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 |
교통수단 |
운행시간 |
배차 |
요금(원) |
소요시간 |
비고 |
서울-태백 |
기차 |
08:00~22:00 |
6회 |
10,000 |
04:37 |
청량리역(02-392-7788) |
태백-서울 |
기차 |
06:19~18:18 |
6회 |
10,000 |
04:37 |
태백역(033-553-7788) |
서울-석포 |
기차 |
23:30 |
1회 |
14,000 |
04:47 |
석포역(054-672-6788) |
석포-서울 |
기차 |
00:53 |
1회 |
14,000 |
04:47 |
청량리역 |
영주-석포 |
기차 |
03:21~18:21 |
4회 |
4,000 |
01:25 |
|
석포-영주 |
기차 |
00:53~18:02 |
4회 |
4,000 |
01:25 |
|
석포-부산 |
기차 |
15:24 |
1회 |
4,000 |
06:00 |
현동, 봉화, 안동, 영주, 경주 경유 |
부산-석포 |
기차 |
15:12 |
1회 |
4,000 |
06:00 |
|
서울-태백 |
버스 |
06:10~18:30 |
30분 |
15,400 |
05:00 |
동서울터미널(02-446-8000) |
태백-서울 |
버스 |
06:00~18:00 |
23회 |
15,400 |
05:00 |
태백시외버스터미널(033-552-3100) |
*숙박
석포에 묵을 만한 곳이 5곳 있다. 경기여인숙(054-672-6053), 성지여관(672-6017), 명성여인숙(672-6027), 의성여인숙(672-6012), 서울여인숙(672-6026). 혹은 태백이나 봉화에서 숙박을 하고 이동해도 될 만한 거리다.
3구간 주요지점 GPS 좌표
석개재 N37 04 47.03 E129 08 05.24
묘봉 북동봉 N37 04 04.73 E129 09 26.61
삿갓재 N37 04 04.73 E129 11 12.60
삿갓봉 N37 02 20.31 E129 11 15.51
임도삼거리 N37 01 26.91 E129 10 32.91
백병산갈림길 N37 01 00.14 E129 09 41.71
낙동정맥 3,4 구간 지도
|
|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2년 2월호
낙동정맥 구간종주 제4구간
1,136봉~934.5봉~한나무재~진조산~답운치 12.5km
5.4 2 1 4.1
1,136봉-----934.5봉-----한나무재-----진조산-----답운치
△ B △ A A △° A 36번 국도
1,136봉만 지나면 정맥같은 아기자기한 암봉이 연이어진다. 힘든 구간은 끝난 셈이다. 하루 운행으로 1,136봉을 지난다면 답운치까지 8시간 정도면 무리없이 갈 수 있다.
임도는 더 이상 정맥과 나란히 이어지지 않는다. 한나무재에서 가로질러 가고, 진조산 넘어서 굴전고개에서 만날 뿐이다. 만약 중도에 탈출하고 싶으면 한나무재나 진조산 너머 굴전고개의 임도를 이용하면 된다. 다만 겨울철이라면 차량 운행이 힘들다. 답운치에 도착하면 버스가 정차하지 않는 곳이다.
*길 찾기 주의할 곳
1,136봉에서 곧장 능선을 내려 가다가 직진하는 큰 줄기를 버리고 왼쪽의 완만한 능선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산줄기를 내려서면 임도와 합류한다. 이곳에서 다시 능선으로 접어들면 완만한 언덕을 지나 헬기장이 있는 40여m 정도의 봉우리가 나타나지만 정맥은 이곳까지 오르지 않고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꺾여 나간다.
진조산 지나서는 굴전고개 임도로 내려서기 직전에 왼쪽의 줄기를 버리고 오른쪽의 줄기를 타야 한다.
*야영지와 샘터
1,136봉을 지나 임도와 마루금이 만나는 지점을 지나면 완만한 언덕이 나오고 이후 안부를 지나 정맥은 오른쪽으로 꺾인다. 이때 안부에서 정맥을 따르지 않고 곧장 가면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도달한다. 헬기장은 백병산, 1,136봉, 묘봉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바람도 들지 않아 야영하기에 최적지다. 그밖에 한나무재 양편으로 놓인 헬기장이나 답운치로 내려서기 전 헬기장도 야영에 적합하다.
