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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모인 30여 명 어센트 회원들의 요세미테 등반 : 화제의 산행-어센트 산악회 창립 55주년 행사
공식
2017.08.03. 00:00 283 읽음
어센트 55주년 창립기념 행사 중 단체 사진.
55주년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상당히 긴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사회적 시점에서 보더라도 1962년부터 오늘날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바뀌어 왔던가. 사회전면에 걸쳐 변화하고 있는 문화 그리고 기술의 발달 등. 우리주변을 본다면 공중전화에서 스마트폰으로 편지에서 이메일로 등등 지난 50여 년간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등반 기술과 장비, 등반에 대한 의식 등도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어 있는 지금. 아직도 면면히 그 이름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산악회가 있다. 지금의 젊은 산악인들에게는 생소할지도 모르는 이름, 그리고 중장년이 넘어버린 베테랑 산악인들에게는 그래도 조금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산악회. 어센트 클럽이다.
올해 유달리 봄비가 많이 내리는 밴쿠버를 뒤로하고 후배와 함께 캘리포니아의 멀세드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요세미테에서 개최하기로 한 어센트의 55주년 창립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보게 될 반가운 선후배들의 모습을 기대하며 또 한편으로는 다시 찾는 세계적 거벽등반의 요람 요세미테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개인 일정상 창립행사 기념식에 한발 늦게 도착하게 됐다.
캠프장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회원들은 이미 각각의 스케줄로 나누어 클라이밍 및 하이킹을 떠나 캠프장에 남아있던 김명춘, 이성혁 회장이 반겨주었다.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30여 명이 넘는 어센트 회원들.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여러 가지 사유로 같이 하지 못한 회원들이 아쉬움을 달래며 검단산에 모여 창립행사를 하였다고한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회원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뭔가 인상적이다.
어센트 산악회는 1962년 전병구님을 중심으로 동료인 이태용, 박행이, 유길웅님과 후배 엄수웅, 강기철, 김인식 님등의 참여로 이루어졌으며 등반문화의 태동기에 숱한 국내 초등의 기록과 히말라야등지의 해외원정등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산악회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어센트 산악회는 그와 시기를 같이했던 다른 산악회들처럼 평균연령이 50세를 훌쩍 넘어버리고 말았으나 등반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기념행사와 만찬이후의 간담회.
창립행사이후 회원들은 젊은(?)층들을 중심으로 한 등반 팀과 원로들을 중심으로 한 하이킹 팀으로 나뉘어졌으며 또한 등반 팀은 한국에서 온 팀과 캐나다에서 온 팀으로 나뉘어 로열아치, 미들 캐써드럴(Middle cathedral Rock)의 이스트 버트레스(East Buttress), 엘 캐피탄의 이스트 버트레스 등을 등반하였고 둘째 주 미주회원들과 합류하여 하프돔의 노스웨스트를 등반하였다. 캐나다 팀은 아쉽게도 일정상 하프돔 등반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복귀하였다. 이래저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2주간의 창립행사였다. 모든 이들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뜻 깊은 행사였지만 짧은 지면에 모두의 이야기를 소개할 수는 없기에 요세미테 등반에 참여한 대원들,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온 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써내려간 등반 에피소드를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김수영 대원의 에피소드, 미들 캐써드럴의 이스트 버트레스 등반
미들 캐써드럴의 이스트 버트레스 모습. | 엘 캐피탄의 이스트 버트레스 등반 중 바라본 미들 캐써드럴. |
Five Stars. 미국 바위의 인기코스는 별 5개가 최고점수이다. 이번에 오른 미들 캐써드럴 이스트버트레스도 최고점수인 코스이다. 아침 6시 기상하고, 7시 캠프장을 출발하였다. 역시 인기 코스인가 보다. 출발점으로 올라가니 벌써 두 팀이 등반중이였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어센트에 정식으로 합류한 김학용, 전경원 회원이 한 팀. 그리고 김한재 선배와 내가 한 팀으로 올랐다. 비교적 쉬운 1,2피치를 한 번에 올랐다. 피치 끝은 제법 스탠스가 좋은 곳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바위처럼 쌍볼트로 마무리 되어있질 않기 때문에 나무 또는 크랙에 슬링이나 캠을 설치하고 확보하여야 한다. 덕분에 더 많은 캠을 필요로 한다.
