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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대화는 위험하다.
는 생각이 피뜩 스쳤을 때, 사무실 공간에 흐르던 정적이 은근히 나를 감싸오고 있었다. 공간을 지배하던 전등빛에도 다른 어떤 온도와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틀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꽃이 흩날렸다. 때 아닌 11월 초에.
푸른 새벽, 으스스한 추위에 잠에서 깨어 이불을 끌어 올리려다가 옆자리를 살폈다. 이불깃을 한껏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벌레처럼 몸을 이불로 동그랗게 말고 잠에 빠져 있는 찬연을 보면서 문득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모든 대화는 위험하다.
지난 밤 우리는 무수한 말을 했었다. 어둠 속에서,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벗은 몸으로 웅크린 채 서로 마주 앉아. 침묵이 끼어들면 우리 사랑이 거짓이라도 될 것 같은 불안을 밀어내려고 화제를 옮겨오고 옮겨가면서 시간을 소비해 갔었다. 우리 자신에 관한 끝없는 말들은 도리어 우리를 고독으로 밀어 넣었다.
잠자면 안 돼, 찬연은 그랬다.
잠 속의 너의 세계를 내가 지배할 수 없기 때문에 너도 자면 안 돼, 내가 그랬다.
너의 꿈을 내가 조종할 수 없다는 게 슬픈 일이야, 찬연은 그랬다.
눈을 감은 너의 저쪽 세상에도 온통 내가 있을 수 없다는 게 억울해, 내가 그랬다.
찬연의 고집스럽게 가냘픈 벗은 등에 내 맨 가슴을 밀착시키면서 나는 그녀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잘 포개진 두 개의 숟가락 자세로 딱 붙어 누워서는 눈 감는 시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잠이 들면 내밀한 각자의 세계가 뻔뻔스럽게 열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떻게 잠들어 버렸는지 누구도 몰랐다. 하지만 눈을 뜬 아침부터 우리는 각자 해야 될 일을 해야 했기에 떠날 준비로 분주했다. 눈을 떠도 각자의 세계는 따로 있었다.
눈송이는 제법 커져 갔다. 땅에 닿으면 금방 녹아내릴 듯한 습기를 물고 있는 진눈깨비의 낙하는 게으르면서 무거웠다. 창가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았다. 10층 사무실 아래, 차량의 흐름은 물론 인행도로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걸음도 느슨해진 듯하였다. 눈은 지상의 온갖 흐름들을 저속으로 행진시키며 소음들도 가만히 덮어주는 듯하였다. 길 건너 낮은 건물들 옥상의 환풍기, 가로수와 가로등, 간판과 얼기설기 뻗어 있는 전선줄은 눈의 정적을 저항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테이블 위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휴대폰 벨소리는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기회의 호출, 위기의 소음이다. 위기가 기회가 되든, 기회가 위기가 되든 휴대폰 벨소리는 언제든지 울려야 일을 한다는, 바쁘다는, 열심히 살아간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휴대폰 배터리의 소진이 몰고 오는 공포스러운(?) 불안보다는 소음의 시끄러움을 인내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나는 몸을 돌려 테이블 위에 놓여 진 휴대폰을 들었다. 용문사(龙门寺)의 전화였다.
“아, 네. 스님.”
나는 해법 스님임을 미리 알고 목청을 돋우었다.
“아하, 오래만일세. 반갑네. 조 사장.”
스님은 아하 하는 감탄사도 뚜렷한 발음을 넣어서 느리고도 울림이 있게 말씀하셨다.
“그러게요. 안녕하세요? 해법 스님, 찾아뵙는다 뵙는다 하면서도 전화 한 통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조 사장님께서 이 늙다리 친구를 잊었나 걱정하고 있었다네. 하하.”
스님의 장난 끼가 발동되고 있었다.
“그럴리가요. 스님 친구님, 하하.”
나도 스님의 말소리와 억양을 흉내 내서 하. 하. 웃는 것도 사이를 두어 또렷하게 전달되도록 하였다.
“거기도 눈이 내려? 풋눈인 줄 알았는데 여기 산 속은 새벽부터 눈이 내리더니 지금은 완전 눈 천지가 되었네.”
“눈 님이 오시니 스님 친구님의 전화 님도 오신답니다. 축복의 전화.”
“복 많이 받게. 그런데 오리목 여자랑 결혼은 했어?”
“오리목? 아하. 스님도. 아니요. 아직……”
“어흠, 오리목 한 접시의 유혹에 이 늙다리 친구를 배반했음 얼른 결혼을 했어야지.”
“네. 곧 하게 됩니다.”
“축하하네…… 그러나 저러나 자네, 한 번 이쪽으로 다녀왔으면 하네. 부탁할 게 있네. 전화로는 어려운 일이라 한 번 이쪽으로 행차하시게.”
