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행 방북 금강산 세존봉 등반을 마치고
작성일: 2005/06/01
작성자: 김영일
금강산기행,금강산 세존봉 등반
아, 금..금강...금강산이여
한반도의 명산
천하의 명산이여!
금강산에 다녀왔다. 언젠가는 가려고 했던 명산.
나는 이렇게 빨리 그런 기회가 올줄은 몰랐다
사실 준비가 안된채로 갔다.
이렇게 가도 되는 것인지...
그러나 어찌보면 알지 못할 오래전에 준비되어 오랜 인연이 모여 이런 일이 이루어졌는지 모른다.
진리를 알기 어렵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훌륭한 도반을 만나기 어렵고
수승한 승경을 만나 공부하기 어렵다하는데
천하의 명승 금강산을 만나고 온 감회가 어찌 깊지 않으랴!
5.28-29
1박2일코스 금강산기행을 다녀왔다
좋은 날씨에 금강산등반을 마친 것은 ‘열에 한둘’의 행운이라 한다.
속진(俗塵)을 씻은 듯한 금강산에서 나와 오늘 다시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와 산행기를 쓴다. 금강산을 다녀온 분 모두가 각자 산행기를 쓸 것이다. 어줍잖은 글로 눈을 산란하게 할지 걱정이 된다.
총138명이 법무부 허가를 받고 방북을 하게되었다
이미 각자 경비를 보내고 메일로 세차레 안내를 받았다. 4팀으로 나누어 제1차 금강산 세존봉 통일 등반대’는 버스 4대로 예약이 되었다. 1차 집결지는 잠실운동장역 4번출구.
나는 잠실역으로 잘못 알고 내려 예정시각을 10분 넘겨 도착했다. 아내가 간단한 짐과 아침도 챙겨주어 먹고 출발했으나 정작 집결지 착오를 했으니 나의 어리석음을 자책해야했다.
미안한 마음에 당도하니 양희철선생님이 양복 콤비차림으로 맞는게 아닌가. 이상하다..다 등산복차림으로 오는데.
잠시 뒤에 장인선대장으로부터 ‘통일부 불허’방침 통보에 따라 가실 수 없어서 인사라도 하러 오신것을 알았다. 얼마나 섭섭해 하셨을까? 양선생님은 설레는 마음으로 ‘금강산’시를 적어 건네주시고 금강산행 버스에 승차하지 못하고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며 돌아서야 했다. 죄송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마음 한켠으로 남북분단의 현실, 통일을 염원하며 30여년 옥고를 치르고 탕제원을 운영하시는 양선생님에 대한 염려와 불신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어 가슴이 먹먹하고 씁쓸하다. 언제나 허심탄회하게 다가오고 다가갈 수 있을까?
신일관광-7518이 1호차에 양희철선생님 자리 빼고 34명이 타고 선두에 가고
뒤이어 7500이 2호차 39명
3호차 7505 30명
4호차 7519 34명이 탔다
모듬으로 1호차는 전민동산악회원 및 가족이
2호차는 과학기술연대 회원들과 가족이
3호차는 성대민주동우회 회원들과 가족
4호차는 민청련,몸살림운동회원과 가족이 함께 승차했다
이번에 함께 가는 우리들은 인연이 각별하다. 70년대 이후 각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통일, 나눔의 삶을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고초를 겪고 좋은 세상을 꿈꾸는 분들이 함께하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고 고통과 보람을 함께 한 가족들과 같이 가는 것이다.
예정시각 15분 지난 8시15분에 출발.
이번에 준비는 민청련에서 애를 많이 썼다. 사단법인 통일농수산사업단 이병호 사무총장과 한영수총무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한총무는 전에 촛불시위때 만났던 기억이 나서 반갑게 인사했다. 이사무총장은 사상 처음으로 남북합동모내기행사 추진차 북에 먼저 가 있다고 한다.
1박2일코스에 이번에 약정된 경비는 다른 경우에 비해 싸게 조정된 편이라고 한다
1977년에 전방 철책선근무를 했던 장인선 전민동 산악대장이 먼저 인사소개하고 1호차 식들이 차례로 앞자리부터 인사 및 간단한 소개를 하였다. 금강산여행 총대장인 권형택 전민동 회장은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세존봉등반코스는 남한 민간인으로는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결혼 24주년기념(5.2)여행을 하게되어 특별히 부인을 모시고 온 소병훈형은 모처럼 부인 곽혜영님에 대한 배려를 하게되어 감회가 깊다고 했다. 맨 앞자리에 타서 나는 인사를 드렸다. 진도가 고향이고 독실한 기독교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 “형수님 미인이십니다”
부부가 함께 참석한 분들은 큰 축복이다. 전민동 금슬좋은 부부 이홍규-김현숙님, 홍규형 친구분인 조용성-이향화님...
인사말하고 있는 중에 버스는 어느덧 ‘하남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다.
야생화에 조예가 깊은 정광천-김정애님, 전민동 창립회원이며 이번 두 번째 방문인 전재주-박정자님,박종덕-이단아님, 지리산 근처에서 자연과 넉넉히 지낸다는 김현준-김석란님, 그리고 여러 민주단체를 진중히 이끌며 전민동 회장인 권형택-황인숙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념관건립추진을 맡고 있는 박종덕-이단아님,
그리고 멀리 정읍에서 이승우,이유상 두아들의 효심으로 참석하게 된 이창곤-박금순님과 함께하는 이 자리에 불효자들은 마음속으로 속울음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갑습니다. 이런 경우는 박수를 많이 받을 만하다. 승우,유상 다정한 두형제는 산행때마다 사진을 잘 찍어 챙겨 홈페이지에 올려주곤 한다
‘솔로’로 온 저를 비롯, 전민동 산악회 부대장 권희도형, 지난 밤에 금강산 꿈을 꾸며 설레었다는 형택형 친구분 김경택님과 양춘승님, 한겨레신문에 근무하는 최영선님, 옥정중학교 이일님,
그리고 최근 한.중.일 역사새로쓰기 작업성취등 근현대사 연구와 왜곡된 역사 보정작업을 하고 있는 서중석 성균관대교수님, 서울대 국사학과 김인걸교수님, 민언련 산악회장이며 전민동에서도 열심히 참석하여 산행지도하고 있는 산악인 박영택님,
전민동 막내인 꽃미남 74학번이 아니라 74년생 김광엽씨, 불교관련 서적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전민동 재무국장 김용란씨, 새로운 사업에 열중인 장성인씨 등이 각각 소개를 하였다.