3,4피치도 한 번에 오르니, 처음으로 쌍볼트가 있다. 5피치는 이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눠진다. 김학용, 전경용 팀은 오른쪽 변형루트의 페이스로 우리는 왼쪽의 기존루트 볼트길을 선택해서 오르기 시작했다. 루트는 9피치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에 이때까지는 당연히 다시 만날 거라 생각했다. 본래 5피치 기존 볼트길을 올라 왼쪽의 크랙으로 붙어서 침니와 크랙을 따라 오르는 체력적인 부담이 큰 이 코스가 오리지널 이스트 버트레스 루트이지만 현재는 대부분 우측의 변형루트로 등반한다고 한다. 김한재 선배와 나는 오리지널 루트를 선택했다.
햇볕이 강렬하다. 건조한 기후로 땀이 배출되면 바로 증발하고 목은 바짝바짝 마른다. 6,7,8피치는 전통적인 침니길이다. 6,7피치를 한 번에 선등한 김한재 선배가 상당히 지쳐 보인다.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해 보았으나 회복이 쉽지 않은 듯하다. 미국에 도착해서 시차적응할 겨를도 없이 잠도 제대로 못자고 등반을 시작하니 컨디션이 엉망인 듯하다. 로프는 60m 한 동, 고민이다. 옆의 변형길로 오른 김학용, 전경원 팀을 만나지 않는다면 싱글로프 하강은 무리이기에 그들과 합류하기 위해 내가 한 피치를 올랐으나 우리 팀이 보이질 않는다.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어서며 다른 팀들도 하강을 시작한다. 결정을 해야 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돌아보니 더 이상의 등반은 좋지 않다. 오후 4시 하강을 결정한다.
미들 캐써드럴의 이스트 버트레스를 오르는 캐나다 팀의 김우영 대원. | 로열 아치스의 첫 피치를 시작하는 대원들. |
60m 로프 한 동으로 30m씩 나눠 하강하려니 어려움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긴 하강을 마치니 다른 팀도 내려왔다. 원래 11피치를 마치면 왼쪽으로 짧은 하강 두어 번하고 왼쪽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된다. 오늘 팀 전원이 오르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지만 모두 같이 무사하게 등반을 마쳤다는 점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센트 55주년을 기념, 미국 요세미티에서 같이 등반하기로 하고 꾸준히 함께 연습하던 몇몇 선배님들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지면서 엄마 새를 잃은 작은 새들처럼 요세미티에서 호되게 첫 신고식을 치른 하루였다. 그 후 우리 4명은 요세미티에서 2주를 보내며 한 팀으로 정비해 나갔다.
한결같은 웃음의 김한재. 과감하게 앞서나가는 김학용. 애정 어린 걱정으로 든든한 확보가 되어준 전경원. 그리고 나. 우리 넷은 피치가 길어 얼굴이 보이질 않고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자일로 서로 소통하고 격려해주는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요세미티의 긴 등반루트를 시간 안에 오르려고 쫓기지 말고 즐기면서 오르라는 선배님들 말씀대로는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 그리고 또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등반했고. 모두 무사하게 이번 요세미테 원정을 마쳤음에 감사한다. 전병구 선배님을 비롯하여 같이 요세미티에 참석하신 원로 선배님들. 멀리 뉴질랜드, 하와이, 캐나다에서 날아오신 선배님들. 몸은 한국에 있지만 더 많은 응원을 보내준 어센트 가족 모든 분들. 미국의 엄마로 통하는 이정열 선배님. 미국 행사진행에 큰 힘써주신 김명춘, 황규화 선배님. 그리고 총괄하시느라 고생하신 이성혁 회장님 등.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60주년, 70주년, 100주년, 300주년…. 어쎈 화이팅!
