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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은 닫는 둥 마는 둥. 급한 성미에 벗겨지지 않은 운동화는 거의 뜯다시피 홱-하며 뒤로 아무렇게나 던져놨다. 귀차니즘의 대가, 방콕의 달인이라 불리는 게으름도 지금의 바니의 굳은 의지를 꺽지는 못했다. 벌컥 냉장고를 열어 일단 어젯밤 남은 닭찜을 넣어 보관해둔 은색 찜통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오 있다! 자기만큼이나 먹성 좋은 후니가 어쩐 일로 이 맛난 것을 여태껏 가만히 놔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닭찜을 홀로 사수했다는 기쁨에 바니는 입을 함지박 하게 늘이고는 보물 다루듯 조심스레 찜통을 두 손으로 잡아 꺼냈다.
짭조름하게 간이 잘 밴 잘라진 몸통 하나를 들고선 쪽-하며 입부터 맞췄다. 마치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연인에게나 보낼법한 하트로 가득한 러블리한 핑크빛 오로를 가득 발산하며.
그러나 바니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그 통통하게 살 오른 조각들은 곧 얼마 못 가 앙상한 뼈로 변해버렸다.
"뭐야 이거,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에잇, 죄다 뼈만 남았네."
좀 전까지는 입까지 맞추며 온갖 애정을 퍼붓던 닭 조각들. 그러나 김바니라는 여자 이런 여자. 뭐든 쉽게 질리고 금방 싫증 내는 변덕의 대표적인 으뜸 표본 상이라 할 수 있겠다. 뼛조각들을 모아 망설임 없이 음식물 분리 수거통에 우르르-쏟고선 바니는 미련없이 주방을 나갔다.
"뭐야 겉보기에는 양 많아 보이던데, 것도 아니네 뭐. 아-아직 뭔가가 부족한데.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 아 근데 그건 좀 귀찮은데. 냠냠. 배고파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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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트레이닝 차림의 아론은 퉁퉁- 가볍게 농구공을 튕기며 대문을 나섰다. 중학교 때까지 장래희망란에 늘 변함없이 '농구선수'라고 적어냈을 정도로 아론은 농구에 푹 빠졌던 적도 있었다. 비록 지금의 장래희망과는 거리감이 좀 있긴 하지만.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현재 다니는 고등학교 농구부 '불꽃 슛'에서 간혹 주전선수의 부재나, 부상에 대타로 크고 작은 경기에 선수로 뛰기도 할 만큼 여전히 '농구'는 아론에겐 없어선 안되는 것들 중 하나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땅을 맞고 튕겨 오른 공을 능숙하게 손가락끝으로 받아 그 위에서 가뿐히 빙글빙글 돌리는 잔재주를 부리며 아론은 길이 난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철컹-
집 맞은편의 익숙한 대문소리가 지금 아론의 귓가엔 전혀 달가울 리 없었다. 방금까지 손가락 끝에서 회전하며 돌던 농구공을 휙- 던져 손으로 받아 들고선 보란 듯 무시하며 앞으로 향했다.
좀 귀찮더라도 배고픈 게 우선이라 바니는 라면을 끓이려고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인 것인지 평소에는 그 많던 수북이 쌓여 있던 라면들이 어쩐 일인지 한 개도 남아 있질 않았다. 결국은 슈퍼 행을 택해 고작 몇백 원이 든 홀쭉한 지갑을 들고선 집을 나왔다. 아론보다 한발 늦게 바니는 그를 발견하곤 반갑게 소리쳤다.
"어? 정아론이다!"
저건 계집애가 쓸데없이 목청만 더럽게 커서는. 따가운 귀를 건성으로 문지르며 아론은 계속해 걸음을 앞세웠다. 조금씩 속도를 올려가며.
"어? 정메론 튄다."
아론 딴엔 티 나지 않게 빨리 걷는 거다 싶었지만, 그건 누가 봐도 영락없이 대놓고 도망가는 폼이나 다름없었다. 가속도를 붙인 그의 걸음이 돌연 정색하듯 그대로 붙듯 멈춰 섰다.
역시 정아론 네 녀석은 딱 내 손바닥 안이라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론의 행동을 예측한 바니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느긋하게 아론이 멈춰선 곳으로 다가갔다. 그와 마주 선 바니는 그저 회색 배기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홀쭉한 지갑을 꺼내 한번 펼쳤다 접어 보였다.
본디 목적은 한 번만 더 거금 300만 원을 주고 소문난 작명원에서 지은 자신의 고급스러운 이름을 한낮 과일 따위로(과일 중에서도 비싸긴 하지만)거기다 정식발음 멜론도 아니고 엉성하고 볼품없는 '메론' 따위로 부른다면, 저 역시 김바니를 한글 해석해 김 토끼로 동물 취급해 부르겠다 단단히 경고할 참이었다.
