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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거리 공항에 도착! 시차적응 하는조금석, 윤용문회원 |
11:00경 짐을 찾는데 배낭 1개가 행방불명되어 약 10분가 헤매었으나 다행히 여러 짐 속에 묻혀 있던 배낭을 찾아내었고, 12개의 짐을 가지고 11:30경 국제공항을 빠져나와 서둘러 캐나다 국내항공(C.P항공)으로 가서 모든 탑승절차를 마치고 나니 11:45이 되었다. 한숨 돌리며 자판기에서 콜라를 한잔 빼서 마셔본다. 11:55에 검사대를 지나는데 김종선을 찾는다는 아나운서 멘트가 들려왔다. 화물이 잘못되었나 하여 혜영이와 같이 가서 검사대지원에게 확인해 보니 잘못들은 것이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잘못 들은 것이었다. 12:05 탑승하여 밴쿠버를 떠나 캘거리로 향했다. 국내선비행기 안내원은 주부들 같았고 탑승객에 별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또 다시 점심 기내식이다. 국제선에 비해 메뉴도 메뉴지만 연속 기내식에 입맛이 없었다.
1시간 30분 후 캘거리 공항에 도착하여(14:30 :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와 알버타주의 시차는 1시간) 한산한 공항을 빠져나와 짐을 갖고 나온 후 대합실에서 처음으로 현지에서의 행동을 결정지어야 했다. 밴프까지 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첫 관문이었다. 4개의 렌터카 회사의 데스크가 있었고 결국 허-츠사의 7인승 밴을 렌트하여 이동하기로 하였다.
공항 문을 열고 나서니 국내에선 별로 격어보지 못한 강추위가 몸을 움추리게 한다. 약 영하 20도 정도의 추위와 강풍에 도로엔 아무것도 없었다. 춥긴 더럽게 추운 곳이라는 생각이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되기도 하였다.
일단 밴프 방향의 캘거리 외곽 숙박업소 밀집지역 TRANS CANAKA HWY NO.1 14ST이후의 지역으로 옮기는 중에 강아지 눈에는 무어만 보인다더니 "장비점이다"라는 근호의 외침이 들렸다. 차를 돌려 가보니 MOUNTAIN EQUIPMENT CO-OP라는 장비점으로 종목별로 잘 정돈된 상품들이 눈을 끌었다. 고가의 가격표를 보아왔던(수입장비에서) 우리의 눈에는 너무나 싼 가격에 싱글벙글 입들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현지 구입품목 장비목록을 펴고 체크해 본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16ST N.W.에 있는 TRAVEL LODGE에 숙소를 정하고 오는 길에 보았던 쇼핑센타로 식량을 구입차 근호, 혜영, 금석이를 보냈다. 일주일 분 식량으로 $500.00을 주었더니 주.부.간식을 포함하여 약$150.00을 쓰고 왔다. 부족되게 구입하기 하였지만... 저녁을 행동식으로 먹고 모텔에서 구비해 놓은 커피(방마다 커피머신과 커피가 비치되어 있음)를 마시고 캐나다의 첫 밤을 보냈다. 창 밖에 매서운 바람과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1992년 2월 11일(화)
06:00 기상하여 07:00 다시 식량을 넉넉히 구입하고 바로 장비점에 들러 매트리스, 콜멘 전용 연료(휘발유), 삼단 스키폴 등을 구입하였다. 코펠 SET는 없고 낱개로 판매하는 것이 일제 에버뉴제품으로 상당히 고가에 진열되어 구입치 않았고 밴프의 장비점을 소개받아 캘거리를 떠났다.
밴프로 가는 길에 캐나다 산악연맨(ACC) 로키지부가 있는 캔모어시에 들러 문의하여 찾아가보니 그곳은 CLUB HOUSE였고 일종에 산악인을 위한 산장이었다. 그곳에서 사무실의 위치를 알았으니 시간이 늦어 곧 바로 밴프로 떠났고 시내로 진입하는 길에 우리의 목표인 터미네이터빙폭을 멀리서 보았다. 터미네이터빙폭은 결빙이 안됀 상태였다. 오늘 반납하기로 된 랜터카 문제로 밴프 스프링호텔에 있는 허-쓰. 렌터카 사무실에 찾아가니 12:00-15:00까지 중식관계로 15:00이후에 온다는 메모판이 걸려 있었고 약 1시간 가량 기다렸다가 직원을 만나니 렌터카의 반납 시기는 사용자의 자유이고 회사측은 반납일에 계약된 조건에 의하여 계산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일반교통 수단이 거의 없어 한 달 내내 렌터카를 사용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의 일치를 보았다.
숙소예정지인 터널마운틴 캠프그라운드에 가보니, 숙소는 모두 잠겨 있고 정문에는 전기불도 켜있고 직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결국 헤메고 묻고 하여 알아낸 바로는 빌리지 1은 하계에만 사용하고 동계 사용가능한 캠프는 빌리지2이며 그곳도 트레일카 사용을 목적으로 설비되어 있었다. 불 켜진 화장실 부근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고 텐트사용도 가능하다. 그러나 캠프장 내에 어슬렁거리는 수백마리 순록(엘크)들이 언제 텐트를 짓밟아 버릴지 몰라 결국 그곳을 포기했다. 밴프 시내 3곳을 장비점과 몇 곳의 스키샾?을 뒤지고 뒤졌으나 코펠을 못구해 저녁을 굶을 판이었다. 결국 잡화점 진열장에 비치된 냄비를 구입하려고 18:05경 잠긴 문을 두드렸다. 안된다는 것을 사정하여 냄비를 카운터 앞에 놓고 나서 코펠 SET를 발견하였다. 황급히 냄비를 무르고 코펠을 사는 바람에 계산기에 에라가 발생하였으나 언짢은 표정 없이 계산서를 찍어 주었다. 결국 5,6인용 코펠 SET를 구입하였다. 아주 사용하기 좋은 스텐리스 제품 이었다. 후에 보니 MADE IN KOREA 였다. 그런데 왜? 국내에는 그런 코펠이 없는 건가? 하는 수 없이 되돌아 온 ACC 클럽하우스에서 1인당 $11.00의 거액으로 숙소를 정하였다. 그곳에서 만난 캘로스란 친구에게서 숙소 및 빙폭의 정보를 얻어내느냐 혜영이 입만 아프다. 그는 빙벽등반엔 별로 뛰어나지 못하지만 폭 넓고 많은 등반경력을 가진 미국인으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92년 2월 12일(수)
오늘은 켈로스가 그의 파트너와 프로팻서폭포를 등반한다 하여 위치를 알아 두자는 의견에 같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18:00에 켈로스와 출발하기 위해 일찍 서둘렀다. 캔모어 시내 작은 레스토랑에서 캘로스 일행을 만났다. 밴프 스프링호텔 골프코스를 지나서 안내한다는 친구가 헤메는 바람에 45분 거리를 약 2시간 만에 도착하여 보니 약 20m의 계단식 폭포에 실망만 가득했다.(총 280m 중 약 100m가 보였다) 캐나다에서는 국립공원 내에 주차시킬 때에는 1일 $4.25 주차티켓을 고속도로 통과시 구입하여 부착시켜야 한다. 캘로스와 파트너는 등반을 시작하고 우리는 캘거리를 벋어나면서부터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날씨에 겉이 녹아 흐르는 빙폭에 빙질의 감각을 알아보자는 생각에 무심코 장비를 챙겼다. 그들은 스나그를 3,4곳 설치하고 더불 자일을 사용했다. 우리는 우리의 스타일?로 100m를 약 15분만이 등반하고 금석이는 벨트도 없이 혼자 올라가 100m를다시 클라이밍 다운하였다. 등반 중인 캘로스에게 메모를 남기고 우리는 바로 되돌아 밴프에 있는 국립공원안내소를 들러 캠프그라운드와 Y.H.에 관한 문의와 자료를 받았다. 레이크루이즈를 지나 캐나다 트렌스 하이웨이에서 아이스필드 파크웨이(93번도로)로 들어섰다. 주유소가 없을 것 같아 되돌아 레이크 루이즈에서 주유를 하던 중 교민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쉬운 대화로 많은 정보를 알아냈다.
모스키토캠프장 난로에 불지피는 김운회회원 |
날이 이미 저물어 레이크 루이즈 캠프그라운드를 이용하려니 그곳은 트레일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였다. 가장 가까운 모스키토 캠프그라운드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주유소 안내판을 보니 다음 주유소는 253km 이후에 있었다. 그곳은 재스퍼니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253km엔 주유소가 없는 것이다. 깜깜하여 캠프그라운드인줄 알았던 곳은 Y.H.이었고 Y.H사용료는 1인 1실 회원 C$9.00이고, 비회원C$13.00이었다.
