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기도하러 인천을 향해 나아가는데,
'방언 기도를 어떻게 풀어내나?' 하는 주제에 대한 인싸이트가 있었다. 운전 중이라 생각으로 정리를 하고 일과를 보낸 후에 저녁에 귀가해서 유튜브를 틀어 보는데 '기도에 대한 영상' 이 "훅~~" 하고 들어온 것이다(링크는 하단에..)
요즘은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리는 차량이 다반사이다. 그런데 예전 방식의 자동차의 경우에는 시동(start)을 걸 때에는자동차 키(key)를 키홀더에 꽂고 돌리던 때가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기어를 중립에 놓고 클러치(cluch)를 들입다 밟고 시동을 걸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겨울에는 엔진 시동이 더 잘 안 걸리던 때이다. 왜냐하면 엔진 자체가 요새 나오는 EGI.니 하는 방식의 전자적 기술이 들어간 최첨단 엔진이 아니었다( 하기사 요새는 전기자동차가 다니니 말이다 ).
예전에는 캬뷰레터 방식의 엔진이 유행이었던 때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여름보다는 겨울에 시동이 잘 안 걸리게 마련이었다. 또한 2~3분 예열(worming up)을 하고냔 후에 갈 길을 가던 때였다.
그 보다 더 예전에는(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시동이 안 걸리면 엔진이 위치하는 곳에 '장작불' 을 때던 때가 있었다. 기온이 너무 많이 떨어지면 엔진을 녹인다고 차량 하부에 장작을 때서 시동을 걸던 때였다.
그때는 캬뷰레터 방식도 아닌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느 시골에 가면 '경운기' 시동 걸듯이 핸들(채)이 있어서 길게는 1~2분초 정도 시동을 걸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돌리던 때가 있었다. ㅎㅎㅎ
이와 같이 엔진의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정해진 방법을 따라 수고를 해야 한다.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정한 시간의 기도가 있는 반면에 무시로 기도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기도의 시동을 우리가 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방언도 마찬가지이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을 기억하는가? 그때 120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들어 주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이다. 그 당시에 제자들 면대면 하여 혹은 삼삼오오 농담이나 하면서 거기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여 아니 계시고 로마 정권의 종교적 탄압과 견제에 더불어 상황이 좋지 못했던 것이다.
■마가복음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하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것과 같이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 하셨던 것이며 부활체로 40일 동안 자신들과 함께 하셨던 경험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부재중이 되신 것이다.
덩달아 사회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터였다. 전심으로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친히 하신 약속을 기다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냥 저냥 멀뚱 멀뚱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기도했다.
■사도행전 1: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사도행전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행전 1: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성령이 충만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다. 상황이 좋지 못하니 죽기 살기로 기도한 것이다. 그러다가 방언이 터진 것이다.
이와 같이 방언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
엔진의 시동을 어떻게 켰던가? 순서가 있었다.
(1)시동키를 돌리기 전에 클러치를 깊게 밟아 주었다.
(2)그보다 앞서서 기어를 중립에 두었다.
(3)키홀더에 꽂은 자동차 키를 1단계 놓고 예열을 했다.
(4)몇 초 지난 후에 조심스레 키를 돌렸다.
이것을 누군가가 대신해 주는 게 아니다. 내가 해야 시동이 걸리듯 방언 기도의 시동이 걸리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의 제자들이 방언이 터졌었다. 성령이 충만해지면서 나라방언이라고 명명된 방언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도의 시동이 켜져 있었다. 언제부터?
제자들이 벌써 7일 전부터 켜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해되시면 아멘?
시동이 처음부터 잘 걸리지 않는 겨울에는 "딕,딕,딕,딕" 소리를 내면서 한 번에 시동이 안걸리는 것처럼 시동이 걸리기까지 여러 차례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와 동일하다. 기도가 처음부터 잘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방언 기도의 경우에도 그런 것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려고 해야 한다. 시동을 거는 순서가 있는 것처럼 방언기도가 제대로 걸리기 위해서는 따라해 본다. 시동을 걸 때 기어를. 중립에 놓고, 클러치를 밟고, 시동 키로 워밍업을 한 후에 돌리듯이, 방언 기도도 따라해 보는 것이다.
방언 기도의 시작은 뭐다? 그것은 '소리'이다. 말, 언어가 아니다. 소리이다. 단지 하나님만 알아들으시는 영의 기도이다. 심지어 말하는 나조차도 모른다. 더하여 천사도 마귀도 모른다. 오직 나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만이 아시는 소리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알아 들으신다.
■고린도전서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아이를 키울 때에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전에 '소리' 를 발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모님들은 알아 들으신다(그리고 하나님은 100%정확히 알아 들으신다).
(아이가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점차 생후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 마' 하다가 '엄마'를 배우고 '빠, 빠' 를 반복하다가 '압빠'를 배운다. 이 정도는 언어이다.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한국어이다.)
이 보다 더 어렸을 적에는 운다. 조금 더 자라면 짜증내며 운다. 또 운다. 그게 다다. 그런데도 양육하는 부모님은 알아 들어서 필요한 것을 모두 해결해 준다. 왜?
안 그러면 소리를 낸다. 울어 댄다. 그러니 얼른 얼른 해주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도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 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크고 은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 약속하신다).
기저귀도 갈아주고, 맘마도 주고, 냄새 난다고 목욕도 시켜주고, 피부질환 에방에 좋은 분도 최고급 미세분말로 발라준다.
아기때에는 소리만 내면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내는 소리는 매우 단순하다. 매우 단순해서 "응애~~~~" 가 다일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응애' 하는 소리에 억양도 있고, 조금씩 다르다는걸 느낄 수 있다. 어떤 때는 울지는 않고 "낑낑" 대면서 자신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렇듯 아이들 조차도 갓 태어났을 때의 소리와 조금 자라서 내는 소리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기도도 발전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방언기도도 마찬가지이다. 본인의 경우 방언 기도를 할 때에는 다양한 소리를 내는 편에 속한다. 방언 기도를 하던 어떤 날에는 생애 처음으로 하게 되는 방언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잊고 지내다가가 언제가 또 하게 되면서 입에 붙게 되고 레파토리처럼 되게 된다. 다양해지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자, 다시금 말하지만 기도의 시동은 내가 거는 것이다.
일과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기 전에, 혹은 tv 앞에 앉기 전에
기도의 자리에 앉고 입을 여는 것은 내가 하는 것처럼 그러면서 기도가 깊어지고 다양해지고 그런다.
방언도 마찬가지이다. 방언을 따라 해보라. 그리고 적어도 20~30분 정도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소리를 내 보라. 방언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막16:17).
■마가복음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마가복음 16: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https://youtube.com/shorts/jfQ57dPF3s4?si=DfpYVXzz0SsXZa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