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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투 쓰리 차차차
3층까지 걸어 올라가, 아카데미의 문을 열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한 여사님.”
회원들의 인사에 대고모는 모피코트를 벗으며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속으로 ‘고약한 늙은이’라고 욕을 합니다.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짝이 의상으로 갈아입고 댄스화로 갈아 신었습니다. 원장의 구령에 맞춰 기본 체조를 하고 둘씩 짝을 지어 섭니다. 남자가 별로 없어서 여자들 중의 반은 남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대고모는 언제나 여자 역할만 고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눈총을 많이 받습니다.
요즘은 라틴댄스 차차차를 배우는 중입니다. 겨울방학이라 고등학생 오빠가 와서 함께 연습을 합니다. 이 오빠는 하루 종일,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댄스 연습을 합니다. 특기생으로 대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그 오빠 앞에 나를 세워줍니다. 오빠의 파트너인 고등학생 언니가 오늘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수업시간이 끝난 후, 언니와 오빠는 탱고 음악을 틀어놓고 춤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온 무대를 휘저으며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을 우리는 넋을 잃고 쳐다보곤 했습니다. 음악이 끝나고 나면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티셔츠가 다 젖고, 두 사람은 기진맥진하여 무대에 누워 헐떡거립니다.
그 언니가 오지 않아서, 내가 오빠의 파트너가 되는 행운을 얻은 겁니다. 나는 서툴러서 많이 떨립니다. 할머니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나도 그 언니처럼 이 오빠의 팔에 몸을 싣고 열정적인 동작으로 탱고를 추는 꿈을 꿉니다. 카운트를 세는 오빠가 너무 멋집니다.
“투 쓰리 포 앤 원!”
오빠는 검지를 들어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춥니다. 대고모가 집에서 함께 연습할 때 ‘투 쓰리 차차차’라고 하는 바람에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투 쓰리 포 앤 원! 이라고 하니 훨씬 세련되어 보입니다.
“라틴댄스는 완벽한 체중 이동을 바탕으로 합니다. 라틴댄스 중에서도 빠른 템포의 차차차를 크레이지(미치광이)댄스라고 합니다. 투 쓰리 포 앤 원에서 앤은 영어로 팔로우(follow)라는 뜻으로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왼발이 가면 오른 발이 왼발을 계속 따라온다는 거죠. 발의 뒤꿈치에 전체 체중을 두는 게 중요합니다. 허리를 쭉 펴고 상체는 움직이지 않아야합니다.”
원장이 설명을 한 뒤 시범을 보입니다.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어깨를 쭉 폅니다. 키가 백칠십삼 센티미터나 되는 원장이 시범을 보이는 모습은 정말 멋집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몸을 틀 때마다 물결처럼 출렁거립니다. 거만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선생님의 시범이 끝나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쌍쌍이 춤을 춥니다. 오빠의 어깨에 손을 살포시 얹고 스텝을 밟으며 오빠를 축으로 해서 빙글빙글 돕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배경이 지워진 허공에서 둘이서만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어찌나 쿵쾅거리는지 박자를 놓치고 맙니다. 댄스스포츠는 실내에서 추는 춤이라는 의미의 볼룸댄스를 말합니다. 우리는 룸바와 자이브와 차차차를 배우는 중입니다. 매일 세 가지 댄스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진도를 나갑니다. 그 날 배운 것을 잊어버리면 다음 날 진도 나갈 때 우왕좌왕하기 때문에 집에서 확실히 익혀가야만 합니다. 할머니들은 귀로는 음악을 듣고, 몸으로는 춤을 추고 머리로는 이어지는 동작들을 외워야하기 때문에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십 년, 십오 년째 춤을 추고 있는 할머니들도 있습니다.
대고모는 원래 대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했답니다.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답니다. 의사인 고모할아버지는 병원건물을 지어서 2층까지는 병원으로 쓰고 3층은 살림집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대고모는 하루 세 끼 밥을 해야 했고, 아들 딸 낳아서 기르다보니 젊은 날이 고스란히 흘러가버렸답니다. 자녀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둘이서 알콩달콩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고모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5년 전에 우리 할아버지와 비슷한 시기에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너무 잘 키워놓은 게 화근이지. 이제 거기서 직장을 잡고 살겠단다. 눈이 파란 아내를 만나서 결혼한 아들도, 재미교포 남편을 만나서 거기서 살겠다는 딸도, 이 엄마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완전히 손에 쥐었던 풍선이 하늘로 날아간 느낌이야. 나는 행복을 다 놓쳐버리고 말았어.”
정말 외돌토리가 되신 겁니다. 그래서 대고모에게도 저는 각별한 손녀입니다. 몸도 마음도 허전해서 뭔가 하고 싶었는데, 미용실 원장이 댄스스포츠를 해보라며 권하셨습니다.
