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철학 analytique (philosophie)
참조: 신실증주의(néo-positivisme)
「분석론」(Analytque)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av. J.-C.)의 오르가논(Organon)의 부분들, 「제1분석론」과 「제2분석론」으로 나누어져 있다. 오르가논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진술되어 있는데, 그가 항상 유지해온 형식 속에서 연역의 이론과 엄격한 추론의 이론(삼단논법)이 들어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이미 말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형식논리학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43RLG)
무정부정체 (l')anarchie 무정부상태
정부가 없거나 정부가 더 이상 없는 인민의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은 무정부상태를 민주주의의 극한적 상태라고 정의했다. 각각이 자기의 의지를 권력에 부여할 때, 정부가 자기의 인기를 걱정하여 각자에게 만족(plaisir 쾌락)을 주려고 할 때, 그때 무정부 상태가 도래한다. 무정부 상태로부터 자연적으로 폭군정(tyrannie)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이 경우는 정부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길항관계(antagonisme)들을 결정적인 방식으로 심판하기 위한 필연적인 권위를 가지지 못할 때이다.
무정부주의(l'anarchisme)은 확립된 모든 권력에 대한 체계적 거부와 개인적 가치 보다 상위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 위에 기초한 태도이다.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 1809-1865)은 사적 소유제거와 정부의 제거를 권하였기에, “무정부주의자의 아버지”로 간주된다. 오히려, 무정부주의를 가장 급진적인 귀결을 끌어낸 사람들은 러시아의 바쿠닌(Mikhail Alexandrovitch Bakunin 1814-1876)과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 Pyotr Alekseyevich Kropotkin. 1842-1921)이었다. “어떤 유일한 사상과 더불어 맹목적이고 구별없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라. 그것도 가능한, 가장 빨리 가능한 한.” 무정부주의자들는 결국에는 건설을 생각하지 않고 파괴만을 전념하는 “허무주의자들”로서, 나아가 지실한 혁명이 일어날 수 없는 봉기자들(les révolté 반항인들)로서 정의되었다. (43RLG)
[베르그송은 반항인으로서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꼽는다. 이들은 범죄자로 죽었다. 우리는 이들을 반항인의 전형으로 본다. 그 반항의 의미를 세계 2차 대전이 끝나서 카뮈가 등장하여 진정한 반항인에 대한 고민을 하게된다. 프랑스 68년에는 그 실천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사회체제의 벽은 두껍다. 다시 그 길의 모색자를 현실의 벽에 금을 내는 스키조에 관점을 찾은 것은 가타리와 들뢰즈 일 것이다.(43RLG)]
아낙사고라스(Anaxagore v. 500 av.- 428)
그리스 철학자이다. 그는 기원전 500년경에 이오니아 지방의 클라조메나(Clazomène, 밀레토스와 에페소스보다 북쪽, 현재 터키서부 해안지방의 이즈미르(Izmir)부근)에서 태어나 428년(72살 정도)에 [리디(Lydie) 지방, 포세앙인(Phocéens)들이 건설한 도시]의 람프사코스(Lampsaque, gr. Lámpsakos, 현 터키의 서부해안 랍세키(Lapseki))에서 죽었다.
그는 자연에 관하여(Sur la nature)라는 논집을 썼으며, 이 책에서 그는 호뫼오메리(homoeoméries)라는 원자들(atomes)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이 호메오메리란 “사물들의 배아”(germes des choses)들로 간주된다. 플라톤의 파이돈(Phédon) 속에서 소크라테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자연 속에서 목적성(finalité) 관념을 생각한 첫째 철학자였다. 아낙사고라는 이렇게 썼다. “시초에 혼돈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지성(l'intelligence, Nous)가 왔고, 그리고 지성은 모든 것을 질서 지웠다.”
[일반적으로 특히 렘프레히트 철학사에서 아낙사고라스의 누스에 대한 비판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를 든다. 아낙사고라스가 목적론이 기계론적 생각이라 한다. 우리는 램프레히트가 과도한 또는 일방적 해석을 한 것으로 본다.]
[플라톤이 일찍이 소크라테스로부터 들은 이야기 속에서 세계 형성의 원리는 티마이오스편의 기초가 될 수 있다. 혼돈에서 지성 질서라는 이야기 위에, 플라톤은 이데아를 먼저 설정하였다. 이 이데아의 설정이 생성론자 아낙사고라스의 호뫼오메리들과 달리, 전제가 되었고, 그리고 그 전제를 맞추기 위해, 정신(영혼)이 먼저 저세상에 있어야 한다는 추론을 했을 것이다. 이 영혼의 선전제는 순환논증의 오류이다. 그럼에도 이 전도된 철학은 서양철학사를 뒤바꾸어 놓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아낙사고라스에는 신화적 요소가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헤시오도스(Hesiode. Hēsiodos, -700년경)의 신통기에서 혼돈에서 에로스 그리고 가이아의 등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베르그송이 말하듯이. 종교의 생성은 내부에서부터일 것인데, 어쩌다 정의의 관념에 매여 전제로서 완전을 먼저 설정해야 현실을 풀 수 있다는 관점이 지배하면서, 정태적 종교로 빠져버렸다. 생성에서 형상으로 길은 형상에서 생성으로 길과 다른 길일뿐이다. 따라서 이 신화적 요소의 시대가 이성의 시대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생성론자의 시대에서 형상론자의 시대의 이행을 그 시대 상황이나 소크라테스와 다른 차원에서 플라톤의 의도와 의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fr, Anaximandre 640-547 av. J.-C.)
이오니아 지방의 밀레토스(Milet)에서 태어난 철학자이다. 탈레스(Thalès, 624-548 av. J.-C.)의 제자였다. 이오니아지방의 밀레토스 학파의 선두로서 탈레스를 계승하였다.
그로부터 남겨진 조각글은 불분명한 것이 많다. 그는 최초로 세계지도를 그리고, 또한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은 인정했다.
그는 더운 것과 찬 것, 건조한 것과 습한 것 등과 같은 대립자들로 세계[우주]를 설명하였고, 세계를 무한(infini, apeiron)이라 이름지었다. 대립자들은, 더운 것과 찬 것과 같은 것들이 표출될 때, 분리되어 나온다.
