성프란 치스코 수도회 피정의 집에서 있었다.
‘88년 사순절에는 사순절 묵상회가 강론과 영화 상영으로 토요일 저녁미사 후 5차례 있었다.
‘88년에는 9월부터 11월 까지 매 금요일 오후 7시에 신자들의 교리 지식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이 다음같이 있었다.(1,600명 참가)
9월 2일; 인간론 강사; 김영진 율리오
9월 9일; 종교론 강사;신계식 라파엘
9월 16일; 신론 강사;김미자
9월 23일; 구원론-성서의 개요. 이스라엘의 역사 강사; 현중길 프란치스
9월 30일; 그리스도론-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강사;김세진 가브리엘 보좌 신부
10월 7일; 그리스도론-그리스도의 제 사건 강사;김세진 가브리엘 보좌 신부
10월 14일 ;삼위일체 하느님-삼위의 하느님, 일체된 하느님 강사; 주도웅베드로
10월 21일; 마리아론-천주의 어머니 마리아,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강사; 이안젤라 수녀
10월 28일 ;교회론-교회의 본질과 사명, 교회사 개요 강사;김종화
11월 4일 ;성사론 강사; 김세진 신부
11월 11일 ;성체성사 강사;김세진 신부
11월 18일 ;종말론 강사;김세진 신부
11월 25일; 영성론-전례와 기도,그리스도인의 생활 강사;남정자 스콜라스티카
‘89년 대림절 신앙강좌는 다음과 같다.
12월 6일 한국 외방 선교회 신부님의 남쪽 미개 지역에서의 선교 체험과 신앙인의 자세 강사;한국 외방선교회 김동기 미카엘 신부
12월 13일 청소년 교육과 신앙의 필요성 강사;살레시오 수도회 모요셉 신부
12월 20일 하느님과의 화해(고백성사) 강사; 성바오로 수도회 유광수 신부
‘90년 대림절 특별강론은 다음과 같다.
12월 5일 대림의 의의 강사; 김영진 율리오
12월 12일 회개와 기쁨 강사; 이수산나 원장 수녀
12월 19일 가정공동체 강사; 윤재한 보니파시오 보좌 신부
‘91년 사순절 특별 신앙 강좌는 다음과 같다.
2월 20일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강사; 가톨릭 교리 신학원 선교사
2월 27일 오늘 우리에게 있어 사순절은 무엇인가?
3월 6일 사순절과 회개
3월 13일 우리의 희망인 부활
판공 찰고지
‘88년부터 성탄 판공 찰고지가 배부되었고 ’89년 사순과 성탄 판공 찰고지 때는 채점을 하여 미사 때에 성적우수자 시상식이 있었다.
영세자 재교육<신비교육>
‘89년 2월, 4월, 6월에 영세한 신자들을 위한 재교육이 6월 24일 10시 미사 후에 있었다.
‘91년도에도 부활, 성탄 때에 영세받은 신자들을 위해 신비교육을 하였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빠스카 신비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복음 묵상, 영성체, 애덕의 실천을 통해 그 신비를 깊이 더 이해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면서 진보해 나갈 수 있도록 재교육을 했다.
지상교리 강좌와 이동 도서실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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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교리 강좌는 신자 재교육의 일환으로 ‘89년 7월 월례사목회의 결정에 따라 교육 분과 위원회가 주관하여 ’89년 8월부터 주보에 연재했다. 8월 한 달은 성모마리아에 대해서, 9월은 성체성사와 성체 성혈, 10월 15일은 영성체에 대해서 연재되고 중단되었다.
장 신부의 특별한 관심과 후원으로 꾸준하게 전개되었던 것은 이동 도서실의 운영이었다. ‘89년 8월에 300여권의 신앙 서적을 마련, ’통고의 성모‘와 ’바다의 별‘ 꾸리아에서 도서 대출부를 두어 매주 일요일 성당 마당에서 9시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도서 대출을 해주었다. 주보에 매주 이동 도서실 안내가 홍보되었으며 책의 종류는 교리 해설. 기도하는 방법, 신앙인의 몸가짐, 성인들의 일대기, 하느님께 사랑받는 길, 순교자들의 신앙 등 300여 종류의 책과,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천주교와 개신교 등의 묵상용 테이프도 있었다. 6개월 동안 2,500회 대여되었다. 개설 1년 후는 평균 한주에 72권 씩 대여되었으며. 개설 2년 후는 한주에 50-70권이 대출되었고 책 보유 권수는 600여권이었다. ’91년 7월 28일, 10시30분 미사 후에 2주년 기념으로 제일 많이 대출한 교우 3명을 선정하여 시상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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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위한 준비
1986년 3월 14일, 김수환 추기경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인준을 받아 ‘89년의 세계 성체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1881년 프랑스에서 제1회가 시작된 후 108년 만에 제 44차 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게 됨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라는 주제로 성체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정신을 실천하기위한 목적으로 한마음 한몸 운동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본당에서도 제 44차 세계 성체대회를 위한 한마음 한몸 운동 묵동 본당 조직이 구성되어 ‘89년 1월 22일 주일 10시 30분 미사 중에 임명장 수여식이 있었다. ’89년도 사목협의회는 부회장에 이 승중 빈첸시오가 재정분과위원장에 배 오열 안드레아가 충원되는 것으로 ‘88년도 사목위원들이 그대로 유임되면서 한마음 한몸 운동 요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그러나 본부장인 총회장 안 재식 베드로가 89년 4월 9일 개인 사정에 의해 총회장을 사임함에 따라 본부장에 주도웅 베드로를 선임하여 그 직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89년 2월 10일부터 매주 금요일에 한마음 한몸 운동 요원 교육을 본당의 모든 단체 임원들에게 5차례 실시하였다.
이에 앞서 1988년 10월 16일 대전에서 열린 ‘한국 성체 대회’는 본당 신자 200명이 참가하였다.
제2회 성체대회 및 체육대회
‘89년 4월 30일 ’주님의 말씀 따라 밥을 나누자‘라는 주제아래 제2회 성체대회 및 체육대회를 신묵초등학교 교정에서 개최하였다. 장 신부는 체육대회 프로그램에 실린 인사말에서 “이대회가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찬미하기위해 모인 것이며 세계성체대회를 앞두고 성체의 참뜻을 생각하며 성체 안에 하나 됨을 느끼는 즐거운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기도드리자.”고 말했다. ’부활제6주일미사‘를 시작으로 오전 오후로 나뉘어 운동경기가 진행되었다. 이 날의 경기 중에는 중.고주일학교 학생들이 참가한 “놋다리밟기”가 있었다. 여러 모습으로 나뉘어 있는 우리들이 ’하나로 모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체 안에 하나 됨을 느끼게 하는 경기였다. 이 날은 모든 대회를 마치고 오후 5시에 성체 거동 행렬 예식을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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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의 날
‘89년 6월 14일, 한마음 한몸 운동 본부에서 강사를 초빙하여 한마음 한몸 운동의 뜻과 실제 실천 내용에 대한 교육을 구역반장들에게 실시하였다.
‘89년 6월 25일 본당에서 제 1차 헌혈 운동을 실시하였다. 대한 적십자사에서 헌혈차가 나와 강당에서 오전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127명이 헌혈을 하였다.(신청자는 170명) 또한 이날 한마음 운동 본부는 헌미, 장기 기증, 입양 신청도 받았다.
서울교구에서는 ‘89년 7월 17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김 수환 추기경과 대한 적십자사 총재 대회장으로 한마음 한몸 운동 헌혈 잔치를 하였다. 20,000명이 참여한 가운데 5,000명이 헌혈을 하였으며, 본당에서는 임원 및 봉사자등 120명이 참석하였으며, 50명이 헌혈을 하였다. 그리고 본당에서는 헌미헌금 1.000,000원을 본부로 보냈다.
9일기도
서울대교구는 ‘89년 5월6일부터 성령 강림 주일까지 우리나라의 정치적 어려움을 함께 걱정하며 우리 사회의 평화와 성체 대회 준비를 위해 특별 9일 기도를 바치기로 결정, 본당에서는 미사 후에 성령 강림 기도문, 묵주기도 1단, 성체 대회 기도문 순으로 기도를 바쳤다.
제44차 세계성체 대회
세계성체대회는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가톨릭 최대 국제 행사로 성체를 찬미하는 신앙대회이며 대회 기간(1주일) 동안 다채로운 종교 문화 행사가 거행되었다 .필리핀(1937년도), 인도(1964년도)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3번째였다.
‘89년 10월 4일부터 8일까지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라는 주제로 개최된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는 4일은 ‘평화의 날’, 5일은 ‘감사의 날’, 6일은 ‘회개의 날’, 7일은 ‘일치의 날’ 8일은 ‘축제의 날’로 정하여 갖가지 행사가 진행되었다. 본당에서는 5일 오후 3시 개회 미사(체조 경기장)에 55명이, 10월 6일 참예 예절과 철야기도(잠실 체육관)에 80명이, 7일 평화 통일 기념 미사(판문점)에 10명이, 그리고 8일 오전 10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100개국 10,000명의 교회 대표가 참석한 세계 성체 대회 장엄 미사(여의도 광장)에 1,500명이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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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도 본당 사목목표와 사목협의회 구성
장 신부는 ‘90년도에 들어서 “그동안 성체 대회 준비로서 전개해 왔던 다양한 교육과 전례와 생활 운동이 보다 새롭고 보다 깊이 신자들 하나하나 안에서 확실하게 꽃 피우고 열매 맺게 특별한 노력을 바쳐야 하겠다’ 면서 본당 사목 목표를
1.모든 신자들이 형제적 사랑으로 일치, 2.한마음 한몸 운동의 지속적인 전개, 3.복음을 말과 모범으로 증거하는 생활, 4. 본당 재산을 축적하도록 노력하는 해로 정하여 협조를 부탁했다. ‘90년도를 조용한 전진의 해로 전교라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업에 치중하는 가운데 본당 연례행사로 개최되던 전 신자 체육대회와 전 신자 성지 순례를 하지 않았다. 각 단체에서도 ’90년도 사업은 조촐하게 영적 향상에 도움되는 행사로 본당 보조를 ‘89년도 수준을 넘지 않도록 부탁했다.
총 회 장;박대현 아나타시오
부 회 장;강일영요아킴
총 무;현중길 프란치스코
전례분과위원장; 한영기 바오로
선교분과위원장; 김일수 스테파노
교육분과위원장;모경민 요셉
청소년분과위원장;정태성 베드로
사회복지분과위원장;손용진 토마스모어
구역분과위원장;김신자 베로니카
재정분과위원장;배오열 안드레아
관리분과위원장;김현섭 도시테오
성체 대회이후의 한마음 한몸 운동과 제3회 체육대회
성체 대회 다음해인 ‘90년도에도 ‘한마음 한몸 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간다’ 는 본당 사목 목표아래 4월 28일 임원을 새로 임명하였다.
사목협의회 총회장 박 대현 아나타시를 본부장으로, 부회장인 강 일영 요아킴이 부본부장으로, 추진위 총무에는 현 중길 프란치스코, 헌미(헌금) 부장에는 김 신자 베로니카, 입양결연부장에는 한 영기 바오로, 헌혈장기 기증부 부장에는 손 용진 토마스모어, 생활 실천부 부장에는 김 일수 스테파노. 홍보부부장에는 모 경민 요셉, 교육 부장에는 정 태성 베드로, 연구 조사부 부장에는 양 동성 요셉, 재무부부장에는 배 오열 안드레아가 맡았다.
‘90년 9월 순교자 성월을 헌미 헌금의 달로 정하여 ’생명의 식탁을 이웃과 함께‘ 라는 구호로 매주 주보를 통하여 적극적인 홍보를 했다. 모금은 반장을 통하여 접수되어 매달 첫 주일 10시 30분 미사 후에 봉헌식이 있었으며, 이 헌금은 전액 교구 한마음 한몸 운동 본부로 보내져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되었다.
9월은 881,050원이 10월 은703,000원이 11월은503,500원이 12월은 571,340원이 모금되었다.
본당 헌혈의 날도 계속 이어져 2차는 ‘90년 11월 4일 주일에, 3차는 ’91년 11월 3일에 있었는데 이날은 송 영준 비오 보좌 신부와 김 민자 마리아 수녀를 포함하여 67명이 헌혈을 하였다.
‘91년 5월 12일, 본당의 큰 행사인 전 신자 체육대회는 제3회 ‘한마음 한몸’운동 체육대회로 이름을 붙이고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이들’이란 주제로 중랑 중학교 교정에서 개최되었다. 장 신부는 개회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올해는 우리들의 삶이 참되이 복음화될 수 있도록 우리의 길이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우리 자신의 복
음화 해‘로서, 성찬의 삶을 구체화하고 생활화하기 위한 더 많은 기도와 희생과 봉사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 자신과 교회가 진정으로 복음화되어 사회 속에 누룩의 구실을 다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더욱 노력하여야 하겠다.“
이 날의 일정은 주의 승천 대축일 미사 후 운동 경기 및 사물놀이와 전교우가 참여한 경품 추첨이 있었으며, 시상 후 성체거동 예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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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자 모집
‘90년도에 들어서 2월의 첫 예비자 등록은 33명이었다. 2개월마다 하던 예비자 모집을 4,6월 쉬고 7월에 대 모집을 하기로 하고 1사람당 1명 이상 전교시키기 운동을 벌여 매주 공고하였으나 7월 15일 56명이 등록하였다.
또한 당시 행방불명자를 교적에서 정리, ‘89년 말의 신자수가 7,933명에서 ’90년 말 6,522명으로 줄었다. 대인 세례자수도 312명에서 255명으로 57명이 감소한 상태였다.
‘91년도에는 예비자 모집이 4월 7일 (127명 등록) 한번 있었고, 6월에 어린이 예비자 교리반을 신설하였다, 어린이 예비자 교리반은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이와 유아세례를 받고 교리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외짝교우 통신 교리반을 6월 8월까지 모집하여 통신교리 후 11월 7일부터 ‘92년 1월9일 까지 10주간 주임신부가 교리지도를 하였다.
통고의 성모상 축성식
본당 설립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86년도에 영세한 신자들의 모임인 ’송백회‘에서 “통고의 성모상”을 기증하여 ’90년 9월 15일 축성식을 하였다. 이 성모상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해온 작품으로 받침대만 국내에서 제작하여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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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셉 아버지회의 활동
신심회가 아버지회로 명칭을 바꾸면서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87년 1월 18일 정기 총회를 열어 임원을 선출(회장;서종호 모세)했고, 2월 21일부터 22일까지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1박 2일로 피정을 했다. 해마다 봄철이면 성당 마당에 꽃밭을 만들기 위해 꽃 심기 모금 활동을 벌여 꽃을 가꾸었으며 의자를 설치하였다. ’88년도에는 성모상 이전 및 꽃나무 심기 운동 모금을 한 달간 벌여 회원들이 성모상을 재 건립하고 주변의 조경 공사를 하여 4월 17일 12시 미사 후 성모상 앞에서 축성식을 가졌다.
