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단오제(江陵端午祭)
강릉단오 굿당 /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 / 국사성황(國師城隍) 행차(신위 모시기)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이다. 수릿날(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五節)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단오는 예로부터 1월 1일(설날/元旦), 3월 3일(삼짇날/上巳日), 5월 5일(端午), 7월 7일(七夕), 9월 9일(重陽節)과 같이 월(月)과 일(日)이 겹치면서 특히 양(陽)을 의미하는 홀수(奇數)가 겹치는 날은 양기(陽氣)가 가득 찬 길일(吉日)로 쳐왔는데 그 중에서도 5라는 숫자가 겹치는 단오(端午)를 으뜸으로 쳤다.
단오는 수릿날(水瀨日)이라고도 하며 일 년 중 설날(舊正) 다음, 으뜸 명절로 쳤는데 수리(水瀨)라는 말은 고(高), 상(上), 신(神)을 의미하는 옛말이라고 하니 1년 중 최고의 날이란 뜻이겠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대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이 정적(政敵)들의 모함을 참지 못하고 돌을 끌어안고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자살한 날이 음력 5월 5일로 굴원을 존경하던 백성들은 억울하게 죽은 굴원(屈原)의 시체가 물고기에 의하여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 강물에 떡과 밥을 던지고 용선(龍船)을 띄워 시체를 찾았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5월 5일(단옷날)이면 용선(龍船) 경주를 하고 떡과 밥을 물에 던지는 풍습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것을 중국단오(中國端午)의 효시(嚆矢)로 보고 있다고 한다.
수뢰(水瀨)는 강물의 여울진 곳이라는 의미로 뢰(瀨)는 ‘여울’을 뜻하기도 한다.
나는 2010년, 홀로 배낭여행을 하며 중국 장강삼협(長江<揚子江>三峽) 크루즈(Cruise) 여행을 했는데 후난성(湖南省) 장사(长沙)에 흐르는 멱라수(汨羅水)에서 용선(龍船)을 타보는 행운이 있었다.
수리취떡(車輪餠) / 멱라수 용선(小小三峽) / 단오 씨름경기 / 구설초(솜방망이)
단옷날에는 수리취나 쑥의 일종인 구설초(狗舌草/일명 솜방망이)를 쌀가루와 섞어 쪄내서 둥그런 떡을 빚고 수레바퀴 모양의 문양을 찍어서 나누어 먹었는데 수레바퀴와 비슷하다 하여 ‘수리취떡(수레바퀴떡/車輪餠)’ 이라 불러 단오의 세시풍속 음식이 되었고, 단오를 술의날(戌依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농경사회(農耕社會)에서 밭에 파종을 하고 논에 모를 낸 후 약간의 휴식이 주어지는 시점이 단오(음력 5월 5일)로 농촌에서는 이날 하루 마음껏 놀이를 즐긴다. 단오(端午)의 세시풍속으로는 그네타기, 씨름, 창포물에 머리감기, 단오부채 만들어 선물하기, 수리취떡 만들어 나누어 먹기 등이 그것이었다.
또 옛날, 임금님은 단옷날 쑥으로 만든 호랑이를 신하들에게 하사했다고 하는데 볏짚으로 호랑이 모양을 만들고 비단으로 꽃을 묶고 쑥 잎을 붙여 머리에 꽂게 했는데 이런 풍습은 약초, 창포, 쑥 등의 강한 향기가 재액(災厄)을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창포(菖蒲)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고 윤기가 있다고 하였으며, 창포물이 몸에 좋다고 하여 삶은 물을 마시기도 하였다. 지금도 강릉 단오장에 가면 창포물로 머리감기를 할 수 있다.
단오(端午)의 단(端)은 첫 번째, 오(午)는 다섯(五)을 의미하니 곧 ‘오월 초닷새’라는 의미이다.
추위가 늦게 까지 계속되는 북쪽지방은 이때 쯤 비로소 날이 완전히 풀리기 때문에 경사스러운 날이 될 수밖에 없다.
남쪽지방은 추석(8월 15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에 북쪽에서는 단오를 더 중시(重視)했던 것은 지역의 기후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단오(端午)는 우리나라 전 지역은 물론 중국에서도 큰 명절로 여겨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겨왔는데 그 중에서도 강릉(江陵)의 단오는 이곳에서 번성하였던 옛 부족 국가 동예(東濊:수도 河瑟羅)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만큼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또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 지금까지도 대규모로 성대하게 치러져서 우리나라 단오제(端午祭)로는 으뜸으로 친다.