모든 생성은 대립자들의 분리이다. 모든 죽음은 무한[아페이론] 속에서 통합(union)으로 회귀한다. [무한 즉 자연자체로 회귀는 당연한 사유가 아닐까? 브라만으로 통합 즉 해탈도 마찬가지이며, 천국에로 초월도 회귀의 다른 표현일 뿐일 것이다]. 이런 개념[개념적 설명]은 헤라클레이토스(Hêrakleitos, Héraclite, 540-480)를 예고한다.
[평가로서] 아낙시만드로스는 이오니아지방 다른 철학자들, 탈레스, 아낙시메네스(Anaximene, v. 585-525 av. J.-C), 아낙사고라스(Anaxagore, 500-428 av. J.-C)등과 함께 그리스 과학[학문], 즉 서양과학 일반이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아낙시메네스(Anaximène, v. 585-525 av. J.-C.)
이오니아학파의 철학자로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이며, 밀레토스학파의 마지만 대표자였다.
그의 작품들 중 어떤 것도 전해지는 것이 없다. 그의 사상은 [일화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Diogène Laërce)의 글에 의해서 전해진다.
그는 공기를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했다. 공기가 부풀려지거나 응축됨에 따라서, 불, 물, 흙(땅, terre)이 형성된다고 한다. 이 부분적 실재성들은 공기의 밀도(densdité)의 차이로부터 일어난다고 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Terre)는 공기 위에 있는 평평한 판(table)이며, 별들(astres)은 지구를 감싸는 천구 위에 고정된 징(못 clous)들이라 생각했다.
불안 (une) angoisse
비결정적인 두려움(la peur 공포).
이 불안은 항상 어떤 대상에 대한 무서움인 그 두려움(공포)과 구별된다. 불안은 어떤 특수한 대상에 연관되어 있지 않다. 여기서 그 전반적이면서도 보다 심층적으로 걱정하는 (inquietant, 불안해하는) 성격이 생겨난다. 이것은 개인의 전체적인 심리기제(psychisme)이 흔들리는 것이다.
죽음 자체의 불안은 극단적으로 물결((une) vague)처럼 밀려오는 것이며, 어떤 정확한 표상도 동반하지 않는다. [무매개적이고 무의식적이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에 따르면, 그것은 추락((une) chute)의 감정과 우리들 모든 표상의 “불가해”(dissolution)의 감정을 동반한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불안이란 단어는 인간의 개인적 고통들을 통하여 반향되는 형이상학적 불안정(inquiétude métaphysique)의 의미를 취한다. 이 불안은 자신의 상황의 비합리성과 자기 생활의 부조리를 폭로한다. [무에 대한 비합리적은 하이데거, 삶의 부조리는 까뮈와 사르트르 일 것이다.]
동물기계론 animaux-machines (la théorie des)
동물은 심리기제가 없고 또한 동물의 운동은 순수하게 물질적 일체의 과정(기계적이든 화학적이든)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한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이론이다. “짐승들(les bêtes, f)은 인간보다 단지 덜 이성적이 아니라,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1628)』제5장, 「모루스에게 보낸 편지(Lettre à Morus)」(1649년 2월 5일)를 참조하세요.
정령론 animisme
[정령론으로 번역하는 것은 정신주의(유심론)과 영혼주의(생기론) 사이의 이중성을 지닌 것으로 정령론 정신과 영혼의 첫 두 문자를 딴 것이다. 정령주의는 한편으로 정신을 외화하여 사물에 이전시킴으로서 물신주의에 빠질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신체 뿐만 아니라 모든 물체 안에 작용하는 어떤 신비적 작용으로 간주하여 범심리주의론(panpsychisme)에 빠질 수 있다. 정신주의와 영혼주의는 우주와 세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에 대한 개념으로 써야한다는 생각이다. - 우주의 법칙이 개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대우주(macro)와 소우주(micro)의 유비적 추리는 동심원적 사유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사유의 합성품과 같다. 그러나 인간 또는 생명체는 동심원적이 아니라 분기적이다.(43RLI)]
사물을 정령있는(animée) 것으로 생각하는 [사유] 체계.
각 사건에 의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에 자연적 설명이다. [우연에 의도의 부여는 인간적 설명을 위한 방편이지 사실도 진실도 아니다. 그럼에도 의도 부여에서 종교성이 출발한다.] 여기에서 좋은 정령 또는 나쁜 정령과 같은 정령(esprits), 주술(sorts, 요술), 마나(mana) 등의 원시적인 용어가 등장한다. 이런 정령들을 기도(des prièrres), 희생제의(des sacrifices), 공물(des offrandes)에 의해 액막이하거나 불러와야 했다. 사회에 따라서서는 이방법들(기도 제의 공물)의 [숭배]의례는 다양하다. 이 정령론은 요사술(sorcellerie)과 마법술(magie)에 이르게 된다. 이 술(術)들의 목적은 신비한 힘을 지배하거나 피하는데 있다. [이런 사술(邪術)들이] 인간화(personnication)의[인본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형성과정에서, 물령신앙(fetichieme), 그리고 다신론(polytheisme)을 거치면서 다양한 종교들이 생겨난다. 정령론은 사유의 원리와 유기체적 생명의 원리와 동일시한다. (유기체적 생명의 원리에 대하여 슈탈(Georg Ernst Stahl 1660-1734 독일 의사이자 화학자)의 심리학의 이론을 참조할 것)
비정상 anormal
사물의 습관적 질서와 반대되는 것. ‘
비정상의 용어는 심리학적으로 잘 정의되지 않았던 특별히 사회적인 용어이다. 비정상적 개인은 열등한 개인이 아니라, 타인들과 차이 있는 사람이다. 이 용어는 근대 심리학에서는 사라졌다. 왜냐하면 근대심리학은 정신과 지성의 다양한 형태를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임상병리학적 관점에서 “비정상”인은 자동적으로 “정신병리”자(pathologique)를, 다시말하면 병자(un malade)를 의미하지 않는다. 비정상이란 단순히 특별한 것일 뿐이다. 그것은 일반적 규칙에 속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 어떤 종족들은 그들 모두 각각의 손에 6손가락을 가지고 있다. 이 종족이 “비정상”이기 때문에 완전히 적응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인류학 anthropologie philosophique
인간에 대한 철학적 연구.
형이상학적으로, 사람들은 인류학(l'anthropologie)과 존재론(l'ontologie)을 대립시킨다. 존재론 존재에 대한 철학적 연구이다. 인류학적 철학은 인문학적 철학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자연(la Nature)은 신들에게 내줘라”고 했다.