< 모금액 및 물건 판매 수익금은 2,005,000원, 성모상 이전 및 조경공사비 1,892,000원과 기타경비로 113,000원이 소요되었다.>
‘89년 8월과 ’90년 7월에는 꾸리아와 합동으로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피정을 했으며, ‘90년부터 해마다 대보름 윷놀이 대회를 열었다. ‘92년 2월 23일에는 전 신자를 대상으로 성 요셉회가 주최, 임마누엘 성가대가 음식 코너를 마련하여 윷놀이 대회를 가졌다. 이날의 수익금 458,320원은 자모회와 빈첸시오회에서 어린이들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했다.
‘87년 5월 24일과 ’91년 10월 3일에는 친선테니스대회를, ‘92년 6월 6일에는 낚시 대회를 가졌다. ’92년 7월 5일에는 성당 마당 하수도 공사도 하는 등 노력봉사를 많이 하였으며 해마다 여름철에는 야유회를 다녀오는 등 친목 도모와 신심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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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
본당 성가 단원들의 음악적 지식 향상과 형제적 유대감 및 영성 강화를 목적으로 ’87년 7월 25일부터 8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8시에 하계 성가학교를 개설하여 단원들을 교육하였다. ’89년 12월 24일에는 성가대 합동으로 성탄 축하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글로리아 성가대는 ‘91년 3월 23일 오후 7시에서 24일 오전 1시까지 중림동 본당 주임 차인현 알로이시오(제44차 세계성체대회‘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작곡자이며 종교음악 연구소 소장)신부 지도로 피정을 가졌으며 성탄 때는 매년 정기연주회를 개최했다.
‘92년 5월, 임마누엘 성가대에서 성가 연습용 피아노를 기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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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단체의 활동
청년 단체는 매년 대림절 기간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본당에서 일일찻집을 열었고, ‘87년 연말 일일찻집 이 익금 432,680원은 결핵환자촌인 ’시몬의 집‘ 에 전달하였다. ‘88년 1월에는 연합회 피정이 신월동 살레시오회관에서, 11월 26일에는 본당 강당에서 청년단체의 철야 피정이 있었다. ’89년 사순절에는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였으며, 6월 5일에는 본당 강당에서 ’그리스도의 실천적 사랑을 나누자‘라는 주제로 청년 철야 피정을 하였다.
‘90년 2월에는 신규회원 수련회를. 7월 17일에는 젊은이 하루 피정을, 10월 28일에는 실로암 성가대가 성음악의 시간을 가졌다.
‘91년 5월 20일부터 21일까지는 ’나로부터 일어나 젊음의 교회로‘ 주제로 한남동 성프란치스코 피정의 집에서 피정을 가졌고 7월17일부터 18일까지는 하계 수련회를, 10월 26일에는 ’작은 문화제‘를 열어 본당 내 청년 단체들의 연극, 꽁트. 합창 등이 있었다. ‘91년 11월 23일 오후 8시에 실로암 성가대 정기 발표회 ’상향 칸타타‘가 본당에서 있었다.
‘92년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청년 하기 수련회가 산정호수에서 있었다.
이웃 성당 돕기와 본당의 불우이웃돕기
‘88년 4월24일은 천 바드리시오 신부가 주임으로 있는 인천교구 양곡성당신축기금을 위해 모금이 있었다.
2차 헌금은 1,134,940원과 기부금 신립 5,640,450원으로 합계 6,775,300원이 신립되었다.
‘90년 6월의 서산 석림 본당 성전 신축 돕기는 2차헌금 2,650,170원과 기부금 300,000원 및 신립금 4,380,170원이 모금되었다.
‘92년 6월 28일 청주교구 사직 본당 신축 돕기는 2차헌금 1,748,000 과 신립금6,774,000원 및 현금접수1,333,000원으로 합계 9,855,000원이 모금되었고 이날 토산품 판매액은 3,565,500원이었다.
‘89년 8월 15일 성모승천 축일에 익명의 교우가 모범 학생 5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며, 또 ’89년 성모승천 대축일에 본당에서 몇 주일 실시한 불우 이웃돕기헌금으로 불우이웃 26명에게 1,550,000원을 나누어 주었다. 또한 본당에서는 ‘90년에 매월 첫 주일을 불우 이웃을 위한 헌금의 날로 정하여 1월부터 8월까지 3,966,640원이 모금되어 여기에 본당 예산을 합하여 불우학생 장학금으로 3.530,000원, 장애자 돕기 기금으로 1,800,000원, 불우이웃 생활 보조 및 질병 치료비로 6,360,000원이 쓰였다.(총합계;11,835,000원)
교리교사
1988년 11월 28일, 서울대교구의 평신도 교리교사 양성기관인 신앙학교를 안재식 베드로와 현중길 프란치스코가 2년 과정을 졸업하였으며, 김종훈 마태오가 1년 과정을 수료하였다.(제7기)12월 4일 10시30분 미사 후에 수여식이 있었다. 1989년도에는 조연신 에리사벳과 이미영 비비안나가 주일학교 교사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전례
‘87년 2월부터 주일 독서 및 신자들의 기도를 구역별로 정하여 실시하였으며. ’88년 10월부터는 한 달분 주일 미사 독서가 구역별로 배정되어 주보에 공고되기 시작하였다.
성지순례
1987년 10월 1일은 버스 20대로 해미성지로, ‘88년 10월 9일은 버스 21대로 배론 성지로 다녀왔다. 한국 순교 성인들의 공덕을 현양하고 순교자들의 신앙심과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기 위해 전신자 성지 순례를 마련, 장 신부는 교우들에게 관광이 아닌 신심행사로서의 성지 순례가 되도록 부탁했다.
본당 재해대책기구 설립
‘88년 6월에는 본당 재해 대책 기구가 설립되었다. 신자들이 장마철 물난리나 뜻밖의 재난을 당했을 때를 대비하여 비상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본당 신부-보좌신부-원장 수녀-본당 사무장-총회장 안재식-위원 강일영
관리부 김완수-함동호-정인근
동원부 1조 문기선-주성원-배오열-김현섭-황병운-이상대
2조 이흥갑-박준일-오명길-양동성-길정수-민상근
의료부 박대현-손용진-송강범-이승우
예비조 현중길-이상호-이창섭-유병을
사목방문
1988년 7월 6일과 ‘91년 9월 25일에 두 차례 사목 방문이 있었다.
‘88년 7월은 김옥균 주교와 함께 관리국장 반신언 신부, 사목국장 송광섭 신부, 교육국장 나원균 신부가 동행하였다.
사목국장은 구역별 가정미사, 가정성체현시와 영세자가 많고, 교리시간이 많이 배정된 것과 레지오 마리애 단체가 많은 것 그리고 기타 단체가 활성화되고 있음을 높이 평가 했으나 반장 연수 참석이 저조함을 개선점으로 지적했다.
교육국장은 주일학교 현황 작성이 자세하고 초등부와 중학생 출석율이 높은 점과 교사들의 열의를 높이 평가했으나 고등학생 주일학교 출석율이 저조함을 지적했다.
전자 올겐과 에어콘 설치 및 공사
‘89년 2월부터 부활절미사 봉헌을 위한 올겐 구입 기금을 모금, 사순절 보속헌금 및 총모금액이 7,527,000원이었다. 올겐 구입비로 6,600,000원을, 나머지는 주택매입기금으로 사용하였다.
’89년 6월에 대형 에어콘 3대(1,400,000원)를 설치하였다.
‘90년 5월 본당 페인트 공사가 있었으며 외부 십자가도 새 것으로 교체하였다.
주택 철거와 주택 매입
성당 확장을 위하여 구입하였던 주택 3채(묵동239-40,41,42호)를 ‘87년 4월 29일 철거하여 마당을 넓혔다.
‘88년 6월에는 묵동 239-39호를, ’91년에는 묵동 239-34호를 매입하였다. 매입자금은 묵동 신용협동조합과 명동 사목 공제회에서 건물대금의 절반씩을 대부받아 충당하였다.
레지오
‘90년 10월 28일 제2회 교본 교리 경시 대회가 레지오 단원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시험 범위; 레지오교본 1-3장,8장 레지오 마리애 월간지 ’89년 11월호부터 ‘90년 10월호까지)
‘90년 3월 “병자들의 구원” 쁘레시디움이, 6월에는 “겸손하신 모후”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다.
‘92년 7월 17일 레지오 마리애 단원 자질향상 교육이 본당에서 세나뚜스의 강사의 지도로 있었으며, 7월 25일부터 26일 까지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피정이 있었다.(120명 참가)
ME 피정
‘91년 10월 20일. “참 부모 되는 길“ 프로그램으로 풍수원 성당에서 피정이 있었으며(110명 참가).
‘92년 5월 17일 본당을 가족적인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가정에서 나누고 있는 다정한 분위기를 우리 본당 교우들과도 나누자는 취지로 “본당은 우리”라는 프로그램으로 본당 강당에서 실시하였다.(40부부참가)
학생들의 순결교육
‘92년 7월 31일에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학생까지, 8월 1일에는 중3부터 고등학생까지 학부모들을 초대하여 함께 순결교육을 실시하였다.
서명운동
‘92년 9월에 낙태반대서명운동에 3,500명이, 사형폐지서명운동에는 500명이 참가하였다.
성모회 활동
‘88년 성당 장궤틀의 방석을 깔았으며, 주택매입기금으로 2,000,000만원을 봉헌하였다.
‘89년 7월에는 토요일 10시 미사 후에 교재 ’여정‘으로 성서공부를 시작하였다.
‘90년에는 충남 합덕으로 성지순례를 10월에는 피정을 가졌다.
성령 기도회
‘88년 10월 11일 400차 특별 기도회를, 10월 29일에는 미리내 성지에서 철야 기도회를 가졌다.
‘89년 5월 29일, 본당 성령쇄신 1일 피정에 (특별강론; 오웅진 신부 김찬도 베네딕도 치유기도;고현경 마리아)700여명이 참가하였다. ’89년 8월부터 매달 첫 토요일 밤 11시부터 주임 신부의 배려로 성체를 현시하고 철야 기도회를 가졌다.
‘90년 5월 28일 성령쇄신 1일 피정이 ( 피정지도 강사; 최기식 베네딕도 신부,유기분 크리스티나 자매, 치유기도-고현정 마리아)있었으며 ‘90년 10월 9일에는 성령 기도회 10주년 기념 기도회(마리아 수도회 총장신부 장희선 프란치스코;영적 강화와 기도회) 및 다과회가 있었다.
‘91년 5월 27일에도 성령 쇄신 1일 피정( 특별강론 박성구 요셉 신부 윤기분 크리스티나 자매)이, ‘91년 8월 3일은 성체를 모시고 철야기도회를 가졌다.
신협 소식
1980년 9월 1일 창립하여 ‘83년 2월 재무부 인가를 얻어 예금 및 적금업무를 보게 되었으며, 사무실 한구석에서 8년간 있다가 ’88년 7월 9일 강당 옆방을 개조하여 이사하였다. ‘89년 10월 31일에는 2억 3천만원, 400여명의 조합원이 되었다.
선종 봉사회 발족
‘91년 3월 16일 선종 봉사회 발족을 위한 준비위원을 구성하여 첫 모임을 가졌다. 선종 봉사회는 신자의 임종과 죽음을 도와주고 동시에 자신의 죽음도 준비하기 위한 단체로 ’91년 4월 21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회장으로는 강일영 요아킴이 선출되었다.
가톨릭 사회복지회에서 ‘92년 5월 14일 본당을 순회하여 봉사자교육을 실시하였다. 교육내용은 모든 상례범절에 관한 교육 1시간과 죽은 이를 입관하기까지의 실무교육 2시간을 하였다. 한달에 한번씩 선종봉사회의 날로 정하여 봉사회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다.
‘92년도 사목목표와 사목협의회 구성
장 신부는 ‘92년 2월 2일 주보에 본당 사목 목표를 다음과 같이 게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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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동 본당의 모든 신자 여러분!
우리 교회는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로서 모든 이가 하늘에 계신 한 아버지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사귀고 섬김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공동체를 이룩하는 아직도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도록 복음을 선포함이 그 존재 목적이 됩니다.
‘92년에 이와 같은 이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1.신자 상호간 형제애의 유대를 굳건히 하기 위해 본당의 구역반 모임을 활성화시킴으로 본당을 사랑의 공동체화 함으로 세상의 빛이 된다.
2 섬김의 교회를 실천하기 위하여 모든 신자는 가정에서나 교회와 사회 생활에서근검 절약하는 생활을 실천하고 절약한 만치 가난한 이에게 돌아가게 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가며 자연환경의 보호를 우선하는 생활을 하도록 모두가 힘써서 세상의 소금이 된다.
3 복음의 선포를 실천키 위해 평신자가 아니면 교회가 땅의 소금이 될 수 없는 장소와 환경에서 모든 이가 항상 복음을 선포하는 생활에 힘쓴다.
1992년 1월 주임신부 장홍선 요셉 총회장 황성순 아오스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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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목협의회 임원도 아래와 같이 선임하였다.
*1992년 사목 협의회
총 회 장; 황성순 아오스딩
부 회 장; 신창현 루까
총 무; 유명선 알렉산델
기획분과위원장; 총회장, 부회장, 총무
전례분과위원장; 한영기 바오로
선교분과위원장; 김일수 스테파노
교육분과위원장; 양동성 요셉
구역분과위원장; 안상숙 글라라
청소년분과위원장;김종규 루까
노인분과위원장;정춘화 엘리사벳
사회복지분과위원장; 고기숙 소피아
재정분과위원장;구원섭 요셉
관리분과위원장; 윤정태 요셉
‘92년도에는 기획분과위원회와 노인분과위원회가 신설되어 10개의 분과로 구성되었다. 기획분과는 따로 위원을 임명하지 않고 회장단이 그대로 맡았다.
‘92년도에는 신자들의 영적 생활을 돕기 위해 3월 6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1시 까지 본당에서 성서교실을 열었다.
장 신부는 구역 반장들에게 항상 자기 구역의 신자들이 신자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전출입 관계나 예비 신자에 대해서 또는 환자가 없는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은 없는지 항상 살펴줄 것을 부탁하였다.