"빈털터리~빈털터리 Oh Oh Oh Oh"
"내가 그 허접한 노래 부르지마라 했냐 안했냐"
김바니한테 강하게 굴어봤자 본전도 못 찾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사나이 정아론 자존심에 한번에 굽히고 들어가기는 모양이 빠졌다. 그러나저러나 결국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여기며 져줄 거면서도.
"그래도 니가 좋다고, 그래도 매력 있다고 그래도 사……"
"아 알았다고! 얼마인지나 말해. 내가 진짜 오늘은 진짜 중요한 경기가 있어서 시간관계상 봐주는 줄만 알아라."
아론은 어느새 지갑을 꺼내 만 원권 지폐 석 장을 뽑아 바니 앞으로 내밀며 나름 자기 합리화를 고수했다.
"시합? 어디랑?"
"명석."
"거기 농구부 애들?"
"어 주전."
"주전? 그럼 거기 태학 오빠도 참가해?"
"그 형이 주장이니 뭐 그러겠지. 아니 근데 나 지금 왜 착실히 전부 대답해주고 있는 건데?"
얼른 떼놓고 가버리려 기껏 순순히 돈까지 줘놓고선 말이다.
"그럼 나도 갈래"
"뭐?"
"까짓것 응원 정도는 해줄게."
"하, 뭐? 야 그딴 거 전혀 필요 없거든? 좋게 말할 때 그만 까불고 그 돈 갖고 조용히 그냥 너 갈 길이나 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듯 아론은 바니의 옆머리를 팔로 툭 밀며 다시 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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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저 지랄 머리 김 토끼 양은 왜 달고 온 건데"
"묻지 마라. 알면 다칠라."
"아 난 쟤랑은 코드가 완전 정반대라 무지 불편한 관계란 말이지."
"걱정 마. 김 바니 저건 너 전혀 의식 안 해. 아직 신태겸 네 이름도 모르는데 불편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별거 아니라는 듯 아론이 가볍게 말을 받았다.
"헐, 지금 그 말이 참 트루? 진짜 김 토끼 양이 내 이름조차 모른다고-라?"
하지만 듣는 입장의 태겸에겐 결코 별것일 수가 없었다.
열네 살 때 광주에서 서울로 전학을 온 태겸은 무려 2학기 한 학기를 바니와 같은 교실에서 지낸 것이었다. 거기다 제비뽑기로 한 달간 짝을 한 적도 있었다. 과목 중에 수학을 싫어하다 못해 경멸해 일부러 수학 교과서만 빼놓고 다니는 바니에게 자기 교과서를 보여주는 친절도 열 손가락을 다 접고도 모자랄 만큼 충분히 보여줬었다. 눈을 감고 다니지 않는 이상 그 정도면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저처럼 친절하고,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스마트 보이를 어떻게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흐, 흠와하하하"
생각외로 강하게 와 닿는 충격에 결국 태겸은 정신줄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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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을 발견하자마자 바니는 주저 없이 그에게로 달려갔다. 터질 듯 쿵쾅대는 심장도 아랑곳 않고 가쁜 숨을 성급히 고르며 손에 쥔 이온음료 캔을 무작정 불쑥 그 앞으로 내밀었다. 아 맞다. 먼저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줬어야 되는 건데. 급한 성격답게 말보다 행동이 앞선 터라 바니는 아차 싶었다.
"바니 후배 오랜만이네."
바로 이것이었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태양보다도 강력하고 눈부신 이 미소 말이다. 굶주린 허기를 채우기 위한 라면을 과감히 버려두고라도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는.
"뭐해? 넌 나한테 인사 안 해줘?"
"아, 안녕하세요 선배."
태학은 바니와 같은 중학교를 나온 한 학년 위 선배였다.
"그래그래, 이래야지 우리 귀여운 바니 후배라지."
주저앉힌 몸을 일으킨 태학이 손을 뻗어 바니의 머리를 톡톡 가볍게 토닥였다. 별로 특별할것이 없는 태학의 또 다른 인사법. 그러나 그런 그의 익숙한 인사를 매번 처음인 것처럼 바니는 새색시같이 얼굴을 붉혔다.
"주장, 애들 다 모였어. 얼른 와"
"어 그래. 곧 가."
양 팀 모두 코트 중앙에 모여 가볍게 몸을 풀며 대기 중이었다.
"전 그럼 코트밖으로 물러나서 응원할게요."
욕심 같아서는 태학이 가지 못하게 꽉 붙들고 놔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함께 있는 것만큼이나 바니를 황홀하게 만드는 것 또 하나가 농구 경기를 할때의 블링블링한 태학의 모습이었다.
"바니 후배 그러다 풍석고 녀석들한테 단체로 미움받는 거 아니야?"
"미움씩이나 받을 만큼의 인지도나 있으려고요."