바로 모스키토 CREEK(시내)을 건너 캠프그라운드가 있다하여 그곳에 가니 나무난로와 취사장이 있어 텐트를 치지 않고 취사장에서 비박을 하였다. 드디어 우리의 장비로 첫 취사를 하는 것이었다. Y.H의 관리인의 안내로 도끼를 빌려와 장작을 하였다. 그들의 호기심인지? 호의인지? 동양 놈들의 야영생활에 의심인지?는 몰라도 얼마 후 우리가 있는 곳에 나타났다. 차를 대접하며 몇 마디 대화 속에 다시 정보를 얻느냐 바쁘다. 대화를 하던 중 느낀 것은 도와주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92년 2월 13일(목)
아무도 없는 취사장 테이블에서, 바닥에서 비박을 하니 새벽녁에 추위를 느끼긴 했어도 그런대로 편안함이었다. 이곳에 캠프를 정하려 했으나 적설량이 2m이상이고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곳 만 눈이 치워져 있어 일단 다른 곳(우리의 목표에서 좀 더 가까운 곳)을 확인 후 정하기로 하고 09:00에 일어나 11:00에 WEEPING WALL로 향하였다. 보우고개와 사스카체완 크로싱을 지나며 여유있는 운행으로 사진촬영을 하며 12:45에 WEEPING WALL에 도착하였다. 바로 도로변에 엄청난 크기의 빙폭이 형성되어 우리를 즐겁게 맞이했다. 차에서 내려 들뜬 마음, 조급한 마음으로 장비를 챙겨 일단 몸 좀 풀어보자 하며 폭포로 향했다.
람파트 호스텔의 숙소내부조금석,필자,윤용문대원 위로부터 |
LOWER WEEPING WALL을 등반하며 빙질을 익히기로 하고 금석-용문, 근호-운회가 조가 되어 등반을 했다. 나는 전망 좋은 주차장에 카메라를 걸어 놓고 촬영에 열중이었다. 첫피치는 70m 동굴에서 마치고 금석-용문 조는 동굴에서 하강하였다. 용문이는 컨디션이 좋지 못하였다. 용문이는 출국 전부터 육식 식중독에 시달리며 이곳의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 스테이크와 불고기를 먹지도 못하여 국물만 조금씩 먹고 있었다.
근호-운회 조는 LOWER WEEPING WALL등반을 마쳤건만 운회 배낭에 들어 있던 A.F.ZOOM 200mm 렌즈는 첫날부터 낙빙에 맞아 헤드가 돌아버려 렌즈가 저 혼자 들락날락하고 셔타가 혼자서 잠겼다 풀렸다하고 난리다. 등반을 마치고 모스키토 캠프그라운드로 돌아가던 중 올 때 보아둔 람파트 유스호스텔의 OPEN표지만을 보았기에 들러 보기로 하였다. 먼저 WEEPING WALL 1.6km 남쪽에 있다는 플라서커스를 찾아내어 바라보니 사진에서 보았던 상단의 빙폭만 보이고 하단부는 계곡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폴라서커스 진입로를 확인코자 조금 들어가보니 모스키토 캠프그라운드에 있던 취사장이 이곳에도 있고 OPEN된 상태는 아니었으나 사용치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누군가 사용한(불을 피웠던)흔적이 있었다. 곧바로 람파트 Y.H.에 와보니 아무도 없고 취사장과 한곳의 숙소는 열려 있었다.
일단 이곳에서 짐을 풀고 등반을 마칠 때까지 베이스 캠프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내일의 등반을 의논하며 석식을 푸짐히 준비하고 용문이의 식중독을 예찬하며 식사를 즐겼다. 숙소엔 15명 사용할 수 있는 3층 침상이 메트리스와 함께 설치되어 있고 장작난로가 있고 수많은 장작과 도끼가 있으니 두꺼운 침낭에서 속옷차림으로 더위와 싸우며 자야했다.
1992년 2월 14일(금)
어제의 맛보기 등반으로 약 7-8시간 정도면 웨핑 필라등반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여유부리다 07:00에 기상하여 조식 후 웨핑 월에 09:50 도착하였다.(베이스캠프인 람파트 Y.H.에서 웨핑 월은 북쪽 약 10km지점). 등반준비를 하여 10:20에 근호-금석이가 출발하여 90m자일을 사용 70m지점에 첫 피치를 끊고 금석이가 바로 125m의 LOWER WEEPING을 등반, 2시간 45분 만에 끝냈다. LOWER-UPPER WEEPING WALL사이의 설면이 럿셀이 되지 않아 약 40분 노동 끝에 UPPER WEEPING WALL에 도착하여 간식과 휴식을 취한 후 13:58 근호가 출발하였다. 시간상으로는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18시 이전에 등반이 끝나면 된다. 하강루트는 거의 확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UPPER WEEPING WALL의 하단부 약 70m 등반이 끝난 후(테라스가 있고 좌측에 동굴이 있다) 동굴에서 출발한 금석이는 여지껏 접해 오지 못한 빙질에 고전을 하며 약 10m오르는데 27분이란 시간을 소비하더니 더 이상 등반은 불가능하다고 교신해 왔다. 너무나 푸석한 빙수 같은 빙질이 장비를 잡아주지 못하고 속도 비어있다고 한다. 하강을 하라고 하고 시간이 있으니 근호도 빙질을 익히기 위해 하강지점까지만 등반 해 오고 내려오라 하였다. 동굴 속에 슬링으로 확보점이 있어 그곳에서 하강을 하였다.
LOWER WEEPING WALL 하강 시 뒤에 오는 근호는 연결된 자일이 거추장스러워 풀었고 금석이는 연결 되었는 줄 알고 바로 던져 자일 1동이 떨이지다 중간 설사면에 걸려버렸다. 최측으로 40m 자일 1동으로 하강이 가능하지만 자일이 걸린 곳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자일이 있는 곳까지 하강하여 다시 자일을 연결하고 LOWER WEEPING WALL 중간 동굴로 하강, 그곳에서 마지막 하강을 마치니 19:00 해드랜턴 신세를 졌다.
부지런히 Y.H.에 돌아와 보니 캐나다 산악인 3명이 내일 등반을 위해 숙영 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하며 다음 등반을 이야기 하던 중 Y.H. 관리인이와 1인 1일 C$8.00씩 2일치(오늘 밤과 내일밤) C$96.00을 지불하고 그와 대화를 통하여 주변 정보를 캐던 중 그가 JAFF LACKS(86년 네미니스 140m V-6 솔로등반자)인것을 알았고 그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터미네이터는 초등이후 결빙이 한번도 되지 않았기에 재등되지 않았고 수없이 많은 산쟁이가 결빙되기만을 기다리며 칼(픽켈)을 갈고 있다고 한다. 지미 쉘터도 마찬가지 상황이고,
* 빙폭의 이름은 보통 초등자들이 명명한다.
* 웨핑필라와 폴라서커스개념도
* FIELD지역과 수많은 빙폭의 상태와 어프로치 정보
* 슬립 스트림과 네미니스의 어프로치 등등 수많은 정보를 알아냈고 그것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1992년 2월 15일(토)
항상 한손에 먹을 것을 쥐고 있는 김혜영회원 |
어제의 등반실패의 첫째 원인은 UPPER-WEEPIN WALL의 빙질은 상상치 못했고, 안일한 생각에 등반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체력소모가 컸기에 오늘은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축척시키기로 하였고 내일 다시 시도하기로 하였다.
실컷 자다보니 10:30경에 기상하였고 조식준비를 하려니 눈에 묻어 두었던 쇠고기 덩어리(약2kg)가 없어져버렸다. 창고 천정에 자리 잡은 마틴이란 이름의 쪽제비 같은 동물이었다. 크기는 족제비(몸길이 30cm, 꼬리길이 30cm정도)만한 것이 머리는 흰색이고 점점 색이 진해져 갈색을 거쳐 꼬리 끝은 검은 색이다. 쇠고기 도난사건이 생기자 용문이가 제일 좋아했다. 당분간 스테이크는 없을 것이다. 땔감도 하고 물도 긷고 창고 천정에서 마틴의 보금자리 찾아 오징어 다리로 장난도 치며 망중한을 보냈다. 오늘이 토요일 주말이다. 웨핑월에 다른 팀의 등반을 구경하러 가 보았다.
한팀 3명이 등반 중이었으나 등반 실력은 별 볼일 없었다. 보고 배울만한 점을 찾지 못했고 3명이 약 20m 한 피치 등반에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바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보냈다, 저녁이 되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식당이 붐벼 취사도 제대로 못하고 이리 저리 밀리다 결국 22:00가 다 되어서 취사는 했지만 식사할 자리도 편치 못하다. 식당에 모여 이야기하느라 자리가 나질 않는다.
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있고(그중 산쟁이도 상당수 있다)우리는 내일 일찍 등반을 해야 하기에 혜영이만 정보 수집원으로 식당에 남겨 놓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내일이면 JAFF LACKS가 떠난다하여 기념품으로 회기를 주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
1992년 2월 16일(일)
아침 식사 준비하는 김혜영 회원 |
05:20 기상하였다. 금석이와 근호는 좀 더 자게하고 모두 살며시 식당에 모여 조식을 준비하고 금석이와 근호를 깨워 조식을 마쳤다. 운회와 혜영이는 뒤처리로 남겨두고 07:10 출발하여 WEEPING WALL에 도착하니 아직 날이 어두웠다. 용문이를 다시 숙소로 보내고 등반준비를 하여 08:00 경 등반 개시할 즈음엔 훤히 밝았다.
15분 쯤 일찍 출발했어도 괜찮을 것을 너무 어두워서 늦게 출발하였던 것이다. 오늘은 웨핑필라를 필히 등반해야 한다. 기온이 점점 상승하여 빙질도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많은 산쟁이와의 대화 속에서 91년 12월엔 웨핑필라 등반자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92년 새해부터는 기온이 높아지고 비가 내린 날도 있어 빙질이 몹시 나빠져서 아무도 등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LOWER WEEPING WALL을 쉽게 등반하려고 조금 쉬워 보이는 코스를 택하였으나 얼음이 얇아 고생도 증가하고 결국 직등 했을 때의 시간보다도 십여분 더 소요되었다. 약 30분간 중식을 하고 이틀 전 럿셀해 놓은 길을 걸어서 UPPER WEEPING WALL에 도착하여 시간을 계산해 보니 결코 여유있는 시간은 아니였다. 삼각대도 없이 사진을 찍으려니 목이 다 뻐근하다.
