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얻어서 감사하라(골 3 : 15-17)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 추수감사절 기원 ⧾
오늘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의 기원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에서 그 기원을 찾습니다.
영국에서 신앙의 박해를 받아 네델란드로 "순례의 길"을 떠났던 청교도들이 자신들의 조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습니다.
1620년 9월 29일 영국의 호리어스항을 떠난 메이플라워호는 승무원을 포함하여 남자72명, 여자29명 전체 101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약 2개월에 이르는 고난의 항해 끝에 1620년 11월9일 메사추세츠 주 케이프카드에 도착했습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아메리카 대륙을 밟은 이들은 그 해 겨울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인디언의 습격에 대한 공포 속에서 보내면서 거의 반수가 괴혈병, 폐렴 등의 질병에 걸려 죽습니다.
첫해 봄-그들은 인디언들에게서 옥수수와 밀, 경작 법 등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특히 양식이 부족해서 일주일에 3일씩 금식을 하며 어렵게 지낼 때는 인디언들이 짐승들을 잡아다 주기도 해서 이들이 연명 해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가을이 되어 농사는 풍작을 이루었습니다.
추수가 끝난 다음에-이들은 그 감격을 기리는 잔치를 열기로 합니다.
청교도 지도자 브래드포드는 이 최초의 추수감사절에 인디언 추장 마사소이드를 초청했고-90명의 전사를 데리고 마사소이드 추장이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축제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날 청교도들은 들새를 잡으러 나가서 많은 칠면조를 잡았고, 인디언들은 사냥을 해서 다섯 마리의 사슴을 잡았습니다.
그 이후 추수감사에는 칠면조 요리를 먹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청교도들은 인디언들과 아울러 모여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기뻐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이 바라던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1621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도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 효시 ⧾
1884년 부활절-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항으로 들어와서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이후-희망 없이 살아가던 이 땅의 민중들은 선교사들이 전해준 복음을 스펀지의 물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 무렵-1904년 9월13일 오후2시30분부터 서울 동현교회에서 열린 조선 예장 공의회 제4회 공의회에서-미국 선교사들로부터 전도를 받아 장로가 된 서경조장로는 감사절을 제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가 감사절을 제안한 요지는-한국에 복음이 전파되어 많은 교회가 설립되고, 많은 동포들이 교회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된 것을 감사하여 감사절을 지키자는 내용입니다. 이날 회의기록을 보면-서경조장로가 이 회의에서 발언권을 얻어 감사주일 제정에 대하여 이런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全國 敎會(전국 교회)에셔 一年(일년)에 一次式(일차식) 感謝(감사)하난 日(일)을 作定(작정)하난 問題(문제)에 對(대)하야 徐景祚長老(서경조장로)가 演說(연설)하기를 我國敎會(아국교회)가 比前 旺盛(비전 왕성)한 것이 天父(천부)의 恩惠(은혜)인즉 一 感謝日(일 감사일)을 定(정)하고 一年(일년)에 一次式 悅樂(일차식 열락)하며 感謝(감사)하난 거시 甚合(심합)하다 하고 其後(기후)에 梁甸伯·金興京·邦基昌·韓錫晋 諸氏(양전백·금흥경방기창·한석진)가 繼續 說明(계속 연설)하다." (조선 예장 공의회 제4회 회의록. 233쪽)]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을 제정하게 된 역사적인 기초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일 년 농사와 많은 소출에 감사하여 감사축제를 열었으나, 조선의 교회는 풍성한 결실에 대해 감사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한 것입니다.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에 비하면 한국교회는 더 높은 영적이고 신앙적인 이유가 있었던 감사였습니다. 당시 조선교회가 정한 감사절은 흉년이 들어 비록 먹을 것은 핍절했으나-자신들과 이 민족이 주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된 것이 감사해서 드린 감사절이었습니다.
