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수상작품
신神으로 가는 길
김소해
저기 아득, 설산 너머 바다가 있다는 거
모래 골짝 더 멀리 고래 살고 파도친다는 거
바람이 가르쳤을까
큰 신은“바다”라니
본 적 없어 꿈 꾼 적 없는 바다에 어찌 가나
오체투지 어느 봄날 닿겠거니 했던 걸까
태풍은 바다 아니라도 불어
오색 깃발 기도문
어디든 사람 사는 곳 아린 생이 함께 살아
나부껴 흩어지는 타르쵸* 실오라기
바람은 신으로 가는 길
그 바다를 알고 있다
*타르쵸 : 기도문을 적은 비단 헝겊.
헝겊의 실이 바람에 풀려 날아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음.
□ 한국시조시인협회상 및 신인상 심사평
지난 해 <시조미학>에 발표된 작품 가운데 선고위원 4분의 꼼꼼한 선고를 거쳐 본심에 오른 본상 후보작은 모두 12편이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등단 20년 이상 된 회원들의 작품은 우리 시조문학의 위상을 보여주는 역작들이라는 데서 믿음이 갔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김소해 시인의 <신으로 가는 길>은 그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여 심사위원 전원의 합의를 단숨에 얻어냈다.
김소해 시인의 시조는 멀리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길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간다. 그럼에도 생의 밑바닥을 속절없이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받아든 삶을 감사하며, ‘어느 봄날 닿겠거니’ 오체투지로 나아간다. 그런 자연의 순리를 따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그 근원에 가 닿으려는 삶들에 그의 심안(心眼)은 열려 있는 것이다. 망자든 산 자든 ‘오색 깃발 기도문’을 흩날리며 간절히 기구하는 ‘신으로 가는 길’, 김소해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는 ‘어디든 사람 사는 곳 아린 생이 함께 살아’ 아름답고 장엄하다.
남자신인상 수상작은 박방희 시인의 <기아(飢餓)를 읽다>가 선정되었다.
4수로 구성된 이 작품은 ‘퓰리처상 수상 사진전에서’란 부제에서 보이듯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아픔이 유장(悠長)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시인은 그들의 부박한 삶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절한 비유와 상상력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묻고 있다. 하지만 시인 자신이 섣불리 연민의 눈물을 흘리지도, 구현할 유토피아를 위해 사회 정의를 앞세우는 구원자연하지도 않는다. 표현은 유장하지만 화자의 감정과잉을 억제한 의도된 수사법에 그의 시의 진정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자신인상 수상의 영광은 최재남 시인의 <갈릴리 물안개>로 돌아갔다.
‘온종일 건져 올려도 가난했던 물의 시간/하늘이 흘러들어 그 바다 다 메우자/베드로/빈 배에 올라/그물 다시/던진다’에서 보듯 그가 말하고자 하는 시간과 공간(빈 배, 바다)은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앙시적 표현을 빌리고 있지만 그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자아성찰과 생의 근원에의 탐구이다. 그가 오랜 시간 그려 온 마음의 풍경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출됐듯 앞으로 세상을 향해 더 크게 펼쳐지길 바란다. 그물에 건져 올려 질 미래는 시인 자신의 것을 넘어 온전히 우리 시조단의 몫이다.
심사위원 : 조영일(위원장), 민병도, 백이운
□ 수상소감
나는 아직도 나를 찾아가는 길을 찾고 있다.
돌멩이 하나에도 신성神性이 있다면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스스로 신이 되어 사물과 사람 사이, 아무것도 아닌 헝겊조각에 마음을 걸어볼지라도 그게 신심信心이면 그냥 인사 올리고 싶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심信心을 찾아가는 시조를 쓰고 싶다.
시조 쓰기의 어려운 길에 겁 없이 들어섰다가 내 작품에 내가 좌절하기도 수십 번, 이제 좌절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셨다. 이왕 들어선 길 끝 까지 가보라고 채찍질 해주셔서 감사하다. 나의 신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이제 시조의 빛이 조금 보인다.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드리며 함께 시조의 길을 가는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김소해 약력
1983년 현대시조 2회 추천완료, 1988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없는 가작 당선.
『치자꽃 연가』성파시조문학상,『흔들려서 따뜻한』부산문화재단기금 수혜
『투승점을 찍다』2014년 세종문학도서나눔 우수도서 선정, 제22회 나래시조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중앙위원, 부산문인협회 이사,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
□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신인상
기아飢餓를 읽다
_퓰리처상 수상 사진전에서
박방희
수금을 연주하듯 제 갈빗대를 뜯으며
넋 놓고 울고 있는 아프리카 검은 아이
두 볼에 흐르는 눈물로 나일 강이 흐르고
해골 속에 담겨 있는 퀭한 두 눈망울엔
배고픈 어린 짐승의 깊이 모를 서러움이
비탄의 발원지가 되어 세상을 적시는데
끝없는 눈물 줄기 악보로 읽으면서
나는 그저 바라만 보며 하염없이 젖고 있네
잠잠한 흑백사진 속에는 모래폭풍 일어나고
나일강에 이는 파도 가슴 벽을 치고 들어
슬픔이 슬픔을 부르고 눈물이 눈물을 불러
적시네, 휴일 오후를, 쓸쓸하게, 처량하게
□ 수상소감
뒤늦게 현대시조의 멋과 맛에 빠져
열심히 뒤를 따라가고 있는 후생입니다.