*교통
답운치에는 버스정류장이 없기 때문에 하산시에는 차를 잡아타고 울진이나 현동, 봉화로 가야 한다. 현동에서는 버스를 이용하여 태백, 영주, 대전, 상주, 서울 등으로 이동하기가 편리하다. 그러나 기차편은 거의 없는 편이다.
현동정류소(054-672-7622)에눈 영주, 샹주, 대전, 안동, 대구, 부산, 영주, 원주, 서울, 봉화, 안동행 버스가 각각 08:00~18:10까지 대략 1시간 간격으로 있다. 대현, 장성, 태백행 버스는 08:50~01:40까지 약 50여분 간격으로 있다.
현동에서 답운치로 가려면 울진, 동해, 백암행 버스를 이용하여 답운치에 가장 근접한 쌍전2리나 옥방에 내려서 걸어가거나, 택시(054-672-7676)를 이용해야 한다. 울진행은 09:20, 14:00, 동해행은 16:00, 백암행은 15:15, 17:15, 18:40, 19:40에 버스편이 있다. 버스시간은 현동정류소에서 10분 정도 오차가 있다.
*숙박
봉화나 현동에는 숙박할 곳이 부족하다. 삼강여관식당(054-672-7479), 명산랜드(673-9966)에는 호텔, 가든, 휴게소, 음황옥수천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봉화에는 역과 버스터미널 부근에 낙원장(673-2351)이 있다. 그밖에 포지리에 궁전파크(674-0300), 신라장여관(673-2049), 이화장여관(673-3533).
구간 |
교통수단 |
운행시간 |
배차 |
요금(원) |
소요시간 |
비고 |
서울~봉화 |
기차 |
23:30 |
1회 |
10,000 |
04:00 |
청량리역(02-392-7788) |
통리~현동 |
기차 |
14:25 |
1회 |
4,000 |
01:00 |
현동역(054-672-7688) |
현동~통리 |
기차 |
14:45 |
1회 |
4,000 |
01:00 |
|
안동~현동 |
기차 |
13:11 |
1회 |
4,000 |
01:30 |
|
현동~안동 |
기차 |
15:25 |
1회 |
4,000 |
01:30 |
|
현동~부산 |
기차 |
15:22 |
|
13,500 |
05:30 |
|
봉화~울진 |
버스 |
05:38~20:23 |
8회 |
8,800 |
|
춘양, 현동 경유 |
봉화~서울 |
버스 |
09:50~16:00 |
6회 |
15,400 |
05:00 |
봉화공용버스터미널(054-673-0238) |
4구간 주요지점 GPS 좌표
934.5봉 N36 58 40.89 E129 09 37.24
한나무재 N36 57 49.60 E129 09 16.78
진조산 N36 57 23.78 E129 09 30.98
굴전고개 N36 57 02.11 E129 09 12.24
답운치 N36 55 34.39 E129 09 04.21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2년 2월호
낙동정맥 대종주
종주르포 석개재~답운치 24km
야전사령관 되어 돌파한 낙동정맥 최요지
스노우 타이어를 단 자동차가 빙판길에 헛바퀴를 돌다 뒷걸음칮다. 석개재는 마지막 모틍이만 돌면 된다. 잠간 제동이 걸린 틈을 노려 낙동정맥 종주팀은 재빨리 내린다. 자동차는 유턴도 하지 못하고 뒷걸음으로 가는 폼이 굴러가는지 미끄러져가는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배낭을 짊어지고 빙파길을 피해 석개재로 오른다. 이미 또 한 해가 지나 2002년 1월4일이다. 지난달에 개통된 석개재는 눈으로 뒤덮여 있다. 너뱅이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세차다. 개통되기 전 막아놨던 돌덩이들은 온데 간데 없다. 일행은 임전무퇴의 심정으로 스패츠를 차는 등 완전무장을 한다.
