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대종주 제2구간
수분재~신무산~차고개~팔공산~서구리재~오계재~신광재 17.5km
뵬춤추는 눈 귀신에 홀려 링반데룽에 빠지다
1.7 1.5 3.5 3 2.7 0.3 2.8 2
수분재-----신무산-----차고개-----팔공산-----서구리재-----오계재-----삿갓봉-----시루봉-----신광재
―――――― B △896.8 A ――――――― A △1147.6 B ――――――― B ------- A 1114 B 1100 B -------
539(19번 국도) 659(719번 지방도) 858(742번 지방도) 870 750
*산행거리표 보는 법
1. 지명 아래 표시 중 ▲는 확인한, △는 미확인 삼각점, △°는 비껴가는 봉우리, ====는 포장국도, ―――는 포장지방도, -----는 소로 또는 등산로를 뜻한다. 이번 종주에서는 단 한 군데의 삼각점도 확인하지 못했다.
2. 화살표 위의 숫자는 구간 도상거리(km)이며, ( )안에 걸린 시간을 표기할 예정이다. 이번 종주에서는 눈이 많아 시간을 잴 수 없었다.
3. 화살표 아래 알파벳은 구간 등산로의 상태를 나타낸다. A는 가장 좋은 상태, C는 가장 나쁜 상태. 그러나 이번 구간은 적설량이 많아 눈이 없을 때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산행길잡이
수분재에서 신무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뜸봉샘까지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마루금은 수분령휴게소 건너편 작은 능선으로 이어진다. 이곳의 능선 마루금은 나무를 모두 벌목해 버렸다. 또 중간에 작은 임도가 지나고 그 사이로 오래된 소나무 두 그루가 서있어 표시로 삼을 만하다. 신무산 정상에는 전북산사랑회가 세운 스테인레스 표지판이 있다.
마루금은 오른쪽으로 자리잡은 대축목장 울타리를 따라 이어진다. 한 두번 울타리를 넘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차고개 정상에는 '대성고원' 이라 쓴 큰 표지석이 서 있다. 마루금은 그 앞으로 이어진다. 임도를 따라 가다가 왼편의 능선을 따르면 돌로 쌓은 성곽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함미성이다. 성곽을 따라 100m 가량 가다가 오른편 합미성 안내 표지판이 서 있는 등산로로 내려서야 한다. 이곳부터 팔공산 정상까지는 넓은 등산로가 이어져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팔공산 정상에서 통신철탑 울타리를 따라 북동방향으로 약 5분 가량 진행하면 넓은 헬기장이 나타난다.
이곳부터 좁은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잡목이 뒤엉켜 한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입어야 할 듯 싶다. 사방 조망이 트이질 않아 길 찾기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서구리재 정상에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구리재 터널공사 현장 앞 절개지를 오르면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잡목과 산죽밭이 연달아 이어진다. 데미샘과 와룡자연휴양림을 가리키는 안내판을 지나 약 1km 가량 가면 억새가 듬성듬성 나있는 오계재가 나온다. 이곳에도 각 방향을 알려주는 스테인레스 안내판이 있다.
오계재에서 삿갓봉을 오를 때 마지막 지점에는 밧줄이 매어져 있다. 크고 작은 오르막이 계속 되고 별다른 특징이 없는 홍두깨재를 지나면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시루봉이다. 정맥은 이곳에서 크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 찾기에 주의할 곳
신무산 정상과 시루봉 정상에서는 길 찾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안개가 짙게 끼었거나 비가 오는 등 주변 조망이 트이지 않을 경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신무산 정상에는 스텐레스 표지판이 서 있다. 바로 뒷편으로 대축목장의 울타리가 있음을 유의하면 된다.
시루봉 정상에서는 바로 앞으로 보이는 능선을 따르면 안된다. 그 산줄기는 덕태산과 소덕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 산줄기로 가게 된다.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넓은 시루봉 정상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마루금이 이어진다. 이곳으로 내려서야 한다. 물론 표지기가 많이 붙어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칠 가능성이 많다.