UPPER WEEPING WALL의 테라스까지 쉽게 등반하였고 시간을 체크해 보니 여유가 있을 줄 알았건만 햇빛을 전면으로 받는 UPPER WEEPING WALL의 상단 90m는 전혀 다른 푸석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결국 시간에 비례한 엄청난 노력과 고생 끝에 일몰 전에 등반을 마쳤다. 우리의 첫 목표가 달성된 것이다. 이제 어둠 속에 안전 하강만이 과제다. 스나그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한번에 90m씩 하강을 하려 하였다. 확보 지점에서 한번에 중간 동굴까지 하강이 안 되므로 상단부분에서 어두워지기 전에 확보하고 하강 첫 핏치를 나누어야 했건만. 자일의 텐션으로 혹시 가능할지 몰라 길게 하강 한 것이 결국 푸석 얼음에 도달하고(동굴 약 10m 위) 말았다. 하는 수 없이 14일 후퇴시 설치한 스크류 옆에 하나 더 설치하고 그곳에서 하강 피치를 나누었다. 근호가 그곳에 도착했을 땐 벌써 앞이 안 보이는 어둠이 내려 랜턴을 켜고 자일을 회수하고 다시 설치하는 작업을 불안한 스크류에 매달려 해야만 하니 자일처리 시간이 하강시간보다도 더욱 많이 소요되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 두개의 랜턴 불빛만이 반짝이고 트랜시버에서는 간혹 숨소리만 들려왔다. UPPER WEPING WALL 하강이 끝났을 때 우리는 완전한 등반성공을 예견하였고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LOWER WEEPING WALL은 오늘이 3번째이고 모두들 하강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LOWER WEEPING WALL까지 하강하여 우리가 등반조를 맞이한 시각은 20:00 꼭 12시간 만에 상봉이었다.
관광객들과 기념사진 한장. 그들은 모험심 강한 도전적 행동을 동경한다. |
등반 중에 수많은 관광객이 우리를 보고 등반사진을 찍었고, 아무리 포근하다 해도 핫팬츠를 입은 100kg이 넘는 거구의 "PAUL"이라는 히피족같은 친구는 같이 기념촬영도 하였다. 회기의 한글을 보고 인천에서 온 50대 후반의 부부는(에드먼턴에 사는 딸 부부를 방문중) 우리를 자랑스러워하며 청포도와 깨강정을 인원수대로 주었다.
결국 유스호스텔에 도착하여 용문이 생일과 웨핑필라 등반을 자축하며 미역국에 축하주(소주)를 마시며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Y.H에는 우리를 제외하면 3-5명 정도 밖에 없다. 식사를 마치니 근호는 제일 먼저 세상모르고 뻗는다. 내일 할 일을 메모하고 23:00경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숙소 전체를 우리 6명이 사용하고 캐나다 산쟁이 3-5명은 다른 숙소를 사용하였다. 람파트 유스호스텔은 관리인 숙소, 2동의 숙소, 1동의 취사장, 1동의 사우나실이 있다. 식수는 Y.H앞 람파트 CREEK에서 길어다 사용한다.
1992년 2월 17일 (월)
한 건 올렸으니 하루 쉬며 다음 껀수(?)를 위해 정진하기 위하여 눈떠지는 대로 기상했다.(06:30) 조식을 하고 세탁과 샤워를 하기 위해 레이크 루이즈로 11:30경 떠났다. 샤워장은 영업을 안하고 동전세탁소는 영업 중이었다.(1회 사용료 C$2.00, 건조기 8분 C$0.25)
레이크루이즈의 셀프 세탁 식사 |
세탁 후 식품점에 들러 용문이가 제일 싫어하는 쇠고기를 중심으로 식량을 구입했다. 물가는 캘거리보다 약 10-15% 정도가 비싸다. 교민 김종휘씨 이야기로는 캘거리가 가장 싸고 관광지로 깊이 들어 갈수록 비싸 진단다. 서울의 회원들에게 엽서도 부치고 시차로 인하여 오후 3:30에 전화를 해야 하기에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재스퍼 지역 지도를 구입하고 주유소에가 김종휘씨와 이야기하며 많은 의문사항을 풀었다. 커피를 얻어 마시고 답례로 88담배를 2갑을 드렸더니 판매하는 캐나다 담배를 주려하여 극구 사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배 1갑 C$6.00 -10.00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15:30 기활이와 통화하여 등반소식과 등반 예정을 말하고 서울소식도 들었다. 베이스 캠프인 람파트 Y.H.로 돌아오며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로키산맥 사진도 찍어 본다. Y.H.에는 아무도 없고 우리 6명과 JAFF친구 2명만이 남아 있어 그들이 꼭 우리나라에 와 있는것 같고 우리는 타국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펜슬을 우회하는 필자 |
1992년 2월 18일 (화)
오늘은 계획했던 폴라써커스를 등반하는 날이다. JAFF와의 대화 중 펜슬 밑까지는 2-3급의 빙폭으로 연속되었다기에 모두 펜슬까지는 가기로 하고 마지막 등반은 금석-운회조로 정하였다. 05:30 기상, 07:30 출발하여 약 80km 북쪽에 위치한 폴라써커스 입구에 있는 캠프 그라운드 취사장에 도착, 장비를 챙기고 폭포하단까지 럿셀 해나갔다. 스키폴을 비롯한 카메라백 등 몇몇 불필요한 장비는 그곳에 두고 등반 장비와 카메라를 챙겨 금석, 운회, 근호 3명이 동시 출발 3조로 연등하며 펜슬에 도착하였다. 혜영이만 약간의 체력관계로 조금 늦었을 뿐 별 지장은 없었다. 직접 눈으로 본 "펜슬"은 가히 신의 조각품이었고 여지껏 그렇게 신기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비경은 비교될 만한 것도 본적이 없다. 펜슬을 우회하는 부분은 극히 위험한 부분으로 동시 등반이 어려울 곳이라 휙스 로프를 설치하며 한명 씩 전진하며 모두 펜슬 상단에 섰다.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온 부근호회원 |
눈에 비친 폴라 써커스의 상단은 쉬워 보였고 길이도 짧아 보여 2팀 등반을 시도하였다. 30m정도로 보였던 첫 피치가 70m가 넘었고 누운 것 같았는데 직접 붙어보니 직벽이였다. 엄청난 시각 착오였다. 결국 90m 정도로 보았던 폴라 써커스의 상단 부분은 230m-250m 정도였고 JAFF가 설명할 때 6피치로 설명한 이유를 알았다(북미에서는 1피치는 45m(50야드) 이내). 설상가상으로 용문이는 금석이의 낙빙을 맞아 눈 위가 찢어져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매달려 지혈을 하고 첫 피치 70m 등반 후 하강하였고 파트너였던 근호는 덩달아 하강하여야 했다.
하강지점에 모두 모인 대원들 |
금석이와 운회는 16:00경 등반을 마쳤다. 우리는 목표를 모두 달성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계획이 수정되어 가장 어려운 웨핑필라를 맨처음 등반했고, 오늘은 가장 긴 폴라써커스를 등반했으니 말이다. 밤눈이 어두운 혜영이는 먼저 내려보내고 기존볼트에 자일을 걸어 하강시키고 먼저 하강한 대원이 남은 자일을 획스시켜 다음 하강하는 방법을 썼으나 결국 3회 하강하니 6명이 모두 만났다. 별안간 "곰이예요. 곰"이라는 근호의 외침에 급히 하강하여 카메라를 들고 뛰어 갔으나 곰은 멀어졌고 7-8마리의 무리져 있는 것은 곰은 아니고 하얀 산양이었다. 어찌나 살이 쪘는지 엉덩이 부분이 꼭 곰이였다. 이미 날은 저물었고 앞으로 3번의 하강이 더 있건만 하강 볼트는 찾을 길 없고 능선의 나무로 부터 하강을 하니 오버행이 나오고 많은 시간을 보낸 끝에 또 다시 랜턴 신세다. 지금까지 한번도 랜턴신세를 안지는 날이 없었다.
그나마 2번의 하강은 작은 능선너머 걸어내려 갈 수 있어 빨리 내려왔다 두고 갔던 장비를 챙겨 차에 도착하니 19:00가 지났고 호스텔에 돌아오니 우리의 베이스캠프엔 2명의 캐나다 산쟁이 밖에 없었다. 오늘부터는 용문이의 식중독이 호전되어 슬슬 육식에 젓가락을 댄다.
1992년 2월 19일 (수)
웨핑필라와 폴라서커스 등반이 끝나자 주변에 높은 등급의 빙폭이 없다. 허리가 동강난 아이스나인과 해피데이 뿐이다. 오늘은 휴식도 취할 겸 재스퍼 공원 쪽으로 정찰도 할 겸하여 11:30경 출발하여 재스퍼로 향했다. 사진촬영과 자료수집이 첫째 목표이고 산속에 숨은 빙폭들의 진입로 확인이 두번째 목표였다.