지금 우리는 2003년 2.21일 처음으로 금강산육로 관광이 시작된 이래 몇 번째로 가는 것일까? 1998년 9월부터 남북 분단 50여 년 만에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어 배로 동해항에서 북한의 장전항까지는 배로 분단선을 넘고 외금강 온정리에서 차로 이동했던 것인데 요즈음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래 오고가고 가고 오고 무람없이 그래야 한다. 길을 만들고 길이 열려 마음을 열고 가야한다.
장대장은 3호차에 타고 있는 최욱씨가 제작한
‘ 제1차 금강산 세존봉 통일등반대’-전북민주동우회 통일산악회‘ 펼침막을 펼쳐보이고 있다.
이번에 함께 못가지만 격려해주신 박상순고문님,강희남목사님,박창균목사님의 격려말씀을 전하였다. ‘남북통일의 그날까지 늘 한마음으로 가라’고
‘돈이 있는 이는 재물을 전해주고 어진이는 말을 전한다’고 했던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기상으로 사시는 세분의 세상근심과 외침은 그치지 않는다.
용문터널을 지나 용문휴게소에서 잠시 쉰다. 9시22분. 한 시간을 달려왔다.
4호차에 탄 전민동 부회장 양경숙님은 남편 남근우님과 함께 왔다.
늘 童顔인 박성규 형도 오셨다. 30년전 같은 반 동기생 이상도 왔구나. 전민동 초기에 활동했다.
다시 차는 달린다. 맨앞자리에 앉아 앞광경을 살피보고 있다. 홍천-속초/인제 표지판을 지나가고 있다. 모심는 아주머니들 논다랭이 하나 다심어가고 있다.
문득 고향에서 홀로 일하시는 아버님생각이 난다. 남녁 호남들녘에도 한창 모내기철이리라.
산기슭엔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고 논가에는 민들레가 기웃거리고 구경하는 듯하다.
어느 집 담장엔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어릴적 이맘때면 꽃고동을 끊어먹던 찔레꽃이 만발하다.
홍천군 두촌면.
점심을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강원도 인제에 들어섰다
설악산 자락이다. 좌우 무성한 숲사이 길이라 시원하다. 용대리-백담사 가는 길이 보인다.
박영택님이 설악산코스-봉정암코스를 설명해준다. 봉정암에 가서 아무나 ‘불교신도’라면 재워준다고 한다. 누구나 숙이고 들어오면 되는 법.
자작나무 가로수를 지나고 미시령 입구에서 죄회전하여 달리니
고성군이다. 신록이 짙다.
520m고지의 진부령에서 통일전망대까지 49km 남았다.
설악산산행안내마이크를 잡은 김에 노래까지 제청받으니 박대장은 가까스로 시를 낭송한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혹은 맑게
혹은 거칠게
.........
떠돌이 사내로
들새가 가는 길
표범이 가는 길
...
달콤한 꿈만 있으면 된다
...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환호박수소리가 창너머로 퍼졌다.
전재주 형은 마지막 구절을
전라도말로 ‘나는 기연히 산으로 가야겄다’로 풀어 한바탕 폭소를 자아냈다.
자연스레 분위기가 사는듯하니
야생화 박사(정광천님)가 퀴즈를 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야생화 다섯가지?
제비꽃
할미꽃
도라지꽃
금강초롱
붓꽃
열가지는? 숙제.
우리는 우리 산천에 피고지는 꽃과 나무에 대하여 얼마나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가?
天不生無名之草-하늘은 이름없는 풀을 낳지 않았다-라 했는데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임을 자각한다.
한반도에 야생화는 약12,000종이고 남한에 약7,000종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덧 동해안 북부지역으로 접어든다. 거진까지 22km,
간성까진 17km가 남았다.
잠깐의 농이 어어진다.
언덕위의 하얀집을 전라도말로?
‘깔끄막 우그 흐건집=흐연집’
백조의 호수는?
‘둠벙속의 때꺼우’
..........
남한 최북단에 있는 건봉사를 가려면 죄회전하면 되지만 우리는 직진한다.
간성,양양,속초는 우회전해야 한다.
직진하여 통일전망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지역에서 70년도에 군생활을 한 서교수님은 이승만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주석 별장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다. 먼저 지은 김일성별장을 보고 이승만별장이 생겼다고 한다. 화진포에 있는 두별장은 빼어난 경관을 보고 지은 곳으로 문화재로 지정할만하다고 강조한다.
최고권력자의 시샘은 과욕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과연 두 지도자의 경우는 어떤가.
오른쪽에 바다, 동해바다가 보인다
해변에 해송 몇그루가 정정하다.
통일전망대 22km
아치관문이 크게 다가온다
‘천혜의 절경 금강산이 있는 청정고성’-한국타이어제공
남한 최북단 마을 명파(明波)를 지나고 있다.
서교수님의 현대사 강의가 자연스레 진행되고 있다.
1950년 전쟁때 피의 전투를 벌인곳
남측은 동쪽지역에서 한치라도 쳐올리고
북측은 북의 동쪽지역에서 한치라도 쳐올리려고
치열히 전투를 벌인 마을이다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남쪽은 펀치볼 전투
중공군-미국군 격전지로 중공군 1-2개사단이 전멸한 곳이다.
