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레믈이란 말은 '성벽'이라는 뜻의 러시아 말로, 말 그대로 초기엔 습격을 막기 위해 평지에 들어선 목조의 성벽이 유래라고 한다. 이후 증개축을 거쳐 15세기 이반 뇌제 시대 이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도착 다음날인 5월 6일 본격적인 모스크바 여행을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전승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은 어수선한 모스크바 상황에 나의 안전을 걱정하던 최 선생님이 동행해주셨다.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도착한 곳은 끄레믈이었다. 크렘린이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곳은, 러시아가 생기기 이전, 12세기 모스크바 공국이 생기면서부터 만들어졌다.
끄레믈이란 말은 '성벽'이라는 뜻의 러시아 말로, 말 그대로 초기엔 습격을 막기 위해 평지에 들어선 목조의 성벽이 유래라고 한다. 이후 증개축을 거쳐 15세기 이반 뇌제 시대 이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해를 돕자면, 우리의 조선시대 성벽으로 둘러쳐진 4대문 안의 수도 한양을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사실 끄레믈은 제정 러시아의 황금기라고 할 만한 시절에는 별로 조명 받지 못한 건축물이다. 구 러시아의 황금기라 할만한 18세기 뾰뜨르 대제 이후 시기에는, 뾰뜨르 대제의 뻬쩨르부르그 천도로 모스크바는 점점 잊혀진 땅이 되었다. 더불어 끄레믈도 황제의 대관식, 장례식 정도가 열리는 별궁 정도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혁명 이후 소련의 수도가 모스크바로 정해지면서 다시 한 번 끄레믈은 주목의 대상이 된다. 냉전시절 워싱턴의 백악관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던 권력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속을 모르겠다는 뜻으로 '끄레믈린 같은 녀석' 이란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런 식으로도 자주 들어오던 이곳에 드디어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빨간 벽돌 벽으로 둘러싸여 속이 안 보이던 끄레믈의 입구는, 듣던 만큼이나 속이 철저히 가려진 듯했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들어오던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 보다는 북적대는 관광객들로 활기찬, 혹은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특히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는데, 여기가 러시아인지 중국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끄레믈 안에서 본 것들
최 선생님과 티켓을 끊고 입구인 삼위일체 탑을 지나 들어가자 여러 성당과 건물들이 보였다. 우선 눈에 띈 것은, 여러 개의 성당이었다. 유럽이 기독교 사회이고, 러시아 역시 그렇다지만, 그래도 궁궐이라 할 만한 곳에 성당이 한두 개도 아니고 여러 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끄레믈 안에 있는 성모승천 성당, 성 수태고지 성당, 그리스도 성의 교회, 대천사 아르한겔 성당 등의 건물들은, 지금은 종교행사보다는 관람 목적으로 개방되고 있었다. 사실 비신자로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뭐가 특별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유명 관광지인 만큼 나도 북적대는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았다.
성당 안은, 일부러 설치를 안 한 듯, 부족한 조명으로 컴컴했다. 성당의 벽에는 빽빽이 러시아 이꼰화(성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 벽들을 감상하고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끝이었는데, 계속해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떠밀리다 보면 밖으로 나와 있는 실정이었다. 대표적인 볼거리이니 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호기심을 끄는 것은 아니었다.
끄레믈에서는 사실 이런 건물들보다 야외에 있는 것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종의 황제', '대포의 황제'라는 이름의 두 물건은, 이름에 '황제'라는 단어가 붙었듯, 어마어마한 크기로 관심을 끌었다. 6m에 이르는 '종의 황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지만, 주조한지 2년 만에 난 대화재 때, 화재로 달아오른 종에 뜨거운 물을 부어 종이 깨지는 바람에 한 번도 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약 12톤에 달한다는 깨진 파편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대포의 황제'는 무게가 40톤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대포로, 보기에도 압도적이다. 이런 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이 대포를 본 적군은 상당한 공포를 느껴, 보는 것만으로 전의를 상실하곤 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나 무거운 포탄 때문에 단 한 번도 발사된 적이 없다고 하니, 우스울 따름이다.