선웹타 고개를 올라 '안드로메다 봉'과 '아서바스카 봉'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콜롬비아 빙원에서 '스노우 돔'을 보고 (북쪽면에 슬립스트림과 볼더라인이 있음) '커튼 콜 폭'도 살펴보고 '앤드레스체인 릿지'도 보았다. 재스퍼지역으로 갈수록 지대가 낮아지며 웅장한 독립봉이 시선을 붙잡았다.
유영인씨와 저녁식사 |
14:20경 재스퍼에 도착하여 식량을 보충 구입했다. 레이크 루이즈 보다는 조금 싼 편이나 캘거리보다 조금 비싸다. 14:00경 엽서를 봉투에 넣어 한꺼번에 보내고 14:40 서울에 전화를 하여 폴라서커스 등반보고를 했다. 안부를 주고받는 중 재스퍼에 사는 교민 유영인씨(재스퍼 교민 회장, 로키 기프트 숍 운영)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찾아가 보았으나 만나지 못했다. 재스퍼에는 마을의 크기에 비해 많은 교민이 살고 있었고 한글간판도 눈에 뛰었다.
재스퍼에서의 일은 모두 끝내고 돌아가려다 유영인씨를 만나 본의 아니게 후한 식사대접을 받았고 근호의 생일이라 양주도 한병 사고 생일케익도 하나 구하였다. 제과점도 교민이 운영하고 있었고 단돈 C$5.00에 주었고 커피 대접도 받았다.
또 다시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18:00까지 영업인데 영업시간이 지났다) 음료수 대접을 받았고 유영인씨가 스포츠서울 오부장님과 통화 중에 나를 바꿔주어 몇가지 물음에 답한 것이 스포츠서울에 대서특필 되기도 하였다.
캠프로 돌아오니 캐나다 산쟁이 3명(2명은 부부)과 젖먹이 아기가 있다. 재스퍼에서 자고 가라는 것을 캠프가 불안해 돌아왔다. 전혀 분실물이 없는 곳인데도 한편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우리 땅에서 수없이 당해 온 자격지심 때문이리라. 구입한 돼지갈비를 양념하여 캐나다 산쟁이와 파티를 벌이니 맛있어 잘 먹는 것인지 공짜여서 잘 먹는 것인지 잘도 먹는다. 마지막엔 녹차까지.... 혜영이 입은 먹으라 떠드랴 바쁘다 바뻐... 바쁜 덕에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하였고 내일의 등반대상지를 찾았다. OH LE TABARNAC과 WHOA WHOA CAPITAIN으로 정하였고 자정이 지나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1992년 2월 20일 (목)
OH LE TAVARNAC과 WHOA WHOA CAPITAIN을 연장 등반한다 하여도 빙폭의 길이가 200m를 넘지 않으니 등반의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07:00경 기상하여 밖으로 나오니 호흡이 곤란할 정도의 추위였다. 문앞에 걸려 있는 온도계를 보니 섭씨 -22도,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당한 추위였다. 어제 재스퍼에서 약 -15도 정도의 추위가 있었는데 썬웹타 고개를 넘는 북쪽지역이라서 그런가 했더니 강추위의 전위병 이었나 보다. 새벽녁엔 -25도 이하로 떨어졌을 것이다.
가깝고 짧은 빙폭등반이나 여유를 갖고 행동했다. Y.H. 남쪽 12Km 지점 사스카체완 크로싱 부근(SASKATCHEWAN RIVER와 MISTAYA RIVER가 합류하는 지점) 93번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와 11번 탐슨 하이웨이가 만나는 삼거리 북쪽 5Km지점, 도로변에 주차하고 (10:00경) 오 레 타바낙 빙폭 밑에 도착하니 11:00 였다. 햇살이 비치며 기온은 급상승하여 별 추위를 못 느꼈다.
눈속의 먹이를 찾는 산양들 |
부근호-조금석 대원을 등반 시켰다. 기술 난이도 5급과 6급답게 깐깐한 빙폭을 나는 처음 코 앞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여유있게 훈련등반 하듯 오 레 타바낙을 끝내니 13:00경이었고 5시간과 체력이 남아 있었다. 와와 캐피탄으로 가는 길은 계곡에 가려 보이지 않아 4명은 도로변으로 내려오고 등반조는 올라갔다. 어느새 햇살이 따스히 비추자 눈 속에 움트는 새순을 뜯으려는 순록이 무리를 지어 숲 속에서 하나 둘 나타났다. 우리가 접근하여도 무신경하게 식사를 즐기고 약 3-5M 정도로 근접해야 어슬렁거리며 피한다.
중간에 교신이 오는데 "럿셀이 너무 힘들고요. 이곳에서 보니 와와 캐피탄은 등반가치가 없는 빙폭이예요."하며 그냥 내려가겠다 한다. 시간여유가 있으니 일단 올라가 보라고 하였다. 이미 로키의 산쟁이들에겐 코리아 산쟁이들의 등반이 알려져 있었다. 주차된 차안에서 등반을 지켜보는데 지나던 차가 멈추더니 말을 건네 왔다. 자기는 JAFF의 친구이고 실제 람파트 Y.H.의 관리자이고 오늘 밤부터 돈을 받겠다 했다. 그를 통해 와 와 캐피탄을 알아보니 오 레 타바낙보다는 훨씬 어렵고 보기와는 다를 것이라 하며 저녁에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떠났다.
렛셀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났건만 한사람만 설사면 중간쯤에 깨알 만하게 보였다. 망원렌즈로 들여다보니 금석이 였다. 약 40분을 더 올라 와 와 캐피탄 하단에 도착하였건만 15:00가 다 되었고 등반을 15:00가 지나서야 시작하였다. 근호가 먼저 출발하였으나 체력이 떨어져 약 15m 정도 오르다 내려오고 금석이가 다시 등반을 시작하였다. 90m 한 동으로 등반을 마치려 했으나 자일이 모자랐고 거의 끝부분에서 근호가 15m 전진 후 다시 등반하였다. 지친 체력에 속으로는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지시대로 따라 등반을 마쳤고 지금까지 등반 중 가장 늦은 시간인 18:00였다.
90m 한번 하강으로 거의 바닥까지 내려와 하강이 쉬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고 설사면도 약 20분만에 내려와 오 레 타바낙을 하강하여 와 와 캐피탄 하강시 마중간 대원들보다 먼저 내려와 있었다. 혜영이와 둘이서 차에서 대원들을 기다리던 중 지나던 차가 저만치서 돌려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던 캘로스와 그의 친구 죤 이었고 어찌나 반갑던지 포옹을 하고 내일 클럽하우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낮에는 이태리 산쟁이가 지나가다 차를 세워 아는체 하며 말을 걸어오는데 영어도 모르는 놈이 이태리어로 떠드니 알 수는 없었고 그들의 렌트카는 대우 르망이었다.
캠프인 Y.H.에 오니 관리인과 이태리 산쟁이 3명이 있고 식사 후 이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해 보니 그들은 오늘 필스너 필라를 등반했다고 V.T.R 모니터를 보여 준다. 이태리산쟁이들도 등반 방식 장비사용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한 친구들이었다, 이태리 친구 3명도 우리와 같은 숙소를 사용했는데 우리는 혜영이 때문에 혜영이 잠든 뒤에 옷을 벗고 잠을 청했건만 이놈들은 팬티바람에 왔다 갔다 한다. 아까는 반갑다고 켈로스가 혜영이 이마에 입 마춤을 하더니....
캔모어에 있는 노르딕 쎈타 |
1992년 2월 21일 (금)
오늘은 코 큰놈들과 같은 식사를 한번 해 보려고 콘프레이크에 우유를 타서 바나나를 썰어 넣고 식사대용으로 샌드위치를 먹어 보니 도저히 안 되어 스테이크를 결들이니 결국 더욱 푸짐한 아침식사가 되었다. 조식 후 서둘러 짐을 챙겨 람파트 Y.H.를 떠났다. 아이스나인 부근에서 캘로스를 다시 보았고 저녁에 ACC클럽하우스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레이크 루이즈에 도착하여 세탁을 하였으나 세탁도 건조도 별로였다.
세탁을 맡겨 놓고 혜영이와 레이크 루이즈(湖) 구경을 갔으나 호수는 설원이 되었고 호수에는 멋진 얼음조각이 있었다. 샤토 호텔 내부를 구경하고 세탁소에 오니 아직도 세탁 중이었다. 교민 김종휘씨와는 FIELD TOWN에 가는 길에 다시 만나 뵙기로 하고 곧 바로 캔모어시에와 ACC사무실을 찾다가 지나쳐가 노르딕 센타를 구경하였다. 노르딕스키 기술을 연마하는 시설이 되어 있는 스키장이었다. 동회에 가서 ACC사무실을 물어 찾아가 보니, 밴프에서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무실이 복잡하고 건물도 바이블 컬러지에 세 들어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에게 FAX로 정보를 준 친구를 만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시내에서 서울로 전화를 했다. 갈비를 비롯한 식량을 추가 구입하여 클럽하우스에 가서 방을 배정받고 오랜만에 샤워를 하였다. 용문이는 싸우나를 해 보겠다고 벼루고 별렀으나 사우나 실에 여자가 앉아 있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그들은 남녀 불문 팬티바람으로도 잘도 드나들고 있건만...
저녁식사후 오랜만에 GO-STOP도 한 시간 쯤 즐겨 보았다.(점당 10센트)
1992년 2월 22일 (토)
푸로펫셔폭 등반을 끝내고 |
지금까지 난이도 Ⅳ급 이상 기술난이도 5급 이상의 빙폭만을 대상으로 등반을 하였다. 낮은 등급의 빙폭은 어느 정도 감이 잡히지만 느낌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아 Ⅲ-4급의(280M) 프로펫서폭을 등반하기로 하였다.