서경조장로가 감사일을 정하자고 주창했던 그 해도 흉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절을 정하고-그 회의에서 교회는 흉년으로 고생하는 지역을 위하여 구제헌금을 결의합니다.
이 회의록에 기록된 대로-당시 조선의 농촌은 관개사업의 부실로 해마다 흉년의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朝鮮語(조선어)를 用(용)하난 會(회)에셔난 凶年(흉년)을 因(인)하야 流離(유리)하게 된 金浦 通津 白川 延安等地(김포 통진 백천 연안등지)에 잇난 敎會(교회)를 爲(위)하야 各敎會(각교회)가 捐補(연보)하기로 決定(결정)하고"( 1904년 예장 독노회록. 제4회 회의록. 18쪽)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은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올린 온전한 믿음의 감사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해부터 전국 교회는 일제히 감사주일을 지켰고, 이것이 효시가 되어 해마다 한국교회는 11월 마지막주일을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됩니다. 우리교회는 매번 교회력으로
한해가 시작하는 대림절을 염두에 두고 11월 셋째주일을 추수감사축제로 추수감사절을 지켜왔습니다.
올해는 추수감사축제를 못하고 그냥 추수감사주일 절기예배로 대신합니다.
그동안 교회의 중심을 지켜오시던 두 분-최교진장로님과 김영숙권사님이 갑자기 교회를 떠나시게 된 점으로 교회 분위기상 축제를 열 기운이 아닌데다가-매년 추수감사를 총괄적으로 기획해 온 윤여진권사님 조차 올해 대만 초청공연이 있어 지난주에 출국하여 내일 입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상황이 올해는 추수감사축제를 열 형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올해 감사축제는 생략하고-추수감사주일을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보내기로 했습니다.
내년도에는 새로운 기운으로 추수감사축제를 드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감사 없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못해 ⧾
추수감사주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한 해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 왔음을 기억하고-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신앙고백으로 예배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이날 하루 감사라는 주제로 예배를 특별하게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십자가 구속의 은총으로 주님의 자녀가 된 이후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들이 주님의 은총 가운데서 살아가는 감사의 날들이라는 신앙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가 [시95:2(개역)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국교회는 술 담배를 금하고 있습니다. 알콜중독이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정상적인 사람들의 주초문제는 기독교의 신앙의 진리로 보면 전혀 구원의 은총이나 믿음의 문제와는 무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영혼을 파괴하는 마약과도 다른 문제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사 스펄전은 담배를 너무 좋아해서 담배에 관한 일화가 많은 부흥사였습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한국교회는 그것이 신앙의 근본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초문제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주초문제와 관련하여 기억해야할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고전10:30-31)⦿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면,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난을 받을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저는 우리 교우들이 술을 마시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특별히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감사를 주제로 말씀을 듣지만-평소에도 늘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 살아가는 삶의 감사-그 자체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사가 없이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감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시50:14)너희가 하나님에게 가져 올 참 제사는 감사하는 마음이]이라고 합니다.
감사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 시편50편23절에는 [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사람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드리는 헌금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헌금을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헌금 속에 들어있는 우리의 감사를 좋아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15b)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또 우리 살아가는 날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살아 있게 하고(16)-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라(16)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 합니다.
바울은 감사와 관련하여 또 다른 말씀에서는 [살전5장18절)⦿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랬는지-시편136편은 26절까지 있는데. 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모든 구절이 [(주님께)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감사의 후렴구가 붙어있습니다.
⧾ 주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때 ⧾
목사님!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하지요. 오늘 제 사는 삶이 이렇게 힘들고 허기진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혹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은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는 우리 살아가는 삶의 어떤 빛나는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나 조건이 어떠하든지-하나님의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절대적인 덕목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와 헤어졌다. 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잘 생겼고 자랑스러운 맏아들은 버클리대학을 졸업하고 스물다섯 꽃 같은 나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돌연사를 했다. 재혼을 했으나 태어난 둘째아이는
다섯 살에 특수자폐 판정을 받는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 갈 나이가 되자
어느 학교에서도 그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 초등학교를 다섯 번 옮겼고,
중학교도 1년 다니다 쫓겨났다.