김한재 대원의 에피소드, 로열 아치스 등반
오전 7시 반이 넘어서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는 호사를 부리며 게으름을 피워본다. 오늘의 코스는 어프로치도 짧고 난이도 또한 앞서 경험한 다른 세 번의 등반보다 낮아서인지 로열 아치스에서 함께 등반할 대원들에게서 여유로움이 엿보인다. 오늘도 어김없이 김명춘 선배가 목적지인 아와니 호텔까지 손수 운전해서 배웅을 해주신다. 후배들에 대한 그의 사랑과 믿음이 우리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준다.
로열 아치스 루트의 시작점에 도착해보니 얼씨구, 별 다섯 개의 인기를 반영하듯 벌써 스페인에서 왔다는 친구들 세 명이 침니로 이루어진 첫 번째 구간을 선점해서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이왕 늦은 것 서두른다고 5.9가 5.4가 될 리가 만무하니 만반의 준비나 해 보자며 기다리며 보고 있자니 사십 대를 훌쩍 넘긴 것이 나와 비슷한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스페인 팀들. 매끄럽지 않은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순간 오늘 저 친구들 엉덩이만 바라보며 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하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역시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최종 하강까지 스페인 팀의 뒤꽁무니만 쫓았다.
하프돔 노스웨스트 페이스 13피치를 선등 중인 김학용 대원. | 엘 캐피탄의 이스트 버트레스 상단부 트레버스 지점을 통과하는 전경원 대원. |
오늘도 어김없이 선등은 김학용 대원, 두 번째 등반자는 로프액세스 레벨3 보유자 전경원 대원, 세 번째는 김수영 대원, 마지막은 저질 체력의 나, 항변을 하자면 첫날의 미들 캐써드럴의 이스트 버트레스 루트 여섯 피치에서의 5m 추락으로 갈비뼈 한 개가 금이 갔다. 당시의 나는 그것도 모르고 힘들게 등반을 이어갔다.
보기와는 다르게 침니가 참기름을 발라 놓은 듯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미끈거리는 게 우리 팀도 조금은 힘들게 오른다. 그리고 첫 피치 침니를 통과하니 다섯 피치까지는 거저먹듯이 통과하여 여섯 번째 직상 크랙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다들 요 며칠간 크랙의 진수만 맛보아서인지 너무도 손쉽게 오르고 네 명의 인원이 손발도 척척 들어맞는 게 엘캡의 노즈도 거침없이 오를 기세다.
이번 코스의 백미 아홉 번째 펜듈럼 구간도 거침없이 어렵지 않게 돌파하고 열 번째 확보 지점에서 느린 스페인 팀의 등반에 분통을 터트릴 즈음, 웃통을 벗어젖히고 달랑 물통 하나만 뒤에 매단 채 올라오는 솔로 등반가, 헉 이게 사람이야? 스파이더맨이야? 도대체 뭘 먹고 운동하기에 하며 놀란 표정의 우리들을 뒤로 한 채 쏜살같이 위로 사라져 버린다.
열한 번째 피치 3m 남짓의 바윗덩어리를 우회하면 손쉽게 지나갈 것을 김학용 대원 우직하게 오버행으로 돌파한다. 뒷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의 배려(?) 덕분에 모두들 그놈의 바윗덩어리와 용쓰느라 이번 코스 중에 제일 힘들었다. 열두 번째 피치가 끝나고 전경원 대원 왈 이번 요세미티 등반 중에 한 번도 선등을 못했다며 나머지 세 구간은 본인이 선등을 자청하고 나선다. 나머지 구간의 난이도가 5.4와 5.5였음이 좀 아쉽다. 15피치에서 등반은 끝나고 하강 확보 지점에 도달해서 보니 하루 전에 이 코스를 먼저 경험한 어센트 캐나다 팀 윤희수 후배의 말에 전혀 실감이 오지 않는다.