장홍선 요셉 신부의 이임
장 신부는 ‘87년 2월 20일 본당에 한국인 첫 사제로 부임한 지 5년 7개월 만에 도림동 본당 주임신부로 발령이 나 전임했다. ’92년도는 장신부의 사제 서품 25주년이 되는 은경축의 해라 본당에서는 신자들이 은경축 행사를 준비하려 하였으나 장신부의 완곡한 반대로 9월 한 달 동안 장 신부를 위해서, 또 본당 공동체가 모두 한마음이 되어 본당 발전을 이룩하도록 기도를 바쳤다. 장신부의 이임으로 사목회는 10월 4일 주일 미사 후 송별식과 함께 은경축 행사를 준비하였다. 이날 구역 반장들과 성모회에서 2,500명분의 음식을 장만했으며 성 요셉 아버지회에서는 천막을 치고 장소를 마련하는 등의 협조를 하였다.
<사진>
제 5대 주임 조형균 사도요한 신부 재임 시기(1992년 10월 5일~1995년 9월 20일)
조형균 사도요한 신부 부임.
조형균 신부는 1985년 8월 17일에 사제 서품을 받고 대림동 보좌를 거쳐 군종 교구 사목국장(87.02.20-92.09.20)으로 재직하다가 1992년 10월2일 본당을 인계받고 10월 5일 11시에 부임하였다.
본당에 FAX설치와사무원 채용
조 신부는 본당에 부임하자마자 본당의 원활한 사무 행정을 위하여 FAX(978-1736)를 설치하였으며 사무장을 도와 사무를 담당할 여직원 윤수미 에스텔을 채용하였다.
미사 전례
조 신부는 미사 전례에 많은 공을 들였다. ‘92년 10월 29일 미사해설자들의 전례 교육을 하였으며, 주보에는 금주와 다음주의 입당과 봉헌 및 성체와 파견 성가를 안내하였다. 11월 19일 주보에는 주일 미사 참례에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게시하였다.
**주일미사 참례에 지켜야 할 예절**
본당에서는 분기별로 주일미사 참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 2,714명(41.8%)의 교우들이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계시며 그중 21.4%(580)가 지각 참례자 입니다. 미사 참례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를 고쳐야겠습니다
*주일미사 참례 예절
미사 시작 10분전에
해당 주일 독서와 복음을 미리 읽어 봅시다.
복장은 단정하게
‘95년 6월 25일과 7월 30일 주보에 또다시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게시하여 미사 참예시의 유의 사항을 주지시켰다.
.-이것만은 꼭 지킵시다-
< 미사 당일 독서와 복음 읽기, 5분전에 도착하여 앞좌석 앉기, 성당 중앙을 지나갈 때는 ‘감실’을 향하여 목례하기, 미사 시작 후 중앙 통로 사용하지 않기, 타인에게 분심을 주는 옷차림이나 과다 노출은 피하기, 헌금은 정성스럽게 준비하기, 퇴장 성가가 끝나기 전에는 성당을 나가지 않기, 미사 중에 팔짱을 끼거나 다리를 꼬는 행동은 하지 말기 >
교리상식
‘92년 11월 첫 주부터 주보 맨 왼쪽 상단에 교리 상식이 실리기 시작하였다. 11월과 12월에 실린 교리 상식은 다음과 같다.
11월1일-위령성월 11월 8일 - 연도 11월 15일 -방사 11월 22일 -그리스도 왕 축일 11월 19일 ‘대림’의 참뜻
12월 6일-미사 수건은 왜 쓰는가? 12월 15일-고백성사 12월 20일-산타클로스 12월 27일-성가정축일
교리 상식은 전례시기에 맞게 간결하면서도 알기 쉽게 소개되었으며 조 신부의 재임기간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계속되었다.
‘93년도 본당 사목 목표
서울교구는 사목 교서에서 1992년부터 2천년대 복음화를 위한 장기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이 복음화를 위해서는 본당 쇄신 작업을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본당 쇄신을 위한 사제 연수가 ‘92년 11월 9일부터 12일 까지 인천 소래 바오로 피정의 집에서 있었다, 조 신부는 이에 맞추어 ‘93년도 본당 사목목표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정하였다.
1.믿음의 공동체 형성
교회는 하느님을 믿는 백성들의 모임이며 그 공동체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고백케 하고 자신이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알게 해주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일차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신앙인이 된 우리는 더욱 더 신앙을 심화하고 가톨릭 정신을 함양하며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교회전례 참석과 기도생활이 앞서야 됩니다.
①평일미사 참석
②매주 성시간 및 성체강복 참석
③성서읽기의 생활화
④외부강사 초청강연 및 피정 참석
⑤본당 주보이신 통고의 마리아와 함께 매일 묵주 신공 바치기
⑥교리지식의 적극적 습득 노력
⑦가정에서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 바치기 운동
2. 친교 및 나눔의 공동체 형성
서로 나누는 사랑과 정은 더욱더 성장되고 풍요함을 지닙니다. 구원은 만민을 위한 것이기에 신앙 안에서 모든 이가 함께
기뻐하고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① 매 미사 후 인사 나누기 운동
②상가방문 및 연도 바치기
③불우이웃 방문과 봉사
④사순절, 대림절 절제헌금
3. 증거하는 공동체 형성
하느님 말씀에 입각한 삶은 외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줍니다. 그들 역시 신앙인의 표양을 보고, 참 진리이신 하느님을 알게 되며, 교회 안에서 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야 합니다.
①가정에서 참 부모로서 기도와 모범적 표양으로 가정성화 구현
②일터에서 성실하고 양심적인 신앙인의 모습 구현
그리고 사목협의회위원(93년-94년)을 다음과 같이 선정하였다.
회장; 김종훈 마태오
부회장;신창현 루까, 서종호 모세,이해룡 바오로
총무;양동성 요셉 위원; 박상호 야고보
기획분과위원장; 양동성 요셉
전례분과위원장;이정욱 몬타노
선교분과위원장;신창현 루까
교육분과위원장;김준영 가브리엘
구역분과위원장;안상숙 글라라
청소년분과위원장;손건성 요셉
노인분과위원장;정춘화 엘리사벳
사회복지분과위원장;강일영요아킴
재정분과위원장;서광석 비오
시설관리분과위원장;함동호 마태오
*‘93 사목계획서에서 발췌
‘92년도와는 달리 부회장을 1명에서 3명으로, 총무도 위원을 1명 선임하였고, 각 분과는 1명이었던 위원을 5명이나 6명씩 선임하였으며 기획분과위원장도 따로 독립시켜 임명하였다.
구역은 22구역 80반으로 조직되었다.
피정과 신앙강좌를 통한 신자 재교육
조 신부의 재임기간동안 실시되었던 피정과 교육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특히 주부들을 위한 피정이 많이 실시되었는데 ‘93년도에는 3번, ’94년도에는 1번, ‘95년도에는 2번 있었다.
’94년도 5월에는 전 신자 피정과 구역 반장단 피정, ‘ME'의“참부모되는 길”피정이, 11월에는 여성단체장 피정과 청년 피정이 있었다.
사목위원 및 각단체장 피정과 성령 기도회 피정은 매년 실시하였으며 ‘95년도 1월에는 6학년졸업 피정과 중고등부 주일학교 동계피정이 있었다.
교육으로는 미사 해설자 교육이 ‘92년 10월에 1번,’93년에는 3월과 7월에 2번 있었으며, 영세자 신비교육이 영세자들을 상대로 해마다 실시되었다. 청년 신앙강좌는 ’94년부터 매월 1번씩 실시하였다.
성서모임은 청년성서 모임이 ‘93년부터 매주 1번 있었고 ’95년에 주부 성서교실과 가톨릭 성서모임이 개설되었다.
사순절과 대림절 강론은 해마다 실시하였으며 신앙생활표를 배부하여 기도를 통한 참회와 속죄로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되도록 유도했다. ‘93년도에는 판공 찰고지를 배부하였고, ’94년과 ‘95년도에는 성서쓰기를 하였다.
'94년 사순절에는 마태오복음, 대림절에는 마르코 복음, ‘95년 사순절에는 루가복음을 썼다.
성지 순례
‘93년도 2월과 7월에 새영세자 성지 순례가 절두산 새남터와 미리내로 있었다.
11월 7일에는 전 신자 성지순례를 나바위 성지로 갔다.(716명 참가) ’93년 5월에 레지오 마리애 옥외행사가 춘천 위도에서(500명참가), ’94년 5월에는 청년 성지 순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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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도서실
무료로 대여해오던 이동 도서실의 책 대여료를 100원씩 받았으며, ‘95년에는 비디오 테이프도 구입하여 회원 가입비는 5,000원으로 하고 대여비를 회원은 1,000원, 비회원은 2,000원으로 하였다.
본당신문 “피에타”발간
‘93년 4월 11일 예수 부활 대축일을 기하여 본당 월간 신문을 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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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의 내용은 제 1면에는 조신부의 강론과 주보성인에 대한 글이, 제2면에는 ‘신자들의 매일 생활’(기도나 묵상)에 대해서 그리고 교회 상식에 관한 글이 실렸다. 제3면에는 ‘교회의 시작과 성장’등 교회사에 관한 것과 토막 성인전, 1분 교리 등이, 제4면에는 공동체 소식, 복음으로 사는 삶, 부모의 역할에 대한 글이 실렸다.
‘93년에는 4호까지 발행되었으며 다양한 교리교육과 교회 상식 및 역사, 교회 소식 등이 실렸다. ‘95년 5월, 7호를 마지막으로 조 신부의 이임과 함께 ’피에타‘는 중단되었다.
나눔의 바자회와 이웃돕기
조 신부의 재임기간 동안의 본당의 큰 행사를 살펴보면 친교의 행사보다는 나눔의 행사에 주력을 했다. 우선 본당에서 연례적으로 실시하던 체육대회는 개최하지 않았던 대신 나눔의 바자회가 ‘93년 5월 16일과 ’94년 11월 20일 2차례 개최되었다. ‘93년 5월 16일 개최된 나눔의 바자회는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본당에서 개최하였다. 2주 전부터 쓸 수 있으나 가정에서 묵혀둔 생필품을 잘 손질하여 기증해 달라는 공고를 주보에 내, 가구, 책, 옷, 장난감 등의 물품을 기증 받았다. 나눔의 바자회에서는 이 물품들이 필요한 교우들에게 500원에서 1,000원의 소액으로 구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날의 음식 판매 봉사는 각 단체에서 맡아 하였으며 레지오, 성모회, 구역분과, 청년단체 연합회가 행사 진행을 도왔다. 이날 총 판매액은 9,614,240원이었으며 이익금은 1,764,000원으로 본당의 불우 이웃과 성모 자애 보육원 어린이들을 위해 쓰여졌다.
‘94년 나눔의 바자회는 불우 이웃 및 르완다 어린 생명을 돕기 위한 바자회로 쓰지 않는 물품 나누기와 우리 농산물 판매 등이 있었고 이 날도 각 단체에서 음식 판매 봉사로 친교의 잔치를 하였다. 초등부 주일학교 어린이들(77,200원)과 복사단 어린이들(100,000원)도 르완다 어린이 돕기 기금을 기부하였다.
‘93년 사순절제헌금은 6,700,000원이 봉헌되었는데 교황청 어린이 전교회에 3,400,000원, 성모자애 보육원에 2,000,000원이, 성모자애 재활원(맹인)에 1,000,000원이, 우양의 집(폐결핵 환자의 집)에 300,000원이 보내졌다. ’95년도 청년단체 일일 찻집 수익금은 1,179,260원으로 600.000원은 엠마오 교실 후원금으로, 600,000원(부족금은 자체적으로 충당)을 상계동의 성모자애 보육원에 전달되었다. ’94년 사순절과 대림절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절제 헌금 저금통을 배부하여 부활절과 성탄절에 봉헌하게 하였다.
이밖에 ’93년 11월 26일, 빈첸시오회에서는 불우 노인을 위한 김장 담그기가 있었다.
군종후원회설립
1994년 7월 24일 군 사목을 지원하고 후원하기 위해 창설되었다,(회장; 김옥남루실라)
그 밖의 행사들
‘93년 1월 설날 맞이 대동굿판이 12시 미사 후 성당 마당에서 열렸으며, 2월 7일에는 본당 윷놀이 대회가 개최되어 자모회에서 먹거리를 판매하였다. ‘95년 2월 26일에는 성 요셉 아버지회가 주최하고 사목협의회가 후원하여 본당에서 본당 교우 윷놀이 대회가 있었다.
‘92년 12월 18일, 성탄 축하 본당 성가대 공동 성가 발표회가 있었으며,‘92년 과 ’93년 11월에는 선종후원회 주최하에 각 단체, 구역별로 연도대회가 개최되었다.
‘94년 9월 1일 본당 사무실 업무 기초 자료 입력이 완료되어 교적 8,307명, 세례성사 7,446명, 견진성사 2,743명, 혼인성사는 990명으로 입력되었다.’95년 3월 3일부터 주임신부의 가정방문이 6월 9일까지 있었으며,‘95년 성모성월에는 매주 토요일 미사를 성모성심미사로 봉헌하였고, 금요일 저녁 미사 후에는 성모님을 공경하며 가정의 성화와 세상의 평화를 위한 묵주 기도를 바치도록 하였다.
‘95년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본당 교우들이 성당 장궤틀 수리 작업을 하였으며 8월 12일에는 새 대리석 성모상을 성모동산에 설치하였다. ’95년 9월 15일, 본당 주보성인 축일에 본당 설립 20주년 기념미사를 강우일 주교와 주임신부 집전으로 봉헌하였다. ‘95년 7월 26일에는 노인대학 14주년 기념 떡 잔치를 하였다
청년 단체의 활동과 주일학교 행사
이 시기의 청년단체는 초.중고등부 교사회와, 성가대, 굿패, 레지오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매월 정기적인 모임에 신앙강좌를 마련하여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93년 6월에는 실로암 성가대가 제3회 중창 경연대회를 개최하였으며, ’93년 10월30일 오후4시부터 문화제 1부 행사를 31일에는 12시부터 6시까지 ’작은 찻집‘과 ’책 바자회‘를, 6시30분 미사 후에는 문화제 2부 행사를 열었다.
‘94년 4월 5일에는 성당 내 외부 페인트 도색 작업을 하였다. ’94년 5월 18일에는 배론으로 성지순례를, ‘95년에는 6월에는 천진암으로 성지순례를 했다 .
‘93년 5월 8일, 초등부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평화방송 공개방송에 출연하여 녹화가 있었으며(16일 방송),9일에는 250명의 어린이들과 25명의 주일학교교사들이 육군사관학교로 소풍을 갔다.