석개재에서 시작하는 두 번째 구간은 임도가 능선 아래로 이어지다 석개천 계곡을 끼고 돈다. 마루금을 타기 위해서는 도중에 올라서야 한다. 종주대가 출발한 시간은 오전 9시30분 무렵이다. 이미 지난달에 답사한 탓에 이도를 따라간다. 눈은 무릎까지 닿는다. 아무도 내딛지 않은 길을 러셀한다. 움푹 빠지는 탓에 운행속도가 더디다. 임도 위의 산죽들이 바람에 어지럽게 휘날린다.
1.5km쯤 지나 석개천 계곡이 보일 때 표지기가 날리는 왼편 능선으로 진입한다. 너른 터를 지나 우측으로 산죽을 헤치고 오른다. 눈이 20여cm 정도 쌓여 있다. 길고 완만한 능선을 형성한 묘봉이 보인다.
눈천지에 파릇파릇한 풀이 돋아나
여느 때보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중압감이 더한다. 사방에 눈에 쌓여 재를 분간할 수 없다. 깊은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거센 광풍에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50여m 아래 임도는 굴곡을 그리다 묘봉을 감싸고 돈다. 아마도 하루 전날 답사했던 반야마을 위 샘터로 향하는 임도인 것 같다.
"집 나오면 고생이야.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네."
누군가 하소연 하듯 내뱉은 말이었지만 세찬 바람에 이내 허공에 흩어지고 만다. 매서운 바람은 노출된 얼굴마저 얼려 버릴 듯한 기세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달려드는 추위와 바람은 힘든 산행이 되리라는 짐작을 낳는다.
주춘옥씨(45세)를 선두로 김부래(60세) 태백주재 기자, 권영희씨(45세), 장병희 기자가 뒤따른다. 아기자기한 봉우리들이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앞사람의 발자국에 맞춰 뒷사람은 기계처럼 똑같은 자리를 밟는다.
비탈진 설사면을 오르자 묘봉(1,167.6m) 북동봉에 이른다. 이곳에서 우린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하얗게 눈에 덮인 돌무더기 위에 파릇파릇한 풀들이 돋아있다. 혹한 속에서 온 몸에 햇살을 받고 생명을 노래하는 이름모를 풀을 보니 경이롭다.
"여기가 묘봉 온천이야."
"이쁘다 이뻐."
김부래씨와 권영희씨가 신기한 듯 얘기하며 파릇한 이끼와 냉이 비슷한 풀들을 만져본다. 주춘옥씨는 아래 동굴이 있을 것이라며 돌덩이를 들춰본다. 아니나 다를까 바위틈 밑에는 블랙홀처럼 새까만 구멍이 있다. 온기가 아지랭이처럼 피어나자 안경에 김이 서린다. 던진 돌멩이의 구르는 소리를 보니 족히 10여m는 될 듯싶다. 천운인지 얼어붙은 몸을 훈기로 녹인다.
취재진이 위치한 곳의 산줄기는 동남쪽에서 올라와 묘봉으로 향한다. 건너편의 또 하나의 산줄기 역시 묘봉을 향한다. 낙동정맥은 묘봉을 오른쪽에 두고 동남쪽으로 휘어진다.둘 중 하나의 산줄기를 타야 한다. 취재진은 배낭을 뇌두고 묘봉까지 다녀올 계획으로 나섰지만 눈속에 헛걸음만 하다 시간이 지체될 듯싶어 포기한다.
동남쪽을 향해 뻗은 능선이 두 갈래인지라 어느 것을 탈까 고심하다 곧장 내려서기로 결정했다. 두 능선은 가운데 광활한 분지를 껴안고 서로 만난다. 그러나 묘봉에서 내리뻗는 위쪽의 능선을 타는 것이 지름길인 듯싶다.