강릉단오의 예전 모습을 살펴보면, 처음 시작이 음력 3월20일 단오장 제례상(祭禮床)에 올리는 제주(祭酒) 담그기를 시작으로 하여 단오 다음날(음력 5월 6일) 단오장에 모셨던 서낭(城隍) 봉송(奉送)과 소제(燒祭)행사 까지 총 50일이었는데 제1단오인 초단오(初端午)로 시작하여 제8단오까지 있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강릉 단오’를 1967년에 ‘중요 무형문화재 13호’로 지정하였으며, 2005년 11월 25일에는 ‘유네스코 세계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UNESCO 世界人類口傳 및 無形文化遺産傑作)’에 등록이 되면서부터 정부에서 행사비를 보조 받아 더욱 화려하고 알차게 치러지게 되었다.
강릉 단오제는 천년단오(千年端午)라 불릴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 그 중심은 굿이다.
단오굿의 주신은 대관령 산신(山神/김유신장군), 국사서낭(범일국사/梵日國師), 국사여서낭(國師女城隍)인데 일반적인 큰 굿의 규모가 12거리로 끝나는 반면 강릉 단오굿은 30여 거리가 넘는 대굿으로 5일 간 펼쳐지며, 그 중 재미있고 중요한 대목이 ‘당그매기굿(당금애기굿/세존굿)’과 국사서낭과 국사여서낭의 러브스토리이다. 또 굿판과는 별도 놀이판으로 벌어지는 강릉부(江陵府) 관노(官奴)들의 애환을 담은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탈춤)’도 볼만하다.
서낭은 성황(城隍)이라는 말로 천신(天神)과 산신(山神)이 복합된 신인데 마을마다 모시고 개인과 마을의 안녕을 빌던 서낭당(城隍堂)의 주신(主神)이다.
대관령 산신(山神/김유신장군) / 대관령 국사성황(國師城隍/범일국사) / 대관령 국사여성황(경방댁)
강릉단오의 주신(主神)은 신라 때 칼로 나라를 지키던 김유신(金庾信/대관령 산신) 장군과 불법(佛法)으로 나라를 지키던 신라의 고승 범일국사(梵日國師/品日)이다.
신라시대 김유신장군은 강릉 교동 화부산(花浮山) 기슭에 진영을 설치하고 말갈족(靺鞨族)을 막아낸 공로를 기려 이곳에 화부산사(花浮山祠)라는 사당을 세워 김유신장군을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제례를 올린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신라 무열왕 김춘추(金春秋)는 김유신장군이 왕족은 아니지만 공로를 인정하여 흥무왕(興武王)이라는 별칭도 내렸는데 그 연유로 화부산사를 흥무왕사(興武王祠)라 부르기도 한다.
범일국사는 강릉의 학산(鶴山)마을 학바위에서 태어났다는 재미있는 설화(說話)가 전해지는데 기록에 의하면 경주(慶州) 출신으로 부(父)는 김술원(金述元), 모(母)는 문(文)씨라고 한다.
신라(新羅) 범일국사(梵日國師/品日)는 학산에 굴산사(堀山寺)라는 대찰(大刹)을 세우는데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사굴산파(闍崛山派)의 본산으로 곳곳에 유적이 남아있으니 바로 굴산사지(堀山寺址)이다.
굴산사(掘山寺) 삼존위 석불 / 부도탑(보물 85호) / 굴산사 당간지주(5.4m:보물 86호) / 범일국사
이 사찰(寺刹)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 사찰명도 몰랐는데 1936년 대홍수 때 강릉유도회 회장을 역임하셨던 이곳 학산(鶴山)출신 정주교(鄭胄敎)님이 이곳에서 주춧돌과 기와를 발견하였고, 거기에 사굴산사(闍掘山寺)라고 새겨져 있어 밝혀졌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사찰명으로 굴산사의 굴을 堀, 掘, 崛 등으로 표기되고 있으니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사굴산파(闍掘山波)라는 종파명은 이곳에 사굴산(闍掘山)이라는 나지막한 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굴산사지(堀山寺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높이 5.4m의 굴산사지(堀山寺)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있는데 지금도 그 위용을 자랑하며 보물 86호로 지정되어 있고, 보물 85호 부도탑(浮屠塔/높이 3.7m)과 지방 문화재 삼존위석불(三尊位石佛)도 있다.