문화적 인류학은 사회 속에서 인간을 연구한다. 그것은 사회학의 한 측면이다. (참조: 인간, 사회학.) (43RMA)
안티스테네스 Anthisthène 기원전 444-365년경
그리스 철학자. 그는 기원전 444년경에 아테네에서 태어나 365년경(79살정도)에 아테네에서 죽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며, 퀴니코스 학파의 창설자이다. 그리고 디오게네스(Diogène le cynique, 413-327; 87살)의 스승이다. [디오게네스는 안티스테네스보다 31살 어리다.] 그는 행복(le bonheur)이란 덕(vertu, 탁월성)의 실행에 있으며, 이 덕은 외적 사물들에 비추어서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고 보았다. 자유로운 인간은 자기의 정념과 그 정념의 욕망까지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헤라클레스(Héraclès gr. Hêraclês)를 가장 덕 있는[탁월성을 발휘한 자] 존재의 모델로서 삼았다. [스토아학파가 헤라클레스를 영웅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안티스테네스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무감정 aphathique 무감동
성격의 근본적인 구성물들에서 감동성의 부재, 활동성 부재, 인격성에서 사건으로부터 오는 깊은 반향의 현존을 지닌 성격의 전형: 예로서 루이 16세(Louis XVI)이다. -[무정형(amorphe)과 무감동(aphathique)의 공통점은 활동성이 없다. 차이는 무정형은 심층의 울림도 없는 데 비해, 무감동은 심층의 울림은 있는데 드러내지 않는 자를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실어증 aphasie
두뇌의 손상에 귀결로서 따른 언어의 상실 또는 변질
이 상실은 언어의 이해만큼이나 언어 사용에도 타격을 준다. 이 상실은 정상적인 지성의 주체들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고, 이 경우에 감정을 체험하는 능력에서 애정적 혼란(l'affectivité)도 지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의 어떤 결함도 제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감각적 실어(l'aphasie sensorielle)과 브로카 실어(l'aphasie de Broca)를 구별한다. [베르그송도 당시의 이런 구분, 즉 감각장애와 실행장애를 잘 알았다.] 전자는 목소리의 기관이 작동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이며, 후자는 소리의 접속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
[위의 구분은 감각기제와 운동기제의 이원성을 설명하는 것이며, 베르그송은 감각 운동기제의 결함이외에도 다른 실어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에서 두뇌 손상없이도 억제에 의한 실어증을 보았다.]
읽기, 쓰기 이름 부르기의 불가능 등은 실어증의 다양함을 말해준다. 이 실어증은 일반적으로 오른 쪽 손잡이 경우에 두뇌의 좌반구의 손상에 기인하며, 자주 오른쪽의 마비를 일으키는 수도 있다. 재교육만이 실어증환자들의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 (43RMA)
필증적 apodictique
필연적 진술로서, 즉 부정할 수 없는 진술로서 언명되는 것. [칸트의 판단의 형식에는 양, 질, 관계, 양상이 있고, 각각에는 세 가지 판단이 있다. 양상의 경우에 문제적(problematique)판단, 진술적 판단(assertorique), 필증적(apodictique)판단이다 이 판단들에서 어떤 것이 언젠가 존재한다면 ‘가능적’(불가능)이고, 어떤 시간[어느 장소]에 존재한다면 ‘현존적’(비현존적)이고, 언제나 존재한다면 ‘필연적’(우연적)이다. 필연성과 우연성의 단을 필증적 판단이라 한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서, 사람들이 긍정과 부정이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될 때, 그 판단이 필증적이라 한다. 예를 들어, “원은 중심이 하나다”. 이 속성[술어]은 필연적으로 주어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순수이성비판(I, 1, 1.)에서.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에서, 절대적으로 명증하게 언명되는 것, 다시 말하면, 그 언명을 의심하는 것이 불가능 한 것을 말한다.
칸트는 ‘필증적’(apodictique) 형식을[필연-우연 판단, 필연적이다], ‘문제적’ (problematique) 형식[가능-불가능 판단, 가능하다]과 ‘진술적’(assertorique)형식[현존-부재 판단, 사실이다]에 대립시킨다. (43RMA)
아폴론적인 apollonien
이 용어는 태양과 조화의 신인 아폴론(Apollon)에 유사한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에 의해 발명되었으며, 그는 이것을 디오니소스 즉 포도주의 신에서 나온 개념인 디오니소스적(dyonisiaque)에 대립시킨다. 이것은 니체가 인간 정신의 모순적인 두 측면의 지칭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도취한자(le dionisiaque)란 도취(l'ivresse 취기)와 열광(la rage 분노)에 깊이 빠져 자신의 충동과 도약에 자기 자신을 맡긴 사람을 말한다. 명석한자(l'apollonien)란 충동과 도약을 엄격한 사유와 한정적인 형식 속으로 흘려보낸다. 그는 비극의 탄생(La Naissance de la tragédie, 1871)에서 비극 시인인 “아이스퀼로스(Eschyle, Aiskhulos, 기원전 525- 456경)는 아폴론의 아들이다. 아폴론 투명한 개별화의 신이며, 제한된 정의의 신이다”라고 한다.
아폴로니우스 Apollonios de Tyane lat. Apollonus 16-97
그는 신피타고라스 학파에 속한다. 아폴로니우스는 16년에 카파도스(Cappadoce 지방)의 티안(Tyne) [현재 터키 중부 남쪽에 위치한 곳]에서 태어나 97년경(81살) 에페소스(Ephese, gr. Ephesos)에서 죽었다.
도덕론자인 그는 풍습의 개혁을 설교했다. 그는 피타고라스의 삶(Vie de Pythagore)과 예언론(Traité sur la divination) 등을 썼다. 그의 이미지는 3세기 경에 수많은 사원을 장식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e de Socrate)
플라톤의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가 당시의 재판관 앞에서 행한 가상적 담론이다. 이 재판관들은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이방의 신들을 도입했다고 그를 고발했었다.
aporia 마실가 그리스에서 전승되는 삼대 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원주는 직선으로 환원할 수 있는가?
선천적 a priori
모든 경험에 앞선 것: [이 말을 그대로 하면 선험적이 맞다.]
아프리오리는 아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 후천적)에 대립된다. 아포스테리오리는 경험에 의해 획득된 것을 의미한다. 선천적과 후천적이라는 구별은 합리적 인식과 경험적 인식 사이 구별과 같은 것이다.