“한재 형, 이 코스의 백미 중의 백미는 하강이야!” “아니 왜?” “하강이 무려 열 피치가 넘어!” “에이 설마?” 하강 지점에서 내려다본 바닥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다섯 번이면 끝날 것 같아 보인다. 아무래도 윤희수 후배가 엉뚱한 곳으로 하강을 했나보다 생각하며 내려오기를 다섯 번째. 헐! 하강이 장난이 아니다. 눈에 잡힐 듯 하던 땅바닥이 내려가고 내려가도 똑같아 보이는 게 착시현상을 보는 듯 하다. 정말로 열 피치의 하강으로 마지막 하강을 마쳤을 때 모두의 입에서 터지는 한 마디 “우와 뭔 하강이!“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등반을 마친다.
김한재 대원의 에피소드, 앨 캐피탄의 이스트 버트레스 등반
새벽 4시 벌써 잠을 깬지는 오래되었다, 아직도 침낭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시차 적응에 힘들기만 하지만 설레고 두려움에 가슴 벅찬 엘캡의 이스트버트레스 등반을 생각하며 침낭을 박차며 일어난다. 같이 등반할 대원들 모두 장비점검에 여념이 없다. 서둘러 이른 아침을 먹으며 보니. 대원들은 지난 며칠간 두 번의 큰 등반을 통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보인다.
역시나 김명춘 선배님의 차로 엘캡으로 이동하여 배웅을 받으며 등반 시작점까지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의 배낭만큼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지 삼십여 분 지났을까? 가파른 너덜지대가 시작되고 숨차게 오르고 또 올라도 엘캡의 벽은 도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둠도 가시고 한 시간 삼십 여분의 어프로치가 끝나는 순간 드디어 오늘의 첫 피치를 마주하게 되었다.
허걱! 이건 또 뭐야 침니가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반쯤은 누워 있는 것이 여간 까다로워 보일 뿐만 아니라 왜 이리 길어 보이는지. 한숨은 나중에 쉬고 장비부터 서둘러 착용 선두인 김학용 대원 출발, 두 번째 전경원 큰 무리 없이 지나가고 세 번째 이번 등반대의 대장을 맡은 어센트의 숨겨둔 비밀병기 김수영은 삼 년 전에 이곳 코스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쉽게 오른다.
힘겹게 통과한 세 번째 피치의 확보지점은 불개미의 천국 같다. 넓디넓은 장소가 새까만 개미의 서식처로 발 디딜 곳이 만만치가 않다. 개미들은 로프며 종아리를 자신들의 먹잇감이나 영역으로 생각하는지 어느새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서둘러 다음 피치로 이동 다섯 번째 피치가 시작되는데 왼쪽으로 트래버스 해서 오르는 페이스 등반이라 다들 별다른 무리 없이 오르고 여섯 번째 피치는 두발로만 걸어도 될 만큼 평탄한 오르막이라 손쉽게 끝나고 다들 모여 간식을 먹으며 가벼운 농담들을 건네며 힘을 비축해둔다. 등반시간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며 웃는 등반대장 수영이의 모습이 아침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비친다.
요세미테 폭포.
일곱 번째 피치는 오르는 것보다 조디악 근처의 폭포에서 내리는 물방울이 바람에 밀려와 우박처럼 우리를 때리며 적시는 것이 곤혹스럽다. 또한 바위는 물기에 젖어서 왜 이리 미끈거리는지 이번 피치의 마지막 관문 오버행 구간은 안 그런 척 슬며시 반칙을 써서 통과,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피치의 크랙과 오버행의 구간도 숨 가쁘게 오르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지 발밑의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손톱보다 작게 보이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과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이 잔디처럼 펼쳐져 보이는 것 또한 역시 높이 올라오긴 온 모양이다. 시간도 정오를 훌쩍 지나 두 시를 넘어선지 오래인 것 같다. 여기서부터 문제의 11피치 오른쪽으로 15미터 이상을 트래버스 하여 횡단하는 것이 딱히 어렵지는 않은데 고도감이 장난이 아니다. 길 찾기가 힘들었을 학용이의 노고가 안쓰럽다. 이제는 다 왔다는 안도감과 급격한 체력 저하로 피곤함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12피치의 마지막 관문 오버행 구간이 끝나자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등반로는 확보 없이도 오를 정도로 평탄하게 엘캡의 정상 능선에 도달하였다. 이것으로 앨 캐피탄 등반도 성공!