“아, 그래요? 오늘, 지금 바로 갈까요? 산중의 설경도 구경하게요.”
“지금 바로? 눈길에 조심해야겠는데, 아무튼 여기로 올라오게.”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스님.”
스님과 나는 중국어로 통화하고 있었다.
나는 떠날 준비를 하였다.
서류와 사무용품 수납장 오른쪽 맨 끝의 문을 열어 목에 머플러를 걸치고 양복 위에 검정 코드를 받쳐 입었다. 겨울 남자, 거울에는 남성 잡지의 패션모델이 선보이는 사업형 남자의 럭셔리함과 품위를 골고루 갖춘 또 하나의 나가 서있었다. 너무 티가 나지 않으면서 무난한 세련됨. 아무튼 기분 좋은 일이다. 거울을 마주하는 일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정장차림에는 어색해 했던 촌놈이었다. 촌놈은 찬연이가 해주었던 말이다. 흰 셔츠를 입으면 기필코 안에는 런닝구를 받쳐 입는 나를 보고 찬연은 촌놈이라고 놀렸다. 우리 모두가 촌놈의 자식이면서 대놓고 비하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번역회사 사무실을 내면서 나는 찬연이 시키는 대로 맨 몸에 셔츠를 입어야 했으며 넥타이로 울대뼈 밑까지 단단히 졸라매고 있어도, 런닝구가 없는 윗몸은 자꾸 벗어버린 허망함으로 적응하는데 꽤나 시간을 들여야 했다.
남자들은 우선 옷걸이가 좋아야 된다며 찬연은 헬스클럽 회원증을 만들어 왔다. 일단은 어깨와 가슴의 근육 키우기, 쵸콜릿 복근 만들기가 급선무라 하였다. 헬스클럽에 다니면서 찬연이 준비해주는 닭 가슴살을 보약처럼 먹어야 하였고 운동 음료를 꼬박꼬박 챙겨 마시면서 몸짱 만들기를 시작하였다. 3개월이 지나니 근사하게 근육이 붙어가면서 체형은 균형을 찾아갔다. 따라서 자신감은 앞가슴만큼 팽팽해졌다. 거울 앞에 서는 시간이 길어졌으며 찬연의 말을 빈다면 못 말리는 광적인 자기애 환자가 되었다. 그 후부터 나는 흰 셔츠도 라인을 살릴 수 있는 밀착형 셔츠를 선호하게 되었다.
거울에서 물러선 다음,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사무실 직원 박미나 양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위탁 받은 논문의 책 장정으로 인쇄소로 간 그가 돌아오려면 시간적으로 보면 30분 뒤면 될 것 같았다. 전화로 통보하면 아싸 좋아 하면서 사무실을 비워두고 시내돌이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녀의 테이블 위에 놓여 진 캘린더에 “오늘은 잠깐 출장, 오후에 돌아올 지도 모름. 조.” 하고 메모지에 적어서 끼워 넣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와서 차를 몰고 나는 용문사로 향했다.
내리던 진눈깨비가 멈추면서 하늘이 개이고 있었다. 시야가 밝아지니 차량들의 움직임은 신났다. 빵집, 문구점, 옷가게, 우체국, 백화점, 정육점, 과일가게, 커피숍, 쌀집, 음식점, 네일숍, 목욕탕, 학원, 꽃집, 동물병원, 치과, 여행사…… 차창 뒤쪽으로 밀려가는 거리의 풍경들, 그러니까 돈만 있으면 참말로 지구의 어떤 곳에서든지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있는 듯하였다.
시내를 벗어나서 외곽 쪽으로 운전을 해나갔다. 고속도로를 타게 될 톨게이트 바로 앞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용문산으로 오르는 언덕길이 열리면서 희끗한 눈발에 덮여 있는 무연하게 펼쳐진 논밭과 옥수수 밭이 보였다. 군데군데는 흙빛을 드러냈다. 차가 경사진 언덕길로 올라갈수록 쌓여진 눈의 두께는 능선을 따라 두터워져 갔으며 울퉁불퉁한 언덕길 덕분에 상하로 움뜩이는 차의 이동으로 주위의 눈밭은 새하얀 물결이 넘실대는 설해의 전경으로 안겨왔다. 내 눈은 눈빛으로 시려왔다.
아주 잠깐, 찬연을 생각하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은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운 날이 된다. 선글라스를 걸고 도어를 내리니 한결 정결해진 공기가 바람을 타고 폐부 깊숙이 위로가 되어 파고들었다.
아찔한 여유로움.
해법 스님과의 인연은 5년 전, 대학졸업 후 취직된 신문사 새내기 기자 시절에 시작되었다. 시청의 문화 종교처에 출근하는 선배의 부탁으로 용문사 취재와 해법 스님 인터뷰가 있으면서부터였다.