야영지와 샘터
이번 구간 중 능선 상에서 물을 구할 수는 없다. 섬진강의 발원샘인 데미샘은 능선에서 약 670m를 내려서야 하며, 그외에는 달리 샘터를 찾을 수 없다.
오계재에서는 고개 양쪽으로 약 100m만 내려가면 계곡이 시작되므로 물을 구할 수 있다. 수분재에서 신광재까지 17.5km를 하루에 운행하기에는 무리다. 수분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오계재에서 야영을 하거나 와룡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여 1박한 후 신광재까지 이틀간 산행을 하는 것이 좋다.
교통과 숙박
장수를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수분재 장수읍에서 택시를 타거나, 장수터미널(063-351-8889)에서 수시로 다니는 번암행, 남원행 버스를 타고 수분재에서 내리면 된다. 장수에서 번암행 군내버스는 08:15, 09:50, 12:10, 13:20, 15:20, 17:20, 18:40애 각각 다닌다. 약 10분 걸리며 요금은 700원.
차고개 장수터미널에서 산서행 군내버스가 07:20, 09:20, 10:35, 13:30, 14:35, 15:50, 17:10, 18:15, 19:00에 다니며 차고개 정상에서 내리면 된다. 요금 800원.
와룡자연휴양림을 주말에 이용하려면 밀 예약을 해야 한다(063-350-2413 장수군청 산림공원과). 수분재에 있는 약수터가든(352-3595)에서도 숙식이 가능하다. 이밖에 장수읍내에도 덕산모텔(351-8881), 황토방모텔(351-0500) 등이 있다. 하루 25,000원~30,000원.
영동지역과 내륙산간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남쪽에서는 꽃소식이 들려오고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 바로 내일이지만 이곳은 아직도 긴 겨울의 끝자락에 단단히 발목을 붙잡힌 채 봄으로의 탈출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별 하나 뜨지 않은 어둔 밤.
지난달 사흘간 사정없는 눈밭에 시달려 지칠대로 지쳐 도착한 수분재의 어느 식당에서 금남,호남정맥 두번째 구간을 위해 다시 모였다. 오는 도중 차창 밖으로 보이던 눈 쌓인 산마루가 또 걱정이다.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환대해주던 식당 주인 부부의 따스한 인정만이 한가닥 위안이 된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절망에 빠졌다. 밤사이 20cm가 넘는 눈이 내렸고, 여전히 천지를 가늠하지 못하고 쏟아지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금새 그칠 눈이 아니라는 판단에 결국 길을 나선다. 신발 끈을 조이고, 행전과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신무산에서 환상방황에 걸려들다
수분재에서 가늘게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신무산(896.8m)을 향해 오른다. 신무산을 향해 오른다고는 하지만 신무산이 어디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수분령휴게소에서 크게 틀어 놓은 유행가 소리가 뒤를 쫓아온다. 그 소리를 털어 버리듯 서둘러 산길을 오를 때 커다란 고라니 한 마리가 마루금을 가로질러 숲으로 사라진다. 이 눈밭에 먹을 것을 찾아 민가 가까이 까지 내려왔던 모양이다. '부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을 무사히 이겨내고 먹이가 많은 봄에 또 만나자꾸나. 그때는 새끼까지 데리고 나타나렴.'
신무산까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약 두 시간을 눈길을 헤치며 어느 봉우리에 올랐다. 정상에는 작은 묘 1기가 있었고, 나뭇가지에는 어지럽게 표지기가 매달려 있었다. GPS가 표시하는 고도는 883m. 지형도상의 고도와는 제법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신무산이라는 생각에는 별다른 의심이 없었다.