아랍 철학 (philosophie d') arabe
고대 말기에서 르네상스까지, 즉 성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아베로에스(Averroès, Ibn Roschd, 1126-1198)와 이브 할둔(Ibn Khaldun 1332-1406)에 이르기까지의 아랍의 철학을 말한다. 이 아랍철학은 서방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아랍철학은 고대 그리스철학(플라톤과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무슬림교과 크리스트교의 종교 사이에 합리적 종합을 총체적으로 탐구하였다. 아랍철학은 의학작품, 법률작품, 수학작품, 전문지식[현학적] 작품들로 매우 다양하게 분류되며, 깊이 있는 인문학적 문화를 증거하고 있다. 르네상스는 유럽에서 있기 이전에 아랍에서 있었다. [529년 그리스 아테네의 학당들이 폐쇄되고 학자들이 아랍으로 건너가서 아랍에서 고대철학의 르네상스가 먼저 있었다는 것이다.](43RMA)
아르케실라스 Arcésilas Arkesilaos 기원전 316-241
그리스 철학자. 아르케실라오스(Arkesilaos)는 기원전 316년 펠로포네소스 반도 서쪽의 엘리드(Elide, gr. Elis)지방의 피탄(Pitane)에서 태어나, 241년(75살)에 죽었다.
그는 신(新)아카데미학교(Nouvelle Académie)를 세웠으며, 그의 변증론은 찬성과 반대를 하는 기술이었으며, 그 기술은 우리에게 “그럴듯함”(la vraisemblance)을 탐지하게 한다. 스토아의 독단에 반대한 그는 스토아의 제논(Zenon av. 335-264)에 반대하여, 진리의 분명한 기호(signe)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판단 중지(suspension du jugement)하는 것이 알맞다고 한다. [크라테스(Crates)가 268년 죽고 나서, 아르케실라오스는 아테네 아카데미 다섯째 학교장이 되었다고 한다. (fr.Wiki) - 크라테스라는 인물을 매우 흔한 이름인 것 같다.]
원형 archétype
플라톤에 의해 사용된 용어로서, 이상적 전범(modèle idéal)을 지칭한다.(43RMA)
아리스티포스 Aristippe gr Aristippos
아리스티포스는 기원전 430년 경에 북아프리카의 퀴레네에서 태어나, 355년경(75살)에 죽었다. 그는 퀴레네 학파의 창시자이다. 그는 행복을 즐거움 위에 세웠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그는 철학에 실천적 특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학설을 환원시켰다. [철학은 실천이 되어야 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가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 25편의 대화편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귀족정 aristocratie
그리스어로 아리스토스(aristos)란 최상임(le meilleur)을 지칭한다. 어원적으로: “최상의 사람들의 정부”, 다시말하면, 가장 교양있는 자들의 정부를 말한다.
귀족정이라는 개념 안에서 원래적으로 태어난 권리의 관념, 즉 사회적 특권들의 상속적 이전의 관념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은 대화편 국가(Politeia, République) 속에서 “귀족정”을 최상의 정부로서 정의했다. 참조: 정부(gouvernement).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 Aristoteles 기원전 384-322 62살
그리스 철학자. 그는 기원전 384년에 마케도니아(Macédoine)의 스타지르(Stagire 현재 Stavros)에서 태어나, [별명으로스타게이레스(Stagirite, Σταγειρίτησ)라 부른다] 322년(62살)에 아테네 북부의 에우보이아(Eubée, Εὔβοια)지방의 칼키스(Chalcis)에서 죽었다.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의 주치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플라톤의 제자로소 20년을 보냈다. 그는 소요학파(l'Ecole péripatéticienne)의 창설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집들은 강의의 노트들이며, 광범위한 백과전서적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네 부분은 나누어질 수 있다.
1. 논리학 부분, 즉 오르가논(l'Organon)이 있다. 그것의 영향은 스콜라학자들을 자극했던 중세에 상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역법”과 “귀납법”의 정의를 제시했고, 우리가 오늘날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개념”, “판단”, “추론”등의 용어를 분간해냈다.
2. 자연 철학의 작품들, 자연학(la Physique)이 있다. 자연철학은 생기론적(vitaliste) 철학을 전개했다. 이에 대하여, 라이프니츠, 셸링, 그리고 심지어는 베르그송이 원용하게 되었다.
3. 형이상학(la Métaphysique)이 있다. 형이상학은 세계에서 신 즉 “최고의 현실태”(acte suprême)로부터 운동의 기원을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신은 세계에 내재하는지 또는 초월적인지를 아는 것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4. 실천적 도덕 부분,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que a Nicomaque), 정치학(Politique)이 있다. 이 부분은 고대의 소급적(rétrograde, 퇴행적) 관점을 혁신적이고 근대적인 관점에 연결한다. 소급적 관점이란 노예제의 필연성, 열등종족의 용어들이고, 근대적 관점이란 개인에 관한 지리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의 역할, 경험에 근거한 정치적 관념 등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들, 즉 특히 논리학과 인식론의 주위에서 중세의 모든 철학이 전개되었고, 그의 학설은 중세의 신탁과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참조: 소유학파(Péripatétisme).
아르노 Antoine Arnauld le Grand Arnauld 1612-1694 82살
프랑스 철학자 신학자이다. 그는 1612년 파리에서 태어나, 1694년(82살) 벨기에 수도인 브뤼셀(Bruxelles)에서 죽었다.
그는 쟝세니즘의 옹호자이자 거두였으며, 제스위트 교단에 맹렬한 반대자 였다. 그는 니꼴(Pierre Nicole, 1925-1695)과 더불어 그 유명한 포르 르와얄 논리학(Logique, dite, Logique de Port-Royal 1662)의 공동저자였다. 그는 신의 은총(la grâce)과 신의 통찰(la vision)의 학설에 관한 논쟁에서 말브랑쉬(Nicolas de Malebranche, 1638-1715)와 대립적 입자이었다. 그는 철학적 천재들이 갈망하는 추론하는 철학자의 모델로 남아있다. 참조: 쟝세니즘(Jansénisme) (43RMB)
예술 (l')art
규칙에 따라 사물을 만드는 방식, 보다 특별하게 19세기 이래로 미학적 창조에 의한 표현, 즉 미술(beaux-arts)
보다 일반적 철학적 문제는 예술의 기능(la fonction)의 문제이다.