"쿡, 그래? 참 이상하네. 이렇게 귀여운 우리 바니 후배에게 관심을 안 보인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전교생의 모든 관심이 오로지 한 녀석에게로 일제히 쏠려있으니……
"주장!"
"아, 알았어. 간다 가."
코트에서 또 다시 태학을 부르며 재촉했다.
"그럼 나 맘 놓고 바니 후배 응원받아도 된다 이거지?"
"물론이죠."
"하하, 좋았어 그럼. 그 힘찬 응원의 기 받아서 멋지게 이겨볼게."
"꼭 이요."
천천히 뒤로 걷던 태학은 바니를 향해 가볍게 윙크를 날리며 짧게 말을 던졌다.
"물론이지"
뒤돌아 뛰어간 태학이 곧 코트에 합류했다. 바니에게 그랬듯 태학은 습관처럼 팀원들의 머리 위를 툭툭 장난스럽게 두드리며 그만의 인사를 건넸다. 상대편인 풍석고 녀석들에게까지.
모두가 예상했듯 월등한 실력 차로 접전을 벌이는 두 사람은 명석의 농구부 'main' 주장 태학과, 풍석의 농구부 '불꽃 슛' 대타 주자 아론이었다. 전직 국대 농구팀 감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태학은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엘리트답게 농구를 정석으로 익혀왔다. 그러나 아론은 어느 날 우연하게 형 사론이 즐겨보던 NBA라는 미국 프로 농구 방송을 따라 보다 순간 충동적으로 꽂혀 그때부터 제멋대로 공부터 가지고 놀기 시작하면서부터 농구에 빠진 케이스였다. 그럼에도 아론은 결코 태학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실력을 발휘했다.
"저기 저 예쁘장하게 생긴 녀석 말이야. 공 좀 다룰 줄 아는데?"
"그러게. 빈틈도 잘 파고들고, 무엇보다 슛할때 집중력도 높고, 비교적 안정적이야."
가서 해보라 하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얼어붙을 놈들이 입으로는 참 잘도 떠들어댔다.
"야 정메론 좀 살살해!. 갑자기 농구에 목숨이라고 건 거야 뭐야?"
슛만 던졌다 싶으면 모두 바스켓을 통과하는 아론의 정확도가 바니는 살짝 얄미웠다.
삑-!
그나마 전반전까진 3점 차로 간소히 앞서 가던 명석은, 결국 바스켓 근처 명석 센터 둘을 제치고 빠르게 돌파해 레이업을 성공시킨 아론에 의해 풍석에 역전당했다.
"허억허억. 너 뭐야. 패스도 안 하고 아예 혼자서만 다 독식하기냐?"
땀으로 흥건한 얼굴과 목을 타월로 닦아내며 태겸은 서운함에 투덜거렸다. 다른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아론이 좀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아 몰라, 건드리잖아 그게"
작은 생수통 한 병을 단번에 비운 아론이 빈 생수통을 퉁-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던지며 일어섰다.
"건드리다니 뭘."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는 태겸의 말을 흘려들으며 아론은 바닥에 앉아 흙이 묻은 엉덩이를 툭툭 건성으로 털었다. 그의 시선이 코트 건너편 '명석'고 녀석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향했다.
어오 김바니 저 화상을 진짜. 아까 뭐? 살살하라고? 갑자기 농구에 목숨을 걸어? 저건 응원해준다고 졸라서 따라올 때는 언제고. 아주 기태학 옆에 거머리처럼 철썩 들러붙은 꼬락서니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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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아론홀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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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ㅋㅋㅋ 태학이 훈날 삘이 나는데요. 그리고 아론이 질투모드
쿡쿡 아론이 지금 질투하는거 아닌겨? 아이고 귀여운 내새끼
ㅋㅋ 아론이 귀여워염 ~~ ㅋㅋㅋ 달달하게~~
아론이..ㅋㅋㅋ 벌써 아론홀릭 들어간거 같은데요??ㅋㅋㅋㅋ 바니.. 어쩜 저렇게 사람 속 뒤집어 놓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ㅎㅎㅎㅎ 앞으로 파란만장할 것만 같은 느낌이 솔솔~ 느껴져요..ㅎㅎㅎ
파하하 만화책 같애
두 캐릭터 ㅋㅋㅋㅋ 귀여워 진짜 ㅋㅋ
ㅋㅋㅋ질투 ?
잘봤어욤~ 빨리 담편 보고잡다는 ㅠㅠ
아론이가 바니를 좋아하는 건가요? ㅋㅋㅋ 바니 계탔네 ㅋㅋㅋ
토끼랑 메론이라니 너무 귀여운데요?
ㅋㅋㅋㅋㅋ아론벌써질투모드들어간거에요?!!!! 아론맘에들었어요!ㅋㅋㅋㅋ
아론이 질투ㅋㅋㅋㅋ 귀엽네요
빨리 다음 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재밌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