끄레믈을 좀 더 돌아보고 싶었지만, 전승기념일 행사 준비관계로 여러 시설을 통제 하더니, 결국엔 1시쯤 사람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특히나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는 경우 극도로 관람이 제한된다는데, 행사까지 겹쳐 쫙 깔린 경찰들이 관람객들을 몰아대기에 바빴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으로 충분한 관람을 할 수는 없었지만, 끄레믈은 어릴 적 뉴스 통해 느끼던 공포의 장소라기보다는 여느 옛 궁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러시아만의 특징 있는 건물이나 물건들도 있었지만, 예전 소련이라는 이름과 끄레믈이라는 이름이 주던 압박감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이상스런 기대감에는 실망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러시아 미술의 정수를 보다
끄레믈이 기대에 비해 실망감을 주는 곳이었다면, 뜨레차코프 미술관은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을 듬뿍 준 곳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반겨준 효승이와 가 본 이곳은, 사실 모스크바에 도착해서도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그저 효승이가 추천하는 곳으로 같이 가보자는 말에 따라 나선 곳이었다. 미술은 거의 모르고 러시아 미술이라면 더더군다나 아는 바가 없는 내가 뜨레차코프 미술관을 모르고 있었던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효승이와 함께 표를 끊고 입장한 뜨레차코프 미술관은, 러시아의 여느 전시관처럼 사진 찍는 것을 막았다. 기분 나쁜 일이긴 했지만, 한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흥미도 없고, 불쾌한 입장. 별기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을 하나하나 볼수록, 전시실을 한 곳씩 지날수록 대단한 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바노프의 '멀리서 다가오는 그리스도'나 레핀의 '이반 뇌제와 아들의 비극'등의 그림은 여러모로 감동이었다.
이바노프가 20년에 걸쳐 세로 5m, 가로 7m의 본 그림과 십 여점의 부속그림으로 그린 ' 멀리서 다가오는 그리스도'는, 예술가의 위대함을 작품그대로 느끼게 했다. 제목처럼, 본 그림 오른쪽 뒤편에서 앞쪽의 사람들을 향해 걸어오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우선 그 크기에 놀랄 수밖에 없다.
가까운 거리에선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크기의 본 그림은, 미술관의 한쪽 벽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 더불어 본 그림의 주변에는 십 여점의 부속 그림이 있다. 부속 그림들은 본 그림의 부분 부분을 따로 떼어내어 확대하는 식으로 그려져 있는데, 본 그림에선 너무 큰 그림의 규모로 잘 눈에 띄지 않는 각 인물들의 얼굴 표정이나, 색감이 나타나 있다.
1837년에서 1857년까지 20년 동안 그린 그림이란 점도 그렇지만, 복사기나, 컴퓨터가 있던 시절도 아닌데, 하나의 작품을 이렇게 다양하게 구성해놓은 작가의 능력이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이 외에도 마치 무대 조명을 받고 있는 듯 한 빛의 사용과 뛰어난 색감이 인상적인 레핀 - 레핀의 위대함은 상트 뻬쩨르부르그에서 더욱의 느낄 수 있었다. - 의 '이반 뇌제와 아들의 비극', 사실성이 뛰어난 페로브(Perov)의 '트로이카'나 '휴식을 취하는 사냥꾼' 같은 작품들을 보며 19세기 러시아 미술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18~19세기, 중서부유럽에서부터 시작된 근대화를, 황제와 국가가 나서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가며 따라잡으려했던 러시아. 이 뜨레차코프 미술관과 여기에 남은 저런 위대한 작품들은, 그런 제정 러시아 시대의 영광의 유산이었다.
가는 법 : 모스크바의 미뜨로(지하철)는 생각보다 잘 발달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끄레믈과 뜨레차코프 미술관도 지하철을 이용하여 가면 된다. 끄레믈의 경우 알렉싼드롭스끼 삿드 역이나 바로비쯔까야 역에서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고, 뜨레차코프 미술관은 뜨레차꼽스까야 역에서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간에 간판도 있으니 찾기 어렵지 않다. 모르겠으면 주변인들에게 물어보자. 관광객을 자주 보는 모스크비치들은 그렇게 불친절하지 않다.
입장 시 주의 점 : 먼저 입장료는 끄레믈의 경우 무기고를 보지 않는 일반 입장이 300루블인데 학생은 반값인 150루블이다. 국제학생증으로 할인이 가능했다.(2006년 5월) 뜨레차코프 미술관은 140루블을 주고 입장했는데, 이게 학생 할인이 된 가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끄레믈의 경우 허름한 차림이나, 큰 가방은 절대 금물이고, 카메라 등의 간단한 수화물을 제외한 어떤 소지품도 가지고 입장할 수 없다. 특히 칼 등은 절대로 안 된다. 입장문 아래쪽에 짐 보관소가 있는데, 유료로 보관해주니, 두 번 발걸음이 싫다면 먼저 내려가서 가방을 맡기자. 검문은 총을 든 경찰이 했다. 가벼운 손가방은 소지 가능했다.