1. 우선 사람들은 예술의 기능이 “아름다움”(la beauté)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엇이 아름다움인가? 어떤 용어가 객관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또는 반대로 각가의 개인적 판단의 소관인가? 내(je)가 그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어떤 사물이 아름다운가 또는 그것이 실재로 아름답기(est) 때문에 내가 그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가? 플라톤(Platon, 427-347 av. J.-C.)에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예술의 객관성과 아름다움의 객관성이란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애썼다. 칸트가 말했듯이, 아름다운 것(le beau)은 “사람들이 지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보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와 상호 관련하여 사람들은 “아름다움 자체”(la beauté en soi)가 현존한다고, 즉 조화, 순수, 고귀, 평정(sérénité), 감정의 고양 등과 같은 보편적 이상이 현존한다고 생각했다. 라파엘(Raffaello Sanzio, fr. Raphaël, 1483-1520)의 어떤 마돈나(madone), 보쉬에(Jacques Bénigne Bossuet, 1627-1704)의 어떤 설교, 몽사르(François Mansart, 1598-1666)의 어떤 건축, 교회의 소나타 음악 등은 예술의 좋은 생각을 충분히 불어넣는다. 예술의 기능은 실재성을 이상화하는 것이다.
2. 예술사는 우리에게 사실상 예술작품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사물의 표상을 해체하기(dissocier)에 이른다. 그래도 예술은 아름다움일 수 있고, 또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 1821-1867)로부터는 썩은 시체(la charogne)를, 뚤루르-로트렉(Henri Toulouse-Lautrec, 1864-1901)의 「라 글루(la Goulue 1892)」그림에서는 한 여성의 비천함을, 벨라스케즈(Diego Rodriguez de Silva y Velazquez, dit Diego Vélasquez, 1599-1660)의 「난장이 초상(Portrait d'un nain tenant un volume sur ses genoux」(vers 1645)에서는 기괴함을, 제롬 보스(Hieronymus van Aken, dit Jérome Bosch, v. 1453-v.1516)에서는 무서움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의 기능은 우리의 일상의 시선을 회피하는 부분, 즉 사회적 예절(convenances)와 전통이 우리의 시선을 우회하게 한 부분, 다른 말로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가 “세상의 밤 부분”이라 부른 것을 우리에게 폭로하는 것이다.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1828)는 아름다운 것의 표상이란 “거짓”이며 “맹목”이라고 고발했다. 보다 근대적인 개념에 따르면, 예술이란 탁월하게 현실적이다. 그 기능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름다움”의 개념 대신에 오늘날에는 “진지함”(autenticité)으로 대체되었다. 한 작품이 진지한 방식으로 표현된 것은 우리와 별개로 독립적인 실재성을 소유하는 것이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작품들은 세계에 대한 어떤 비극적 관점을 표현한다. 우리는 고흐라는 사람을 바라보기를 원치 않을 수 있고, 비극이 그의 작품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작품은 각각의 감성에 독립적인 개관적 실재성을 소유하고 있다. 참조: 추상, 미술(Beaux-arts), 미학(Esthétique).
(43RMC)
금욕 ascèse
엄격함(austérité), 즉 고행(mortification)의 의지적 상태. 이것의 목적은 영혼의 도덕적 전화 또는 고양이다.
일반적으로 의지의 견디는 인내(la patience et la persévérance)를 시험에 놓는 모든 훈련이라고 말된다. 예를 들어 철학적 금욕, 정치적 금욕. 금욕주의(l'acetisme)는 도덕적 방법이다. 이 방법은 동물적 삶의 본능을 최소한으로 만족하는데 있고, 또 자기의 욕망을 통제하고 쾌락과 공통의 감각을 지배하는 데 있다. 가장 간단한 기술(la technique)은 틀림없이 “요가”(le yoga)라는 기술이다. 플로티누스와 같은 고대의 철학자들은 요가를 이미 풍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가장 잘 알려진 이상은 성자의 이상이다. 성자 제롬(Jérôme de Stridon, Saint Jérôme, en lat.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v. 347-420)은 이 이상에 대한 엄격한 채식주의자의 표본이었다. 그는 사막에서 살기 위해 떠났고, 절제(sobriété)를 쇠약(l'inanition, 영양실조)에까지 밀고 갔으며, 몸을 씻는 것을 부정하였다. 이로부터 “성스런 향기에 젖어서”(être en odeur de sainteté)라는 표현이 나왔다.
진술적 판단 assertorique
사실의 진리를 표현하는 한 판단으로 일컬어지는 것. [칸트의 판단의 형식에는 양, 질, 관계, 양상이 있고, 각 각에는 세 가지 판단이 있다. 양상의 경우에 문제적(problematique)판단, 진술적 판단(assertorique), 필증적(apodictique)판단이다 이 판단들에서 어떤 것이 언젠가 존재한다면 ‘가능적’(불가능)이고, 어떤 시간[어느 장소]에 존재한다면 ‘현존적’(비현존적)이고, 언제나 존재한다면 ‘필연적’(우연적)이다. 필연성과 우연성의 단을 필증적 판단이라 한다.]
칸트는 다음 진술을 사례로서 제시한다. “인간은 이성을 부여받았다.” 진술적[판단]이란 필증적(apodictique)[판단]에 대립한다. 실증적 판단은 주체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오는 속성 을알린다. 즉 “모든 원에는 하나의 중심이 있다”.
관념 연합 association des idées
관념들의 자동적인 연결.
사람들은 인접(contiguïté), 유사(ressemblance), 대조(contraste)에 의한 연합을 구별한다. 인접의 예로서, 겨울은 추위[관념]를, 유사의 예로서, 녹색 양탄자는 초원을[푸른(하늘색) 벽걸이는 하늘을][원숭이 똥구멍은 빨갛다 빨간 것은 사과], 대조의 예로서 흰색은 검은색을 불러일으킨다. 관념연합이론은 만든 사람은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다. 관념연합주의(l'associationnisme)은 경험에 의해 자주 반복되는 연합으로부터 정신의 근본적 법칙들을 도출하는 이론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인식의 “경험주의” 이론이라 부른다. 베르그송은 이 관념연합주의를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정신[영혼]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창조된 것 모든 것에서 끌어내는 직관을 잘못 이해했다. 이 창조된[발명된 생산된 생성된] 것은 경험속에서 현존하는 것이 아니다. [베르그송의 두 개의 직관이 있다. 플라톤과 칸트의 직관은 지성이 상징기호(형상형이상학)에 대한 직관이며, 베르그송이 말하는 영혼의 직관은 생명경험의 총체로부터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직관이다. 베르그송의 직관은 생성권능, 즉 새로운 삶을 만드는 권능이다. 이것이 공산사회가 되든, 신비주의자가 만드는 만인공생공존의 세계이든 말이다.]