16:00 기상 예정이었으나 07:00 기상하였고 08:40에 출발하여 차도가 끝나는 지점(차량통행이 금지되고 말, 개썰매 등이 다니도록 했다)에 도착. 장비를 챙겼다. 차량 한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한 팀이 먼저 들어 간 것 같았다. 장비를 챙기는 중 또 한대의 차가 도착하더니 2명의 산쟁이가 내려 말을 건네 온다 "한국에서 왔습니까? 웨핑필라를 등반했나요?" 하더니 자신들도 이틀전 웨핑필라를 등반했다며 우리가 하강시 남겨 놓은 스크류를 건내준다.(그들은 하강 볼트의 위치를 잘 알지만 심야에 하강하는 우리 눈에는 볼트가 보이질 않았기에 하강용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시즌 첫 등반이었기에 한국대에서 설치한 것인 줄 알고 전해주려고 갖고 있었단다. 그들이 우리보다 조금 앞질러 가고 우리는 식량까지 챙겨 천천히 갔다. 6명이 모두 등반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기에 간식을 챙겼다.
10:40 폭포 하단에 도착하니 한 팀은 약 50M 위에서 등반 중이였고 한 팀은 등반시작이었다. 우리도 준히바여 11:00 금석, 운회, 근호가 동시 출발하였고 그 뒷줄을 무작위로 하나씩 달고 오르다 보니 금석이와 나, 근호-혜영, 운회-용문이가 한조가 되었다. 단 한개의 스크류도 설치하지 않고 마지막 피치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90M씩 FULL로 등반하였고 중간 중간 테라스에서 픽켈을 이용하거나 좌우측의 나무를 이용하여 빌레이를 보았다.
마지막 피치 약 30m 정도를 남겨 놓고 촬영을 목적으로 모두들 모여서 다시 출발했다. V.T.R 찍세 금석이와 사진을 찍기 위한 내가 제일 끝으로 등반을 마쳤을 땐 14:30경. 결국 한개의 스크류도 사용 하지 않았다. 솔로로 등반한다면 1시간 정도면 될 것이다. 둘이서 한 팀이 되어 등반하여도 2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프로펫셔폭은 30m 이상의 직폭이 없기 때문에 솔로 등반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보우강에 뛰어들어 등목을 하는 윤용문 대원 |
식품점에 들러(뒤늦게 육식에 발동 걸린 용문이 때문에 값은 싸지만 쇠고기 값이 많이 지출되었다) 식량을 구하고 맥주도 구입하여 이제 로키의 동쪽생활을 마감하려 한다. 클럽하우스에 와 짐정리와 세탁을 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며 푸짐한 식사를 한다. 클럽하우스에 돌아온 후 식사를 잠자리까지 연장시키는 윤용문.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얼어붙은 미네완카 호수 |
1992년 2월 23일 (일)
오늘은 밴프시 주변의 관광을 마치면 필드 타운으로 옮겨 등반을 해야 한다. 오늘은 관광이나 하며 자료수집이나 해야겠다. 밴프로 가는 중 MINNEWANKA 호수를 가보았다. 자연호수에 제방을 쌓았다. 호수의 상류가 고스트 지역이다. 30Cm이상의 얼음으로 덮혀 있는 호수는 스쿠버팀이 얼음을 깨고 훈련(?)을 하고 있었고 이들도 확보물로 스크류를 쓰고 있었으나 몸에 묶은 줄이 나이론 빨래줄(?)이라는 점이 우리와는 다른 점이었다.
밴프 시내로 들어와 별로 볼 것도 없어 HOT SPRING(온천) 수영장을 갈까도 했으나 홀랑 벗고 설쳐대는 것은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 설퍼산 곤도라를 타기로 하였다. 1인당 C$8.50씩 C$51.00을 내고 설퍼산을 올라 밴프 주변의 로키 파노라마를 보았다. 런들산, 케스케이드산, 노케이드산과 발아래 터널마운틴이 밴프시가지와 함께 내려다보이고 얼어붙은 보우 폭포와 보우 강이 보인다. 이곳에서 금석이는 담배 한갑 사려고 자판기 앞에 섰다가 담배 값에 놀라버렸다. 처음엔 가격표가 한보루 가격인줄 알고 "자판기에서 무슨 보루로 담배를 판매하나?"하며 의아해 했다. 가격은 한 갑당 C$6.00-10.00.
설퍼산 정상에서 펼쳐진 로키의 파노라마 |
설퍼산에서 내려와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레이크 루이즈로 갔다. 김종휘씨를 만나려 교포 2세 아가씨에게 물으니 김종휘씨는 잘 모르는 눈치더니 " 우리 '김' 두개 있어 하나는 저쪽 식당에 있어," 한다. 식당에 가보니 먼저 번에 본 젊은 친구였다. 김종휘씨는 캘거리에 갔다 한다.
바로 FIELD TOWN에 가서 필스너 필라와 타카카우 폭포의 어프로치 등을 확인하고 공원사무실에 가니 일요일이라 근무자가 없었다. 타카카우 폭포입구의 캠프그라운드를 이용하려 했으나 폐쇄 중이었고 온통 눈에 덮혀 있었고 화장실도 폐쇄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레이크 루이즈로 나와 Y.H.에 가보니 1인 1실 사용에 C$20.00이고 회원은 C$15.00이라며 회원증을 요구하나 우리가 있을 턱이 없고 정히 없으면 한국의 어떠한 단체의 소속원이란 증명서 아무거나(산악연맹증 같은 것이라도) 보여 달라지만 여권외에는 없으니 제시할 것이 있을리가 있나?
결국 그곳에서 되돌아 우리의 보금자리인 람파트 Y.H. 로 갔다. 그곳에 가보니 너무도 많은 인원이 북적이고 있었고 또한 결정적인 것은 ACC클럽하우스에서 부식보따리를 안 싣고 온 것이 생각났다. 냉장 보관 식품도 그대로 두고 왔다. 핑계 김에 다시 150Km 떨어진 클럽하우스로 되돌아갔다. 밤늦게 도착하여 일단 빈 방에 짐을 풀고 점심도 굶은 배를 채우기에 열중이다. 식사를 하고 떡복기, 그리고 라면 스파게티를 연속으로 먹어댔다. 밤늦게 내일의 일정을 포기하고 서울에 편지를 썼다.
1992년 2월 24일 (월)
어제 숙소 찾아 헤매다 지쳐 늦잠을 자고 클럽에서 휴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너무 심심하니 캔모아와 밴프에 가서 시내관광을 하기로 하고 지원자만 관광을 했다. 특식으로 파전을 해 먹으려 했으나 생선, 어패류를 판매하는 곳이 없어 밀전으로 메뉴를 바꾸고 밀가루를 찾으니 끈기 있는 밀가루는 없고 모두 향료(코코아, 마닐라, 등등)가 첨가된 케익 가루만을 판매하고 있어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케익 가루를 구입하여 클럽하우스에 돌아왔다.
맥주 구입차 주류 판매점에 갔다가 멋쟁이 아가씨를 만났는데 우리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넘버 원"을 외치더니 떠나갈 땐 "곤니찌와"한다. 염병할! 그가 탄차가 도요다 스포츠카였는데 우리가 일본인인줄 알고 일본차가 최고라는 뜻이었다.
ACC클럽하우스 취사장 |
이제는 스테이크와 불고기에도 질렸는지 오늘저녁은 토스토와 우유, 밀전과 소주다. 밀전을 부칠 때는 클럽하우스 내의 모든 식구들이 식사를 준비하는데 우리가 보기엔 음식을 만드는지 개죽을 끊이는지 구별이 않된다. 역시 그들도 조리하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전부 엉망이다. 치킨스프를 끊이던 여자는 자신이 조리를 하고도 어떻게 먹어야 할 지 고민을 하는 것 같았고 볶음밥을 만들던 남녀학생들도 "내가 지금 무얼 하는지 모르겠다."하면서 조리를 하더니 우리의 마지막 식사 김치볶음밥을 할 때에는 "BEST COOK"하면서 감탄에 감탄을 했다.
순수 한국식품이면 '코리아 피자'라며 밀전을 전하니 염체도 없이 우리보다 더 먹어 치우고 간장을 찍으며 흉내를 내며 계속 먹어 치운다. 총 3개의 소주(팩)중 한개 남은 소주를 한잔 전하니 부드럽고 좋다고 한잔을 더 청한다. 과연 그들의 입맛에 맞아서 잘 먹는 것인지 근호의 명언대로 "국적을 불문하고, 남녀불문, 노소불문, 공짜는 다들 좋아해"인지 감이 안 잡힌다. 맥주 한 캔씩 들고 침실로 돌아가 GO-STOP을 쳤으나 마이너스 C$9.00이다.
1992년 2월 25일 (화)
필스너필라 첫핏치를 오르는 김운회회원 |
오늘은 FIELD TOWN으로 옮겨 마지막 목표인 필스너 필라를 등반해야 한다. 약 80Km를 이동해야 한다. 일찍 서둘러 06:30 기상했고 08:00출발하였다. 곧 바로 정찰했던 곳 폭포 입구에 주차시키고 보니 공원 관리소 패트롤카가 지나며 무엇인가를 붙이고 지나갔다, 그날의 일기와 위험요소를 지역별로 타이핑된 것을 주요 등반대상폭포 입구에 게시하는 것이였다. 내용 중엔 기온, 최저, 최대, 전일적설량, 눈사태 예상지역, 예상강설량에 의한 위험 지역 등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폭포 아래 도착하니 미국인 2명이 우리가 보기엔 엉성한 폼으로 등반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이 첫 피치를 벗어날 때를 기다려 근호-운회가 11:00가 좀 지나서야 등반할 수 있었다.