통일전망대
Uni fication Observ
우회전(->) 1.7km 이승만 대통령 별장
‘미수복 최북단 대진항’ 금강산 콘도앞에 버스를 세웠다. 13:38분이다. 이곳에서 금강산여권을 교부받았다. 10층 건물의 금강산콘도는 바다를 바라보며 지어져 있다. 창너머로 바다를 보며 휴식을 갖을 만하다. 바닷가에 철조망이 쳐 있다. 갯내음이 싱그럽다. 신선한 미역내음이 삽상한 바람에 불어온다. 현대아산 금강산 관광안내원 백윤숙씨가 금강산 여권 교부를 하니 14시다.
나의 출입 신고서는
고성->금강산
육로-구룡-30-31
육로관광 구룡연코스의 30조 31번이란 표시다.
양희철 선생님을 호명한다. 법무부에서는 발급을 하고 통일부에서 불허된 것이다.
모두 현대 버스다. 독점인지 아니면 현대가 홀로 짐을 진 것인지 아마도 후자가 아닌가 한다.
주의사항을 환기시켜준다
1회용 여권 훼손하면 10불~100불 벌금
물건 살때 금강산 직불카드에 한화충전하여 사용 가능, 남으면 돌아올때 환불받게 된다.
가져갈 수 없는 물건은 휴대폰, 충전기, PDA, 노트북...
이런 물품을 수하물로 보관했다가 돌아갈 때 반환해주기로 한다.
휴식.대기시간이 길다. 올라가는 버스는 각기 번호표를 붙이고 북쪽지역을 통과한다. 1호차는 ‘금강산 육로관광27호차’로 바뀌었다. 15시 35분에 출발. 통일전망대는 앞으로 10 km 거리다. 우측으로 가면 명파해수욕장이다. 명파초등학교가 아담하다.
‘여기부터 민통선입니다’ 아치형 현판을 지나고 있다. 이제 민통선으로 들어왔다.
동해북부선은 원산에서부터 바닷가쪽으로 이어져 멋있는데 동해고속도로는 내륙쪽으로 놓아져 멋을 감하고 있다고 서중석교수는 아쉬워한다.
동해안철조망은 1968년 이후에 생겼다.
67년까지만 그리 험하게 치지 않았다고 한다.
날아다니는 새나 바듯이 앉을 정도로 살벌하게 설치한 것은 지극한 증오인가 지극한 사랑인가?
묘목글씨로 ‘통’... ‘일’
산림청.
그 사면아래 ‘동해선 남북 출입 사무소’에서 출입수속을 받는다.
처음 오는 이들은 이런 수속을 달갑지 않게 여길 것 같다. 그러나 이게 현실이다. 같은 민족이란 생각 속에서 다른 체제의 국경부근에 와 있는 것이다. 외국나갈 때 거치는 절차를 생각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도 같다.
늘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에 제동이 걸렸다.
전광판에서 오늘 금강산 기온은 섭씨14도 ~ 18도를 알려준다.
이근처 민통선 민둥산이 허허롭게 보인다. 고성산불 영향이다.
군사지역 시야를 환하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지른 것은 아니고 산불때문이라 한다.
수속 대기하는 동안 동승한 의문사위의 박종덕님은 안타까운 조사건-김두항 의문사-을
말한다. 고대 핵심운동가였던 피해자는 운동권 학생으로서 강제 군입대시켜 이근처 야산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운동권 대학생 녹화사건 中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이 시간에도 공사 차량은 왔다갔다한다. 현대에서 파견된 현장직원들이 남북간 왕래길을 다지고 있다.
조,번호순대로 서서 출입사무소 출입수속을 마치고 버스에 탔다. 기사 조장 포함 36명. 이상없음. 서로 무전기 교신후에 버스 출발. 인사 의례는 군대식이다. 임무교대시 했던 군대 병영근무교대와 비슷하다.
안내 관광조장 배둘분님의 세존봉 등반 안내가 이어진다. 금강산은 최고봉인 비로봉은 비로자나불 12,000의 화신이다. 법,보,화신 3신불 가운데 법신불인 毘盧자나불이다.
석가세존봉은 장관이다. 그러나 만만하지 않다.
등반 시간은 8-9시간
경사 80-90도
06:30~ 15:30 도착예정
약간 긴장이 된다. 나도 오를 수 있을까? 그간 산행을 별로 못했는데...
북에서 선후발 안내차량이 군사분계선 4.2km까지 인도한다.
16:43분 금강터널을 지나간다. 통일전망대를 뒤로 하고 버스느 달려간다.
길게 철도가 놓여있다 철도 외금강 공사중이다. 화진포 오른쪽엔 푸른 바다 동해바다 그너머 해금강으로 이어진다. 송도, 우도, 백도. 갈매기 똥으로 하얗게 되었다는 백도가 인상적
멀리 만물상 전경이 보인다.
현대아산 관광조장 배둘분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휴대폰, 망원경 등 반납하였다.
카메라는 160mm렌즈 이하여야 소지 가능하다는 등 금강산 관광 규제 및 금기에 대한 불만은 앞으로 차츰 다니면서 풀어야 과제라고 본다.
앞에 서있는 26호차 뒤꽁무니를 본다:
HYUNDAI
금강산 2356
버스는 모두 현대차 일색이다.
금강통문 지나 비무장지대 천연자원 보고다.
북방한계선 통과. 16:56이다
북측사무소 통과 수속을 마쳤다. 내가 우리조의 끝번이다.
북측 세관수속요원에게 말을 걸었다
“수고하십니다”
어깨 계급장 가로 별둘, 세로 별둘을 달았다
“달라 많이 가져왔습네까?”
“네”
“사무총장이니까 많이 가져오셨겠네요”
자연스레 웃음지으며 말한다. 사실 나는 돈도 별로 가져오지 못했다. 달라도 환전하지도 못했다.