심리학에서 주어진 개인에서 관념들의 연합의 분석, 특히 [정신분석학에서] 관념들이 꿈의 과정에서 자유롭게 생산되는 것과 같은 연합의 분석은 무의식의 어떤 심리학적 경향들을 폭로한다. 이 경향들은 인격의 배경(le fond, 깊이 심층)을 구성한다. 정신분석학은 이 배경을 정확하게 밝히려 한다. 개인은 이처럼 자동적인 몇몇 환기작용(évoquations 환기된 표상들)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환기작용이 그를 시달리게 하고, 또 그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혼란하게 하므로, 사람들이 혼잡(complexe, 콤플렉스)라 부르는 것을 구성한다.
무신론 athéisme
인격적이고 살아있는 신의 모든 표상을 부정하는 학설과 태도.
이런 간략한 의미에서, 이신론(déisme)은 범신론(panthéisme)과 마찬가지로 무신론이다. 이신론은 신의 표상을 거부하는 것이고, 범신론은 스피노자에서처럼 신을 자연에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고전적 의미에서 무신론의 의미이다.
오늘날 무신론이란 용어는 훨씬 더 큰 확장적 의미를 갖는다. 이 무신론은 신이 어떠한 것이든지, 신의 현존을 부정하는 학설과 태도를 말한다. 이 부정은 항상 명시적인 것은 아니다. 니체가 말하듯이 신의 현존과 비현존의 괘념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의 한가지 유일한 걱정은 인간적인 사건들, 인간이 처한 상황과 운명에 대한 걱정이다.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 1804-1872)와 맑스(Karl Marx, 1818-1883)는 무신론의 근대적 이론을 만들었다. 즉 신에 대한 모든 신앙은 “소외”(aliénation)이며, 실재성(réalité, 현실) 앞에서, 즉 신의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미래라는 근본적 문제 앞에서 도망가는 것이다. 맑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할 때, 노동자가 자기 노동에서 소외되고 또한 이 세상에서 최상의 조건에 근접할 수 있는 희망 없이 살아간다는 점에서, 노동자는 최상의 “다른 세계”의 관념으로 위안 받고 있다고 맑스는 이해했다. 그 “다른 세계”란 미래에 자기의 정당한 지위를 가질 것이라는 희망 사항일 뿐이며, 맑스가 말하는 노동자의 안녕은 여기 현실의 나라(이 세상)라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적 의식이 종교적 의식을 대체해야만하고, 세상과 인간의 변형의 생각[관념]은 이 세상에 내려와야 한다. 따라서 천국(le ciel 이상 사회)은 저넘어(au-delà, 저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상에서 그것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에게 속하며, 사회적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나 도덕에 부합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속한다.
간단히 말하면, 무신론은 인류애에 알맞은 고유한 도덕적 덕목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들에 신적 섭리(divine Providence)의 개입을 거부하고, 인간들의 용기, 노동, 의지들만을 고려한다.
원자 atome
그리스어 부정을 듯하는 접두어 아(a)와 자르다(couper)는 의미의 동사 템나인(temnein)의 결합어이다.
그 개념이 지칭하는 바대로 불가분할이라는 의미에서, 물체의 가장 작은 요소를 말한다. 적어도 사람들은 19세기 세기 초기에까지는 그렇게 믿었다. [달톤(John Dalton, 1766-1844)은 구체적으로 물질의 기본 요소를 원자로 맞추려 했다. 그러난 라브와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는 이 요소의 세부적 분해와 결합 방식을 고민하였다. 원자보다 작은 것에 대한 논의는 19세기에 전자와 파장의 논의를 넘어서, 에너지의 장의 이론이 제기되는 19세기 말에는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 또는 에너지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한다.]
원자론 atomisme
물질이 원자들로 이루졌다고 여기는 철학적 학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gr. Dêmokritos, v. 460-v. 370)의 원자론을 그 시조로 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동일한 원자들로 형성되어 있다. [세계는 한정된 다양한 원자들(그 수는 무한하며)과 공간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사물의 분석[분해]한다는 것은 인위적 형태들을 넘어서 원자라는 진실한 실재성에 이른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에피쿠로스(Epicure, Epicuros. 341-270; 71살)가 나왔고, 그리고 나서 류크레티우스(Lucrèce, 98-55 기원전)에서는 “사물의 배아들”(germe des choses, semina rerum)과 같은 원자들의 생물학적 이미지를 만들었졌다.
원자에 대한 한편으로 기계론적(mécaniste) 개념화, 다른 한편으로 생기론적(vitaliste) 또는 역동론적(dynamiste) 개념화라는 두 가지 일반적인 개념화는 17세기와 18세기에 원자론의 전체적인 논쟁이었다. 특히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이론은 라이프니츠의 원자-힘[원자-에너지]라는 관점에 대립되었다.
오늘날 원자론의 문제는 더 이상 철학적 심급(ressort)이 아니라, 과학, 특히 미시 물리학의 심급이 되었다. 물질이 연속성이냐 비연속성이냐는 문제는 드로이(Louis Victor de Broglie, 1892-1987)의 파동역학(mécanique odnulatoire, 1924)으로 넘어서게 되었다. 이 파동역학에서 원자들이란 도처에 흩어진 에너지의 중심화의 점들로 생각한다. (43RMJ)
주의 attention
규정된 대상에 관한 정신의 집중화.