턱도 없는 일이지만 눈 속을 헤집어 삼각점을 찾아보기도 했다.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분명 북서방향의 산줄기를 따라 진행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우거진 잡목 숲을 헤쳐 갈 때는 나뭇가지에서 쏟아진 눈으로 눈사람이 되었고,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은 소나무숲에서는 고즈넉하고 정갈한 그 정취에 감동하기까지 했다. 정종원 기자의 촬영을 위해 기꺼이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기도 했다. 눈이 점점 더 쏟아졌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즐거웠다.
얼마를 내려갔을까? 분명 나타나야할 마루금 오른편의 대축목장이 보이질 않는다. 이상하다. 그러더니 이내 산줄기가 사라져버리고 밭이 나타난다. 그리고는 저 아래로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가 보인다. 그 도로가 차고개라는 믿음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희미하던 산줄기가 이윽고 사라지더니 밭이 나타나고 그 사이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무언가 잘못되고 말았다.
산경표의 원리는 산줄기는 물줄기를 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취산에서부터 시작해 마루금만을 이어가며 단 한번도 물줄기를 건너서는 안되는 것이다. 광양 백운산까지 우리는 물을 건널 수 없는 운명을 지닌 것이다. 분명 차고개라 믿었던 도로까지 다가가서, 그곳에서 아침에 들었던 귀에 익은 유행가 노래를 들으며 그곳이 바로 수분재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몇 시간에 걸쳐 신무산 근처까지 갔다가 도로 수분재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허탈했다. 말로만 듣던 '링반데룽'1에 빠진 것이다.
수분령휴게소에서 점점 더 퍼붓는 눈을 피하며 지형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우리는 신무산 바로 못미친 봉우리에서 뜸봉샘으로 오르는 다른 등산로를 따라 내려와 버린 것이다. 주위가 조금만 보였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이미 우리는 다시 그 길을 되짚어 올라갈 의욕을 잃고 말았다. '귀신이 춤춘다'는 신무산에서 우리는 단단히 귀신에 홀리고 말았다. 그곳에서 하늘을 수평으로 가르며 날리던 눈발이 아마 춤추는 귀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지원을 위해 차고개(작고개) 고개마루를 오르려 팔성사 입구에서 자동차 바퀴에 체인을 감던 이기범씨(36세, 바름산악회)를 다시 수분재로 불러 자동차로 차고개까지 이동했다. 차고개 정상에는 모진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모진 눈보라를 뚫고 남쪽 신무산으로 향했다. 수분재에서 한번 올라갔던 길을 다시 오르기에는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았다.
대축목장 울타리를 따라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속을 1시간 반 가량 지나자 스텐레스 표지판이 서 있는 신무산 정상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남쪽 10분 거리에 바로 우리가 귀신에게 홀린 묘지가 있는 봉우리가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몇 시간 전 우리가 지났던 발자국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차고개로 돌아왔다. 차고개에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을 뚫고 팔공산을 오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오늘은 결국 신무산을 두번 올랐다. 모든 것이 신무산의 '수평으로 하늘을 가르며 춤추는 눈보라 귀신' 탓이다.
경칩 다음날에도 이곳의 개구리들은 옴짝도 할 수 없다. 밤새 마을에는 비가 내렸다. 산에는 물론 비가 내렸다.
670m 거리의 갈 수 없는 데미샘
차고개에서 푸르스름한 새벽안개를 뚫고 팔공산을 향해 오른다. 숲 속은 온통 한겨울이었다. 어제처럼 춤추는 귀신이 하늘을 가르지는 않지만 자욱한 안개귀신은 세상 눈 어둔 우리를 충분히 홀릴 만하다. 30분 가량 짙은 안개 속을 헤치며 산길을 올랐다. 그러자 나타나는 합미성. 눈을 잔뜩 뒤집어 쓴 이 석성을 따르다가 우리는 또 한번 안개귀신에게 홀리고 만다. 석성을 100m 가량 따르다가 오른쪽 능선으로 가야하지만 안개귀신은 오른쪽 길을 가로막아 눈 어둔 우리는 한참동안 석성을 따라가고 만 것이다. 석성이 끝나고 합미성 표지석을 발견하고서야 길이 틀렸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되돌아 왔다.