신문사라는 곳은 역동적인 작업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약간은 침체된 분위기였다. 나에게 배당된 일은 고작해야 중국 글 신문에 실린 글을 발췌하거나 전문을 번역하고 교정하는 한낱 지루한 작업뿐이었다. 어차피 기자 직업은 내 취향이 아니었기에 실망 따위는 없었다. 나의 꿈은 소설가로 문단으로 데뷔하여 대소설가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밤샘을 하면서 소설을 줄기차게 써 내려 갔으므로 출근해서는 틈만 나면 졸았다. 그러다 보니 사내에서 눈에 나는 건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2년을 온갖 정력을 쏟아 부으면서 장편소설 한 부와 중단편소설들을 써서 문학상공모에 보냈어도 가작상에도 걸리지 않았다. 문학잡지에 투고된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간혹 가다 발표된 소설은 격월비평에도 언급되지 못하는 투명 소설이 되어 갔다. 출판사에 취직된 찬연은 벌써 책 다섯 권을 편집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찬연과의 데이트도 즐거울 수 없었다.
소설 쓰기,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일을 하지 않고도 행복했던 적이 도대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바로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어를 사랑하고 문장을 두고 고민하는 것, 세계에 관심을 갖는 것 등이 작가가 해야 될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단어를, 문장을 찬연이보다 사랑할 수 있었고 세계에 대한 관심은 찬연과의 결혼에 대한 관심보다 더 심각했으면 심각했지 그 이하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의 문학적 재능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의심해 오던 것을 마침내 그렇다고 인정을 하게 되니 나는 결함이 있고 아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갔으며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불완정성, 무가치함을 점점 느꼈다. 문학을 빼면 내 삶은 색채가 없다는 아득한 절망 속으로 추락되면서 자신을 비루하다고 느끼는 감정과 과도한 반응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사람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초여름의 어느 날, 나는 입술을 한 번 단단히 깨물었다. 신문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찬연은 물론,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라져버렸다. 용문사 해법 스님을 찾아갔었다. 받아주십시오 하고. 스님은 그 어떤 권유도 명령도 그렇다고 동조도 없이 조용히 스님의 방 뒤쪽의 쪽방을 내어 줌이 전부였다. 내가 해야 될 일도 딱히 없었고 스님은 아예 나를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 정도로 취급하였다. 어데 가나 나는 투명 인간이었다. 산 아래 동네의 이발소에 가서 삭발을 하고 절에 있는 스님들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흉내를 냈다. 불경을 독송하는 시간에도 몸은 절에 있었지만 머리는 다른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좌치 (坐驰). 그것도 지겨우면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비몽사몽의 흐릿함 속에서 수음을 하거 나 허탈해 지면 산속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용문사에 있는 동안 해법스님의 《산중락서》 노트를 훔쳐보는 것은 나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차는 산길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고 있었다.
눈에 덮였던 산길은 용문사를 다녀오고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눈길이 나져 있었다. 용문사 대웅전의 지붕 끝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용문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용문사 입구와 이십여 미터 떨어진 빈터에 주차를 시키는데 찬연의 전화가 왔다.
“지금 뭐 해?”
“용문사야.”
“어디냐고 묻지 않았거든.”
“너 전화 받고 있어. 지금. 그럼 됐냐?”
“오, 용문사에 갔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그 쪽에 입문을 한다는 뜻은 아니겠고.”
“그럴 지도 몰라. 입문. 해법 스님께서 호출하셨어. 축복을 내려주신 대. 눈의 축복.”
“아, 거긴 산 속이라 눈이 제법 왔겠다.”
“지금 올래?”
“미쳤어?”
“언제는 정신 있었어?”
“정신은 모르겠고 영혼은 남아있어.”
“내 몸은 너의 영혼을 기억하고 있어.”
“내 영혼은 너의 몸을 기억하고 있어. 됐고, 오리목 사들고 절에 다시 찾아가게 하는 일만 빼면 미쳐가는 것도 딱히 나쁘지는 않아.”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점심밥 잘 챙겨 먹고, 저녁에 보자.”
“그래.”
찬연의 통화는 대개 이랬다.