주일학교 교사회에서는 ‘93계유 박해’라는 제목으로 중.고등학교 주일학교 학생들의 순교자 성월 행사(93년 9월 19일)를 성당 곳곳에서 열어 순교자들의 정신을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95년 8월3일부터 5일까지 ‘성인들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체험을 통해 신앙교육을 하기위해 중.고등부 도보 성지순례를 (해미에서 솔뫼까지) 실시하였다.
조 신부의 이임
조 신부는 본당 20주년을 맞아 지난날의 발자취를 돌아보려는 20주년 사진전을 개최하기 위해 사진 및 인쇄물, 기타 본당 사료를 수집하고 있던 중, 평화방송 주간으로 전임되어 ‘95년 9월 17일 환송미사와 환송식을 가졌다.
제6대 김태수 신부의 재임 시기(1995.9.20~1996.3.7)
김태수 요셉 신부 부임
김태수 요셉 신부는 구로1동 본당 출신으로 1986년 2월 21일 명동 대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길음동 보좌, 세종 로 보좌, 석관동 보좌, 해방촌 본당 주임을 거쳐 해외연수를 다녀와 묵동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본당 설정20주년 기념체육대회
본당 20주년 사진전 개최를 위해 사진 , 인쇄물 및 기타 본당 사료를 수집한다는 공고를 몇 차례 주보에 내었으나 예기치 못했던 조신부의 발령으로 사진전은 중단되고, 10월 8일, 20주년 기념 체육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김 신부는 체육대회 프로그램에 실린 인사말에서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한 마음이라는 주제와 같이 성숙한 모습이 되어야겠다. 20년을 자축하며 마련한 이 자리가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체육대회는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한마음’이라는 주제아래 ‘연중제 27주일 ’미사를 시작으로 유치부 어린이로부터 노인까지 참여하는 다양한 경기 종목으로 진행되었다. 성모회에서 김밥, 오뎅, 떡볶이, 해물전. 도토리묵, 순대 등의 다양한 음식코너도 마련하여 전 신자가 참여하는 흥겨운 체육대회가 되었다.
<사진>
본당 공사
본당에서는 재정적 어려움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동안 낡아서 수리가 필요했던 몇 가지 공사를 추진하였다. 사제관 보수공사, 불필요한 담장 헐기 및 차고 축소공사, 전기 배선 공사였다.(9월 25일-10월 12일, 11월 2일 -17일)
<공사 내역>
공사구분 총공사비 지불금액 미불금액 비고
사제관 보수 및 담장 헐기 9,352,000 6,500,000 2,852,000 천막공사500,000포함
담장 헐기등 대문공사 2,500,000 2,500,000
전기공사 3,000,000 3,000,000 예상액
차고문 및 본당 사무실 1,500,000 1,500,000
방범문
도배공사 1,042,000 1,042.000
계 17,394,000 12,000,000 5,394,000
단체장 면담
김 신부는 11월 14일부터 12월 1일까지 3주간에 걸쳐 단체장 면담을 하였으며 ‘일꾼을 찾습니다’는 공고를 주보에 실었다. 신자들을 대표하여 교회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사목회 각 부처에서 일하실 의향이 있는 교우나 교회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되는 교우는 신청(추천)해주기 바란다는 신청(추천)서를 게재하였다.
대림절
대림기간동안 성탄을 잘 맞기 위한 준비로 대림달력(신앙생활표)을 배부, 그에 따라 기도와 복음 읽기 및 보속의 행위로 절제하여 헌금하는 저금통도 배부되었으며 요한복음 성서쓰기도 있었다.
대림절 기간동안 ‘기다림과 도전’이라는 주제로 대림 특강이 3차례 있었다.
주일학교 등록제 시행과 행사
주일학교 교사회는 학생 중심의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교리교육과 신앙 교육을 하기 위해 주일학교 등록제를 신학기부터 실시하였다. 등록 기간은 2월10일부터 3월 2일까지로 등록비는 학기당 10,000원이었다. 초등부 주일학교는 203명, 중고등부는 147명이 등록하였다. 등록제이후 3,4월의 평균 출석율은 초등부가 75.3%,로 203명중 153명이 꾸준히 출석하였고, 중고등부가 64.1%로 147명중 91명이 꾸준히 출석하였다.
‘95년 10월 5일 초등부 주일학교는 유치부에서 6학년까지 가을을 맞아 자연을 벗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게 야외수업을 마련, 용산 가족 공원으로 소풍을 갔다.
12월 25일 초등부 주일학교 성탄 예술제 ‘작은 고을의 기쁜 잔치’가 29일은 중고등부의 ‘엘로힘의 밤’이 개최되었고
‘96년 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초등부 주일학교의 동계신앙학교가 성서반, 미술반, 사물놀이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청년단체
‘나는 미상의 빛이니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두움 속을 걷지 않고 빛을 얻으리라.’라는 주제로 인천 순교
복자수도회에서 ‘95년 9월 30일부터 10월 1일 까지 1박2일로 피정이 있었고, 10월 29일 청년 신앙강좌는 김태수 주임
신부와 청년들의 만남의 장으로 마련하였다.
그밖의 일들
‘95년 10월 4일 제9회 노인의 날을 맞아 효창운동장의 노인들을 위한 경축미사에 본당 안나 요아킴 노인 대학에서 참가하였고 ,11월 5일에는 성바오로 병원에서 본당에 나와 본당의 노인들을 위해 건강 진단을 해주었다.
김 신부는 각 단체의 사업 내용과 홍보는 물론 역사 기록으로도 남게 되는 주보 공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권고하였으며, ‘95년 12월부터는 주보에 새로 이사 온 전입교우를 안내하는' 환영합니다' 는 난을 새로 마련하였다.
여성단체장 피정이 ‘95년 11월3일 신월동 살레시오회관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란 주제로 피정이 있었다.(구역 반장, 레지오 쁘레시디움 단장, 각 여성단체장) ’95년 12월 27일 84명의 영세식이 있었으며, 12월 24일부터 ‘96년 1월 14일까지 새영세자 신비교육이 매주일 있었다.
수녀 인사 이동
‘96년 2월 11일,노 비비안나, 김 안나, 유 미켈 수녀가 이임하고 전 엘리사벳, 김 벨라뎃다, 김 가타리나 수녀가 본당에 부임하였다.
김태수 요셉 신부의 이임
‘96년 3월 3일 12시 환송미사가 있었다.
제 7대 김우성 비오 신부 재임 시기(1996.3.10~1999.2.28)
김우성 비오 신부 부임
1990년 2월 9일 사제 서품을 받고, 상도동 본당 보좌를 거쳐 교도사목으로 재직 중 ‘96년 3월10일, 본당에 부임하였다.
본당 사목 목표와 사목협의회
김 신부는 ‘96년도와 ’97년도의 본당 사목목표를 “젊은이들의 복음화”에 두고, 첫째로 ‘청소년분야 사목의 활성화’, 둘째로 ‘소공동체의 확립’에 두었다.
특히 본당 내 남성들의 참여가 저조함을 염두에 두고 본당 내 가정이 성화되고 지역 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사목계획서에 밝혔다.(‘96,’97년 사목 계획서)
1997년에 사목협의회를 새로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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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장; 송웅익 시몬
부회장; 김 동원 루까, 윤광자 스테파니아
총 무; 이 승우 비오, 부총무; 공두원 바오로, 윤혜원 소피아,
전례분과위원장; 정용호 아오스딩,
선교분과위원장; 공석규 베드로,
교육분과위원장; 이원숙 미카엘라,
구역분과위원장; 김종진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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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행사
김 신부는 청소년과 청년 사목의 활성화는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구상하였다. 부임 이후 첫 행사였던 본당의 날 야외미사(‘96년10월 20일-세종로성당공원묘지)도 바쁘게 살아가는 가족 모두가 함께 모여 하나가 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위해 가족야유회를 겸하였다.
김 신부가 재임기간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계획한 일은 1997년 여름 가족 캠프였다. ‘96년의 첫 행사 때부터 ‘97년의 여름 가족캠프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제1차로 ’97년 4월 6일, 가족캠프에 대해 어디로, 언제, 며칠간이 좋은가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를 위한 설문지가 교우들에게 배부되었다. 제 2차로 4월 20일과 27일에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글을 계속 주보에 연재함으로써 가족캠프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였다. 제3차로 6월 22일에는 가족캠프에 대한 공고가 실리고 캠프 신청을 받았다. 제4차로 6월 29일 여름 가족캠프의 주제를 ‘돌을 치워라’‘(요한 11,39)로 정했으며, 그 설정의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를 막고 있는 이기주의의 돌, 개인주의의 돌, 배금주의의 돌들을 말끔히 치우고 ,서로 화합과 일치의 부활로 나아가야 하겠다. 다시 태어나는 가족 안의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본당이 하느님으로부터 하나였다는 것을 이 가족캠프를 통하여 체험하도록 한다>
제 5차로 2박3일의 프로그램을 다음의 제목으로 상세히 설명해놓았다.
첫째 날은 개인으로서의‘나’와 세대로서의‘나’
둘째 날은 가족 안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날
셋째 날은 우리는 주님 안에 하나; 돌은 치워라!
제6차로 일시(1997년 8월 2일-4일) 장소(강원도 둔내 캠프장), 회비,(조등부, 중.고등부 1인당 25,000원 등록학
생은 20,000원, 청년. 성인;50,000원), 준비 사항 등의 안내를 실은 최종적인 공고문에서 김 신부는 “전 교우들의 하나된 모습을 위하여 개인과 단체별 개성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다는 깊은 생각으로 많은 참여바랍니다”라는 한마디를 하였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로 계획되었던 여름 가족캠프는 참여했던 모든 교우들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행사를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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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미사참례를
1998년 1월부터는 매월 첫째 주일 10시 미사를 가족미사로 정하고,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기며 주님 안에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많은 가족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했다.
김 신부는 ‘97년 4월 20일부터 10시 교중미사에 유아방의 어린이들이 자칫 소외될 수 있다고 생각, 어린들에게 안수와 십자표를 주는 축복 예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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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의 복음화와 소공동체의 복음화 교육과 남성 구역 출범
‘96년 5월 28일, 구역반장회의를 통해 1차 소공동체 복음화 교육을 하였으며, 5월 29일 오후9시에 남성들을 위한 소공동체 복음화 교육을, 6월2일 6시30분 미사 후에는 청년들을 위한 소공동체 복음화교육을 실시하였다. 6월 18일 오전 10시와 오후 8시에는 전 신자 복음화 교육이 실시되었는데 본당 내 모든 단체장은 단체원들이 전원 복음화교육을 받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였다. ’97년 4월 6일에는 소공동체 일환으로 실천되고 있는 <복음나누기 7단계>를 그 순서와 진행자의 할 일에 대해서 간략하게 기술하여 주보 8면에 게재하였다.
남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랐던 김 신부의 관심과 협조 속에 남성구역이 ‘97년 5월 18일 출범하였다. 총구역장에 김 종진 베드로, 부구역장에 신 창현 루까, 김 범식 프란치스코가 선출되었다.
성전 공사기금 모금과 성전기금을 위한 체육대회
‘96년 5월 26일부터 성전 공사 기금을 위한 모금을 시작하였다. 사제관에서 1,000,000원, 수녀원에서 200,000원, 묵동 신협에서 2,000,000원을 봉헌하였다.
성전 보수 기금 마련을 위한 체육대회 및 바자회가 태릉 중학교에서 ‘97년 6월 15일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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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사를 위한 기도문이 작성되어 일주일 전부터 기도를 바쳤다.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한 마음-
완전한 인간이시며, 참된 사랑이신 주님.
저희 묵동 신자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온 교회 안에 화목이 깃들이게 하시며
진리를 고백하며 항구한 일치로 굳세어지게 하소서.
저희 모두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
함께 모여 기도하며, 빵을 떼고,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섬김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주님
실없는 말로 이웃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분열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순교자의 후손답게 살지 못한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번 성전 보수공사를 위해 마음을 합하여
사랑을 더 아름답게 꽃피우는 계기가 되어
손에 손 잡고 어떠한 난관도 헤쳐 가며
사랑과 진리의 길로 함께 걸어가
마침내 하나 되게 하소서.
오전 10시 미사 후의 행사 내역은 바자회와 체육대회 및 레크레이션으로 진행되었다. 바자회를 위해서 찬조금과 물품 기증을 6월 12일까지 받았고 물건 및 음식 판매는 개인이나 단체에서 미리 신청을 받아 1가지씩 맡아 하였다.
1매당 3,000원의 경품권을 각 단체와 구역 반으로 배부하여 판매하였으며, 보다 많은 음식을 팔기 위해 가스불끄기운동 으로 각 가정 하루 3식을 전부 바자회장에서 해결하도록 운동을 벌였다.
사목협의회에서 525만원을 봉헌하였고, ‘96년 성모의 밤 행사에서 성당 보수예물로 6,918,000원이 봉헌되었다.
성전 보수공사
‘96년 성당 지하 교리실 및 강당 공사를 하였고, ’97년 10월 본당 주방 증축 공사와 성당 유리창문 공사가 있었다.
유리창의 스테인글라스는 독일 유학으로 조형 예술을 전공한 조광호 신부(베네딕도 수도회)의 작품으로 독일에서 구워온 유리라고 한다. *전 사무장 김 라우렌시오의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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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전례 봉사단과 까리따스회의 창단
‘96년 6월 30일, 전례 봉사자(해설자,독서자) 모집과 준비 과정을 거쳐 전례봉사단을 새롭게 구성하여 12시 미사에 창단 미사를 봉헌했으며, 미사 후 성당 마당에서 축하연을 가졌다. 6월 30일부터 다음 주 미사전례봉사자 안내가 주보에 실리기 시작하였다.
까리따스는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는 참된 그리스도적인 행위를 실천하는 봉사 단체로 ‘96년 10월부터 회원 모집을 하여 12월 1일 첫 회합이 있었으며, ’97년부터 비첸시오회와 나눔의 묵상회가 까리따스회와 합쳐져 활동하다가 2000년도에 까리따스회의 활동이 미미해지면서 해체되었고, 빈첸시오회와 나눔의 묵상회는 다시 부활하였다.
김 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및 유해순회 기도
‘96년 7월 20일, 김 대건 신부가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지 15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하는 신앙대회의 일환으로 본당에서도 유해봉송행사가 거행되었다.
본당에서는 석관동에서 김 대건 신부 유해를 봉영해서 이문동으로 봉송하였고, 유해 순회 기도회는 7월21일 오후 1시부터 1시간씩 노인대학부터 단체별로 오후12시까지 그리고 다음날 오전 1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이어졌다. 이에 앞서 9일기도가 7월 12일부터 7월 20일 까지 본당에서 오전 10시에 단체별로 있었다.