팔공산(1,147.6m)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에는 아무도 지나지 않은 수북한 눈길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두 시간 동안 힘겹게 가풀막진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그러다가 홀연히 안개 속에서 거대한 통신철탑이 나타난다. 두번씩이나 귀신에게 홀려 쪼그라진 심장이 덜컥 떨어질 만큼 급작스런 출현이었다. 철탑이 위압적으로 버티고 선 팔공산 정상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뭉게뭉게 무리지어 밀려가고 오는 안개뿐, 그리고 매서운 바람뿐.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철탑을 지날 때 울타리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한없이 반갑기만 하다. 팔공산을 지나면서부터 우리는 다시 힘겨운 눈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여태껏 종아리 정도만을 옭아매던 눈길이 이제는 무릎을 넘어 아예 허벅지를 부여잡는다. 그러다가 허리춤을 잡더니만 어느 곳에서는 가슴팍까지 동여맨다.
겨우내 쌓였던 눈에다가 며칠간 내렸던 신설까지 눈 천지인 이 산길이 지금은 오직 고통일 뿐이다. 가끔 나타나는 산죽 밭에서는 온몸이 눈투성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목깃과 허리춤 사이로 파고드는 눈 때문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 따뜻한 물 한 잔 마시지 못하고 오직 힘겨운 눈과의 사투 끝에 서구리재에 도착했다.
서구리재 정상에는 도로공사가 진행중이다. 폭설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었는지 현장에는 어지러운 공사 자재만 널려 있고, 인기척 하나 없다. 현장의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잠시 바람을 피하며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점심이라고 해야 커피 한 잔과 비스킷 몇 개가 전부지만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잠깐이나마 쉴 수 있던 곳은 여기가 처음이다.
현재 서구리재는 장수 쪽은 포장이 끝났고, 진안군 백운면 쪽으로의 공사가 진행중이다. 지원조인 이기범씨는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도저히 차량으로 올 수 없어 다음 지원 장소로 가 있겠다고 연락이 왔다. 여전히 하늘은 안개가 자욱하다.
서구리재의 절개지를 넘어서 다시 마루금을 이어간다. 여전히 눈길은 허벅지까지 사무친다. 시시각각 바지가 젖어들고, 행전의 틈새로 스며든 눈으로 인해 이제 신발 속에서는 물이 철벅거린다. 마루금을 계속 이어가지만 사방 어느 곳으로도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희뿌연 안개의 심연 뿐. 산도 물도, 마을도 하늘도 그 짙은 심연에 사로잡혀 우리는 오직 발 앞의 눈길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걸을 뿐이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데미샘2 670m' 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바로 이 산줄기는 섬진강을 가두고 있다. 그 섬진강의 첫 출발점이 바로 이 데미샘으로 알려져 있다. 데미샘까지의 물리적인 거리 670m는 결국 우리의 현실적 상황으로 인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초현실적 거리로 늘어났고, 우리는 별 미련도 없이 오계재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깊은 눈길과 눈 터널을 허우적대며 빠져나오자 홀연히 황량한 고갯마루가 나타난다. 바로 오계재[외기재개]. 다섯 개의 계곡이 모인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나온 팔공산(5.7km)과 앞으로 가야할 삿갓봉(0.3km), 신광재(5.1km) 등의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바로 아래에 와룡자연휴양림(0.4km)이라는 문명의 편의가 있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다. 다 젖어버린 양말과 바지, 땀과 눈에 의해 젖어버린 옷은 우리의 발길을 문명의 편의를 향해 강제로 돌려놓았다.