버스와 버스들. 이어지는 버스도 장관이다.
이 벅차지 않은가? 육로로 남에서 북을 넘어왔다. 더 간단히 더 빨리 올것을 얼마나 오래 걸렸는가?
버스길가 철조망 아래에도 남쪽땅과 같이 토끼풀도 있고 쑥도 있다.
길옆 논 멀리서 논가는 소. 쉬는 농부 2명. 군복을 입고 있다. 흙색과 옷색이 비슷하여 눈에 잘 안띈다.
흙빛. 북은 아직 흙빛으로 남아 있다.
흙을 버리고 콘크리트로 변한 남한과 빛의 차이가 현저하다.
그 빛이 자유로운 광채가 나는지 참자유의 공간에서 누리고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운행하는 버스안에서 좌우 경관을 보면서 배둘분님의 안내가 이어진다.
학창시절부터 알고 있던 금강산 상식:
금강산의 계절별 명칭인 봄-금강, 여름-봉래, 가을-풍악, 겨울-개골
또하나의 이름 겨울-설봉이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학교 해금강 중학교다. 영웅들을 많이 배출시킨 학교란다.
고성평야. 정미소가 보이고 보리밭이 있다. 익숙한 말을 길어 올린다.
남강을 지나고 있다.
남북 장관급 회담때 남북회담대표자들이 남강에 연어 15000 마리 방생했다고 한다.
김삿갓시인에 대한 얘기 왈:
김삿갓시인이
강물 범람 하고 강을 건너야 하는데
처녀뱃사공이 노를 저었더라
여보-인자 왔소?
내가 자네 배에 올랐으니
자네는 내 부인이 아닌가
처녀대꾸하기를:
내배에서 걸어나오니
내아들 아닌가요?
하니 김삿갓 말을 잇지 못했다더라
오른쪽은 봉화리마을. 지붕이 낡은 기왓장이다
잿빛마을이다. 잿빛은 無慾이다.
자전거 타고 가는 이들이 보인다
자전거는 북에서 부의 수단으로 본다. 형편이 나은 이들이 사서 자전거허가증을 받아야 타고 다닌단다.
왼쪽에 금해 소학교. 같은 규격의 마을집. 초가집 여섯채. 주체탑.
아스콘공장. 금강산샘물공장.
오늘저녁과 내일 일정안내:
저녁 9시 - 10시 금강산 가무/ 세존봉은 내일 아침 7시 출발
6:50 승차완료 완료. 33인승으로 갈아타고 간다. 출발지: 온정각에서 출발
온정리에 오는 중에 냇가에서 물을 길어 나르는 아낙이 보인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간다. 물이 깨끗하여 길어 먹는다고 한다.
17:48분 온정리 도착.
내리자 마자 현판글씨가 눈에 보인다. ‘김일성동지는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있다’
금강산 호텔에 도착. 18: 29분이다. 러시아식 장중한 건물 2층로비를 사방으로 둘러 금강산 전경을 채색화로 그려놓았다. 인민화가들의 공동작품이다. 실경을 그린 대작이다. 뷔페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밥,콩나물국,콩자반,물김치(싱건지),고추장,야채,계란찜 등 조촐한 메뉴다.
나는 쌈상추는 없지만 씀바귀 쌈으로 먹었다. 장대장,장성인씨와 같은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19:30분
금강산 호텔 교예단 공연을 보았다.
서울의 소극장크기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높고 맑은 목청으로 공연안내요원이 인사하고 악수까지 하며 반겨준다.
이산- 저산... 강원도 금강산이네
비로봉에 달이 뜬다...
무지개 쌍쌍.....
에헤헤 에루하...금강산이로세
5인 여성 반주로 6인 교예 합창으로 공연을 개시한다.
백두산........여성가수가 부르고
익숙한 노래
휘파람을 부른다
어제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복순이도 내마음 알리라
휘휘휘 호~휘휘호호 휘파람
이어 남쪽 뽕짝-번지없는 주막
*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
이는 남쪽사람들 기분 맞추기 위해서 부르는 것 같다.
*오천년의 역사와 문화글 가진 민족 우리민족 제일일세
가야금독주 : 옹헤야
경쾌한 가야금연주다.
이어 다양하게 6곡을 부르고 뜨거운 박수를 받고
맹꽁이타령 부를때는 흥겨운 기분이 절로 났다
-열무김치 담글때는 임생각이 절로나서........
인생의 길이란 노래는 가사도 좋고 감동적인 노래였다
‘상봉과 이별 잠깐 만남이라도
심장속의 만남이 있나니-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속의 만남이 있네
아-아 그런 사랑 내게 못잊어‘
......
‘하나 민족도 하나
핏줄도 하나
아픈 상처 씻으며
민족도 언어도 문화도 하나
역사도 하나..‘
마직 노래를 부를땐
모두 벅찬 감격에 눈물도 지었다
‘백두에서 한라로
우리 하나의 겨레
잘 있어요 다시 만나요
잘 가세요 다시 만나요
안녕히 다시 만나요‘
벅차고 아쉬운 감정에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가 몇몇분들은 무대에 올라가 교예단원들과 사진도 같이 찍었다. 1시간쯤 공연한 것 같다. 20:30분이다.
집행부에서 주지사항 안내하는 모임을 가졌다. 먼저 올라온 이병호님이 분단이래 처음으로 어제 남북이 함께 모내기행사에 대한 얘기, 그간 준비 애로점에 대하여 애쓴 노고에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이후 자유스럽게 쉬면서 모듬 모듬 맥주도 마시고 포장마차에서 술을 더하고 나름대로 저녁을 보내고 내일 세존봉 등반팀은 무리하지 않고 보내도록 집행부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로비노래방에서 고고 부르스를 추면서 몸을 풀고 잠자리로 이동했다.