김 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는 9월 15일 잠실종합운동장 주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본당에서는 각 단체장과 해당 봉사자들의 전례연습이 7월 18일 있었으며, 9월 1일 미사 때에 김 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봉헌문 작성 요령을 안내받아 이날 봉헌하였다. 이에 앞서 이 신앙대회를 위한 9일 기도가 9월6일부터 14일까지 본당에서 있었다.
본당 관활구역 재조정
‘97년 2월 상봉동 관할구역인 상봉APT(중화1동 450번지)가 중화동으로 변경됨에 따라 묵동 본당 관할 구역으로 재조정되었다.
본당 부채해결을 위한 2차헌금
본당부채가 교구납부금 ‘93년 미납분이 86,769,390원, ’96년 미납분이 39,463.000원, 평화방송 부담금 미납분이 27,114,000원, 통일성금 미납분이 15,000,000원으로 합계가 168,346,390원이므로 2월부터 부득이하게 부채 상환을 위해 2차 헌금을 실시하게 되었다.
성당 업무용 차 구입과 주보 본당소식란 증면
‘96년 3월 23일 성당 업무용 승합차 이스타나(쌍용, 12인승)를 구입하였다.
‘97년 부활 2주일부터 주보 7면은 본당 소식, 8면은 신자들의 영성생활 및 재교육을 위한 안내 및 광고를 싣기로 하였다.
주보에 실리는 광고비는 20,000원으로 초.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묵동 신용협동조합 축성
‘96년 3월 23일 오후 1시 주임신부 집전으로 묵동 신용협동조합 축성식이 있었다.
‘96년 7월 1일부터 본당 행정은 사무실에서, 신협의 고유업무는 신협에서 하기로 결정, 교무금 수납은 사무실에서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96년 12월부터 신협에서 하던 우리농산물 판매를 교회의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는 차원에서 성모회에서 맡아하기로 하였다.
‘98년 9월 13일 주보 8면에 <경축 ‘98년 자산 목표 100억원 조기 달성’>이 게재되었다.
가정법률상담
‘96년 5월부터 법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우들을 위하여 본당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서 4시까지 차현근 변호사가 상담을 맡았다.
글로리아 성가대 창단 10주년 기념행사
‘97년 1월 19일 기념행사로 오전 10시 미사를 라틴 미사곡으로 봉헌하였으며 ,12시 미사 후 소성당에서 기념식 및 축하연이 있었다.
‘98 사목 목표와 사목협의회
‘98년은 국가 경제가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 기금을 지원받아야했던 어려운 시기였으므로 김 신부는 98년도 본당의 사목목표를 구역회 10대 활동목표로 대신한다고 밝히며 이를 ‘98년 1월 25일 주보 8면에 게재하였다.
* 구역회 1998년도 10대 활동 목표
1.전 구역 구역장, 반장 선임 완료
2.전 구역 반모임 100% 완료
3.전 구역 복음화 7단계 교육 이수
4.전 구역 청소년 청년 구역 모임 실시
5.전 구역 구역미사 전례 실시
6.구역 내 불우 소년 소녀 가장, 노인, 장애인 돌보기
7.전 구역 년 1회 이상 피정, 신앙강좌 참가
8.구역별 교무금 잘 내기 운동 실시(구역장 반장님이 홍보)
9.전 구역 폐품 재활용 운동 전개
10. 전 구역 근검 절약 운동 전개(본당 예산 97년도 수준으로 동결, 각 단체 예산 절약)
**실천 방안**
가. 외국 여행 안 가기
나.외국 외식산업 식당 안가기
다.국산품,우리 농산물 사주기
라.청소년 선도 및 캠페인 월 1회 실시
마.구역 내 어려운 이웃 돕기
바. 구역 내 교우 상점 이용하기
예) 식당, 슈퍼, 미용실, 금은방, 복덕방, 의류점.학원,카센타,상점 등등...
사.사치품 안사기, 전기 수도 아껴 쓰기
아. 야유회 갈 때 쓰레기 되가져오기
자.10원짜리 동전, 달러(잔돈) 은행에 가져가기
차. 환경 오염물(합성세제,폐기름 등등...) 안 버리기
카.승용차 안타고 대중교통 이용하기(버스,지하철) 주 1회 이상
타.일회용품 안쓰기
파. 월 1회 알뜰시장, 교환, 나눔의 시간 실시
하.음식물 쓰레기 물기 제거하고 버리기
‘98년도 사목협의회
총회장;김동원 루까, 부회장;윤광자 스테파니아 총무; 이승우 비오
부총무; 공두원바오로, 윤혜현 소피아
전례분과위원장;김범식 프란치스코
선교분과위원장;남원호 프란치스코
교육분과위원장;김영길 바오로
구역분과위원장;김종진 베드로
청소년 분과위원장;유재춘 바오로
노인분과위원장;이계호 스테파노
사회복지분과위원장;박태호 프란치스코
재정분과위원장;김낙평 안드레아
‘98년 9월 13일, 남녀 구역장을 새롭게 선출하여 임명하였다.
묵1구역 장기은 요셉, 민춘자 데레사
묵2구역 박상준 요셉, 정향자 안젤라
묵3구역 김영길 바오로, 전정희 세실리아
묵5구역 신종철 안토니오, 박정희 미카엘라
묵7구역 신동호 스테파노, 우정섭 엘리사벳
묵8구역 김학수 스테파노, 정구순 실비아
묵9구역 박기운 루가, 국광자 안나
묵10구역 박재옥 요셉, 윤현순 사비나
묵12구역 김준곤 빈첸시오, 구순조 안녜스
묵13구역 김종화 요한, 김정숙 노벨따
중14구역 박상옥 안드레아, 김정자 세실리아
중15구역 신창현 루가, 이금녀 유리안나
중16구역 강철호 바오로, 안상숙 글라라
중17구역 김영길 미카엘, 정국진 루시아
중18구역 김형춘 요셉, 한임정 카타리나
중19구역 홍범희 안드레아, 김지현 요안나
중20구역 서정주 스테파노, 원종자 안나
중21구역 김덕규 스테파노
불암22구역 최석란 베로니카
*4구역과 11구역은 공석이었음
구역 성가 경연대회와 구역미사 봉헌
구역의 반원들이 성가 연습을 하면서 서로의 형제애를 나누고 구역의 활성화를 도모하기위한 ‘98년도 구역대항 성가경연대회가 9월 19일 (토) 오후 7시에, 지정곡 1곡과 자유곡(가톨릭 성가 중 택일) 1곡으로 실시되었다. 남. 여 구역장 참석여부, 반장 참석여부, 반원 참석수에 점수가 반영되어 1등부터 6등까지 상품이 있었다.
‘98년 대림 1주간부터 매주 토요일 특전 미사를 구역미사로 병행하여 봉헌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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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의 밤 행사
성모님의 구원사적 의미를 다시 새기고 그 뜻을 보다 깊게 하기 위하여 마련된 ‘98년도 ’성모의 밤‘은 예년과 달리 IMF 실직자를 돕기 위해 1부 자선 음악회(오후 8시)와 2부 성모의 밤 전례로 나누어 행사를 하였다. 자선 음악회 티켓은 10,000원에 판매되었으며 이 후원금은 실직자 가정 후원 및 자녀 학자금 신청서를 받아서 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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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적에 주민등록번호입력
‘98년 6월 21일, 교구 종합 전산화 사업의 기본자료 보완을 위하여 주민번호입력을 하였다.
첫 토요 신심미사와 명절 합동 위령미사
파티마 사도직에서 봉헌하는 신심미사가 본당에서 ‘98년 9월 5일부터 시작되었다.
추석에는 교우들이 가정에서 차례상에 올릴 떡을 오전 6시 미사 때 축성하였다. 합동미사에는 교우들이 음식을 준비해와 차례상을 차렸으며 본당에서는 시루떡을 준비해서 미사에 참례한 교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당시의 교우들은 떡을 가져가는 재미에 미사 참례자가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윤광자 스테파니아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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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신자 성서읽기
‘98년 12월 20일부터 대희년을 준비하여 신자들의 신심을 높이고, 늘 성서와 접하며 생화할 수 있도록 매 미사 후 10분 동안 성서를 읽도록 하였다. 전 신자는 성서를 지참토록 하였으며 평일 미사에는 구약성서부터 주일미사에는 신약 성서(마태오)부터 읽기로 하였다.
‘98년 대림절
11월 30일부터 12월 23일까지 대림절 특강을 하지 않는 대신에 우리 구원의 표지이며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성체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드리자는 취지로 매일 성체 조배를 하였다.
로사리오 묵상 기도와 성서 묵상 기도 후 성체 조배를 하였으며 월, 화 ,목. 금요일은 오후 7;30-8;30에 수, 토요일은 오전11;00-12;00에 실시하였다.
서울교구장 착좌식
한편 서울교구는 1968년 이후 30년 만에 교구장이 교체되었다. 1998년 5월 30일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청주교구장에 임명되었던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 13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6월 29일 교구장 착좌식이 있었다.
김우성 신부의 이임
‘99년 2월 18일 사제 평생 교육원으로 인사 발령이 나 2월 28일 10시 미사에 환송미사가 있었다.
제8대 주임 류영도 디오니시오 신부 재임 시기(1999. 3. 2.-2000.9.30)
류신부 부임과 사목목표
1951년 12월 21일 사제서품, 중림동 보좌 ,성신대 교수, 교구법원 법원장, 가톨릭 사회문제연구 위원장,
흑석동과 종로 주임, 서울대교구 부주교(67,12.28-71.06.02), 불광동, 청량리 주임, 신림동 보좌. 잠실. 당산동 주임신부로 재임 중 본당에 부임하였다.
‘99년도 사목교서는 “대희년과 복음선포”의 주제 하에 대희년 준비 셋째 해인 성부의 해를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을 중요한 관점으로 삼았다,
류 신부는 “대희년과 복음선포”의 주제에 충실하게 복음 선포의 구체적 방안을 검토 제시하여 이행하고자 한다며 다음과 같은 본당 사목목표를 제시하였다.
1,전 구역 구역장, 반장 선임 완료
2.전 구역 반모임 100% 활성화
3.전 구역 복음화 7단계 교육 이수
4.전 구역 구역미사 실시
5.본당 구역 및 본당 근접 지역 사회에 대한 불우 소년소녀 가장, 노인, 장애인 돌보기
6.‘성모 장학회 설립’을 통한 청소년 장학금 지급
7.성서읽기, 쓰기 운동(매 미사 전 성서읽기를 통해, 각 가정에서도 성서읽기 운동 확산)
8.주일학교와 교회 행사 안에서 가족이 함께 하는 캠프나 프로그램을 만든다.
9.가정에서는 가족이 함께 모이고 기도하는 날을 정하거나 습관화하여 가족 구성원의 화목과 일치를 도모하도록 한다.
10.교회의 전례행사, 기도모임, 반 모임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계속 바치도록 한다.
11.북한 동포의 양식을 지원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여 통일 기금 마련을 계속한다.
류 신부는 이러한 사목 방향에 맞추어 부임 전 김 신부가 실시해오던 구역미사봉헌과 첫째주일의 가정미사 봉헌을 그대로 계속하였다.
전 신자 성서 읽기와 성서 쓰기
미사 후 성서 읽기도 계속해 나갔으며 2000년 4월 9일부터는 주보에 일주일분의 읽기 일정표를 안내하였다. 아울러 성서 쓰기 운동도 전개하여 ‘99년 7월 11일에는 성서 필사본을 마당에서 전시도 하였다.
‘00년 8월에는 익명의 교우가 성서 70권을 기증하여 성당 의자 1칸에 1권씩 번호를 매겨서 비치하였다.
나눔의 묵상회 재 창립과 빈첸시오회의 활동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빈체시오회와 나눔의 묵상회가 까리따스회로 소속되면서 기존의 해오던 활동마저 미미해지고 활성화되지 못하자, ‘99년 5월 18일 까리따스 임시총회가 열리고 6월에 나눔의 묵상회는 재창립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까리따스회는 해체되고 빈첸시오회와 나눔의 묵상회가 본래의 설립 취지대로 각각 독립하여 그 본연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나눔의 묵상회는 6월 13일 제 50차 월례회의를 시작으로 매달 모임을 가졌다,
빈첸시오회는 명예회원을 새롭게 모집하여 ‘99년 6월까지 96명이 되었고, 6월 19일과 20일에 굴비 판매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과 구정 명절마다 굴비판매를 고정적으로 하게 되었다. 12월3일과 4일에는 시립대 사회복지과 도움으로 김장 700포기를 담가 중랑구 내 독거노인 60명과 본당 교우(혼자 사는 할머니 및 생활보호대상자)20명에게 전달하였다. 갈치젓갈은 성모회에서 기증하였고 레지오 단원들은 노력봉사를 했다. 활동 보고서는 7월 4일 주보 8면에 싣기 시작하였고 매달 1번씩 활동 상황과 지출 내역을 보고하였다.
성모회 장학생
성모회에서는 그동안 우리 농산물 판매와 성물 판매 이익금을 적립하여(2000년1월30일 5년 만기 예탁금;38,027,710원) 장학회를 설립, 묵동 성당 관할 지역에 거주하며 성적이 우수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신자 가정의 중고생 각 1명과 비신자 가정의 중고생 각 1명씩을 추천받아 성적 증명서를 참고로 하여 선발하였다. ‘00년 1월 총 4명을 지원하였다.
사순 특강
‘99년도 사순 특강은 예년과 달리 본당 역대 신부들을 강사로 초빙하는 특별강론으로 사목협의회 교육 분과에서 기획하여 실시하였는데, 그 일정과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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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신부님 주제 본당 봉직 기간
2.24(수) 김세진 가브리엘 신앙인들이 준비하는 죽음의 자세 88.2-89.2
3.4(목) 장홍선 요셉 사순절을 맞이하는 신앙인의 자세 87.2-92.10
3.11(목) 윤재한 보니파시오 고백 89.2-91.2
3.18(목) 김태수 요셉 나눔, 절제, 화해, 일치된 삶 95.2-96.3
3.25(목) 송영준 비오 성모신심 91.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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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조배와 기도 모임
‘99년 8월부터 본당 공동체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매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 30분까지 성당 감실 앞에서 지속적인
성체 조배와 기도 모임을 상설하였다. 이 시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시간에 즈음한 시각으로 기도 순서는 묵주기도 5단(묵주 기도 1억단 바치기의 지향과 본당 선교 활성화를 위해),예수 수난 15기도, 자비의 기도, 성체 조배 순으로 하였다.