“원래 무용을 전공하셨으니까 충분히 따라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칠십 세가 넘은 사람들도 여럿 되니까 한 번 도전해 보세요.”
대고모는 혼자 등록하기 쑥스럽다며 저를 계속 꼬드겼지요. 할머니는 괜히 얌전한 아이한테 헛바람 불어넣지 말라며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해보니 정말 시작하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대고모에게 호감을 가졌습니다.
“이 연세에 이런 몸매 갖기 힘든데, 비결이 뭐에요?”
“사실은 제가 이대에서 무용을 전공했어요. 미스코리아도 본선까지 올라갔고요. 동창회에 나가면 빳빳하게 곧은 허리와 하이힐을 신은 내 다리를 모두들 부러워한다니까요.”
“어쩐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
중학교 무용선생으로 재직하다가 올해 퇴직한 전선생이 자기도 이대 졸업생이라며 반가워합니다.
“선배님, 그럼 몇 학번이세요? 저는 66학번 전경선이라고 합니다.”
“어머 그래요? 난 62학번 한연희에요. 그럼 한참 후배네.”
“선배님 반갑습니다. 사실 이번 동문회 행사를 제가 맡았거든요. 그래서 행사 때 간단한 댄스라도 함께 추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여기 왔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댄스할 때 무대 위에서 시범을 보여주시면 더욱 영광이겠습니다.”
정 여사가 눈꼴이 시다는 듯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듭니다.
“잘났어. 정말. 우리 시대에 먹고 살기 힘들어서 여자들은 고등학교 나오기도 힘들었는데, 대학까지 나왔다니. 당신들은 참 늙는 게 아깝겠다.”
정 여사는 그 시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 여자로서는 최고의 직업이었다는데, 대학 얘기만 나오면 심사가 뒤틀린답니다. 그래서 몇 학 번이냐는 말만 나오면 속이 뒤집어진답니다. 공부를 잘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취직을 해서 남동생들 공부를 시켰다고 합니다.
“내 친구들도 66학번이니 전 선생님은 나랑 갑장이네요.”
정 여사의 그 말이 참 가슴 아프게 들립니다. 정여사도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대고모 같은 시누이와 살았으니 얼마나 열등감에 시달렸을까요? 이 댄스아카데미에 나오는 할머니들은 모두들 사모님 출신입니다. 정 여사는 별이 두 개인 군인의 아내입니다. 교장부인, 구청장 부인, 동장부인에 사장부인까지 모두 사모님 소리 듣고 산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대고모가 제일 돋보입니다. 병원장 부인에다 미스코리아 출신이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대고모가 더 미워집니다.
댄스아카데미에 오면 대고모는 정말 십 년은 젊어집니다.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눈빛을 먹고 조금씩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미용실에 들러서 머리 손질을 받습니다. 예식장에 가는 사람처럼 곱게 화장도 합니다.
“거봐요. 제가 소개하길 잘했지요? 사모님 요즘 고목에 꽃 핀 것처럼 물이 오르는 것 같아요. 호호.”
미용사의 농담에 대고모도 마주보고 웃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해서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댄스 아카데미에서 돌아오면 침대에 드러눕는 일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매일매일 예쁘게 단장을 하십니다.
어깨를 다 드러내놓는 반짝이 의상에, 치마 옆이 터져서 돌 때마다 허벅지가 살짝살짝 드러나는 집시치마를 입고 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춥니다. 투 쓰리 포 원은 룸바, 투 쓰리 포 앤 원은 차차차, 원 투 쓰리 아 포는 쟈이브의 박자입니다. 이 라틴댄스는 굉장히 관능적인 춤입니다. 룸바 중에는 남자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교태를 부리는 듯한 동작도 있습니다. 대고모는 파트너와 손을 잡고 춤을 출 때는 파트너가 칠십 대 할머니인 것도 상관없이 상상력으로 춤을 춘다고 합니다. 훤칠한 키에, 멋진 외모, 매너가 좋은 남자를 꿈꾸며 추다보면 어느새 19세기의 댄스파티에 초대된 공작부인이 되어 있답니다.
친구들은 대부분 관절염을 앓거나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한답니다. 우리 할머니도 퇴행성관절염이 있어서 비라도 오려고 날이 꾸물꾸물하면 제가 다리를 주물러 드리곤 합니다.
“인공관절 수술하세요. 광고에 보니까 수술을 하고나면 어머니 무릎에도 봄이 온다고 하던데요?”
“누가 그걸 모르나? 양쪽 다리 다 하려면 병원에 한 달은 누워 있어야 할 텐데, 살림은 누가 할 것이며 지수는 누가 돌보겠어? 내가 조금 아프고 말지.”
할머니의 말에 엄마는 그거야 어떻게 되겠죠 하며 우물거리다 맙니다. 생각해보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할머니도 수술을 받고 대고모처럼 쭉 펴진 다리로 뽐내며 걸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가을에 대고모는 팔이 부러졌습니다. 댄스아카데미 수업시간에 늦어서 뛰다가 보도블록 사이에 하이힐 굽이 끼었습니다.
