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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제 2 강 Asan UBF 2018년 10월 21일 주일메시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
말씀 : 고린도후서 2:1-17
요절 : 고린도후서 2:15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온갖 문제들을 보면 그들은 대단히 연약한 사람들이거나 트러블 메이커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보는 관점은 달랐습니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을 승리를 얻고 영광스럽게 행진하는 그리스도 승리의 사람들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날마다 말씀 앞에 회개하고 성장해 나갈 때, 우리는 이 세상 한 가운데를 믿음으로 행진해 나가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영광스러운 승리의 행진을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Asan UBF
I. 넘치는 사랑 (1-11)
1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위하여 고린도 교회를 떠나 있는 사이에 고린도 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하고자 바울의 사도직과 바울이 전한 복음을 공격하고 비하하였습니다. 고린도의 양들에게 비복음적인 이론을 전파하고 심었기 때문에 고린도에 세운 교회는 혼란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급히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여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수습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시 방문하고자 했지만,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방문하는 것은 그들에게 책망과 지적만 할 것 같아 급한 재방문을 보류하였습니다. Asan UBF
2,3절을 보십시오. 직접 가지 않지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촉구하는 것은 분명하였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서신을 보내고 직접 가지 않고 있는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인격적인 회개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바라면서 강하게 지적하는 것도 보류하는 것이며, 그것을 기대하면서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들에게 바라는 것은 양복이나 넥타이나 맛있는 음식이 아닙니다. 목자는 양들이 회개하고 올바른 믿음을 가질 때 기뻐합니다. 목자에게 그런 기쁨을 주는 양들은 그들도 하늘의 기쁨, 성령의 주시는 은혜를 맛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 교회에 편지들을 보냈습니다. 편지에 쓴 내용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죄를 지적하고 문제를 드러나게 하였기 때문에 양들 중에는 그것이 마음에 고통을 느끼게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편지를 보낸 바울은 편지를 쓸 때,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Asan UBF
세상에 많은 눈물이 있습니다. 기쁨의 눈물도 있고 슬픔의 눈물도 있습니다. 속상해서 흘리는 눈물도 있고 감격해서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자식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있고 부모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있고 연인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있는데, 사도 바울이 흘리는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었으며, 양들로 인하여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1983년에 우리나라는 온 국민이 다같이 TV앞에서 아주 많이 울었습니다. 6.25전쟁 때, 뿔뿔이 흩어져 생사도 모르고 살았던 많은 가족들이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통해서 만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만나고, 헤어졌던 형제와 자매를 만나는 광경은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보면 쉽게 눈물에 젖습니다. 내 이야기가 아닌데도 쉽게 눈물을 같이 흘리며 공감 합니다. 그것은 그 내용은 달라도 우리가 공통으로 인식할 수 있는 관계이고 나타나는 사랑이 대단히 헌신적이고 순수한 경우가 많아 감동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들을 향한 목자의 눈물은 그런 가족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차원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양들을 향한 목자의 순수한 눈물은 예수님의 사랑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과 목자는 유전적 친연성이 전혀 없습니다. 순수한 양과 목자는 이해관계가 전혀 없습니다. 내 가족도 아니고 내 유익과 상관없는 사람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은 양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고귀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으로 산 귀한 영혼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영접하고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Asan UBF
사도 바울은 곳곳에 다니며 많은 교회를 개척하였지만, 어느 곳에서나 양들을 사랑하고 눈물로 섬겼습니다. 그는 “모든 겸손과 눈물”로써 양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양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자 자기 생활비는 스스로 일하여 벌어서 썼습니다. 그는 터어키 양에게는 터어키 목자가 되었고, 그리스 양에게는 그리스 목자가 되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양에게는 마케도니아 목자가 되었으며, 시리아 양에게는 시리아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권위와 자기의 지식과 자기의 이론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가장 낮은 모습을 가졌습니다. 양들의 좋은 모습 뿐 아니라 양들의 연약함, 부족함도 인정하고 영접하며 인내하고 기다리고 이해하기를 반복하고 계속 하였습니다. 그는 양들이 영적으로 살아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눈물로 양들을 생각하였고 양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으며 양들에게 하는 그 어떤 말도 그런 아픔과 인내를 거치지 않고는 내놓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바울의 눈물을 양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양이기 때문입니다. 양은 언제나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랜 눈물과 탄식을 거친 것일지라도 원래 목자는 그런가보다 쉽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흘러야 알거나, 그도 목자가 되었을 때 깨닫습니다. 사도 바울은 깨닫게 되기까지 인내하였고 깨닫지 못한다 해도 그 목자의 눈물과 인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Asan UBF
사도 바울이 이런 눈물의 목자가 된 것은 그가 원래부터 감성이 풍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냉철하고 차갑기가 말할 수 없이 뚜렷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찬성하고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고 완전히 뿌리를 뽑겠다고 결심하고 다마스커스까지 원정 체포팀에 자원하여 나섰었습니다. 그는 냉혹하고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양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랑의 목자가 된 것은 부활의 주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원수인 자신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화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예수님의 마음을 덧입어 사랑의 목자, 눈물의 목자로 변화 되었습니다. Asan UBF