성모성월기도
5월 성모성월 행사로 5월 1일부터 5월 29일 (성모의 밤)까지 단체, 구역 별로 다음과 같은 지향으로 기도하였다.
1.세계 평화를 위하여 2.가정의 일치와 사랑을 위하여 3.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을 위하여
* 예수성심성월 기도
예수성심성월을 맞이하여 매일 성당에서 예수 성심 성월 기도를 하였다.
기간 및 시간; 6월 1일-30일 오후1;30-3시
기도지향 ;1.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2. 성직자, 수도자를 위하여
3. 가정 성화를 위하여 4.본당 선교의 활성화와 일치(사랑)
5.냉담자 회두 6.각 구역 발전과 소공동체 활성화
대희년 맞이 묵주기도 1억단 봉헌
서울 교구는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대희년을 뜻있게 맞이하고 나아가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결의를 다지는 일환으로 기도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본당도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6월 1일부터 1999년 12월 24일 대희년 개막 직전까지)
1.기도지향;. 대희년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하여
.실직자와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위하여
.북한 동포를 위하여
.모든 이의 회개와 화해를 위하여
. 도덕성 회복과 사회 교리 실천을 위하여
2. 1억단의 의미; 현재 우리나라 250만 신도가 참여, 대희년을 기쁘게 맞기 위함이다.( 묵동 성당 교우들은 한달 평균 60 단 하루에 2단씩 바치면 됨.)
3. 집 계; 각 구역별 봉헌 실적을 여성구역 분과장에게 매월 보고
*대희년 맞이 9일 기도를 12월 15일-23일 오후 7시 미사 후 성당에서 전 신자가 하도록 했다.
묵주기도 3억단 바치기 운동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에서 평신도 스스로의 내적 성화와 교회 쇄신을 위하여 대희년 평신도 준비로 2000년 6월 25일부터 2001년 1월 5일까지 묵주 기도 3억단 바치기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지향; 하나 되게 하소서-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새 천년기 새 복음화를 위하여
본당에서는 매달 기도표를 회수하여 묵주 기도 봉헌함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대림절 특강(‘99년도)
날짜 요일 주제 강사
12/1 목 대희년을 맞이하는 신앙인의 자세 성염 요한보스코( 서강대 철학과 교수)
12/9 목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강영옥 루시아 (우리 신학연구소 연구위원장)
12/16 목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모자웅 예수미카엘 신부 (살레시오 수도회 돈보스코 관장)
봉헌을 위한 영성 수련 묵상회
사목협의회는 ‘영성수련묵상’을 통한 신앙쇄신으로 자기인식을 새롭게 하기위하여 묵상회를 기획하여 실시하였다.
일시;99년 8월 10일 -9월 28일 (매주 화요일 오후7;30-10시,8주간)
장소;묵동 성당
지도;파티마의 세계사도직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
일 시 묵상주제 내용
8월 10일 봉헌입문 33일 봉헌의미와 중요성
8월 17일 세속정신 없애기1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배치되는 세속정신에서 벗어나게 함
8월 24일 세속정신없애기2
8월 31일 자신을 알기 자기 인식과 자기 죄에 대한 통회를 간구함
9월 7일 마리아를 알고 사랑하기 마리아를 알기에 힘씀, 마리아는 예수님께 이르는 길
9월 14일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기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분을 알기에 힘씀
9월 20일 봉헌피정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완전 봉헌을 위한 준비피정
9월 21일 봉헌미사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우리를 온전히 봉헌함
9월 28일 봉헌의 생활화 봉헌의 삶을 살아가려면…
*견진성사(99.9.18) 시에 견진 교리로 8월 10일의 ‘봉헌을 위한 영성 수련 묵상회’로 대신하였고 김 옥균 주교 집전으로 221명이 받았다.
피정과 교육
‘99년 5월의 성모성월 대피정과 11월의 위령성월 대피정이 성령기도회 주최로 있었으며,10월에 묵주기도 성월 철야 대피정이 성소 후원회 주최로 있었다.
‘99년 5월 중고등부 피정이 신길동 살레시오회관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관심이 있는 자”라는 주제로 ,’00년 1월에는 2박3일로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피정이 있었다.
2000년 3월 19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예비자 하루 피정과 6월 10일 성령강림 철야 대피정(10일오후9시-11일 오전 4시)이 한연흠 다니엘신부(수원교구 성령 쇄신봉사회)의 ‘성령을 받아라’ 라는 주제로 있었다.
교육으로는 꾸리아 주최 선교 교육이 레지오 단원과 전신자 대상으로 ‘99년 3월 7일 있었으며(강사;팽종석 그레고리오)
9월18일 견진성사를 받은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한 중고등부 견진자 재교육이 10월 17일부터 11월 28일 까지 총6회 있었다.
선교 방법 및 참고 내용과 선교 운동 기도문이 ‘99년 8월1일 주보8면에 소개되었다.
성가경연대회
‘99년 11월 20일 제2회 구역 성가 경연대회가 구역 소공동체들의 화합과 일치를 통하여 2000년 대희년을 성스럽게 맞이하기 위하여 개최되었다. 이에 앞서 5월 30일에는 중.고등부 성가경연대회가 개최되었다.
헌미 쌀 봉헌
‘99년 7월에는 각 가정에서 매 끼니 마다 예수님 몫으로 성당 지하에 마련되어 있는 봉헌함에 봉헌하여 쌀이 필요한 사람은 이틀 정도의 양식을 가져가도록 배려하였다.
본당 관할 지도제작
‘99년 10월 본당 관할 지도가 제작되어 지하 교리실 벽에 설치되었다.
‘통고의 성모’ 공경예절
‘99년 본당 설립 24주년을 맞이하여 통고의 성모 마리아 축일인 9월 15일에 꾸리아 ‘통고의 성모’와 ‘바다의 별’에서
예비자 661명을 봉헌하며, 성모상 앞에서 성모님 공경 예절을 거행하였다.
주일학교와 청년 단체 활동
‘99년 6월 20일 청년들과 중.고등 주일학교 학생들이 중화고등학교에서 연합 체육대회를 가졌으며, ’00년 6월 18일 남양성모 유원지로 청년 성지순례가, 8월4일부터 6일까지 중.고등부 도보성지순례가 전주에서 나바위 성지까지 있었다.
‘00년 3월부터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이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위해 매달 첫째주일을 가족과 함께 참례하는 가정미사로 봉헌하였다.
성전 보수 공사
1999년도와 2000년도에 실시된 성전보수공사는 다음과 같다.
‘99.3.15-16 주택기와 공사(수녀원, 시제관, 식당, 보좌신부관)
‘99.3,17-20 철 대문 공사(사제관입구)
‘99.11.29 성당 천정 공사(성당 제대 앞)
2000.1.31 3주간의 일정으로 성당 공사-소성당에서 미사
2000.1.27 성당 천정공사
2000.4.18 본당 장궤틀 교체-헌 것은 충주공소에 13개, 진천 공소에 26개가 기증되었다.
2000.9.25 지하실 도색 공사-전체
* 1999년 12월 19일까지의 성당 보수 건축 기금 봉헌금은 7,608,000원이 봉헌되었다.
보좌신부와 수녀의 이동(1999년-2000년)
2000년2월 21일 황영선 카타리나 수녀와 김현숙 사비나 수녀가 이임하고 최상순 수산나 수녀, 황정섭 루피나 수녀가 부임했다.
1997년 11월 28일 사제 서품 후 본당에 부임했던 조유관 베드로 보좌신부가 2000년 2월 29일 문정2동 보좌신부로 이임했으며, 3월 1일 해외선교 사목을 하던 이윤헌 아우구스티노 보좌신부가 부임하였다.
2000년 사목협의회를 새로 구성
‘98년 12월에 구성된 사목협의회가 ’99년 11월 24일 사임(회장. 부회장. 총무)하였으며, ‘2000년 5월 새로이 구성하여 사목위원 및 남성 단체장들이 용인 성모 영보원 및 미리내 성지에서 피정을 했다.(45명 참가)
총회장; 김동원 루까
부회장; 이승우 비오, 정운심 사비나
총 무; 김성기 그레고리오 부총무; 박영옥 데레사
전례분과; 이상민 나자로
선교분과; 김낙평 안드레아
교육분과; 박재익 마태오
구역분과; 권혁배 요한보스코
청소년분과;김요철 다니엘
노인분과;김정희 마리안나
재정분과;이태수스테파노
시설분과;김영길 미카엘
본당 3번째 꾸리아 탄생
2000년 8월 13일 남성 꾸리아 ‘평화의 모후’가 창단되었다.
첫 서원과 종신 서원
본당의 김지현 율리안나( 살레시오 수도회)가 2000년 1월 28일 광주청소년 수련관에서 첫 서원을 하였으며, 김정애 마리아 보렐로 수녀가 4월 4일 스승 예수 수녀회에서 종신허원을 하였다.
2차 헌금 금년(2000년) 말까지로
그동안 본당의 부채 상환을 목적으로 ‘97년부터 해오던 2차 헌금을 금년(2000년) 말까지로 만 하고 부족한 예산은 2001년도 교무금 책정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류영도 디오니시아 주임신부의 은퇴
류 신부의 은퇴미사가 ‘00년 9월 24일 오전 10시에, 새로 부임한 김완석 시몬 신부의 집전으로 봉헌되었으며, 미사 후에 은퇴식과 함께 국수 잔치가 있었다.
제9대 김완석 시몬 신부의 부임(2000.9.19- 현재)
김완석 시몬 신부부임
김완석 시몬신부는 1992년 7월 3일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둔촌동 천주교회), 화곡동 보좌. 명동 보좌, 혜화동 보좌를 거쳐 1998년 11월 20일부터 혜화동 본당 부주임으로 재직 중, 2000년 9월 19일 제9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했다. 환영미사는 10월 1일, 교구 사무처장 신부와 관리국장 신부가 공동으로 집전하였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성당 만들기
부임하자마자 10월 4일 첫 직원회의(원장 수녀, 사무장, 사무원, 여성구역장 참석 )를 시작으로 본당 업무에 들어갔다.
2000년 10월 10일, 주님의 성전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자는 취지 하에 전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주보에 ‘본당 대청소’ 공지를 하고, 많은 교우들이 참여한 가운데 구석구석 깨끗이 본당 대청소를 실시하였다. 김 신부는 ‘본당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존하는 것은 우리 교우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교우들에게 늘 주지시켜왔다. 따라서 청소는 매주 월요일마다 2개 구역씩 돌아가며 실시하기로 하고 ,일년에 두 번 부활이나 성탄 때 몇 단체에서나 실시했던 대청소를 전교우가 함께 참여하는 행사로 만들었다. 교우들 각자가 성당을 내 집처럼 주인의식을 갖고 깨끗하게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매주 주보 상단에는 ‘구역별 성당 청소-기쁜 마음으로 참여를’ 이라는 난으로 청소할 구역이 공지되고, 지난 주 구역별 청소 참가자수도 기록했다. 교우들은 주임신부가 마당에서 쓰레기를 줍고, 화단의 꽃을 심고 가꾸며 풀 뽑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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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직원 이동
‘78년에 부임하여 22년간 본당 사무를 맡아오던 김형보 라우렌시아 사무장의 은퇴미사가 ’00년 10월 29일 10시에 있었으며, 11월 1일 조원복 보나벤뚜라가 새 사무장으로 부임하였다.
‘02년 7월 11일 사무원 윤수미 에스텔이 퇴직하였고, 이현진 사비나가 부임하였다.
미사 전례는 정성껏
김 신부가 부임하여 가장 강조하여 온 것은 모든 전례는 항상 ‘천천히’, ‘정성껏’ 거행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도는 한 구절 한 구절을 천천히, 숨을 쉬면서 정성껏 할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기존의 사용하던 헌금봉투는 없애고, 헌금은 집에서부터 정성껏 준비해오도록 하였으며, 전 신자 성서읽기는 미사 후에 읽던 것을 미사 15분전에 읽도록 하였다. 부채 상환 목적으로 실시하던 2차 헌금을 10월 말로 폐지하였으며, 저녁 7시에 봉헌되던 저녁 미사 시간을 대림1주일(12월 2일) 토요특전미사부터 오후 6시로 변경하였다.
2001년 2월부터는 금주와 다음 주 미사성가를 다시 주보에 안내하였다.
사목협의회 구성
2001년 3월 사목회 총회장 (김동원 루가)이 덕정으로 이사를 가 사임하였으나 사목협의회를 그대로 유지하다가 2001년 10월에 새로이 구성하였다.
사목협의회 임원 명단과 각 분과 관련 단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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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협의회 임원>
총 회 장: 이해룡 바오로
부 회 장; 박헌수 스테파노, 김석환 베네딕도, 김요철 다니엘, 김성기 그레고리오, 윤광자 스테파니아
기획분과장; 이상구 에제키엘
전례분과장: 이상민 나자로
선교분과장; 문순애 벨라뎃다
교육분과장; 서태호 안드레아
남성구역분과장; 이상건 바오로
여성구역분과장; 오춘희 안나
청년분과장; 김동진 요아킴
주일학교분과장; 유재춘 바오로
사회복지분과장: 황치경 프란치스코
재정분과장: 한창희 아우구스티노
성전보존분과장; 김종진 베드로
남성 총무: 김낙평 안드레아
여성 총무: 박영옥 데레사
<단체 및 과련 사목협의회 분과 현황>
기획분과-사진동호회
전례분과-해설단, 독서단, 복사단, 글로리아 성가대, 임마누엘 성가대, 반주단, 헌화회, 장례미사봉사단, 연령회
선교분과-통고의 성모 꾸리아, 평화의 모후 꾸리아, 바다의 별 꾸리아, 성령기도회, 성모회, 파티마 사도직
교육분과-울뜨레아, ME, 성소후원회
남성구역분과:1구역-20구역
여성구역분과:1구역-20구역
사회복지분과-빈첸시오, 노인대학, 나눔의 묵상회
청년분과-청년연합회, 전례단, 청년레지오, 실로암성가대, 굿패 휘모리, 먹골리카, 청년성서모임, 묵사커
주일학교분과-초등부교사회, 중등부교사회, 자모회, 로사리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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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에 약간의 개편이 있었는데 부회장에 김형국 세례자 요한이, 청년분과장에 정덕진 루피노가, 주일학교 분과장에 김보영 베드로가 새로 선임되고 대부분 유임되었다.(부회장 김석환 베네딕도, 교육분과장 서태호 안드레아, 청년분과장 김동진 요아킴, 주일학교분과장 유재춘 바오로가 사임)
장례 미사 봉사단의 창단
장례미사 때에 장례 예식을 도와주는 봉사단체 ‘01년 11월1일 창단(단장; 김흥식 베드로)되어 보다 효율적으로 경건한 장례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윤헌 아우구스트 보좌 신부가 영명축일 축하금으로 장례미사 봉사자들의 예복을 선물하였다.(2,400,000원)
가정방문과 반미사 봉헌을 통한 소공동체 모임의 활성화
2001년 3월 9일부터 김 신부는 사무장과 여성 구역장, 반장을 대동하고, 20구역부터 가정방문을 시작하였다.