뜨레차코프 미술관도 가방은 가지고 관람할 수 없다. 짐 보관소가 입구 근처에 있으니 짐을 맡기고 관람하자. 그리고 사진 촬영은 못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메라를 아예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해 실랑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모스크바를 왔다면 꼭 들리게 되는 곳이 끄레믈이라면, 뜨레차코프 미술관은 모스크바를 방문한 사람이 꼭 가 봐야하는 곳이라고 하고 싶은 곳이다.
뜨레차코프 미술관의 홈페이지는 http://www.tretyakovgallery.ru/ 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재는 갤러리 서비스가 안 되고 있다. / 강병구
<<모스크바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들 >>
모스크바에 왔으니 모스크바만의 독특한 매력을 느끼고 싶었다. 트레차코프 미술관의 작품들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만의 멋진 매력이었지만, 러시아라는 이름이 풍기는, 뭔가 웅장하고 거대한 걸 보고 싶은 마음에는 좀 모자랐다. 그러던 중 가장 눈에 띤 것은 스탈린 양식이라는 독특한 모양세의 건물들이었다. 그 크기나 높이를 봐서는 분명 현대의 건물인데, 모양을 보아서는 유럽의 오래된 건물의 그것이었다. 유럽의 고성이나 탑이 부풀어 올라 고층 빌딩이 된 모습이랄까?
@BRI@ 스탈린 양식의 건물 중 처음으로 본 것은 엠게우라는 약칭으로 더 많이 불린, 국립 모스크바 대학교였다. 숙소 근처라 모스크바를 떠날 때까지 몇 번이나 봤지만, 볼수록 사람을 압도하는 엄청난 건물이라는 느낌이었다. 36층에 이르는 높이와 몇 만 개의 강의실 등, 방이 있다는 이 건물은 무슨 첨탑처럼 삐죽 서있었다.
이런 스탈린 양식의 건물은 엠게우 이외에도 외무성, 우크라이나 호텔, 예술인 아파트 등 모스크바에 총 7개가 있다. 모두 엠게우보다는 작은 규모였지만, 이것들 역시 사람을 압도하는 건축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딕양식을 현대 고층건물에 적용한 예라고 하는데, 그냥 보기만 해도 엄청난 공사비와 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역시나 스탈린 양식을 소개한 여행서에는 엄청난 건축비를 절감하기 위해 강제노역이 동원됐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었다. 스탈린 시대 사상검증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정치범을 노역에 동원했는데, 그래도 노동력이 모자라서 잡범까지도 정치범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역시 공짜는 없는 세상으로, 이런 엄청난 건물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뒷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하며, 엠게우를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참새언덕에서 보았더니, 압도적이라기보다는 우스워 보였다. 좌우 대칭의 가운데가 뾰족하게 돌출된 모습이, 마치 공상과학만화에 나오는 우주선 같아보였기 때문이다. 좀 유치한 취향이랄까?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루고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빈정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모스크바의 대학로, 아르바트 거리
효승이가 안내해준 또 하나의 모스크바 모습은, 아르바트라는 이름의 거리였다. 트레차코프 미술관을 돌아보고 나오니, 배가 출출해져서 뭔가 먹어야할 듯 했다. 효승이가 러시아식을 먹고 싶다는 내 말에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음식점을 가자고 하여 아르바트 거리로 향하게 되었다.
크레믈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르바트 거리는, 스탈린 양식의 웅장함을 자랑하는 러시아 외무성 건물을 찾으면 쉽게 갈 수 있다. 외무성 건물 옆의 크게 난 거리가 아르바트 거리로, 거리를 들어서면 근처의 맥도날드의 북적되는 모습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이르쿠츠크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맥도날드를 보자 우선 반가웠다.
