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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덴마크)
게피온 분수대
게피온 분수대는 아멜리엔보르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게피온의 분수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 황소 4마리를 몰고 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4마리의 황소를 몰고 있는 여신의 조각상은 이곳 덴마크 동부의 섬, 수도 코펜하겐이 위치한 질랜드(Zealand) 섬의 탄생 신화에서 나온 것이다
질랜드 탄생신화에 따르면 스웨덴 왕은 밤에 이 지역을 경작할 수 있도록 여신, 게피온(Gefion)에게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여신은 그녀의 네 아들을 황소로 변하게 한 뒤, 땅을 파서 스웨덴과 덴마크 핀섬(Fyn)사이를 흐르는 바다에 던져 질랜드 섬을 만들었다. 그래서, 질랜드의 모양과 크기가 스웨덴의 베네렌(Vanern)호수 모양과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분수는 1908년에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덴마크의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게피온 분수대는 1908년 칼스버그 재단이 코펜하겐 시에 기증한 것으로, 덴마크 예술가 안데스 분드가르드(Anders Bundgard)가 디자인 했다.
게피온 분수대는 처음 시청사 광장에 설치하려고 했으나, 계획을 바꿔 항구가 바라다 보이는 시타델(Citadel)부근에 세워졌다. 이후 1999년부터 분수의 보수가 이뤄지고 있다.
코펜하겐 시청사
코펜하겐 시청사(Copenhagen City Hall)는 1892년 마르틴 뉘롭의 설계로 북유럽의 낭만적 스타일로 지어져 1905년 개청한 붉은 벽돌의 건물이다. 이탈리아 시에나 시청 건물을 모방했다고 하며, 정면 발코니 위에는 12세기 후반 덴마크 대주교 겸 정치인이었던 압살론(Absalon)상이 부착되어 있다.
시청사 중앙에 보이는 높이 105.6m의 탑 위에 오르면 코펜하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탑의 종은 15분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이 시계탑에는 옌스 올센이 디자인한 천체 시계가 설치되어 있다. 또 모든 건물은 시청의 종탑 보다 낮아야 한다는 원칙에 의거, 건물 높이를 6층으로 제한했다. 도심을 걷는 이들에게 다정한 탑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란다
시 청서 내부는 산뜻하며 지붕이 유리로 되어 있어 채광이 좋다. 시장의 싸인이 있으면 무료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으며 1986년부터 동성 연애자도 시청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이 가능해 졌단다.
안데르센 동상
1805년 덴마크의 오덴세에서 태어나 15세 되던 해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코펜하겐으로 상경하여 배우가 되고자 무던히 노력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빛을 보지 못하고 동화에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미운 오리새끼, 성냥팔이 소녀 등 1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여 지금은 전 세계 어린이에게 가장 큰 선물을 가져다 주신 할아버지로 존경받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1875년 8월 그가 죽었을 때는 전 국민이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아멜리엔보르그 궁전
바다와 접한 궁전 입구는 원형의 분수대가 있다. 시원한 분수대를 돌아 안으로 들어 간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광장이 나타나고, 광장에는 같은 모양을 가진 4개동의 로코코풍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듯하며 8각형을 이루고 서 있다. 바로 아멜리엔보르그 성이다.
이곳은 원래 4명의 귀족이 거주하던 건물이었으나 18세기에 왕이 거주하던 "크리스티안보리" 긍전의 화재로 왕실 사람들이 거주할 곳이 없어지자 귀족들이 건물을 내주었다고 한다. 현재 덴마크를 통치하는 여왕이 살고 있는 아멜리앤보르그 궁전 돔형의 지붕 모습이 멀리 보인다
광장은 수 많은 덴마크 사람들의 휴식 공간으로, 코펜하겐을 찾는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고 있다.