숙소는 컨테이너인데 실망한 이들이 많겠지만 몰려오는 관광객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현대아산의 응급대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22:30분까지 휴식하고 몸풀고 22:40분 구룡마을에 버스를 타고 다 같이 내려왔다. 금강산호텔에서 일하던 온정마을 처녀 셋이 같이 타고 왔다. 12시면 통행금지가 실시된다고 한다.
동기생인 이상과 캔맥주 하나 들면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헤이리. 예술인마을 조성,분양,건축관련 일을 하고 있구나. 3307호에서 옷을 갈아 입고 몸을 씻었다. 샤워장은 따뜻한 물이 나오고 있다. 간단히 씻을 수만 있어도 고마운 느낌이다. 남쪽의 풍요와 낭비가 대조된다.
장인선,권희도형과 아내에대한 믿음과 배려에 대하여 공감하고 얘기 나누다가 잠을 청했다. 내일 세존봉 등반 원만성취를 바라면서.
내일 아침 06시50분 집결해야 한다.
5시에 눈떠 다시 눈을 붙이고 자다가 6시에 일어났다. 밖을 나오니 공기는 상쾌하다. 그러나 날씨가 흐리다. 금강산진경을 볼수 있을 지 염려된다. 샤워하고 아침식사 콩나물국을 들고 준비했다. 온정리 식당앞에 연등이 달려있다. 근처에 김정숙휴양소가 있다. 1991년에 완공한 채색하지 않은 건물이다. 북 4대휴양소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지금은 현대아산에서 임대로 환경관리요원 숙소로 활용하고 있다.
07:12분에 세존봉 등반팀이 모여 버스에 타고 등산 초입인 구룡연으로 간다. 식당에서 왼쪽으로들어간다. 오른쪽으로 600m 부근에 금강산 온천이 있다.
좌우 소나무 숲이 자연 그대로 자라고 있다. 금강산 초입. 금강산 소나무. 그 아름다운 금강산 홍송. 금강산 미인송들이 미끈히 자라고 있다. 신선한 공기가 정신을 말게 해준다.
들어서자 마자 수려한 미인송, 赤松=紅松이 그득한 숲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경복궁을 지은 소나무이기도 하고 과거 임금의 관으로 쓰였다. 그러기에 임금의 재가를 받아서 썼다고 한다. 청허서산대사의 제자 영호대사의 사리탑을 모신 신계사 부도밭이 오른편에 있다. 지금 신계사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웅전이 보인다. 6.25전쟁 당시 소실된 절을 복권하기 위해 남쪽신도들이 왕래하고 있다.
구룡연에 닿아 내렸다.
금강산 산행을 하기시작한다. 07:30분이다. 도시락,물과 오이를 각자 분량을 하나씩 받고 배낭에 넣어 북측안내요원이 선두,중간 후미에서 인도하고 있다. 천안시 두정동 대광에서 만든 춘하추동 종이도시락이다. 소변을 보고 오른다. 소변 벌금 1달라,대변 벌금 4달라다. 침도 뱉어서는 안된다.
울울창창소나무. 조선의 기상이 바로 금강산소나무에 있다. 어쩌면 그리도 의젓하게 의연하게 곧게 당당하게 자랐는가?
북측 지도원과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후미에서 가기 때문에 두명의 북측 지도원과 같이 가게 된 것이다.
붉으레 탄 얼굴이 순박한 모습 그대로다.
어느 모임인지 궁금한 점을 물어왔다. 나는 나무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그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쪽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바닥에도 눈처럼 떨어져 있다. 조팝나무꽃이 하얗게 향기를 뿜어낸다. 너른 바위엔 김일성 전주석의 글발이 간간이 보인다. 주의할 사항이 있다. 글발을 손가락으로 총질하면 안된다 손바닥을 펴서 가리켜야 한다고 안내원이 주의를 준다.
다래나무, 피나무, 박달나무, 참나무등 수목이 수려하다. 남한의 산하에서도 볼수 있지만 더욱더 맑고 곧다.
금강산에는 대표적인 꽃이 ‘금강초롱’이다. 아직 금강초롱은 보이지 않는다. 금강산에 940여 종의 식물이 있고 그중 880여 종은 꽃피는 식물이며, 세계적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1속 1종인 금강국수나무·금강초롱꽃과 한국 특산식물인 금강봄맞이꽃·만리화 등이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수종과 화초는 얼마나 되는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계곡은 거울같이 맑고 깨끗하다. 지리산 뱀사골보다도 더 규모가 크다.
‘淸淨止水無比他’라
맑고 맑은 물 다른것과 견줄수 없네
목란관을 지나
금강문을 고개 숙여 지난다. 나쁜사람은 돌덩이가 무너진다고 한다. 구름다리를 지나면 대둔산이 생각난다.
현숙씨는 법명이 ‘금강화’다. 금강화보살이 금강산에 오르는 인연이 남다르리라. 평소 보살행을 하면서 금강같은 지혜를 얻는지도 모른다.
금강(金剛)은 ‘가장 뛰어난’, ‘가장 단단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금강반야경·금강역사 따위.]
매우 단단하여 결코 파괴(破壞)되지 않음. 또는 그러한 물건(物件). 대일(大日) 여래(如來)의 지덕이 견고(堅固)하여 일체(一切)의 번뇌(煩惱)를 깨뜨릴 수 있음을 표현(表現)한 말이다.
온갖 지혜와 온갖 덕(總德)을 다 갖춘 여래가 5지여래중 대일여래다.
대승경전 중의 하나인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불자들은 많이 수지독송한다. ‘가장 뛰어나고 부서질수 없는 지혜로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는 경이다.
금강산은 천하에 최상승(最上昇)한 산이다. 이름 그대로 누구나 그리워하고 아끼는 아름다운 산이니 부서질 수도 사라질 수도, 누구도 무엇으로도 훼손할 수 없는 산이란 뜻이 된다.