첫피치의 6급 빙폭 등반이 끝난 후 우리는 상단이 잘 보이는 강건너의 도로 (1번 도로 캐나다 트랜스 하이웨이)로 위치를 옮겨 망원렌즈를 통해 지켜보았다. 무전교신을 통해 계속 지켜보는 듯하며 YOHO 국립공원 안내소에 가서 자료도 수집하고 VTR시청도 했다. 그들은 우리가 문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도와 주었고 VTR 시청 후 마음에 드는 테이프의 구입처도 알려 주었다. 이곳은 YOHO 국립공원 내의 수십개의 빙폭사진과 등급, 위치 등을 앨범에 비치하여 원하는 등반자에게 열람시켜 주고 있었다. 규모 면에서 밴프나 재스퍼보다는 적었지만 빙벽등반자료는 잘 되어 있었고 친절하기도 했다.
다시 등반 광경이 잘 보이는 곳으로 돌아와 등반을 지켜보니 미국인 등반대를 추월하여 등반을 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별 어려움 없이 등반을 마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나머지 4명은 차를 돌려서 네츄럴 브릿지(3Km)와 에메랄드 호수 (8Km)를 관광하기 위해 등반을 지켜보는 듯 무전교신을 하며 네츄럴브릿지에 가서 사진고 찍고 신기한 모양의 수중터널을 보고 맑은 에메랄드빛의 물도 보았다. 에메랄드 호수로 가려하니 등반이 끝났다는 무전이 와 바로 등반지 아래로 가서 기다려 마지막 등반을 끝낸 운회와 근호를 태우고 곧 바로 레이크 루이즈에 김종휘씨를 찾아갔으나 아직도 캘거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책방에 들러 책 몇권과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구입하고 곧장 모스키토 캠프 그라운드로 이동하였다.
모스키토 캠프에는 1명의 캐나다인의 강아지 2마리와 텐트를 치고 장작을 쪼개고 있었다. 우리도 그로부터 도끼를 빌려 밤새워 땔 수 있는 장작을 준비했다. '윤도끼'라는 별명의 사람이 혹시 호수가 많은 이곳에서 선녀 옷 한 벌 건질까 해서 도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겨울내내 사용할 장작이 취사장 바로 옆에 쌓여 있었고 먼저번 아영시에는 눈에 덮여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혼자 아영을 하는 캐나다인은 부인은 간호사로 근무 중이었고 저는 강아지 2마리와 함께 여행을 한다. 장작 난로에 후라이팬을 올려놓고 난로가에 둘러 앉아 불고기 식사를 했다. 혼자 있는 것이 안쓰러워 식사를 같이하자고 하니 즉시 OK 하고 포크를 주니 젓가락을 달라고 한다. 우리보다도 더 잘 먹으니 역시 근호의 말이 명언이야!
모스키토 캠프장에 벌여놓은 장비 |
식사 후 차 대접을 하니 그것 또한 잘 먹고 답례로 자기의 차를 건네주는데 박하향의 쟈스민차 였다. 취사장 내에 비박준비를 하던 중 Y.H.에 싸우나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하여 근호, 운회, 용문이가 따라 갔으나 비키니 차림의 여자가 싸우나 실에 않아 있었기에 좁다고 운회와 용문이는 돌아왔다. 잠시 후 근호가 오더니 사우나(핀란드식)를 극찬하여 운회가 갔고 잠시 후 곱배기 극찬에 나도 한번 가보았다. 난생처음 싸우나를 들어가 본 것이다. 한증탕에도 못 들어가는 체질인데... 운회와 캐나다 친구 2명이 있었고 정원은 4명 정도 밖에 안되는 곳이다. 내부에는 눈익은 철판난로가 있어 장작을 때고 난로 위에 호박돌이 몇 개 있어 그것을 달구고 그곳에 물을 뿌려 스팀을 일으키는 것이다. 냉탕 대신에 밖에 나가 눈으로 맛사지를 하고 다시 들어가고 하기를 3회 약 20여분 정도 있으니 땀이 수없이 빠져나갔건만 피부는 끈적임 없이 개운했다. 캠프로 돌아와 피자를 데워 야식을 하고 식탁과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청했다. 내일부터는 완전한 관광길에 올라 자료 수집만 하면 된다.
1992년 2월 26일 (수)
얼어붙은 에메랄드 호수에서 텐트 촬영 |
이제는 등반도 없고 시간에 구애받는 일도 없다 발길 닫는 대로 시간되는 대로 밴쿠버를 향하여 가면 된다. 느즈막이 일어나 조식을 하고 짐을 정리했다. 등반장비는 완전 포장되어 한 곳에 넣고 제일 밑에 깔려 들어간다. 모스키토 캠프 그라운드를 떠나 레이크 루이즈를 거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FIELD TOWN에 우리만 본 것이 미안하여 근호-운회와 같이 네츄럴 브릿지에 갔다. 왠 아가씨 4명이 놀러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말이 통해야 인사라도 나누겠지만 통역관 혜영이는 본척도 안하니 그들도 우리의 이야기 소리에 반응이 전혀 없다.
에메랄드 호수에 가서 그간 한번도 펴보지 못한 텐트를 펴고 에메랄드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었다. 밴쿠버 쪽으로 차머리를 돌려 신나게 달린다. 마주 오는 차량을 구경하기 힘들다. CLACIER국립공원 안내소에 들러 몇 가지 자료를 수집 했다. MT.REVELSTOKE국립공원을 지나 REVELSTOKE CITY에 도착 (15:00 경 : 이곳으로 오던 중 1시간을 뒤로 돌려 놓고) 시내를 쇼핑하고, 별로 구입할 것도 없지만 숙소가 결정되지 않아 식품은 구입하지 않았다. 모텔 안내서에서 리버스톡 페이지를 찾아 값이 싼 곳을 두곳 선정하고 그간 등반(징크스)으로 인하여 먹지 못했던 치킨 15피스(C$20)와 쉐이크 6잔(세금 포함 약 C$10.00)을 먹었다.
R모텔에서의 T.V시청 중 |
숙소를 'R'모텔로 결정하고 모텔을 찾아가니 값이 싸건만 훌륭한 시설이다. 방 2, 거실, 주방에 더불침대 4개가 놓인 30여평 콘도 같은 시설이었다. 주방시설이 있었기에 다시 식품점에 가서 식량을 구입하고 저녁식사를 훌륭하게 해결하였다. 식사 후 서울로 전화를 하여 그간의 경과를 전하였다.(서울 시각으로 오후 2:30)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지만 T.V도 보며.....
1992년 2월 27일 (목)
오늘도 일과는 밴쿠버를 향하여 가는 곳까지 가면 되는 것이다. 레이크 루이즈에서 밴쿠버까지 약 900Km가 조금 넘을 것이다. 어제 약 300Km 정도 달렸으니 나머지는 약 600Km.
8:30 눈을 떴으나 모두들 꿈나라여행 중이고 용문이는 세면 중이다. 10:00에 리버스톡을 떠나 밴쿠버로 향했다. 초원과 호수의 나라답게 수많은 호수가 있고 THREE VELLY LACK에 처음으로 얼지 않은 호수를 보았다. SKAMOUS CITY를 지나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커다란 호수 ANSTEY ARM LACK를 보며 달려보나 한 시간이 지나도 계속된다. 고개 마루의 도로 휴식처에는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고 취사는 금지되어 있었다. 화장실에는 넉넉한 휴지와 방향제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유류 가격이 자율화되어 가격이 각각인데 지금껏 보아 온 것보다 가격이 비싸 좀 더 싼 곳을 찾으려다 가슴조일 뻔하고 결국 같은 값으로 주유를 하였다. 이 곳 KAMLOOPS CITY부터는 거의 사막과 같은 풍토이고 산이 모두 자갈과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둥글둥글하게 깎여 있고 자갈과 모래가 엉겨 희안한 형상을 한 곳도 있다. 평원에는 활엽수는 전혀 볼 수 없고 침엽수와 간혹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선인장 같은 잡초만이 뒹군다. SAVONA라는 작은 마을에서 주유를 하였다. 캘거리는 리터당 C$0.40-0.42, 밴프 0.42-0.45, 레이크 루이즈 0.44-0.48이였는데 이곳은 0.52였다.
검고 흰 두강물이 만나는 것이 확연하다. |
CACHE CREEK까지는 빈 사막 같은 지형이더니 이곳부터는 우리나라 산세와 비슷했다. 강원도 골짜기 같은 느낌도 들고, 하지만 토질은 달라 골짜기가 다르게 형성되어 있다. 강물도 매우 탁하고 보기에도 몹시 더러워 보였다.
15:35경 LYTTON 이란 작은 마을에 도착하니 동양계 인종이 많고(특히 베트남) 캐나다에서는 빈민촌 인것 같았다. 두개의 강물이 만나는 지점인 이곳은 한 쪽은 탄광에서 흘러오는지 시커멓고 한쪽은 흙탕물이 흐르는데 쉽게 섞이지 않아 강의 대안쪽1/2은 흙탕물이 흐르고 양안쪽 1/2은 검은물이 흘러 신기하다. (사진45:검고 흰 두강물이 만나는 것이 확연하다.)