용의 등을 넘어서니 광풍이 몰아쳐
1,000m를 넘나드는 산줄기는 끊임없이 오르내림의 반복이다. 기상 조건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나빳고 사방은 빼곡한 나무로 가로막혔다. 동쪽 기슭은 가파른 탓에 물길도 짧다. 동쪽의 깊은 계곡을 바라보면 낭떠러지에 선 듯 하다. 용인등봉에 다다를 무렵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야영지로도 손색없다. 눈 위에 발자국이 자욱하다. 눈에 흔적을 내는 것은 산꾼만이 아니다. 산짐승도 그들이 산의 주민임을 알리듯 눈밭에 흔적을 남기고 간다.능선을 넘어 볼록 튀어나온 곳, 용인등봉(1,124m) 에 도착하자 이미 1시다. 용의 등골을 넘어서자 세상을 집어삼킬 듯 또 다시 광풍이 몰아친다.
얼마간 내려서자 평평하고 널찍한 장소가 나와 점심식사를 한다. 야영지로도 적격이다. 식사를 마치고 지체없이 출발한다. 바람은 여전히 잠잠해질 기미가 없다. 설사면을 올라설 때면 내딛는 걸음마다 미끄러진다. 남동쪽을 향해 하염없이 걷다 뒤돌아보자 왼편으로 완만한 묘봉과 오른쪽으로 용인등봉이 우뚝 솟아 있다. 가파른 된비알을 넘어 서자 왼쪽에 997.7m봉이다.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 짊어진 배낭의 무게를 못 이기고 내려서다 잠시 쉬어본다.
"바람 부는 데 왜 앉아 있나?" "왜 오늘 날짜로 잡았어?" 라며 김부래씨가 농담을 한다. 종주대는 다들 무거운 짐과 바람과 추위에 지쳐간다. 험한 협곡과 매서운 광풍에 일행은 묵묵히 지친 발걸음을 내딛기만 할 뿐이다.
삿갓봉이 가까워오자 태양이 서쪽 산끝에 걸린다. 삿갓재에 다다랐다 싶을 무렵, 샘터에서 올라온 계곡과 만나는 지점에서 임도가 능선을 돌아 덕풍계곡 방향으로 휘어진다. 삿갓재에 난 임도를 따라 30여m 내려서 바람이 잠잠한 곳에 터를 잡고 야영을 한다.
소광, 전곡, 석포로 갈라지는 임도 삼거리
나뭇가지 틈새로 붉은 태양이 솟는다. 새벽부터 서둘렀지만 아침을 먹고 준비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8시15분이 되어서야 출발을 한다. 임도를 따라가다 왼쪽에 나지막히 놓인 삿갓봉(1,119.1m)의 삼각점을 확인코자 혼자서 정상에 오른다.
가시덤불을 간신히 뚫고 올라서자 평평한 정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눈속에 파묻힌 삼각점은 찾을 수 없다. 이곳은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선이다. 일행들이 저만치 가고 있다. 잰걸음으로 산행을 하자 전날 뭉친 근육들이 다소 풀린다.
삿갓봉을 왼쪽에 두고 400여m 임도를 따르자 동쪽에서 올라온 또 하나의 임도를 만난다. 임도는 계속된다. 눈에 휩쓸린 곳이 많아 러셀에 어려움이 없다.
"여가 다 눈에 휩쓸렸어."
"우리 이제 명당을 잡은거야."
주춘옥씨 말에 터를 잡은 김부래씨의 대꾸다.
출발한 지 30여분이 지나 1,098m봉에 거의 다다를 무렵 임도가 능선에서 벗어나며 오른쪽으로 뻗어간다. 취재진은 임도가 꺾이는 지점, 널찍한 공터를 왼족에서 두고 곧바로 능선으로 올라탄다. 이제 부지런히 가야한다. 첫날 운행거리가 짧아 산행거리가 배로 늘었다.
1,098m봉을 넘어서자 다시 임도와 합류한다. 200여m 임도를 걷자 야영 가능한 공터가 임도옆에 자리잡고 있다. 표지기가 산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계속 임도를 따라도 지척이라 별일 없을 듯싶다. 300여m 정도를 더 가자 이도가 둘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하나는 불심골로 내려서고, 또 하나는 계곡을 건너 낙동정맥을 따른다. 불심골로 향하는 곳에는 철망이 쳐져 있다. 취재진은 왼쪽으로 도는, 낙동정맥을 향하는 임도를 따라 오른다. 모처럼 흙길이라 편하다.