오리목으로 벌써 두 사람이 나의 심기를 유쾌하게 건드리며 유머로 소비하고 있으니 오리목 사건의 자초지종을 밝혀야겠다. 용문사에 박혀 있었던 58일 째 되던 날, 찬연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내가 용문사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용문사까지 나를 찾아왔었다. 58일간 빨지도 않은, 더럽고 땀내 나는 승복을 청승맞게 입고 빡빡 밀었던 머리가 자라 올라 감방 죄수의 머리 모양새를 닮아 가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찬연이 찾아 왔던 날, 삼복더위가 한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쪽방의 문을 닫아버리고 안에 박혀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나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손으로 눈썹 위를 가리며 온돌에서 일어나 보니 문 밖에는 찬연이 단단히 작정하고 서있었다. 빛을 등진 찬연의 얼굴이었지만 나는 분명 보았다. 연민으로 촉촉해지던 찬연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이내 분노가 눈썹 사이로 몰려들면서 눈물을 거두어 가는 것을. 애써 가부좌의 몸자세를 보여주려고 내가 다리를 꼬아 모으려는 순간, 찬연은 내 손목을 무작정 잡아채서는 마당으로 나갔다. 나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찬연에게 끌려가는 꼴이 되었다. 찬연의 분노는 내 손목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대웅전 뒤울안의 숲 속으로 끌고 가서 풀밭에 나를 떠밀어서 앉혔다. 그리고는 내 앞에 통닭구이 한 마리와 오리목 간식을 꺼내놓았다. “꼴이 뭐야? 먹어!” 찬연은 악을 쓰듯 소리쳤다. 나는 허겁지겁 닭다리를 뜯어 집어 들고 입에 욱여넣었다. 날개, 목, 가슴팍…… 닭 한 마리가 순식간에 소멸되었고 오리목을 뜯기 시작하였다. 오리목을 반쯤 가량 먹고 나니 배가 불러왔으며 그때야 비로소 나는 앞에 버티고 서있는 찬연을 의식할 수 있었다. 찬연의 얼굴은 무성한 나뭇잎이 드리운 그늘과 그 사이를 통과하는 햇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찬연을 바보가 되어 올려 보다가 내 눈에는 눈물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오리목을 입에 물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찬연은 꼼짝 않고 제 자리에 서있었다. 나의 흐느낌은 온통 슬픔이었으며 그 슬픔은 이내 숲 속의 정적을 깨뜨리는 커다란 울음소리로 변해갔다. 절에 있던 스님들이 몰려왔으며 해법 스님도 모습을 드러냈다. 내 주위에 마구 흩어져 널려 있는 닭뼈들, 일회용 접시에 반나마 남아 있는 오리목, 내 입 속에서 밀려나와 기름으로 번질대는 내 손에 들려진 먹다 만 오리목, 고기 냄새를 맡고 몰려온 개미무리들, 닭발 뼈에 붙어 기어가는 지네 몇 마리. 달려 온 스님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머리를 숙이고 나무아미타불을 중얼거렸다. 해법 스님은 뒤짐을 하고 자리를 피해가면서 허공에 대고 지나가는 소리인 듯 탄식처럼 뱉어냈다.
“따라 가게.”
이렇게 나는 찬연을 따라서 산에서 내려왔다. 혼자 두면 어떤 더 큰 불상사라도 생긴다면서 찬연은 나를 자기의 세집에 눌러 앉혔다. 뭐 할 것인가와 같은 구체적인 사항들은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집에 있으면서 나는 틈틈이 찬연의 인맥으로 받아오는 번역고를 번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찬연의 제안에 번역회사 사무실을 내게 되었다.
번역회사, 말이 좋아 번역회사지 주요 업무는 대필 업무였다. 작게는 취직의 이력서와 함께 따르게 될 자기소개서를 대필해주기도 하고 그럭저럭 돈이 되는 것은 논문을 대신 작성해주는 업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과류 논문을 위주로 취급, 직장인들의 방송통신대학 졸업논문과 등급시험의 논문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식의 논문은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반복해서 하다 보면 별 게 아니었다. 때로는 대학교수들의 논문을 대신 써 주기로 한 대학생 제자들이 위탁해 오는 논문이 섞여 있었다. 교수님들은 연구과제의 테마를 조각을 내서 숙제를 내주듯이 여러 제자들에게 분산적으로 맡기고 다시 거두어들인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다시 분석과 종합을 거쳐 슬기롭게 붙여서 완정된 논문으로 마무리하는 시스템이다. 위탁해 오는 논문들을 분류해 보다 보면 무질서 중의 이런 질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총체적인 구상을 안고 입술 한 번 슬쩍 깨물어 보고는 교수님이 직접 되어보는 것이다. 위탁자가 보내오는 자료(유관된 자료를 찾아 볼 수 있는 도서관까지 은밀히 알려주기도 한다)에 근거하여 인터넷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서는 그럴 듯하게 꾸며주면 끝이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겠는가. 문학적 상상은 언제나 현실을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본질에 천착하면 냉소주의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이면 모든 일에 심플해 지기로 하였다. 한 번, 두 번 하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과제의 논문이라도 대처하는 노하우가 별도로 있기 마련이다. 업무들은 처음에 대부분 인터넷으로 연락이 닿았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직접 방문해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특대필이라면 성공인사의 자서전 대필과 특정 직업인의 대필 에세이집이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성공한 기업가 자서전 대필 3건, 그리고 에세이집 한 권을 번역 출간하였다. 그러다 보니 수입은 괜찮았다.
나는 용문사로 들어갔다.