아르바트 거리는 서울의 대학로 거리에 비교할 만한 곳으로, 북적되는 인파들 사이에서 자리 잡고 앉아 초상화를 그려주는 거리 예술가들이 인상적이었다. 100루블을 외치는 이들 주변에는 바이올린 등의 클래식 악기부터 전자기타의 멜로디에 맞춰 메탈음악을 부르는 여러 거리음악가들이 서로 뽐내듯 음악을 하고 있었다. 또 그런가하면 여기에도 대학로의 그들처럼 장판지를 들고 나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힙합 춤을 추는 학생들도 있었다. 대학로를 옮겨 놓은 듯 한 모습의 아르바트 거리는 모스크바를 더욱 친밀하게 느끼게 했다.
아름다운 공원들
효승이 덕에 시내 구경을 잘한 만큼이나, 최 선생님 덕분에 색다른 모스크바 모습을 느낀 것도 여러 가지이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아름다운 공원들을 구경한 것이다.
먼저 가본 곳은 칼로멘스코예 공원으로, 러시아 황제들의 목조 별장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여행자가 선뜻 나서기 힘든 위치이다. 그래서 전혀 생각지 도 않고 있었는데, 최 선생님이 차로 같이 가보자고 하셔서 가족 분들과 소풍 나서는 기분으로 가보았다.
넓은 공원 부지에 숲 같은 나무들이 심어져있고, 간간히 보이는 아름다운 성당 등의 건물들과 한가롭게 쉬고 있는 모스코비치들(모스크바 사람들)의 모습은 이곳이 유럽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했다.
수령이 400년이나 되었다는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부터, 유서 깊은 교회와 러시아 황가의 목조건물들 등의 볼거리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도심의 북적거림을 벗어난 한가로운 모습이 가장 좋았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공원은 크레믈 옆에 있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공원이다. 유구한 역사적 기록을 갖고 있는 곳이었지만,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역시 한가로움이었다. 이곳에 있는 연못에는 오리, 백조 등의 새들이 역시나 한가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이곳의 이런 모습을 보고 차이콥스키가 <백조의 호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내 중심가에, 도시를 벗어난 듯 한 공원의 한가로움은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그야말로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 조그마한 공터만 있으면 또 건물이 올라가는 서울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기 시작하며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1천만 대도시의 소비
그렇다고 모스크바가 오래되거나, 한가로움, 정신없는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인구 1천만명의 대도시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 이 곳 하나뿐이다. 더구나 석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자원부국인 러시아의 주머니를 달러로 넘쳐흐르게 만들었다. 몇 해 전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말이다.
여하튼 이런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개인에게로도 이어져, 급격한 외환 유입으로 인한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무시할 만큼, 국민들의 폭발적 소비증가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만나는 모든 한인들이 하는 말이 물가 상승으로 하루가 다르게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한국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생활하는 유학생들은 몇 달 사이에 두세 배씩 뛰는 집세로, 집에 말도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물가 상승에, 현지인들은 그만큼 늘어나는 급여로 점점 소비수준을 높이며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수도 모스크바는 여행객인 내 눈에도 넘쳐나는 돈으로 수많은 공사들과 도시 정비로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만큼 모스크바에는 이전의 러시아 도시에서 보지 못한 대규모의 쇼핑센터와 할인점이 있었다. 모스크바 외각에 위치한 이케아와 메가라는 쇼핑센터는 창고형 할인점이 코엑스 같은 복합 쇼핑공간으로 바뀐 모습이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거길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은 폭발하는 소비도시 모스크바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이케아는 한국에도 경제지를 통해 소개되었듯 스웨덴의 저가 가구 기업이다. 이 모스크바의 이케아 매장은 가구부터 팬까지 생활용품 일체가 한 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 형태였다. 옆에 위치한 메가는 스케이트장부터 영화관, 여러 외식 업체가 즐비한 푸드코트까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종합쇼핑문화공간과 비슷했다.
이곳을 소개해주시며 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모스크바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이곳을 올 때마다 느껴요. 처음 러시아에 왔을 때 만해도 이런 걸 꿈도 꿀 수 없었는데, 이런 쇼핑센터가 생기기가 무섭게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것을 보면 모스크바의 발전이 하루가 다르다고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쇼핑센터가 모스크바의 명물이 되는 것은 뭔가 새로운 걸 바라는 여행자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엄청난 크기와 모스크바에 있다는 특별함은 있겠지만, 세계의 대도시라면 어디든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이 모스크바만의 특별함을 느끼려는 이들에게는 별로일 테니 말이다.