와룡자연휴양림의 따듯하고 쾌적한 산막 안에서 젖은 옷과 신발을 말린다. 그리고 마지막 하루 남은 내일의 운행을 위해 우리는 눈길과 안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틀간 속수무책 당했던 눈보라와 안개, 그리고 사정없이 발길을 묶는 눈길을 헤쳐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인해전술뿐. 급하게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 그날 밤 신옥정씨(개척산악회), 박경하씨(33세, 개척산악회)를 불러 들였다.
짧은 햇살, 자욱한 안개, 기나긴 고행
새벽같이 일어나 오계재를 향해 오른다. 이틀간의 힘겨운 고행에도 불구하고 김석우씨(33세, 봔트클럽)는 여전히 원기왕성하다. 박경하씨와 더불어 오느새 삿갓봉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삿갓처럼 생겼다는데 그걸 확인하기는 어렵다. 오늘도 여전히 자욱한 안개가 산을 휘감고 있다. 삿갓봉을 향해 급경사의 눈길을 오르는데 등 뒤 어둑신한 안개를 뚫고 한줄기 햇살이 비춘다.
"야! 해다!"
지난 달 "야! 땅이다!" 라고 외쳤던 김석우씨의 외마디 환호성. 그도 그럴 것이 이 햇살은 나흘만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제 저녁 우리가 세웠던 작전을 눈치채고 미리 꼬리를 사리는 것은 아닌지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삿갓봉에 올랐을 때 그런 서운함은 가당치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늘 역시 만만치 않은 대결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삿갓봉에서부터 다시 허리까지 눈이 빠지기 시작했고, 두꺼운 솜이불처럼 눈을 뒤집어 쓴 나무아래를 지나갈 때는 누구나 눈사람이 되어야 했다. 밤새 따뜻한 아랫목에서 보송보송하게 말렸던 신발은 어느새 다시 젖어들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잠깐 고개를 내민 햇살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1080봉에서 오른쪽으로 몸을 뒤척이는 정맥의 마루금에는 가슴까지 빠지는 눈을 헤쳐나가야 했다. 거기다가 산죽 밭이라도 지날라 치면 빠지는 눈과 발목을 걸어대는 산죽으로 인해 잔뜩 용을 써야 했다.
도무지 고개처럼 보이지 않는 홍두깨재를 지나 점차 가팔라지는 사면을 힘겹게 올랐다. 여전히 시야는 안개만 자욱하다. 간혹 나타나는 표지기에도 잔뜩 눈이 달라붙어 설화와 구분되질 않는다.
헬기장이 있는 정상을 지난다. 그때였다. 눈앞으로 뾰족한 봉우리가 보인다. 내내 시야를 가리던 안개가 잠깐 동안만 걷힌 것이다. 우리는 주저없이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봉우리에 올랐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한참을 쉬는 여유를 부렸다. 두 사람이 더 합류한 인해전술 작전이 성공하는 듯 싶었다. 그리고 이곳이 틀림없이 시루봉인줄 알았다.
뚜렷하게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2시간 가량 묵묵히 걸었다. 여전히 자욱한 안개와 깊은 눈길과 잡목 숲이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한번 생겨난 자신감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아무 문제도 없음을 확신했다. 능선 아래쪽으로 임도가 보인다. 그러나 그 임도가 오늘 점심지점인 신광재로 가는 임도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가도가도 신광재의 고갯마루가 나타나질 않았다. 길은 자꾸만 아래를 향해 이어지고, 바로 뒤쪽에는 내내 보이지 않던 커다란 산이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본 표지기에는 '호남정맥 종주' 등의 문구가 하나도 없었다. GPS를 꺼내 현재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아뿔싸! 이럴 수가!