9시40분 무렵 임도가 낙동정맥 산줄기를 넘어서는 곳, 삼거리에 다다른다. "소광, 전곡, 석포" 방향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낙동정맥 종주자들은 이곳을 '임도 삼거리'라 일컫는다. 모처럼 전망이 좋다. 표지기는 마루금 위에서 휘날린다. 슬슬 꾀가 생겨 잠시 오른쪽 임도를 따라간다. 15분 정도 걷자 임도는 다시 정맥의 마루금을 타고 넘으며 마루금에서 멀리 벗어나 1,136m봉을 크게 우회하여 돈다.
김부래씨와 권영희씨는 임도를 따라 가기로 하고, 주춘옥씨와 장기자와 함께 능선을 올라탄다. 마루금은 가파른 임도 위로 바싹 붙어 이어진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과 잡목 숲을 뚫고 오른다. 스패츠 속으로 눈이 사정없이 밀려든다.
"억! 한 대 맞으니까 정신이 없네."
앞장서 러셀하던 주춘옥씨가 잡목을 뿌리치다 얼굴을 후려맞은 것이다. 백병산까지는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길은 거의 흔적이 없다. 산죽이 가끔씩 나타날 뿐이다. 힘들수록 좌측의 임도가 자꾸만 우리를 유혹한다. 백병산 갈림길에 오르기 전 비탈은 거의 60도 정도의 경사를 보인다.
"한 발 내딛으면 두 발자국 밀리니...이거 원."
깊은 숨 들이쉬고 다시 산을 오른다. 코앞에 봉우리가 있지만 시간은 자꾸만 흐른다. 간신히 처음 나타난 작은 봉우리에 다다르자 허기를 못이겨 주저앉는다. 빵으로 기력을 보충한다. 오르막이 계속된다. 눈에 못 이겨 산죽이 태풍을 만난 수확철의 벼처럼 쓰러져 있다. 벌거벗은 나무들이 눈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백병산 능선이 갈라지는 봉우리에 다다른다. 노란 표지기 하나 휘날릴 뿐 별다른 표시없이 잡목만 가득하다. 왼쪽의 능선을 따라 칼날능선을 넘어선다.
산꾼의 호흡은 산세에 좌우된다. 산의 경사가 가파를수록 그곳을 오르는 사람의 심장 박동 또한 급해진다. 암릉을 지나가듯 조심스럽게 비탈진 된비알을 넘나든다. 봉우리는 쉴새없이 계속되고, 오로지 아련한 산줄기만 보인다. 가야할 거리를 생각하니 암담하다. 눈앞엔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처녀지다.
12시20분경, 1,136m봉을 오른쪽 비탈로 비껴간다. 오지의 낙동정맥은 히말라야의 그 가파른 설산을 오르듯, 잘못 발을 내딛으면 골포동 저 밑까지 떨어질까 조심스럽다. 아! 그런데 눈앞에 산줄기가 험난하게 계속 이어진다. 무서워서 운행이 뒤쳐진다는 장기자가 "저긴 도저히 못가" 라며 엄살을 피운다. 다행스럽게도 낙동정맥은 좌측으로 방향을 틀며 아기자기한 둔덕으로 이어진다.
"이 길 맞나?"
"겨울산은 가는 게 길이야."
"우와!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다."
설산은 눈을 몰아세우고 성난 황소 마냥 사면을 내려설 때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작은 눈사태를 일으키며 완만한 비탈을 돌진한다. 어느새 보이지 않던 임도가 왼쪽 앞에 보인다.
임도를 내려서자 김부래씨와 권영희씨가 기다리고 있다. 몹시 반가웠다. 2시간이나 기다렸다고 한다. 아침 먹고 남은 밥에 돼지고기 구워 놓은 것을 김치에 볶아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한다.
"취재팀은 저리로 가야지."
김부래씨가 취재진을 보며 임도 건너편 능선을 가리킨다. 김부래씨는 권영희씨와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갈 심산이다. 벌써 오후 2시다. 처음 석개재를 출발할 때 계획했던 운행거리의 반밖에 오지 못했던 터라 내심 불안하다.