강원도 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된 삼존위석불(三尊位 石佛) 2위(位)는 근처의 작은 암자에, 1위(位)는 보호각(保護閣)을 지어 따로 모시고 있는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관(冠)을 쓴 비로나자불((毘盧遮那佛)은 얼굴을 언제 누가 갈아버렸는지 눈, 코, 입이 없는 완전히 평면이다.
국사여서낭(國師女城隍)은 강릉 경방(經方/강릉시 홍제동의 옛 이름)의 정씨 집안(鄭氏家) 처녀가 호랑이에 업혀가서 대관령 산신(김유신 장군)의 부인이 되었다는 설화(說話)에서 비롯된다.
강릉 단오굿의 주된 줄거리는 대관령에서 산신(김유신/金庾信)과 국사서낭(범일국사), 국사여서낭을 모셔와 강릉 남대천변(南大川邊) 백사장에 설치된 굿당에 모시고 5일 밤낮으로 굿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세존(世尊/석가무니 화신/일명 帝釋)의 사랑으로 아들 삼형제를 낳았다는 당그매기(당금애기) 이야기는 질펀한 굿으로,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은 탈춤으로 한바탕 흥겨운 놀이판이 곁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당그매기(당금애기)의 이야기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너무 장황하여 생략하기로 한다.
강릉 단오굿은 고을의 안녕이나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외에도 동해안 어촌의 풍어와 뱃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의미가 크게 함축되어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동해안은 예전 작은 어촌마을들이 많이 있었는데 강릉해안지역에는 남항진(南港津), 젠주(강릉 남대천 하구), 안목(견소동), 강문(江門) 등이 있는데 그 중 강문 어촌마을이 가장 활기 넘치던 어촌마을로 정월대보름이 되면 꼭 마을의 동제(洞祭)와 함께 풍어제(豊漁祭/굿)를 올리고 솟대를 세웠다고 한다.
근래의 강릉 단오굿은 전통적인 것에 현대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었는데 주된 놀이로는 전국 장사씨름대회, 그네뛰기, 농악경연대회, 활쏘기, 한시(漢詩)백일장, 강릉 사투리 경연대회, 농상(農商) 축구정기전 등이었다. 그 외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으로는 국내외 서커스단 초청 공연, 세계 무용단 초청공연 등 다양한데 지금은 거의 난장(亂場)이 주류를 이루어 잡상인들이 판을 치는 느낌이며 다양한 먹거리들로 사람들의 입맛을 유혹한다.
국사성황사 / 산신당 / 칠성당(七星堂) / 국사여성황사(강릉 홍제동) / 홍제동 여성황 / 용왕당(龍王堂) 용정(龍井)
평창군 대관령면(옛 도암면) 횡계리 대관령근처 산속의 골짜기에는 강릉단오제의 주신들을 모신 것을 비롯하여 그 외에도 많은 무속신(巫俗神)들도 모시고 있는 것으로 보면 신들의 명당(明堂)인 모양이다.
조그마한 암자인 대관령국사성황사(강원도 기념물 54호)에는 국사성황(범일국사)과 그의 부인 국사여성황(경방댁)이 함께 모셔져 있고 근처에는 김유신 장군을 모신 산신당(山神堂)도 있는데 이것도 강원도 기념물 54호로 지정되었다. 국사여성황(경방댁)은 대관령 성황사에도 국사성황(범일국사)과 함께 모셔져 있지만 친정집이 있던 경방(강릉시 홍제동)에도 사당이 있고 이 사당 안에도 처녀모습의 경방댁이 모셔져 있다.
전해오는 구전으로, 강릉 경방(홍제동)에 살던 양반댁 정씨네는 과년한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아버지 꿈에 국사성황(범일국사)이 나타나 딸과 혼인을 하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는 사람이 아닌 서낭신(城隍神)과는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다음날 저녁, 과년한 딸이 곱게 화장을 하고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마루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업고 달아나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국사성황(범일국사)가 사자(使者-호랑이)를 보내 처녀를 업어다 아내로 삼은 것이다. 그날이 4월 15일인데 바로 본격적인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가 시작되는 제3단오 날이다.
그 밖에도 대관령 산신당 부근에는 칠성대감을 모시는 칠성당(七星堂/작은 비석만 세워져 있고 촛불과 향을 드리는 곳), 용왕신(龍王神)을 모시는 용왕당(龍王堂)도 있는데 비석과 우물만 있다. 그러나 이곳은 연중 내내 무속인(巫俗人)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유명하니 무속인들의 성지(聖地)라고 할 것이다.