크리스티안스보르 궁전, 프레데릭 7세의 기마상
크리스티안스보르 궁전은 1441년부터 1794년 화재가 일어났을 때까지 왕궁으로 이용된 곳이다. 현재는 여왕 접견실, 국회의사당, 박물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프레데릭 7세의 기마상은 절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혼란스러운 과도기에 덴마크의 평화를 지켜낸 사람으로 기미상 아래는 "국민의 사랑은 곧 나라의 힘"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그의 신념을 엿 볼 수 있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인어동상(Den Lille Havfrue)
카스텔레트 요새에서 해안을 따라 300m정도 떨어진 해안가에 있는데, 지금은 코펜하겐의 상징의 하나로 코펜하겐을 찾는 모든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관광명소다.
인어동상은 바닷가에 고즈넉하게 서 있지만 막상 대하니 소문대로 썰렁한 것은 그건 사실이다. 실제로 바다의 대왕 막내 공주인 아리엘 과 육지세계 왕자 사이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끝내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물거품으로 변해 버린다는 인어공주 아리엘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한편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바라보면 썰렁함 보다는 애틋한 생각이 앞서게 된다. 한편, 이 조그마한 80㎝ 크기의 ‘인어 공주’ 동상은 칼스버그 맥주회사의 2대 사장이 왕립극장에서 상연된 발레 ‘인어공주’를 보고 1913년 조각가 드바르트 에릭슨에게 제작을 의뢰해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톡홀름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은 스웨덴 왕국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 도시이다. 멜라넨(Maelaren)호수와 발트해가 만나는 지점에 떠있는 작은 섬인 감라스탄(Gamla stan)을 발상지로 하여 1253년 당시 집권자였던 비르예르 알(Birger Jarl)왕이 이 작은 섬에 성채를 쌓고 섬 주위에 통나무(Stock)로 목책을 친 다음 섬 양쪽으로 흐르는 물길을 수문으로 막고 선박의 입․출항을 감시 통제했다고 한다. 스톡홀름이라는 명칭은 바로 통나무의 스톡(Stock)과 작은 섬이라는 홀름(Holme)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데, 스톡홀름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 것은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 왕에 이르러서다.
감리스탄의 중심 광장 스토르토리에트(Stortorget)
구시가지는 마치 시간이 중세에 머문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마침내 감라스탄의 중심광장인 스토르토리에트(Stortorget)로 들어온다. 토리에트(torget)는 광장이라는 말이고 스토르토리에트(Stortorget)는 대광장이라는 뜻이라는데, 그다지 넓은 공간이 아니어서 대광장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과장되어 보인다.
감라스탄의 중심지라는 의미로 그 중요성에 의해 대광장으로 불렸을 듯하다. 스토르토리에트는 지금도 스톡홀름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사진은 광장 가운데서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바사 박물관(Vasamuseet)
스톡홀름의 유르고덴 섬에 있는 바사 박물관은 바사(VASA)호라는 배를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어두운 실내에 거대한 배가 눈에 나타난다. 바로 바사호다. 바사(VASA)호는 바사 왕가의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명령으로 네덜란드 출신 조선사 헨릭하버트슨의 감독에 의해 2년 가까이 걸려 건조 되었으며 왕조의 이름을 따 바사호(VASA)라 명명 한 것이라고 한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Gustav II Adolf)는 스웨덴의 국왕(1611~1632)으로 구스타브 1세의 손자이다. 스웨덴을 강국으로 만든 ‘북방의 사자’ 또는 ‘설왕(雪王)’이라 불린 왕이다.
바사호는 뱃머리에서 선미까지의 길이는 69m이며, 최대 폭은 11,7m다. 1,300톤에, 10개의 돛이 달린 3개의 돛대를 가지고 있으며, 탑승가능인원은 450명(300명의 군인)으로자작나무로 배를 만들었다고 하며, 배의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120톤 가까이의 돌을 맨 아래층에 가득 채워 선박의 무게 중심을 유지하려 했다고 한다. 1628년 8월 10일 스톡홀름 항에서 다른 여러 함대와 함께 첫 출항을 했는데, 겨우 1300m 정도 항해하다가 수심 330m의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한 비운의 전함이다.