용문사의 마당은 눈이 깨끗이 쓸려갔으며 평화롭고 고즈넉하였다. 큼직한 향로에서 타 오르는 향불의 연기를 따라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눈이 쌓인 용문산을 배경으로 대웅전은 순백의 고결한 상징으로 우뚝 치솟아 있었다. 나는 계단을 밟아 올라가서 대웅전 바로 앞의 향로에 향불을 켜서 꽂고 대웅전에 들어가 절을 올렸다.
대웅전에서 나와 다시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데 해법 스님은 외출하셨었는지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스님과 눈이 마주치면서 나는 정중히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다. 스님이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스님의 방은 아늑하였다. 비닐로 방풍 된 자그마한 창으로 비쳐 드는 햇빛 줄기는 온돌에 밝고 선명한 빗 사각형을 그리고 있었다. 온돌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스님이 회색 승모를 벗었다. 스님이 앉아 계시는 우듬지 쪽은 스님의 머리 광택으로 한결 밝아지는 듯 하였으며 사람 좋게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내보이는 흰 이는 방안 전체를 환해지게 하는 듯하였다.
“눈길에 오느라 수고 많았네.”
스님이 말했다. 미소를 거두어 간 스님의 얼굴은 주름살이 사라졌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남아있었다.
“여전히 건강하시네요. 죄송합니다. 찾아뵙지 못해서요.”
나는 고개를 숙여 사죄드렸다.
“아니, 내가 되레 미안해지려 하네. 눈길에 오라 가라 하는 이 주책을 널리 양해해주게. 딱히 뭐 그리 급한 일도 아니긴 한데……” 스님은 눈웃음을 거두면서 잠시 뜸을 들였다.
무릎에 얹었던 두 손을 모으면서 지긋이 깍지를 끼었다. 잠깐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스님의 행동을 살피면서 나는 대뜸 스님이 어떤 피치 못할 사태에 직면했으며 또한 나에게 어떤 난처한 부탁을 해올 게 분명함을 알고 있었다. 늘 여유롭고 대범한 스님에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거동.
나는 일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사무실에 앉아 꺼벅꺼벅 졸고 있던 나는 문득 용문사에 기거하고 있었을 때 훔쳐보았던 해법 스님의 《산중락서》를 떠올렸다. 에세이집으로 출판이 되면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나는 용문사로 가서 스님의 노트를 훔쳐왔었다. 스님을 설득할 가능성 또한 거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은 먼저 재독을 하고 검토하기로 하였다. 정작 출판을 기획하고 다시 살펴보니 낙서가 낙서인 만큼 입말이 많았으며 한 권의 에세이집으로는 분량이 너무 적었다. 고민 끝에 나는 1개월의 시간을 들여 《산중락서》에 가필하게 되었다. 스님의 정서를 살리면서 한 권의 에세이집 분량의 글로 완벽하게 재탄생시켰다. 그러고 나서 타자본을 들고 스님을 찾아갔었다. 타자본을 훑어보던 스님은 대뜸 자신이 썼던 《산중락서》임을 알아보고는 멀뚱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슬며시 《산중락서》 정본을 스님의 가부좌 튼 무릎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우선 나의 무례함을 빌었다. 스님의 반응을 여탐하면서 조심스럽게 출판 의향도 밝혔다. 스님은 묵묵부답이었다. 즉각적인 스님의 호통이 떨어질 것이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나는 스님의 무심함에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 스님의 존함으로 에세이집이 출간되면 용문사의 위상은 물론 지역홍보에도 도움이 된다며 사뭇 공적인 일이라는데 그루를 박아 말씀드렸다. 그때 바로 스님의 무릎 위에 얹어져 있던 두 손이 바로 오늘처럼 지긋이 깍지를 끼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스님은 밖으로 나갔다. 대답 없음이 바로 동의된 걸로 자기 판단을 내렸다. 나는 찬연이 다니는 출판사 문학 담당 팀장님을 만나 출판하기로 합의하게 되었다. 원고료는 물론 인세까지 합의를 보았다. 《산중락서》는 출간되어 1개월 만에 초판 1쇄가 매진되었으며 지금까지 16쇄의 기록을 올리고 있다.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부응하여 각종 매스컴에서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스님은 인터뷰를 완곡히 사절하였다. 스님은 처음 내가 출판 의향을 밝혔을 때 이 정도까지의 국면을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며 아니면, 나의 재능과 판단을 아예 무시하고 출판도 못할 거라는 추측으로 그냥 무심하게 넘겼을 수도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스님의 겸손은 《산중락서》를 한층 매력적인 책으로 신비화시키면서 더욱 큰 화제가 되어 갔다. 그리고 나는 《산중락서》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에서 출판, 한국에서도 역시 화제의 책으로 되었다. 따라서 역자인 나도 원고료와 인세를 톡톡히 받고 있다.
손의 깍지를 풀면서 해법 스님은 잠깐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내년 봄 용문사 확장 공사를 하게 되네. 규모가 지금의 3배 정도가 될 걸세.”