가정방문 시 가족 사진을 보며 그 구성원을 파악했으며, 각 가정마다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꼼꼼하게 구역별로 계획된 가정 방문은 2년이 걸려서야 끝났다.
김 신부는 ‘02년도 본당 사목 목표를 ‘소공동체 모임의 활성화‘ 에 두었다. 적극적인 소공동체 모임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02년부터 매달 여성구역 반모임 현황 (모임 일시, 장소, 연락처)을 일괄 작성하여 주보 간지로 끼워 발행하였다. 남성구역 소공동체 모임은 날자 별로 구역별로 매주 공지되었다.
‘02년 10월부터는 매주 금요일을 반모임의 날로 지정하여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은 모여서 신앙생활을 격려하고 친교를 나누도록 하였다. 가정 방문이 끝나고 ’03년 3월부터는 매주 화, 목요일 저녁 8시에 구역 반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하였다. 원장수녀와 총회장이 수행하였고, 남자 교우들이 많이 참석하여 남성구역 소공동체가 활성화하는 계기를 이룰 수 있었으며, 가정에서 반원들끼리 봉헌하는 작은 미사는 아주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사순시가와 대림시기
대림시기에는 찰고지가 구역반장을 통해 배부되어 온 가족이 함께 문제를 풀도록 유도하였다.
찰고지의 문제는 그 시기의 상식, 구약과 신약 성서, 교리와 성사, 교회의 가르침, 교회의 용어에 관한 문제를 골고루 출제하였고, 평일미사 때에 3문제씩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풀어 주었다. 맨 마지막 한 문제는 가족이 함께 모여 대림 시기를 어떻게 준비했는가를 쓰게 하였으며, 김 신부는 항상 꼼꼼하게 읽은 다음 싸인과 축하 인사 한마디를 적어 주어 교우들을 기쁘게 하였다. 2000년도 대림 찰고지 제출자는 363명이었으며 시상품은 성모자상, ‘04년도 제출자는 459명으로 시상품은 그리스도왕 상으로 성탄절 오전 10시 미사에 시상식이 있었다.
‘00년도의 대림 시기에는 ‘전례’에 대한 특강이, ‘01년도 사순시기에는 ’신약성서‘ 강좌가, 대림시기에는 ’순교자들의 영성‘에 관한 특강이 있었다.
2002년 사순시기에는 구약성서 강좌가, 2003년 사순시기에는 ‘생활 속의 기도’에 관한 특강이, 2004년에는 ‘가정’에 관한
특강이, 2005년에는 ‘영성’에 관한 특강이 있었다. 연도별 사순과 대림 특강은 다음과 같다.
<사순과 대림특강>
날짜 시간 주제 강사
‘00.12/7(목) 오후 8시 말씀전례 김완석 신부
‘00.12/14(목) 오후 8시 성찬전례 이윤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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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6(화) 오후8시 신약성서입문 김완석 신부
,01.3/13(화) 공관복음서(마태오,마르코, 루가) 윤일선신부
‘01.3/20(화) 사도행전 허영엽신부
,01.3/27(화) 요한복음서 안병철신부
‘01.4/3 바울로 편지 1 배에밀리야 수녀
‘01.4/10 바울로 편지2 배에밀리야 수녀
‘01.4/17 히브리,야고보,베드로,요한,유다서 윤 세레피나 수녀
‘01.4/24 요한묵시록 이윤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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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2/13(목) 순교자들의 영성과 우리의 신앙생활 김길수(사도요한) 교수
‘01.12/20(목) 순교자들의 영성과 우리의 신앙생활 김길수(사도요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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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19 구약성서와 모세 오경
,02.2/26 창세기
,02.3/5 출애굽기
.02.3/11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1)
‘02./3/19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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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11.18.25 생활속의 기도 김보록 바오로 신부(살레시오회)
‘04..3.2 우리 가정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 서울 대교구 가정 사목국
,04.3.9 우리 가정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인가?
‘04.3/16 우리 가정의 핵심역량을 찾아서
‘04.3/23 우리 가정의 신화 새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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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8 한국인의 심성과 영성 최기섭 세례자요한 신부
‘05.3/15 현대인의 영성 곽승룡 비오 신부
‘05.3/22 사도들의 영성 정연혁 베드로니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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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읽기와 ‘성서 40주간’
미사 전에 전교우 성서 읽기는 구약과 신약성서를 5년에 걸쳐 진행되어 마치고. ‘03년 8월 3일 주일부터 창세기 1장 1절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04년 9월 1일부터 본격적인 성서공부를 위하여 ’성서 40주간‘을 시작하였다. ’영원한 도움의 수녀회‘에서 강의를 맡아 매주 수요일 10시 미사 후부터 12시 30분까지 강의와 그룹별 토의로 진행되었다. 298명이 수강하였다.
피정과 교육
사목위원 및 단체장 피정은 매년 1월중에 1박2일로 시행되었고. ‘02년 4월에 여성구역 반장들의 소록도 현장 체험 순례교육이 있었다. ‘03년 4월에는 가평고향마을 피정의 집에서 1박2일로 여성구역반장들의 피정이 있었다.
‘01년 4월 21일 1박2일로 레지오 봉쇄 피정(꼬미시움 주최)이 고향마을 피정의 집에서,’03년 6월 통고의 성모 꾸리아 봉쇄피정이 대전 살레시오회 수련원에서 1박2일로 있었으며,‘03년 3월 1일에는 ’평화의 모후‘ 꾸리아 토론대회가 소성당에서 있었다. 노인대학 피정은 ‘01년 6월23일 고향마을에서, ’02년 6월 16일 횡성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1박 2일로 있었다
전신자 대상의 피정은 ‘01년 5월 29일 성령강림 피정, 6월6일 성가정을 위한 1일 피정 “본당은 우리"(ME주최), ’03년 5월 12일 성모성월 피정이 (배론성지의 김진석 요셉 신부 지도) 본당에서 있었다.
교육으로는 ‘01년 11월25일 본당 전례단 교육이 소성당에서 전례단, 해설단, 전례에 관심이 있는 모든 교우들을 대상으로 있었고, ‘03년 5월 22일 자모회의 PET 교육이 “보다 나은 자녀와의 대화법”이라는 주제로 있었다.
‘04년 2월 18일과 ’05년 1월 22일에는 꾸리아 합동으로 주임신부의 본당 사목목표 해설 교육이 있었다.
본당 로고 제정
‘묵동의 지역과 교회의 이미지가 표현’된 묵동 본당을 상징하는 로고의 공모를 ‘01년 7월 주보에 공고하였으나 응모작이 적어서 마땅한 당선작을 뽑지 못하다가 ’02년 1월 27일, 다음과 같은 ‘본당로고’를 확정하여 주보 8면에 발표하였다.
1. Mookdong의 첫 글자인 “M"
2. Mother(어머니이신교회)의 첫 글자인 “M"
3. 본당주보인 성모통고의 상징인 가시관을 단순화시킨 모습 **** 로고 그림
4. “1975”라는 숫자는 본당의 설립년도이며
5. 바탕은 세상의 빛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미지이다.
*대문에 부착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으며, 묵동 천주교를 상징하는 인쇄물이나 표지판 등에는 본당로고가 사용되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와 몬시뇰 임명
서울대교구는 2000년 1월 교구장 사목교서에 교구 시노드 개최를 선포하였고, 본당은 ‘01년 5월 22일 16명의 시노드 본당 준비 위원회를 구성, 첫 모임을 가졌다. 6월 16일 특전미사와 17일 주일미사 강론 시간에 “시노드에서 무엇을 다루면 좋을지”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적어내는 제 1차 전 신자 대상 의견 수렴의 일정을 가졌다.(1368명 제출)
‘01년 12월 5일 본당 시노드 위원 교육이 가톨릭회관에서 있었다.
정진석 서울 대교구장은 ‘02년 1월 1일 ’서울대교구 사목체계 쇄신에 관한 교령‘을 발표하였고, 1월 25일 염수정 안드레아 신부와 이한택 요셉 신부를 주교로 서품하였다. ’02년 2월 1일자로 직능 및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 소임을 발표하였다. 서울대교구를 4개의 지역으로 설정하고, 지역담당 교구장 대리로 네 명의 몬시뇰을 임명하였다. 그 지역과 담당 교구장 대리는 다음과 같다. (이에 앞서 이 4명의 몬시뇰은 2001년에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임명, 서울대교구는 ‘01년 8월 24일 명동성당에서 축하미사를 봉헌하였다.)
경기도지역-김병도 몬시뇰
동서울지역-황인국 몬시뇰(5지구-동대문구, 중랑구, 8지구-성동구,광진구,9지구-강동구,10지구-송파구,11지구-강남구)
서서울지역-박순재 몬시뇰
중서울지역-안경렬 몬시뇰
동서울 5지구인 묵동본당은 황 인국 몬시뇰 담당으로, 황 몬시뇰은 2002년 7월 21일 본당을 방문, 10시 미사를 주임 신부와 공동 집전하였다.
‘03년 본당의 날 행사 ’나눔의 큰잔치‘
김 신부는 선교에 중점을 두어 ‘02년에는 “우리가 먼저 사귐과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어 ‘아름다운 작은 교회’의 모습을 실현한다면 그 자체가 훌륭하고 힘 있는 선교가 될 것”을 피력했으며, 03년에는 “실천하는 신앙이 곧 선교활동”임을 밝힌 바 있다.<*사목계획서 참조> ‘03년 본당 사목 계획 ’본당 공동체의 사랑과 나눔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본당의 날 행사’ 로 ‘나눔의 큰 잔치’를 마련하였다. 사목협의회 주관으로 6월 초부터 준비위원들이 회의를 시작하여, 7월 20일부터 나눔의 큰잔치(바자회)의 일시와 장소를 주보에 공지하였다. 행사를 준비하는 사목위원들과 구역 반장들에게 많은 격려와 협조를 부탁하면서 ‘이웃돕기 성금’ 과 바자회를 위한 물품접수를 9월 12일부터 시작하였다.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의 정신을 실천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고, 소공동체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10월 12일 신묵초등학교 교정에서 ‘나눔의 큰잔치’를 개최하였다. 먹거리와 물품을 구역별로 열성을 다하여 판매하였다. 이 날 수익금은 총 61,389,800원으로 그 일부가 아프리카 난민에 500,000원, 신내 노인 요양원에 200,000원, 선교 수사회에 286,500원이 지원금으로 보내졌다. 본당 관내 어려운 이웃에게는 쌀 20kg짜리 1.083포가 404 가정에 배달되었다.(신자가 아닌 가정도 포함) *어려운 이웃돕기 구역별 지원 결산 ‘03년 11월 3일 주보 별지에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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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신축으로 어려운 본당 돕기
본당에서는 성당 신축이나 보수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본당들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00년 12월 10일 춘천교구 내면 성당 보수 및 사제관 건립을 위한 기금마련에 젓갈 350개와 동판 액자 57개가 판매되었다. ‘01년 1월 21일에는 면목 4동 성당 본당 신축 기금모금을 위해 2차 헌금 12,343,460원과 물품 판매액은 2,300,000원이었다. ’01년 3월3일 대전교구 금산성당 성전건립을 위한 특산물 판매액은 60,000,000원이었다.
육군 6사단 청성 성당과 자매결연
‘04년 11월 28일 10시 미사 후 군 사목을 위해 애쓰는 군종신부와 군 장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자매결연을 맺었다.
군 장병들에게 보낼 성탄 선물로 교우들로부터 3,000원 상당의 위문품과 성탄 카드를 접수받아 12월 21일 위문품 700봉지와 돼지1마리를 청성성당에 전달하였다.
‘05년 4월 7일에는 여성구역반장들(65명)이 청성부대를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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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합동 위령미사와 상차림 예물 봉헌
설과 추석 명절에는 위령 합동미사 봉헌물(쌀이나 기타 곡식,과일)을 구역별로 지정해서 봉헌 받아 상차림을 하였다. 구역이나 개인으로부터 접수된 봉헌금은 ‘02년 설에는 2,337000원 ,’03년 설에는 1,860,000원, 추석에는 1,160,000원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였다.
‘04년 설에는 3,040,130원의 봉헌금으로 63가정에 쇠고기, 굴비. 떡, 쌀, 과일 등을 구입하여 전달하였다.(빈첸시오 회원들이 봉사). 추석에는 3,593.000원의 봉헌금과 구역의 상차림 물품 봉헌을 합하여 어려운 62가정에 전달하였다.
미사 후 차를 나누며 이야기를
“신앙인 공동체로서 기쁨을 나누는 따뜻한 본당”을 강조하는 김 신부는 ‘01년 8월부터 10시와 12시 미사 후 성당 마당에서 차 봉사를 실시하였다. 교우들은 잠깐이나마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매주 주보에 금주의 차 봉사 구역과 다음주의 차 봉사 구역이 공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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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상 축성과 본당보수 공사
‘01년 2월 8일 중곡동 성당에서 성모상을 기증받아, 성모동산을 새로 조성하였다. 5월 26일 성모의 밤 행사 때 성모상 축성식을 하였다.
‘01년 6월 16일과 17일 남자 교우들은 지붕청소, 여자교우들은 담장청소를 하였다.
본당 보수공사는 성모회가 물품 판매수익금을 기증하여 ‘01년 5월 18일부터 착수하여 9월 말까지 하였는데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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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공사 수지내역>
수입 성모회 64,780,230
푸른군대 12,000,000
성전보수헌금 28,625,500
계 105,405,730
지출 성모동산 및 조경공사 15,903,000
지붕공사 46,067.600
페인트 공사 6,719,000
돌 계단공사 6,426,500
마당 보도블럭공사 17,200,000
성당딧편 통로 지붕공사 5,542,900
성물, 농수산물 판매소 8,201,450
사무실 구조변경, 도배 4,491,500
성가대 의자, 마이크설치 1,391,000
계 111,94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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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년 7월 수해가 나서 본당 지하실과 성물 판매소, 제관. 주방 지하실이 물에 잠겨 물 퍼내기 작업을 하기도 했다.
‘02년 3월 18일부터 4월 20일까지는 소성당 ,주방 및 지하 강당의 실내 장식을 새로 하였으며 탁자와 의자를 교체하였다. ’04년 3월 8일부터 3월 22일까지는 엠마오 교실의 내부수리와 본당의 전면 도색 공사를 하였다.