리보(Théodule Ribot, 1839-1916)는 자발적 즉 자동적인 주의(l'attention spontanée ou automatique)와 의지적이고 반성적인 주의(l'attention volontaire ou réfléchie)를 구별한다. 전자는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 주의이며, 후자는 인격적 노력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주의의 경험은 베르그송의 정신적 에너지(L'Energie spirituelle, 1919)에 실린 논문 「지적노력(l'Effort intellectuelle, 1902)」에서와 윌리엄 제임스 노력의 감정(Semtjment de l'effort, 1880)에서 심도있게 분석되었다. 주의의 경험은 성숙한 작업이며, 이것의 결과는 분명한 감정이다. [지적 노력을 통한 개념의 형성은 시간이 걸리고 그리고 그게 형성되면 모호함이 줄어든다. 즉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해야할 지를 좀 더 분명하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력은 우리에게 의존한다고 하면, 우리가 그 빛을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한 것은 주의의 역설적 성격을 낳는다. 즉 그것은 활동성인데, 그 활동성 때문에 우리에게 수동적이게 작업하게 한다는 것, 이것은 시몬 베이유(Simone Weil 1909-1943)의 견해이다. [역설적이란 경험적 노력(의지적 노력)을 다한다고 의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인데, 즉 개인의 노력의 한계성이 역설적인데... 그럼에도 표면적 자아가 노력을 집중함에 연관없는 어떤 것이 심층적 자아로부터 발현된다는 것은 역설이지 않는가? 이중성일까 이원성일까? 우리는 이중성 즉 중첩성에 무게를 두지만 이원성이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이런 의미에서 말브랑쉬(Nicolas de Malebranche, 1638-1715)는 “주의란 우리가 신성에게 갈구하는 기도이다.”고 한다.
계몽 Aufklärung
독일어 아우프클레룽(Aufklärung)은 프랑스어로 뤼미에르(Lumière)이다. 계몽의 철학(philosophie des Lumières)를 참조하세요.
아우구스티누스 (Saint) Augustin 354-430 - Aurelius Augustinus
라틴계 교회에서 교부들 중의 가장 유명한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트(Thagaste), 현재 알제리의 수카라(Souk-Ahras, Algerie)에서 태어나 430년(76살)에 히폰(Hippone), 현재 알제리의 아나바(Annaba, Algerie)에서 죽었다.
아버지는 베르베르족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크리스트교인으로 세례명은 성 모니카(Sainte Monique)가 였다. 그는 종교철학의 창시자 였다. 그의 크리트교 옹호는 호멜리스(Homélies), 신국론(De civitate Dei, La Cité de Dieu), 고백록(Les confessions)등의 저술과 「은총에관하여(De la grâce)」 「편지들에서 원죄에 의해 버림받고 은총에 의해 구원받은 인간의 동일한 관점을 소개한다.
자기에 대한 반성의 그의 방법은 우리 속에 우리 자신보다 더 깊은 신현전(Présence)을 발견하였다. 이 방법은 크리스트교 실존주의에까지 이르는 서양 신학과 철학을 표시한다. 여기에는 사랑에 기초한 인식의 주제, 현전 속에서 절정을 이루는 기억의 주제들이 발견된다.
아우구스티누스주의(Augustinisme)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7-1274)에서 나온 토미즘(thomisme)과 대립된다. 후자는 자연을 매개로 신을 발견하기를 애쓰는 반면, 전자는 주체의 내부를 매개로 한다. 그는 얀센주의(jansénisme)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었고, 얀센주의의 기초 논의는 얀센니우스(Cornelius Jansen, lat. Jansenius, 1585-1638)의 아우구스티누스(l'Augustinus, 1640)에 있다. (43SKB)
아우구스티누스(l'Augustinus, 1640)
이 작품은 1640년에 출판된 얀센(Cornelius Jansen, lat. Jansenius, 1585-1638)의 유고 작품이다. 그의 사상 속에는 은총, 자유의지, 예정설(prédestination) 등에 관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학설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1643년에 교황 우르바누스((Urbanus VIII, 1568-1644, 교황재위 1623-1644)에 의해 단죄되었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얀센주의 언쟁을 일으키며 모든 논쟁의 대상이었다.
오로빈도 Cri Aurobindo 1872-1950
[위키에는 고즈 또는 스리 오로빈도(Aurobindo Ghose ou Sri Aurobindo, 1872-1950)이다]
인도 신비가 철학자이다. 그는 1872년 인도 캘커타(Calcutta)에서 태어나 1950년(78살)에 인도 남부 동쪽의 퐁디셰리(a Pondichéry)에서 죽었다. 그는 영국에서 공부하였고, 인도 민족주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주요작품, 신적인 삶(la Vie divine)에서, 그는 힌두교 사상을 플로티누스(Plotinus 204-270), 브래들리(Francis Herbert Bradley, 1846-1924),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 영향 하에서 재해석했다.
요가를 총 집합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인간은 우주에 대한 조각 조각의 인식과 개인인적 의식을 초월해야(transcender) 한다고 한다. 오로빈도의 작품은 그의 제자중의 한 사람인 쟝 에르베르(Jean Herbert 1897-1980)에 의해 프랑스에서 선전되었으며, 힌두교의 성찰과 신비주의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을 서양의 정신에 부여하였다.
자동 또는 자동화 automation ou automatisation
자동인형(automate)의 창조.
현대 기술은 기계의 실행동작에서 인간의 지도로 작동하는 대신에 자동조절의 기계장치로 대체 하면서, 자동화의 의미는 발전하게 된다. 자동화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제기된다. 1. 기술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즉 기계가 전체적으로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전자 계산기, 사이버네틱, 응용전자기기들이.. 2. 사회적 문제가 제기된다. 예를들어 한사람의 기술자가 조절하는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50인의 노동자를 어떻게 복직시킬 것인가?
3. 심리학적 문제가 제기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프리드만(Georges Philippe Friedman, 1902-1977)과 같은이가 제기한 [인간이] 산업적 공간에서 적응의 문제. 4. 교육학적 문제가 제기된다. 즉 전문적 직업 훈련방향에 대한 문제.
참조: 노동의 분업, 여가. 기계주의(machinisme).
자치 autonomie
자신의 고유한 법칙을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일.
따라서 자치란 무정부(l'anarchie)와 대립된다. 무정부란 전 법률의 거부라는 점에서 특징이다. 자치는 칸트의 도덕 근본 개념이었다. 그러므로 개인이 원칙 없이 행위할 때, 개인은 양심의 가책(scrupule)이 없다. 즉 도덕적 무권위(l'anarchie morale)이다. 법이 개인에게 밖에서 부여할 때, 그 바른 행실은 어떤 도덕적 가치를 가졌다고 할 수 없다. 그 개인은 법에 복종했을 뿐이다. 이것은 타율(l'hétéronomie)이며, 법은 타자로부터 온 것이다.