“잘된 일이 아닙니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분위기를 봐서는 섣불리 축하한다는 말을 여쭈어서는 안 되었다.
“그렇긴 하겠다만.”
스님은 창밖으로 눈길을 던지면서 말끝을 흐렸다.
나는 대뜸 확장 공사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회적 선금을 필요로 하거나 아니면 나에게 지원금 요청을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엉덩이를 뭉기적대면서 뒤로 조금 물러나 앉았다.
“미국에서 사업하는 어느 기업인의 경제 지원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네. 고향이 여기인데 일찍 미국으로 가서 파란만장의 인생고를 겪으면서 끝내는 성공한 기업가로 될 수 있었다네. 그 분의 어머니는 우리 용문사의 신실한 보살님이셨네. 그분의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딸에게 거듭 이런 말을 했다네. 용문사가 너를 지켜줄 것이라고. 어머니에게 다 하지 못한 효도 대신에 용문사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네.”
스님은 조용히 말하였다.
나는 서서히 어떤 일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국의 사업가에 대한 인터뷰를 부탁할 수 있다는. 인터뷰는 별로 문제 될게 없었다. 한때 동료로 있었던 기자들에게 부탁하면 되었다. 스님이 직접 자기 의도를 밝힐 것 같지 않았다. 듣는 사람이 알아서 나서 주면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스님, 그 분 신문 인터뷰로 모실까요?”
나는 스님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물었다.
“미리 뭐 그렇게 떠들어 댈 일은 아닐세. 공사가 끝나고 나서 해도 늦지는 않겠지.”
“그럼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나는 도리어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자네가 하는 일인데, 물론 내가 자네가 하는 일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네.”
“그랬죠. 스님,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산중락서〉가 일을 냈네. 일을.” 스님이 무가내하게 뱉어내는 듯하였다.
나는 꽂혀 오는 스님의 시선을 피했다.
《산중락서》 에세이집의 원고료는 해법스님이 극구 사절을 해서 내가 받아 챙겼으며 인세는 해법사 계좌로 지금도 입금되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스님도 다른 말씀이 없었다.
“〈산중락서〉를 읽은 그 분은 내가 문학계 또는 출판업계 인사들과의 인맥을 믿고 있는 눈치라네. 그러니까 나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대필해줄 작가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네. 중요한 건 그 분이 자네와 같은 민족이라네. 내가 추천하는 사람은 무조건 믿겠다고 그러네.”
스님은 어렵지만 분명하게 말하였다.
내 마음속으로 아, 하는 어떤 바람이 쓸고 지났다. 막대한 확장공사 전액 비용을 후원 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분이라면 대필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나는 무작정 달려들어서 빼앗고 싶은 감정이 솟구쳤다. 그러나 스님 앞에서 그런 속물근성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은 실례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잠자코 있기로 하였다. 그러나 너무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었다. 필경 스님은 유력자로 나를 점찍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음을 은연중 내비쳤다. 그러니 내가 자진해서 나서야 했다.
“스님, 제가 그 일을 맡아서 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빨라지는 호흡을 조절하며 입술을 깨물고는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은 창밖으로 고정했던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돌아앉으셨다. 그리고 장롱 서랍을 열어서 메모지 한 장을 나에게 건넸다. 스님은 굳이 다른 해설을 붙이지 않았다. 나는 메모지를 받아 코드 안쪽 호주머니에 조심스레 넣었다.
그때 마침, 종소리가 덩덩 울려왔다.
점심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나는 해법 스님을 따라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대나무로 된 큼직한 통들에는 고사리무침, 더덕구이, 차를 마시고 남은 잎을 꼭 짜서 만든 녹차잎무침, 오이장아찌와 두부국이 담겨져 있었다. 스님께서 먼저 식사하시고 나는 보살님들과 함께 식사하였다. 대부분 낯익은 보살님들이었다. 절에서는 식사 시간에도 조용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비운 그릇을 헹구어 씻어내고 해법 스님에게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용문사를 도망치듯이 빠져 나왔다.
시내로 돌아와 나는 사무실 옆 건물의 커피숍에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면서 흥분된 내 몸과 마음이 차분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사업 관련의 대인관계에서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이 거의 다 비어져 가서야 나는 미국의 사업가 김 여사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다. 해법스님이 그 사이에 미리 김 여사에게 귀띔을 해놓은 상태였다. 김 여사는 가능하면 빨리 만났으면 하였다. 한시간 후면 어떠냐고 내가 제안을 했을 때, 김 여사는 그럼 본인이 투숙한 드래곤호텔로 와주면 고맙겠다고 하였다.
한시간 후의 드래곤호텔 커피숍, 나는 김 여사와 탁자를 사이 두고 앉게 되었다.
“〈산중락서〉의 역자로 해법스님에게서 소개받았습니다. 조 선생.”