취재진은 다시 두팀으로 나누어 길을 재촉한다. 임도를 넘어 능선에 접어들자 산줄기가 완만하고 평평하다. 고라니, 토끼, 멧돼지 등 온갖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천지다. 눈앞의 사면을 올라서자 헬기장이다. 지금가지 볼 수 없었던 최고의 전망대다. 서북쪽으로 1,136m봉을 중심으로 내려섰던 산줄기와 산등성이에 난 임도가 뚜렷이 바라보인다. 민둥스러운 묘봉도 북쪽으로 힐끗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무언가 석연치 않다. 혹시나 해서 GPS를 확인하고 산줄기의 방향을 맞춰보지만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하산을 하자 계획된 코스에서 멀어진다. 애초에 헬기장에 올라서기 전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렸어야 했다. 남서쪽으로 향하는 산줄기가 헬기장에도 있어 잘못하면 길을 잃을 염려가 있다.
얼기설기 임도는 마루금을 넘나들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산,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산" 이라고 적힌 표지기가 오른쪽으로 굽어지는 곳에 붙어 있다. 임도가 오른쪽 계곡 건너편으로 이어진다. 또다시 봉우리를 올라서야 할 무렵 임도에서 설사면을 올라 마루금을 탄 발자국이 나 있다. 아마도 일행이 임도가 계곡을 건너 정맥에서 멀어지자 임도를 버리고 올라선 모양이다.
"오르막은 쥐약이야."
"대간에도 이런 길은 없잖아. 길이 펑 뚫렸으니..."
백두대간을 종종 다닌 바 있는 주춘옥씨의 말이다. 오르막만 나오면 취재진의 발걸음은 느려지기 일쑤다.
오른쪽에 보이던 임도는 두 줄기로 갈라진다. 한 줄기는 전곡리로 갈 것이 뻔한데, 또 한 줄기는 어디로 이어진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아마도 한나무재까지 이어질런지도 모를 일이다. 마루금은 계속해서 완만하다. 고도는 1,000m급에
서 900m급으로 떨어졌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봉우리들이 계속된다. 능선은 남서쪽을 향한다. 능선 위로 태양이 붉게 타오른다. 불러봐도 선두팀의 응답은 없다.
934.5m봉을 지나 능선은 승부터가 있는 계곡을 끼고 왼쪽으로 활처럼 꺾인다. 신발끈은 얼음이 달라붙고, 스패츠의 고무는 빠져나왔다. 눈덩이는 계속해서 신발속으로 들어간다. 멈추면 발이 시럽다. 장기자의 스패츠 또한 엉망이다. 지퍼가 망가진 쪽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황혼이 깔리고 어느새 정적에 휩싸인다. 강원도 첩첩산골에 짙은 어둠과 고요함은 그 자체가 무서움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 승부터를 오른쪽에 끼고 돌아서니 40여m의 봉우리가 하나 버티고 섰다. 선두로 나섰던 일행의 헤드랜턴 불빛이 움직이더니만 산줄기를 따라 내려간다. 40여m의 눈비탈을 올라서며 젖 먹던 힘까지 내본다. 가까스로 당도하니 권영희씨가 남겨둔 눈 녹인 물과 빵을 건넨다. 김부래씨는 길을 찾는다며 떠난 뒤다. 봉우리는 눈에 덮였지만 핼기장을 만들어 놓은 듯 평평하게 다져있다. 동해쪽으로 오징어배의 밝은 불빛이 보인다. 하늘에는 촘촘히 별이 들어찼다. 몇 년만에 보는 광경이다.
오후 6시48분이다. 이대로 무리하며 계속 운행하면 취재에 차질이 빚어진다. 결국 장기자와 야영하기로 결정하고, 오늘 중으로 태백으로 돌아가야 하는 주춘옥씨와 권영희씨는 김부래씨와 함께 무리하더라도 운행을 마치기로 한다. 일행들의 불빛이 산등성이를 타고 희미해져가자 왠지 미안하다. 답운치까지 가려면 적어도 4시간은 걸어야 할 것이다.