하루도 내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본인에게 실명 위기가 닥친다. 암(癌)선고를 받고 지금은 투병 중에 있다.
이 이야기는-한국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李御寧) 초대 문화부 장관의 딸 이민아씨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LA에서 검사와 변호사를 거쳐 얼마 전 미국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귀국을 하여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분은-오늘 교회가 우리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예수님이 나를 사랑했던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올 거라고 말했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이민아목사는 22살에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한길(전 국회의원)씨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때부터-곱게 자란 그녀는 가난 때문에 세상의 밑바닥도 체험하고-삶에 치이며 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한때 그녀는 하루라도 가슴 쓸어내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또 건강한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그때 그 시련과 고난이 축복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분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저는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가서 사과하고 싶어요. 미안하다고. 예수님을 못 전해 드린 것이 정말 미안하다고요.>하는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 모진 삶의 고난에서도 영혼구원에 대한 그분의 열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의 최고지성이요
무신론자였던 아버지를 전도했고-암 투병을 하면서도 복음을 전합니다. 그녀의 삶은 하루하루가 늘 감사로 이어지는 날이라고 고백합니다.
감사는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심령에서 나옵니다. 우리 마음을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감사가 있고 없고가 결정됩니다. 세상이 우리 마음을 정복하고 있을 때는 아무리 좋은 여건과 성공에도 감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때는 그 어떤 역경과 실패도 감사의 고백을 막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지배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될 때는 [(16-17)⦿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도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우리 삶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게 됩니다.
무엇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평강이-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도록 주님께 내 마음을 열어드리시기를 바랍니다.
⧾ 감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양식이어야 ⧾
정희승의 시 <좌변기에 대한 고마움> 중에서는 이런 시구가 있습니다.
좌변기가 내 어머니의 또 다른 육처라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좌변기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자궁의 일부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 터 나는 비로소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늘 일상으로 대하는 화장실의 좌변기에서도 감사를 지어내는 시인의 눈은 오늘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감사의 안목이 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감사는 절기용이 아닙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절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 감사를 주제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늘 우리의 일상이어야 합니다.
감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양식(form)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매 순간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노래로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감사로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사노라면-때로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라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억장이 무너지는 경우를 통해서 우리를 온전하게 세워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반드시 믿음대로-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의 말씀은 그 믿음의 역사를-믿음으로 이루며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야곱이 그렇고, 요셉이 그랬고, 노아와 모세나 다윗 등등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감사하여 하늘의 섭리와 뜻을 축복으로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감사로 이루는 축복에도 인내의 때가 필요합니다.
믿음 가운데 우리가 치루는 희생과 인내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1:10-12)⦿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를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감사를 위해서는 인내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 인내와 희생과 시련을 기쁨으로 참고 견디라고 권면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그 대답은 이어지는 말씀에 있습니다.
바울은 [(골1:13-14)⦿그래서 빛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 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선언합니다.
또 바울은 우리가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영감으로보면-우리는 이미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 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축복입니다.
이 위대한 축복을 위하여-하나님께서 우리 빈들공동체로 하여금-신령한 영적의기투합이 왕성하게 운동하는 거룩한 성도의 교제가 살아있게 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공동체는 거룩한 성도의 교제로 서로가 서로를 고무하며 영적으로 함께 자라고 성장하고 부흥하는 거룩한 성체(聖體)입니다.
교회공동체의 생명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16-17)⦿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아 거룩한 성도의 교제가 살아있는 우리 빈들공동체가 되어-빈들공동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들의 삶에서 늘 살아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늘 우리들의 삶이-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주님 주시는 위대한 축복 가운데서 감사로 살아 숨 쉬는 생애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