더불어 코엑스나, 롯데월드를 대표적인 서울의 관광지로 외국인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보니, 그것이 얼마나 특색 없는 짓이었는지 새삼스럽게 느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특별함을 느끼고 싶어 하던 그들 눈에 그것이 얼마나 특별하지 않는 것인지 내가 체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계화 시대, 어딜 가도 비슷해지는 모습을 보고 식상함을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약간은 씁쓸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음 주 화요일(12/26)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더불어 이번 일요일(24일) 결혼하시게 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이종승 사장님과 양승희 선생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두 분 항상 행복하세요.
출처 : 모스크바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들
모스크바에서 본 익숙한 상표들
이미 지나 온 러시아 도시들에서 한국과 관련 된 것들을 많이 봤지만, 그것들을 모스크바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특별한 느낌이었다.
끄레믈 인근의 모스크바 강을 건너는 다리 난간에는 LG 깃발들이 잔뜩 펄럭이고 있다. 그리고 그 다리 앞으로는 커다란 삼성 광고판이 보인다. 양 옆으로는 현대 투싼과 갯츠가 달리고 있다. 이런 모습을 서울이 아니라 러시아 그것도 수도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보게 된 것이다.
@BRI@ 모스크바 사람들이 현대, 삼성, LG를 통해 한국을 생각하는지, 또 이런 상표들이 얼마나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지는 잠시 들리는 여행자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난 연말이면 한 번씩 보도되는 해외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브랜드 인지도가 무슨 국위선양인양 떠드는 뉴스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삼성, 현대를 통해 외국에 한국을 알린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하며 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모스크바 중심가에 펄럭이는 LG 깃발과 삼성 간판, 그리고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현대 자동차들이 도로에 즐비한 것에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이런 생각이 겉과 속이 다른 것인지, 실제 경험을 통해 알지 못하던 걸 깨달아서 그런 것인지.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했지만, 그래도 느낌이니 어쩌겠는가.
싸구려 민족주의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머릿속으론 아니라고 생각해도 입으론 실실 웃음이 나는 상황이랄까? 이것이 이국땅에서 본 익숙한 상표들에 대한 내 감상이었다.
모스크바는 블루오션?
익숙한 저 상호들이, 멀리까지 관광 온 내게 뿌듯함을 주려고 비싼 돈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 게다. 돈이 된다면 지옥까지라도 찾아가 거래를 해야 한다는 투철한 자본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불편하고 사업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모스크바에 앞 다투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익숙한 상호는 한국 것만이 아니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훨씬 즐비한 세계의 수많은 브랜드들이 서로 경쟁하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좀 규모가 크거나 눈에 잘 띠는 위치에 있는 건물이라면 어김없이 간판들이 즐비했다. 그런 간판들 사이에 한국 기업의 간판이 있는 것이었다. 독일, 일본 미국의 수많은 차들이 잘 닦인 길을 씽씽 달리고 있었고, 그 중 한국 차는 소수였다.
지난 여행기에도 소개했지만, 지금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는 고유가와 원자재값 상승으로 흘러들어오는 외환에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자고나면 환율이 바뀔 정도로 외환 가치는 떨어지기에 정신이 없고, 더불어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높아만 갔다.
비록 러시아 안에서도 지리 환경적 차이가 있었겠지만, 여행 중에도 외환 가격이 계속 하락해 나중엔 가져간 유로를 루블로 환전하는 것이 너무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러시아를 나갈 때 달러는 한 달 사이에 8루블 이상 떨어졌다. 그만큼 루블로 임금을 받는 러시아 인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더불어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공산품이 부족한 나라이다. 미국과 대등한 수준의 무기와 로켓은 만들어도 자동차 기술은 형편없는 곳이 러시아다. 여기에 옷, 식품 가공 등의 경공업 기술은 극단적으로 떨어져서, 질이 떨어지는 중국, 터키 제 옷들도 고급품 못지않게 가격이 높은 곳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러시아를 여행하는 내내 특히 수도인 모스크바에서는 더욱 더 한국 공산품들을 가져다 파는 것이 꽤 괜찮을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에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외국인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팽배하고, 러시아 특유의 일처리 방식에 마피아까지 상대해야하는 점을 생각하면 쉽사리 러시아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대답을 주었다. 이전에 소개한 몇 몇 사례 외에도 수많은 투자 실패 사례가 즐비하다고 하니 불쑥 들었던 생각이 푹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모스크바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새로운 접근법을 생각해보았다. 현지의 러시아인조차도 불편해하는 러시아 서비스는, 구매력이 높아가는 러시아 중산층들의 불만의 대상이라 한다. 물건을 사는 것이 꽤 불편하고 종종 돈을 주고 물건을 사면서도 기분 나쁜 느낌을 받는 것이 외국인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친절한 서비스와 편안한 유통 구조 같은 것을 무기로 공략한다면, 러시아인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저임금 위주로 접근한 공업형 투자가 아니라, 현지인들과 불편한 일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실제 롯데가 이미 이런 생각으로 모스크바에 백화점을 짓고 있었다.