그후 300여년이나 내해에 가라앉아 있던 바사호는 1956년 해양 고고학자 안더스 프란젠에 의해 발견이 되고, 침몰 된지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되었다. 바사호 인양 당시 14,000여개 이상의 목재조각 장식품들이 함께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특수 보존처리를 하여 원래의 위치에다 짜 맞추었다고 한다. 이 배는 전함임과 동시에 바다에 떠있는 궁전이기도 하기에 정밀하고 예술적인 의미를 가진 많은 조각품을 장식했다. 배에 장식된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자상, 영웅의 상, 황제의 얼굴, 해양 동물상, 천사상 등이 정교하게 목재로 조각되어 있다.
스톡홀름 시청사(Stadshuset)
스톡홀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내셔널 로만 양식의 스톡홀름 시청사는 1923년도에 유명 건축가인 라구나르 오스트베리(Ragnar Ostberg)의 설계로 800만개의 붉은 벽돌로 만들어졌다. 20세기 북유럽의 최고 걸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1923년도는 덴마크로부터 통일을 이끌어낸 구스타브 바사 왕이 해방군과 같이 스톡홀름에 입성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중후한 외벽은 고딕 양식의 창문과 어울려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한 면모를 보여 준다
건물 남동쪽 모서리에는 종탑이 우뚝 서 있다. 106m 높이의 첨탑 위에는 3개의 황금색 왕관 모형이 장식되어 있는데, 스웨덴왕실의 문장이라고 한다. 종탑 안에는 9개의 종이 매달려 있다고 하며, 가운데 있는 가장 큰 종은 네덜란드에서 선물로 보낸 것이라고 한다.
스톡홀름 시 의회 회의장
매년 12월10일 노벨상 수상 만찬회장으로 이용하는 "블루홀"과 1900만개의 금박 모자이크로 장식된 펑화를 상징하는 멜라렌 호수의 여왕상이 벽면 전체를 장식한 "황금방"은 노벨상 수상 후 무도회장으로 쓰인다고 한다.
시 청사 "블루홀(푸른방)"은 노벨상 수상 축하 만찬이 열리는 곳이다. 블루홀에서 인증샷
시청 정원(Stadshusparken)
시청사 앞에는 멜라렌 호수를 바라보고 시청사 테라스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시청 정원(Stadshusparken)이 있다. 넓은 정원에는 분수대와 여러 조각품들이 있다
멜라렌 호수를 바라보는 시청사앞 광장에는 여러개의 청동상이 있으며, 호수 너머에는 많은 유적지가 있는 감리스탄이 보인다
왕궁 (Stockholms Slott)
구시가지 북쪽에 위치한 왕궁은 1697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754년 완공된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과 프랑스의 로코코 양식을 도입한 건물로 1982년까지 스웨덴의 왕궁으로 사용 되었다
현 국왕이 집무하고 있는 왕궁의 일부는 관광객에 개방되고 있다. 보물의 방에 있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왕관도 볼만하다.
왕실이 스톡홀름에서 배로 40분 거리에 있는 드로트닝홀룸 궁전으로 옮김에 따라 현재는 국왕의 집무실과 외교 사절의 숙소와 만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왕궁 근위병의 교대식도 이곳에서 거행 되는데 기마군악대 기마근위병도 볼 수 있다
헬싱키 (핀란드)
러시아 알렉산드르 1세에 의하여 1812년부터 핀란드의 수도가 된 헬싱키는 인구 520,000명으로 바다에 둘러 싸여있는 발트 연안의 도시이다. 유럽 각국의 수도중에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수한 항만시설로 인해 북구의 교통 중심지로 꼽힌다. 60여개의 박물관과 레스토랑, 카페가 있어 관광객이 늘 붐빈다. 살아 숨쉬는 듯한 자연의 향기가 느껴지고 녹지대가 많은 시내거리는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있어 ‘발트의 아가씨’라고 불리운다.
