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한겨울이라고 해서 하루해가 항상 짧은 것만은 아니었다. 외할머니의 말씀처럼 뱃속에 거렁뱅이 귀신이
라도 차고앉아있는지, 실하게 담아준 보리밥 한 그릇에 싱건지 국물까지 말끔하게 비워내도 한 두 시간
이 지나면 다시 허기가 느껴졌다. 더구나 간식거리에 지나지 않는 고구마 두어 개로 점심을 때운 날은
한 나절이 하루 같았다. 마땅하게 놀거리도 없었다.
자치기나 제기차기도 간혹 해야 재미가 있지 이내 식상해지는 것이었고,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공차기놀
이도 큰 애들이 많으면 끼이지도 못하고. 더욱이 눈이 내리면 빈둥거리기나 할 뿐이었다.
눈은 웬만큼 쌓인다고 해봐야 하루나 이틀 볕이면 녹았지만, 며칠 동안은 질척거려서 가리나무
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날은 대낮부터 사랑방에 모여서 노닥거리거나, 가끔은 꿩을 주우러 산을 뒤지기도 했다.
속을 파낸 메주콩에 청산가리를 넣고 촛농으로 밀봉을 한 뒤, 산자락 밭에 흩어두고 배고픈 꿩을 노렸
다. 꿩은 근처에 죽어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산속으로 날아가서 죽었다.
한나절이 넘게 산을 뒤져도 허탕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어쩌다 재수가 좋은 날은 두, 세 마리를
줍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신이 나서 배고픈 줄도 몰랐다.
여럿이 어울려서 한 마리를 주운 날은 사랑방에 모여서 꿩 죽을 쑤어먹기도 했고, 개울가에서
구워먹은 적도 있었다.
한번은 꿩을 주우러 뒷산을 뒤지다가 동네아이들 넷과 함께 술상 고개를 넘어 대치쪽 으로 향햇다.
동네에서 그다지 멀지는 않았지만, 고개가 꼬불꼬불하고 인적이 드물어 특히 야밤에는 그동네 처녀들
만날라치면 여러번 머리가 솟구쳐 진땀이 흐르곤 했던길을 따라 산비탈에 외딴집,행정구역이 서로 다른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십리길 진교보다도 훨씬 멀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깍지를 낀 듯 겹쳐진 야산들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고, 북쪽을 향해 느릿하게 뻗혀진 소오산 골짜기에는
얼룩처럼 군데군데 눈이 남아있었다. 잡나무숲에 가려져 집은 한 채도 보이지 않았지만, 굴둑에나는 연
기를보니 집은몇체 있는것 같았다.
민민한 산만으로는 미덥지가 않았는지 산을 건너지른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져있고, 흡사 매에게
쫓긴 장끼가 골짜기에 머리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빙 둘러보아도 꼬불 꼬불 밭떼기 몇개만 보이고. 이런 곳에도 동네가 있다는 것이 낯설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꼬꼬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누구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눈이
맞춰졌다. 가만가만 소리 나는 곳으로 다가가보니 대나무 밭 울타리 주위에 닭들이 무리를 짓고 있었다.
흙을 헤집어 먹이를 찾는 놈도 있었고, 꽁무니를 치켜들고 암탉의 뒤를 음침하게 뒤따르는수탉도 보였
다. 햇볕을 받으려고 부풀린 깃털에서는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흐르고 유난스럽게 크고 탐스러워 보였
다. 부질없이 군침만 도는 그림속의 떡이었고, 숨죽인 그림 속에 살아서 움직이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못 먹을 것도 없는 떡이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
는 경우가 아니겠는가.
토실토실한 암탉으로 골라서 황토를 바르고 구워서 먹는다면, 살집이 적고 질긴 꿩고기는 비교도 안 될
것 이었다. 지금처럼 조루독감 걱정도 없는 시절 이엿으니까.굳이 물어볼 것도 없이 아이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용길이가 돌멩이를 주워들더니 닭을 향해 던졌다. 느닷없는
돌팔매에 놀란 닭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밭으로 달아나고,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이어졌다.
다음날은 아침을 먹고 부리나케 종덕이네 사랑방으로 갔다.효봉이와 지금은 고인이된정균이 는 벌써 나
이론줄을 가늘게꼬아놓고 있었다. 가느다란 줄에 양쪽 끝에다 큰 밤톨만한 돌멩이 두개를 단단히 묶었
다. 그리고는 주머니칼과 소금 한 움큼, 삽 한 자루를 챙겼다. 가는 길에 볏짚 한 단만 더 가져가면 될 것
이었다.
종문이까지 합세해서 다섯이 한 패가 되어 술상고개를 넘었다. 옆걸음으로 떠오른 햇볕에 길이 녹아 그
새 질척거리기 시작했고, 논 가운데에 쌓아놓은 볏짚 낟가리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있었다.