그런데 개인이 도덕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은 오직 개인이 스스로 법칙을 자기 자신에게 부여했을 때이다. 이를 넘어서 그가 자신의 자유를 실현했을 때이다. 그 자유는 허공 속에서 실현한 것이 아니고, 오직 “그 법칙을 매개로” 했을 때이다.
심리학적 도식에서 보면, 진실한 자유는 노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노동을 하는 경우이다.
자립(l'autarcie, 자급자족)이란 국가 수준에서 자치의 특별한 경우이다. 자립은 스스로 경제의 법칙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폐쇄경제를 가정한 것으로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경제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자동암시 autosuggestion 자기 암시
우리의 행실에 미치는 어떤 생각(une idée)의 자동적인 영향.
자동암시는 자기 자신에 의한 일종의 암시이다. 그것은 어떤 생각을 끊임없이 불러오게 하는 우리의 고유한 기질이다. 이 생각이 결국에는 자동적으로 우리 행실을 규정하게 된다.
아베나리우스 Richard Avenarius 1843-1896
독일 철학자, 인식론자. 그는 184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서 1896년(53살)에 스위스 쮜리히에서 죽었다.
그는 마하(Ernst Mach 1838-1916)와 함께 경험-비판론(l'empirio-criticisme)의, 즉 신칸트학파의 영감을 받은 실증주의 학설의, 정초자로 간주된다. 순수 경험론 비판(Critique de l'expérience pure, 1888-1890)에서 나타난 그의 인식 이론은 경험의 개념을 구출하려고 힘썼다. 그 경험은 의식의 외부에 객관적인 실재성이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 실재성은 감각들의 복합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 “물체”(corps)에 의해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베나리우스의 학설은 흄과 버클리의 학설과 친화성이 있다.
아베로에스(Averroès, Ibn Ruchd, 1126-1198)
이븐 루쉬드는 아베로에스로 [유럽에] 잘 알려진 아랍의 철학자이며, 1126년에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에서 태어났고, 1198년에 모르코의 중부 마라케시(Marrakeh)에서 몰했다.
[코르도바(Cordoba, fr. Cordoue)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andalousie) 지방에 속한 도시이다. 세네카(Sénèque), 루카이누스(Lucain), 아베로에스(Averroès), 마이모니데스(Maimonide), 곤고라(Gongora) 등의 유명한 사람의 고향이다. 이 도시는 구아달키비르(Guadakquivir, anc. Bétis, 스페인 남부의 강이며 대서양으로 흐른다) 주변에 있다. 이 강의 주변은 안달루시아 지방이며, 이 강 주변에 세빌리아(Séville)도 있고 코르도바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코르도바에서 회교도 재판관(cadi)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법률학과 신학을 가르쳤다. 아베로에스는 그 뿐만이 아니라, 물리학, 의학, 점성술, 철학, 수학 등을 공부했다.
아베로에스는 이곳 저곳에서 살았고, 사유의 자유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마라케시에서 사법관직을 맡으면서 정착했다.
[마라케시(Marrakech) 모로코(fr. Maroc)의 중부에 있는 도시로 마그레브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졌다. 마그레브(Maghreb, en ar. al-Maghrib)란 태양이 지는 지역(endroit où le soleil se couche) - 일반적으로 지중해연안 사하라 사막 북서부 지방을 지칭하니, 결국 모로코(국가) 지역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부터 나온 그의 철학은 유물론과 합리론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세계의 무한성을 강조하는 경우이고, 후자의 경우는 종교의 독단에 비추어서 반성의 자유를 강조하는 경우이다.
그의 인간적 도덕론은 개인보다 인간에 관해서 훨씬 더 주의한다. 그의 철학은 전 유럽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즉 13세기 프랑스 철학과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탈리아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파두아(Padoue) 학파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그의 철학은 중세 문화의 정점에 서 있었다.
[파두아(it. Padova fr. Padoue): 베네치아 지역에서 베니스와 가까운 도시이다. 밀라노(Milan) - 베니스(Padoue: Venise) - 볼로냐(Bologne), 이 세 도시를 잇는 삼각 대 평원 지대에서, 파두아는 교통의 요지이다.]
아비세나(Avicena, fr. Avicenne, Ibn Sina 980-1037)
이븐 시나는 아비세나로 [유럽에] 잘 알려진 아랍의 철학자이자 의사이며, 980년에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Boukhara) 부근에 있는 아프샤한에서 태어났으며, 1037년 이란의 서부에 있는 하마단에서 몰했다. [하마단(Hamadhan, anc(옛). Echatane)은 이란의 서부에 있는 도시로서.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서쪽으로 100km서쪽에 있는 도시이다.]
그는 수학, 물리학, 의학, 철학을 연구했고, 의학 의전(醫典)(Canon de la médicine), 계시철학(Philosophie illuminative)을 썼다.
그의 철학적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동방사상의 혼합이었다. 그의 사상과 과학적 저술은 중세 서구 사상에 큰 역할을 하였다.
가치론 axiologie
가치들에 대한 이론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가치들 사이에 위계를 세우는 도덕론이다. 예를 들면, 셸러(Max Scheler 1874-1928)가 말하듯이, 가치들의 첫째 서열에는 선(bon 善)한 것에 대한 존경이고, 그 다음으로 고상한(noble)한 것에 대한 존경이고, 그리고 아름다운(beau) 것에 대한 존경 등등이다.
가치론은 초기에는 19세기 독일 논리학자인 로체(Rudolf Hermann Lotze 1817-1881)에 의해 전개되었고, 그리고 독일 가치철학 학파인 바덴학파의 빈델반트(Wilhelm Windelband, 1848-1915)와 릭케르트(Heinrich Rickert 1863-1936) 등에 의해 발전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뤼이에(Raymond Ruyer, 1902-1987)에 의해 소개되었다. (43SKD)
공리 axiome
그 자체적으로 명증한 명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서 분석론 후편 (1, 10)에서 “공리라 불리는 공통의 원리들은 최초의 진리들이다. 이 원리들에 따라서 증명이 연쇄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전체는 부분보다 더 크다”
공리는 전제(postulat)와 구별된다. 전제란 명증하지 않음에도 제시될 수 있다. [프랑스 기하학자] 르장드르(Adrien-Marie Legendre, 1752-1833)가 말하듯이 “근대 수학에서는 더 이상 공리가 없다”고 한다. 원리들의 가치는 귀결들의 풍부함에 의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