암석교회(Rock Church)
큰 바위산의 암석을 파내고, 또 떼어낸 그 암석들을 활용하여 건축한 교회다.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교회의 성스로운 분위기를 살리는 취지의 건축물이다. 암석위로는 빛을 받아들일 수 있게 사방에 180개의 투명유리창을 만들어 조명하게 하였고, 특히 뛰어난 음향 효과 때문에 콘서트를 비롯 다채로운 뮤지컬 공연이 이곳에서 열리며, 내부는 장식물, 계단, 종각 같은 것들은 찾아 볼 수 없고 중앙에 작은 십자가만 눈에 띠는데, 왼쪽 벽쪽에는 3100개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시벨리우스 공원
소나무가 울창하게 조성된 이 공원은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쟝 시벨리우스(Jean Sivelius)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기념하기 위한 공원으로 조성된 곳이다. 공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4톤의 강철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모양의 시벨리우스 기념비다. 은빛으로 빛나는 600개의 강철 파이프는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시벨리우스 두상.
핀란드의 대표적인 여류 조각가 엘라 힐투넨이 1967년 시벨리우스 사후 10주년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마켓 광장 (Market Square)
원로원 광장에서 남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가면 ”까우빠뜨리(마켓 광장)“가 있다. 마켓 광장은 노천 점포들로 이루어진 시장이다. 헬싱키 항구와 시청사 사이에 있는데, 각종 과일과 야채 등 농수산물, 생활용품, 악세사리, 모피, 아이스크림에 커피, 그리고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음식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판매하고 있다. 핀란드의 대통령이 서민과 더욱 친근해지기 위하여, 일부러 시장 앞에 궁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헬싱키 대성당
바로 투오미오카르코 대성당(루터란 대성당)으로 불리는 헬싱키 대성당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루터파 교회 신자인 핀란드의 루터파 교회의 총본산이기 때문에 헬싱키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기 전인 1917년까지 성 니콜라스 교회 또는 단순히 큰 교회라 불렸었다고 한다. 하얀색 외벽과 주랑이 밝은 녹색의 돔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누가봐도 세련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건물이다. 중앙 돔을 중심으로 4개의 작은 돔들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헬싱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로 핀란드 국교인 루터파(Lutheran)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원로원 광장(의회광장) 중앙의 알렉산더 2세 동상
광장의 주변은 북쪽의 헬싱키 대성당, 동쪽에 정부종합청사, 서쪽에 헬싱키 국립대학이 있고 남쪽에는 상가 건물이 둘러싸고 있으며 광장의 중앙에는 이 광장을 만들게한 알렉산더 2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 동상은 나폴레옹 이후 러시아 지배 때인 1894년에 세워 졌다고 한다. 광장 바닥은 약 4만개에 달하는 화강암이 깔려 있다.
우스펜스키 성당
우스펜스키 성당은 러시아 정교의 교회로 지금은 핀란드 정교의 교회가 되었지만, 교회 꼭대기에 양파모양의 돔이 있어 러시아에 대한 반감으로 '양파교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원로원 광장에 있는 헬싱키 대성당과 마주보는 유명한 성당으로 내부도 화려하다. 러시아 정교로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19세기 1868년 성모안식 대축일을 기념하려고 이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건축가는 러시아의 고르노스타예프가이며 비잔틴-슬라브 양식으로 건축했다. 붉은색 벽돌건물과 청회색 지붕, 황금색의 첨탑이 13개나 되어 모습이 아기자기 하다.
교회 내부에 천연물감으로 그린 그리스도와 12 제자의 성화가 있다. 그리고 그 주위를 금빛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된 벽돌은 스웨덴에서 왔는데, 1854년에 크림전쟁 때에 파괴된 스웨덴 올란드 요세의 벽돌을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한다. 우스펜스키 성당 정원에서 헬싱키 항(발트 해)을 뒤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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