모텔 마당에서의 저녁식사 |
이곳부터 BOSTON BAR로 가는 길에 숙소를 찾기로 하고 모텔 안내서를 보고 BULE LACK RESORT에 가니 경치도 좋고 모든 것이 좋은데 주인 할머니께서 오늘은 딸네 가족이 오는 날이라 방이 없고 내일은 가능하다고 했다. 이왕에 이곳에 들어 왔으니 호수와 주변을 구경하고 다시 숙소를 찾아갔다. BOSTON BAR TOWN 약 5Km 전방에 WHITE WATER MOTEL이 있어 그곳에 자리했다. 트윈룸이 C$30.00이고 세금포함하여 U$34.50를 지불하고 주방이 없어서 마당에 피크닉 테이블을 놓고 저녁준비를 하였다.
오랜만에 렌터카지만 세차도 하고 부식을 구하러 BOSTON BAR에 가 식품점에 들러(이곳은 주류도 같이 운영) 식량을 구하다 보니 라면을 비롯한 우리 식품이 간혹 있었다. 계산을 하다보니 카운터 아가씨가 한국인이었고 서초동에 살다 3년 전에 온 '박연수'라는 아가씨였다. 처음 김종휘씨를 만났을 때는 무척이나 반갑더니 꽤 많은 교민을 만나다보니 희소가치랄까? 반갑긴 해도 그전만은 못하다. 오늘은 손수 후라이드 치킨을 만들어 먹는다.
1992년 2월 28일(금)
오늘은 밴쿠버라는 대도시에서 해매야 하기에 일찍 좀 서두르려고 했으나 08:30 기상 10:30에 출발하였다. 어제 밴쿠버 입성관계로 세차도 했으니 산뜻한 모양과 기분으로 달린다. 중간 중간 작은 마을을 몇 군데 지나며 어제보다는 나아진 산세를 바라보며 달린다. HOOP CITY에 오니 지형이 국내와 아주 흡사해지고 어느 잘 정리된 시골을 바라보는 것 같다. 산세가 설악과 비슷해 지며 골도 깊고 곳곳에 꽤나 높은 폭포가 있다. 행인도, 휴게소도 없다. 인터체인지에는 출입구 번호판만 있고 휴식은 도로를 벗어나 마을을 진입해야만 한다.
밴쿠버 부근에 오니 차량에 제법 많아지고 고속도로 속도도 떨어진다. 고속도로는 시내를 관통하며 주요 간석도로와 연결되지만 우리는 어데가 어데인지 모르고 출국시 편의를 생각하여 공항부근으로 갈려하나 공항이 어데 있는지? 값싼 모텔이 있는 'KINGSWAY STREET'는 어느 곳인지 알 수가 없다.
밴쿠버의 한인 마켓 |
결국 시내를 관통하여 북쪽 거의 끝 부분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LONDON DRUKS'라는 잡화 체인점에 들어가 밴쿠버 시내지도를 구입하였다. 현재의 위치를 확인한후 지도를 살피면 'KANGSWAY'를 찾아 왔으나 번호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몰라 부근을 해매다 한국어 간판을 발견했다. '서울여행사' 우리 같은 동포임에 확실하나 너무 무성의하게 알려 주어 우리는 조바심으로 자꾸 물어보나 잔소리 말고 가르키는 곳으로 가기나 해라는 느낌을 받고 '머나먼 타국에서 겨우 말 동냥을 청하는데 그럴 수가 있나?'하는 느낌이었다. 가다보니 KINGSWAY 1000번 부근에는 수많은 한글간판이 있고 건물 전체가 한글 간판인 곳도 있다. 반가운 마음에 한인 식품점에 가니 없는 것이 없고 국내 슈퍼와 똑같다. 김치, 콩나물에 소주, 박카스 까지... 일단 식량을 점검하고 숙소를 정한 후에 다시 오기로 하고 나왔다.
KINGSWAY 2500번 주위에 모텔이 있고 조금 낳은 곳은 C$128.00이고 제일 싼 곳이 C$85.00이다. C$85.00짜리 중 생활하기 좀 편한 곳으로 자리를 잡고 근호의 주장에 따라 캘거리에서 얻은 MOUNTAIN EQUIPMENT CO-OP 카다록을 보고 밴쿠버점을 찾아갔다. 주위에 몇몇 장비점이 몰려 있었다. 다른 장비점도 들러보고 꼭 필요한 장비(국내 사용분)를 구입하고 모텔로 돌아오는 길에 한인식품점에 들러 김치, 가래떡, 쌀을 비롯한 우리 식품을 구입하여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KINGSWAY를 몇 번 오가며 보니 '쥬단학 화장품'에 '밴쿠버 한약방'까지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내일 모래는 미국을 가야한다. 운회 비자 관계로 영사관에 가야하는데 오늘이 주말이라 이틀간 일을 못 보니 요일을 생각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우리가 자리한 카리브 모텔은 방하나(더블침대)와 거실(더블침대, 침대용 쇼파)과 주방이 있었다. 리벌스톡에 비하면 값은 두배요 시설은 절반이라. 그래도 부근에서 가장 싼 모텔이다.
1992년 2월 29일 (토)
오늘도 어제와 같이 올려면 오고, 가려면 가고! 마음 내키는데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꼭 해야 할 일은 공항위치와 이곳 숙소에서의 도로를 숙지하는 것이다. 만약 교통편이 좋지 않으면 마지막 날은 공항 부근으로 모텔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공항에 도착하여 렌트카 관계를 확인하고 싱가폴항공사무실에 갔으나 아무도 없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캐나다 국내항공만 일을 하고 국제선은 모두 쉬고 있었다. 전화로 알아보니 급한 용무는 LA사무소로 연락하라고 자동응답기가 이야기 했다. 공항의 일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였다.
밴쿠버의 스텐리공원에서 다운타운을 배경으로 |
간식을 먹으며 CYPRESS BOWL ROAD를(밴쿠버 북쪽 외곽 도로 : 서울의 북악스카이웨이와 같은) 올라 CYPRESS PROVINCIAL PARK에서 밴쿠버 시내를 내려다보니 날이 흐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계속 고도를 높이며 올라가니 질퍽한 눈이 쌓여 있고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밴쿠버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스키장이었다. 스키장에서 내려와 CAPICANO STREET로 CAPICANO LACK를 지나 GROVSE 산에 가니 케이블카가 있었으나 구름이 끼어 케이블카를 타봐야 소용없는 일일 것 같아 포기하였다. 곧 바로 내려와 CAPILAND RIVER NATIONAL PARK에 가서 '서스펜션 브릿지'를 보려 했으나 입장료가 1인 C$5.30라니 모두들 안 봐도 본 것으로 하겠다 했다.
그냥 숙소로 가서 실컷 먹기나 하자하여 숙소로 가는 길에 한인 식품점에 들러 김치 1통과 부식을 구입하고 SAFE WAY(대단위 쇼핑체인점)에 가서 식품을 구입하였다. 돼지갈비를 하려고 갈비를 산 것이 목뼈에 스프용 이였기에 갈비양념하기가 힘든 감자탕용이었다.
1992년 3월 1일 (일)
혜영이와 같이 매일 제일 늦게 일어나던 금석이가 제일 일찍 일어나 설쳐대더니 남들 모두 식사준비를 할 때 혼자서 졸고 있다. 오늘이 미국으로 소풍가는 날이라 들떠서 그랬나?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다. 비오면 소풍 못 갈까봐 다시 졸고 있나 보다.
모텔에서 작은 방으로 바꾸어 짐을 옮겨 놓고 미국비자가 없는 운회를 남겨 놓고 10:00경 미국으로 향했다. 해저터널을 지나 국경에 10:40경 도착하였으나 입국신고 관계로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다. 입국신고소에가 입국카드를 쓰고 입구허가를 받아 별 어려움이 없이 미국 땅에 들어섰다.
갑자기 차선이 늘어나고 조금 달려보니 도로 안내 표지판이 달라졌다. (특히 Km에서 Mile로 변경). 지도가 없어 궁금하게 달리고 있다. 도로안내판은 미국이 캐나다보다 크고 보기 편하게 되어있다. 워낙 도로망이 복잡하고 중간 중간 마을이 많아서 그것을 일일이 표시하느라 그런지 휠 씬 보기가 편했다. 중간 휴게소(화장실과 안내소뿐 임)에서 지도를 구하려 했으나 근무자가 없었다. 게시된 지도를 숙지하고 용문이가 알고 있는 김광열씨의 시애틀 주소를 갖고 무조건 남쪽으로 내려갔다.
일단 피자로 요기를 하고 지도를 보고 린우드를 찾는다. |
시애틀 시내를 관통하여 비행기 제작회사인 보잉사를 지나 시애틀 남쪽에서 일단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주유소에서 위싱턴주와 시애틀지도를 구입하였다. 김광열씨의 주소는 'LYNNWOOD 20005 HWY99'였기에 지도를 펴고 장님 문고리 더듬듯 대력적인 현 위치를 찾아 대조하며, 확인하고 시애틀시 지도의 '보기'에서 LYNWOOD를 찾아 작은 골목길까지 찾아갔다. 전화를 하니 통화가 안 되고 교환원과의 복잡한 실랑이만 벌였다.