무속인은 무당을 모시며 무속 춤과 비는사설 등을 익힌 세습무(世襲巫)와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신이내려 무속인이 된 강신무(降神巫)로 나눌 수 있는데 어느 무속인이 더 나은지는 모른다.
내가 보았던 단오제 한시경연대회(漢詩競演大會)를 잠시 회상해 보면....
경포호숫가에 세워진 경포대(鏡浦臺) 정자각의 앞마당에는 갓을 쓰고 한복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들이 줄을 맞춰 앉아있는데 앞에는 벼루와 먹, 붓과 한지를 가지런히 놓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잠시 후, 징소리가 울리며 운자(韻字)를 건 긴 대나무 장대가 올라오는데 내가 보았던 것은 바다 해(海)였다. 앉아있던 어른들은 운자(韻字)를 쳐다본 후 다시 눈을 감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시상(詩想)을 떠올린다.
시상이 떠오른 어른들은 서둘러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간 후 한지를 펼치고 싯귀(詩句)를 써내려간다.
오언절구(五言絶句)도 있고 칠언율시(七言律詩)도 있고... 형식은 자유다.
나도 학생 글짓기 대회에 참석을 했었는데 입상은 못했지만 한시 경연대회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복이다.
그 밖에도 활쏘기(國弓)대회, 서커스, 마술(요술) 쇼 등 강릉단오제는 볼거리가 무궁무진했다.
내가 어렸을 때(1950년대 초)는 말과 코끼리가 등장하는 동물서커스도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말광대(曲馬團)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마술쇼도 재미있었는데 나의 기억으로 입장료가 매우 싸서 돈을 내고 입장한 적이 있었다.
먼저 변사(辯士)가 나와 한참 청산유수로 떠든 후 젊은 아가씨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무대 위로 나온다.
아가씨는 무척 예쁘게 생겼는데 관객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한 팔은 아래로, 다른 한 팔은 가슴을 가린다. 변사는 또 청산유수로 읊어대는데 불빛이 조금 흐릿해 지는가 싶더니 아가씨의 옷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더니.... 옷은 완전히 보이지 않고 알몸뚱이의 아가씨가 한손은 사타구니를, 다른 손은 가슴을 가리고 있다. 관객들은 깜짝 놀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또다시 불빛이 약간 어두워지더니 다시 몸뚱이가 희미해지는가 싶다가 갑자기 뼈가 보이기 시작한다. 눈구멍이 두 개 뻥 뚫린 해골에다 팔다리뼈는 물론, 앙상한 갈비뼈까지 분명하게 보인다. 아가씨가 약간 움직이는지 해골도 움직이고....
다시 변사가 고저장단을 넣어 청산유수로 중얼거리자 차츰 빛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살이 살아나 나체가 되었다가 다시 옷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조금 지나자 처음 보았던 완전한 모습으로 바뀐다.
아가씨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더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절을 하고는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것이 전부...
지금은 주로 먹거리 난장(亂場) 터로 변한 느낌인데 강릉지역의 각 마을마다 채알(遮日/천막)을 치고 마을이름을 써 붙여 놓았는데 그 동네 사람들은 들어가면 음식을 꽁짜로 먹을 수 있다.
단오제(端午祭)는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서 조촐하게나마 열리는 행사인데 가장 성대하게 치러지는, 가장 역사가 오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단오제를 꼽으라면 단연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일 것이다.
4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는 강릉농고(農高/현 중앙고)와 강릉상고(商高/현 제일고)의 축구 정기전인 『강릉 농상 축구정기전』은 우리나라 축구 발전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알려 졌으며 특히 큰 인기를 끌던 것이 재학생들의 카드섹션이었다. 카드섹션 응원이 너무나 유명했는데 나는 나중 서울에 살면서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인 고연전(高延戰)을 보았더니 강릉 농상축구정기전의 응원을 보는 것과 똑같았다.
농상정기전은 해마다 단오에 열렸는데 승패를 두고 너무 다툼이 많아서 언젠가부터 중단되기도 했다.
나는 농고 안에 창설되었던 관동중학교에 1회로 입학했는데 매년 단오 때마다 우리도 농고 응원전에 참가해야만 했다.
방과 후, 운동장에 모여 응원훈련을 했는데 학생들이고, 선생님들이고 열심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던가, 내가 여장(女裝)을 하고 강릉 시내를 줄지어 행진하던 기억, 또 농상 축구정기전이 열리면 갓을 쓴 영감님들도, 심지어 머리 하얀 할머니들조차도 장바구니를 옆에 놓고 관중석을 차지하여 항상 관중석이 만원을 이루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