우리는 시루봉에서 북서방향으로 꺾이는 덕태산(1,113.2m) 능선을 따라 소덕태산을 향하던 것이었다. 머리 뒤의 큰산이 바로 덕태산이었다. 낭패였다. 애당초 고작 다섯 사람으로 인해전술이라는 생각도 가소롭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을 시루봉에서 그저 보이는 능선을 따라 온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다시 발길을 되짚어 시루봉을 향할 때 스스로에게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세번씩이나 길을 잃다니... 그래서 혼자 악을 썼다. 그러다가 나뭇가지에 발목이 걸려 눈 속에 얼굴을 쳐 박았다. 이를 악물고 일어나 씩씩거리며 걷다가 이번에는 내리막길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점점 더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지만 그런 것과는 아랑곳없이 이번에는 나뭇가지에 이마를 사정없이 부딪힌다.
'아 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잘못 들어선 능선의 시작점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는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 이성의 혼돈상태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려는 찰나, 눈에서 빠져나온 싸리나무 가지 하나가 얼어붙은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그 순간, 혼돈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이서잉 재빨리 자리를 찾아왔다. 눈물이 핑 돌만큼 매운 그 고통은 다른 분노를 모조리 잠재웠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욕심과 분별없는 분노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이틀동안 링반데룽에 빠지고, 길을 잃고, 눈과 안개와 추위에 지친 육체가 분별없이 분노한 탓이었다.
신광재를 향해 무조건 탈출
헬기장이 있던 곳이 시루봉이었다. 그곳에서 정맥은 거의 90도로 동쪽을 향해 꺾여 고도를 낮춘다. 길을 잡아 다시 이어가지만 이내 마루금은 깊은 눈 속에 사라지고 만다. 허리가 넘도록 빠지는 산중에서, 또 하늘을 가득 덮은 숲 속에서는 GPS조차 수시로 그 신호를 놓치고 만다. 결국 어디서부턴가 마루금을 놓친 채 우리는 신광재를 향해 무조건 하산을 시작했다. 사정없이 빠지는 눈 속을 헤치고 오직 동남쪽을 향해 하산을 했지만 우리가 내려선 곳은 신광재 고갯마루에서 진안 쪽으로 내려선 어느 임도였다. 이곳에서부터는 GPS를 이용해 신광재 고갯마루를 지나 장수군 천천면 중리로 내려갈 수 있었다.
길가로 흐르는 계곡물이 얼음에서 풀려나 우렁차게 흐른다. 저 산 위에는 아직도 꽁꽁 겨울에 사로잡혀 있지만 봄은 산 아래서부터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종주에서 우리 모두는 봄신령이 지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을 앞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와 우리를 향해 짖어대는 개들이 이렇게 반가운 적이 처음이었다.
<주>-----
1.링반데룽: 환상방황. 동일한 장소에서 원을 그리며 방황하는 것을 말한다. 산행시 길을 잘못 들어 링반데룽에 빠지는 기상조건은 눈이 내릴 때이다. 또 지형적으로 기복이 적은 장소에서 일어나기 쉽다. 또한, 등산자가 피로에 지쳐 사고력이 둔해지고 방향 감각을 잃어 버릴 때나 야간까지 무리하게 연장하는 경우에 일어나기 쉽다. 대부분 안개, 폭우, 폭풍설, 피로 등으로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역을 맴도는 경우다. 링반데룽에 빠졌다고 판단되면 지체없이 방향을 재확인함은 물론,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가스나 강설이 걷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데미샘: 하천연구가 이형석은 <한국의 강>에서 섬진강의 발원샘을 이곳 데미샘으로 밝히고 있다. '데미'는 '더미'의 전라도 사투리로 산봉우리를 뜻한다. 봉황산 아래 천상데미라는 지명에서 유래된 듯하다.
3. 이번 취재에서 시루봉~신광재 구간은 중간에 길을 잃어 정확한 마루금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신광재를 지나 천천면 와룡리 중리로 하산하면서 고갯마루의 GPS좌표는 정확하게 측정했다. 다음달 종주에서 시루봉~신광재 구간을 다시 이어갈 것임을 밝힌다.
호남정맥2구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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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월간<사람과산> 2003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