5-11절은 용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중대한 사안으로 징계 받은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을 공격하여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공격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공격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언행은 공적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를 징계 하였습니다. 징계는 잘 이루어졌습니다. 징계를 통하여 그는 자신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쉽게 용서하면 이 사람이 또 문제를 일으킬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서도 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징계를 풀지 말아야 한다고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를 용서하라고 합니다. 교회는 사법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징계와 제명으로 사람을 처벌하고 응징하는 것을 본업으로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처벌과 응징으로써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으로 확장되는 공동체입니다. Asan UBF
사도 바울은 형제가 범죄하면 회개하도록 책망하는 목자였지만,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고린도 교회에 권면합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의 용서를 받고 그 사랑으로 양들을 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 바에 의하면, 과거에 정욕문제를 일으키고 그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양들의 정욕문제를 더 크게 확대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혼 하지 않은 사람이 양들의 결혼에 대해서 더 예민하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용서에 대해서 각별히 투쟁하여야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용서 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용서의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내가 어떤 죄를 용서받았는지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또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께서 나를 용서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고초를 당하셨는지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또 기억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했습니까? 용서는 공기에 새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고난 받으셨는지 날마다 상기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원래 나는 그런 문제가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문제가 없었어’, ‘나는 그렇지 않았어’ ‘사람이 왜 저러는지 몰라’ 이런 사람은 남보다 도덕적으로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자신의 죄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자신이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하던 큰 죄를 지었던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어떤 죄를 용서받았는지 늘 기억하고 그 은혜를 잊지 않고자 내적 투쟁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용서를 아는 사람, 용서를 행하고 용서를 권면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Asan UBF
1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복음역사를 감당할 때 항상 보이지 않는 가운데 교묘하게 역사하는 사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서로 귀하게 여기고 격려하고 경책하고 서로 허물을 용서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역사입니다. 용서하지 않고 미움과 원한을 풀지 않을 때 사탄이 틈타는 일이 생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용서를 알고 서로 용서하는 모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I. 그리스도의 향기 (12-17)
12,13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온 마음이 고린도 교회로 향하여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양들을 생각하며 몹시 마음이 상해 있었습니다. 그는 드로아에 복음의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디도가 다시 돌아와 바울에게 보고를 하여야 하는데 아직 디도를 만나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하였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바울은 늘 양들 문제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Asan UBF
그럴지라도 사도 바울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그리스도의 향기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모두 잘 알고 있는 로마의 개선 세러모니를 비유한 말입니다. 로마제국은 계속해서 정복전쟁을 벌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병들을 위해서 로마는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이 모두 나와 승리하고 돌아온 장병들을 환영하였습니다. 개선식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과 군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방법이었으며, 군인들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었습니다. 개선식의 최종 도착지는 쥬피터 신전이었습니다. 개선장군은 말 네 마리가 이끄는 콰드리가 전차를 몰고 마르스의 평원에 있는 세르비안 벽에서 출발, 로마 시내를 행진하여 카피톨리노 언덕에 도달 합니다. 도착할 때까지 그를 따르는 병사들은 임페라토르를 외치며 대오를 갖추고 행진하였습니다. 개선식 대열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개선장군과 그를 따르는 군인들만 있지 않았습니다. 정부요인, 로마의 원로, 나팔수, 점령지에서 가져온 전리품, 점령지의 지도, 선박모형, 제물로 쓰여 질 황소, 적국에서 잡아온 포로들의 행렬과 악기를 든 악사들, 향을 피우는 향로를 멘 제사장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따라서, 개선식에 참여하여 환호하는 로마 시민들에게는 향로에서 풍겨나는 향을 개선장군이 지나가는 연도에서 코에 가득 맡을 수 있었습니다. Asan UBF
사도 바울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개선하는 개선 장군 행렬이 널리 퍼지게 하는 그 향과 같이 그리스도 교회의 성도들은 온 세상에 퍼지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승리의 향기라고 단언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죄와 사망에 대하여 이미 이기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은 우리도 이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우리를 온 세상에 널리 퍼지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게 하십니다.