농로가 끝나는 고개 밑 도랑부근에서 두 패로 나눴다.
셋은 남아서 황토 준비와 모닥불을 피우기로 하고, 나와 용길이는 닭 사냥을 나섰다. 드문드문 길이 끊
기고 마른 칡넝쿨이 널린 산길은 마구잡이로 넘었던 전날보다도 가파르게 느껴졌다. 그늘이 진 곳은 아
직 얼어있어서 그나마 나았지만, 대부분은 질퍽해서 신발이 들어붙기도 하고 자칫하면 미끄러지기 십상
이었다.
백주대낮에 닭서리를 계획하고 산 도적처럼 비탈을 오르는 일에는 다리 힘보다 담력이 더 필요했다. 서
리를 해본 경험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등성이를 넘기도 전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며
소나무 숲을 벗어나 돌을 쌓이놓은 곳을 돌아서니 고개턱이 보였다. 개솔 나무에 몸을 숨겨가며 살금살
금 등성이에 올랐다. 서리꾼의 접근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을은 조용하기만 했다. 헐근거리며 몸을 낮추
는 모습이 수상해 보였는지 마을 쪽에서 부는 골바람이 대나무 숲을 흔들며 으름장을 놓는 듯 했다.
울타리주위에는 전날과 다름없이 닭들이 모여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닭들이 흘끔거리면서 달아날 준비를 했다. 어느 놈이라고 고를 틈도 없이 준비해간 노끈을 동시에 날렸
다. 노끈은 양끝에 돌멩이를 매달고 닭 무리를 향해 나지막이 날다가 그 중 재수 없는 놈의 다리를 사정
없이 휘감았다. 이어서 자지러지는 듯 비명을 지르며 두 마리가 쓰러졌다. 날렵하게 달려들어 날갯죽지
아래를 엄지와 중지로 눌러 쥐자 닭은 이내 얌전해지고, 대나무 숲 사이로 여지없이 개 짖는 소리가 들
렸다. 목을 비틀어 날개와 함께 움켜 쥔 채,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정신없이 뛰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한 마리만 서리하기로 했던 것인데, 둘이서 한 마리씩 잡아 왔다는 것은 길을따라 오
지 못하고 삼용이네 산을지나면서 알았다. 목이 비틀린 채 덜렁거린 탓인지 두 놈 다 이미 축 늘어져 있
었다.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한 마리는 예정대로 구워 먹고, 또 한 마리
는 나중에 삶아먹으면 될 일이었다.
마련해놓은 장소에 도착하니 마른 솔가지가 송진 타는 냄새를 풍기며 잉걸로 변하고 있었다. 물에 불린
볏짚 한 단을 가지런히 골라 꽁지를 묶은 다음 둥글게 펼쳐놓고, 닭의 안팎에 소금을 뿌린 뒤, 살이 보이
지 않도록 볏짚으로 싸매었다. 그 위에 수제비 반죽같이 갠 황토를 두툼하게 바르고 불잉걸 가운데에 묻
었다. 남은 일은 솔가지로 불길을 높이며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제삿집에 단자바구니를 던져놓은 것처럼 쭈그리고 앉아서 닭이 익기를 기다렸다. 메케하던 연기가 불길
과 함께 잦아들고, 잉걸이 하얗게 사위자 흘러나온 기름이 타는지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를 동하
는 냄새에 마른침을 꼴깍이며 잿불을 헤집었다. 수박을 덩어리째 불에 태우다 만 것 같은 숯덩이에는 불
규칙적으로 금이 가있고, 훅훅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삽으로 떠내다가 바위위에
얹었다. 물론 허기를 느낀 지가 한참은 지났지만, 그와 별개로 식기를 기다리기에는 너나없이 급했다.
그 맛을 말로 설명하기는 아무래도 힘들겠다. 변변찮은 말재주에다,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한 오래전 일
이라 더욱 그렇다. 흐릿해진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입안에 단 침이 가득 고이는 그런 맛이라고 할까.
어떻거나 우리들 다섯 모두는 어느 틈엔가 숯검정을 뒤집어쓴 함진아비 얼굴이 되어 있었다. 흙이나 숯
가루가 버석버석 씹혔지만 아무도 뱉는 사람은 없었고, 미처 다 씹지도 않고 꺼억-꺽 삼키며 너나없이
손놀림 턱놀림만 분주할 뿐이었다. 그럴 때 쓰는 말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기라고 하던가. 그랬다. 맛을
채 음미할 겨를도 없이, 널브러진 뼈다귀들과 볏짚에 배인 닭기름만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뒤플이 즐거워습니다 회장님께 감사드리고 함깨 춤춘여성님 게 감사하고
묵묵하게 싱글을 노리며 ~!~~~~~~
내고 향 지리산 자락 하동 어린시절 축억을 담아 신입
회원 곽 상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