일단 '피자 헛'에 들어가 간식으로 피자와 콜라를 마시고 위싱턴주 지도를 보다가 시애틀 북쪽에 LYNNWOOD라는 위성도시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쩐지 스펠링에 'N'가 하나 빠져있다 하니! 다시 차를 돌려 시애틀시를 다시 관통하여 되돌아가 LYNNWOOD 20000번지 부근에 차를 세우고 찾으니 바로 눈앞에 20005번지 세탁소가 있었다. 부근 볼링장에서 전화를 하고 볼링장에서 만나 그분의 집으로 갔다. 푸짐한 저녁 대접과 끊임없는 디저트에 배를 달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자정이 지나서야 잤다. 모텔에 들어 숙박을 하려 했으나 집에서 자라 하여 우리 스타일로 거실에서 침구 하나씩 들고 각자 취침하였다.
1992년 3월 2일 (월)
시애틀의 김광열씨 댁 거실에서 |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도 없고 우리 5명만이 자고 있었다. 08:40 차려 놓은 밥상에 밥만 퍼서 먹고 잠시 있으니 김광열씨가 우리를 안내해 주기 위해 집으로 오셨다. 쇼핑센타에 가서 구경을 하고 점심으로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볶은 '데리야끼'라는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주인이 우리 교민이었다. 오후엔 큰아들 재경이와 몇 군데 쇼핑을 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전문등반장비점이라 하니 LYNNWOOD에서 가장 큰 장비점을 안내하는데 'REI'였다. 이것저것 찾아보니 부족된 것이 있어 문의 하니 시애틀 시내에 있는 'REI'를 알려주어 늦은 시각이었지만 시애틀 시내로 달려갔다.
'REI'를 거쳐 바로 앞에 있는 'FEATHERED FRIENIDS'에 가보니 신형 허밍버드 픽크가 있어 몇개 구입하고 포타 렛지가 없어 문의하여 'SWALLOWS'를 찾아가니 그곳엔 일인용만 있었다. 그 곳에서 'MARMOT'로 다시 가보니 (REI와 같이 BELLEVUE 거리에 있다) 20:00 폐점시간 이였다. 미리 전화를 했기에 쇼핑을 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포타 렛지와 부족된 장비를 모두 구할 수 있었다. 20:30 늦어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고 LYNNWOOD에 돌아와 늦게 저녁을 얻어 먹으니 죄송한 마음뿐이다. 내일은 미국의 제2에 고산 MT. RAINIER을 가기로 하였다.
1992년 3월 3일(화)
미국 레이니어 국립공원 입구 |
05:00 경 눈이 떠졌으나 모두들 자고 있는 밖에는 엄청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좀 더 날이 밝기를 기다려 06:00에 모두들 기상하였다. 침구를 개어 놓고 큰아들 재경이와 같이 새벽 빗속을 떠났다.
타코마에서 조식으로 햄버거와 우유를 먹고 07:00 MT. RAINIER로 향했다. 미국은 인구가 많아서인지 캐나다와 달리 도로변 곳곳에 가옥이 있고 나무도 휠씬 크게 자라 있다. 거대한 숲을 뚫고 지나는 도로는 하늘이 도로 폭만큼만 보인다. 간혹 광릉 수목원을 지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산세는 국내와 비슷하다. 규모가 크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공원입구 안내소에 도착하니 아직 출근 전 이었고 모든 시설은 가동 중이었다. 모텔도 있고, 가장 눈에 뛰는 것은 1963년에 쓰러진 나무인데 나이테를 검사하여 전시했다.(1290년 경에 발아된 나무였다). 공원 내에는 아영금지 기간이였고 17:50까지 공원내에서 나와야 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잘 닦여진, 그러나 도로 좌,우측에 굳은 눈이 2-3M씩 쌓여 있는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파라다이스레인져 사무실이 실내 체육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제 구입한 고도계를 보니 4800FEET정도였고 이곳은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레인져 사무실에 들러 지도와 안내서를 구하고 대략설명을 듣고 그곳에서 차를 돌려 내려왔다.
LYNWOOD로 돌아오는 길에 시애틀에 들러 마지막 남은 'NORTH FACE'장비점을 들러 보았다. 이곳은 주소만 있으면 별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다. 그곳에서 알라스카 빙폭 안내서를 구할 수 있었다. 바로 LYNNWOOD에 돌아와 교민 식당에서 육계장과 동태찌개를 먹었다. 석식 후 김광열씨 가족과 작별을 하였다. 좀 더 쉬었다 내일 가라는 호의를 뿌리치고 밴쿠버의 운회가 지루할 것 같아 밴쿠버로 향했다.
밤길을 달려 씨애틀 구역(남쪽 TACOMA-북쪽 BUTTER)을 벗어나자 차량도 뜸하다. 밤길을 달려 국경 근처에 와서 연료를 FULL로 넣었다. 미국의 연료비가 캐나다의 60% 정도 된다. 캐나다 국경에서 재입국 신고를 하고 모텔에 돌아오니 큰 방으로 옮겨놓으라 했는데 작은 방에 그냥 있어 6명이 비좁게 하루를 보냈다.
1992년 3월 4일 (수)
캐나다 입국시 입국카드가 없어 당황하였으나 여행사에 문의하여 입국신고카드를 소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공항에서 받지 않은 것을 분실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있는 동안 운회는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타고 DOWNTOWN을 관광했고 이제는 우리를 안내하겠다하여 백화점 관광을 갔다. 결국 개 눈에는 진수성찬은 필요 없고 X만 보이면 된다더니 쟌스포츠점을 보고 차를 세워 장비점을 구경하며 백화점에서는 괜히 시간만 보냈다고 투덜투덜......
인공암장안내서를 한장 주워서 공항부근에 있다는 약도를 보고 찾아가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 관리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답답한지 그들이 옆집에서(삼성컴퓨터 수입판매점) 교민을 한 분 모셔와 중간 통역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밴쿠버에 처음 생긴 암장이고 아직 캐나다에는 몇 곳 안 된다는 것, 학생들이 체육시간에 이용한다는 것 등등. 근호가 한국의 급수보다 좀 약한 것 같다고 하자 세계 공통인데 그렇지 않을거라 하기도 했다.
모텔로 돌아오는 길에 풍년식품에 들러 장을 보았다. LUNDON DRUKS에 들러 몇가지 식품을 추가 구입하였다. 소주도 한병 구했는데 값이 C$10.00이 넘으니 맛은 소주요 값은 위스키, 꼬냑이라. 경비에 여유가 생겨 용돈으로 C$200씩 지급하려다가 과소비가 될 것 같아 C$100씩 지급하였다. 저녁시간이 지루하여 잠자는 금석이만 남겨 놓고 시내로 들어가 관광타워에 가 밴쿠버 야경을 바라보며 음료수와 맥주 한잔을 마셨다.
1992년 3월 5일(목)
내일이면 아침부터 서둘러 공항으로 가야한다. 오늘이 캐나다에서 마지막 밤인 셈이다. 좀더 견문을 넓히려 새로운 곳을 찾아가 보자 하니 아직도 장비점이나 가자는 의견만 나온다. MT. EQUIPMENT CO-OP에 가서 또다시 값싼(국내에 비해) 장비를 구입하고 금석이가 스키를 구하겠다하여 스키점을 갔다. 몇 군데 돌아다니다가 한 SET구입하였다. 이제 정말 할 일이 없으니 숙소로 갈까했으나 시간이 있으니 시내에 가자하며 백화점 아이쇼핑을 하려 갔다. 귀국선물을 조금 구입하고 바로 숙소로 돌아와 짐정리를 하였다.
오늘 점심은 교포가 하는 식당에 가서 나는 짜장면을 먹었고 나머지는 정식(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주물럭 등등)을 먹었다. 짐을 정리하고 보니 구입장비가 부피가 커서 팩킹이 되지 않았다. 특히 출국시 신었던 뷔불암 6컬레만도 한 배낭이었다. 결국 CO-OP에 전화하여 폐점시간을 알아보니 목요일은 21:00라 하여 달려가 카고 백을 하나 구입하여 짐정리를 하였다. 정리 중 또다시 달려가 카고 백을 하나 더 구입하여 완전히 짐을 정리하고 자정쯤 취침하였다.
1992년 3월 6일 (금) - 서울 3월 7일(토)
오늘은 집에 가는 날이다. 07:00 일어나 세면 후 즉시 공항으로 출발하였다(07:50).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이 넉넉하다(08:20). 짐을 모두 내려 환승구 앞에 놓고 렌트카를 반환하였다. 대합실에 돌아와 기다리니 09:00 항공사 직원들이 모습을 나타내고 통역으로 한국인 한명이 나와 편의를 봐 주었다. 서울을 기점으로 하는 항공사(기)는 통역을 위해 필요한 장소 시간에 한국인을 대동하고 있으니 어려움은 없었다. 보딩패스를 받고 화물을 부치고 공항에서 탑승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조식으로 빵과 우유를 먹고 면세점 구경을 갔지만 가격은 별 차이 없다.
10:40 개찰하여 내부에 있는 면세점을 가보았다. 그곳은 11:30에야 오픈 하였고 한바퀴 돌아 구경하고 나니 바로 탑승을 해야 했다. LYNNWOOD의 김광열씨 댁에 전화를 했더니 캘로스가 그곳으로 전화를 했다하여 메모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부재중이었다. 자동응답기에 안부를 전하고 탑승을 하였다. 이제 시간만 지나면 서울에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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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때만해도 펄펄 날아다니셨죠.........
펄펄은 아니더라도되진 않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