김학용 대원의 에피소드, 하프돔의 레귤러 노스웨스트 페이스 등반
하프돔의 노스웨스트 페이스에서 주마링 중인 김수영 대원. 이번 등반대의 대장이다.
등반 이틀 전. 낮부터 날씨가 이상한 듯싶더니 급기야 주먹만 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15cm 정도는 내린 거 같다. 내일은 하프돔 등반예정인데 갑자기 내리는 눈발로 인해서 나의 마음은 내리는 눈의 양만큼 근심걱정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해서 온 미국 요세미테인데 이대로 등반은 끝인가 하는 마음에 착잡한 심정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녁식사 후 마시는 위스키에도 손이 안간다.
등반 하루 전. 아침에 일어나니 역시나 나무에 눈이 잔뜩 쌓여있다. 그러나 다행히 눈은 빠른 속도로 녹고 있었고,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희수씨의 이런 날씨에도 등반을 하기도 한다는 말에 내심 기대하기도 했지만 이내 오늘은 등반불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에라이!’ 어제 못 마신 술이나 마시면서 마음을 달래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그런데 다행히 눈은 정말로 빠른 속도로 녹고 있고, 오후에 그레이셔 포인트에서 바라본 하프돔은 멀쩡한 모습으로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거 같았다. 그래 내일은 무조건 등반시작이다. 죽이 되던 밥이 되든!
등반 시작. 어프로치는 어퍼파인 캠프장근처에서부터 시작이다. 레이크 미러를 지나서 부터는 너덜지대에 푸석바위, 불안해 보이는 중간중간 걸려있는 다 썩은 줄을 잡고 오르기를 4시간 정도, 겨우 우리가 등반할 하프돔의 레귤러 노스 웨스트 페이스 스타트지점에 도착한다. 이곳 LA에서 활동하고 경험이 많은 규하 선배가 벽을 바라보면서 코스 설명을 해주는데 아직 거벽등반 경험도 없고 요세미테가 처음인 나로서는 뭐라고 그러는지도 모르겠고 어디가 어딘지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그저 밋밋한 벽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저 붙어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뿐이다. 오늘은 애초에는 3피치까지만 고정로프를 설치하기로 했으나 조금 욕심내서 5피치까지 고정로프를 설치하고 나니 마음이 뿌듯하다. 우리는 저녁식사로 라면을 끓이고 규하 선배가 가져온 고기와 소주로 배를 채우고 기분 좋게 밤하늘을 바라보며 내일의 안전등반을 기원하며 잠을 청한다.
등반 이틀째. 새벽2시에 기상해서 등반을 시작하려 했지만 너무나도 편하게 자는 바람에 3시에 기상하고 말았다. 우리는 규하 선배가 구워주는 베이글로 바쁘게 아침끼니를 때우고 아직은 어두운 레귤러 노스웨스트 페이스의 첫 피치를 헤드램프에 의지한 채 오르기 시작한다. 내가 앞장선다. 어제 고정로프를 설치한 5피치까지 주마링으로 부지런히 오르다 보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후등자들이 올라오는 시간동안 가만히 대기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후끈 달아올랐던 몸이 식으면서 추위가 몰려온다. 6피치부터 9피치까지는 비교적 쉬운 길로 이어진다. 내심 이런 길만 계속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오른다.