김 여사는 호텔 로비에서 만나 커피숍으로 이동할 때까지 고개 짓으로 인사를 했을 뿐 입을 열지 않더니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50대 중반의 세련된 여사였다.
“네, 그렇습니다. 자그마한 번역회사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약간 떨어트리면서 말했다.
“〈산중락서〉 중국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을 다 읽었어요. 신기하더라구요. 저자와 역자가 한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요. 저자의 정서를 온전히 받아들여 역자가 바로 저자인 듯 했네요. 내공이 보이더군요.”
공적인 장소에서 사뭇 진중하게 말하듯이 김 여사가 말하였다.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써 태연해지려 했지만 나는 김 여사의 통찰력에 괜히 놀라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솔직히 말씀 드려야겠네요. 자서전 대필로 만났던 작가님 이미 두 분 있어요. 조 선생은 세 번째 분이시구요. 문학에 관심 있다면 먼저 만났던 작가님들은 이름을 대면 바로 아실 수 있는 나름대로 유명하신 분들이었어요.”
김 여사는 능수능란한 사업가임에 틀림없었다. 미리 경쟁자 후보를 거론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김 여사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재밋더라구요. 작가님들의 그 쓸데없는 자존심과 억지스러운 허세. 각자의 목적과 거래가 분명한 자리에서 그 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데 말이지요.”
김 여사는 손으로 커피잔을 쥐면서 말했다. 김 여사의 손은 아주 작았다. 김 여사의 말 속에서 그 어떤 비난도 그렇다고 그 어떤 거만함은 느낄 수 없었다.
“작가님들의 입장을 대충은 알 것 같지만, 그걸 허세라고 하시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라고 봅니다. 굳이 허세라고 한다면 김 사장님의 자서전 대필 자체가 허세일 수도 있지요. 그러니까 허세를 허세가 아닌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임이 거래에 도움이 될 수 있지가 않겠습니까?”
나는 김 여사에게 휘둘려서는 안 되는 생각으로 먼저 도전장을 던져 보기로 하였다.
“의외로 솔직하시군요. 조 선생. 그러니까 서로가 포장할 필요가 없는 믿음이 최고라는 말이 되겠죠. 흥미롭군요.”
김 여사의 주름진 입가로 미소가 비껴갔다.
나는 커피를 입가로 가져가면서 김 여사의 탁자에서 약간 들려진,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루비반지를 일부러 시간을 들이며 뚫어지게 보았다.
“아, 이 반지요? 엄청 비싼 돈을 주고 산 건데요. 저는 이 반지가 어디 긁히지 않게 항상 손을 들고 보호한다죠.”
김 여사의 가늘게 뜬 두 눈은 치켜든 반지를 향해 있었지만 내 얼굴의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선은 내 쪽으로 집중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김 여사는 막장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머리가 깡통으로 비어있는 졸부의 부인처럼 부에 대한 가치관을 뻔뻔스럽게 연기하면서 일부러 나의 인내를 떠 보고 있었다.
“그렇겠지요.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도 친구가 될 수 있겠지요. 서로가 함께 있으면 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친구로 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저에게 사물 친구 일번이라고 하면 대학 다닐 때 쓰던 노트북이었지요. 중고였지만. 그 노트북이 더는 작동할 수 없게 되어 전자제품회수처에 넘길 때 마음이 아릿하더라구요. 내 찌질하고 은밀하고 또한 슬픈 청춘의 기록들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친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깊은 상념에 빠져 보기로 하였다.
“사물 친구, 새로운 표현이네요. 그래요. 이 반지를 저의 친구로 생각해주셔서 고맙네요. 속물스러운 끔찍한 금전의 과시 앞에서 눈을 내리 깔던 작가님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때 저는 치 떨리는 모멸감에 괴로워하는 그들의 영혼을 보았다죠.”
김 여사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김 여사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었다.
“때로는 친구가 아닌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우렁이 속을 꺼내 보일 때도 있더라구요. 낯선 사람은 일단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냥 한 번 흘려듣고 말 뿐, 내가 했던 말들을 다시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위험이 없다는 게 장점이 되겠죠. 부담스럽지 않다고 해서 낯선 사람을 친구로는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편한 것과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은 미묘한 차이가 있겠지요.”나는 김 여사에게 말하였다.
“고수이시군요. 역시 해법 스님의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군요. 그러니까 자서전 대필이 이루어지려면 위탁자는 자기의 이야기를 고백할 수밖에 없고 대필자는 그 이야기에 공감을 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네요. 편한 친구는 아니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낯선 사람 정도로 대해줄 수 있냐는 질문이기도 하구요.”
김 여사는 내 손을 잡으려는 듯 손을 뻗쳐 오다가 도로 가져갔다.