아, 안 돼, 다리 다치면 안 되는데!
대고모는 다리를 지키려고 팔이 부러지는 걸 감수했습니다. 팔에 깁스를 한 채 댄스아카데미에 갔습니다. 팔에 깁스를 한 대고모가 투 쓰리 차차차하면서 춤을 추자, 할머니들이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제 손으로 손가락을 잘라버린 도박사가, 도저히 못 참고 발가락으로 한다더니 우리가 그 짝 났습니다.”
“우리는 다리가 생명이잖아요. 다리 다쳤으면 이 좋은 걸 못 할 뻔했잖아요.”
대고모의 말에 아주머니들이 박수를 치며 공감을 합니다. 사모님들은 너도나도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웃음의 도가니 속에 빠져듭니다.
“남편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도 여기 오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 몰래 빠져나와 춤을 추고 갔잖아요.”
“저는 서울에 손녀 돌잔치에 다니러 갔는데, 운동시간을 놓칠까봐 새벽차로 내려왔답니다.”
“저는 또 어떻고요. 미국에 간 딸이 몇 년 만에 다니러 왔는데 빨리 미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더라고요. 학원을 이 주일이나 빠졌는데, 진도를 어떻게 따라잡나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못하겠더군요.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딸이 내 속마음을 알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요?”
“발바닥이 찢어진 황 여사님은 끝까지 하이힐을 벗지 않았잖아요. 납작한 슈즈를 신으라고 해도 고개만 살랑거리더군요. 하여간 공주님들은 아무리 아파도 품위를 지켜야 한다니까요.”
원장의 농담에 할머니들은 또 박수를 치며 온몸을 흔들어가며 웃습니다. 아무리 할머니들이라도 정신연령은 저와 비슷한 거 같습니다.
차차차는 속도가 빠릅니다. 고등학생 오빠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고 뱅뱅 도는데 눈이 핑핑 돌 지경입니다.
“시선을 고정하세요. 파트너의 귀 옆을 통해 벽의 네 귀퉁이를 차례로 보면서 절도 있게 목을 꺾으며 돌면 어지럽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몸은 팽이가 돌듯 원심력에 의해 팽팽하게 돌고 있습니다. 정말 마음이 둥둥 뜹니다. 남자역할을 하는 칠십 대 할머니와 파트너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니까요. 그래서 할머니들도 그 오빠에게 총각, 총각, 나도 좀 돌려줘 해가며 서로 손을 좀 잡아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대고모와 나는 틈나는 대로 복습에 들어갑니다. 신호등 앞에서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며 스텝을 연습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면 대고모와 나는 둘 다 머쓱해져서 마주보고 웃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할머니 때문에 서로 마음이 틀어져서 둘 다 입을 꾹 다문 채, 신호등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대고모에게 무시당한 마음을 추스렸나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자존심이 상하는데, 할머니 심경은 어떨까요? 잘 가꾸어놓은 꽃밭을 개가 들어가서 짓밟아놓은 것 같은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사모님, 요즘 살이 많이 빠지셨나 봐요.”
건널목에 서 있는데, 이웃 아주머니가 대고모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넵니다.
“호호, 몸무게는 그대로예요. 댄스스포츠를 했더니 군살이 빠지면서 몸매가 균형이 잡혔나봐요.”
대고모는 남들이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에 잘난 척을 하는 바람에 민망할 때가 많습니다.
“지수도 할머니랑 댄스학원에 함께 다니니? 이제 처녀티가 나네.”
나는 수줍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할머니는 눈치를 보지 않는 대고모가 부럽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눈칫밥을 먹어서 말 한 마디를 하려고 해도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합니다. 배려가 지나치다보면 자신이 비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답니다. 하지만 맘껏 귀여움 받으며 살아온 대고모는 어느 장소에 가서도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어울리거나 말거나 하고 싶은 말을 툭툭 내뱉는 거랍니다.
얼마 전에는 원장이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똑같은 걸 사왔으면 괜찮은데, 싼 것과 두 배나 비싼 것이 섞여 있었습니다. 다들 싼 것을 집어 들었는데, 대고모는 제일 비싼 것을 두 개 들고 와서 나에게도 주고, 대고모도 껍질을 벗기고 있었습니다.
“어머, 다들 눈치 보느라 망설이는데, 공주님은 너무 우아하게 가져가신다.”
황여사가 비꼬듯이 말을 해도 대고모는 미안하기는커녕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이게 비싼 겁니까? 나는 이것밖에 먹을 게 없어서 집었어요.”
나는 대고모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척에 놀라 사래가 들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대고모는 할머니와 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상대방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눈치 없는 대고모가 부럽다니 그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대고모는 허리를 곧게 펴고 모델처럼 우아하게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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