‘05년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는 소성당과 교사실의 바닥 타일 공사를 하였으며, 14일부터 17일까지는 소성당, 지하실 도색 및 사무실 화장실을 서고로 구조변경 공사를 하였다.
그밖에 ‘01년 4월 10일 제대 십자가 가림 천을 설치하였고, ’05년 3월 3일에는 독서대와 성상좌대를 대리석으로 교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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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 신부 사제 서품 10주년 축하 미사
‘02년 6월 30일 오전 10시에, 김완석 시몬 주임신부의 사제서품 10주년 축하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후 축하식에 전교우가 영적 꽃다발을 엮어 선물했다. < 미사영성체 1번, 활기도 3번, 묵주기도 5단, 작은 희생3번, 사제를 위한 기도 3번, 주모경 5번>
본당 수도자의 날 제정
10월 1일을 본당에서 애쓰는 수도자를 위한 날로 정하여 ‘02년부터 행사를 실시하였다.
‘02년에는 9월 29일 10시 미사 후에 축하 행사를 하였으며 교우들은 영적 꽃다발을 선물하였다.<묵주기도 5단, 미사 영성체 1번, 수도자를 위한 기도 3번, 작은 희생 3번, 화살 기도 3번>
103위 시성 초 봉헌
순교자 축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03년부터 순교자 대축일에 부부(103쌍)들이 103위 순교 성인들이 새겨진 초를 제단에 봉헌하는 예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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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신자 음악 피정
‘03년 12월 19일, 생활음악 연구소의 복음적 사랑과 봉사가 넘치는 음악 피정이 낮과 밤으로 두 차례 있었으며,(500명 참가) ‘04년 8월 29일에는 토요특전과 주일, 전 미사가 음악미사로 봉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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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교실 폐쇄
‘98년 3월에 개원, 본당 교우들의 후원으로 운영되어 왔던 지체발달장애 어린이를 위한 엠마오 교실이 ‘04년 2월 20일 ‘무인가’복지 시설이라는 점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문을 닫았다.
무료법률상담개설
‘ 04년 5월부터 교우들의 편의를 도모하기위해 본당에서 무료 법률 상담소를 운영하기로 하였다.
방문 상담과 전화상담으로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2시에서 5시까지 운영되고 있다.
전 신자 성지순례
전 교우가 참여하는 성지순례는 ‘03년 5월 25일 풍수원 성당(1200명 참가)을 시작으로 ‘04년 5월 2일 해미 성지(1036명 참가), ’05년 5월 22일 미리내 성지 등 세 번 있었다. 첫 성지순례 때인 풍수원에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솔밭에서 야외미사를 봉헌했다. 1909년에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 나무를 해오는 등의 열정으로 지어진 고풍어린 성당은 빗속에 운치를 더했다. ‘04년의 성지순례는 ’해가 반짝 나라‘ 고 해미로 정했다는 주임 신부의 걱정 어린 농담 속에 해미로 떠났다. 약간 비가 뿌리는 날씨였지만 각 구역별로 주임 신부, 보좌 신부,원장 수녀와 함께 단체사진을 촬영하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좋았다.
전 교우가 버스(25대)로 움직이는 행사여서 가장 큰 걱정은 안전사고로 모든 준비와 계획은 주임 신부의 지휘 통제 하에 사목협의회주관으로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먼저 성지순례를 신청한 교우들은 전부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였고, 1구역부터 20구역까지 출발시각과 장소를 달리하여 한 주 전에 공지하였다. 버스 안에서는 구역장의 주송으로 성가, 기도, 봉헌이 있었고, 성지에 도착해서는 십자가의 길, 경당 참배 후 성지를 돌아보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또한 구역 반 식구끼리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를 하는 동안 주임 신부와 총회장, 원장 수녀의 구역 순례는 항상 정해진 순서로 진행되었다. 특히 미리내 성지에서 이화자 데레지나 원장 수녀가 젓가락 하나만 들고 20구역을 순례, 점심을 해결하던 모습을 교우들은 아마도 오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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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들의 성지 순례 및 야유회와 행사들
매년 1월1일에는 10시, 12시 미사 후에 신부와 신자들의 하례식이 있었다. 한복을 입은 신부와 신자들이 함께 세배를 하였으며 주임신부는 늘 신자들에게 세뱃돈이나 선물을 주었다.
‘01년 5월 9일 노인대학 야유회(포천)가 어버이날 행사로 있었으며,7월 8일에는 노인대학 20주년 축하연이 본당에서 있었다.’01년 5월 17일 구역반장(천호성지)과 6월 17일 예비자 (미리내)성지순례가, 5월 20일에는 꾸리아 합동야외행사가 포천 백로주 유원지에서 있었다.
‘02년에는 4월 17일 노인대학 봄 소풍이 남이섬에서 6월 19일부터 1박2일로, 횡성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노인대학 여름캠프가, 10월 2일에는 남양 성모동산에서 성지순례가 있었다. 5월 26일에는 꾸리아 야외행사, 4월17일에는 예비자 성지순례 (미리내)가 있었다.)
‘03년 4월 24일 자모회의 불암산 등산, 4월 27일 해설단 성지순례(죽선성지, 감곡성당), 6월 예비자 성지순례와 성령기도회 성지순례가 해미에서 각각 있었다. 노인대학은 4월30일 강화도 마니산 봄소풍, 9월 24일 아산 공세리 성당으로 성지순례를 갔다. 5월 7일 어버이날 효도 잔치(본당 독거 노인과 노인대학학생들)로 빈첸시오회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동서부페)
‘04년도에는 2월8일 정월 대보름 윷놀이 대회가 구역대항으로 있었으며 자모회는 봄소풍(4월)과 성지순례(10월)를, 노인대학이 봄가을로 소풍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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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우가 참여하여 기쁨을 나누는 체육대회
‘02년 10월 20일 본당의 날 행사로 전교우 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제1부 미사 및 개회식으로 2부 체육대회 제3부 경품권 추첨이 있었다. 체육대회는 1구역부터 6구역은 1지역으로, 7구역부터 11구역은 2지역으로, 12구역부터 15구역, 그리고 구역 외는 3지역으로, 16구역부터 20구역은 4지역으로 나누어 경기를 진행했다. 전 신자가 참여하는 흥겨운 놀이마당, 한마음 달리기( 남여 30명씩 지역별로 이어 달리기), 줄다리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전체가 하나가 되어 화합을 이루는 체육대회가 되었다.
‘02년도 본당의 날 체육대회 팜플렛에 각 구역 별로 다음과 같이 자기 구역을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성지순례 잘 다니는 구역 제1구역(남‘99년 여’97년 시작)
구역모임 잘하는 제 2구역(남‘97년 여’75년 시작),
본당 청소 잘하는 제 3구역(남‘97년 여84년 시작),
봉화산 정화에 앞장서는 제 4구역(남,97년 여’82년 시작),
우수구역 자처하는 제5구역(남‘98년 여‘82년 시작),
십자가의 길로 가는 제 6구역(여’99년 시작),
연령회 후원하면 제7구역(남‘97년 여’94년 시작),
성가대회 1등은 제8구역(여‘75년 시작),
성체조배하면 제9구역(남’92년 여‘83년 시작),
꽃을 든 제 10구역(여’84년 시작),
신심단체 봉사하는 제11구역(남‘92년 여’83년),
불우이웃 방문은 제 12구역(남 ‘92년 여‘84년),
성소자 후원은 제13구역(여’76년 시작),
양로원 봉사는 제 14구역(남 ‘98년 여‘96년 시작),
인기상 하면 제 15구역(여’85년 시작),
우리도 성지순례 제 16구역(남 ‘77년 여’75년)
성지순례하면 제 17구역(여‘88년 시작),
희망의 구역 제 18구역(여’86년 시작),
화합하면 제 19구역(남‘87년 여’77년 시작),
교리교육하면 제 20구역(남‘00년 여 ’83년 시작)
‘04년도 본당의 날 체육대회는 신묵초등학교 교정에서 10월 10일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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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청소년을 위한 사목
‘00년 6월에 실시한 교구 시노드의 제1차 의견 수렴에서 ‘청소년 사목의 활성화’라는 의견이 큰 비중을 차지하자 ‘02년도부터 교구의 사목교서는 청소년 청년 사목의 세부지침을 두고 있었다.
본당에서는 비교적 청년과 청소년에 대한 사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02년부터는 더욱 이에 사목적 관심을 두고 노력해왔다.
‘00년부터 실시한 청소년 및 청년 단체의 활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00년 11월 19일 서울대교구 교육국에서 주최하는 제3회 청소년 큰 잔치(서강대학교)에 본당 중고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이 참가하였다.
11월 25일 ‘대희년 청년 문화제’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주제로 소성당에서 열렸다. ’01년 1월8일부터 2박3일로 초등부 6학년 및 중고등부 학생들의 동계피정이 창원 젊음의 집에서 있었으며 ‘01년 7월부터 떼제 노래로 함께하는 기도모임이 시작되었다. ‘01년도 주일학교 여름 캠프는 초등부 유치부에서 3학년까지는 본당에서 4학년부터 6학년 까지는 홍성 사도마을에서, 중고등부는 충북 괴산에서 농촌 봉사 캠프를 하였다. .10월 28일에는 중고등부 학생체육대회가 있었다.
‘02년도에는 1월 10일, 1박2일로 대전 살레시오 회관에서 중고등부 동계피정이 있었다. 1월 20일에 청년회 발대식 및 발대 미사가 봉헌되었고, 3월 3일에는 청년 예수의 모습으로 거듭남을 위하여 묵동 청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청년 신앙학교를 개강, 매주일 청년 미사 후 교재 ‘함께하는 여정’으로 공부하였다. 4월 21일에는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성덕의 소명’이라는 주제로 열린 성소 주일 행사에 5학년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참여하였다. 여름캠프는 초등부는 용인 한터캠프장에서 중고등부는 강원도 살레시오 청소년 수련원에서 있었으며, 청년연합회 캠프는 8월 16일 2박3일로 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충북 괴산에서, 9월 15일에는 청년 성지순례가 있었다.
‘03년 1월에는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40명(3학년~ 5학년)과 중고등부 학생 40명이 양지 청소년 수련원에서 2박 3일로 성서 피정을, 6학년 10명이 용인 영보 수련원에서 졸업 피정을 하였다. 여름 방학에는 중고등부가 가평 꽃동네에서 “섬기는 사람이 다스린다”라는 주제로 봉사캠프를 하였다. 여름 청년 캠프는 강원도 영월에서 “젊은이여 일어나라” 라는 주제로 열렸다. 9월에는 초등부가 중림동 성당으로, 중고등부가 해미성지로 성지순례를 하였다.
‘04년도에는 1월에 복사단 캠프가 홍천대명 스키장에서, 초등부 복사단 전례교육이 용문 청소년 수련원에서 있었다.
5월 9일에는 중고등부 성모의 밤 행사가, 5월 30일에는 수험생을 위하여 먹골리카의 작은 공연이 있었다. 12월 26일 먹골리카 공연 후 수익금(501,700원)을 전액 국군 장병 위문품 구입비용으로 사용하였다.
견진성사와 세례성사
견진성사는‘01년 11월 14일 강우일 주교 집전으로 194명, 02년 11월 2일 황인국 몬시뇰 집전으로 113명, ‘03년 11월 11일 황인국 몬시뇰 집전으로 87명, ’04년 11월 7일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89명이 받았다.
세례성사는 ,01년 7월 8일 107명, ‘02년 11월 24일 55명 , ’04년 7월 4일 16명과 11월 21일 55명, ‘05년 3월 6일 41명과 7월 3일 53명이 받았다.
본당설립 30주년을 맞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신앙생활을 영위하였습니다.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04년을 마감하고 또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은총 속에 맞이한 ’05년은 본당 설립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올해는 더욱 새로워진 마음가짐으로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헌신하라’는 부르심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안에 이루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우리 본당 공동체를 통해서 역사 (役事)하시도록 우리의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가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루가 17,10)이라는 착한 종의 응답을 드리는 한 해가 될 수가 있기를 바랍니다.“-<‘05년 본당 사목 계획서>
김 신부는 30주년을 맞는 금년은 본당 공동체가 ’활기차게‘ ’가정 중심으로‘ ’주님과 함께 기쁜 신앙생활을‘ 걷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05년은 모든 행사가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보다 더 뜻깊게 준비되고 이루어졌다.
본당 설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소망을 담은 기도문을 작성, 9월 15일까지 미사 후에 기도를 바치기로 하였다.
본당 30주년 기도문
언제나 저희와 함께 계시는 주님,
저희를 성세성사로 다시 나게 하시고
주님자녀로 불러주셨으니 감사하나이다.
본당 설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로 거듭나고자 하오니
저희를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소서.
저희가 기도와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주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신 은총과 사랑을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서로 나누게 하소서.
주님께서 몸소 저희 본당을 지켜주시어
행복한 신앙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저희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찬미하여 일치하게 하소서.
주보이신 통고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30년사 편찬 위원회 구성
‘04년 11월, 본당 설립 30년사를 편찬하기 위하여 위원장에 윤광자 스테파니아, 간사에 이상구 에제키엘(기획분과장), 위원으로 김문선 요한, 이후섭 바오로, 한상숙 헬레나로 구성하였다.
성삼일 전례
김 신부는 ‘05년 3월 24일 성목요일(주님만찬미사) 전례에서 ’발씻김‘ 예식을 ‘손씻김’예식으로 전 신자에게 거행하였다. 제대 앞에서 주임신부와 보좌신부는 2줄로 나오는 신자들의 손을 씻어주고 그 옆에는 수녀들이 수건으로 손을 닦아 주었다. 김 신부는 이 예식을 행하고 나서 ‘손을 씻다’라는 말은 이제까지 우리가 행해 오던 모든 ‘나쁜 습관을 끊는다’라는 의미로 쓰여 지는 말이니 우리 모두 지금 이 순간부터 이 ‘손씻김’의 예식을 행함으로써 모든 나쁜 습관을 버리고 이 수건을 집에 가져가서 손을 닦을 때마다 그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수건에는 “2005 세족례”,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는 글이 새겨진 수건이었다. 당시 500여명의 교우들이 참석하였는데, 많은 교우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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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부제 탄생
‘05년 7월 7일 본당의 이 승현 베드로 학사가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부제서품을 받았다.
축하미사가 본당에서 7월10일 오전 10시에 있었다. 축하식에서 주임신부는 “착한 목자”가 되기를 부탁하였다.
착한 목자란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목자를 뜻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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