전쟁에 출전한 가족을 기다렸던 로마의 가족들과 자국의 승리를 기뻐하는 개선식 연도의 로마 시민들에게는 개선행렬에서 풍겨나는 그 향기가 얼마나 기쁨과 환호를 주었겠습니까! 그렇지만, 포로로 끌려온 적국의 장군들과 왕들과 포로된 병사들에게는 절망과 좌절을 안겨주는 향기였습니다.
개선행진이 끝난 후, 포로로 끌려온 적국의 왕은 감옥인 툴리아넘에 갇힙니다. 누미디아 왕은 여기에 갇혀서 굶어 죽었고, 골족의 수장 베르킨게토릭스도 교살되었습니다. 따라서, 개선식의 향기는 그들에게 수치와 모욕의 향기요 절망과 죽음의 향기였습니다. 구원 받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 성도들이 생명에 이르는 냄새입니다.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 입니다. Asa n UBF
저는 학생 때부터 나와 아무 상관없는 다른 학과 교수님을 무급 조교처럼 섬겼습니다. 졸업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분은 저를 마음대로 부려먹었습니다. 그는 저를 제자, 또는 여러 학생들 중의 하나로 보았겠지만, 나는 그분에게 한과목도 배운 것도 없고 그분과 어떤 관련도 없습니다. 저는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분 곁에 있었습니다. 캠퍼스 목자로 그분을 만났으며, 캠퍼스 목자였으므로 무슨 심부름을 시켜도 그 학과 학생이나, 그 학과 학생보다 더 열심히 해주었습니다. 어떤 대가도 없었습니다. 이제 그분은 늙고 병들어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서러움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제 늙고 병든 그분 곁에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전화 해주면 반갑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언제 식사 한번 하시죠’ 하면 그 밥 언제 먹을건지 날짜 잡아 달라고 매달립니다. 이분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곁에 있었던 나의 존재는 그분에게 큰 짐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것을 곁에서 보고도 그분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 위하여 조금도 자기를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섬기지 않은 그 삶은 하나님 앞에 큰 정죄가 될 것입니다. Asan UBF
우리는 목자의 삶이 탄탄대로가 아닌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듣기도 하고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초라해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 믿지 않는 가족 친척들은 집이 있는가? 없는가? 여부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지식인 그룹에서는 예전에는 박사학위가 있는가? 없는가?를 따졌습니다. 요즘은 박사학위를 해외 명문대에서 받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여부를 가지고 사람의 수준을 따집니다. 요즘은 서울에 집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관건입니다. 요즘 집값이 크게 오른 대구와 광주에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도 승리한 인생이라 자부하며 행세합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대형 교회도 20대는 가장 취약한 연령층입니다. 우리나라 10대는 기독교인 비율이 5%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종족을 일컬어 미전도종족 이라 합니다. 이제 기독교는 시간이 갈수록 비주류로 밀려나고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들, 꼴통 집단으로 여깁니다. 이런 때 우리 학생들은 학교식당에서 식사 기도하는 것이 주저하고 망설여집니다. ‘너 기독교야?’ 아주 희한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우리 목자님들도 예수님의 이름을 거론하기가 힘들고 교회, 기도, 믿음, 소망 이런 단어는 실생활에서 지인들과 친구들과 친척들 앞에서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의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Asan UBF
그러나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우리는 이 세상 한가운데를 행진하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대열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구 온 세상 사람들 한 가운데로 행진하며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개선장군과 이긴 군인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인내는 온 세상에 퍼져 나가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우리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승리의 노래이며 승리의 향기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으로 힘차게 살아가는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함께 승리의 노래를 부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믿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 성도들은 온 세상에 죄와 사망의 시대가 끝났으며 승리와 영광의 새시대임을 선포합니다. Asan UBF
이김을 주신 예수님과 주와 함께 이김에 참여한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 성도들을 보고도 미워하고 배척한 자들은 망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 세워진 교회와 성도들의 인내와 선행과 믿음을 보고도 그것을 멸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절망하고 멸망하는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 세상을 살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 세상을 정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물질의 풍요가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고린도 교회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데도 그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그렇게 심한 문제들을 그렇게 다양하게 일으키고 있는데도 그들이 그리스도의 승리의 대열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승리의 대열에 있으며 이 온 세상 한가운데를 행진하는 개선 장군 들입니다. Asan UBF
17절을 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빼지도 더하지도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하게 전하였습니다. 그는 조금도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았으며 그는 조금도 자기 유익을 위하여 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Asan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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