걸음마를 겨우 떼고
가야할 먼 길을 내다보고 있는 즈음에
뜻밖의 소식 접하여 참으로 기쁘고 두렵습니다.
뒤늦은 출발에 주시는 관심과 격려로 알고
차근차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시조의 새 지평을 찾아 나아가겠습니다.
제 문학의 길에서
시조의 진수를 깨치게 해주신 대구시조의 선배님들
《유심》추천으로 시조의 길을 열어주신 홍성란 선생님
시조에서 첫 상을 받게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한국시조시인협회
외롭지만 의로운 길을 줄기차게 걸어오신 시조단의 모든 선생님들께 엎드려 절 올리며 소감에 대신합니다.
고맙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박방희약력
경북 성주에서 태어남. 1985년부터 무크지『일꾼의 땅』과『민의』『실천문학』등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함. 동시, 동화, 추리소설, 수필, 2009년 유심 시조 부문에서 신인상. 시조집『너무 큰 의자』『꽃에 집중하다』등
□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신인상
갈릴리 물안개
최재남
소리없이 붉어지는 갈릴리 저녁바다
물결하나 일지 않고도 제 가슴 다 태우더니
하얗게
일어서는 바다,
수평선이
풀린다
온종일 건져 올려도 가난했던 물의 시간
하늘이 흘러들어 그 바다 다 메우자
배드로
빈 배에 올라
그물 다시
던진다
□ 수상소감
지난 연말은 제게 혼란과 정리의 시간이었습니다.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려도 다다르기 힘든 삶의 목표점을 놓쳐 버리고 머뭇머뭇 망설이는 동안 10년 이라는 시간이 후딱 지나와 버린 것입니다.
평생 동반자로 함께 가고 싶었던 시조도 제 가슴 언저리에 얹혀 늘 가난하고 목마름에 갈증만 나고 있었습니다.
수 백 번의 경주 여진처럼 불혹의 시간들을 이렇게 보내 버리고 아쉬움과 후회를 다독거려 다시 한걸음을 내딛으려는 때, 수상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아 든 기분이었습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으로서 받는 협회 신인상은 또 다른 의미와 감사로 다가왔습니다. 종가문학인 시조에 대한 자부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가 삶의 이야기이듯, 삶 또한 시 같아야 한다고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이젠 시조의 길 위에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앞만 보고 나아가려합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지우고 오직 소망과 풍성함으로 이 땅 가득 채워지길 원했던 갈릴리 물안개를 눈여겨 봐 주시고 신인상으로 뽑아 주신 선고 위원님,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묵묵히 조용히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재남약력
2006년 전국한글백일장 시조부문에서 '길'로 장원, 2007년 제10회 대구시조전국공모전에서 '겨울 갈대'로 장원, 2008년 '시조21' 신인상 수상.
□ 『시조미학』 2016 신인작품상 당선작
햇살 통장
한승주
별것도 아닌 일에
상처 받는 소심함이
마음의 근력 다해
안 아픈 척 애써 봐도
빈 말이 휘젓고 간 공터에
나뒹구는 햇살 통장
꺼내 쓸 그 사랑이
내 통장엔 없나보다
허리가 휘어지는
거목 같은 사랑으로
드리운 그늘만큼의
넓은 품이 되고 싶다
아버지의 강
이순주
물빛 따라 흐른 날들 돌담마다 새겨두고
바람으로 물든 하루 등에 지고 절며 가시는
한고랑 메워진 세월
잠이 든 설익은 시간
까닭모를 절절함도 생각 짚어 숨 고르시고
빗장 열어 자리하는 아리고 성긴 옷자락
끝끝내 가늠치 못한
서리 내린 당신의 강.
□ 『시조미학』 2016 신인작품상 당선작 심사평
사라져가는 늦가을의 느닷없는 부름에 세검정 산자락을 왔다. 문경 사는 젊은 도공이 자연유 그릇전을 연다기에 부랴부랴 달려온 작은 갤러리. 진열장에 늘어선 접시며 다관, 화병들은 물론 바닥 한 구석에 앉은 작은 찻잔들까지 자신을 드러내거나 무심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취하는 이 태도, 다른 듯하지만 같다고 분위기가 귀띔한다. 차를 권하며 작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순간, 그의 본성의 발로이자 영감의 원천이며 화신인 그릇들이 긴장한다. 그가 만든 다관이 그의 얼굴을 닮았다는 사실이 공간 안에 행운의 폭죽을 쏘아 올린다. 그가 만든 그릇들이 그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잘 반죽된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상대방의 입술을 보아야만 말귀를 알아듣는 도공의 아내는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화두처럼 붙잡는다. 그 기세에 그릇들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릇의 파편들이 무수한 사리로 튀어 오른다.