9피치는 볼트따기 구간인데 어떤 넘이 박아놓았는지 짧은 내 키로서는 아무리해도 손이 닿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너트회수기를 용도 변경, 갈고리처럼 걸어서 간신히 오른다. 11피치 12피치 구간은 15년도인가 커다란 바위표면이 벽에서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길이 변형이 된 곳이다. 그 떨어져 나간 부분이 커다랗고 하얗게 드러나서 당시 상황이 짐작이 가고 저 밑으로 떨어졌을 바위돌을 생각하니 가슴이 쩌릿쩌릿하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로프 끝을 둘둘 말아서 카우보이 밧줄 던지듯이 진행방향 건너편으로 던져 바위틈에 걸리게 끔해서 건너가는 게 재미라면 재미이다. 이후 프리로 갈 때는 프리로 가고 적절히 프렌치프리도 섞어 가면서 오른다.
16피치 더블크랙을 오를 때 즈음해서는 미국 여자애들 둘이서 오르는데 내가 조심조심 있는 장비 없는 장비 다써가면서 오르는 길을 아무 장비도 없이 프리로 후다닥 추월해서 오르면서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다. 대한민국 남자의 한사람으로서 자존심이 확 상한다. 나도 이곳에서 태어나고 한 십년만 젊었어도 너희들만큼 할 수 있다고 마음 한켠으로 최면을 걸며 스스로의 위안을 삼는다. 이후 오후 5시쯤 17피치부터는 LA에서 거주하는 명우씨가 선등을 선다. 애초 퍼팩트한 계획은 지금 이 시각 환할 때 정상에 올라 관광객들한테 박수도 받고 정상에 길게 누워 있는 바위에 멋지게 누워서 밑을 바라보며 사진 찍는 것이었는데 우리의 바램은 이미 물건너 간 것 같고 이후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더니 깜깜해져서 랜턴 불빛에 의지한 야간등반의 시작이다.
그레시야 포인트에서 바라본 하프돔.
선등의 위치에 있을 때는 오름짓에 심취해 더운지 추운지도 모르고 올라왔는데 라스트의 위치에서 등반자들 올라갈 때를 기다리다보니 바람도 불고 걸치고 있는 옷도 변변치 않아서 추위 때문에 덜덜 떨며 앞사람들이 어서 빨리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여지껏 내뒤를 봐주며 뒤처리하며 올라온 일행들의 고충을 알 것같다. 이곳 레귤러 노스 웨스트 페이스의 묘미인 땡스 갓 레지를 지날 때는 프리솔로등반으로 유명한 알렉스 호널드처럼 멋지게 서서 걸어가려고 했지만 마음뿐 처음에는 폼 잡고 걸어가다 이내 쭈그려 앉아서 기어가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울 지경이다. 어두워서 일행들에게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다. 앞쪽 선등 명우씨는 이미 어두워진 밤, 마지막 슬랩을 오르기가 쉽지 않은가보다. 이후 라스트인 내가 정상에 오른 시간은 새벽 1시경 정도 된 것 같다.
하프돔 정상에 선 대원들. 좌로부터 김수영, 전경원, 황규화, 김학용.
우리는 서둘러 정상 기념사진을 찍고 하프돔 밑에서 짐 정리하고 우리의 등반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새벽같이 시원한 맥주를 사서 마중 나와 기다리시는 고마우신 어센트 형님들을 만나기 위해 배낭에 짓눌린 어깨의 통증을 이겨가며 부지런히 하산해 이번 하프돔 등반을 마친다. 아울러 내 바로 뒤에서 초행길인 나를 위해서 길잡이 역할을 해준 규하 선배, 마지막 선등 마무리하느라고 애쓴 명우씨, 홍일점으로 같이 등반하느라고 힘들었을 우리의 등반대장 수영씨, 묵묵히 우리의 안전을 위해 힘쓴 듬직한 레벨쓰리 경원씨, 그리고 우리의 하프돔 무사등반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과 지원으로 최선을 다해주신 어센트 형님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글윤희수, 김수영, 김한재, 김학용사진어센트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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