금강산호텔에서 얻은 안내지를 보면 금강산은
‘장쾌하고 기묘하고 다양한 경치’를 보여준다고 썼다. 장중함과 빼어남의 조화. 금강산은 단순한 명승지라기보다 모든 자연미의 총체라고 한 표현을 부인할 수 없다.
다행히 모두 잘 통과했나보다 나는 후미에서 현대 이상인과장과 인사하며 같이 오른다. 오래 다녀본 여유가 그에게서 느껴진다. 사진도 부탁하고 질문도 하고.
1년 8개월 근무한 이과장은 가족과 떨어져 이렇게 안내일 하다가 한달에 5일 휴가를 받아 간단다. 특수지 근무수당 80%를 더 받고 근무한다. 명산 금강산에서 지내니 건강하게 보인다.
산목련이 간간히 화사한 얼굴을 내민다.
붉은 병꽃도 군데군데 붉으레 피어있다.
깔딱고개를 힘들게 오르면 옥류담(玉流潭),옥류동이 맞는다. 구슬이 흐르듯 맑은 계곡물이다.
금강산타령에 보면
‘이름이 좋아서 금강이더냐, 경치가 좋아서 금강이더냐
~
봉우리마다 비단이요
골짜기마다 구슬일새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일쌔.........‘가 있다.
바로 옥구슬같은 물이 흐르고 옥류담에 머무르고 다시 아래로 흐르고 있다.
조금 더 오르니 ‘련주담’이다. 한숨을 돌리고 가니
이부근에 산라일락 아니 우리말로 ‘수수꽃다리’ 향내가 진동한다. 금강산수수꽃다리.
비봉폭포가 보인다. 鳳이 날아오르는 듯한 폭포다. 그 위에 큰 바위 김일성주석 한시와 한글 풀이가 새겨져 있다. 앞서 가는이와 거리를 좁히기 위해 시귀를 적지는 못했다. 여기서 약 400m 더 오르면
구룡폭포(九龍瀑布)다. 너무나 유명한 금강산 4대 폭포중의 하나.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는 형상. 아니 지금도 승천하고 있는지도 모를 폭포다. 높이 74m라 한다. 관폭정(觀瀑亭)이란 정자에서 이 폭포를 보면 속진을 씻고 무위진인의 경지에 오를만도 하다. 폭포 오른쪽 거대한 바위에 ‘미륵불’을 가로로 새겨 놓았다.
彌
勒
佛
글씨가 웅혼하다.
마지막 부처불자의 마지막 획을 폭포처럼 늘어뜨려 일필휘지(一筆揮之)한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선생의 예서글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의 글씨를 새긴 각공(刻工)의 노고를 어찌 잊으랴!
비로봉 아래 계곡에는 거대한 바위상에 양사언(楊士彦)의 웅혼한 필적으로 된 '蓬萊楓嶽元化洞天(봉래풍악원화동천)'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하나 이번 기회에는 볼수 없다
.
사진도 찍고 바삐 올라간다.
경사가 점점 급해진다
이끼낀 돌계단은 정취가 있고 바래지지 않은 맛이 난다. 드문드문 철쭉꽃이 지지않고 남아 있다. 발아래 노랗게 보이는 금강제비꽃을 보고 그냥 지나칠수 없다.
한고비 오르니 확연조광(廓然照光)이라
환한 햇살이 사위를 환한게 밝혀준다. 흐릿한 아침에 올라 환한 낮을 맞는 이 감격!
멀리 만물상 아래 부근에 운해(雲海)가 덮여 있다.
사자목 깔끄막 녹슨 철계단길을 오른다. 손잡이 녹슨것을 보면 이 곳을 다녀간 분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있다. 1970년대에 금강산 관광사업 추진하면서 놓은 철계단. 이미 일찍부터 관심을 보인 것같다. 손잡이를 잡기 싫을 정도로 녹이 슬어 있다.
지면에는 옥잠화가 흔전만전히 자라고 있다. 사슴목 부근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른다.
09:55분이니 2시간 40여분 왔다.
쉬려고 하느 곳에 참나무가 괴이하게도 사슴목같이 되어 있다. 즉석에서 ‘사슴목’이라 이름을 붙여주었다. 민언련 부이사장 임상택님의 초등학생3학년 딸이 어찌나 기운차게 오르는지 주위 다들 칭찬이 자자하다. 휴식하고 다시 올라간다.
길가에 참취나물이 자라고 있다. 아 금강산에도 취나물이 있구나.
잔설(殘雪)도 아직 남아있다. . 금강산은 화강암체가 식어서 굳어질 때 생긴 무수한 수직·경사·판상·궁융상 틈결이 오랜 세월 풍화·삭박 작용으로 다종다양한 절리가 조밀하게 진행되어, 1만 2000봉이라 일컫는 기묘한 봉우리를 비롯한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단다.판상절리 채석암이다. 일부만 보면 고향 부안의 바닷가 ‘채석강’과 비슷하다.
정상에 가까워진다. 늘어져 횡으로 자라고 뻣는 자작나무가 괴이하다.
좌반석(坐盤石)에 잠깐의 좌선의 자세를 취해 본다.
배둘분 안내원은 우리더러 행운을 얻었다고 다시 북하해준다.
정상부근에 당도하니 11시가 조금 지났다. 새우란(원추리같기도 하다), 비비취, 그리고 처음 보는 처녀치마꽃을 정광천님이 알려준다. 분홍빛이라 치마 같기도 하다.
정상엔 구상나무 군락이다. 제주도 한라산에도 자생하고 있다. 고산지역에 의연히 풍우상설을 이기며 서 있다. 그리고 쪽빛 솔붓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어 우리를 반긴다.
여기는 세존봉(世尊峯). 해발 1,222m
금강산 세존봉
석가세존의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한 경지의 산이란 말인가?