<시조미학> 이번 호에 두 사람의 신인을 선보인다.
「햇살 통장」 외 4편을 응모한 한승주 씨와「아버지의 강」 외 4편을 응모한 이순주 씨가 그들이다.
「어느 날 나의 인생이」란 작품에서 보이듯 한승주 씨는 기독교 신앙을 하지만 그의 시는 직설적 표현 대신 신앙을 육화시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서 당선작으로 미는 「햇살 통장」에서 ‘허리가 휘어지는/거목 같은 사랑으로//드리운 그늘만큼의/넓은 품이 되고 싶다’는 미학에 가 닿는다. ‘빈 말이 휘젓고 간 공터에/나뒹구는 햇살 통장//꺼내 쓸 그 사랑이/내 통장엔 없나보다’고 쓸쓸해하면서도 결국은 거목 같은 사랑으로 넓은 품이 되고 싶다는 길을 택한 그의 앞날이 기대된다.
이순주 씨의 당선작은 「아버지의 강」으로 낙점한다.
「가을 형용사」도 좋지만 ‘화려한 하루가 진다/벼랑 끝 울린 노래’, ‘진자리 메우는 달빛/풍경 한 번 울린다.’는 종장을 초장 중장이 앞에서 받쳐 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아버지의 강」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아버지에 대한 애상과 회억의 정을 그린 작품이다. 다소 관념적인 시적 대상에의 접근이 거슬리나 ‘물빛 따라 흐른 날들 돌담마다 새겨두고’ ‘바람으로 물든 하루’ 같은 구절에 방점을 찍었다. 이미지 처리를 좀 더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과 정신세계에서 구한다면 큰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두 신인 모두 자기에게 의미 있는 존재, 자기 영감의 원천을 자기의식 속에 이미 새겨진 하느님과 아버지를 벗어나 새롭게 찾아야 할 것이다. 만물이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그 입술을 화두처럼 붙잡아야 할 것이다.
백이운(글)
□ 당선 소감
한승주
지금부터 칠년 전 저는 시를 좋아하는 선배로부터 이메일로 매일 좋은 명시를 받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가 주는 마음의 위안을 느꼈고 시를 접하다보니 나도 한번 시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습작을 조금씩 해보았지만 별로 저에겐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한동안 접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성산문학아카데미에서 김선희 선생님의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들어 있던 문학에의 열정을 선생님께서 이끌어내 주신 덕분에 오늘의 이 영광을 받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존경하는 심사위원님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정말 기쁘고 책임감도 느끼게 됩니다.
성산문학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하는 문우님들께 감사하며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저의 남편과 아들내외와 친지들의 격려와 지지에 감사하며 저의 기쁨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시조 창작에 더욱 매진하여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한승주 (본명 한영례)
경기 김포 출생.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상담대학원 졸업
현) 성산문학아카데미 편집장. 2016년 마포타임즈 주최 토정백일장 입상
□ 당선 소감
이순주
바사삭 바사삭 발 아래 밟히던 잎사귀를 뒤로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고 있습니다.
처음 시조를 접했던 여고 1학년.. 국어책에서만 보던 시조를 써 보겠다고 13대 한얼 시조 동인으로 시조를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활을 쓰기보다 멋부린 글로 감성 충만한 문학소녀인 듯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여고 졸업 후 잠깐의 올제 시조동인회 활동이 있었지만 한 줄의 글도 쓸 수가 없었고 메마른 감정을 탓하다 잊고 지낸 긴 시간.
이제 돌아와 앉으니 감성보다 현실이 더욱 친근했고 오래 전 시율을 고르던 어린 손은 생각이 먼저 한걸음 나아가 원고지를 여백으로만 채우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 선생님의 기다림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시율을 고르고 여백을 메워가다 ‘신인상 당선’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아들었습니다.
오래전 갈망하던 길이었지만 앞에 놓인 길 위에서 놓아버린 꿈이 생각지 못한 순간에 현실이 되어왔습니다.
기쁨보다는 해묵은 그리움과 무거운 책임감 같은 어줍잖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감히 넘보지 못할 동경의 대상이기만 했던 탓일까요 당선의 무게감은 양 어깨를 짓누릅니다.
늘 모든 걸 자식들에게 주시고 정녕 당신은 아무것도 지니지 못하고 가신 아버지...
철없던 그때 보지 못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느 순간 마음에 들어온 건 아마도 나도 그때의 아버지와 같은 부모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글은 삶을 그려내는 것임을 알게 해 주신 나의 스승 김세환 선생님과 귀한 기회를 주신 한국시조시인협회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낮달로 떠도 어둠을 밝히듯 낮은 곳에서도 온기를 품을 수 있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봅니다. 2016.12.12.
-이순주
대구출생. 한얼시조동인. 올제시조동인. 대구광역시서부교육청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