바람은 불지 않지만 의외로 한기가 든다. 눈을 녹여 밥을 해먹으며, 젖은 등산화를 말린다. 검은 숲에 둘러싸인 헬기장은 하늘을 꽉 채운 별빛을 받아 눈이 시리도록 밝다. 넋놓고 그냥 바라만 본다. 장엄한 산줄기들이 아스라히 다가온다. 한줄기 시큼한 바람이 불어 텐트에 들어간다. 밤새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 때문에 뒤척이느라 밤을 지샌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파르스름한 빛이 어둠과 침묵의 새벽을 깨운다. 첩첩 산줄기 뒤편에 자리한 희뿌옇게 나타나는 것이 어림짐작으로 동해라 추측된다. 하루가 또다시 시작이다. 다행히 바라도 잠잠하고 추위도 덜하다. 일출을 촬영하고 나자 여유를 부린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헬기장을 내려선다. 완만하고 작은 산줄기는 한나무재에 난 임도를 넘어 산으로 이어진다. 임도의 눈 위엔 자동차 흔적이 있다.
눈으로 세안하고 눈으로 갈증 달래며
오르막이 시작되자 전날 뭉쳐진 근육에 힘이 실린 탓에 고통스럽다. 야영터로 잡았던 곳이 왕관처럼 버티고 있다. 사면을 올라서자 또 하나의 헬기장이다. 얇게 쌓인 눈을 살짝 걷어네고, 크러스트된 층을 벗겨낸 다음 게의 속살을 빼먹듯 장기자와 눈을 집어먹는다. 그러나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눈 위에 얼굴을 들이대어 간단히 세안도 마친다.
진조산(908.4m)을 오르기 전 오른쪽의 서남쪽으로 향하는 큰 줄기를 버리고 왼쪽의 작은 줄기를 탄다. 내려서자 진조산을 앞에 두고 길은 오른쪽으로 향한다. 정상에 올라서 보니 묘지 2개가 눈에 덮여 있다. 산정에 묘를 쓸 정도로 삶에 애환이 가득했을까.
굴전고개에 다다르기 전에 길은 평평하고 반반한 왼쪽 줄기를 버리고 오른쪽 남서쪽으로 꺾인다. 전날 밤에 길을 재촉한 일행들이 갈림길마다 길을 확인하기 위해 돌아다녔던 흔적들이 나있다. 굴전고개 임도를 넘어서 길은 여전히 완만하다. 굴전을 지나자 내리막길에 빽빽한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눈 덮인 내리막길을 스키를 타듯 미끄러진다. 산줄기는 죽은 소나무로 뒤덮여 있다. 400여m 운행하자 송전철탑이 눈앞에 보인다. 능선을 내려서자 작업도로다.
답운치에 거의 다다른다. 남은 식량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떠난다. 남은 거리는 이제 800여m다.
"차소리 들으니까 반갑다."
"이제 끝이 보인다."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모처럼 산죽이 반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눈이 흙길로 바뀐 지점에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흙밑에 얼음이 있었던 것이다. 안부에 다다르자 키보다 큰 산죽숲이다.
오르막이 시작되자 북사면의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럽다. 좌측으로 옛 집터와 성황당이 보인다. 한 봉우리를 넘어서자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봉우리 앞에 서자 사면이 산죽과 눈, 그리고 태양이 층을 이루며 가지런히 빛난다.
"저 앞산 또 너어야 돼?"
"아냐, 다음달에..."
능선 너머의 헬기장에 오르자 차소리가 더욱 가까이 느껴진다. 멀리 희뿌옇게 답운치 넘어 통고산이 보인다. 밑바닥에서 보면 참으로 멀고도 높았던 산들도 산정에 올라서면, 역시 하늘아래 뫼일 뿐이다. 답운치까지 홀가분한 마음에 한달음에 당도한다. 답운치를 내려서자 도로 옆으로 광비천이 굽이굽이 흐른다. 낙동강과 합류하여 산을 에워 감싸안고 그윽하게 흘러간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2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