사방팔방 원통무애(圓通無碍)하다
천하명승 금강산 세존봉에 오른 것이다. 아, 그리 무겁지 않게 올랐다. 뿌듯하다. 모과 마음이 맑다.
온갖 지혜와 자비와 덕이 구족한 세존을 닮아보려고 걸어온 발길이라면 비록 고행이라도 그 성과는 한량없으리라.
남근우님이 정상 다 온 지점에서 발에 쥐가 나서 고생했고 나머지분들은 어린이까지도 함께 다 무사히 정상에 올랐다.
북쪽을 바라보면 금강산 제1봉 비로봉(毘盧峯)
오른쪽에 옥녀봉 그 오른쪽에 만물상(萬物相)이 한눈에 보인다. 동으로 해금강쪽으론 운해가 드리워져 있고 서쪽으로는 기묘한 봉우리가 모아진 집선봉(集仙峯)이 있다.
옹기종기 편한대로 자리를 잡아 도시락점심을 먹었다. 11:30분이다.
전망대로 가서 사진도 찍었다. 동서남북 사방을 향하여도 다 절경이다.
‘장쾌하고 기묘하고 다양한 경치’
‘ 장중함과 빼어남의 조화’
금강산은 단순한 명승지라기보다 모든 자연미의 총체
형언할 수 없고 그저 감탄사만 뿜어 나올 뿐이다.
안내요원들은 갈길을 재촉하고 부른다.
장관이여!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여! 필설(筆舌)로 다할 수 없는 기암묘봉이여!
이곳 정상에서 양희철선생의 금강산시를 낭송하려고 했는데 기회를 잡지 못했다.
다들 금강세존봉에서 보는 금강산 절경에 취해 놓친 것이다.
다선(茶禪)의 대가 초의(草衣 意恂)선사(1786-1866)는 지금부터 167년전인 1838년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이렇게 시를 읋었다
금강산 유람시
-무술년(1838) 봄 수홍과 함께 짓다
산은 만겹이요 물은 만 구비로다
겹겹이 굽이굽이 하늘 끝까지 막혔네
어지러이 가파르니 기이한듯 빼어나고
모두 엄숙하게 가다듬은 모습일세
시냇물 옥소리 요란히 갈마들어 울리고
때로는 푸른 못에 모여 졸졸 흐르네
시원한 걸음 걸음 근원을 찾아가면
깊은 곳 길은 끊겨도 근원은 끝없구나
서늘한 바람 따스한 구름 햇살도 고운데
나뭇잎 무성하고 꽃도 붉어지누나
아쉬워라 봄이 끝나면 찾을 곳 없으니
이런곳에 머물줄 누가 알리요
꽃봉오리 감추어 숲은 너무 견고해지고
비치는 햇살 밝은 문에 휘감아든다
내 너와 함께 이곳에 머물며
언제나 이곳에서 주중주(主中主)되고자 하니
맑은 골짝 흐르는 시내 등나무처럼 말랐고
철같은 마음 돌같은 창자 그리울 것 없네
안개와 이슬, 구름과 노을 내 옷이 되고
서리맞은 꽃 눈 나린 잎 나의 양식이 되네
물 가 수풀 아래 하늘과 땅은 고요한데
상 밖의 병속 시간은 길기만 하네
그래도 가풍 있어 저절로 펼쳐지니
새들의 노래 꽃들의 춤 한바탕 놀아보세
함께 살면서도 아미타불 알지못하고
서로 보고도 묘길상(妙吉祥)에 절하지 못했네
누군가 내게 다른 도 묻는다면
인연되어 스스로 금강임을 알았다 말할뿐.
遊金剛山詩 戊戌春 與秀洪同作
산만첩혜수만중 山萬疊兮水萬重
중중첩첩울궁륭 重重疊疊鬱穹窿
쟁영참착기수걸 崢嶸參錯奇秀傑
개함숙목정제용 皆含肅穆正齊容
종쟁훤후체상향 琮琤喧吼遞相響
시회벽담정용용 時會碧潭靜溶溶
활각보보심원거 闊脚步步尋源去
경심보궁원불궁 境深步窮源不窮
풍량운난일화연 風凉雲暖日華姸
수엽상서화욕홍 樹葉相舒花欲紅
장한춘귀무멱처 將恨春歸無覓處
수지전입차중주 誰知轉入此中住
유영수장견고림 㽔英收藏堅固林
유희섭입광명호 流曦攝入光明戶
아원여이동주지 我願與爾同住持
장년상작주중주 長年常作主中主
청동간류수여등 淸洞澗流廋如藤
철심석장한무모 鐵心石腸寒無慕
무로운하작의상 霧露雲霞作衣裳
상화설엽충후량 霜花雪葉充餱糧
수변림하건곤정 水邊林下乾坤靜
상외호중일월장 像外壺中日月長
야유가풍자전양 也有家風自展楊
조가화무롱일장 鳥歌花舞弄一場
공거불지관자재 共居不知觀自在
상봉불배묘길상 相逢不拜妙吉祥
약인문아향타도 若人問我向他道
지연식득자금강 只緣識得自金剛
무수한 시인문사들이 금강산을 보며 지은 시들이 있으리라.
12시 15분이다 하산.
경사 직하 거의 80도 정도의 사다리 하산길의 험로를 지나니 내리막길은 무리없이 갈 만하다. 눈에 자주 보이는 참취잎을 간간히 한잎씩 뜯었다. 애들과 아내에게 보일 요량으로 취한게 한줌 되었다. 금강산에도 취나물이 있어서 자랑도 할겸 . 이건 뽑아내는 건 아니니 다음해에 잎잎 더 커가는 것이니 괜찮을 성 싶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채취도 용납되지 않는 금강산이다. 손길이 욕심이 더해지면 사나워 뿌리채 뽑힐 것을 우려 한 것이다. 천혜의 금강산은 금강같이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혹 모르는 꽃 이름 물으려 정광천님을 가끔 좇았다.