“자선전 대필도 저는 창작의 행위라고 봅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타인의 삶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울러 타인은 나의 함정이 아니겠지요. 역설로, 아니면 변명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자서전을 위탁하는 사람에게는 지나온 인생의 편린들의 총결산이 되는 셈이겠지요. 다만 여과 없이, 부풀림 없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열어 보여 줄 수는 있어야겠지요.”
김 여사는 머리를 끄덕이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잠자코 있던 김 여사가 말했다.
“그만큼의 필력과 사고의 깊이라면 소설가로도 충분하겠네요. 아니, 뭐 대필가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구요.”
김 여사는 왜 소설가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의 아픈 구석을 찌르고 있었다. 이런 질문은 피하면 지는 것이다.
“물론 소설가라는 직업이 주는 아우라가 있긴 하겠지만, 글밥을 먹고 살아가는 소설가가 몇 명이라도 될 것 같습니까? 없어요. 대충 짐작 안 되십니까? 나름대로 유명한 작가분임에도 김 사장님과 자서전 대필 건으로 만난다는 자체가 어렵다고 자기 고백을 해버린 것과 뭐가 다를 게 있겠습니까?”
나의 감정은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낙천주의자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내 감정을 지배해갔다.
창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갔으며 거리의 가로등과 간판들의 불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퇴근길 사람들의 바쁜 걸음과 꼬리를 물고 천천히 기여 가는 차량들이 유리창에 언뜻 비쳤다.
그때, 찬연의 전화가 왔다.
나는 김 여사에게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양해를 구하고는 커피숍 입구 쪽으로 걸어 나와 찬연의 전화를 받았다.
“일찍 연락한다는 게 깜빡했네. 저녁에 고중동창모임 있어.”
“어, 알았어. 어차피 나도 바빠.”
“용문사에는 잘 다녀왔어?”
“그래, 스님께서 큰 놈 하나 선물했어.”
“뭔데?”
“자서전 대필.” “그래? 일단은 축하하고. 그런데 남자야 여자야?”
“이쁜 아가씨.”
“막 시들어가는 화류계의 파란만장의 아가씨?”
“잘도 아네. 나 지금 바빠.”
“알았어. 그런 스타일의 아가씨들과는 영혼 보다 몸을 잘 챙겨야 돼. 알았어?”
“네.”
나는 찬연과 통화를 끝내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여친에게서 전화 왔나 봐요. 어떤 아가씨인지 행복하겠어요. 요즘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적인 몸짱 남친을 포획해서요.”
김 여사는 빙긋 웃으며 말하였다. 그러면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 해보자고 제안하였다. 거래는 이쯤이면 거의 성공한 셈이었다.
호텔 2층의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면서 김 여사는 스치듯이 내 손을 잡았다 놓았다. 식사에는 술도 곁들였다. 시간은 사람을 쉽게 변하게 하지 않지만 공간은 사람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느닷없이 타인으로 변하게 한다. 그리고 낯선 사람들도 공간을 바꾼 다음,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구면이 되면서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다.
식사를 하면서 김 여사는 대필 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였다. 총 30만자 분량으로 상, 하권의 책이 되어야 하며 원고료는 30만위안이라고 하였다. 출판하고 나서 되도록이면 중국어판과 영어판까지 고려한다고 하였다. 나는 목 울대뼈가 올라가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나는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술잔을 잡고 술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시간이 허락되면 미국으로 초청해줄 수 있다고 하였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은 거의 미국이 무대가 되기 때문에 미국 생활체험을 어느 정도는 해야 자서전을 쓸 수 있다고 하였다.
술이 들어가면서 나는 흐트러져 갔고 김 여사도 수다스러워 졌다. 김 여사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겪었던, 흔한 영화 속의 이야기 같은 옛일을 말하면서 슬픔으로 울먹였다. 이미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나는 김 여사의 슬픔에 쉽게 공감하게 되었다. 나는 취기로 흐릿해진 머리를 끄덕였다. 김 여사는 어느 순간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맹렬해지다가도 어느 순간은 또한 깊은 비애에 빠지면서 감정선의 굴곡은 깊었다. 마침내 김 여사의 볼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나는 김 여사의 손에 손수건을 쥐어주었다. 김 여사는 잠깐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외로움, 김 여사의 짙은 외로움이 내 몸으로 전해왔다.
레스토랑을 나섰다. 나와 김 여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 여사는 휘청대는 몸을 가누려고 가까스로 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김 여사는 몸을 휘청거리며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고 허리를 굽혔다. 닫혀 가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김 여사의 손이 불쑥 나오더니 내 손목을 잡아채 안쪽으로 당겼다. 나는 문짝에 부딪치며 허망 끌려들어 갔다. 그녀의 앞가슴은 나를 문 정면 쪽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녀의 숙인 머리 너머로 나는 바뀌어가는 액정의 숫자가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가만히 안았다.
나는 파르르 떨려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다. 난 입술을 깨물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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