역시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맞는 걸까? 나는 독특한 나의 아이디어라 생각했는데, 이미 그것을 실행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이런 접근을 통해 정상적으로 안착하기만한다면 경쟁할 상대가 없는 곳이 모스크바이자 러시아라는 최 선생님의 말을 듣고 보니, 블루오션이라는 경제 유행어가 딱 들어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스크바의 한인들
우리의 IMF시기와, 비슷한 시기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대표되는 러시아 경제 위기 기간을 거치며, 모스크바 내 한인의 수는 급격히 줄었었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석유가 상승으로 러시아 경제가 활기를 되찾자, 여러 우리나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모스크바에 지사들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고, 특히나 최근엔 롯데의 백화점 건설로 교민 수가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유학생, 주재원 등을 포함해서 대략 5000~6000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어서 교민사회가 형성되고 있는 수준이라고 모스크바 교민들을 궁금해 하는 나에게 최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다.
이전의 도시들에선 주로 중국인 가게나, 고려인들이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한두 가지 가져다 놓은 한국 물건들을 팔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모스크바에서는 한인들만을 상대하는 한국 물건 가게가 운영되고 있었다. 라면, 김 같은 대표적인 물건부터 여러 장류와 한국 과자, 아이들 장난감까지, 좀 비싸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팔리는 물건 대부분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런 한인 인프라 덕에 개인적으론 한국을 떠나온 지 20여일 만에 그것도 러시아 땅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 호사를 누릴 수 도 있었다.
이런 모스크바의 한인들이 느끼는 한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한 듯 했다. 여행객인 나도 살짝 우쭐해진 것에 이상으로, 여러 대기업의 간판과 물건들, 그리고 백화점 건축 소식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나라를 떠나면 더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모스크바의 한인들이나, 내가 느끼는 자부심이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청난 잠재력과 더불어, 너무 불편하고 모자란 현실이 공존하는 모스크바, 이런 모스크바에 대한 생각을 가닥 없이 떠올리며 러시아의 마지막 여행지인 상트 뻬쩨르부르그로 떠났다. 출발하는 기차역까지 함께해주신 최 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이런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이곳에 다시 와봐야겠다는 다짐도 함께했다.
모스크바의 숙박비는 상당히 비싸다. 기본적으로 러시아에선 거주등록 문제로 저가의 숙박시설에선 외국인 숙박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에선 여러 가지 요령으로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여행객이 많고, 불심검문이 빈번한 모스크바에서 거주등록이 부정확한 상태로 여행을 하는 것은 경찰과 싸우겠다는 무모한 선언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대부분 값비싼 호텔에 숙박해야하는데 호텔비용이 한국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싸다.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극단적으로 비싼 한인 민박비용은 싼 숙박에 대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트린다. 대부분 민박집이 성수기의 경우 5만원에서 10만원사이의 숙박료를 요구하며, 평균 1박에 8만 원 정도는 생각해야한다.(2006년 기준) 주로 여행객 보다는 주재원 등의 장기체류자가 많다는 점과, 최근 급격히 늘어난 모스크바 방문객 수, 천정부지로 오르는 모스크바 집값 때문에, 다른 도시처럼 호스텔 같은 가격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나마 잘 찾아보면 새로 생긴 민박집들이 홍보가 덜 되어 싼 가격에 방을 주는 경우가 있으니 한국에서 잘 찾아보고 가자.
마지막으로 전 세계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유스호스텔은 러시아에선 여전히 불법이라고 한다. 물론 몇몇 호스텔이 있는데, 거주등록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한다고 하니, 그리 추천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그마저도 별로 싸지 않은 듯.
이상의 상황을 종합하자면, 모스크바 여행계획을 확실히 짜서 체류기간을 최소화하던지, 모스크바에 사는 신세질만한 사람을 찾아보자. 생각 외로 찾아보면 주변에 모스크바에서 도움 얻을 만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필자도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을 통해 모스크바 여행의 도움을 얻었다. / 강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