미나리아재비, 산딸나무의 하얀 꽃,털꿩나무, 봄맞이꽃이 앙증맞다.
엄나무는 어려서 많이 보았다. 아버님이 변산에서 옮겨 심어 약재로 오갈피나무와열매와 같이 약식혜를 해서 먹은 기억이 있다.
7-8엽의 우산나무가 시원하다.
물푸레나무, 삼나무, 상수리나무,단풍나무,노린재나무는 우람하여 나그네의 발길에 큰 그늘을 드리워 더욱 더 시원하게 해준다.
다래넝쿨이 굵게 뻗치고 있다.
계곡물소리에 더위를 씻어내며 내려온다. 쇄락한 물소리.
13:55분 맨 아래 게곡에 도착. 휴식하며 발을 담글수 있는 곳이었다. 시원하며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갔다. 탁족(濯足)이다.
아릴 정도로 차갑다. 배낭에 남은 요기꺼리를 나누어 먹었다.
저기 자귀나무 그늘아래 반반한 돌자리가 보인다.
현숙씨에게 좌반석으로 가서 좌선(坐禪)자세를 취하라고 하고 사진을 찍었다. 나도 찍었다
여기에 설악산같이 흔들바위(動石)도 있다.
내리막길은 푸근한 흙길이다. 내려와서 더욱더 소나무총림에 감탄한다. 홍송총림(紅松叢林). 잘 보존해야 보호수림이다. 모두가 함께 수려하게 크는 게 바람직하다.
누구나 치우침이 없이 두루 다 크고 넉넉한 마음으로 이 소나무처럼 금강산의 소나무처럼 산다면 좋겠다.
밑으로 내려올수록 곰취며, 국수나물이며 산딸기꽃, 씀바귀, 질경이도 널려있다.
15:30분에 하산했다. 예정된 시간에 맞추었다. 1시간 빨리 내려와 씻고 갈 계획을 했으나 그럴 시간이 없다.
무사히 다 내려왔다. 마지막 하산지점에서 갤로퍼차로 이동한분도 있었지만 세존봉등반대원 모두 무사히 내려온 것은 다행이다. 25명 다 셔틀버스에 승차. 15:33분에 온정각에 모였다. 산행을 아한 분은 온천목욕도 하고 먼저 내려온 분은 샤워도 한 것 같다. 좋은 날씨에 금강산 세존봉 등반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대기하고 있다.
이제 또 남으로 내려가야 한다. 돌아온 길로 다시 수속을 밟고 조심스레 열린 철조망 사이 난 환한 길로 돌아가야한다. 수속을 밟고 반납했던 친숙한 문명을 돌려 받고 친숙한 편의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왔는가? 우리는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는가?
청정하면서 잘 살수 있는가?
많은 걸 놓고 내릴 수 있는 1박 2일이었다. 헌사스런 것과 휘황한 불빛을 감추고 지낸 이틀이었다. 그러나 내려놓은 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은 어떤가? 자유로운가? 몸과 마음이 평안한가?
우루루 몰려왔다 우루루 몰려가는 버스를 보며 저 들녘의 북한 농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멀리서 바라만 보고 간다. 밭매는 농부들, 논가는 트랙터 하나, 머리에 이고 가는 아낙녀, 나들이 가는 아낙, 소달구지, 모데기 모내기하는 풍경을 멀리서 보고 돌아간다. 이는 오래전 남한의 풍경이다. 1박2일의 짧은코스에 아쉬움을 갖는 분이 많다.
차를 타고 장대장이 양희철선생님의 시를 낭송했다.
금강산(金剛山)
만인의 우러름과 찬탄받으시는
당신은 누구시옵니까
지구의 탄생과 더불어
조화로움의 극치라시는
당신은 뉘시옵니까
돌올한 봉봉마다 도저스러워
그대로 출충히 서계시는 당신
당신의 품 하 넓다시기에
말씀도 생각도 움직임까지도
올곧음으로 바로잡게 하신다기에
지혜와 덕으로 다져 계신 금강
금강이신 당신을 찾았습니다.
금강! 당신은 아십니다
민족을, 조국을, 분단의 서러움을
반역의 삿됨을 아십니다.
금강! 당신의 품에 안긴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당신을 알게 했듯
우리가 지니고 있을 지혜와 용기
앞앞이 깨닫게 하고
6.15 시대를 엮어가는 통일역군
그 역군들의 수고로움을 위로케 하고
축복 넘치게 하시라.
대결과 분쟁 사루어 없애고
미움과 분노 털어 날리고
가슴가슴마다 원하는
화해와 평화의 알심을
활짝 펴게 하시라.
그리하여 금강이신 당신
새로운 우러름 받으시라
당신의 발아래 펼쳐지는
통일이 환희 그 축제에서
세계 평화애호민의 환호 속에
역시 당신은 세계의 으뜸
세계 속에 명산 중 명산이라
찬탄케 하라
오! 아름다운 금강산!
16:16분부터 출국 수속 하기 시작하여 북측 임식사무소 수속을 밟으니 17:00시
남측 출입국사무소 수속을 밟으니 17:40분이다.
휴대폰을 돌려받고 버스 출발 17:44분.
내려올때는 수속 시간이 더 빨리 진행된 느낌이 든다.
19:20 기사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방향 기준으로 네방향으로 나누어 분승했다.
광화문 방향을 선택했다.
마침 과학기술연대소속의 남원이 고향인 김종환박사와 동석하여 전민동 모임, 관심사항 등 얘기 나누었다.
12:30분에 광화문에 도착했다.
밤공기가 쌀쌀하다.
금강산 정기와 향내를 안고 한동안 그 향내에 취해 지낼것 같다.
[김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